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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33화 (34/258)

033.

033.

묵힌 변이라도 내려보낸 듯 시원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여다함과 함께 신시아와 일리아나가 있는 곳으로 복귀했다.

일리아나가 여다함을 향해 나무라듯 말했다.

“뭐야, 그런 게 있었으면서 왜 말을 안 했어.”

“빨리 가자고 재촉하기만 했잖습니까. 방금의 만천화우는 예열이랑 방열이 중요해서 움직이면서는 못 펼칩니다.”

“그래? 어쨌든 좋은 구경 했어.”

선글라스를 코끝에 걸친 일리아나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보기에는 앨리스 정도 되는 조그마한 소녀인데, 눈빛이 깊고 심오했다.

수연 상무, 그 이상이다.

그때 수연이 했던 것처럼 나를 유혹한다거나 하는 정도가 아니다.

내 미동, 눈빛, 숨결 하나하나를 다 뜯어내어 해체당하는 느낌.

일리아나라는 흡혈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쉽사리 짐작되지 않지만 하나 확실하다.

강하다.

어쩌면 그에 더해 교활할지도 모른다.

“고모님······.”

신시아가 일리아나를 말리고 싶어 하는 눈치지만 차마 개입하지는 못했다.

그 사이, 선글라스를 슥 올리고 입가에 미소를 띄우는 일리아나.

“네가 오메가냐?”

“그렇습니다.”

“웬 듣도 보도 못한 놈이 야스민 가의 호위로 온다길래 그런 놈을 골라온 신시아가 미친 건 줄 알았다. 허용한 커머라시도 드디어 노망이 도졌나 했고. 헌데 제법 쓸만한 것 같구나.”

그 말에 신시아의 뺨이 발갛게 물든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래야지.”

말을 마친 일리아나가 프로이데 마탑의 정민을 부른다.

“언제까지 밖에 세워둘 셈이냐?”

자연스러운 하대.

하지만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품격과 위압감은 마치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위로 모시겠습니다.”

이제 보니 정민의 가슴에 새겨진 프로이데 마탑 문장이 곁의 다른 이들과 조금 다르다.

페룬 마탑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정민도 프로이데 마탑의 마탑주인 라벤느의 직계 제자인 모양.

신기해서 흘끔거리고 있으니 신시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왜 그렇게 보세요. 오메가 님도 역시 사령술사보다는 마법사가 낫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런 생각 안 했습니다. 저분도 직계 제자인가 해서 본 거예요.”

“정민. 유명하죠. 나이는 어리지만 실력이 굉장하대요. 혹자들은 차차기 프로이데 마탑주로 정민을 지목하기도 해요. 나이만 조금 많았으면 차기로도 손색이 없다고도 하고요.”

우리는 계속해서 산 위로 올라갔다.

피부에 와서 닿는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뭔가 느낌이 다르네요. 뭐랄까. 조금 상서로운 느낌?”

“그 느낌 때문에 계룡 권역에는 심령주의자나 샤먼들이 자리를 많이 잡고 있어요. 그들이 만들어놓은 유골탑이나 토템들도 흔하게 보인다고 해요. 이런 곳에 자리 잡은 프로이데 마탑이 특이하다는 말들을 많이 해요.”

“오호······.”

“드루이드들도 많죠. 오죽하면 계룡 권역을 두고 자연주의 권역이라고도 하겠어요.”

그 좋은 권역 외곽에서는 접근하는 흡혈귀들을 조지기 위해 어마무시한 화력이 퍼부어지고 있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다.

그렇게 산 중턱부터 마치 산성 같은 형태로 이루어진 프로이데 마탑에 도착했다.

페룬 마탑은 하나의 거대한 탑이었다면, 이곳은 중형 건물 몇 개를 중심으로 작은 건물이 붙어있는, 마치 적당한 규모의 마을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중턱을 넘어 정상에 도착하자, 마치 천문대처럼 위쪽이 둥그런 건물이 하나 있었다.

오른쪽과 왼쪽의 균형이 살짝 안 맞아 보이는 것이, 일부러 이렇게 설계한 게 아니라면 아마 이 건물이 테오릭 경이 난입해 골조를 틀어버렸다는 그 건물일 것이다.

건물 앞에는 쪽진 머리가 인상적인 초로의 여인이 나와 있었다.

“어서 오시죠. 프로이데 마탑주, 라벤느입니다.”

“반갑습니다.”

“말씀들 잘 나누다 가실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곁에 있는 제자에게 흡혈귀들을 안쪽으로 모시라고 말하는 라벤느였다.

흡혈귀들 앞에서 싱글벙글하던 라벤느가 여다함을 보고 얼굴이 싹 바뀌었다.

“테오릭 그 미친 늙은이는 잘 있냐?”

“스승님 건강 상태로 봐서 지금부터 200년은 사실 것 같던데요.”

“끔찍하군.”

잘 넘어가나 하는 순간, 여다함이 라벤느를 긁었다.

“이번 회합 호위 중에 프로이데 마탑 인원이 있던가요?”

순식간에 라벤느의 눈이 도끼눈이 됐다.

프로이데의 마법사 중에서는 흡혈귀에게 호위로 선택받은 자가 없다.

“그깟 흡혈귀 회합의 호위 좀 됐다고, 감히 내 앞에서 유세라도 부리는 거냐?”

“그깟 회합 유치하시려고 들인 공이 어마어마하시던데요. 몰래 상해까지 오셔서 로즈 가에 들르셨죠? 소문 다 났습니다.”

“그, 그건 프로이데 마탑의 상해 지부 투자 컨소시엄 건으로······!”

그 말에 여다함의 얼굴에 있던 웃음기와 능글맞음이 사라졌다.

“상해에는 저희 페룬이 있는데, 어째서죠? 더러운 짓 하던 칭롱과 후포아를 치워놨더니 그제야 상해가 좀 맛있어 보입디까?”

페룬에서는 프로이데의 상해 권역 진출이 거슬렸던 건가.

장갑차 안에서 패널에 힘껏 정권을 갈길 때만 해도 장난을 치고 싶어 어쩔 줄 모르던 여다함의 표정이 지금은 먹잇감에 손을 대는 하이에나를 쳐다보는 사자처럼 사납다.

이런 얼굴을 하고 다른 마탑에 컨테이너를 들어서 처박았다고 하면 나라도 보상 소리는 혀끝에도 못 올리겠다.

“프로이데에서 해외 지부를 세우는 건 제가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하지만 상해에 들어올 예정이라면 저희도 가만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게 말한 여다함의 시선이 살짝 비틀어진 건물로 향했다.

저거, 테오릭 경의 작품 맞구만.

테오릭 경은 제자도 참 자기랑 비슷한 사람을 용케 골라다 키웠구나.

자기 할 말을 마치고는 건물 안으로 사라지는 여다함.

“저, 저 싹퉁머리 없는 놈!”

여다함의 뒷모습을 향해 한바탕 화를 낸 라벤느가 마침내 나를 바라봤다.

“해결사 오메가······. 나이누안의 원령을 처리했다지?”

어째 내게 향하는 눈빛이 복잡하다.

의심, 의문, 미덥지 않음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잔뜩 섞인 눈빛이다.

“그 녀석의 마나 하트만 내 손에 들어왔다면 더 높은 경지로 향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최대한 뻔뻔스럽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저도 안타깝군요.”

입맛을 다신 라벤느가 건물을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글쎄. 그렇게 쉽게 사라질 물건인가 싶기도 하고, 요새 네 능력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제법 있어서 말이다. 두고 지켜보면 알게 되겠지. 들어오거라.”

말 몇 마디였지만, 등줄기에 땀 한줄기가 흐르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여기에도 거대한 노괴가 하나 있구나.

커다란 회의실 같은 곳으로 안내받았다.

수십 대의 TV가 회의실에 가득했다.

흡혈귀들의 계룡 권역행을 중계하는 방송 채널이 틀어진 곳도 있었고, 아예 자체적으로 중계 드론을 띄운 건지 마탑 경계에서 대기 중인 마법사들을 비추는 화면도 있었다.

“느림보들이 어떻게 우리를 즐겁게 해줄지, 한 번 보자꾸나.”

상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신시아였지만, 이 자리를 주도하는 것은 일리아나였다.

내 옆으로 다가와 앉은 신시아에게 물었다.

“상위 다섯 가문이 네오-서울의 야스민, 상해의 로즈, 디트로이트의 아이리스, 바이에른의 아펠블뤼텐, 상 리우의 히라솔. 맞죠?”

“공부 좀 하고 오셨나 봐요. 특히 히라솔 가문이 있는 상 리우요. 리우데자네이루나 상 파울로라고 하면 되게 싫어해요. 합쳐져서 상 리우가 된 지가 언제냐고 막 그러면서.”

“기본이죠.”

흡혈귀 가문들의 이름은 모두 꽃 이름이라고 한다.

상위 가문뿐만 아니라 분리된 가문들도 모두.

그중 상위 가문의 이름은 각각 자스민, 장미, 붓꽃, 사과꽃, 해바라기.

영생의 종족이 왜 잠시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사라지는 꽃을 가문의 이름으로 삼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반면교사인가?

“다들 자기네 권역에서 이름 좀 날린다 하는 사람들을 호위로 데리고 올 거예요. 아마 닐 숙부님이랑 함께 오실 페테르 씨가 호위 분 중에는 가장 이름이 알려진 분이겠네요. 그래도 제 마음속에서는 오메가 님이 1등이니까, 기죽지 마세요!”

양손에 주먹을 쥐고 힘내라는 제스처를 해 보이는 신시아였다.

“닐이라면 닐 아이리스 씨. 맞죠?”

“네.”

“그렇다면 그분의 호위로 오는 페테르라는 분은······디트로이트 권역의 공공 집행자이신가요?”

“맞아요. 디트로이트 권역뿐만 아니라 북미의 백린으로 유명하신 분이죠.”

기계 교단의 본부는 네오-서울의 강남 에어리어에 있고 대림 에어리어 2구역의 성당 역시 교단의 성지이지만, 디트로이트 권역은 기계 교단의 본산이라고 할 만큼 교세가 강하다.

인구 대비 신자 비율로 따지면 디트로이트 권역만 한 곳이 없다고.

페테르는 그런 곳의 공공 집행자이자 야바니에르라는 사령술사를 헤지르라는 기계 교단의 사제로 재탄생시켜준 인물이기도 하다.

무지막지하게 강하지 않을까?

“저기 오나 보네.”

여다함의 손끝이 향한 TV 화면에 고속도로 위를 스치듯 미끄러지면서 날고 있는 한 마리의 우아한 용이 보였다.

고아하게 위로 솟은 뿔과 뒤로 길게 늘어지는 수염, 쏟아지는 미사일과 초인들을 농락하듯 휘감기는 긴 몸.

절로 입에서 우아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

게다가 20m는 족히 넘을 듯한 거대한 몸체가 무색할 정도로 재빠르고 여유롭게 움직이고 있다.

페테르의 머리와 목이 연결되는 지점, 그곳에 한 사람이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일리아나의 못마땅한 목소리가 들렸다.

“닐, 저놈 저거 방송 찍히는 거 알고 이미지메이킹 하고 있구만. 저놈 저럴 줄 알았으면 나도 장갑차 위에서 각기춤 췄지.”

일리아나는 묘하게 단어 구사가 옛사람인 듯하다.

하지만 내 눈은 페테르의 점 하나 없이 새하얀 몸에 고정되어 있었다.

“완전 눈 같네. 저래서 백린白鱗이구나. 새하얀 비늘.”

내 말을 들은 여다함이 바로 반박했다.

“아닌데?”

“그러면요?”

“슬슬 왜인지 이유가 나올걸? 내가 알기로 페테르의 인내심은 그리 깊지 못해. 지금쯤 한바탕 터트릴 때가 됐을 텐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페테르의 거체巨體가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마치 짐승이 성을 내어 털을 부풀리듯, 모조리 일어서는 그의 흰 비늘.

열린 비늘 사이에서 떨어지는 작은 먼지 같은 것들이 지상을 향했다.

일정 높이에 도달한 그것들이 폭발하며 아래를 향해 불꽃과 흰 연막을 마구잡이로 뿌려댔다.

지상에 도달한 불들은 아래 있던 것들과 엉겨 붙어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백린연막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고 재밌다는 듯 여다함이 킬킬거리며 말했다.

“저래서 백린이야. 도시 권역에서 저러지는 않고, 권역 경계 바깥에서 일어나는 분쟁에서는 대부분 저 꼴을 내거든. 소문으로는 야바니에르 토벌 때 저걸로 태운 좀비가 30만은 넘을 거라더라.”

불씨가 날아와 계룡 권역 안쪽의 산에도 옮겨붙었지만, 프로이데 마법사들이 미리 준비하고 재빠르게 대응한 덕에 큰불로 번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백린연막탄이라고 해도 재래식 무기 아닌가요? 쉴드나 다른 방어체계에 막힐 것 같아요.”

“그럴 것 같지? 저 연막이 그냥 연막이 아니야.”

페테르가 뿌린 연막이 아래쪽의 차량과 미사일에 닿는 것이 화면에 잡혔고, 곧 차량과 미사일을 보호하고 있던 쉴드가 깨지고 그것들이 부식되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던 중계 드론도 연막을 피하지 못한 것인지 화면 몇 개가 꺼져버렸다.

“나노봇이 가득 들어간 부식 연막이지. 쉴드고 강철이고 다 녹이거나 깨져버려. 기계 교단 내부에서 만들어 낸 것 같은데 자기네들은 절대 아니라고 하는 무기 중 하나야.”

요약하자면 페테르 그 자체로 전쟁 병기 수준이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더는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내 어깨 위에 달린 정보 처리 기관이 과부하로 불타는 것 같아서.

곧 도착한 닐과 페테르가 우리가 있던 회의실로 들어왔다.

“아이고, 잘들 지내셨습니까!”

화면에서 명상을 하듯 근엄했던 닐은 보기에 주책맞은 아저씨 같았다.

나와 여다함에게도 덕담 한마디씩을 건넨 뒤, 일리아나와 신시아 옆에 붙어서 조잘조잘 떠들기 시작했다.

한편, 페테르는 화면에서 보였던 모습이 아니라, 가죽 점퍼와 청바지를 입은 용인龍人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가 먼저 내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페테르라 하네. 헤지르의 일을 처리하는 걸 도와줬다지? 얘기는 들었네. 헤지르 말로는 자네가 기계 장치의 신의 대전사라고 하던데 이렇게 봐서는 믿기지 않는군. 그 친구가 허언을 할 친구는 아닌데.”

“어······.”

내민 페테르의 손은 잡았으나 당황해서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다행히도 여다함이 끼어들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페룬 마탑의 상해 지부장, 여다함이라합니다.”

“테오릭에게 훌륭한 제자가 있다는 말은 많이 들었네.”

“하하.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 동생이 얼어있는 이유는 아마 페테르 씨의 모습이 너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하네요.”

“하하. 그런 거였나.”

페테르가 재킷의 앞섶을 살짝 열어 어깨와 가슴을 드러냈다.

X밴드처럼 생긴 장치가 그의 가슴에 매어져 있었다.

“초압축 외골격이라네. 필요에 따라 아까처럼 전개나 변형할 수 있지.”

나도 이제 이쪽에서 주워 들은 것이 좀 생긴 건지 질문을 하나 할 수 있었다.

“포탈링처럼 다른 공간에 두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니라네. 아주 얇은 판 형태로 바뀌어서 이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지.”

“하지만 그러면 질량은 그대로라는 말씀인데, 무게 감당이 되나요?”

어째 내 말을 듣는 페테르의 눈이 빛나는 것 같았다.

“그 탐구심. 우리 기계 교단이 찾는 인재상일세. 여튼, 자네 말이 맞네. 아주 무겁지. 이걸 늘 차고 다닌다면 용인인 나도 부담하기 힘들 정도야. 그래서······.”

페테르가 발과 꼬리를 들어 아래쪽을 보여줬다.

작은 버튼에서 푸른 빛이 나오고 있었다.

X밴드에서도 그런 빛이 미미하게 보였다.

“소형화한 부양 장치라네. 그 덕에 몸의 부담이 많이 줄지.”

말을 듣고 보니 페테르는 지상에서 살짝 떠서 움직이고 있었다.

“와······. 그런데 이런 걸 다 말씀해주셔도 되는 건가요? 공공 집행자의 정보는 굉장히 귀하다던데요. 새어나갈 수도 있고요.”

페테르가 콧김을 뿜었다.

“새어나가면, 날 싫어하는 놈들이 내게 뭘 할 수 있기는 하고?”

굉장한 자신감이다.

이후로도 몇 시간 후에 회합 참여자인 레온 아펠블뤼텐과 마테우스 히라솔이 차례로 도착했다.

아펠블뤼텐 가의 호위인 로렌 아줌마는 자기를 꼭 닮은 인형 12개를 운용하는 인형술사였고, 히라솔가의 호위인 구스타보 할아범은 피리로 유전자 변형한 동물들을 조종하는 정신 억압 능력자였다.

신시아, 일리아나, 닐이 너무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뒤의 두 사람에게 화력이 집중돼서 오는데 애 좀 먹었다고 한다.

구스타보 할아범은 자기가 아끼던 개새의 날개가 파편에 맞아 부러졌다면서 정말 슬퍼했다.

개의 얼굴과 새의 몸을 가진 개새는 그저 멍멍거릴 뿐이었지만.

여튼 모든 참석자가 모이자, 야스민 가의 참석자인 신시아가 시작을 알렸다.

“야스민, 로즈, 아이리스, 아펠블뤼텐, 히라솔. 다섯 가문의 회합을 시작하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호위들은 모두 회의장 바깥으로 물러나야 했다.

이제 흡혈귀들은 식사와 수면도 안에서 해결하며 일주일간 계속해서 회의를 한다.

작게는 인공 혈액 증산이나 감산, 방계 가문들의 영역 다툼을.

크게는 소유한 기업의 경영권 행사나 새로이 개발 중인 기술까지.

나올 수 있을 때는 용변을 봐야 할 때, 아니면 매일 저녁 그날의 회의 결과를 알리기 위할 때뿐.

각자에게 배정된 방으로 향하면서 여다함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여유롭네요. 주위 사람들이 위험할 거라고 한마디씩 하던데요.”

“갈 때는 그렇지 않을걸? 올 때 방해에 실패한 애들이 약이 잔뜩 올라 있잖아.”

“그건 그렇겠네요.”

“만천화우 5번 정도 갈길 수 있겠지? 마탑에 연락해서 근처에다가 탄약 좀 떨구고 가라고 해야겠다.”

탄을 다 쓰면 장갑차를 들어서 던져버릴 거라는 소리를 신이 나서 하는 여다함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어색하게 웃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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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누군가 내가 묵는 방의 문을 두드렸다.

살짝 열어보니 라벤느의 직계 제자, 정민이었다.

“마탑주님께서 비밀리에 뵙고 싶어 하십니다. 따라오시죠.”

“저 오늘 운전하고 와서 피곤해요.”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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