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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58화 (59/258)

058.

058.

맨홀 뚜껑을 열자 하수도 특유의 어딘가 조금은 불쾌한 온기와 함께 깊은 어둠이 가득했다.

[암적응]

눈을 한 번 깜빡이자 아래쪽의 상황이 보이기 시작했다.

맨홀에서 하수도로 내려가는 철제 손잡이와 발판의 바로 아래, 사람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엎어진 채로 등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아 숨을 쉬고 있기는 했지만, 그 간격이 매우 불규칙했다.

엎어진 자리 주변의 시멘트만 색이 다른 것이, 몸에서 나온 피가 시멘트를 적신 흔적이었다.

“내려오지 마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아래로 내려갔다.

내가 하수도에 내려와 조심히 접근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뒤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머리만 로봇 헤드로 변한 이수련이었다.

“내려오지 말라니까요.”

“어둡지 않으냐.”

로봇 헤드의 눈에 빛이 들어왔다.

[암적응] 상태에서 이수련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그 밝은 빛에 눈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꼈다.

“으악! 눈뽕!”

“미안하다. 낭군이 본좌를 그렇게 빤히 바라보고 있을 줄은 몰랐구나.”

눈을 몇 번 깜빡이고 시큰한 눈물을 좀 흘리고 [암적응]을 해제하고 난 후에야 시야가 제대로 돌아왔다.

쓰러져 있는 건 카멜레온 수인이었다.

가늘게 숨을 쉴 때마다 피부의 색이 조금 변했다 원래대로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었고, 등에 있는 큰 상처에서 계속해서 피가 나와 쓰러진 주변의 시멘트를 진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뒤에 이수련도 있고, 큰 위협이 될 것 같지는 않아서 다가가서 건드려보니 카멜레온 수인이 어렵사리 눈을 떠 눈을 데구르르 굴렸다.

그리고 다 쉰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이 위가 대림 에어리어 23구역 맞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멜레온이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제대로 왔군. 당신은 누구지? 일단 생김새로 봐서 렙틸리비안은 아니겠군. 클클클······.”

카멜레온은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건지 눈을 굴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수련이 그런 카멜레온을 보고 내게 말했다.

“병원에 데려가는 것이 우선 아니겠느냐?”

“병원은 됐어. 받아주는 곳이 없을 테니까. 당신들 여기 산다면 사설 집행자 자코를 알고 있나? 도마뱀붙이 수인이야.”

자코는 키클롭스 아재 사무실에 새로 들어온 막내였다.

전기 뱀장어 수인의 발전기관을 몸에 이식한 도마뱀붙이 수인으로, 요새는 정현과 짝을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알고 있지.”

“오······! 다행이군. 처음 보는 사이에 민망한 부탁이지만 나를 자코에게 데려다주지 않겠나? 줄 수 있는 건 없지만 나중에라도 은혜를 갚······.”

그 말을 끝으로 카멜레온 수인은 혼절해버렸다.

이수련은 그걸 보고 혼자 당황해서 주절거렸다.

“병원!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

“병원은 모르겠고 일단 응급처치 정도는 해야 할 것 같네요.”

이대로 두고 갔다가는 분명 과다출혈로 죽을 것 같아서 축 늘어진 카멜레온 수인을 어깨에 둘러메고 위로 올라오니 기다리고 있던 신시아와 앨리스가 깜짝 놀랐다.

“딱 봐도 얽히면 피곤한 일일 것 같으니까 오늘은 돌아가요, 신시아. 수련 씨도 마찬가지고요. 앨리스 너는 키클롭스 아재한테 연락해서 아는 야매 의사 있으면 자코랑 같이 여기로 좀 보내달라고 해.”

“네!”

신시아와 이수련은 내게 도울 일이 없겠냐고 물었고 나는 조금 단호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답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제가 요청하겠습니다. 여기서부턴 해결사의 영역이니 이만 돌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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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너무 조잡하군요.”

사무실이 있는 건물 옥탑, 내가 쓰는 방에서 카멜레온 수인을 진찰하던 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노인은 키클롭스 아재가 소개해준 야매 의사로, 모종의 이유로 병원에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거나 아니면 진료 거부를 당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의료행위를 하는 사이보그였다.

의사 면허가 없는 건 아닌데 의료계의 부정에 대해 목소리를 내다가 축출당했다나.

자기가 하는 말이기에 한 번 걸러 들을 필요는 있어 보였다.

노인이 자신의 손가락 끝에서 튀어나온 얇은 핀셋으로 카멜레온 수인의 등에 길게 새겨진 상처를 뒤적였다.

피부 바로 아래 얇은 판막 같은 것이 비죽 튀어나온 것이 보였다.

“환경 적응형 피부인 것 같은데 교체 주기를 넘어도 한참 넘었어요. 아예 피부와 협착된 곳도 보이는군요. 이런······녹이 슬기까지. 아마 굉장히 습한 환경에서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오랫동안 사용한 것 같군요. 이건 여기서 못 고칩니다. 제대로 된 병원에 가야 해요.”

“그건 두고 일단 응급처치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노인의 손가락 끝에 비죽 나와 있던 핀셋이 사라지나 싶더니 아예 손등에서 겸자와 메스, 바늘과 실을 잡은 보조 손가락이 튀어나왔다.

겸자로 살을 주욱 잡아당기고, 회생 불가능한 부분은 메스로 잘라낸 뒤 깔끔해진 단면을 척척 꿰매는 모습은 자기가 그래도 축출 전에 이름 좀 날리던 의사였다는 노인의 말을 절로 긍정하게 했다.

노인은 처치를 진행하는 중에도 입을 쉬지 않았다.

“날카로운 흉기로 베였으면 차라리 괜찮았을 건데, 표면이 잘린 게 아니라 뜯겨 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군요. 더 세게 파였다면 척추까지 보였을 겁니다.”

“진짜 죽일 기세로 달려들었다는 겁니까?”

“그렇죠. 피를 조금만 더 흘렸어도 죽었을 거고요. 여러모로 운이 좋은 카멜레온 수인이군요. 그중에서도 운이 가장 좋았던 건 처치를 하는 의사가 바로 이 로만이라는 거고요. 허허허.”

은근슬쩍 자기 어필까지 하는 야매 의사였다.

그렇게 처치가 끝나고 로만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으니 이제 남은 건 저 카멜레온의 의지에 달렸다는, 왠지 의사들이 흔히 할법한 말을 하고 떠났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자코가 와 있었다.

내 방으로 올라가 카멜레온의 얼굴을 확인한 자코가 연신 내게 머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형님. 정말 감사합니다.”

“인사는 저 양반 눈 뜨면 둘이 손잡고 같이 하는 걸로 하고, 어떻게 된 건지나 들어보자. 저 양반은 누구고, 왜 저 꼴이 된 건지 궁금하거든. 그리고 뭐더라? 렙틸리비안 어쩌고 하던데 그건 뭐야.”

이어진 자코의 이야기는 내가 몰랐던 네오-서울의 한 부분을 알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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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서울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람이 살아간다.

그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많은 부류는 인간처럼 이족보행을 하는 동물인 수인獸人이다.

수인이라는 커다란 덩어리로 보면 가장 수가 많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 내부적으로도 조류형, 포유류형, 파충류형, 양서류형, 어류형, 마지막으로 그 외 형태의 수인으로 나뉜다.

어류형 수인은 바다나 강과 인접하거나 아예 해저에 터를 잡은 권역에서는 자주 보이지만 네오-서울에서는 많지 않은 수인이다.

네오-서울의 수인 통계에 의하면 시민 등록을 마친 인구 중 조류형, 포유류형, 파충류형, 양서류형은 오차 범위 내에서 거의 비슷한 비율을 유지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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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나는 파충류형이나 양서류형은 잘 못 본 것 같은데. 가까이 지내는 건 자코 너 정도가 전부고.”

“하지만 분명히 있습니다. 네오-서울의 지하에요.”

“지하?”

“네. 상하수도 덕에 사시사철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고 적당한 습기가 있으니까요. 인공적으로 광원과 열원을 설치해놓은 곳도 있어요. 특히 여기 대림 에어리어 상하수도는 난개발 때문에 쓰지 않는 곳이 많아요. 그런 곳에 터를 잡는 겁니다. 몇몇 곳은 지상 못지않게 화려하기도 하죠.”

“그런 곳이 있다고? 나는 처음 듣는데.”

“다른 종류의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파충류 수인과 양서류 수인이 아니라면 극단적으로 배척하거든요. 저도 거기 출신이에요.”

“네오-서울 상하수도에 있는 파충류, 양서류 수인들의 영역이라······.”

“그중에서도 지상으로 나오지 않고 지하에서만 살아가는 자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이 렙틸리비안(Reptilibia: 파충류'Reptil'e + 양서류Amph'ibia')이에요. 상하수도에 펼쳐진 파충류와 양서류 수인들의 영역은 렙틸리비아라고 하고요. 허가받지는 않았지만 네오-서울 측에서도 거의 묵인하고 있다고 보면 돼요.”

지상 위만 해도 복잡하기 짝이 없는 곳이 네오-서울인데 지하도 이렇게나 복잡다단할 줄이야.

더 이상 파고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일단 거기까진 알겠어. 근데 저 양반은 왜 피 질질 흘리면서 쓰러져 있었으며, 널 찾은 거지?”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대림 에어리어 지하의 렙틸리비아에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요.”

자코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카멜레온 수인에게 향했다.

“저분이 대림 에어리어 렙틸리비아의 절반을 담당하는 구역장이거든요. 제가 지상으로 가겠다고 했을 때 응원도 해주신 분인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자코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며 혼란스러워할 때쯤, 카멜레온 수인이 눈을 떴다.

“으으으······.”

자코가 얼른 달려갔다.

“정신이 드세요, 아저씨?”

힘없이 주위를 살피던 카멜레온의 양 눈이 자코에게 고정되었다.

“오오! 자코! 내가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구나. 그런데 여긴 어디지? 마지막에 어떤 남자가 널 안다고 해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 거 같은데······.”

“그 남자가 오메가 형님이었어요! 아시죠? 해결사 오메가. 요새 유명하잖아요.”

자코에게 손을 붙들려 카멜레온 수인의 곁으로 끌어당겨졌다.

“당신이 그 해결사 오메가라니. 렙틸리비아에서도 당신 이름이 왕왕 들리는데······.”

“오메가 형님이 치료도 해주셨어요.”

자코의 발언을 정정했다.

“그건 너희 사장님이 낼 거야. 그리고 그 일부는 아마 네 월급에서 나갈 거고.”

순식간에 굳는 자코의 표정.

야매 의사를 부르는 값이 보통이 아닌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자코가 가져다준 물을 몇 모금 마신 카멜레온 수인은 기운이 좀 나는지 깍듯한 말투로 스스로를 소개했다.

“신세를 졌군요. 저는 안타란. 대림 에어리어 상上 렙틸리비아의 구역장입니다.”

“오메가입니다. 대림 에어리어에서 해결사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자코의 말을 들으며 줄곧 궁금했던 것을 안타란에게 물었다.

“렙틸리비아는 네오-서울의 상하수도 전역에 있고, 특히 대림 에어리어의 지하에 많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당신은 그 대림 에어리어 렙틸리비아의 절반을 관리하는 사람이고요.”

“그것도 얼추 맞습니다.”

“그럼 하나 묻겠습니다. 예공방 대림 생산기지를 테러한 조직인 리벨리온이 물자와 인력을 빼낸 방법이 네오-서울의 우수관雨水管과 상하수도를 통하는 것이었습니다고 합니다. 렙틸리비아에서는 이걸 가만 놔둔 겁니까?”

대림 에어리어의 상하수도가 워낙 복잡하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리벨리온의 많은 인력과 무기가 빠져나가려면 그곳을 점거하고 있다는 렙틸리비아에게 안 걸릴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렙틸리비아는 리벨리온과 협력관계인 걸까?

내 질문을 들은 자코의 시선이 마구 떨렸다.

어쨌든, 녀석은 사설 집행자.

자신이 아는 사람이 근래 다른 권역에서 악명을 떨치기 시작하는 테러 집단과 관련이 있다는 얘기를 믿기 힘들어할지도 모른다.

한숨을 길게 쉰 안타란이 내 질문에 대답했다.

“어쩌면 제가 이 꼴이 된 것도 거기서 시작된 걸지도 모릅니다. 더 적극적으로 반대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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