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잡캐여도 너보단 강함-29화 (30/258)

029.

029.

타이린드가 건물 밖으로 향하는 계단을 거의 나는 것처럼 뛰어 내려갔다.

“빨리 와봐! 미친 물건이 있다니까!”

“그거 제 껀데.”

“농담하지 말고!”

결국 느긋한 내 걸음에 분을 못 이긴 타이린드는 먼저 뛰쳐 내려가 버렸다.

터덜터덜 내려가니 건물 앞에 타이린드를 포함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거 누구 거야? 미쳤다.”

“지난달에 나온 트리온 플래그쉽 모델이지? 이거 돈 주고도 못 구한다며. 최소 2년 대기라더라.”

“RW200? 미쳤다.”

“뽀릴까?”

“도난 방지 시스템만 5개가 넘는다는데, 한 번 해봐. 주인 아닌 사람이 만지면 주위 집행자 사무실에 경보 뜬다고 하더만.”

“해본 소리지.”

“둘러싸고 있는 고치 같은 건 뭐지?”

“그게 첫 번째 도난 방지 시스템일걸. 사용자 인증 시스템도 겸한대.”

“너는 어째 모르는 게 없다?”

“소개 영상만 몇십 번을 봤으니까.”

“기가 막히네. 이걸 대림 에어리어에서 볼 줄이야.”

“진짜 누구 바이크지?”

모여있는 사람 중, 키클롭스 아재와 정현의 얼굴도 보인다.

나를 발견한 정현이 곁으로 와서 목소리를 높인다.

“형님, 형님! 이거 보셨어요? 와······. 미친 호버 바이크다. 말이 안 나오네. 저는 이런 거 언제 타보죠?”

가볍게 웃으며 정현의 어깨를 두드려준 뒤 호버 바이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거, 내 바이크.”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길을 낸다.

“오메가?”

“요새 이름 좀 날린다더니, 이 정도라고?”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건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인데!”

“어이, 사진 그만 찍고 빨리 비켜! 뭐 하는 거냐!”

열심히 팔찌를 눌러대고 있는 양아치를 향해 말했다.

“사진, 곤란.”

얼굴이 붉어진 양아치가 슬그머니 팔목을 내린다.

바이크에 다가가서 흐르듯 반투명한 고치 형태를 만드는 막에 손을 가져다 대니 한순간에 막이 바이크 하부로 빨려 들어가며 사라진다.

주위에서 터져 나오는 탄성은 덤.

“우오오!”

“저거, 저거! 프레임에 적혀 있는 거, 라나 쿠르네초프 맞지?”

“현존 최고의 호버 바이크 디자이너! 홀리 쉣! RW200을 실물로 보는 것도 미칠 것 같은데 리미티드라니!”

대주교 영감님, 제대로 된 물건으로 가져다준 것이 분명하다.

차량은 하차감이라고?

이건 승차 전부터 이미 최대 뽕맛이다.

바이크에 올라타서 고글을 쓰고 시동을 걸기 직전, 사진을 찍던 양아치가 얼굴에 홍조를 띤 채 다가와 말한다.

“오메가 형님······뒤에 한 번만 태워주시면······.”

녀석······.

“싫어. 사라져.”

어딜 감히.

바이크 위에 올라탄 뒤 패널 위에 손등을 대자 정맥 인증을 통해 시동이 걸리고 스크린에 HUD가 떠오른다.

터치한 뒤 귀걸이를 링크시켰다.

-사용 승인. 네비게이션 모드 활성화.

딱딱한 네비게이션 음성 대신, 앨리스의 목소리가 들린다.

-고글 썼어요? 그 정도 속도에서는 눈에 티끌만 스쳐도 각막 날아가는 거예요.

“썼어.”

-헬멧은요.

“······.”

-······올라와요. 아니면 헬멧 쓰던가요.

결국 바이크에서 내려 시트를 열어 헬멧을 꺼내 썼다.

다시 올라타니 앨리스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 썼다고 뜨네요.

“파악할 수 있으면서 왜 물어본 거야.”

-사장님 마음속 양심의 삼각형이 잘 있나 본 거죠.

거짓말을 할수록 마음속 양심 삼각형이 닳아서 원이 된다는 아메리카 원주민 설화.

안드로이드에게 듣게 되니 무진장 새롭다.

잔소리 듣느니 그냥 기본 장착된 네비게이션으로 돌릴까 생각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복귀해서 또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르기에 좀 참기로 했다.

-엔진 가동

-호버링

고오오오-

바이크 지지대가 프레임 안으로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바이크 하단의 노즐에서 공기가 뿜어지며 위로 떠오른다.

다시 한번 주위에서 터지는 탄성.

-평형 안정 확인

아래를 향해 있던 노즐들의 각도가 틀어지며 바이크의 부상이 멈췄다.

지상으로부터 약 30cm의 높이.

하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5m 이상 부상해서 400km/h 이상의 속도를 낼 수도 있다고 한다.

물론 해당 상황에서 기기의 결함을 제외하고 발생한 사고는 모두 이용자의 과실이라는 차가운 문구도 설명서 옆에 적혀 있긴 했다.

“어이! 바린이(바이크+어린이)!”

어느샌가 고글과 헬멧까지 갖춰 쓴 타이린드가 자신의 호버 바이크를 타고 옆에 다가와 있었다.

“저런, 철 지난 모델이네요.”

“이거 작년 모델이야!”

“플래그쉽 모델인가요?”

“······바이크 실력은 기기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야. 선배 뒤나 잘 따라와. 기가 막힌 코스로 데려다주지.”

그리고는 먼저 스로틀을 당겨 앞서 나가는 타이린드.

이런 이런······.

호버 바이크는 후배일지 몰라도 ‘탈 것’ 자체는 내가 선밴데.

[탈 것 숙련]

[동체 시력 향상]

[반사 신경 극대화]

앨리스가 내게 당부했다.

-적당히 밟아요.

이 친구야, 적당히 밟을 거면 자전거를 달라고 했겠지, 호버 바이크가 아니라.

고오오오-

뒤쪽을 향하게 조정된 노즐이 공기를 힘차게 뿜어내자 주위의 광경이 늘어지며 뒤로 밀려난다.

호버 바이크 자체에서 생성된 유체 역학 막이 전신을 감싸며 바람과 이물질의 저항을 줄였다.

순식간에 제로백에 도달했지만 바이크 위는 평안하기만 하다.

먼저 출발했던 타이린드도 곧 따라잡았다.

120······130······.

-속도 더 높이면 네오-서울 교통법 위반이에요. 이미 시가지 내부에 적용되는 안전 조례는 몇 가지 어긴 것 같지만요.

그 말에 속도를 낮추자 타이린드가 곧 옆에 와서 붙었다.

헬멧과 고글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이 시뻘겋다.

능욕은 아군도 가리지 않는다.

“이런, 이런······타이린드는 이런 거 마련해 줄 공돌이 지인이 없나 보네요.”

여전히 속도는 100km/h 근방이었기에 아마 타이린드는 내 말을 못 들었을 거다.

-언니한테 전달할까요?

“요새 내가 뭐 잘못했냐?”

-올 때 오일샌드.

진짜 앨리스 쟤는 머릿속을 열어봐야 한다.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어느 다른 차원에서 소환된 사악한 이계의 존재가 자리 잡고 있을 수도 있다.

#

코스는 타이린드가 안내한다고 했기에 속도를 낮췄다.

그런데 우리가 향하는 길, 낯설지 않다.

앞에 보이는 산과 그 위에 서 있는 거대한 탑.

남산과 페룬 마탑이다.

바이크를 세우자 타이린드가 돌아와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막상 남산 코너를 보니 무서워진 건가? 으잉? 그런 거야?”

“저 여기 안 갈래요.”

타이린드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른다.

“왜? 남산만큼 코너링 익히기에 좋은 바이크 코스가 없어. 라이딩 좀 하고 돈까스 먹으면 ‘아! 이게 라이딩의 참맛이구나.’ 소리 절로 나와. 츄라이, 츄라이!”

돈까스는 나도 좋아하지만 내가 염려하는 건 페룬 마탑의 ‘그 근육질 노인네’다.

앨리스의 말에 따르면 허구한 날 페룬 마탑에서 테오릭 경에게 괴상한 의뢰가 오고 있단다.

-테오릭 경과 함께하는 <몸 만들기, 정신 개조 3박4일 코스> 캠프 참여 의뢰

-테오릭 경과 함께하는 <할 수 있다! 강철계 마법!> 초급 강좌 초대권

-테오릭 경과 함께하는······좋은 말 할 때 오지 않으면 허리를 반으로 분질러버리겠다 오메가

등등······.

대체 내 어디가 그렇게 그 노인네 마음에 든 건지는 모르겠다.

생각보다 대단히 바쁜 양반이라 직접 사무실로 찾아오지 못한다는 게 다행일 정도.

별로 급하지도 않은데 자기 심심해서 부르는 게 확실하기에 일단 잘 거절해놓으라고 앨리스에게 말해놓기는 했다.

진짜 급한 거였으면 폐교에서 돌아온 뒤에 거의 반강제로 뺏어간 내 번호로 연락을 했겠지.

그러니 저 마탑 안에 테오릭 경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최대한 멀어지고 싶다는 것이 내 본능이다.

헬멧까지 벗으면서 거부 의사를 표현했다.

“저 안 가요. 그리고 저 코너링 잘해요. 봤잖아요.”

“왜 이래, 빨리 와. 나 먼저 간다.”

자기 할 말만 마친 타이린드가 속도를 서서히 올리며 멀어져갔다.

금방 올라갔다 내려오면······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내키지 않는 손으로 슬쩍 스로틀을 잡아당겨 타이린드의 뒤를 따를 무렵, 반대편에서 굉장히 눈에 익은 차량이 내려온다.

분명 26구역의 폐교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선언할 때 테오릭 경이 타고 왔던 차다.

얼른 고개를 돌리고 헬멧을 썼지만, 차는 속도를 줄이더니 내 곁에 서고 말았다.

온통 검던 차창이 사라지며 차 안에서 함박웃음을 짓는 테오릭 경이 보인다.

금속 마스크 아래로 들리는 그의 음성은 기꺼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밝기만 하다.

“이 녀석! 드디어 올 마음이 든 거냐! 올 거면 연락이라도 하고 와야지!”

“에······그게 아니라요······.”

내가 붙잡혀있자 타이린드가 바이크를 돌려 다가오다 테오릭 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테오릭 경?”

타이린드를 본 테오릭 경이 내게 묻는다.

“여자친구분이냐? 좋을 때구나. 그런데 뭘 타고 다니는 거냐. RW200? 너, 설마 이걸 산 거냐? 이 녀석아! 벌이가 좀 나아졌다고 이렇게 사치하면! 집은 어떻게 사려고! 그렇지 않아도 요새 네오-서울 부동산이 오르고 있는데! 차는 집 산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아! 그때까지는 적당한 걸 끌어야지!”

“그그 으느르느끄요······.(그게 아니라니까요.)”

내가 어금니를 꽉 물며 답하는 사이, 타이린드가 끼어들었다.

“안녕하세요! 타이린드라고 합니다! 루트에서 일해요!”

“루트? 아······! 총을 기가 막히게 쏜다는 아가씨군!”

“어머, 절 아세요?”

“알다마다. 아가씨가 쓰는 탄 중에 우리 페룬에서 개발한 마력비산탄도 있지 않나?”

“있죠! 효과 엄청 좋아요!”

“그럼! 페룬에서 만든 건데! 다른 강철계 마탑은 따라도 못 낼 솜씨지!”

“맞아요! 저도 처음 사용해보고 깜짝 놀랐다니까요!”

테오릭 경의 얼굴에 자부심 묻은 웃음이 가득하다.

대단하다 타이린드!

특유의 친화력으로 근육 노인네도 녹이는구나!

그 틈을 타서 빠져나가려고 시도했다.

“저희는 호버 바이크 연습이나 할 겸 들른 거라서요. 그럼 이만······.”

분명 내 말이 들렸을 거리인데, 테오릭 경은 꿈쩍하지 않고 타이린드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분명 일부러 무시하는 거다.

“이것도 인연인데, 식사나 같이하는 건 어떤가? 내가 대접하지.”

“정말요? 그래도 될까요?”

“오메가 저놈 여자친구면 내 며느리나 다름없지!”

왜, 어째서, 어느새 제가 당신의 가족관계등록부에 들어가게 된 건가요, 테오릭 경.

“여자친구는 아닌데······.”

“여자친구도 아닌데 같이 라이딩 하러 남산까지 오나? 그럼 곧 될 거로 생각하지 뭐.”

제멋대로 결정해버린 테오릭 경이 운전기사에게 강렬한 한 마디를 전한다.

“차 돌려!”

제자리에서 방향을 돌리는 테오릭 경의 차량.

진짜 마이 페이스네.

이래서 오고 싶지 않았다고.

그 뒤를 따르면서 타이린드가 신난 목소리로 말한다.

“페룬 마탑의 테오릭 경과의 식사라니! 루트에서 온갖 방법으로 자리를 만들려고 해도 단 한 번도 테오릭 경이 응한 적이 없는데!”

모르겠다.

이러면 밥맛이 좋아진다고 식사 전에 연병장이나 뛰게 하지 않을지 걱정이다.

“일단 가보죠······. 별일이야 있을까요. 근데 뭘 알아가려는 티는 내지 마세요. 테오릭 경 성격에 좋아하진 않을 것 같네요. 그냥 평범한 식사 자리라고 생각하죠.”

타이린드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을 앨리스에게 말해주니 깔깔대며 웃는다.

-위타천도 그렇고 테오릭 경도 그렇고, 어떻게 사장님은 그런 사람들 마음에 그렇게 잘 들죠? 그것도 재주예요, 재주.

그렇게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의 기분이 되어 따라간 식사 자리.

생각지도 못한 화제가 나왔다.

“흡혈귀들의 회합요?”

“그래. 이번에는 계룡 권역의 프로이데 마탑에서 열린다고 하더군. 라벤느 그 간사한 마귀할멈. 회합을 유치하려고 흡혈귀들한테 얼마나 아부를 떨어댔을지.”

“그렇군요.”

적당히 대답하고 앞에 놓인 산더미 같은 돈까스 한 조각을 가져와 썰려고 했다.

돈까스 먹으러 왔다고 그랬더니 고기는 옳다며 앞사람이 안 보일 정도로 돈까스를 튀겨오는, 이게 말이 되나?

열심히 씹어 넘기는데, 테오릭 경이 이상한 소리를 했다.

“준비는 잘 되어가나?”

“무슨 준비요?”

“오메가 너도 회합에 참여하니, 준비해야지.”

“제가 거길 왜 가요. 흡혈귀도 아닌데.”

“야스민 가의 참석자인 신시아가 너를 호위로 내정했다고 하던데, 헛소문이었나?”

아오, 혀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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