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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24화 (25/258)

024.

024.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주어진 정보가 너무나 적다.

수풀 속에 웅크린 뱀을 건드리는 악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뱀을 잡으려면 수풀로 들어가야하고, 호랑이를 잡으려면 굴로 향해야 한다.

기계화 좀비를 만들어내는 컨버터의 프로토 타입이 10년 전 이곳으로 옮겨진 것까지는 확실하다.

높게 솟은 성당, 어쩌면 그것은 어딘가에 수많은 시체를 숨긴 거대한 공동묘지일지도 모른다.

강령술사도 기계 교단의 사제가 될 수 있냐는 질문.

파라터스의 입이 열린다.

“다른 사제들과 같이 수행과정을 거친다면 가능은 합니다. 다만 실제로 그런 사제분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가능성은 확인됐다.

조금 더 파고들어야 한다.

“파라터스 사제님은 계속해서 대림 교구에 계셨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희는 기본적으로 순환 배치가 원칙입니다. 물도 한곳에 머물면 고여 썩어버린다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혹시 그 주기가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있습니까.”

“일반적으로는 3~4년에 한 번씩 교단 중앙청에서 인사이동 공지를 합니다.”

기계화 좀비에 관해 사령술 협회에 남겨진 문건은 10여 년 전의 것이 마지막.

만일 대림 교구의 누군가가 개입되어 있다면 적게는 2번, 많게는 3번까지도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는 시간.

‘허탕인가.’

파라터스가 기쁘게 웃었다.

“어째 해결사님께서 저희 교단에 관심을 많이 가지시는 것 같아 기쁘군요.”

내 몸 여기저기를 보는 것이, ‘요 썰고, 저 썰고.’ 해서 기계로 교체하려는 견적을 보는 것 같다.

신앙을 강권하지는 않는다더니 부담을 주는 방식이었나.

대화도 이어갈 겸, 별 의미 없는 대화거리를 던졌다.

“사제님께서는 대림 교구에 오시기 전에 어디에 계셨습니까.”

“저는 태백 권역에 있었습니다.”

태백 권역은 현실의 강원도와 함경도 일부를 포괄하는 거대 권역.

하지만 거대한 영역과는 다르게 혹독한 기후 때문에 다른 권역보다 발전 정도는 낮다.

“분명 부동액이 첨가된 혈액 세트라고 해서 큰맘 먹고 구매해갔는데 몽땅 얼어버렸을 때는 얼마나 황당하던지요. 허허허. 그때가 벌써 7년 전이니 슬슬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가 되었습니다.”

말을 마친 파라터스가 손을 들어 이마에 기계 교단의 문양을 그렸다.

저번에 봤던 미사에서 엔진을 앞에 둔 대주교가 신자들을 향해 같은 문양을 그렸던 것이 생각난-

‘대주교?’

내 의도가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히 말을 건넸다.

“혹시 사제님께서 대림 교구로 오셨을 때도 지금의 대주교님이 계셨는지요.”

“그렇습니다. 대주교님은 저희와 같은 평사제와는 다르신 분이니까요. 이곳에서 계신 지가 30년은 족히 되실 겁니다. 교구의 상징과도 같은 분이지요.”

범위가 좁혀졌다.

#

“구린내가 심하게 나. 들어가 봐야겠어.”

-들어가요? 어딜요.

“성당 지하.”

-거긴 사제들밖에 못 간다면서요.

“그러니까 몰래 들어가야지.”

앨리스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체념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시하실 건 없고요?

너도 이제 내 스타일을 좀 알아가는구나.

진정한 파트너로 거듭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성당 지하 설계도나 인원 배치 정도 알 수 있으면 좋겠지?”

내가 들뜨는 것과 반대로 앨리스는 축 가라앉았다.

-일단 찾아는 보겠지만 큰 기대는 마세요. 기계 교단 내부 정보는 제대로 된 게 거의 없더라고요. 대부분 뜬소문이에요.

“일단 그렇게라도 부탁해. 아! 신시아 씨한테 연락해서 대주교 주변 인물 중에 강령술사가 있는지도 알아봐달라고 부탁 좀 해줘.”

-이제 신시아 씨한테 별로 미안하지도 않나 보네요.

“도움이 없으면 결국 너랑 내가 더 죽어난다는 소린데?”

-바로 연락해볼게요. 성당에는 언제 가실 건데요.

“지금.”

-네?

#

저녁 미사를 위해 사람들이 물밀듯 성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인파에 섞여든 채로 성당 내부에 들어섰다.

저번과는 또 다른 안드로이드가 나를 막아섰지만, 이전에 발급받은 통행증을 내밀며 말했다.

“몇 번 들르니 관심이 생겨서요. 오늘은 조사가 아니라 미사를 한 번 참여해볼까 하고 왔습니다.”

끄덕인 안드로이드가 단말기에 손가락을 연결한 채로 내게 다른 손을 대려 했다.

전기신호 검문을 하려는 시도.

구린 냄새가 풀풀 나는 곳에 무기 하나 없이 갈 수는 없었다.

안드로이드의 손이 닿기 직전, 미리 헐겁게 해두었던 허리춤의 칼자루 결속 매듭을 풀었다.

한순간 허리가 가벼워졌다.

칼자루가 떨어지는 사이, 전기신호 검문의 정전기 비슷한 느낌이 몸을 훑고 내려간다.

안드로이드가 내게서 손을 뗀 순간, 떨어지던 칼자루를 발끝으로 차올렸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몸 옆에 딱 붙였던 손에서 뻗은 손가락에 칼자루의 감촉이 스쳐 간다.

‘너무 셌나?’

짜릿한 척 연기를 했다.

“으앗! 따끔해라!”

몸을 옆으로 움찔하며 놓칠뻔한 칼자루를 낚아챘다.

“오늘은 강도가 좀 세군요.”

지잉-?

고개를 갸웃하는 안드로이드.

“끝났죠? 들어갑니다?”

당당한 물음에 안드로이드가 길을 터줬다.

‘성공!’

전기신호 검문이 순식간에 진행된다는 점에서 착안해 즉석에서 생각해낸 임기응변이 통했다.

물론 [튕기기]와 [낚아채기] 스킬이 없었다면 칼자루가 떨어졌을 테고, 꼼짝없이 맡겨놔야 했을 것이다.

그딴 걸 그냥 하지 누가 스킬로 배우냐면서 날 보고 깔깔대는 놈들도 있었더랬지······.

혹시 모르지.

배워두면 안드로이드의 검문을 피하는 날이 올지도.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안쪽으로 진입하는 척하다, 홀의 뒤편으로 향했다.

사제들만이 이용하는 공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보였다.

“들려?”

-네.

“어떻게 됐어?”

-CCTV망 일부 교란하는 게 제가 드릴 수 있는 도움 전부일 것 같아요.

앨리스는 갖은 수를 써봤으나 결국 성당 지하의 설계도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한다.

내부 CCTV망에 실시간으로 침투해서 대략적인 위치만 알려줄 수 있고, 그마저도 추적에 걸리면 바로 빠져나와야 한다.

지극히 제한적인 지원밖에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

“그거면 감지덕지하지.”

[기척 죽이기]를 사용하자 발소리를 비롯한 몸에서 나는 소리가 사그라들었다.

이어서 사용한 [청력 강화].

멀리서 사제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들어갈게.”

#

파라터스가 말했던 것처럼, 성당의 지하는 매우 넓고 복잡했다.

사제들이 많이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미리 감지하고 피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

“더럽게 넓네. 이거 오늘 안에 못 찾겠는데.”

그렇게 한참이나 안쪽으로 진입하자 앨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밖으로 나오셨어요?

“아니. 아직인데, 왜?”

-CCTV에 사장님 모습이 안 보여요.

[은신] 스킬은 오래 지속되는 스킬이 아니기에 정말 중요할 때 쓰려고 사용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내가 있는 곳은 CCTV도 설치되지 않았다는 소리.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일단 계속 갈게.”

-조심하세요.

“그래. 일단 통신은 되는 모양이네. 내가 따로 말 안 해도 5분 단위로 먼저 연락 좀 해줘. 통신이 끊긴다면 어느 지점에서 끊기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으니까.”

-일단 실시간으로 사장님 신호 잡아내고 있긴 한데, 그렇게 할게요.

계속 나아가자 통로는 어두워지고, 갈림길 없이 쭉 이어졌다.

누군가 반대편에서 접근한다면 꼼짝없이 들킬 상황이었기에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던 중, 앞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잡혔다.

조심스레 다가가니 거대한 문 앞에 사제 한 명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언제쯤 오시려나······.”

사제의 말소리가 아슬아슬하게 들리는 거리에서 걸음을 멈춘 채 주위를 눈에 담았다.

사제의 목에는 기계 교단의 문양을 형상화한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파라터스를 비롯한 다른 사제들에게서는 보지 못한 장신구.

그리고 문의 한쪽에는 목걸이의 문양과 딱 들어맞게 생긴 홈이 있었다.

‘대충 어떤 식으로 여는지 알 것 같구만.’

여기서부터는 소수의 인원만 들어올 수 있는 구역일 것이다.

저 목걸이는 일종의 열쇠일 것이고.

모든 스킬을 해제했다.

작은 발소리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평범한 내 발소리가 천둥처럼 울리는 것 같았다.

“임팔리움 사제······님?”

나를 보고 당황한 사제의 목소리.

하지만 그는 곧바로 경계심 가득한 태도를 보였다.

“누구십니까! 이곳은 허가받지 않은 자들이 올 수 없는 곳입니다! 돌아가십쇼!”

사제의 몸 곳곳에서 키리릭거리는, 어딘가 신경을 긁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무기라도 장착하고 있는 건가.’

무의미한 충돌은 질색이었다.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나를 보는 사제의 눈빛에 적의가 가득했다.

주먹 하나를 뻗어 검지를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좌우로 흔들면서 혀를 차서 ‘딱’, ‘딱’하는 소리를 냈다.

[최면]

이제 곧 사제는 쓰러질 테고, 그럼 나는 목걸이로 저 문 너머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면 되는 거다.

“이상한 짓을······. ABT의 스파이인가보군!”

사제는 최면에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쌩쌩해져 날카롭게 외쳤다.

‘분명 지하 투기장에 침입할 때는······!’

뒤늦게 이 사태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최면]은 기계류에게는 통하지 않는 스킬이다.

일시적인 감각의 혼란을 유도해 뇌를 트랜스 상태로 끌고 가야 하는데, 기계 특유의 논리회로에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즉, 저 사제는 뇌의 일부, 혹은 전체를 교체했다는 소리기도 하다.

“교단의 발전을 저해하는 자들에게는 안식을!”

찰랑거리는 금속 질감의 성직복을 벗어던진 사제의 양팔이 갈라졌다.

4개가 된 그의 팔.

위쪽 두 팔에는 소형 캐논이, 아래쪽 두 팔은 한 번 비틀리더니 방패 같은 형태로 변형.

순식간에 마치 요새의 벽 뒤에서 총을 겨누는 사수처럼 변한 사제.

소형 캐논의 끝에 빛이 모여든다.

대체 문 뒤에 뭐가 있길래 이렇게나 침입을 염려하는 걸까.

이러면 더더욱 궁금해지잖아.

피슛-

캐논에서 발사된 빛의 탄환이 내 가슴팍을 뚫는다.

피가 터져 나와야 하지만, 가슴팍에 뚫린 구멍을 중심으로 내 몸이 일렁거릴 뿐이다.

[신기루]

무너져내리는 내 모습.

사제가 당황하는 사이, 나는 [은신]을 사용해 사제의 뒤에 접근해있었다.

눈이 따가웠다.

[플람 수플레]가 호흡을 내뱉는 동안 지속되는 것처럼, [은신]은 눈을 깜빡이지 않는 동안만 지속된다.

밸런스를 무너트릴 수 있는 스킬에 대한 서리얼의 제한책인데, 게임에서는 그저 몇 초 후에 풀린다고만 생각했지, 이렇게 현실에서 눈이 따끔거리니 체감이 다르다.

눈을 깜빡이고 칼자루를 꺼냈다.

모든 방어와 공격을 전면에 집중한 만큼, 사제의 뒤는 무방비에 가까웠다.

검을 전개하지 않은 상태로, 칼자루의 폼멜 부분을 이용해 사제의 목 뒷부분을 강하게 내려쳤다.

“크헑-!”

단 한 방에 사제가 앞으로 고꾸라졌지만, 확인차 다가가서 머리통을 몇 대 더 때렸다.

역시 어른들 말씀에 틀린 거 하나 없다.

기계가 말을 안 들으면 때려야 한다.

통통 거리는 소리에 기묘한 쾌감이 올라올 즈음, 내가 걸어왔던 통로에서 소리가 났다.

“호른 사제? 거기 있나?”

누군가 접근하고 있었다.

서둘러 사제가 벗어놓은 성직복을 걸쳐 입고, 쓰러진 사제의 목걸이를 빼서 문에 가져다 대자 거대한 문이 열렸다.

바로, 정신을 잃은 사제를 들어 안으로 옮기고 나서, 어레스트를 물린 채로 대충 구석에 구겨 넣으니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볼 정신이 좀 생겼다.

“들키는 줄 알았······. 이게 다 뭐야.”

기계 교단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곳이었다.

아래로 보이는 것은 축구장이 들어갈 것 같은 거대한 공간.

뭔가를 자르고 이어붙이는 소음이 가득해서 마치 공장에 온 것 같았다.

소음의 발산지는 공간 곳곳을 빙글빙글 돌게 설치되어 있는 컨베이어 벨트.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움찔거리는 것은 분명 좀비였고 산업 로봇이 계속해서 팔을 움직이며 좀비의 신체와 기계 부품을 갈아끼웠다.

상상치도 못했던 광경에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와중, 이 지하 공간의 천장에까지 시선이 미쳤다.

돔 형태의 천장에는 육망성을 기초로 해서 다양한 변형을 거친 도형들이 가득했다.

신시아가 좀비를 조종할 때 보여줬던 것과는 흡사한 듯하면서 상당히 달랐다.

“허, 기계화 좀비 공장을 차려놓고 있었다니.”

다른 곳도 가보기 위해 움직이려는 순간, 내가 들어온 거대한 문이 열리고 몇몇 사람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호른은 어디로 간 거지? 먼저 와 있겠다고 하지 않았나?”

“분명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한 것 같은데, 먼저 들어온 모양입니다. 바로 찾아보겠습니다.”

“왜 그리 성급한지······. 빨리 찾아내도록 해.”

“예. 바로 연락해보겠습니다.”

익숙하게 다른 사제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남자.

파라터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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