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잡캐여도 너보단 강함-53화 (54/258)

053.

053.

클리드는 트롤이다.

그의 여자친구 보나는 고양이 수인 스코티쉬 폴드 종.

둘은 세간에서 말하는 제대로 된 일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

인천 권역의 부둣가에서 굴러먹던 둘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빼앗고, 그걸 막는 자들이 있으면 주먹을 내질렀다.

그렇게 되는 대로 거침없이 살다 보니 둘을 보스로 삼는 조직 하나가 탄생했다.

그들의 부하 중에는 둘보다 능력이 좋은 녀석들도 많았다.

하지만 둘은 그런 녀석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점을 가지고 있었으니, 바로 ‘깡’이었다.

미친 짓을 서슴없이 하고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알았다.

마약에 절어 사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다 둘은 깨달았다.

남의 것을 훔치는 쾌감이 마약보다 더 하다고.

그리고 훔친 물건의 가치가 클수록 쾌감 수치가 급상승한다는 것도.

보나는 새로이 인천 권역의 암흑가를 평정한,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엘프로부터 흥미로운 소식을 들었다.

강남 에어리어의 한 호텔에서 마도공학 유물 경매가 진행될 거라는 소식이었다.

거기 있는 유물을 한두 개만 훔치면 돈은 물론이고 클리드와 보나 모두 엄청난 명성을 얻게 될 거라는 말과 함께 엘프의 매력적인 입술이 달싹였다.

“그게 왜 비싼 줄 알아? 부자들이 과시하는 데 쓰이거든. 아무런 가치가 없어. 그냥 자기가 이 정도를 지불할 수 있다고 과시하는 데 쓰이는 거지. 탈세는 덤이고.”

그 말이 부둣가 비린내를 맡고 자란 클리드와 보나의 내면에 있던 반감을 건드렸다.

“보나, 우린 그걸 훔칠 거야.”

“멋져, 자기. 우리 이름은 영원히 기억될 거야.”

둘은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유물 탈취 계획에 쏟아부었다.

무언가에 이렇게 몰두한 적은 오랜만이었다.

호텔 내부에 웨이터로 침투시킨 똘마니의 연락에 클리드와 보나는 서로 목소리를 높였다.

“한 사람이 4개나 샀다고? 그럼 그건 분명 야스민 공이야. 1개 산 쪽을 털자, 보나.”

“아냐. 야스민 공은 이런 자리에 꼭 본인이 온다고 했어. 그런데 오늘은 야스민 공에 대한 말이 나오지 않잖아. 비밀 경매라고 하지만 저런 경매에 참여하는 놈들은 그놈이 그놈일 텐데 말이 안 나왔다는 건 그 흡혈귀가 아니라는 거야. 저건 다른 놈이야, 클리드”

“그렇다면.”

둘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당연히 많은 쪽이지.””

그렇게 그들이 유물 4개가 실린 곳을 공략하기로 한 것은 우연의 일치였다.

그 트레일러 앞에 오메가가 탄 리무진이 있었다는 것도 지독한 우연이었고.

불칸 마탑에서 나온 드래곤브레스 용접기를 둘러메고 유물 호송 트레일러로 넘어갈 준비를 하던 클리드에게 부하의 통신이 전해졌다.

-대장, 리무진에서 이상한 놈이 나왔는데? 어떻게 하지?

“그냥 치워버려.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 여기서 털고 한강으로 빠져나갈 거니까. 도망가면 부자고, 잡히면 철창이다!”

-알겠어!

트럭에서 훌쩍 뛰어 트레일러의 위로 올라간 클리드가 신호하자 미리 준비해뒀던 차량과 밴들이 도로 일대를 막아버렸다.

“공공 집행자가 오려면 4분 정도 걸리려나. 그 정도면 충분하지.”

용접기에서 불이 뿜어질 때쯤, 부하의 절규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대장! 으악!

“무슨 일이야?”

그러자 이번에는 총기를 들고 반대편 차선에 갈겨대던 보나가 외쳤다.

“저 새끼, 뭐야 저거! 막아!”

주변이 시끄러웠지만 클리드는 묵묵히 트레일러의 위를 뜯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진 클리드의 입에서 절로 흥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유물. 마도공학 유물.”

타닥-

누군가 클리드가 올라 있는 트레일러 위에 안착했다.

그가 짜증이 묻은 목소리로 클리드에게 말했다.

“너, 뭐 하는 새끼냐?”

고개를 든 클리드의 눈에 보이는 것은 흐르는 것같이 새빨간 검을 들고 있는 한 남자, 오메가였다.

그리고 클리드는 검 위에 흐르는 것이 피라는 것을 알아챘다.

클리드가 용접기를 오메가 쪽으로 들이댔다.

쿠오오오오-

거센 불길이 오메가를 덮치자 오메가는 뒤로 훌쩍 뛰었다.

트레일러 끄트머리에 오메가의 발이 닿을 때, 그의 손에 들려있던 검은 보이지 않았다.

몸을 뒤로 빼면서 던져 클리드의 어깨에 박힌 검.

“크으으······.”

옅은 신음과 함께 클리드는 그걸 쥐고 뽑아냈다.

트롤은 재생력하면 서러운 종족, 뽑아낸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어갔다.

오메가는 클리드를 향해 싸늘하게 미소 지었다.

“그거 그렇게 막 만지면 안 돼.”

[혈계조검술 – 다가 롬페daga romper]

클리드의 손에 들려있던 검이 순식간에 조그마한 단검 수십 개로 변해 떨어지며 그의 손과 다리에 가느다란 상처를 마구 만들었다.

“이 자식이!”

하체에서 느껴지는 거센 통증에 클리드가 잠깐 비틀대는 사이, 핏방울들은 오메가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 이번에는 커다란 대검의 형태를 만들어 냈다.

#

“오메가 씨는 왜 그렇게 원핸드소드의 형태에 집착하는 거죠?”

대련 중, 혈계조검술로 검을 만들어 낸 내게 전해지는 젠의 말.

내 근간을 찌르는 질문이었기에 잠시 멈칫하다 답을 짜냈다.

“제가 항상 사용하던 형태니까요.”

서리얼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내가 사용하는 검은 항상 한 손으로 쥐고 움직일 수 있는 형태를 선호했다.

검을 움직이는 동안 다른 손으로 또 다른 스킬을 준비하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젠이 그런 내 생각의 틀을 열어젖혔다.

“형形과 식式이 사고를 누르면 안 됩니다. 검에는 그렇게 한 손으로 드는 종류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오메가 씨의 피로 만들어지는 검 아닙니까. 사고를 확장하세요. 상황에 적절한 검을 만들어 내세요. 오메가 씨는 어떤 검이든 활용할 능력이 충분할 것 같은데요. 안 그렇습니까?”

스킬을 다양하게 연계할 생각만 했지, 스킬 자체를 변형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

아물었던 팔뚝의 상처가 터지며 솟아오른 피가 대검에 합류하며 더욱 완벽한 형체를 갖추었다.

‘자잘한 상처는 어차피 회복할 테니······저, 트롤 한 번에 양단한다.’

놈에게 달려들었다.

용의 숨결 같은 용접기의 불꽃이 나를 향했으나 [흐림수르사르]로 만들어진 빙벽은 나를 열기로부터 보호했다.

[즉참卽斬]

양손으로 잡은 대검이 태산조차 잘라낼 기세로 트롤의 허리춤을 향해 날아들었다.

쉴드 생성기라도 두르고 있었던 것인지 트롤의 배와 허리 주변에 몇 겹의 쉴드가 나타났지만 대검은 가녀린 얼음장 위에 떨어지는 바위처럼 가볍게 쉴드를 깨부쉈다.

콰직- 콰직- 콰직-

쉴드가 깨졌으니 이물감이 없어야 하는데 오히려 거센 반발력이 느껴졌다.

무언가가 대검이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게 억제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근력 강화]

검을 쥐고 있던 팔과 어깨에서 뿌드득 소리가 나며 근육과 핏줄이 도드라졌다.

스걱-

마침내 대검이 트롤의 허리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재생력의 종족이니만큼 트롤은 대검이 허리에 박혀있음에도 몸을 비틀며 내 얼굴에 용접기를 들이대려고 용을 썼다.

“으아아아아!”

놈의 패거리들이 트레일러 주위로 몰려들고 있었다.

“대장을 지켜!”

“저 새끼 죽여! 빨리!”

“클리드! 더는 못 버텨!”

마지막 말이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주자 그곳에는 인간 하나가 코피와 피눈물을 줄줄 흘리며 이쪽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능력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검을 붙들고 있는 것이 저 인간 같았다.

‘쉴드도 만들어 낸 건가.’

놈의 패거리들이 쏘아대는 탄환이 빙벽을 부수기 직전이었고, 결국 트롤의 허리를 절반 정도 파고 들어간 대검을 회수했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던 트롤이 비열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디서 튀어나온 놈인지는 몰라도, 넌 좆된 거야.”

멍청한 트롤.

진짜 좆된 건 너 같은데.

고양이 수인이 재빠르게 트레일러 위로 올라와 트롤을 데리고 빠졌다.

일단 유물 탈취를 막은 것도 같고, 혼자 트레일러 위에 있으면 집중포화의 대상이 되기 딱 좋기에 트롤이 사라진 반대편, 놈의 패거리가 없는 쪽으로 내려섰다.

“유물은 지켰거든? 지원은 언제 온대?”

앨리스에게 한 말인데 신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2분 안쪽이요. 젠 오빠 먼저 도착할 것 같고, 네오-서울에 있는 저희 방계 가문들에 총동원령이 떨어졌어요. 아버지가 엄청 화났거든요.

“트롤이랑 고양이 수인이 이끄는 놈들인 것 같아요.”

-아버지한테 전달할게요.

이 와중에도 화기를 들고 내게 접근하려는 놈들이 있어 모조리 근맥을 끊어주었다.

그때,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다.

“온 건가.”

등장한 헬리콥터는 위쪽에 회전날개 2개를 배치하고 허리가 긴, 수송용 헬기였다.

헬기의 문이 열리고 나타난 사람은 눈에 익지만, 왠지 반갑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흰 가면을 쓴 키 작은 소녀가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가면을 벗어던지자 앳되어 보이는 듯 성숙한 듯 묘한 얼굴, 무엇보다 머리 위에 솟은 하얀색 귀 한 쌍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메가! 감히 본좌에게 그런 고난과 역경을 준 채 몸을 피하다니!”

아니, 도대체 누구신데요.

“너는 분명 강하다! 하지만 지금은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군! 나쁘지 않다! 그것이 바로 경전서후(耕前鋤後:남편은 앞에서 밭을 갈며 아내는 뒤에서 김을 맨다)이며 비익련리(比翼連理:비익조와 연리지, 부부 사이의 화목함을 나타냄) 아니겠느냐!”

헬기가 트레일러 위로 붕 솟아 올랐다.

도둑놈들이 갑자기 나타난 헬기에 화력을 쏟아부었다.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까지 발사되는 걸 보고 말을 잃었다.

‘이게······네오 서울의 강도 수준?’

하지만 헬기는 강력한 실드를 하부에 전개하며 공격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철커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헬기의 아래쪽이 열리고, 무언가 떨어져 내렸다.

쿵- 쿵- 쿵-

아홉 번의 충격음과 함께 등장한 것은 한쪽 무릎을 땅에 댄 슈퍼히어로 랜딩 자세로 대기 중인 아홉 대의 로봇.

머리에서 뒤로 늘어트린 특유의 신경다발, 어깨와 손에 삐죽 솟은 가시 형태의 안테나.

알아본 이들의 경악이 터졌다.

“퓨전 코퍼레이션! 퓨전 코프의 로봇이다!”

“9대나? 이게 대체 뭐야!”

“클리드 대장! 이런 말은 없었잖아!”

헬기를 향하던 화력이 로봇들에게 쏟아졌으나, 로봇에게서 전개된 실드를 뚫는 무기와 능력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 사이, 소녀가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소녀는 뛰어내리며 손을 들어 관자놀이 근처를 터치했고, 눈을 감싸는 형태의 반투명 바이저가 생성됐다.

공중제비를 돌며 가뿐하게 내 옆에 착지한 소녀.

“대체 누구십니까?”

내 말에 소녀가 상큼하게 웃었다.

“이제야 이쪽을 보는 모양이구나.”

소녀의 뒤에서 그녀의 머리 위에 있는 귀처럼 새하얀 꼬리 아홉 개가 솟았다.

각각의 꼬리 끝에 작은 구슬이 생기더니, 아홉 대의 로봇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본좌는! 퓨전 코퍼레이션의 총수이며! 가장 신묘한 종족인 구미호, 이수련이라 한다! 그리고 생각이 바뀌었다! 오메가 그대를 닮은 아이만 낳으려 했지만 내 남편으로 낙점했느니라!”

그녀의 꼬리가 살랑이자 아홉 대의 로봇이 일어서서 검을 뽑아 들었다.

검의 형태가 매우 익숙했다.

칼등만 존재하는 형태.

로봇들이 동시에 칼자루를 틀자 형형색색의 광자 검날이 솟아나더니 트롤 패거리들을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고의 원격 조종 로봇 파일럿이기도 하다! 어떠한가! 오메가 그대의 움직임을 베이스로 해서······.”

재빠르게 구미호를 밀쳤다.

고양이 수인이 소리 없이 몰래 접근해 구미호의 등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혈계조검술 – 다가]

핏방울로 만들어진 작은 대검이 고양이 수인이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그녀의 미간에 꽂혔다.

그걸 본 구미호 소녀가 신난 목소리로 외쳤다.

“역시 원조의 아우라는 따라 할 수가 없구나!”

고개를 돌려보니 거대한 박쥐 떼가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마도 총동원령에 응한 야스민가의 방계들일 것이다.

내 손에 들린 핏빛 대검, 아홉 대의 로봇, 반투명 바이저를 쓴 채 옆에서 방방 뛰는 구미호 소녀.

그리고 한줄기 번개와 함께 등장한 젠까지.

“개판이구만, 개판이야.”

“맞다! 본좌는 구미호고 여우는 개과이니라!”

저 멀리서 수송선 한 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내 기억에 저렇게 생긴 건 딱 한 번 봤다.

위타천이다.

시선을 내리니 정장을 입고 있는 나와 눈을 반짝반짝거리며 내 여기저기를 킁킁거리는 구미호 소녀가 보였다.

“앨리스.”

-네. 상황 어때요?

“상황은 정리될 것 같아. 근데 사무실에 두통약 있던가?”

-없을걸요.

“앞으로는 떨어지지 않게 구비해두는 걸로 하자.”

스트레스 받는 일 있으면 찾아오라던 소년의사, 청운 선생님에게 침 맞고 뜸 좀 뜨면 이 두통이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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