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
026.
“침 뱉을 힘도 남아 있고, 아직 살만하신가 봅니다.”
뺨에서 흘러내리는 침을 닦은 파라터스가 말했다.
하지만 높낮이 없는 어조와는 달리 그의 표정은 경멸과 존경으로 복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스승이라니. 가당치도 않다!”
기계음이 섞여 갈라져 나오는 대주교의 음색.
“얌전히 사령술을 익히고 있던 저희를 교단으로 불러들여서 직접 가르칠 때는 언제고, 이제 없던 일로 만들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네게 사령술을 가르친 것은 모두 기계 장치의 신께 봉헌할 인공 부양 대지를 만들기 위해······.”
“예, 예. 그 얘기는 귀에 딱지가 얹도록 들었죠. 좀비에게 옷을 입혀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 일하게 하면 될 거라고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이 빠르게 완성되었다는 기계 교단의 인공 부양 대지는 좀비들이 섞여 만들어 낸 것이었나!
사령술사의 체력과 정신력만 유지된다면 좀비들은 밤낮없이 일할 수 있다.
정황으로 보건대 대주교는 스스로 사령술을 사용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사령술사들을 기계 교단으로 끌어들이면서까지 좀비를 동원한 모양.
‘진짜 여긴 알수록 대단한 놈들 뿐이네.’
사채를 써서 카지노에 때려 박는 토끼, 지원받은 무기로 지원해준 기업 공장을 터는 조직, 자기 기분 안 맞췄다고 멀쩡한 사슴 대가리를 뭉개려는 공공 집행자, 분명 기계 장치의 신을 믿으면서 신에게 봉헌할 땅을 위해 좀비를 끌어다 쓰는 대주교까지.
이정도면 사탄도 내려와서 또라이들 하는 짓 좀 보라면서 팝콘을 쩝쩝 씹어대지 않을까.
한편, 대주교가 계속해서 자신을 향해 욕설을 내뱉는데도 불구하고 파라터스는 그저 방안을 훠이 둘러볼 뿐이었다.
“여긴 없나 보군요. 하긴, 저만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인데 이런 곳에 숨어있을 리가 없죠.”
그리고 몸을 뒤로 확 돌리는 파라터스.
방은 그리 크지 않다.
두세 걸음이면 나와 파라터스가 닿을 정도.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눈꺼풀이 바르르 떨린다.
눈이 충혈되는 감각이 느껴지는 것 같다.
호흡마저 멈췄다.
파라터스가 나를 향해 다가오나 싶더니 휙하니 나가버렸다.
밖에서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리고 난 후에야 간신히 잔숨을 뱉어냈다.
눈을 깜빡이자 각막에 거칠거칠한 모래가 굴러다니는 느낌에 고통스러울 정도.
대주교가 놀란 목소리를 낸다.
“광학위장복인건가? 투명화 마법? 어느 쪽이든 좋네. 이제야 여길 벗어날 수 있겠군. 교단에서 보낸 건가?”
대주교는 다급했다.
눈에 감각이 돌아온 나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말했다.
“교단 사람은 아닙니다.”
“그럼 그 옷은 뭔가?”
아직까지도 아까 쓰러트린 사제의 성직복을 위에 걸쳐 입고 있었다.
벗어서 구석에 던져 놓았다.
“질문은 제가 합니다.”
겨우 눈물을 닦아낸 뒤, 물었다.
“기계화 좀비, 그리고 3년 전 대림 에어리서 26구역의 학교 습격 사건에 대해 아는 걸 다 말해요. 나오는 답에 따라 여기서 빼주든지, 놔두고 가든지가 정해질 겁니다.”
귀걸이에 손을 올렸다.
찰칵-
일단은 증거를 앨리스에게 보냈다.
얼굴이 잔뜩 굳어 있는 대주교 사진이 전송됐을 거다.
“자네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무얼 믿고 말하라는 말인가.”
“그럼 계속 철창 안에서 냄비 같은 거 뒤집어쓰고 계시던가요.”
내게 지금 중요한 건 기계화 좀비로 학교를 습격한 것이 맞는지, 맞다면 누가 그런 일을 주도했는지다.
더 이상의 일은 사양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뢰를 잘못 받았다.
잠 좀 편히 자려는 것치고는 너무 많은 수고를 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점점 머릿속을 잠식하는 중이다.
마지막에 나이누안이 친근하게만 굴지 않았더라면······.
대주교가 내게 말했다.
“잠시만, 학교 습격이라니. 설마 기계화 좀비들이 그런데 이용됐다는 소리인가?”
“추정이긴 하지만 아는 사령술사의 말에 따르면 거의 확실하다고 하네요.”
대주교는 무너지듯 웅크리더니 손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안 된다! 안돼! 파라터스! 어째서 그런 짓을!”
귀걸이에서 계속해서 진동이 오고 있다.
앨리스였다.
-답이 없어서 무슨 일 난 줄 알았잖아요!
일은 이미 났어.
살짝 무마했을 뿐이지.
-사진 봤어요. 옆에 신시아 씨 와 계시는데, 사진 보고 엄청 놀라셨어요. 야바니에르? 라는 사람이라는데요. 살아있을 줄 몰랐대요.
“야바니에르?”
그러자 대주교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그 이름을 어찌 아는 겐가? ···버린 지 오래되어 아는 이도 없을 텐데.”
-신시아 씨가 자기 이름을 말하면 그쪽에서 알 수도 있대요.
“신시아 야스민. 알아요? 흡혈귀 사령술사.”
“알다마다! 야스민 가의 막내 따님 아닌가. 내 어릴 적에 뵌 적이 있네. 지금 그분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건가?”
“그런 셈이죠.”
“오오······. 사령술을 버리고, 가르친 사령술사에게 버림받은 내가 다시 사령술사에게 구원받는 건가. 기계 장치의 신이시여, 저를 굽어살피소서.”
비쩍 마른 몸이나, 여기저기 녹슨 그의 부품을 봤을 때 정상적인 상태라고 보기에는 조금 어려웠다.
“신시아 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나? 그분이라면 내가 하는 얘기를 이해하실 수 있을 걸세.”
때마침 밖에서 공장이 가동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대주교가 머리에 고정된 장치를 붙잡고 신음했다.
“크으윽”
장치의 케이블이 꿀렁대기 시작하자 신시아가 좀비를 조종할 때 보여주었던 기운이 대주교로부터 흘러나오나 싶더니 모두 장치와 케이블을 통해 밖으로 빨려 나가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가쁜 호흡을 가다듬던 대주교가 크르륵거리는 기계음 섞인 목소리를 냈다.
한풀 꺾인 그의 목소리와 달리, 눈빛은 오히려 형형하게 살아났다.
“여길 찾아낸 걸 보니 자네도 보통 사람은 아니겠지. 신자인가?”
“아뇨. 대주교 영감님 꼴을 보니 아마 앞으로도 믿지 않을 겁니다.”
“여, 영감?”
-사장님, 신시아 씨 연결했어요. 대역폭 조정해 놨으니까 스피커 모드로 돌리면 얼추 얘기를 나눌 정도는 될 거예요.
이건 알고 있지.
귀걸이를 조작하자 신시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메가 님?
“네. 신시아 씨.”
신시아의 목소리를 들은 대주교가 목소리를 높였다.
“정말 야스민 가의 신시아 님이십니까? 헤지르, 아니 야바니에르입니다! 제가 어릴 적에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밖이 기계 돌아가는 소리로 엄청 시끄럽다고는 하지만 대주교가 꽥꽥 소리 지르는 것이 왠지 불안해진 나는 대주교를 진정시킨 뒤 스피커 모드를 꺼버렸다.
“분명 미사에서 대주교의 모습을 본 것 같은데, 이 영감님은 꼴을 보니 여기 오래 갇혀 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된 건 줄 모르겠네.”
“파라터스가 가짜를 만들어 낸 게야! 나를 닮은 가짜를! 내가 여기 갇힌 것이 벌써······몇 년인지도 모르겠군. 부양 대지가 완성된 직후로 기억하네. 얼마나 지났지?”
“4년 정도 지났다고 하네요.”
“시간이 그렇게나······.”
망연자실해서 주저앉은 대주교는 일단 뒤로 하고, 노인의 머리를 덮은 장치와 돔 천장을 뒤덮은 도형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자 신시아의 목소리가 심각해졌다.
-말만 들어서는 술식을 발동시키는 힘을 강제로 야바니에르에게서 뺏어 오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살아있고, 왜 기계 교단의 대주교가 되어 있는 건지······.
말을 전하자 대주교의 입에서 넋두리 같은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건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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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바니에르.
사령술에 재능을 타고 났던 소년은 세상이 사령술을 대하는 태도와 멸시에 불만을 가졌다.
“모두 죽어 부스러질 테니 아예 대지 전체를 죽음으로 가득 찬 영광된 곳으로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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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잠깐만요.”
대주교의 말을 끊었다.
“그건 별로 안 궁금하니까, 나중에 신시아 씨랑 만나게 되면 따로 하시고요. 기계화 좀비 얘기랑 영감님이 왜 여기 갇혀 있는지나 얘기해봐요.”
대주교가 나를 향해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면서도 당시의 얘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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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대군을 일으킨 야바니에르······는 열흘 밤낮의 전투 끝에 죽음을 맞이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숨은 아주 가늘게 이어지고 있었다.
다른 공공 집행자들이 돌아갔을 때, 디트로이트 권역의 공공 집행자, 페테르가 끊어질 듯 숨을 쉬는 그에게 접근했다.
“기계 교단에 들어와라. 살려주겠다. 하지만 이름도, 과거도, 사령술도 버리고 새로 태어나야 한다.”
야바니에르는 죽음을 그렇게도 사랑했으면서 결국 마지막 순간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삶이라는 동아줄을 부여잡았다.
“사령술사 야바니에르는 이 자리에서 죽었다. 네 이름은 이제 헤지르다. 가장 먼저 기름 부음 받은 사도의 이름이니 귀히 여겨라.”
그렇게 야바니에르는 죽고, 사이보그이자 기계 교단의 사제 헤지르가 태어났다.
헤지르는 약속을 지켰다.
사령술을 멀리했으며 과거와도 등을 졌다.
페테르도 힘을 써서 헤지르의 과거를 지워주었다.
교단 내에서도 헤지르의 과거를 아는 자는 극히 드물었다.
헤지르의 헌신은 교단에서도 인정했다.
교단에 들어선지 20년, 헤지르는 성지인 대림 교구의 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의욕적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대림 에어리어와 마포 에어리어를 잇는 한강 위의 인공 부양 대지를 만들어 신께 봉헌하자는 생각도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교단에서는 난색을 표했다.
너무 많은 재원과 인력이 들어갈 것이라는 이유였다.
재원이야 기부와 헌금으로 해결이 된다지만 인력이 문제였다.
흐르는 강 위에 지어지는 부양 대지.
너무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헤지르는 결국 등 돌렸던 과거의 늪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었다.
사령술로 움직이는 기계화 좀비의 컨버터와 구동 체계, 동력 공급 시스템을 홀로 설계했다.
천재라 불렸던 사령술 재능과 오랜 기간 기계 교단의 성직자로 재임하며 쌓인 지식의 조화.
생산 체계를 구축하기에는 혼자만의 힘으로 부족해 사령술 협회에 도움을 요청하고, 관심을 보이는 어린 사령술사들을 설득해 기계 교단의 성직자가 되게 했다.
그 가운데 파라터스가 있었다.
광기 어렸다고 해도 좋을 만큼 좀비에 집착하는 파라터스의 모습.
헤지르는 파라터스에게서 편협했던 과거의 자신이 비쳐 보였다.
그렇기에 헤지르는 더욱 더 파라터스에게 마음을 썼다.
연민에 가까운 그 마음 때문에 말해서는 안 될 자신의 과거 편린을 흘렸는지도 모른다.
비밀리에 조직된 이들은 마침내 기계화 좀비의 생산 시스템을 갖추는 데까지 나아갔다.
헤지르는 제자들을 세계 곳곳의 권역으로 파견해 시체를 대림 교구로 보내게 했다.
그즈음 인공 부양 대지의 건설이 시작되었고, 탈취 기능 의복을 두텁게 입은 기계화 좀비들이 투입되어 공사를 도왔다.
긴 공사가 끝나고 모든 제자들이 모였을 때, 헤지르가 말했다.
“가르친 것을 잊으라 하는 것은 소용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내보이지 말아라. 기계화 좀비는 너무나 위험하다.”
파라터스가 반박했다.
“어째서입니까. 이건 세계의 판도를 바꿀 물건입니다.”
“파라터스, 너는 사령술에 대해 깊게 뿌리내린 반감을 모른다.”
그 반감에 자신도 일조했기에 헤지르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자는 쉬이 수긍하지 못했다.
“이것들만 있으면 반감을 가지는 놈들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습니다. 강하고 빠르며 튼튼한 좀비. 이건 기계 교단과 사령술의 위대한 진보입니다.”
“더 이상은 논하지 말거라. 아무리 신원이 확실하지 않은 시체를 사용했다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이건 교단에서 보기에 이단의 길일 수도 있다. 모두 이 일에 대해 평생 함구해야 할 것이다.”
“이단이라니요. 누가 감히 부양 대지를 만든 저희에게 이단이라 하겠습니까.”
“이단이 다른 것이더냐. 신께서 일러주신 길을 벗어난 것이 이단이다.”
그렇게 제자들에게 일러두고 돌아선 헤지르의 머리에 충격이 가해졌다.
쓰러지는 헤지르의 귓가에 파라터스의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세상을 놀라게 할 물건을 만들고 고작 이단이 두려우십니까. 이건 이단이 아닙니다. 진보이자 개혁이지요. 스승님이 이루지 못한 꿈, 이 제자가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힘이나 보태면서 그날을 목도하시면 됩니다.”
헤지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머리에 무언가 씌워진 채로 철창 안에 갇힌 상태였고, 부품 몇 개를 빼버렸는지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사령술을 사용하려 해도 모두 머리에 씌워진 장치로 빨려가버렸다.
특출난 스승을 둔 제자의 솜씨였다.
그렇게 그는 누군가 구하러 올 것이라는 야트막한 희망만으로 몇 년의 세월을 버텨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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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파라터스만이 드나드네. 파라터스는 뜻을 함께하고 나를 배신한 다른 제자들에게도 이곳에 들어오는 걸 허용하지 않았네. 단 한 번도.”
긴 얘기를 다 들은 나는 귀를 긁적이며 정리를 했다.
“영감님은 배신당해서 여기 갇혀 있었다? 그럼 학교 습격은 모른다는 뜻이네요.”
“그것에 관해서는 알 수 없네. 하지만 몇 년 전, 파라터스가 아주 귀한 종족을 발견했다면서 곧 시체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네. 그와 관련된 것이 아닐는지······.”
젠장.
아무래도 제대로 찾은 것 같다.
짧게 읊었다.
“엘프 둘, 거신족 혼혈, 늑대인간.”
“엘프는 모르겠네만 늑대인간과 거신족 혼혈에 관한 얘기를 했었네.”
좀비는 사령술사의 기운을 받아 움직이지만, 그 토대인 시체의 상태와 종족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좋은 시체를 구하기 위한 사령술사들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
늑대인간과 거신족 혼혈은 좀비의 토대로 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체가 됐을 터.
하지만 문제는 희귀성이다.
거대 도시인 네오 서울에서도 두 종족, 특히나 거신족은 매우 희귀한 축에 속한다.
그냥 시체도 아니고 살아있는 사람을 죽여 기계화 좀비로 만들려고 했던 건가.
다시 한번 나이누안의 기억에서 보고 들었던 것들이 스쳐 지나간다.
제발 내 빈약한 추측이 빗나가길.
부디 그런 좆같은 이유가 아니었길.
“자네······손이······.”
대주교의 목소리가 떨린다.
내려다보니 손에서는 나이누안의 마나 하트를 흡수한 직후처럼 열기와 냉기가 번갈아 흘러나오고 있다.
어렴풋이 화염과 얼음이 맺혔다 사라지는 것이 보일 정도.
마법은 감정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던가.
나는 히어로도, 정의감에 불타는 용사도 아니다.
그저 의뢰가 들어오면 처리하는 해결사일 뿐.
하지만 이건.
“인간 말종이어도 정도껏 인간 말종이어야지.”
주먹을 꽉 쥐자 이상현상이 사라졌다.
“대주교 영감님, 제가 파라터스한테도 영감님한테 물어본 걸 똑같이 물어볼 겁니다. 그리고 만약 제가 생각한 것이 맞다면······.”
말을 맺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행동으로 옮기고 싶었으니까.
뒤에서 잠깐 기다리라는 대주교의 말이 있었지만 나는 이미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나서자 공장 곳곳에는 무장한 로봇과 드론이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컨베이어 벨트는 가동이 되고 있었다.
저기 높은 곳의 유리창 너머, 파라터스의 모습이 보였다.
[경량화]
[곡예]
로봇들의 머리통을 밟고 점프한 뒤, 공중에서 이동 중인 드론에 몸을 실었다.
나를 발견한 다른 사제들이 소리를 쳐대자 곧 로봇들이 내게 무기를 겨냥하고, 드론들이 주위에 몰려들었다.
그것들은 당장이라도 나를 고기 조각으로 만들 것 같이 흉흉했지만, 파라터스가 한쪽 손을 들자 발포하지는 않았다.
유리창이 좌우로 갈라지고, 파라터스가 예의 그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조사에 너무 열중하신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해결사님.”
“그럴지도.”
“이게 다 뭔가 놀라실 것 같은데, 오해 마십쇼. 이건 모두 헤지르 대주교님의 명령으로······.”
말을 끊었다.
“3년 전, 대림 에어리어 26구역의 학교가 습격당했다. 피해자는 엘프 염력술사와 늑대인간 마법사를 포함한 당시 학교에 있던 인원 대부분. 거의 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아는 바 있나.”
파라터스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눈썹 한 올 움찔하지 않았다.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내 뒤쪽 어딘가로 시선이 옮겨간 파라터스의 얼굴이 구겨졌다.
대주교가 갇혀 있는 방의 문이 열린 걸 본 건가.
그의 목소리가 흔들린다.
“어디까지 들었습니까.”
칼자루를 꺼내 두 번 비틀었다.
“내 질문에 답해라.”
피식 웃는 파라터스가 말한다.
“다 알고 온 모양이군.”
그는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적당히 던져주는 미끼나 물었으면 대주교도 이단으로 끌려가고, 그쪽도 계속해서 우리와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었을 텐데. 퓨어라 멍청한 건가?”
광자 검날의 웅웅대는 감각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진다.
“해결사 양반, 조용히 있었으면 목숨이라도 붙여 갈 수 있잖아.”
“다시 말한다. 질문에 답해라.”
“26 에어리어의 폐교? 기계화 좀비가 전투에도 통한다는 데이터를 쌓기에 좋은 기회였지! 희귀한 종족의 시체도 얻을 수 있고! 거신족은 혼혈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나?”
여전히 비열하고 간교한 표정을 지우지 않고 있는 파라터스.
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진다.
“이걸 캐묻기 위해 접근한 건가? 찾아 헤매던 걸 얻은 기분은 어떻지? 그 대가가 죽음일 거라는 건 예상했나?”
파라터스가 자신의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를 손으로 쥐자 아래쪽에서 굉음이 나며 컨베이어 생산 라인이 벽과 바닥으로 사라진다.
말끔해진 바닥이 다시 한번 접혀 들어가며 거대한 구조물 여럿이 솟아올랐다.
촤르륵하는 소리를 내며 개방되는 구조물.
안에는 각양각색의 종족들이 기계화 좀비가 되어 대기 중이었다.
병마용갱을 세로로 쌓아 올리면 저런 형태가 될 것 같다.
아니, 좀비용갱인가.
“곧 네 동료가 될 테니 미리 인사해. 수연 님이 네게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기계화 좀비로 만들어 드리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지 궁금하군. 혹시 모르지, 어쩌면 진오 그 녀석을 죽여 내게 주실지도.”
기계화 좀비들이 나를 향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결국, 추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괴한들의 정체를 밝혀달라, 왜 그랬는지 알아봐달라.
의뢰는 모두 완료했다.
나이누안.
영화로운 마법사의 삶을 누릴 수 있음에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향을 바꾸려 했던 사내.
더러운 욕망에 휘둘리는 사령술사의 농간에 죽어서는 안 됐던 사내.
나는 그의 삶을 엿봤다.
만일 그가 살아있다면, 그리고 나와 만났다면 좋은 친구가 되었을 거다.
틀림없다.
그러니,
이건 불꽃처럼 살다가 얼음같이 차갑게 식어간 친구의 죽음에 대한 화풀이일 뿐이다.
들끓는 감정이 의지와 행동이 된다.
드론을 밟고 파라터스가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닫히려는 유리창을 향해 검을 들고 있지 않은 손을 뻗었다.
번아웃에 잠겨있을 때도 틈틈이 연습했던 빙결계 마법이자 나이누안의 분노가 내 손에서 펼쳐졌다.
[스카디skaði]
혹한의 냉기가 파라터스를 향해 들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