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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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에어리어의 렙틸리비아는 두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대림 상上 렙틸리비아와 대림 하下 렙틸리비아죠. 상 렙틸리비아는 구 여의도와 대림 에어리어의 13, 14, 15, 16구역 지하에 위치합니다.”
안타란의 말을 들으면서 어설프게나마 머리에 대림 에어리어의 지도를 떠올렸다.
대림 상 렙틸리비아가 위치한 곳은 대림 에어리어 중에도 기계 교단 성당이 위치한 구 여의도와 기업들의 연구개발단지가 있는 곳, 즉 그나마 일반인이 걸어 다녀도 폭력이나 겁박을 마주하지 않는 지역이었다.
“대림 하 렙틸리비아는 나머지 구역의 지하에 있습니다.”
이번에는 자코가 안타란의 말에 설명을 덧붙였다.
“하 렙틸리비아가 차지하고 있는 구역은 넓지만, 상 렙틸리비아가 더 발전되어 있고 사람도 많아요.”
“왜지?”
“아무래도 지상에 양질의 일자리도 있고, 한강이라는 취수원이 바로 근처에 있잖아요. 사실, 상 렙틸리비아는 생활반경이 온전히 지하인 사람이 드물어요. 렙틸리비아에서는 잠만 자고 깨어 있을 때는 지상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많죠. 하지만 하 렙틸리비아는 그렇지 않아요.”
안타란이 자코의 말을 이어받았다.
“렙틸리비아는 지상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자생보다는 공생, 기생에 가까운 형태니까요.”
일종의 학군 같은 느낌으로 이해했다.
똑같은 학생이라도 주위 면학 분위기에 따라 어떤 학생은 모범생이 되고, 어떤 학생은 문제아가 된다고 하지 않나.
파충류, 양서류 수인이라는 동질감에 네오-서울 지하에 뭉쳐 살긴 하지만 결국 지상의 환경에 따라 생활의 환경과 반경이 달라지는 것이다.
13, 14, 15구역의 기업 연구단지는 상하수도에 없다.
하지만 그 외 구역, 특히 에어리어 외곽으로 향할수록 급격히 늘어나는 할렘가는 지상이나 지하나 비슷한 모습일 것이니 나올 일이 없는 것이다.
상처에서 고통이 느껴지는지 안타란이 얼굴을 찡그린 채로 설명했다.
“다른 구역장들이 모이는 회의가 끝난 후, 스콰이어가 제게 말하더군요. 아, 스콰이어는 대림 하 렙틸리비아의 구역장입니다.”
“악어 수인, 엄청 크고 성질도 더러워요.”
자코의 재빠른 설명에 내가 질문할 필요가 없어졌다.
잠자코 안타란의 말을 들었다.
“예공방의 상무가 요청했다는 겁니다. 자기가 데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렙틸리비안 로드를 사용할 수 있겠냐고요.”
자코를 쳐다보면서 내가 말했다.
“렙틸리비안 로드.”
“상수도를 피해 따로 뚫어놓은 지름길 같은 통로예요. 렙틸리비아 사이를 연결하기도 하고, 외부로 통할 수도 있어요. 몇몇 통로는 지하에서의 이동 거리를 확연하게 줄여주지만, 그런 곳은 구역장의 허가가 없으면 이용할 수 없어요.”
전기를 쓰면 본인도 감전되는 건 여전히 어이가 없지만, 눈치 하나는 빨라서 자코를 데리고 다닐 만하다는 정현의 칭찬이 이해가 갔다.
안타란이 물을 한 모금 더 마시는 동안, 잠깐 생각을 정리했다.
‘예공방의 상무면 수연이겠군. 하체가 뱀인 종족인 라미아였던가······. 하체 대부분을 기계로 교체하기는 했어도 일단 파충류형 수인에 해당하긴 하네.’
야스민 공의 말에 따르면 수연은 출신을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알려진 정보가 드물다고 했다.
네오-서울 지하 전역에 있다는 렙틸리비아를 옮겨 다녔다면 그 촘촘한 야스민 공의 정보망에도 걸리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이건 일단 가설로 남겨두고.’
안타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렙틸리비안 로드를 이용해서 한강으로 빠져나가겠다고 하던데, 몇 명이나 들어오는지 뭘 옮기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서 저는 거부했습니다. 그랬더니 스콰이어는 정말 큰 기회라면서 몇 번 설득하는가 싶더니 나중에는 저를 죽일 듯이 거의 겁박하더군요.”
“스콰이어라는 악어 수인과 단둘의 대화였습니까?”
“그렇습니다.”
“증인은 없군요.”
당신 말도 100% 신뢰하기는 어렵다는 내 의도를 안타란은 알아들었다.
“믿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제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계속하시죠.”
숨을 몰아쉰 안타란.
“계속해서 반대했지만 결국 스콰이어는 저 몰래 렙틸리비안 로드를 열어 주었습니다. 저는 보도를 보고 나서야 그게 테러 조직에게 길을 제공한 거라는 사실을 알았죠. 스콰이어에게 몇 번이나 항의했지만 계속해서 이번의 작은 투자가 큰 결과로 돌아올 거라고만 하더군요. 으으윽-.”
고통에 겨워하며 안타란이 몸을 추스르는 동안, 자코는 내게 안타란의 결백을 호소했다.
“테러 조직이 렙틸리비안 로드를 이용한 게 밝혀진 이후에 대림 에어리어의 렙틸리비아들은 속옷 한 장 숨기기 힘들 정도로 다 까발려졌어요. 대림 상 렙틸리비아는 가담하지 않았다는 걸 분명히 했는데도요. 그걸 다시 추스르고 재정비한 사람이 여기 안타란 아저씨예요. 저를 지금 사장님한테 소개해준 사람도 아저씨고요.”
“흠······.”
얼굴이 좀 편안해진 안타란에게 물었다.
“완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 그런 내막이 있었다고 치겠습니다. 그렇다면 상 렙틸리비아의 구역장이신 분이 여기까지 내려온 것과 자코를 찾은 이유는 뭡니까? 등의 그 상처는 어떻게 된 겁니까.”
“스콰이어의 요청에 따라 수행원 하나만을 대동하고 만남을 가지러 왔다가 습격당했습니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자코가 이쪽에서 일하고 있다는 게 생각나서 도망쳐 온 겁니다.”
“그런 일이 있으면 화제가 되어야 할 텐데요.”
안타란이 억울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저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3시간 이내에 돌아가지 않으면 네오-서울 시청에 수색 요청을 하라고 분명히 말을 했는데······.”
자코에게 렙틸리비아에 연락해 안타란이 여기 있다는 소리는 하지 말고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라고 시켰다.
자코는 곧바로 밖으로 나섰다.
둘만 남은 방, 안타란이 내게 말했다.
“스콰이어를 막아야 합니다. 이대로라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해결사라고 하셨죠? 의뢰를 하겠습니다. 저를 살려주신 건 별도의 사례를 할 거고요. 스콰이어를 막고 대림 상 렙틸리비아를 지켜주십쇼.”
“음······.”
수연이 관련된 것 같지만 의뢰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했다.
“수행원은 어떻게 됐습니까? 같이 당한 겁니까?”
그러자 안타란은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이 상처, 그 수행원이 낸 겁니다. 믿을 수가 없어요. 보르헤스 그놈, 정말 비리비리한 녀석인데······. 갑자기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얼굴이 바뀌더니 뒤에서 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굴이 바뀌어요? 어떻게요?”
“그건 왜······.”
“빨리요! 혹시 모래로 만든 건물이 부서지는 것처럼 얼굴이 바뀌었나요?”
“어······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경황이 없어 잘 살펴보지는 못했지만요.”
우당탕하는 급한 발소리와 함께 자코가 들어섰다.
녀석의 황망한 표정만 봐도 무슨 말이 나올지 예측 가능했기에 내가 선수를 쳤다.
“별일 없이 복귀했다고 하지?”
“네! 혼자 복귀하셨대요. 하지만 안타란 아저씨는 여기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렙틸리비아에 들어갈 때 검문 검색을 할 텐데······.”
헤지르 대주교인 척하고 있던 그놈이 분명하다.
안타란의 수행원으로 위장해 있던 건가.
저번에 만났을 때 훈계하듯 내게 전해지던 놈의 목소리를 떠올리면 아직도 열이 받는다.
“안타란 씨,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스콰이어라는 악어 수인이 뭘 할지도 모르는데 막는다거나 상 렙틸리비아를 지킨다는 건 의뢰의 범위가 너무 모호합니다. 몸이 낫는 대로 안타란 씨를 호위해서 상 렙틸리비아로 도달하는 걸로 범위를 줄입시다.”
고민하는 안타란에게 자코가 은근스레 옆구리를 찔렀다.
“오메가 형님은 흡혈귀 회합의 호위도 했다는 걸 알고 계시잖아요. 인맥도 굉장하다고요. 일단 안전하게 복귀하신 이후에 추가적으로 협상을 해도 늦지 않아요.”
이 쌔끼······키클롭스 아재 밑에 두기엔 아까운데?
이빨 터는 게 수준급이야.
하지만 빼 왔다가는 키클롭스 아재와 정현에게 욕이란 욕은 다 얻어먹을 것이 분명했기에 그런 마음을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결국 안타란은 내가 제시한 조건에 응했고, 나는 곧바로 자코에게 물었다.
“너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지?”
“안타란 아저씨 얘기요? 안 했죠.”
“키를롭스 아재한테도?”
“네. 그냥 제 지인이 다쳤다고만 했어요.”
“잘했어. 누구한테도 말 하지 마.”
“넵!”
다시 고개를 안타란에게 돌렸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안드로이드가 잠시 올라올 건데, 괜찮으시죠? 비밀은 철저히 엄수할 겁니다.”
“상관없습니다만 안드로이드는 왜······?”
“저희 사무실 소속 협상 전문가거든요.”
의뢰는 의뢰고, 보상은 보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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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보안 채널로 야스민 공의 통신이 들어왔다.
“스펙터요?”
-그래. 그게 놈을 부르는 명칭일세. 그나마도 권역의 공공 집행자들이 필요에 의해 붙인 거라고 하더군. 이름이 뭔지,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나이는 얼마인지 등등 어떤 정보도 없어.
“하는 짓을 보면 보통 간 큰 놈이 아닌 것 같던데요.”
-그건 맞네. 여러 권역에서 온갖 쓰레기 같은 짓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어. 하지만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어서······.
“스펙터라······.”
-자네가 말했던 것처럼 외형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것 같은데 어떤 방법을 쓰는 건지도 알려진 게 없네. 기껏 알려준다는 게 이런 것들밖에 없어서 미안하게 됐네.
“아닙니다.”
-계속해서 찾아보겠네. 사람인 이상 흔적이 있겠지.
“감사합니다.”
-그래, 자네가 필요하다는데 내가 뭘 못 해주겠나. 더 필요한 게 있으면 말만 하게.
통신을 끊으려다가 한 가지 부탁을 하고야 말았다.
“실력 좋고 입 무거운 의사 있으면 왕진 좀 보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의사라는 말에 야스민 공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의사? 자네 어디 다쳤나?
“저는 아니고 다른 사람이 필요해서요.”
급격히 안정되는 야스민 공의 호흡.
-다행이군. 자네가 다쳤다는 끔찍한 상상을 하고 말았어. 정확히 어떤 의사를 보내주면 되겠나?
안타란의 상태를 얘기해주었다.
조금만 더 파고 들어갔으면 척추에 손상을 입을 뻔했다.
피를 굉장히 많이 흘렸다.
눕는 건 불가능해 보이고 엎드려 있는 것도 많이 고통스러워한다.
교체 주기를 넘어선 환경 적응 피부가 환부와 협착되어 있어 봉합했음에도 계속 피가 흐른다 등등
내 말을 다 들은 야스민 공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이는군. 이미 죽은 놈을 살리는 것도 아니니 말이야.
그날 밤, 나는 내 방에 방문한 흡혈귀 의사 4명과 그들이 준비한 이름도 모를 장비들을 들이기 위해 내 짐을 모두 방 밖으로 빼내야 했다.
영문도 모른 채 사무실에서 충전 중에 짐 좀 옮기자고 불려 나온 앨리스에게 심한 눈총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많이 보낼 줄은 나도 몰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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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박 하루 뒤, 안타란은 일어서서 내 방에 있는 거울에 등을 비춰보며 놀라워했다.
심지어 노후된 환경 적응 피부도 새걸로 교체했는지 안타란이 벽에 다가가자 그의 피부가 완벽히 벽지처럼 변했다.
“하루 만에 걸을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상처 하나 없다니······밤에 온 의사들······.”
내가 안타란을 제지했다.
“그냥 실력 좋은 의사가 왔다 간 것만 아세요. 파고들면 그쪽이나 저나 안타란 씨나 머리 아픈 일들이 생길 겁니다.”
그 말에 나를 보는 안타란의 눈빛이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캬하- 이것이 인맥의 힘인가.
“오늘 낮에 자코가 물어온 소식인데, 대림 상 렙틸리비아와 하 렙틸리비아를 병합하는 안건이 스콰이어와 안타란 씨 직인이 찍혀서 다른 구역장들에게 긴급으로 뿌려졌다고 하네요.”
“그건 서로에게 득 될 일이 없는 안건인데!”
“그럼 다른 누군가가 이득을 보겠죠.”
수연과 스펙터는 대림 에어리어 지하의 상하수도망을 장악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리벨리온의 탈출로 그 유용성이 증명되지 않았나.
“그러니 의뢰 다시 한번 체크합시다. 안타란 씨를 무사히 대림 상 렙틸리비아로 복귀시키는 것. 맞죠?”
“맞습니다.”
칼자루를 챙기며 말했다.
“슬슬 출발하시죠. 지상에서 상 렙틸리비아로 이어지는 길은 지금 전부 막혔거나 통제 중이라고 하니까, 지하로 이동할 수밖에 없겠고. 의뢰의 대가는 어제 얘기 된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