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 (2권 후기)
050.
“참나. 아버지도 정말. 어후, 결혼이라니. 그것도 오메가 님이랑.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니?”
앨리스는 자신을 위해 제공된 최고급 오일 샌드를 씹으며 붉어진 얼굴에 연신 손부채질하는 신시아를 바라봤다.
‘맛있네.’
시추선에서 퍼 올린 원유에 심층 해양수를 배합해서 만들었다고 했던가.
농밀하고 진득한 기름 맛 사이사이 치고 올라오는 청량감이 아주 산뜻한 것이 진국이었다.
‘아무리 사장님이 내 간식 비용에 유해졌다고는 하지만 이런 걸 매번 사 먹기는 힘들겠지.’
하지만 눈앞에서 연신 손부채질을 하는 신시아는 다르다.
이런 오일 샌드 정도는 정원 바닥을 도배할 정도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앨리스의 연산 회로가 어느 때보다 빠르게 오일 샌드로부터 주어진 열량을 소모하며 가동을 시작했다.
‘대체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장님은 위험한 곳을 찾아다니는 기질이 있으니 항상 불안하다. 하지만 야스민 가의 뒷배가 있다면? 적어도 네오-서울에서 위험할 일은 없다.’
게다가 터진 댐처럼 쏟아지는 신시아의 말을 정리해보면 무려 가문의 성을 주는데도 흡혈귀가 될 필요도 없다고 했단다.
‘전경련이나 경실련에서 욕은 먹을지언정, 진짜 흡혈귀가 아니기에 식귀종 같이 흡혈귀를 직접 노리는 집단에서도 자유롭다. 설령 노려진다고 해도 사장님이 어디 가서 납치당하거나 얻어맞고 다니지는 않을 것 같고.’
가늘게 눈을 뜬 앨리스가 신시아를 빠르게 훑었다.
‘인간형 종족의 미적 기준에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부합해. 사장님이 그동안 특이한 취향을 드러낸 적은 없는 것 같고······.’
고급 한정판 오일 샌드를 계속해서 먹고 싶다는 욕망 98%, 오메가의 미래에 대한 걱정 2%의 비율로 연산을 마친 앨리스가 신시아를 향해 직구를 날렸다.
“언니.”
“응.”
“그래서, 우리 사장님 싫어요?”
간신히 좀 가라앉던 신시아의 붉은 얼굴이 순식간에 다시 달아올랐다.
“아, 아니 너까지 갑자기 무슨 소리야.”
“싫냐고요. 싫으시면 사장님한테 가서 ‘신시아 언니는 사장님 별로래요.’ 이렇게 전해드릴게요. 애매하면 서로 힘들잖아요.”
“그, 그건 아니지만.”
오일샌드 접시를 한쪽으로 밀어놓은 앨리스가 신시아 쪽으로 가까이 당겨 앉았다.
“언니, 저는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긴 한데. 우리 사장님 여자가 잘 붙거든요? 타이린드 언니도 있었고,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프로이데 마탑의 정민이라는 마법사도 있었다면서요.”
정민 얘기가 나오자 곧바로 눈꼬리가 위로 올라가는 신시아였다.
“반건조 오징어 같은 년.”
신시아에게 다 말해줄 수는 없지만 리벨리온의 샴록도 악연이긴 하지만 오메가와 얽혀 있고, 수연은 대놓고 오메가를 유혹하려 했었다.
앨리스가 보기에 누구를 가져다 대도 내, 외부적인 스펙으로 신시아를 넘을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저도 들은 건데요. 남자가 가정을 이루면 진중해진대요. 진중한 사장님. 괜찮지 않아요? 지금처럼 대충 캐주얼하게 입고 외투만 걸치고 다니는 게 아니라, 젠 님처럼 분위기 있는 긴 도포를 두른다던가, 야스민 공께서는 항상 수트 차림이시라면서요. 그런 사장님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쓰리피스수트에 야스민 가의 문장을 형상화한 넥타이핀이 꽂힌 넥타이를 맨 오메가를 상상한 신시아는 이제 얼굴에서 더 붉어질 곳도 없는 상태가 됐다.
“다른 여자가 채가면 그때 아쉬워할 거예요? 야스민 가의 영애인 언니가?”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고개만 돌리는 신시아를 본 앨리스는 조금만 더 하면 넘어오겠구나 싶었다.
“동경, 좋죠. 그런데 우상에 대한 동경은 사춘기에서 끝나야죠. 우리 사장님은 움직이는 피규어가 아니에요. 만질 수 있고, 정서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지금 언니와 사장님의 관계는 건강하지 않아 보여요. 언니가 다가서면 사장님도 분명 반응이 있을 거예요. 제가 도울게요.”
“돕는다고?”
신시아가 관심을 보이자 앨리스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랑 사장님은 소울 메이트 하기로 했거든요? 언니랑 사장님은 와이프랑 허스밴드 해요. 저는 언니가 새언니가 되면 좋겠어요.”
앨리스의 입은 막힘없이 말을 줄줄 쏟아냈다.
최고급 오일 샌드에 대한 욕망은 이토록 엄청났다.
눈치를 보며 손톱을 비비던 신시아가 중얼거렸다.
“와이프······허스밴드······. 새언니······.”
솜사탕처럼 달콤한 미소가 신시아의 보조개에 맺히는 그 순간을 앨리스는 놓치지 않았다.
앨리스의 눈이 매처럼 변했다.
멀리 보이는 평원에서 풀을 뜯는 순진한 토끼를 노리는 날카로운 매의 시선.
“그런데 지금처럼 야스민 공이 주관해서 ‘해라, 해라’하는 결혼은 안 돼요. 우리 사장님 반골 기질 있어서 분명히 하라 그러면 안 할걸요.”
오메가 얘기에 신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가까이 붙어 앉았다.
“그러니까 야스민 공은 잠깐 빠져계시라고 하고, 일단 언니가 먼저 움직여요. 사장님은 딱 봐도 이런 쪽에는 눈치가 더럽게 없을 것 같거든요. 먼저 데이트 신청부터 합시다.”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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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를 보관해놓았던 곳으로 안내를 받으며 젠과의 대련을 복기했다.
‘처음의 그 한번 말고는 닿을 수 없었다.’
호기롭게 1승을 챙겼다고 선언하긴 했지만, 그것도 젠이 방어적인 형세만 취했기 때문임을 알고 있다.
그래도 몇 번의 대련을 거쳐 가며 서로에게 익숙해지면서 젠은 술법 몇 가지를 보여줬는데, 언어 그대로 천지를 열어젖히는 수준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마른하늘에 수없이 많은 번개 줄기가 떨어지거나, 가벼운 손짓에 폭풍이 이는 것을 보고 있자면 절로 입이 벌어졌다.
지도 대련을 받기 위해 몇 년씩 대기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세계관 최강자가 동자공 익힌 흡혈귀 도사인 거 실화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젠이 동자공으로 쌓아 올린 공력을 잃을까 여성을 극도로 꺼리는 것도 이해가 됐다.
공중에 글자 몇 개 그리는 걸로 비바람을 일으키는데 여자가 문제겠냐고.
그런 젠이 내 움직임을 하나하나 뜯어서 개선 방향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됐다.
천외천을 마주한 기분이랄까.
[앙플라메]의 후폭풍이 아직 잦아들지 않아서 화염계 마법을 하나도 사용하지 못했다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그런 얘기를 하자 젠은 눈이 휘둥그렇게 뜨며 자기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냐고 몇 번이나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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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계 마법과 빙결계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면서, 그런 검술을 익히고 있다는 말입니까?”
“네.”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할 말이 아닙니다. 마법은 속성별 특징이 뚜렷해서 한 번 마나 하트에 색이 배어들기 시작하면 다른 속성을 익히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화염계와 빙결계 마탑이 나이누안을 그렇게 원했던 것이다.
심지어 남은 그의 마나 하트마저 탐낼 정도로.
“공력을 걸고 제 비밀을 지켜주신다고 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허어······. 생각보다 너무 큰 비밀을 들어버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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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괜찮다면 다음에도 와서 대련을 해줄 수 있겠냐고 묻는 젠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가끔 남자 좋아하는 거 아닌지 의심 갈 때 빼고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실력자임이 분명하니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신시아와 앨리스가 먼저 와 있는 것이 보였다.
둘은 타버린 내 머리칼 일부와 너덜해진 옷을 보고 놀랐다.
특히 신시아는 당장이라도 젠을 찾아가서 따질 기세였지만 젠과의 대련이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고 하자 바로 누그러들었다.
바이크를 꺼내는데, 뒤에서 둘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 지금요.”
“지금?”
“네!”
뭔가 해서 돌아봤더니 신시아가 쭈뼛대며 다가왔다.
“저······아까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보상은요······.”
“아, 역시 불편하셨죠? 야스민 공께서 신시아와 저 사이를 크게 오해하고 있으셨던 것 같아요. 없던 일로 하고 최대한 빠르게 다른 선택지를 제시하시겠다고 하셨어요.”
“그, 그, 그래요? 잘됐네요.”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표정이 상당히 기묘하다.
입가는 웃고 있는데 눈은 글썽거린다.
신시아가 후하 후하 하는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내게 말했다.
“괜찮으시면, 저랑 한강 안 가실래요?”
“한강요? 그래요.”
내 대답에 신시아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뒤에서 공중에 어퍼컷을 날리는 앨리스의 모습도 보였다.
“새로운 의뢰 하시는 거죠?”
“어······그게······네! 새로운 의뢰요!”
그 말에 앨리스가 표정을 잔뜩 뭉개고는 양손으로 뻐큐를 날렸다.
하나는 신시아에게, 다른 하나는 내게 날리고 있는 건가?
저거 저거, 소울 메이트 어쩌고 해서 좋게 좋게 봐줬더니 사장한테 엿을 날리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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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오메가 님!”
선글라스를 낀 신시아가 저 멀리 있는 오메가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둘이 있는 곳은 기계 교단 소유로 한강 위에 떠 있는 인공 부양 대지, 일반적으로 한강 기계 지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지역이다.
대림 에어리어에서 구 여의도 이상으로 발전한 곳이며, 다양한 오락 시설들이 넘쳐나는 곳이기도 했다.
한편, 야스민 가 보안팀의 협조를 받아 신시아의 선글라스를 통해 시야를 공유하는 앨리스가 통신 채널을 확인했다.
“야스민 가의 신시아 언니 담당 팀원분들. 반갑습니다. 일시적이지만 신시아 야스민과 해결사 오메가의 성공적 데이트 작전의 헤드 오퍼레이터를 맡게 된 앨리스입니다.”
야스민 가에서 파견된 경호원들이 짧게 답하자 앨리스가 작전을 알렸다.
“현 작전은 기계 교단의 헤지르 대주교 님의 협력하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기계 지구의 CCTV 확보, 지하시설 활용을 허가받았으며 긴급 사태가 발생할 시 기계 지구 내에 있는 기계 교단 성직자들의 동원까지도 가능합니다.”
브리핑이 이어졌다.
“야스민 공도 작전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으니 단 하나의 변수도 허용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그렇게 오메가와 신시아 둘은 수많은 사람이 성공적인 데이트를 위해 뒤에서 애쓰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둘밖에 들어오지 않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도 했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둘밖에 없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중간에 신시아가 인공 혈액 팩을 꺼내 마시는 모습에 오메가가 관심을 가지면서 뭔가 남녀간 꽁냥거림의 일부를 보였을 때, 앨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벅차오르는 감동을 조금 느끼고야 말았다.
사무실로 복귀한 뒤에 신시아가 했던 말이 의뢰가 아니라는 것을 듣고는 데이트를 자기가 왜 하냐는 오메가를 보고 앨리스는 들고 있던 패널로 정수리를 찍어버리고 싶은 걸 참아냈다.
야스민 가와의 좋은 관계를 위해서라는, 얼토당토않은 핑계와 하루 정도 쉬는 건 일의 효율을 늘린다는 팩트를 섞어 오메가의 입에서 그럼 그렇게 하겠다는 소리를 뽑아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당일인 오늘, 평소 머무는 공간인 건물 옥탑에서 사무실로 내려올 때 마냥 무릎 나온 추리닝과 소매가 해지다 못해 짧아 보이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기계 지구로 향하는 오메가를 불러 세워 사람 꼴 갖춘 옷을 던져준 것도 앨리스였다.
비록 데이트 내내 신시아는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채로 말을 더듬기 일쑤였고 오메가는 돌아다니는 드론과 안드로이드들에 관심을 더 가지는 것 같기는 했지만 천릿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하지 않던가.
일단 시작점을 벗어났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한 앨리스였다.
찬장을 열면 최고급 오일 샌드가 잔뜩 쌓여있는 미래, 멀지 않아 보였다.
앨리스의 행복한 미래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작은 통신 하나에서부터였다.
-헤드 오퍼레이터, 여긴 경호 1팀. 신원 미상의 인원이 찰리(Charlie: 신시아의 첫글자 C의 음성기호)와 오스카(Oscar: 오메가의 첫글자 O의 음성기호)에게 접근 중.
“막으세요. 중요한 순간입니다.”
한강을 향해 있는 벤치에 앉아 있는 오메가와 신시아는 사실 둘 다 멍 때리는 중이었지만, 일단 같이 있다는 그 무드가 중요한 법.
방해하게 놔둘 수는 없다고 판단한 앨리스였다.
하지만 통신이 급박해졌다.
-막아서던 드론 3기에서 영상이 송출되지 않습니다. 파손으로 예상됩니다.
야스민 가에서 특별히 지원받은 드론이다.
‘전장에도 투입될 만큼 내구성 좋고 튼튼하다고 들었는데 단숨에 3기나 파손이라니.’
앨리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CCTV 화면 전송해주세요. 그리고 찰리와 오스카가 알아채지 않게 지역 구성을 폐쇄적으로 전환하겠습니다.”
기계 지구는 보수와 관리의 편의성을 위해 구역별로 분리가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졌고, 각 구역은 두꺼운 판 위에 도로나 건물 같은 건축물이 올라 있었다.
그러니 판 내부의 공간을 이용하면 테트리스를 하듯 판 위의 건물을 아래로 내릴 수도 있고, 그 사이를 붙여 도로 폭을 조절할 수도 있었다.
이를 통틀어 기계 지구 지하 시설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대대적인 보수를 할 때나 사용되기에 몇 년에 한 번 정도로 사용되는 기술이지만 헤지르 대주교에게 사용을 허가받은 앨리스는 과감하게 실행했다.
그러자 오메가와 신시아가 앉아 있는 벤치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건물과 도로가 조용히 지면 아래로 사라지고, 그곳에서 격벽이 솟아올랐다.
그때쯤 부서진 드론의 마지막 촬영본이 앨리스의 시야에 전달됐다.
“뭐지?”
양다리가 길쭉한 칼날인 로봇이었다.
다리뿐만이 아니라 팔도 투명한 피부 아래로 온갖 부품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있었는데, 앨리스는 팔에 가득 달린 부품들이 변형되면 다양한 화기류로 변형될 수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리고 그것 말고도 로봇의 외양은 독특했는데, 마치 머리를 땋아 내린 듯 길게 늘어진 여러 신경다발과 어깨와 손등에 가시처럼 생긴 안테나가 삐죽 돋아있었다.
로봇의 가벼운 발차기 한 번에 드론의 화면이 깨졌다.
-신원미상체 파악했습니다.
통신과 앨리스가 거의 동시에 말했다.
“퓨전 코퍼레이션.”
원격 조종 로봇 기술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이다.
조종자와 로봇이 각각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어도 둘 사이의 관측위치오차와 시간지연오차를 제로 수준으로 줄였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위상에 비해 리더가 누구인지, 구성조직은 어떻게 되는지, 연구소는 어디 있는지 등등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극도의 비밀주의를 고수하고 있기도 했다.
몇 년에 한 번씩 내놓는 특수 임무 로봇에 대한 기술력도 굉장해서 퓨전 코퍼레이션은 아예 퇴역 전투마법사나 명가의 원로 같은 초인들을 로봇의 조종사로 섭외해서 전쟁 사업에 뛰어들었다.
초인들의 역량 100%를 끌어내지는 못하지만 직접 전장에 뛰어들 필요가 없기에 갈수록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 방식이었다.
그런 퓨전 코퍼레이션의 로봇이 오메가와 신시아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막을까요?
앨리스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여기에 호위팀이 따라왔다는 사실을 오메가와 신시아는 모르고 있다.
여기서 모습을 드러내면 그건 자연스러운 데이트라는 큰 전제 자체가 어그러진다.
앨리스는 오메가를 믿기로 했다.
“두고 보죠.”
한편, 로봇은 신경다발을 흩날리며 겅중겅중 뛰어 오메가와 신시아가 앉아 있는 벤치 앞으로 향했다.
신시아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오메가 앞에 멈춰선 로봇에게서 기계로 심하게 뭉갠 목소리가 들렸다.
“오메가, 총수님께서 네 정자를 원하신다.”
로봇의 시선이 오메가의 사타구니로 내려갔다.
얼굴을 잔뜩 구긴 채로 한 손에는 검은 기운을, 다른 손에는 녹색 기운을 끌어모으는 신시아를 제지한 오메가.
“내 정자라······.”
오메가가 영화관에서 가지고 나온 음료수를 들어 올려 빨대에 입을 대려는 순간, 로봇이 몸을 한 바퀴 돌렸다.
로봇의 칼날 다리에 햇빛이 부딪혀 산산이 부서진다.
칼날 다리는 정확히 빨대만을 베어냈다.
매끄러운 절단면을 보이며 잘리는 빨대.
빨대에서 튀어 나간 음료수 몇 방울이 신시아에게 튈 뻔했지만, 오메가가 손을 뻗어 막았다.
손을 털며 일어선 오메가가 로봇을 향해 말했다.
“그래서, 가자고? 지금?”
“그렇다.”
“하나만 물어보자.”
그리하라는 듯 오메가를 응시하는 로봇의 렌즈.
“너네 총수라는 사람. 이쁘냐?”
로봇도, 신시아도 할 말을 잃고 잠깐의 정적이 사이에 내려앉는다.
그 잠깐의 순간, 어느새 오메가의 손에는 칼자루가 들려있다.
[발도拔劍 - 찰나지간刹那之間]
눈 깜빡하기도 짧은 시간 동안 로봇의 머리통을 향해 전개와 역전개를 마친 검을 다시 허리춤에 꽂은 오메가가 중얼거렸다.
“대답이 늦는 걸 보니 이쁘지는 않나 보네.”
쉴드가 깨지고 머리통의 절반이 날아간 로봇에게서 스파크가 튀었다.
“이게······어떻게······.”
비틀거리는 로봇의 단말마.
그런 로봇을 발로 슬쩍 밀어 쓰러트린 오메가는 신시아를 향해 말했다.
“데이트가 이렇게 좀 스펙타클한 맛도 있으니까 좋네요.”
신시아의 선글라스에 연결된 앨리스의 시야 일부가 미친 듯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신시아 언니, 분명 아무말도 못하고 얼굴 새빨개져서는 고개만 끄덕이고 있나 보네.’
앨리스는 최고급 오일 샌드가 가득 찬 방에 한 걸음 다가가는 것을 느꼈다.
작가의 말
1.
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유료화 첫날 수치가 나왔습니다.
독자님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모두 가내 평안하시고, 적게 일하시고 돈은 많이 버시길 기원하겠습니다.충성충성!
2.
43,44,45화의 소재 선택에 관해서는 사실 지금도 조금은 무모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에피소드와는 다르게 호흡이 잔잔한 에피소드였으며, 주인공이 부각되는 에피소드가 아니고, 주인공의 활약도 이전에 비해 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독특한 세계관의 글임에도, 그 안에서 인간성을 지닌 존재들이 만들어가는 가치가 있음을 꼭 한 번은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3연참도 약속드렸고 하니, ‘이걸 한번에 풀어서 깔끔하게 3화짜리 에피소드로 적자!’라고 생각한 게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독자님들께서 처음 구매해주시는 글인데 실망하실까봐 수정을 거듭거듭거듭거듭 했었는데 다들 좋게 봐주신 것 같아서 제 마음도 좋아졌습니다.
3.
야스민 일가의 캐릭터성의 구상은 모두 5분 안쪽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분명 앞에서 젠이 동자공 익힌 흡혈귀라고 신시아가 설명하는 장면을 넣었는데 등장 이후에 ‘설마 진짜 그럴줄은 몰랐다’면서 즐거워하시는 독자님들을 보는 저도 즐거웠습니다.
둘째 레비도 등장시키고는 싶지만 폐관 수련중이라 아마 등장이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4.
여기서부터는 마도공학 경매 에피소드로 이어집니다.
5.
1권 후기 때는 그전까지 과묵함을 유지하고 있다가 떠들기 시작해서 뭔가 할 말이 되게 많았던 것 같은데요.
제가 그 이후로 작가의 말에 하도 떠들어댄 덕에 여기서는 그때처럼 길어지지는 않을 것 같군요.
6.
골드 이벤트 추첨은 3월 15일에 이루어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마 제게 결과가 전달되면 공지를 작성해 드리겠지만, 문피아 계정으로 발송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7.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설정과 세계관의 참신함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참신하면서도 내실있는 글을 쓰도록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모두 좋은 저녁 보내시고 내일 같은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