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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28화 (29/258)

028.

028.

후욱- 후욱-

분명 내 폐를 거쳐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호흡이다.

하지만 내 것 같지 않다.

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광란]이 끝나가고 있다.

초점이 잘 잡히지 않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 곳곳에 쌓여있는 거대하고 붉은 고철의 산.

모두 기계화 좀비였던 것들이다.

그사이에 나 홀로 전기톱을 들고 서 있다.

모든 것을 사윌 듯 타오르던 검은 화염도 이제는 몇 줄기 남지 않았다.

오랫동안 갇혀서 제대로 된 관리도 받지 못한 헤지르 대주교의 힘으로는 이 정도가 최선이었나보다.

한 몸처럼 움직이며 기계화 좀비들을 작살내는 데 일조했던 톱도 이제 덜덜거린다.

급조한 것치고는 마음에 드는 녀석이었는데.

터벅-

걸음을 옮기자 사제 하나가 소리 지르며 급히 다 부서져 가는 기계화 좀비에게 사령술식을 불어 넣는다.

“오, 오지 마!”

이제 뻐근함이 느껴지는 팔에 힘을 주어 전기톱을 움직였다.

부와아아아- 투콰카카카카

그대로 분쇄되는 기계화 좀비.

뒷걸음질 치다 발이 걸려 엉덩방아를 찧은 사제가 외친다.

“나,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전기톱이 그의 몸에 박혀 들어 이등분을 시도한다.

“세상 편한 논리 지껄이고 있네. 나도 전기톱이 시키는 대로 죽였다.”

트르르륵-

정수리에서 시작한 톱질이 명치께에서 멈췄다.

전기톱도 내구를 다 한 모양.

부품 몇 개가 튕겨 나오는 것을 시작으로 종국에는 손잡이를 빼고는 다 무너져내렸다.

내가 짧은 시간 동안 무리한 사용을 한 탓이겠지만, 그런 말은 꺼내면 지는 거다.

일단 제작자 탓을 해야 한다.

“대주교 영감님 공돌이라더만 제품 검수가 엉망이네.”

손잡이를 내던지고 몸에 전기톱날이 박힌 채로 죽은 사제를 위해 어설프게나마 허공에 기계 교단의 문양을 그려줬다.

나는 할 만큼 했으니 간다.

다음 생에는 토스트기 같은 걸로 태어나서 빵이나 구워주며 착하게 살아라.

이제 이곳에 사제와 좀비는 몇 남아 있지 않다.

그중 파라터스가 있다.

그들 대부분은 이곳에서 나가는 문 앞에 모여 있었다.

좀비들이 부수고 뜯어내서 그런지 문 앞에 서 있던 거대한 빙벽은 이제 절반 이상 부서진 상태.

내가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파라터스가 악을 내지른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고나 있는 거냐! 이건 모두 우리들의······.”

내가 휘두른 손에서 만들어진 고드름 몇 개가 파라터스의 어깨에 꽂힌다.

그가 몇 걸음 뒤로 밀리고, 계속해서 그의 몸에 박히는 고드름은 마침내 파라터스를 벽에까지 몰아넣었다.

“조용히 말해라. 골 울려서 짜증 나니까.”

“미친놈! 이건 사령술사들의 염원이었다!”

“지랄 좀 하지 마. 더러운 네 욕망이겠지.”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네가 무사할지를 먼저 걱정하는 게 순서 아닌가?”

그 말에 파라터스의 입이 닫혔다.

“아까 들어보니까 수연이니, 진오니 하는 것 보니까 그쪽이랑 연결되어 있나 본데.”

내 말에 파라터스의 얼굴이 밝아진다.

살길이라도 찾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래! 내가 만들어 낸 기계화 좀비 중 일부는 그쪽으로도 지원된다. 그러니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수연 님이······!”

콰직-

파라터스의 배를 관통한 고드름이 뒤쪽의 벽까지 박혔다.

“왜 그리 아등바등 애를 써. 남을 죽이려고 했으면 자기가 죽을 수 있다는 것도 생각했어야지. 좀비를 만지작거리니까 죽음에 대한 실감이 없던?”

뚫린 구멍에서 액체를 질질 흘리는 파라터스가 나를 향해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

“해결사 따위가······이러고도······무사할 줄······.”

가까이 다가가 놈의 머리통에 손을 올리자 파라터스는 눈을 부릅뜬 채로 얼어붙었다.

“몸을 기계로 교체할 때 혓바닥에만 좋은 모터를 달았나, 어째 죽을 때까지 말을 쉬지를 않아.”

그리고-

[파신권]

얼어붙은 파라터스의 머리통에 주먹이 닿기 무섭게 수십 조각으로 부서져 흩어졌다.

절뚝거리며 다가온 헤지르 대주교가 그런 파라터스의 모습을 무심히 지켜봤다.

“죄송해요. 말도 안 하고 제자를 죽여버려서.”

“되었네. 이딴 놈이 무슨 제자라고.”

대주교가 파라터스의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를 끊어 가져갔다.

그리고 문 앞으로 다가가 단숨에 아직 움직이는 기계화 좀비들의 조종권을 탈취하고는 좀비들을 움직여 남아 있는 사제이자 제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세계를 정복할 정도의 야심을 품었던 사령술사가 보여주는 비정함.

저런 인간한테 초장부터 대주교 영감님이라고 해도 됐던 걸까?

초절정9서클삼화취정오기조원엔지니어링마스터 사령술사님이라고 해야 했던 거 아닐까?

[광란]의 후폭풍으로 흐릿해져 가던 정신이 확 돌아온다.

다행히 헤지르 대주교는 내가 했던 소리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좀비를 움직여 문에 붙은 마지막 남은 얼음을 제거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조금 더 다가가자 헤지르 대주교가 무심히 말한다.

“공돌이 영감은 이런 거라도 해야지.”

아, 신경 쓰고 있네.

#

이후의 일은 꽤 복잡했다.

목걸이를 만져 공장의 환기구를 모두 개방한 대주교는 이런 건 있어서는 안 됐다며 생산 컨베이어 벨트에 불을 놓아버렸다.

불을 붙이기 직전, 스프링클러에서 뿜어져 나오던 액체가 좀 끈끈했던 걸 보면 기름 종류였을 테니 불은 잘 탈 거다.

이러면 안이 다 녹아내리거나 유독가스가 발생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런 건 공돌이가 더 잘 알지 않겠냐는 대주교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저렇게 자신 있는 걸 보니 어떻게든 되겠지.

그나저나 저 영감님 말끝마다 공돌이 공돌이 하는 걸 보면 삐져도 단단히 삐진 것 같다.

지하에서 위로 올라오는 길도 쉽지 않았는데, 지나가는 사제마다 우리를 보고 식겁했기 때문이었다.

인공피부도 없이 상체의 부품을 내놓고 절뚝거리는 대주교와 옷에 멀쩡한 구석이 없는 남자가 나란히 걷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몇몇 사제가 대주교에게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으나 그는 그저 손을 저으며 위로 향했다.

밖으로 나오니 성당 안은 더 엉망이었다.

“아는 사람이 지하에 있다니까요! 위험할 수도 있다고요!”

“아무리 야스민 가의 사람이라도 이 아래는 사제들이 아니면 내려갈 수 없습니다!”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 날뛰는 신시아 때문이었다.

눈이 더욱 붉게 변하고 몸에서 녹색 기운이 스멀스멀 뻗어 나오는 것이, 조금만 더 늦게 나왔다면 일을 쳐도 크게 쳤을 것 같은 느낌.

나를 본 그녀가 크게 외쳤다.

“오메가 님! 괜찮으세요? 옷이 다 왜 그래요? 어떤 놈이 그런 거예요! 어떤 놈이!”

옷은 좀비들이 잡아 뜯은 겁니다.

물론 그 녀석들 지금은 다 조각났지요.

내 얼굴을 본 신시아가 좀 가라앉았다.

“대충 마무리됐어요.”

앨리스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

-다행이네요. 바로 돌아오실 거죠?

앨리스의 말에 답하려는데, 대주교가 나를 불렀다.

“따라오게.”

눈빛이 워낙 엄해서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앨리스에게 말했다.

“큰일은 다 지나갔는데, 바로 복귀는 힘들 것 같아.”

-알겠어요.

대주교는 본당 밖으로 나와 외진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작은 건물이 하나가 보였다.

“내가 머무르는 곳이네. 아니 머무르던 곳이었지.”

그곳을 지키고 있던 사제들 몇 명이 우리에게 다가오다가 대주교를 알아보고 혼비백산해서 도망치려 했다.

“스···스승님!”

콰직

대주교가 손을 뻗자 그의 손에 녹색 구슬이 맺히나 싶더니 튕겨 나가 사제의 머리통을 관통해버렸다.

그렇게 도망치는 사제들에게서 콰직하는 파열음이 몇 번이나 계속된 후, 대주교는 건물 가장 안쪽의 방으로 향했다.

그곳을 지키고 있던 이들이 나를 보고 외쳤다.

“누구십니까! 이곳은 대주교님이 기거하시는 곳입니다!”

그들도 피부가 벗겨진 대주교를 보고는 매우 당황했다.

“대주교님?”

이번에는 대주교의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사령······지하의 일과는 관계가 없나 보군요.”

“행정적인 일을 도와주는 이들이네. 그리고 밖에서의 일로 내게 배운 놈들은 모두 없앴네.”

얼어있는 이들을 지나친 대주교가 방의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피부가 멀쩡히 붙어 있는 대주교가 있었다.

대주교, 음······내 옆에 있는 대주교의 손에 녹색 기운이 맺히기에 다른 사람이 보면 안 될 것 같아서 얼른 문을 닫았다.

앞에 있는 대주교가 입을 열었다.

“꼴을 보아하니 병신같은 파라터스에게 문제가 생겼나 보군.”

사아아아-

모래가 무너지듯 대주교의 얼굴이 바뀌었다.

면사 같은 것을 쓰고 있어 얼굴의 생김새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목소리만으로 간신히 남자임을 짐작할 수 있을 뿐.

대주교 영감님이 녹색 구슬을 쏘아 보내 놈의 몸에 구멍을 내었으나 곧 모래 같은 움직임이 구멍을 메웠다.

“뭐 하는 놈이냐.”

“글쎄. 이 도시의 지금 돌아가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둘까? 대주교님?”

놈의 고개가 나를 향했다.

“수연에게서 얘기는 들었지. 재밌는 해결사가 있다고.”

놈의 저음이 더욱 낮아졌다.

“하지만 더 이상 우리 일을 방해한다면 간과할 수 없다.”

방해는 그쪽이 저한테 하는 게 방해인데요.

가운뎃손가락을 내밀었다.

그걸 본 놈이 광소하더니 천천히 걸어가 창문을 열었다.

계속해서 대주교 영감님이 놈에게 뭔가를 날려대고 있었으나 그저 흘려버릴 뿐, 타격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린아이가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것은 혹독한 매질을 겪지 못했기 때문이다. 명심해라. 오메가.”

남아 있는 왼손으로도 가운뎃손가락을 내밀었다.

뭐래, 미친 아동학대범이나 할 소리를 지껄이고.

놈은 창문 밖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남은 것은 열린 창문으로 들이치는 바람과 문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

대주교 영감님에게 물었다.

“이런 일 있을 줄 알고 저보고 따라오라고 한 거예요?”

“몰랐네. 나는 내 가짜가 있다길래 기껏해야 조종할 수 있거나 행동 알고리즘이 적용된 로봇일 줄 알았네.”

“그럼 왜······.”

“자네와 둘이 얘기를 나누고 싶었거든. 이곳은 내 허락 없이는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이기도 하고. 아마 그렇기에 다른 이들도 저놈이 나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싶네.”

그리고 자신은 침대에 걸터앉고 옆에 있는 의자에 앉으라고 손짓하는 대주교 영감님.

아니, 방금 영감님인 척하던 사람이 여기서 사라졌잖아요.

그리고 영감님이 던진 구슬 때문에 벽에 금이 잔뜩인데 무슨 얘기를 해요.

“여기 있던 놈은······.”

“나도 모르네. 신경 쓰지 말게. 네오 서울에 이상한 놈이 한둘인가.”

지하에 오래 갇혀 있어서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닌가 싶지만, 초절정9서클삼화취정오기조원엔지니어링마스터 사령술사님이 하시는 말씀이라 일단 엉거주춤 의자에 앉았다.

이상한 놈이 한둘이 아니라는 말 자체는 틀리지 않기도 하고.

“나는 대주교직에서 물러나려 하네. 사령술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어겼으니 말일세.”

“그 얘기를 왜 저한테······.”

“듣게.”

고개를 끄덕했다.

“교단에 사령술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을 생각이니 아마 내 거취에 대해 여러 말이 있을 것이고, 그동안은 대주교직에 있겠지.”

숨을 한 번 고른 대주교가 말을 이어나갔다.

“제자들을 죽인 내가 자네 눈에 비정해 보일지도 모르네. 그렇지만 나를 구해주고 잘못된 일에서 건져내 준 이를 무시할 만큼 비정하지는 않다네. 내게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하게. 내 힘을 쓸 수 있는 데까지는 들어주겠네.”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대주교직 얘기를 왜 했는지 알겠다.

되도록 빨리 말하라는 뜻이다.

교단의 성지인 대림 교구의 대주교가 가지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할 테니.

웬만한 기업체의 사장이 와도 5분 넘게 만나기가 힘들다는 헤지르 대주교다.

침을 꿀꺽 삼킨 후에 나온 내 말을 들은 대주교.

어째 날 보는 눈이 곱지 못하다.

“그래······공돌이가 잘 들어줄 것 같은 부탁이긴 하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대주교는 선선히 알아봐 주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

#

2주 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심심하면 사무실에 찾아오는 타이린드가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소리쳤다.

"오메가! 앨리스! 밖에 세워진 저거 뭐야!"

"뭔데 호들갑이에요, 언니."

숨을 몰아쉬며 말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는 타이린드.

나는 씨익 웃었다.

"하나 마련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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