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
048.
“그 말, 책임질 수 있나?”
나를 향해 쏘아지는 야스민 공의 말이 매섭다.
“보석 박힌 풍뎅이를 봤습니다. 그 물건, 풍뎅이 말고 다른 모습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걸 아시는지 모르겠군요.”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의 말만 하는 게 좋다는 충고를 하고 싶은데.”
야스민 공은 내게 지긋지긋한 소리를 또 듣는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긴, 이런 비슷한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겠나.
네오-서울의 초 거물이 관심 가지는 예술품.
연원도, 작동원리도 규명되지 않았으며 유적지에서 아주 적은 수만 출토된다고 한다.
사기꾼들이 물기 딱 좋은 건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기꾼들과 다르다.
‘진짜’니까.
“보여 드리죠. 보석 풍뎅이가 있는 곳으로 가서 보여 드리면 되겠습니까?”
야스민 공이 입술을 굳게 닫고 나를 응시했다.
그러기를 1분 정도 지났을까, 그가 고개를 떨구고 스스로에게 탄식했다.
“젠장. 마도공학만 걸려 있으면 감성이 이성을 앞서는군. 이래서 나눠놓은 자아를 합치면 안 됐는데.”
아무래도 내가 야스민 공을 공략할 포인트를 제대로 잡은 것 같다.
야스민 공은 손에 낀 반지를 돌려 레이먼드를 호출했다.
“레이먼드, 자색 갑충을 들고 내 서재로 와 주게.”
서재에서도 쓰리피스수트를 갖추어 입은 미중년의 남성이 반지에 대고 말하는 모습에서 굉장한 멋이 풍겨 나왔다.
‘저런 형태의 통신 디바이스도 있구나.’
귀걸이 형태는 조작하고 바로 말하면 되지만 반지 형태는 입 가까이 가져다 대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 보이긴 했다.
하지만 또 불편함이 클래식이 된다면 그것 또한 느낌 있지 않나.
물론 모델이 야스민 공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다.
내가 반지에 대고 중얼거리고 있으면 미친놈 소리를 듣거나 나이가 몇인데 보석 반지 빨아먹고 있냐는 앨리스의 잔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
호출을 마친 야스민 공에게 말했다.
“좀 다른 얘긴데······아까 저건 뭐고, 어떻게 하신 거고, 왜 하신 겁니까?”
내 눈이 향하는 곳은 조금 전, 많은 야스민 공들이 모여들어 하나로 합쳐졌던 관과 같은 모양의 침대였다.
“정식 명칭은 없고 내 개인적으로는 자아 형상화 장치라고 부르고 있네.”
“자아 형상화 장치요?”
내가 그 물건에 관심 가지는 게 기쁜지 야스민 공은 날카롭게 나를 몰아붙이던 아까와는 정 다른 모습으로 침대 곁으로 가서 내게 가까이 와보라는 듯 손짓을 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침대 옆에 놓여 있는 모자를 들어서 보여주었다.
검은색 비니처럼 생겼지만, 야스민 공이 뭔가를 조작하자 비니에서 수십 대의 초소형 드론이 부웅 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하나하나가 홀로그램 재생기지. 아까 자네가 본 내 자아들은 모두 홀로그램이라네. 그동안 나는 여기 누워서 자아들의 컨트롤센터가 되는 거고.”
“신기하네요. 그런데 왜 이런 걸 하고 계신 거죠?”
“자아라는 건 굉장히 두루뭉술한 집합체거든. 게다가 감정도 섞여 들어가면 매우 복잡해지지. 이런 복잡함 속에 섞여드는 불확실성은 중립을 해치고, 그 가운데 발생하는 확증편향 때문에 올바른 방향의 투자를 할 수 없게 되면. 그건 치욕적인 일이라 할 수 있지 않겠나?”
투자 얘기가 나오자 열변을 토하는 야스민 공이었다.
“그래서 아예 다양한 감정과 자아를 하나의 인격체로 형상화 시켜서 최적의 방향을 잡아내자는데 결론이 이른 것이지. 이 장치는 그 결론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고.”
대충 이해하기로는, 투자하는데 다양한 감정들이 방해되니 그걸 극복해 낼 방법을 찾다가 아예 감정과 자아의 일부를 사람처럼 만들어서 토론 시켜 사안에 대한 다각도의 시야를 확보한다는 것 같다.
“오······. 하지만 그렇다면 투자를 알고리즘이나 머신에 맡기면 되는 것 아닌가요? 아예 감정 개입을 하지 않게요.”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가 그 광기를 이해하지 못해 연산 회로가 다 타버린 안드로이드 얘기는 이제 기삿거리도 되지 못하네. 시스템 트레이딩은 손실을 최소화해주겠지만 다양한 현안에 대한 대응력은 부족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그리고 모자를 툭툭 두드리며 야스민 공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런 건 3가지만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네.”
“그게 뭐죠?”
“돈, 수명, 도전정신.”
보통 사람들은 셋 중에 하나만 많아도 썩 괜찮은 인생이라고들 하는데요.
혀끝을 넘어 입술 끝까지 맺힌 말이었지만 괜히 나서서 말꼬리를 잡지는 않았다.
그때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레이먼드가 들어와 들고 왔던 유리 쇼케이스를 야스민 공의 책상에 놓고 나갔다.
쇼케이스 안에는 여전히 풍뎅이가 발발거리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 젠의 안내를 받을 때 내가 이 풍뎅이 앞에서 멈춰서서 말을 잃었던 이유.
이 풍뎅이가 서리얼에서 너무 흔해 빠진 ‘아이템’이었기 때문이었다.
집 꾸미기, 흔히들 하우징 시스템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집 주변에 풀어놓는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형태만 보면 지루하다는 이유로 여러 형태로 바뀌게 만들어 놓았다.
“헛짓거리할 생각은 하지 않길 바라네.”
그렇게 말한 야스민 공이 쇼케이스에 손을 대자, 다양한 색의 스파크와 일렁임이 일어나더니 곧 아무 일도 없이 잠잠해졌다.
“보안 장치들을 해제했으니 안에 손을 넣어서 스스로 했던 말을 증명하게.”
야스민 공이 작게 열어둔 쇼케이스의 구멍 사이로 거침없이 손을 집어넣어 풍뎅이를 조심스럽게 쥐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이템’들 중 몇몇 개가 남아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고, 건드리면 작동을 멈추는 모양.
그런데 그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연구랍시고 해체하려고 했을 텐데, 그건 아이템 분해와 같으니 당연히 멈추거나 사라지는 거지.
이제 내가 하려는 건 잡기술 측에도 못 낀다.
하우징 시스템을 이용했던 사람이라면 집을 예쁘게 꾸미기 위해 누구나 가졌던 스킬이다.
아마도 지금은 나밖에 못 쓰는 것 같지만.
[하우징 장식물 변형]
내 손등 위에 3이라는 숫자가 떴다.
쇼케이스에 들어갈 것처럼 머리를 붙이고 있던 야스민 공이 외쳤다.
“어, 어떻게 한 건가!”
그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말했다.
“횟수는 3번 남았습니다. 나비를 좋아하십니까? 아니면 귀뚜라미를 좋아하십니까?”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는지 야스민 공은 턱을 벌린 채 으어어하는 소리만 내고 있었다.
“귀뚜라미로 하죠. 좋은 소리가 날 겁니다.”
손등 위의 숫자가 2로 변하고, 손등이 아래로 가게 주먹을 쥔 다음 천천히 손바닥을 펼쳤다.
얼굴이 자주색 보석으로 만들어진 귀뚜라미가 날개를 비빌 때마다 청명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런 세상에! 풍뎅이가 귀뚜라미가 됐어!”
야스민 공이 황급히 레이먼드를 호출했고, 나는 레이먼드에게 아주 정중한 태도로 몸수색을 당해야 했다.
풍뎅이를 숨기고 다른 걸 꺼내놨을 수도 있으니 정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절차라는 야스민 공의 말을 수 십 번이나 들으면서.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야스민 공의 눈은 계속해서 날개를 떨어대는 귀뚜라미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본인도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풍뎅이의 형태를 바꿨음을.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야스민 공에게 전해지는 레이먼드의 말.
레이먼드가 나갈 때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야스민 공이 한마디를 했다.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인데······.”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저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요.”
“다른 마도공학품도 똑같이 할 수 있는 건가?”
관계는 역전되었다.
최대한 어리숙하면서도 능글맞은 티가 조금은 배어 나오도록 말끝을 늘였다.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날카로움 같기가 칼보다 더 예리한 야스민 공이다.
그는 바로 본론으로 향했다.
“내게 묻고 싶은 게 뭔가.”
여기서 순순히 응하면 하수다.
조금 더 애타게 만들어도 좋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도 같습니다.”
벌떡 일어선 야스민 공이 내게 원망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이러긴가?”
그렇게 몇 번이나 딴청을 피우니 이제 야스민 공의 시선이 나와 귀뚜라미 사이를 몇 번이나 오갔다.
늘 부탁받는 위치에만 있어 본 사람이 부탁하는 입장이 되니 미치려는 것이다.
그런데 튕기는 사람이 자신이 제일 관심 있고, 아끼는 것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어떻게 할 수도 없어서 답답해서 가슴에 불이 날 지경일지도 모르겠다.
‘이쯤 하면 건성으로 알려주지는 않겠어.’
크흠하고 목청을 가다듬은 뒤 드디어 야스민 공에게 본론을 말했다.
“예공방의 상무인 수연, 그리고 그녀와 관련이 있는 것 같은 남자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네오-서울의 은밀한 곳에서 뭔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고, 그것에 대해 가장 잘 알만한 사람이 야스민 공이 아닐까 해서 찾아온 겁니다.”
“들어보겠네.”
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여전히 귀뚜라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야스민 공의 눈길이 점차 내게로 옮겨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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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민 공이 지닌 정보의 범위와 양, 품질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었다.
헤지르 대주교가 야바니에르라는 것도 알고 있었으며, 성당 지하에서 거대한 공장이 돌아가고 있는 것도 알았다.
그게 기계화 좀비라는 것은 조금 나중에 알았다고.
“그걸 어떻게 아신 거죠? 내막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죽었을 건데요.”
“성당 지하에서 밖으로 향하는 걸로 추정되는 환풍구에서 배출되는 연기의 성분이 달랐으니까. 그리고 사령술협회가 신시아의 부탁을 그렇게 쉽게 들어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내가 고개 좀 까딱 한 거지.”
내가 열심히 뛰어다닐 동안, 이 흡혈귀는 서재에 앉아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셈이다.
“다만, 대림 에어리어 26구역의 폐교에 관련된 내막은 나도 처음 듣는군. 테오릭이 와서 제대로 정신 박힌 녀석 하나를 발견했다고 했을 때만 해도 호들갑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테오릭 경은 주변에 나를 그렇게 말하고 다니고 있었구나.
내가 지금까지 겪은 테오릭 경이나 그의 제자인 여다함을 봤을 때, 테오릭 경이 말하는 ‘제대로 정신 박힌 녀석’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마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그들과 비슷한 무언가로 생각하겠지?
잠시 우울해질 무렵, 야스민 공이 하는 말에 정신이 확 들었다.
“수연. 나도 요새 주의 깊게 보고 있었지. 출신을 전혀 알 수 없는 데다가 예공방 내의 영향력은 사장을 능가하고 있어. 게다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제법 규모 있는 자금을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손을 들어 귀뚜라미가 든 유리 쇼케이스를 쓰다듬는 테오릭 경이었다.
“예공방의 이사 말고도 다른 일을 하는 걸로 보이는데, 주로 PMC나 용병 회사의 자문이나 사외이사를 맡고 있더군. 그리고 몸이 모래처럼 부서진다는 남자. 그런 특징을 가진 이들이 몇몇 있어서 쉽게 특정하기는 어렵군. 각자의 뒷조사를 해서 수연과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 쪽을 특정해 알려주지. 어때, 이 정도면 되겠나?”
깔끔하고 완벽한 일 처리.
찾아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스민 공이 중얼거렸다.
“요새 방계의 사업장 몇이 망가졌다는 소리가 있던데 그것도 그쪽 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
“일단은 저도 그쪽과는 감정이 좋지 못한지라, 혹여 트러블이 생기거든 먼저 찾아주시면 바로 달려오겠습니다.”
그렇게 부드럽게 영업 멘트를 쳤더니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반응이 돌아왔다.
정색한 야스민 공이 내게 말했다.
“무슨 소리, 자네 같이 귀하디귀한 고급 인력을 그런 데 쓸 수는 없지.”
아까는 사기 치는 쓰레기면 어떻게 할지 각오하라고 으르렁거리더니 풍뎅이를 귀뚜라미로 바꿔줬다고 귀하디귀한 고급 인력이란다.
기분이 오묘하긴 했지만 어쨌든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은 건 분명했다.
“요새 이름값이 올라서 들어오는 의뢰가 많다지?”
“예. 회합 호위에 이름을 올린 덕이죠.”
예의상 한 말인데 야스민 공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린다.
나를 빤히 바라보고 하는 말도 혼잣말이라고 할 수 있나?
“맞아. 그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허락한 내 덕이지.”
“틀린 말씀...은 아니죠.”
“그러니 의뢰 하나 더 발주하겠네. 최우선으로 해야 할 걸세.”
저기······우린 그걸 의뢰가 아니라 강압, 혹은 갑질이라고 부르기로 약속을 했어요.
일종의 사회적 합의랍니다.
그걸 그렇게 쉽게 의뢰라고 하면 안 돼요.
그러거나 말거나 야스민 공은 내게 의뢰를 발주, 아니 선언했다.
“3주 후, VVIP를 대상으로 하는 마도공학 경매가 있네. 내 대리인으로 참여해주게.”
VVIP, 마도공학, 경매.
단어를 떼어놓고 봐도 아찔하게 황홀하고 조합하면 황홀하게 아찔하다.
이건 안 하는 게 멍청한 거다.
강압? 갑질?
명심해, 커머라시 야스민.
이런 강압과 갑질이라면 나는 언제든 환영이야.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한다.
“감히 여쭙습니다만, 의뢰의 보상으로는 어떤 것을 주실 수 있으실지요?”
이어지는 야스민 공의 말에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신시아와의 결혼을 허락하겠네. 그리고 특별히 가문의 성을 내리지. 오메가 야스민이 되는 걸세. 또, 자네가 원한다면 흡혈귀가 되지 않아도 좋네. 참고로 야스민의 성을 사용하면서 흡혈귀가 아닌 자는 전 세계에 단 하나도 없네. 자네가 유일해지는 거야.”
와······.
대체 어디부터 지적해야 하는 건지 감도 안 잡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