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
027.
[스카디skaði]
손끝에서 뿜어지는 냉기가 닫혀가는 유리창을 얼어붙게는 했으나 파라터스에게 닿지는 못했다.
강철로 된 날개를 펄럭이는 익인翼人 기계화 좀비에 막혀버린 탓이다.
냉기에 직격당한 놈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나는 열려 있는 유리창 사이로 들어가는 것에 성공했다.
[낙법]을 활용해 몇 바퀴를 구른 뒤 자세를 바로 했다.
이 거대한 공장의 제어실로 보였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 벽면이 열리고 기계화 좀비가 쏟아졌다.
오크, 닭 수인, 소 수인, 코뿔소 수인 등등.
하나 같이 덩치 크고 힘 좋은 종족들이다.
닭 수인이 커다란 창을 들고 있는 이유는······?
좀비 뒤에서 파라터스의 간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자서 이 많은 좀비를 다 상대하려고? 수에 깔려 죽게 될 거다! 저놈을 죽여라!”
하지만 파라터스의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내가 날려 보낸 검기에 잘린 코뿔소 수인의 목이 바닥에서 뒹군다.
그렇지만 목만 없다 뿐이지, 코뿔소 수인의 몸은 멀쩡히 움직이고 있었다.
놈들이 덤벼든다.
가슴을 찔러도, 배를 찔러도 움직이는 놈들.
‘컨버터의 위치가······!’
닭 수인 좀비가 들고 있는 커다란 창이 나를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뻗어온다.
[만사재시 매사필종]
검에 잘린 창이 바닥에 떨어질 때쯤, 놈들에게 파고드는 그대로 몸을 회전시켜 오크 좀비와 닭 좀비의 옆구리를 깊게 베어냈다.
무언가 걸리는 느낌과 동시에 두 놈의 움직임이 멈췄다.
위치, 찾았다.
숨 고를 시간조차 없이, 뒤에서 소 수인이 뿔을 앞세워 돌진해옴에 손수 업진살을 발라줬더니 파라터스는 밖으로 빠져나간 상황.
설상가상, 제어실로 좀비들이 몰려드는 소리가 들린다.
심지어 날개가 있는 좀비들은 열린 창문을 통해 들이닥치고 있었다.
몇 놈에게 불덩이를 먹였으나, 금속으로 된 놈들을 멈칫하게 하는 정도의 효과만 있을 뿐, 치명적인 피해를 주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좀비들 사이로, 저 멀리서 사제복을 입은 자들이 내가 들어왔던 문으로 향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열린 창으로 날아드는 하피 좀비의 날개를 베어 떨어트리는 걸로 틈을 만든 뒤, 유리창을 통해 원래 공장이었던, 지금은 좀비들이 득실대는 공간으로 몸을 날렸다.
떨어지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주 장관이다.
내 움직임에 따라 좀비들이 따라오는 게, 어미 입에서 먹이 떨어지는 것만 기다리는 새끼 새를 보는 것 같다.
새끼 새는 귀엽기라도 하지.
얼굴은 다 뭉개진 놈들이 금속 신체를 달고 저러고 있으니 구역질이 나려 한다.
놈들이 나를 향해 좀비 특유의 저음을 내지른다.
그어어어어-
[경량화]
[표르긴Fjǫrgyn]
[여리박빙如履薄氷]
몸을 가볍게 만들고, 아래 깔린 좀비들에게 닿기 전 얼음의 길을 만든 뒤, 밟고 달렸다.
여전히 날 수 있는 기계화 좀비들은 덤벼들고 있었기에 되는대로 베고, 찌르고, 잘라내며 나아갔지만, 위태로운 길이었다.
그렇게 달리며 들이닥치는 좀비들의 컨버터를 부숴서 무효화 하는 동안, 멀지 않은 곳에 이곳의 출입구가 보였다.
파라터스를 비롯한 사제들도 몇 걸음만 더 걸어가면 문에 닿을 수 있는 상황.
[흐림수르사르hrímþursar]
내게서 뻗어나갈 때는 가느다란 한줄기 냉기였던 빙결계 마법이 주위를 얼리며 나아가다 마침내 문을 통째로 얼려버렸다.
얼굴을 구기는 파라터스가 보인다.
능욕해줄 타이밍이다.
“바로 이쪽으로 달리는 걸 보니 출입구를 하나밖에 안 만들어뒀나 봐? 그럼 쓰나.”
사제들이 공중에 검은색 도형을 그려내고, 그걸 빨아들인 기계화 좀비들 일부가 얼어붙은 문에 몸을 쿵쿵 박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머지들은······.
나를 조지러 오는 거지.
얼려놓고, 옆구리 자르고, 얼려놓고, 옆구리 자르고를 반복하다 보니 광자 검날이 깜빡인다.
“이거 왜 이래.”
세상에 영구기관은 없다.
그건 여기도 마찬가지.
배터리가 나갔다.
그동안은 검을 길게 사용하지 않아서 겪어본 적 없는 상황.
“씨이펄, 켜져! 켜지라고!”
몇 번이나 칼자루를 비틀어봤지만, 검날은 부웅부웅 하며 몇 번 깜빡이기만 할 뿐, 지속되지 않는다.
“앨리스.”
-네, 사장님. 상황 괜찮아요?
“아니, 완전 별로야.”
-대주교님 목소리가 안 들린 이후로 신시아 씨가 걱정된다면서 그쪽으로 가겠다고 했거든요? 좀만 버틸 수 있겠어요?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나를 향해 날아오는 오우거 좀비의 주먹을 피한 뒤-
“검날이 안 나와. 배터리가 나갔나봐.”
-보조 배터리 챙기라니까요. 얼마 크지도 않은걸.
“우앗! 일단 나중에 얘기하자. 살아 돌아갈 수 있으면.”
-죽지 마요!
콰아앙-!
결국 아수라 좀비의 타격이 옆구리에 꽂혔다.
역시나 특수강 티셔츠 덕에 부러지지는 않은 것 같은데 더럽게 아프다.
이어지는 놈의 발길질.
얻어맞고 구석에 처박혔다.
“으으······. 하르파고스 이사가 아수라는 완력이 어쩌고 하더니 더럽게 아프네······.”
“괜찮나, 자네?”
옆을 보니 여전히 철창에 있는 대주교가 보인다.
처박힌 곳이 대주교가 갇힌 방이었던 모양.
“나를 풀어주게! 이 케이블을 자르면 돼! 이놈들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이 기계 때문일세! 강제로 사령술을 유지하게 하고 있단 말일세!”
진즉 여기부터 왔어야 했네.
이제 날도 잘 나오지 않는 검의 칼자루를 몇 번이나 비틀어가며 대주교가 갇혀 있는 철창을 잘라내고, 그가 쓰고 있는 장치도 베어버렸다.
밖에서 무언가가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좀비들의 웅성임도 들리지 않는다.
내다보니 날아다니던 놈들이 맥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진작 얘기를 했어야죠, 대주교 영감님!”
“내 말을 들을 새도 없이 뛰쳐나가지 않았나.”
그때, 파라터스의 성질난 목소리가 들렸다.
“뭐하고들 있어! 어서 좀비를 움직여! 저놈을 죽이라고!”
그러자 차츰 밖에서 좀비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슬쩍 보니 사제들이 직접 좀비를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
대주교가 하던 것처럼 이 공간을 가득 채우는 좀비가 한 번에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수백은 되어 보이는 좀비들이 다시 움찔거리고 있었다.
검은 완전히 소진된 건지 이제 간간이 나오던 날도 아예 나오지 않았다.
“조졌네, 진짜.”
그러다 좀비들의 몸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금속 파편과 대주교를 보게 됐다.
“대주교 영감님.”
“왜 그러나.”
“사령술사니까 여기 좀비 조종하실 수 있어요?”
“몸이 좋지 않네. 몇 기 정도는 가능하겠지만······그게 의미가 있겠나?”
천재 사령술사의 활약을 기대하기에는 어려운 것 같았다.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대주교 영감님. 처음에 기계화 좀비를 혼자 설계하고 만들었다 그랬죠.”
“그랬네.”
“그럼 공돌이시네.”
“공······돌이?”
“제가 말하는 거, 만들 수 있겠어요?”
내 설명을 들은 대주교가 고개를 끄덕이며 여기저기 흩어진 부품들을 주워 모았다.
“만들어는 보겠네. 하지만 동력 공급이 쉽지 않을 것 같네. 배터리를 만들자니 상황이 여의찮고, 선을 연결하면 계속 신경 쓰며 길을 뚫어야 할 테니.”
“컨버터가 작은 것 같던데, 그거 달고 영감님이 직접 공급해주면 안 돼요?”
“······.”
지금 무슨 소리를 하냐는 눈으로 바라보는 대주교.
지지 않고 눈싸움을 했다.
“뭐라도 해야죠. 안 그러면 우리 다 저 꼴 나요. 대주교 영감님은 이미 몸 몇 군데가 기계라서 상관없을지 몰라도 저는 멀쩡한 몸 갈아 끼우고 싶지 않아요.”
움찔거리던 좀비들이 이제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후······. 해보겠네.”
말이 끝남과 동시에 피부가 벗겨져 노출되어 있던 대주교의 상체와 팔에서 작은 보조 팔이 돋아나더니 금속을 이리저리 뜯고 붙이고를 시작했다.
뚝딱뚝딱 만들어지는 무기의 모습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좀비는 이런 걸로 죽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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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터스는 좀비 몇을 주위에 세워 혹시 모를 위험에 방비한 뒤 조심스레 오메가가 처박힌 곳으로 접근했다.
그곳에는 그의 스승이자 희대의 천재였던 사령술사도 있을 것이 분명했다.
오랜 기간 제대로 관리받지 못해 기력은 조금 모자랄지라도, 파라터스가 목격해 온 스승의 능력은 굉장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파라터스의 귀에 무언가를 만드는 소리가 들렸다.
“되었네!”
대주교의 목소리가 들리고, 오메가가 무너진 방에서 걸어 나왔다.
“동력 안 끊어지게 잘 유지하고 알아서 숨어 계세요, 대주교 영감님.”
오메가가 양손으로 들고 있는 것은 모양이 투박하지만 분명 전기톱.
대주교가 자신의 도형을 허공에 그린 뒤에 전기톱으로 밀어 넣자, 톱날에 불이 확 붙는다.
일반적인 붉은 불이 아닌, 음산하기 짝이 없는 검은 화염.
오메가가 들고 있는 전기톱에서 뚝뚝 흐르는 검은 화염을 본 파라터스는 과거 어디선가 읽었던 사령술 e북 교본의 한 꼭지를 기억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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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黑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색이니 그것이 품고 있는 바는 죽음이라, 사령술사들은 그들의 근원에서부터 흑에 대해 탐미하였노라.
염炎은 일렁이는 불꽃이요, 삶을 일으키는 의지의 형상이니 염이 불사르는 곳에 흑이 존재할 리 없고, 흑이 먹어 삼키는 자리에 염이 공존할 수 없느니라.
허나, 특출난 사령술사 중 삶과 죽음을 자유자재로 만지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은 흑과 염을 한곳에 일으킬 줄 알았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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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출나기로는 흡혈귀 사령술사인 신시아도 놀랄 만큼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졌던 사령술사, 야바니에르.
그런 이가 전력으로 자신의 힘을 전기톱에 보내고 있으니 시커먼 화염이 뚝뚝 떨어지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한편, 투박해서 더욱 살벌한 전기톱을 들고 있는 오메가의 신체가 조금씩 떨린다.
그는 스스로를 강화하고 있었다.
[양손 무기 숙련]
[근력 강화]
[신체 밸런스 조정]
[놓치지 않는 손]
[미끄러지지 않는 발]
[소음 적응]
[정신 강화 – 언데드 내성]
오메가는 목과 어깨를 돌려 상태를 점검했다.
“니들 성불시킬 사령술 전기톱이다. 좀비 새끼들아.”
이 말을 마지막으로 마침내 마지막 스킬이 오메가의 몸에 깃든다.
이전의 스킬들은 모두 마지막 완성을 위한 과정일 뿐!
그것은 발할라로 향하는 가장 용맹한 이들이 목청 높여 외치는 함성.
그것은 죽음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첨예한 자들의 맹세.
[광란]
광란이라 쓰고 버서크Berserk라 외치라!
광전사이자 해결사, 오메가의 눈빛이 붉게 변하며 광기가 깃든다.
그가 힘차게 전기톱의 시동줄을 당기매, 거리낄 것 하나 없더라.
부와아아아앙-
맹렬히 회전하며 검은 불꽃을 뿌려대는 전기톱이 마치 원래부터 그의 일부인 것처럼 손에 들려있으니-
그의 앞을 가로막는 이여, 그에게 대적하려는 자들이여.
부디 육신의 안녕을 기원하라!
그는 잠들지 못하는 망자의 바다를 헤치고 나아가는 철혈의 쇄빙선이요, 닿는 모든 것을 분해하는 안식의 전차일지니!
검은 불꽃과 붉은 눈빛을 흩날리며 광란 상태에 진입한 해결사의 입이 열린다.
접신한 자의 방언과도 같이 귀기 서린 목소리.
“나를. 네오-서울의. 전기톱 학살자라. 부르라.”
우매한 기계화 좀비 하나가 감히 그에게 달려드니-
투콰카카카카카-
신병이기의 영역에 닿은 전기톱이 놈의 보잘것없는 금속 육체를 갈아버리더라.
이후 그가 좀비의 들판으로 걸어가니 들리는 것은 엔진음이요, 보이는 것은 나뒹구는 금속뿐이라.
잘리고 뒤틀린 파편이 들판에 쌓여 산을 이루니, 와중 어쩐지 그의 입술이 달싹거리매-
“v······.”
이성과 본능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이런 때가 아니면 다시는 나오지 않았을 말.
멀리서 미사를 봤을 때부터 왠지 한 번은 외치고 싶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게 하던 말.
다시 한번 오메가의 입술이 달싹이니-
“v······v······.”
투콰카카카카카-
전기톱을 휘둘러 덤벼드는 기계화 좀비 여럿을 끊어낸 오메가가 마침내 끓어오르는 내면의 욕망을 폭발시키더라.
“V······V16!!!!!!”
전기톱이
위에서 아래로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대학살이었다.
뒤에서 스스로 쌓아올린 무기에 힘을 불어넣고 있던 어느 늙은 사이보그 대주교가 지금 보고 들은 것에 감격의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각혈하듯 신께 경배 올리나니.
“기계 장치의 신이시여, 당신의 대전사가 이곳에 강림했나이다.”
귀를 찢을 듯 울리는 전기톱의 소음은 산산이 부서진 넋을 불러들이는 초혼가招魂歌요-
한숨도 쉬지 않고 미친 듯이 전기톱을 휘두르는 해결사는 허공 중에 헤어진 넋들을 위해 전심전력으로 위로의 춤을 풀어내는 자이니-
춤에 섞여들어 공중을 수놓는 좀비들의 조각과 파편은 불러도 주인 없는 넋들이 품을 공물이렸다.
그 중심에 검은 화염과 붉은 안광이 도깨비불처럼 노닐며 부유하니, 이는 모인 넋을 달래는 거대한 위령제이니라.
만일 신이 있어 보고 계신다면 -보기에 참으로 좋다- 하실 광경이리라.
틀림없이 그리 말씀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