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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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흐흐.”
옆에서 듣기에 민망할 정도로 푼수 같은 웃음을 흘리는 사람은 말 한마디로 방계의 흡혈귀 전투원 수백 명을 불러들일 수 있는 야스민 공이었다.
그는 내가 저택으로 돌아간다고 연락하자 무려 그 공사장 통로까지 친히 나와 기다렸다고 한다.
성북 에어리어 야스민 저택 일대의 보안이 더욱 강화되는 것은 물론 사설 경호원들은 비번인 사람들까지 다 뛰쳐나왔다고.
택시에서 내린 내게 달려와 고생했다면서 몇 번이나 어깨를 두드려주는데, 경호 겸 따라 나온 젠이 중얼거리는 말로는 사람 하나를 맞으려고 야스민 공이 스스로 나온 경우는 적어도 자기 기억에는 없단다.
여튼, 야스민 공은 나를 거의 금의환향하는 아들 맞이하듯 환대했다.
신시아는 기어코 이수련과 한바탕 한 건지 위타천에게 불려가 훈계를 듣고 있음에도 그런 것 따위는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경매에서 낙찰받은 물건의 숨겨진 기능들을 보여주자 야스민 공은 아예 좋아 죽으려고 하고 있었다.
지금은 ‘대벌레로 위장한 나뭇가지 같은 대벌레’의 기능인 ‘팔루다리움’을 막 보여준 참이었다.
대벌레를 통에 담고 [하우징 장식물 변형]을 하면 담긴 통을 측정한 뒤에 자동으로 작은 연못과 바위, 이끼, 식물과 같은 인공 생태계인 팔루다리움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이 아이템의 경우 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팔루다리움이 전개되는데, 나무 자체가 위장한 대벌레라서 나무가 조금씩 움직이는 걸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 통 안에 야스민 가의 문장이 각인된 나비를 넣어서 나비가 나무 주위를 뱅글뱅글 돌자 야스민 공은 당장이라도 혼절할 것 같은 표정을 했다.
그리고 절정은 ‘폭죽 글자 생성기’를 고쳐서 ‘야스민 저택’이라는 글자를 만들어 주었을 때였다.
결국 참지 못한 야스민 공은 경탄의 함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으아아아아! 이런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다니! 이건 저택 담벼락 위에 둘 걸세!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게! 최고의 보안 전문가를 불러서······.”
야스민 공이 말을 하는 사이 다시 한번 폭죽이 피유우- 하는 소리를 내며 위로 떠올라 ‘야스민 저택’이라는 글자를 만들어냈다.
야스민 공은 하던 말도 잊은 채 그 폭죽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에 야스민 저택이라는 폭죽 글자가 반사되었다.
어찌나 표정이 넋이 나갔는지 이 물건에 최면 효과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폭죽이 한 번 더 터지고 나서야 야스민 공은 레이먼드를 불렀다.
“레이먼드, 이 마도공학 유물을 저택 담벼락에 올려 지나가는 사람이 모두 보게 하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야스민 가의 저택임을 알리는 마도공학 유물이라니.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댑니다. 굉장한 화제가 될 것 같습니다.”
“내 생각도 그렇네. 이제 자네가 해야 할 일은 최고의 전문가를 불러 이 유물의 심미적 가치를 해치지 않으면서 외부 환경과 탈취 시도에서 끄떡없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야.”
“바로 착수하겠습니다.”
“나가는 길에 이것들도 가져가 주게.”
야스민 공이 말하는 ‘이것들’은 ‘만지면 3분간 손이 닭발이 되는 닭 조각’과 ‘카레 향 나는 똥 모양 장난감’이었다.
그것들이 놓여 있는 쟁반을 조심스레 받쳐 든 레이먼드가 야스민 공에게 물었다.
“지하의 보관고에 두면 되겠습니까? 아니면 저택 내부에 전시할까요?”
“잘 보관하게. 그리고 담벼락 위에 이 폭죽 발사대가 올라간 뒤에 다시 경매에 내놓으면 멍청이들이 내가 산 가격의 몇 배를 지불하고 사 가겠지.”
“알겠습니다.”
레이먼드가 들고 나간 두 장난감은 숨겨진 기능도 없는 걸 내가 알려줬었다.
심지어 닭 조각은 충전이 되지 않는 소모성 아이템이라서 앞으로 사용 횟수가 몇 번 남지 않았다는 것까지도 말을 해주었다.
폭죽 글자 생성기가 야스민 저택에 모습을 드러내면 레이먼드의 말처럼 엄청난 화제를 몰고 올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 타이밍에 야스민 공이 가지고 있던 유물 두 점을 내놓는다면?
그건 아마 ‘인생 거울’이 기록했던 경매 신고가, 9000억을 돌파할 가능성이 높았다.
저렇게 들뜬 상태임에도 순식간에 정보 우위를 이용해 차익을 만들어 낼 생각을 하는 야스민 공에게 감탄했다.
돈의 화신이라는 말이 괜히 붙은 말이 아니었다.
“이상으로 의뢰는 마쳤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잘해주었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마 물건들의 내역을 보셔서 알고 계시겠지만, 추가로 낙찰받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봤네. 소액이라서 의문이었지.”
내가 지금 팔찌로 차고 있는 인피면구 하나와 그것보다 더 긴 끈 하나, 열쇠고리에 끼울 수 있는 작은 장식물 하나까지 총 셋.
셋을 합쳐 4000만원 정도 지불했음에도 그걸 아무렇지 않게 ‘소액’이라 말하는 야스민 공의 재력에 기가 죽을 뻔했지만, 곧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먼저, 의뢰의 대가였던 ‘경매에서 낙찰받은 물건 중 하나’는 지금 손목에 차고 있는 이 팔찌로 하겠습니다.”
인피면구의 기능을 설명해주니 야스민 공은 크게 놀란 모양이었다.
“인식방해장치나 광학위장복도 색적마법이나 탐지마법에 들통나는 경우가 있는데, 어떠한 감지에도 걸리지 않는 위장 수단이라는 말인가?”
“현재의 기술로도 감지할 수 없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여기서 보여드리고 싶지만 확인차 사용한 뒤 바로 재사용이 불가해서 보여 드릴 수는 없겠습니다. 추후 사용이 가능해지면······.”
야스민 공이 손을 내저었다.
“그럴 필요 없네.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나를 향해 보내는 야스민 공의 눈빛에 신뢰가 가득 묻어있다.
부담될 정도로.
일단 외면하고 팔찌보다 조금 더 긴 끈을 집어 들고 설명했다.
“이건 지금도 활용할 수 있는 유물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신시아가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집어 왔습니다.”
“신시아를 위한 선물이란 말인가?”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고 잘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데 그냥 놓치기도 아까워서요.”
“여자한테 줄 선물 비용을 여자 아버지 지갑에서 빼 가다니. 허, 이거 참······. 그건 그렇고, 뭔데 그러나.”
“저도 보여드릴 수 없습니다. 신시아가 와야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때, 야스민 공이 반지 낀 손가락을 들어 입 근처로 가져갔다.
“돌아왔다고? 알겠네. 내 서재로 오라고 좀 하게.”
신시아가 돌아온 것 같았다.
잠시 뒤, 노크 소리가 들리고 고개를 푹 숙인 신시아가 야스민 공의 서재로 들어왔다.
“잘못한 건 알고 있는 게냐?”
“죄송해요.”
택시 타고 오면서 앨리스에게 듣기로는 공공 집행본부 앞에서 변신 로봇과 거대 사신이 격투를 벌이다 위타천이 튀어나와서 둘을 건물 안으로 끌고 가 사라진 것이 엄청난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영동대교 진입로에서 벌어진 마도공학 유물 탈취사건을 덮으려는 네오-서울 시청 측의 의도적인 퍼포먼스가 아니냐는 말도 소셜미디어상에서 돈다나.
“평생 쳐다도 안 봤던 공공본부에 힘을 쓴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한데, 신시아 너까지 가서 그래야 했던 거냐?”
네오-서울 공공 집행자들의 수사 영역에 대한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은 굉장하다.
범죄와 치안에 한해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고도 해도 어느 정도는 과장이 아닐 정도다.
네오-서울의 시장도 공공 집행자들의 영역을 침범하면 거센 정치적, 정무적 공세에 직면한다고 하니 아무리 야스민 공이라고 하더라도 나를 풀어달라고 힘을 쓰는 게 부담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신시아는 모기만 한 소리로 다시 답했다.
“······죄송해요.”
“왜 그랬는지는 나중에 들으마. 이번 경매에서 얻은 물건 중에 네가 있어야 기능을 보여줄 수 있다는 물건이 있다고 해서 불렀다.”
“제가 있어야 한다고요?”
고개를 든 신시아를 본 야스민 공의 표정이 굳었다.
나도 순간 얼어붙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신시아는 오른쪽 눈 근처에 멍이 들어 눈탱이밤탱이가 되어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야스민 공이었다.
“신시아 너······눈이······.”
“아!”
재빨리 고개를 내린 신시아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뭔가를 한 줌 쥐고 앞으로 내밀었다.
“저도 맞고만 있던 건 아니에요.”
신시아의 꽉 쥔 주먹 사이사이 이수련의 귀와 꼬리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흰털이 가득했다.
한참이나 딸의 멍든 눈과 털을 꽉 쥔 주먹을 번갈아 보던 야스민 공이 간신히 한 마디를 꺼냈다.
“그거 설마 너랑 치고받던 구미호 털이냐?”
“네!”
“하아아······.”
야스민 공의 깊은 한숨이 그의 복잡한 내면을 대변하고 있었다.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에서 빠져야 할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 다른 날 찾아뵙겠습니다.”
“고맙네.”
서재를 빠져나와 문을 닫기 직전, ‘허구한 날 사고 칠 궁리를 하던 레비를 보냈어도 신시아 네가 치고 온 사고만큼 거하게 하지는 못했을 거다!’라는 야스민 공의 한탄에 가까운 고함이 들렸다.
야스민 삼남매의 둘째인 레비는 폐관 수련에 들어선 지 30년이 넘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사고의 비교 대상이 되는 걸 보면 스케일이 짐작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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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대림 에어리어의 사무실.
앨리스가 사건의 후일담을 물었다.
“그래서요? 어떻게 됐는데요?”
“물론 본좌가 이겼느니라!”
앨리스는 내가 아니라 이수련에게 묻고 있었다.
내가 부수고 사무실에 가져다 놨던 퓨전 코프의 원격 조종 로봇이 다른 곳에 팔리면 기술 유출이 있을 수 있어서 퓨전 코프 측에서 매입 의사를 밝혔고, 그 매입 협상을 위해 사무실에 찾아온 사람이 이수련이었다.
그런데 사실 협상은 뒷전이고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서 앨리스랑 떠드는 게 주 일과다.
로봇 잔해라도 가져가라고 해도 저게 사라지면 내쫓을 게 뻔하니 최대한 천천히 가져갈 거라나.
매일 와서 종일 죽치고 있다가 문 닫을 때쯤 손가락 하나 크기도 안 되어 보이는 부품 가지고 털레털레 돌아가는 꼴 보고 있으면 성질이 울컥 나다가도 신시아가 만들어낸 것이 분명한 오른쪽 귀의 커다란 땜빵을 보고 있으면 왠지 애잔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실제 나이는 어마어마하게 많이 먹었다지만 외관상으로는 앨리스 또래라서 둘이 잘 노는 것도 보기 좋은 면이 있다.
본인의 승리를 주장하는 이수련에게 태클을 걸었다.
“신시아는 그렇게 생각 안 하던데요.”
“패자의 변명일 뿐이니라! 낭군도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낭군 아니라고 했어요.”
“그것은 그대가 아직 본좌의 매력을 다 깨치지 못했기에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자 앨리스가 물었다.
“수련 언니는 우리 사장님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얼씨구, 나 모르는 사이에 언니가 됐네.
“구미호는 원래 순수한 인간, 즉 퓨어에게 끌리게 되어있다! 그런데 강하기까지 하니 싫어할 수가 있겠는가! 본좌는 이렇게 강렬한 끌림을 느껴 본 적이 없느니라!”
나를 향해 달려드는 수련을 피하고 있을 때,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그거 반칙이라고 했지!”
신시아였다.
젠이 엄청 즐거워하면서 신시아가 며칠간 집에서 근신할 거라는 소식을 전해줬었는데, 오늘이 근신이 풀리는 날이었나보다.
집행본부 앞의 그 소동이 재발할까 봐 잔뜩 긴장했는데, 이상하게도 신시아와 이수련이 서로를 보는 눈빛에 적개심이 없었다.
오히려 왠지 모르게 서로를 인정한다는 눈빛?
이수련이 신시아에게 말했다.
“네가 너무 늦게 온 것이다!”
그리고 신시아는 내게 간단하게 인사한 후 이수련과 붙어 앉아 가방에서 간이 홀로그램 재생기를 켜놓고 둘이 투닥대기 시작했다.
재생기 위에는 내가 바이크를 타고 달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계룡 권역으로 향하던 모습인 것 같은데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구한 건지 물어보기가 겁날 정도로 생생한 모습이었다.
신시아와 이수련이 너무 집중하길래 앨리스에게 물었다.
“둘이 싸웠다며, 어떻게 된 건지 너 알아?”
“사장님 매력 포인트 얘기하다가 서로 인정했대요. 찐팬끼리는 통하는 뭔가가 있나 봐요. 둘이서 ‘팀 오메가’라고 하던데요. 정작 같이 일하는 나는 하나도 모르겠던데.”
“나도 나를 모르겠고, 저 둘이 왜 저러는지도 모르겠다.”
“선의의 경쟁자이자 라이벌이라고 자기들끼리 그래요. 대신 한 명이 사장님이랑 결혼하면 다른 쪽은 깔끔하게 손 떼겠대요.”
“······내 의사는?”
“모르죠. 가서 물어보시던가요.”
물어보면 얘기가 복잡해질 것 같아서 관뒀다.
“근데 너 신시아 도와주는 거 아니었냐?”
“그랬었죠.”
“왜 과거형이야.”
“수련 언니한테 물어봤는데, 퓨전 코프에서 안드로이드 파츠 사업 진출하려고 준비 중이래요.”
“그게 왜.”
“그게 왜가 아니죠. 퓨전 코프하면 로봇 파츠가 거의 예술의 경지라고 소문이 자자한데 거기서 만드는 안드로이드 파츠가 좀 좋겠어요? 사장님이 수련 언니랑 이어지면 저도 콩고물 좀 떨어질 거 아니에요.”
할 말을 잃은 동안 앨리스가 부가적인 설명을 했다.
“그리고 수련 언니는 기업 총수죠. 신시아 언니는 부자의 딸이지만 수련 언니는 부자라는 소리 아니겠어요?”
“그래서 이수련 편에 서겠다?”
“아뇨.”
“그럼?”
“생각을 여러 번 해봤는데 중립 유지하면서 일이나 열심히 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더라고요. 여러 명 사이에 끼면 낀 사람만 욕먹어요.”
“과정은 지극히 영악한데 결론은 기가 막히게 정론이네. 놀랍다, 놀라워. 근데 잘 생각했다. 일이나 하자. 저 둘 조용히 있는 동안 새로운 의뢰 체크나 하게 정리된 거 있으면 내 쪽으로 돌려줘.”
넘어온 의뢰 명단을 쭉 훑어보던 중, 신시아가 벌떡 일어났다.
“맞아! 아버지가 오메가 님한테 가서 이거 어떻게 쓰는 건지 물어보라던데요?”
일전에 두고 나왔던 끈을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내는 신시아.
저거 그래도 1500만원 넘게 주고 입찰받은 건데 저렇게 들고 다녀도 되나······.
일단 마도공학 유물에 관한 것은 야스민 가 직계와 내게만 알려져야 하기에 궁금해 죽으려고 하는 앨리스와 이수련을 잠깐 내보냈다.
“이게 뭐냐면요. 황천사黃泉巳라는 건데요. 이 위에 사기邪氣를 떨어트려 보세요.”
눈을 반짝거리면서 흥미롭다는 듯 신시아는 손끝에서 시커먼 사기 덩어리 하나를 만들어내서 끈 위에 조심스럽게 펴 발랐다.
얼마 되지 않아 끈이 바르르 떨리더니 색이 검게 변하고 한쪽에서 가늘게 실선이 벌어지더니 샛노란 두 개의 눈이 보였다.
“어머! 어머!”
“이름 그대로 주위에서 황천 가기 직전의 사람들을 찾아주는 아이테······아니 마도공학 유물이에요. 사령술사만 사용할 수 있고 탐색 범위도 사령술사의 역량에 크게 영향을 받는데 신시아라면 잘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경매에서 가져왔어요.”
황천사는 누가 주인인지 벌써 알아챘는지 신시아의 손가락 사이사이를 감고 있었다.
“너무 귀여워요오! 오메가 님께는 쓸모가 없는 물건인데 절 생각해서 준비하신 거군요! 감사해요!”
어······쓸 수 있는 물건이 헐값에 넘어가는 걸 보는 게 좀 그래서 가져온 건데······.
뭐, 신시아를 몰랐으면 챙길 일도 없는 물건이니 완벽히 틀린 말은 아니겠지.
“이미 신시아를 되게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은데, 천천히 사기를 먹여가며 길들이면 돼요.”
“귀여워!”
그런데 갑자기 황천사가 신시아의 손에서 벗어나 밖으로 향했다.
“어?”
순식간에 사무실 문틈을 통해 빠져나간 황천사.
문밖에 있던 앨리스와 이수련이 자지러지는 소리를 질렀다.
뛰쳐나가 둘을 진정시키고 황천사의 뒤를 따라갔다.
계단을 타고 건물을 벗어난 황천사가 향한 곳은 사무실 건물 뒤쪽 으슥한 곳의 맨홀 위.
그곳에서 황천사가 콩콩 뛰다가 신시아가 다가가서 손을 내밀자 황천사는 신시아의 팔목에 감겨들었다.
그냥 봐서는 고급스러운 검은색 팔찌 같은 모양, 그걸 본 이수련이 신시아의 황천사와 내 인피면구를 가리키며 날카롭게 물었다.
“왜 둘이 비슷한 걸 하고 있는 게냐! 본좌는!”
“그건 나중에 얘기합시다.”
“왜!”
“여기 아래 사람이 죽어가고 있으니까요.”
“응?”
황천사가 맨홀에서 뛸 때부터 [반향정위]를 사용해 맨홀 아래로 음파를 보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가늘게 숨을 쉬는 무언가가 맨홀 아래에 쓰러져 있는 것 같았다.
작가의 말
팔루다리움은 원래 있는 단어입니다.
관찰, 연구를 목적으로 사육장 안에 동물이나 식물이 살아가는 인공적인 생태계를 조성하는 걸 통틀어 비바리움이라고 하는데, 그 안에서 물이 사용되지 않으면 테라리움, 육지 없이 물만 존재하면 아쿠아리움, 이런 식으로 구분되는 분류입니다.
그 중 팔루다리움은 연못이 있는 습지 생태계를 구현하기 위한 비바리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