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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41화 (42/258)

041.

041.

[풍선 주먹]

스킬 이름 그대로다.

그저 주먹의 크기만을 부풀리는 스킬이다.

강한 타격이나 물리력 등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는 말.

하지만 이 스킬을 사용한 건 이유가 있었다.

진오가 몸을 부풀리는 것을 보고 라이시가 대번에 거신족이라는 말을 흘렸기 때문이었다.

간단히 생각해서 몸을 크게 만드는 방법은 아주 많다.

약물을 섭취하거나 투여하는 방법, 마법으로 몸을 크게 하는 방법, 혹은 신체 내부에 특수한 수술을 해서 뼈와 근육을 가능한 크고 길게 늘이는 방법, 강신등을 통해 일시적으로 몸을 크게 하는 방법 등등.

이 세계관에서는 어떤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적당히 말이 된다.

하지만 라이시와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그런 가능성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았다.

마치 원래부터 그래야 했던 것처럼 다같이 거신족을 입에 올렸다.

실제로 거신족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이 없음에도.

옛 주인의 재림이라는 대군장의 예언과, 근방에 있는 거대한 소가 거신족의 발자국이라는 설화가 만들어낸 일종의 집단 암시다.

이미 약에 취한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이런 ‘겹치는 우연’은 마치 운명이나 필연처럼 받아들여져 마음속에서 의심을 제거하게 된다.

‘대군장과 진오가 노린 것도 이런 효과였겠지.’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거신족의 이미지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거대함’이다.

나는 그런 거대함에 더 거대한 강함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암시를 거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어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비록 내가 실제로 진오를 때리는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이게 무슨······!”

자신을 향해 올려 치는 거대한 주먹에 진오가 나를 내리치려던 것을 그만두고 바닥에 몸을 굴렀다.

‘먹혔다!’

손 크기를 원래대로 돌린 후에, 진오를 향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게 거신족의 주먹이지.”

“같잖은 술수를 쓰는구나.”

“네 덩치를 숨겨주는 그 가면이 진짜 술수지.”

근처의 누군가가 외쳤다.

“마, 맞아! 거신족은 너무 거대해서 신체의 일부만 보인다고 했어!”

“저건 거신족이 아니야! 외골격을 입거나 거대화 주술을 사용하면 저 정도 크기가 될 수 있어!”

“하지만 저 주먹은······.”

시선이 내게 모였다.

거북이 수인이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먹 크으다. 주먹 밖에 안 보여어어.”

내 뒤편에 있던 라이시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진······짜 거신족의 주먹.”

대군장의 이파리가 떨렸다.

무언가 말하려고 했으나 아직 박혀있는 검을 한 번 더 쑤시며 엄포를 놓았다.

“가만있어. 긴 삶을 숯으로 마감하고 싶지 않으면.”

지금 화염계 마법을 쓸 수는 없지만, 뭐 어때.

나만 아는데.

협박이 먹힌 것인지 대군장의 흔들림이 멈췄다.

주위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들으셨겠지만, 저놈은 리벨리온의 진오입니다! 예공방 대림 생산기지의 테러를 자행한 놈이고, 서해 권역의 인공 섬을 점령한 테러리스트이기도 합니다! 흡혈귀 회합의 방해는 핑계일 뿐이고, 사실은 프로이데 마탑의 영향력을 줄인 뒤 계룡 권역을 리벨리온의 영역으로 만들 생각이었을 겁니다! 여러분의 의사 따위는 관계 없이요!”

웅성임이 커졌다.

이를 부드득하고 갈아낸 진오가 내게 말했다.

“그게 어때서. 힘없는 자들이 뭉쳐서 목소리를 내는 것뿐이다.”

나는 그런 진오를 향해 일말의 동정 없는 싸늘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수백 정도는 우습게 죽을 수도 있는 이런 방식이? 말은 똑바로 해. 네 분노와 복수심 때문에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가는 거야.”

“닥쳐라.”

“하나 더 알려줄까? 너는 네가 엄청난 일을 하는 줄 알겠지만, 장기 말도 못 되는 것 같더라. 나이누안과 셀티스가 왜 죽었는지 알아?”

“감히 그 이름을!”

진오가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이 건틀렛으로 변형됐다.

예공방 도난 물품 리스트에서 봤던 물건, 부스트 건틀렛.

충격파를 날려 보내거나, 직격한 물체를 내부에서부터 폭발시켜 피떡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위험 무기였다.

얼굴에 핏대가 잔뜩 선 진오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내가 서 있는 대군장의 몸 위를 강타했다.

뿌드드득-

박혀있던 검을 역전개하며 회수하는 것과 동시에 [미끄러지기]를 통해 몸을 뒤로 피했고, 진오의 손에 둘러진 부스트 건틀렛에서 충격파가 발생하더니 대군장의 몸통 일부를 박살 냈다.

튀어오르는 파편 중에는 슈퍼컴퓨터의 것으로 보이는 부품들도 여럿이었다.

“대군장님!”

라이시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경악했지만 지금 그들에게 신경 쓸 틈은 없었다.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충격파를 날려 보내는 진오에게 온 힘을 다해 외쳤다.

“널 죽여서 좀비로 만들고 싶어하는 놈들이 학교를 습격한 거다! 너는 살았지만 나이누안과 셀티스, 그리고 아이들은 죽었지!”

“거짓말!”

“믿는 건 네 자유다. 하지만 말하는 것도 내 자유지.”

[회피의 춤]

날아오는 충격파 하나를 우아한 스텝으로 빗겨냈다.

[축지]

진오에게 불쑥 다가섰다.

부스트 건틀릿이 철커덕거리며 새하얀 김을 내뿜는 것이 생생하게 보였다.

칼자루를 빠르게 두 번 비틀었다.

여기 있는 사람 중 내가 전개형 기계식 검을 쓴다는 것을 확실하게 눈에 담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사재시 매사필종]

서걱-

빛의 칼날이 커튼처럼 내려지고, 내 상체 정도는 될 크기의 진오의 손목이 그대로 절단되어 바닥을 구른다.

놀랄 법도 하건만, 진오는 아직 멀쩡한 손을 들어 나를 뭉개려 했다.

[연하일휘]

몸을 급격히 틀어야 했기에 진오의 반대편 손을 완벽히 베어내지는 못했다.

긁어내듯 부스트 건틀릿 위를 지나친 검 뒤로 부품과 파편이 마구 튀었다.

“그 검······! 샴록에게 들었다. 오메가인가.”

분노에 가득 찬 진오의 음성.

재빨리 물러나 검을 역전개하며 대꾸했다.

“지금은 알파라니까.”

대군장은 몸통이 반파되었고, 진오는 손목 하나를 잃었다.

진오 스스로 자신이 리벨리온인 것과 사람들을 모은 이유도 말했으니 이제 이 자리를 정리만 하면 된다.

그때,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시부엉- 시부엉-

고개를 들자 거대한 새가 머리 위를 선회하고 있었다.

구스타보 영감의 유전자 변형 생물 중 하나인 시부엉새가 분명했다.

시력 좋고, 움직임 조용하고 해서 정찰용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 묘하게 기분 나쁜 저 울음소리가 단점이다.

시부엉- 시부엉-

분위기 상 프로이데 마탑에서 이곳에 접근하기가 어려울 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얼추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구스타보 할아범이 새를 보낼 정도라면······!’

갑자기 등골이 서늘했다.

시부엉새가 선회하고 있는 곳에서 조금 더 먼 곳, 프로이데 마탑이 있는 방향에서 거대하고 흰 무언가가 고고하게 공중을 유영해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페테르였다.

“좆됐다. 진짜로.”

백린연막탄을 쏟아붓지 않더라도, 페테르가 여기 내려앉아 좌로 굴러 우로 굴러 한 바퀴만 해도 초토화가 될 상황.

사람들도 페테르를 보고 정신이 나가기 시작했다.

“백린이다! 백린이 날아온다!”

“도망쳐! 프로이데에서 우리를 다 죽일 셈이야!”

고개를 내려보니, 진오는 잘린 손목과 함께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옛 주인 어쩌고 하더니 도망가는 건 뒤지게 빠르네.”

라이시가 내게 달려와 외쳤다.

“이거 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우린 이제 다 죽는다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게 지금 할 말이에요? 알파 씨 때문에 벌어진 일이잖아요!”

“대군장이 절 먼저 공격했어요. 보셨잖아요.”

“······.”

“가서 페테르한테 사정을 말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너무 높단 말이지······.”

패닉에 빠져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비켜! 비키라고!”

볼드가 디즈를 태우고 우리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내 옆에 멈춰선 디즈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이게 무슨 난장판이죠? 대군장은 왜 저꼴이 된 거고······. 아니, 이게 아니라. 백린이 날아오는 걸 보고 바로 알파 씨를 찾아왔어요.”

“저를요?”

“네. 알파 씨는 짐을 프로이데 마탑에 풀었으니까 알파 씨 말이라면 백린도 들어주지 않을까 해서요.”

과정은 좀 다르지만, 결과는 내가 생각한 것과 동일했다.

“그런데 어떻게요? 백린은 너무 높이 있어요.”

볼드 위에서 내린 디즈가 나를 밀어 올렸다.

“볼드 위에 타세요. 얼른.”

“네?”

내가 엉거주춤 올라가는 사이, 라이시가 디즈에게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디즈, 설마 볼드를 그 형태로······?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잖아. 난리가 날 거야.”

“어쩔 수 없어, 라이시. 욕은 내가 먹으면 돼.”

그리고 나를 향해 단단히 당부하는 디즈.

“꽉 잡으세요.”

“뭘요?”

디즈가 온 힘을 다해 볼드의 꼬리를 걷어찼다.

“볼드! 진화다!”

꾸워어어어어-

울음소리를 크게 한번 내지르더니, 볼드의 등과 옆구리가 갈라지며 안쪽에서 뼈와 얇은 피막이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익룡과도 같은 날개 4개가 솟아난 볼드.

켄타우루스인 라이시의 등에 올라탄 디즈가 나를 향해 말했다.

“백린을 말려주세요! 부탁해요!”

디즈를 태운 라이시가 멀어지는 것과 동시에 볼드의 날갯짓이 시작됐다.

후욱- 후욱-

거대한 날개가 몇 번 퍼덕거리더니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아래 모인 사람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 머리 위를 천천히 선회하는 볼드는······푸드득거리며 똥을 뿌렸다.

아비규환이 된 아래쪽의 절규가 내게 들렸다.

“으아, 시발! 똥 폭탄이야!”

“생화학 공격이다! MOPP 4단계! MOPP 4단계!”

“디즈 미친놈아! 뭘 만들어 타고 다니는 거야!”

“피부가 벗겨진다! 뭘 처먹고 뭘 처 싸길래 이 정도 독성이! 또라이 리자드맨 새끼! 죽인다!”

라이시와 디즈가 재빨리 멀어진 이유가 이거였나······.

한편, 안에 있던 것을 배출해서 몸이 가벼워진 것인지 볼드의 움직임에 속도가 붙었다.

빠르게 상승한 덕에 외골격을 전개한 페테르의 곁에 붙을 수 있었다.

“페테르!”

움푹 패인 거대 용의 안와에 푸른 빛이 들어오더니 나를 스캔했다.

기계음 섞인 페테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메가. 안 보이더니 이런 곳에 있었나.”

“계곡으로 가시는 거죠?”

“그렇네. 대군장이 본신本身을 드러내고 리벨리온의 인물로 추정되는 놈이 하나 나왔다고 해서. 회합에 방해가 될 수도 있지 않나.”

“아래쪽은 거의 패닉이에요! 제가 해결할 수 있으니까 개입을 조금 늦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면 이 형태만이라도 원래대로 돌아와 주세요!”

“흠······. 아래쪽의 긴장 상태가 보통이 아닌 것 같던데, 괜찮겠나?”

당신 때문에 그 긴장 상태가 폭주하고 있다고요.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하지.”

“감사합니다.”

“자네는 믿을만한 친구라고 헤지르가 그랬거든. 나는 헤지르를 믿으니 자네 역시 믿어보겠네.”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 정말 다행이다.

한 가지 부탁을 덧붙였다.

“저랑은 잘 모르는 척해주세요. 특히 제 이름은 말씀하시지 말고요.”

볼드와 함께 계곡의 소로 내려오는 것과 거의 동시에 용인으로 변한 페테르의 신형이 내 옆에 내려섰다.

계룡 권역의 공공 집행자로 보이는 몇몇이 페테르와 눈인사를 나누는 것이 보였다.

쓰러진 대군장을 뒤에 둔 채, 나는 모두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모두에게 급작스러운 상황이라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여러분들께서 목격한 것은 일체의 진실입니다. 정체를 숨기고 옛 주인을 자처하던 사람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예언도 좋지만, 저는 여러분들 한명 한명 스스로가 계룡 권역의 주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방이 조용해졌다.

손을 등 뒤로 돌려 검이 잘 숨겨져 있는 것을 확인한 뒤에 말했다.

똥범벅이 된 사람들에게 진지한 얘기를 하려니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저는 알파라고 합니다. 디즈 씨를 보호하기 위해 파견된 사람입니다.”

웅성거림이 있었으나 곧 잦아들었다.

“저는 여러분의 편이 아닙니다. 하지만 프로이데 마탑의 편에 서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제 3자의 입장에서 여러분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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