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
051.
“뵙게 돼서 영광이었습니다! 형수님!”
자기를 닮은 옆 뒷머리를 하얗게 쳐낸 돼지 마스코트가 그려진 밴에서 후다닥 내려서 리무진 안에 타고 있는 신시아를 향해 허리를 90도로 꾸벅 굽히는 후앙이었다.
“형수님이라뇨. 농담도.”
그렇게 말하지만 신시아는 굉장히 기뻐 보였다.
연신 허리를 굽히는 후앙을 약하게 한 번 걷어차고 차창 너머의 신시아에게 인사했다.
“조심히 가요. 다음 주중에 젠 씨랑 대련하러 저택에 갈 것 같아요.”
“네! 그때 봬요!”
“들어가세요.”
마지막 말은 신시아가 아닌 신시아의 선글라스, 정확히는 선글라스 가장 왼쪽에 장식으로 박힌 보석을 응시하며 했다.
신시아를 태운 리무진이 떠나자 후앙이 내 곁에 붙어서 물었다.
“선글라스 너머로 그냥 미모가 뚫고 나오던데, 형님 생각보다 능력자십니다? 누구신지 알려주시면 안 됩니까? 저 어디 가서 말 안 합니다.”
“시끄러. 로봇이나 옮겨.”
“이미 애들이 옮기고 있슴다.”
“네가 솔선수범해야지. 꼴에 사장이라고 빠져 가지고.”
“형님도 사장이고 저도 사장인데 대우가 너무 엉망인 거 아님까? 데리고 있는 인력으로 치면 제가 더 많은데.”
“어허, 말대꾸하지 말랬지.”
돼지가······말대꾸?
후앙을 부른 건 나를 습격했던 로봇의 잔해를 수거하기 위해서였다.
건물 청소 겸 고물 처리 업체를 차린 후앙 패거리들은 내가 연락을 하자마자 털털거리는 밴을 끌고 기계 지구에 나타나 로봇을 밴에 실었다.
그리고는 신시아를 보자마자 대번에 애들을 끌고 나와 깍두기식 인사를 꾸벅하더니 형수님 소리를 해댔다.
로봇이 우리 사무실로 옮겨지는 동안, 밖에서 후앙과 대화를 나눴다.
“너네 요새 못 먹고 다니냐? 너도 그렇고 어째 애들이 다 살 빠져 보인다?”
“아뇨. 그동안 많이 먹었던 거죠. 샬롯이 할머니가 만든 음식들을 저희에게 나눠주고 그랬거든요. 할머니가 손이 워낙 크셨잖아요.”
“이야······. 밥도 얻어먹으면서 무단 점거를 하고 있었다고? 이 새끼들 진짜 사람 언저리의 무언가였네.”
“그래서 반성하고 열심히 살려고 꿈틀거리지 않슴까.”
실실 웃는 후앙을 쥐어박으려다가 말았다.
키클롭스 아재 말을 들어보니 후앙 패거리는 제법 열심히 살고 있는 모양이다.
몇 군데 사설 집행자 사무실의 뒤처리를 맡기도 한다고.
건물 청소하라고 장소 빌려줬더니 고물 쌓아놓고 다 타버린 자동차 쪼가리 세워놓고 하는 게 좀 그렇긴 한데, 모여서 갱단이랍시고 소꿉놀이할 때에 비하면 훨씬 낫지 않나.
애들도 다 밝아 보이고.
로봇 잔해를 사무실에 올려놓은 후앙 패거리들이 나를 보고 꾸벅꾸벅 인사했다.
건성으로 손을 흔든 뒤, 후앙에게 물었다.
“전자 명함은 팠냐?”
“팠죠. 사업체 아닙니까.”
“계좌 적혀있지? 줘봐. 견적은 앨리스한테 알려주고.”
“에이, 어떻게 형님한테 돈을 받겠습니까. 필요하면 부르십쇼. 만사 제치고 오겠슴다.”
“사업체 굴린다면서 돈을 그렇게 쉽게 안다 그거지? 네 밑에 애들은 그거 안 좋아할 거다. 빨리 내놔.”
그제야 후앙은 목에 걸고 있는 금목걸이를 만져서 전자 명함을 만들어 내게 건네며 말했다.
“옮기다 봤는데 저거 퓨전 코프에서 만든 로봇 맞죠?”
“몰라. 비싼 거냐?”
“비싼 정도가 아니죠. 퓨전 코프 기술력의 결정체인데요. 그리고 시판 모델도 아닌 것 같은데······. 소수를 위한 커스텀 모델이나 사내에서 운용하는 모델 아닐까요.”
“시장에 알려지지 않은 거다?”
“저도 전문가는 아니라 잘 몰라요. 그냥 요새 이쪽 일 하면서 여기저기서 얻어걸리는 걸 떠드는 정도죠.”
“그러냐. 여튼 오늘 바로 오느라 수고했다.”
“넵. 가보겠슴다.”
사무실로 올라가니 앨리스가 자기 책상에 앉아 패널을 두드리고 있었다.
“로봇 저거 팔겠다고 공고 올릴까요? 사무실만 좁아 보이는데.”
“그건 나중에 하고. 너 여기 좀 앉아봐.”
사무실 중심에 ‘ㄷ’ 자 형태로 배치한 소파의 상석에 앉자 앨리스가 옆에 와서 앉았다.
안 그런척하면서 나를 흘끔 보는 것이, 자기도 지금 내 심기가 불편한 걸 알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먼저 말할까, 아니면 네가 말할래.”
“뭘······요?”
“빨리 다 털어놔.”
앨리스가 딴청을 피웠다.
“데이트도 잘 다녀오시고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네요.”
“다 보고 있었지.”
앨리스의 어깨가 움찔했다.
“아니라고는 못 하겠지?”
신시아의 선글라스 렌즈 옆에 하나씩 붙어 있는 보석 중 왼쪽에 있는 보석 안쪽에 작은 무언가가 있었다.
로봇의 칼날 다리에 반사된 햇빛이 스쳐 지나갈 때 그게 작은 렌즈라는 걸 알아챘다.
여기까지는 의심이었는데, 기계 지구에서 일을 쳤으니 수습하고 떠나겠다고 헤지르 대주교에게 연락하면서 일의 진상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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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네. 그 정도야 내가 처리함세. 데이트는 즐거웠나?”
“영감님이 그걸 어떻게 알고 계시죠?”
“자네 사무실의 안드로이드가 사장님 데이트 돕고 싶다고 나한테 연락했던데?”
“앨리스가요?”
“······말하면 안 됐던 건가? 내가 누설했다고는 하지 말아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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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선 넘은 거야. 알고 있지?”
“저는 둘이 잘 어울리고 그러니까 조금이나마 도우려고 그랬죠······.”
“마음은 고마운데. 앞으로는 하지 마. 분명히 말했다. 하지 마.”
그렇게 말하고 앨리스를 바라보니 앨리스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몇 마디 했다고 축 처진 모습이 보기 그랬다.
“어쩐지 한 번도 안 와봤다던 신시아가 안내를 익숙하게 하더라. 네가 짜준 코스야?”
“네······.”
“다음에도 필요해지면 내가 너한테 부탁할게.”
고개를 번쩍 든 앨리스.
“신시아 언니 또 만나보시게요?”
“뭐······괜찮지 않나?”
“무슨 대답이 그렇게 애매해요!”
“빨리 고개 숙이고 반성해! 실실 웃지 말고!”
내 말에 앨리스는 다시 고개를 내렸다.
킥킥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깨를 들썩이면서.
‘직원이 사장 머리 꼭대기에 올라 있는 게 맞나 이거.’
그렇게 생각하면서 주머니에서 오일 샌드 하나를 꺼내서 앨리스한테 내밀었다.
“먹어. 오면서 샀어.”
“이거 새로 나온 맛인데! 매일 가도 매진이던데 어떻게 구했어요?”
“요 앞 가게에 하나 있더라.”
앨리스가 기쁜 표정으로 봉지를 뜯자 오일 샌드 특유의 기름 냄새가 훅 퍼졌다.
하나를 집어서 오물거리던 앨리스가 밝게 말했다.
“역시. 다른 오일 샌드보다 사장님이 사준 게 제일 맛있네요.”
“원래 남이 사준 게 제일 맛있는 법이야.”
“사줬다는 게 포인트가 아니라, 사장님이······어후 말을 말죠.”
“그래 너는 오늘 나한테 말 걸지 마. 벌이야.”
“아, 왜요! 그리고 말 안 걸면 일을 어떻게 해요!”
“말 걸지 말라니까? 일은······텍스트로 보내. 그리고 가서 창문 좀 열어. 냄새나잖아.”
#
다음 주, 야스민 저택에서 젠과의 대련을 마친 나는 야스민 공의 서재로 올라갔다.
간만에 보는 야스민 공은 뺨이 핼쑥해지고 눈 밑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리고는 나를 보고 대뜸 말했다.
“신시아와 데이트했다던데. 그럴 거면 의뢰 보상이었던 신시아와의 결혼을 수락했으면 된 거 아닌가?”
“데이트랑 결혼은 다릅니다.”
눈을 가늘게 찢고 나를 노려보는 야스민 공의 시선이 따갑다.
“데이트와 결혼은 다르다? 그 말은, 신시아는 데이트 상대일 뿐이고 결혼 상대로는 눈에 안 찬다는 건가? 내 딸이? 야스민 직계의 막내딸인데도? 예쁘고, 능력도 좋은데도?”
대충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라는 말을 신시아와 젠, 둘에게서 모두 듣고 왔기에 바로 필살기를 꺼냈다.
“야스민 공께서 저와 신시아 사이에 대해 지극히도 많은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신시아가 달가워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야스민 공은 바로 수그러들었다.
“······그런 말은 넣어두게. 지난주 내내 신시아가 나랑 얼굴 한 번을 안 마주치려고 해서 얼마나 괴로웠다고.”
진짜 보통 딸바보가 아닌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가는 와서 신시아 얘기만 주구장창 할 것 같아서 주제를 환기했다.
“이렇게 부르셨다는 건 의뢰의 대가가 정해졌다고 봐도 될까요.”
“그래. 그 이야기를 하려고 불렀네.”
야스민 공이 손을 들어 목에 매고 있는 넥타이를 정리한 뒤 말했다.
“일단, 마도공학에 관한 자네의 능력에 대해 야스민 가의 일부 독점적 지위를 명시했으면 하네.”
“일부 독점적의 범위가 중요하겠군요.”
“야스민 가를 제외한 다른 어떤 개인, 집단, 기업, 단체, 권역 기타 등등에게 직접적인 이익을 가져다줘서는 안 되네. 유일한 예외는 오메가 자네뿐.”
말인즉슨, 마도공학에 대한 지식과 능력을 오로지 나와 야스민 가만을 위해 사용하라는 뜻.
조금 알아봤는데, 마도공학이 서리얼 시절의 아이템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 가격이 너무 높아서 지금의 나는 언감생심, 감히 쳐다보기도 힘든 물건이다.
기계 교단 내에도 성물로 지정된 몇 점 외에는 없다고 할 정도.
어차피 바라보지도 못할 물건인데 야스민 가의 지원을 받게 되면 다양한 마도공학 유물이라 불리는 아이템들과 접하게 될 수 있을 터.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조심히 접근했다.
“야스민 가의 범위는 어디까지입니까.”
“오로지 야스민 직계에 한정하겠네. 내용을 수정하지.”
“기간은요.”
“······50년. 추후 협의를 통한 연장.”
“너무 길군요.”
“길다니. 고작 50년밖에 안 되는데.”
“흡혈귀의 기준 아닙니까.”
“인간 수명이 200년을 바라보고 있네. 장기를 교체하거나 아예 뇌만을 이식하면 그것보다 훨씬 길어지고 있고. 그리고 설령 자네가 아무 조처를 하지 않더라도 그 정도 나이에 죽게 내가 놔둘 것 같은가? 어림도 없지.”
“5년.”
“5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눈을 한 야스민 공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외면한 채, 야스민 공이 사용하는 관 형태의 침대 옆에 놓인 유리 쇼케이스로 향했다.
귀뚜라미가 폴짝대다가 멈춰서서 찌르르르하고 울었다.
“제가 말씀드린 거, 기억하십니까? 귀뚜라미와 나비 중 어떤 걸 좋아하시냐고 물었죠.”
야스민 공이 침을 꿀꺽 넘기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보안을 해제해주시면 제가 지닌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드리겠습니다.”
야스민 공이 홀린 듯 쇼케이스에 손을 뻗어 보안장치를 해제하자 나는 안에 손을 넣어 귀뚜라미를 부드럽게 쥐었다.
내 손등 위에 3이라는 숫자가 떴다.
“저번에 한 번 변형한 뒤에 2가 되지 않았나?”
“영구적이지 않습니다. 최대 3회까지 사용량이 충전됩니다. 다만 사용할 때마다 그 충전 간격이 길어집니다.”
“오오······.”
[하우징 장식물 변형]
숫자가 2로 변하는 것과 동시에 손 안쪽에서 나비의 날갯짓이 느껴졌다.
“이건 의뢰나 계약과 관계없는 제 선물입니다.”
[하우징 장식물 각인]
손을 펴자 등에 보석이 박힌 나비가 팔랑거리며 날았다.
나비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던 야스민 공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이건······!”
“선물을 찾으셨습니까.”
나비의 왼쪽 날개에는 아주 정교하게 야스민 가문의 문장이 각인되어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 문장이 그 곳에 있었던 것처럼.
날개가 팔랑일 때마다 문장이 찰랑거렸다.
“마도공학 유물에······우리 야스민의 문장이······.”
갑자기 벌떡 일어선 야스민 공이 쇼케이스를 닫고 보안장치를 활성화했다.
그리고는 수십 마리의 박쥐로 분열해서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읏······.”
손을 들어서 막았지만, 박쥐는 내게 아무 위해도 끼치지 않고 스쳐 지나갔다.
뒤를 돌아보니 분열된 박쥐들은 넓은 책상 앞에서 모이더니 다시 뭉쳐 야스민 공이 되었다.
입을 굳게 닫은 야스민 공이 책상에서 종이를 꺼내 그 위에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게 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작은 나이프로 손에 상처를 내자 떨어지는 피가 종이에 배어들었고, 야스민 공이 말하는 대로 피가 움직이며 글자를 만들어 나갔다.
일련의 과정이 끝나자 야스민 공은 내 앞에 종이를 내밀었다.
“확인해보게.”
나눴던 대화가 계약서의 형태로 적혀있었다.
“피의 서약을 했으니 바뀔 일은 없을 걸세. 3세기 내에 내가 직접 피의 서약을 하는 일은 없었는데······.”
기간이 아주 마음에 들어 입으로 중얼거렸다.
“3년의 기간. 종료 3달 전부터 대리인 자격 연장에 대한 협상을 할 수 있으며 협상 우선권은 오메가에게 있다.”
“야스민 가 역사를 통틀어도 이 정도로 우리에게 독소조항이 많이 붙은 계약은 없을 걸세.”
“그만큼 제 능력을 인정해주신다는 뜻이니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서명하면 자네는 3년간 마도공학 유물에 대해 나, 커머라시 야스민의 대리인 자격을 얻게 되네. 세계 유수의 대학에 있는 교수들이 내 대리인은커녕 컬렉션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마당에······.”
서명을 하기 전, 아직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이건 마도공학 유물에 대해 제가 지닌 능력에 대한 것을 빌려 가시는 계약이고, 아직 이번 경매 대리인 의뢰에 대해 대가는 말씀하지 않으신 걸로 압니다.”
“어지간히 독해.”
“독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여간 힘든 세상 아닙니까.”
“자네에 대한 성의를 보일 겸, 그리고 자네 스스로 그 능력에 대해 증명할 겸 해서 이번 경매에서 자네가 나의 대리로 매입한 마도공학 유물 중 한 가지를 무상으로 자네에게 양도하지. 세금도 내가 전액 부담하는 방식으로.”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한 가지를요? 아무 조건도 없이요?”
“그렇네. 대신 자네가 가질 물건이 어떤 물건이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내게 설명해야 할 걸세.”
“실례지만 이번 경매에 출품되는 유물이 몇 점입니까?”
“5점. 단일 옥션에서 다루는 규모로는 역대 최대지.”
“그중 하나만 구할 수 있다면 공께서는 돈만 쓰고 제게 유물을 넘기는 셈이 될 텐데요?”
“자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건가?”
이어지는 야스민 공의 말에 나는 플렉스를 느끼고 말았다.
“최대 5점, 최소 3점은 사들여야 컬렉터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나?”
그리고 야스민 공은 굳어 있는 나를 지나쳐 다시 나비 앞으로 가서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의 시선이 나비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이 사람은 경매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가격표가 실시간으로 바뀌는 마트?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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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 당일, 나는 야스민 가에서 제공해준 최고급 정장을 입은 채, 역시나 야스민 가에서 제공해준 고급 리무진을 타고 경매가 열리는 강남 에어리어의 어느 호텔 지하로 향했다.
전혀 입지 않던 정장을 입고 칼자루도 두고 움직이다 보니 왠지 모르게 어색함이 느껴졌다.
호텔 지하에서 내리자마자 프라이빗 룸으로 안내를 받았고, 총괄 매니저로부터 눈과 입 부분이 뚫린 온통 새하얀 가면 하나를 건네받을 수 있었다.
“이건 뭔가요?”
“VVIP 분들 중에서는 신원 노출을 꺼리는 분들도 많이 계셔서요. 이번 경매는 비밀 경매의 형태로 진행 될 겁니다. 물론 주최인 저희 쪽은 초대장을 받아보신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혹은 어떤 분들의 대리인이 오실지 알고 있지만, 저희 측에서의 신원 노출의 걱정은 넣어두셔도 좋습니다.”
“오······.”
그렇게 기다리다 시간이 되었다는 소리에 경매가 열리는 리셉션장으로 향하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가면을 쓴 채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연스레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옆에 흰 가면을 쓰고 내 키의 절반만 한 사람이 붙었다.
“역시······네가 이곳에 올 줄 알았다. 오메가. 급하게 초대권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앨리스와 비슷한, 소녀의 목소리.
“본좌가 보낸 전령을 단박에 박살 냈다지? 역시 너는 강하다. 퓨어라고는 믿기지 않아.”
무시하려 했더니 계속 중얼댔다.
“본좌는 강한 남자의 아이를 원한다. 그렇게 하려면 순수하면서도 강한 남자의 정자가 우선 되어야 한다!”
참다 참다 옆에 있던 가드를 불러서 총괄 매니저를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다.
뛰어온 총괄 매니저에게 말했다.
“옆에 있는 이분이 계속 제 신상을 노출하려 하는데요. 조치를 취해주세요. 이대로는 불쾌해서 경매 참여 못 하겠어요.”
내 말에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 총괄 매니저에게 한 마디씩을 보탰다.
“관리를 어떻게 하는 겁니까?”
“초대권을 구하고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리던데, 초대권 양도나 매매는 금지 사항 아니었나요?”
총괄 매니저가 가면을 쓴 소녀에게 정중하지만, 압박감이 느껴지게 물었다.
“고객님. 다른 분들의 말씀이 정말입니까?”
“어······어······그게 아니라······.”
“잠시 나와서 저희와 대화를 좀 하시죠.”
가드에게 둘러싸여 총괄 매니저와 함께 어디론가 가는 소녀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본좌가 누구인 줄 아느냐? 퓨전 오퍼레이션의······.”
총괄 매니저는 진상을 상대하는 데는 이골이 났다는 듯 건성으로 끄덕이더니 둘의 모습이 저 멀리 사라졌다.
나는 예의 바르게 주위의 다른 분들에게 고개를 꾸벅하고는 야스민 공이 말해줬던 주의 사항을 다시 되새겼다.
“경매에 이상한 사람 되게 많을 거라고 하더니 아직 입장도 안 했는데 벌써 하나 봤네. 걸러서 다행이다.”
그렇게 작은 소동 이후에 입장을 마무리하고 자리에 앉자 경매가 시작됐다.
자잘한 도자기나, 그림이 소개되었지만, 자리에 모인 흰 가면들은 저런 것은 본 경매의 애피타이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지지부진한 분위기 속, 경매사의 한마디에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금일 준비된 다섯 점의 마도공학 유물 중, 그 첫 번째. 가칭 ‘혜성’을 소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