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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52화 (53/258)

052.

052.

“‘혜성’은 하뮬 교수가 이끄는 보르스나탄 탐사단이 발견한 유물입니다. 하뮬 교수는 ‘우리가 모르는 먼 우주의 움직임을 간략화해서 나타내는 유물로 보인다’라는 의견을 첨언해 주었습니다.”

경매사가 유물에 대해 설명을 하는 동안, 안이 비쳐 보이는 커다란 상자가 리셉션장의 앞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이 유물은 약 5분 주기로 별을 쏘아 올립니다! 마침 시간이 다 되었군요. 자, ‘혜성’의 등장입니다!”

상자 안에는 납작한 원판이 들어 있었고, 경매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원판에서는 꼬리를 길게 매단 작은 혜성들이 사람 눈높이까지 솟구쳐 올랐다.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보시죠!”

위로 솟구쳐 오른 유성들이 일정 높이에서 꾸물텅거리면서 뭔가 형체를 만들려고 했지만, 곧 흩어져 사라졌다.

“하뮬 교수는 이것이 ‘고대 문명이 바라보는 천문관을 알 수 있는 귀중한 마도공학 유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의 추측으로는 여러 개를 이어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며, 다른 부분을 찾기 위해서라도 유적지 탐사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자, 가칭 ‘혜성’. 네오-서울의 화폐단위로만 입찰할 수 있으시며, 시작가 150억 원, 호가단위 1억 원입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회자의 뒤에 있는 거대한 전광판에 참가자에게 무작위로 부여된 기호와 입찰 금액이 표시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300억을 넘어선 입찰 금액.

“호가단위 자유 입찰로 변경합니다.”

나는 매우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저딴 걸 저 돈 주고 산다고?’

저것도 하우징 관련 아이템인데, 집 앞에 박아 놓으면 ‘오메가의 집에 어서 오세요!’하고 알려주는 아이템이다.

‘폭죽 글자 생성기’.

그런데 크기로 봐서 게임 내 커플들이 쓰던 것이 분명하다.

아마 ‘김철수♥박영희’ 이런 게 적혀있었을 거다.

그런데 글자가 안 나오고 부서지면서 혜성처럼 떨어지는 이유?

저런 경우, 본 적 있다.

커플이 깨졌는데 버리고 새로 사기 아까워서 글자 수정하려다가 망치면 저렇게 된다.

어느 한 커플의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이곳에서 말도 안 되는 가격 책정이 되고 있었다.

이래서 사랑은 위대하다고들 하는 것인가.

당연히 내 손에 들어오면 고칠 수는 있다.

아무리 야스민 공이 돈 걱정 하지 말고 일단 사 들고 오라고 했다지만 어느새 500억을 넘어간 입찰 금액을 보니 망설여진다.

‘이 사람들은 저게 뭔지 모르지만, 나는 알잖아!’

급격하게 바뀌던 전광판이 잠시 멈칫했다.

“570억! 570억! 더 없으십니까?”

눈을 꼭 감았다.

‘내 돈 아니니까!’

경매사의 외침과 함께 흰 가면들의 탄식이 터졌다.

“600억! 금일 첫 유물부터 입찰가 600억을 돌파합니다!”

손이 떨린다.

이게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하는 건지, 아니면 있는 놈이 돈 써서 경제에 윤활 작용을 하는 건지 하는 온갖 잡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탄력을 받은 입찰가가 다시 한번 가파르게 오른다.

“700억을 돌파합니다! 더 안 계십니까? 730억. 730억. 낙찰입니다!”

내가 써낸 금액이다.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고장 난 글자 생성기의 가격은 초기 가격에서부터 600억 원 가까이 올랐다.

손이 벌벌 떨려서 서빙 로봇에게 물 한잔을 받아 마시고 있으니 뒤에서 사람들이 속닥대는 소리가 들렸다.

“저 정도면 적당하죠?”

“저렴하죠. 출토되는 유물도 적은데, 저렇게나 완벽하게 작동하는 건 더 드무니까요.”

“그래요?”

“네. 아마 오늘 옥션에 저 한 점만 나왔다면 경쟁이 붙었을 거고, 1천억을 가볍게 넘겼을 거예요. 뒤에 나올 유물들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사람들이 앞에 있는 건 내주는 것 같아요.”

“누가 낙찰받았는지 몰라도 운이 좋네요.”

“작전을 잘 짠 걸 수도 있죠.”

머리가 핑 돌 것 같다.

완벽하게 작동하지도 않고, 저렴하지도 않은 것 같다.

운은 기여하지 않았고, 작전도 없었다.

이건 광기의 현장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다.

#

“금일의 마지막 마도공학 유물! ‘인생 거울’이 입찰가 8000억을 돌파하며 역대 마도공학 유물 경매 최고가를 경신합니다!”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일단 사라고 해서 사기는 한다만 이건 진짜 폭죽보다 더한 쓰레기란 말이야!’

거울을 바라볼 때마다 뒤에 다른 배경을 합성해주는 아이템.

다만 앞에 있는 물건은 거울이 깨져있었고, 그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인지 깨진 조각마다 제각기 다른 배경과 심지어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성별과 종족마저 다르게 보인다.

경매사가 신나게 떠들어댔다.

“이전 생에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셨습니까? 다음 생은요? 평행우주의 여러분은 어땠을까요? 이 거울에 그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고대 문명은 현세에 안주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 결정체가 바로 이 ‘인생 거울’입니다!”

내가 보기에, 앞에 서 있는 저 경매사의 입이 문제다.

꿈보다 해몽이랬나.

고물 처리하는 후앙 패거리도 안 가져갈 것 같이 작살난 거울이 경매사가 멋대로 붙여놓은 스토리텔링 때문에 심오한 의미를 지닌 물건이 됐다.

격한 감동을 먹고 흰 가면 아래로 눈물 몇 방울을 떨구면서 박수치는 사람들도 보였다.

경매사가 온 힘을 다해 외쳤다.

“집에 찾아온 손님이 이게 뭐냐고 묻거든 당당히 답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건 고대 문명의 정수이자 그들의 철학’이라고요!”

감동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입찰가를 크게 불러대기 시작했다.

“8300!”

“8500!”

이건 진짜 아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렇게 달라붙는 것은 사실 나 때문일 수도 있다.

앞선 4개의 마도공학 유물을 모두 내가 집어 갔거든.

똑같은 기호가 4번이나 유물을 가져가자 사람들 사이에서 ‘혹시 야스민 가문 아니야?’라는 말이 들렸다.

대번에 그런 말이 나오는 걸로 봐서 야스민 공이 얼마나 여기에 미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하나 같이 개쓰레기였다.

그냥 쓰레기도 아닌 개쓰레기.

어떻게 이딴 폐기물만 남아 있는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폭죽 글자 생성기’, ‘잡으면 3분간 손이 닭발이 되는 닭 조각’, ‘카레 향 나는 똥 모양 장난감’, ‘대벌레로 위장한 나뭇가지 같은 대벌레’.

서리얼 시절에 분명 수집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저걸 재밌자고 만들어놓은 건가?’ 싶은 아이템들만 모아 놓은 것 같았다.

저것들에 비하면 야스민 저택에 있는 변형 벌레는 선녀다, 선녀.

그런데 저걸 로스트 테크놀로지 취급하면서 울고불고하는 걸 보고 있자니 없던 편두통도 생길 판.

결국 나는 입찰을 포기했고, ‘인생 거울’은 9000억을 넘긴 가격에 팔렸다.

준비한 5점의 마도공학 유물 경매가 모두 끝난 상황.

몇몇 흰 가면들은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매사가 다급히 말했다.

“아직 경매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는 유적지에서 출토되었으나 정확한 사용법을 알 수 없거나, 작동하지 않는 부속물 경매가 진행되겠습니다.”

정확한 사용법은 무슨, 카레 향 나는 똥 장난감 보고 식탐에 대한 무절제를 경계한다고 이빨 털던 놈이.

경매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메인디쉬가 끝난 식사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는 듯 사람들 절반 이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일어날까 하다가 순수한 호기심에 자리에 앉아 있었다.

새로운 물건이 등장하자 경매사는 아까와는 확연히 달라진 낮은 텐션으로 말했다.

“끊어지기 직전의 끈입니다. 용도를 알기 힘들며 아무런 기능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시작가 500만원, 호가단위 10만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걸 보고 있던 나는 크게 한바탕 웃음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아내면서 자리에 앉았다.

쓰레기 더미 사이에 진짜가 쓰레기인 척 끼어있었다.

떠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진짜 경매는 이제 시작인 것 같다고.

안목들 기르셔야겠다고.

#

경매를 마치고 프라이빗 룸으로 올라오니 총괄 매니저가 먼저 와 있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요.”

“낙찰받으신 마도공학 유물 4점은 성북 에어리어로 보내드리면 되겠습니까.”

“네, 그렇게 해주세요. 혹시 그것들 말고 제가 나중에 입찰한 물건들은 지금 볼 수 있나요?”

“끈 2개와 열쇠고리. 맞으시지요?”

“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급스러워 보이는 천에 올려진 상태로 물건들이 도착했다.

끈 2개 중 조금 큰 걸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여기서 제가 바로 가져가도 되죠?”

“세금과 명의 이전 문제는 저희 측에서 성북 에어리어로 사람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호텔을 나가시는 순간부터 해당 유물에 대한 책임 소재가 대리인분께 이전된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상관없어요.”

“그럼 다른 두 점은 나머지 유물들과 함께 이송 준비를 하겠습니다.”

사람들을 물렸다.

[반향 정위]와 [기막 펼치기]를 사용해 프라이빗 룸 근처에 아무도 없는 것을 몇 번이나 확인한 뒤, 삭아서 끊어지기 직전으로 보이는 끈을 조심스레 들어 손목에 둘렀다.

매듭을 지어 팔찌처럼 만든 뒤, 위에 손을 올려 기를 흘려보내자 삭기 직전의 팔찌의 색이 돌아왔다.

“이거지.”

계속해서 기를 흘려보내면서 눈을 감고 내가 원하는 외양을 상상했다.

‘누구로 하지? 수인으로 해볼까?’

[아이템 가동]

눈을 뜨자, 거울에 귀가 길고 갈색 털을 휘날리는 정현의 모습이 보였다.

최대 6시간까지 원하는 외형을 유지하게 해주는 아이템, ‘인피면구’.

[가동 중지]

북슬북슬했던 털이 사라지며 내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 번 사용하면 72시간의 쿨타임이 있지만 서리얼에서 이건 본인만 안다는 걸 물어보는 식의 원론적 방법 외에는 어떤 탐지 수단으로도 걸리지 않았다.

“이거 달라고 하면 되겠네.”

#

자율주행 무인 에어로 리무진을 타고 성북 에어리어의 야스민 저택으로 복귀하는 길, 바로 뒤쪽에 마도 공학 유물을 싣고 있는 무인 트레일러와 그 주변을 호위하는 밴들이 보였다.

반대편 차선에서 달려오는 트럭의 속도가 어째 너무······어······어······.

콰아아앙-

차선을 넘어 들어온 트럭이 리무진을 뒤따르던 밴 하나를 뭉개고 지나갔다.

앞에 있던 트럭 하나도 속도를 줄이더니 역시나 다른 밴 하나의 앞을 그대로 밀며 자리를 잡았다.

곧이어 경매장에서 보낸 것과 다른 기종의 밴 하나가 내가 타고 있던 리무진의 옆을 받았다.

강한 충격에 몸이 휘청이는 것과 동시에 균형을 잃고 빙글빙글 도는 리무진 안쪽에서 경고음이 울려댔다.

-충격 감지, 충격 감지. 탑승자 보호 모드로 전환.

구겨진 문짝 사이로 찐득한 액체 같은 것이 흐르더니 순식간에 굳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라면 안에서 죽을 것 같았다.

밖으로 나가야 했다.

[트야치Thjazi]

손에서 뻗어 오르는 얼음 칼날로 문을 잘라내고 발로 차 떨어트리자 리무진의 경고음이 귀청을 찢을 듯 커졌다.

하지만 무시하고 밖으로 나와 리무진 위에 올라섰다.

속도가 높지는 않지만, 영동대교로 진입하기 직전이라 그런지 바람이 몰아쳤다.

손을 털자 얼음 칼날이 부스러지며 흩어졌다.

[흡착]

리무진 천장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뒤를 돌아보니 거대한 트럭들이 경매장 측 호위 인력이 타고 있던 밴을 밀어내고 유물을 실은 트레일러를 포위하고 있었다.

“앨리스.”

-네. 오고 계세요?

“옆에 신시아 있지.”

-바꿔드려요?

“아니, 신시아한테 빨리 야스민 공한테 가서 정신 나간 놈들이 야스민 공 물건 훔쳐 가려는 것 같다고 전하라고 좀 해줘. 지원 병력 보내라고도 해주고. 그리고 마도 공학 유물 탈취 저지에 대한 보상도 생각해줬으면 한다고도.”

자연스럽게 허리춤으로 손을 내렸으나 칼자루는 잡히지 않았다.

무기 반입이 안 된다고 해서 사무실에 두고 왔다.

당황하는 것도 잠시, 젠과의 대련을 통해 익히고 있던 기술을 처음으로 선보일 수 있는 기회였다.

팔뚝을 들어 힘껏 물자 비릿한 피 맛이 혀에 닿았다.

팔을 내리자 피가 바람을 맞아 뒤쪽으로 후두둑 떨어지는 감각이 생생했다.

[자연 회복]으로 상처가 메워지기 전, 검을 잡는 자세를 취했다.

[혈계조검술血溪造劍術]

내 피로 이루어진 붉은 검의 칼자루가 손에 감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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