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023.
수술대처럼 생긴 의자로 다가가자 시체가 한 구 놓여있었다.
신시아가 설명을 시작했다.
“좀비는 사령술사에게 계속해서 힘을 공급받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곧 부패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머지않아 평범한 시체로 돌아가고 말죠.”
신시아의 몸에서 일렁이는 기운이 퍼져나가 시체에게 닿자 좀비가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사령술사로부터 충분한 힘을 공급받은 좀비는 고통을 느끼지도, 상처로부터 피를 흘리지도 않는 상태가 됩니다. 주인의 명령만을 수행하는 종이 되는 거죠.”
그어어어-
낮은 신음을 흘리던 좀비가 의자에서 벗어나 절뚝이며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령술사가 아무리 큰 힘을 공급한다고 해도, 좀비는 찢어지고 부패한 근육과 뼈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 자체의 완력은 일반적인 성인의 것보다 낮다고 할 수 있죠.”
몇 걸음 걷던 좀비의 다리가 우지끈하고 부러지더니 앞으로 고꾸라졌다.
신시아가 기운을 거두자 좀비는 다시 시체로 돌아갔고, 사령술 협회 사람들이 다가와 좀비의 몸과 분리된 다리를 들어다 시체 가방에 넣었다.
그들은 다른 시체 가방에서 시체 한 구를 꺼내 의자 위에 올려놨는데, 이전의 좀비와는 외양, 특히 하반신의 모양새가 달랐다.
“그렇기에 좀비의 근력과 운동능력을 늘리기 위해 이런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나- 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모두의 눈이 시체의 하반신에 고정되어 있었다.
근육 대부분이 번쩍번쩍 빛나는 금속으로 대체되어 있었고, 얼핏 안쪽으로 보이는 뼈도 무언가로 코팅된 것처럼 보였다.
“이건 저희 안드로이드의 구조와 흡사해요.”
앨리스의 말을 신시아가 긍정했다.
“맞아요. 다만 안드로이드와의 차이는······.”
시체의 가슴팍을 슬쩍 열어본 내가 지레짐작했다.
“이건 동력원인가?”
“오메가 님이 말씀하셨네요.”
시체의 상반신이 제법 두껍다 싶더니, 상의 안쪽에 방탄조끼와 흡사한 모양의 뭔가가 있었다.
“안드로이드는 기름이나 태양광, 전기 같은 동력을 사용하지만, 이 녀석들은 여전히 좀비라서 사령술사의 힘을 동력으로 사용해요. 여기 이 장치는 사령술사에게서 전해진 힘을 교체된 부위에 전달해 주는 장치에요. 일종의 컨버터죠.”
“그게······가능해?”
타이린드의 말에 신시아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효율이 말도 안 되게 구려. 이거 하나한테 쏟아붓는 힘이면 일반 좀비 10구 넘게 통제 가능해. 10년 전에 남겨진 프로토타입 설계도만 보고 급하게 만든 거라 그럴지도 모르지.”
“통제권은 여전히 사령술사에게 있는 거죠?”
“제가 할 말을 오메가 님이 다 해주시니 저는 편하네요. 맞아요. 그게 안드로이드와의 두 번째 차이예요. 이 기계화 좀비는 자율행동을 하지 못해요.”
팔을 걷어붙인 신시아가 주위의 사령술 협회 사람들에게 신호하고 우리에게 경고했다.
“조금 뒤로 떨어져 있으세요. 위험할 수 있어요.”
신시아가 손을 뻗어 육망성을 골자로 한 도형들을 허공에 그려 넣었다.
도형들이 흐물거리며 좀비에게로 빨려 들어갔고, 놈의 상체에서 두구두구 하는 소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움직여요!”
앨리스의 말에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어어어-
좀비가 몸을 일으켰다.
상반신은 조금 전에 봤던 좀비와 똑같이 흐느적거렸지만, 근육과 뼈가 금속으로 교체된 하반신은 꼿꼿하게 서 있었다.
신시아의 손 모양이 바뀌자 좀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발을 내딛는 아이처럼 위태위태했던 걸음이 뜀박질로 바뀌는 데는 채 열 걸음이 지나지 않을 무렵이었다.
좀비를 통제하느라 애쓰는 신시아를 제외한, 자리의 모두가 입을 떡 벌렸다.
심지어 사령술 협회의 사람들까지도.
하반신에서 올라오는 충격을 다 완화하기에는 힘들었는지 상반신의 살점을 여기저기 흩뿌리고 있긴 했지만, 분명 좀비는 달리고 있었다.
“후우······.”
좀비를 원래의 의자 앞으로 가져다 놓은 신시아가 길게 호흡했다.
“어때요? 이 정도면 오메가 님이 찾으시는······.”
근처에 서 있던 사령술 협회 사람이 외쳤다.
“아직 움직인다! 위험해!”
분명 신시아의 손이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좀비가 일어서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이게 왜······!”
턱에 맺힌 땀을 닦을 새도 없이 신시아가 다시 손을 들어 좀비의 통제권을 가져오려고 시도했지만, 좀비의 속도가 생각보다 빨랐다.
말보다 내 몸이 먼저 움직였다.
먼저,
[축지縮地]
한 걸음만으로 여러 걸음을 걸어야 할 거리를 좁히는 스킬.
신시아와 좀비 사이로 진입하고 한 손을 뻗었다.
문드러져 가는 좀비의 목 근처 피부의 감촉이 느껴짐과 동시에 허리와 무릎을 옆으로 틀며,
[유술柔術]
[흡착吸着]
좀비의 몸이 내 손바닥을 따라 들렸다.
그어어어어-
붕 뜬 좀비의 몸을 허공에서 돌려 놈의 등이 땅 위를 지나갈 때 즈음,
[척경尺勁]
내려치는 손바닥에서 부드럽게 퍼지는 충격파.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스킬의 조합에 좀비가 대자로 땅에 처박힌다.
손에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
아직 컨버터는 정지하지 않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기계에 함부로 손을 댈 수도 없는 노릇.
‘일단 동력이 전해지는 걸 막는다.’
양손에 주먹을 쥐고 좀비의 배에 파신권破身拳을 갈기려 했다.
‘속이 어떻게 되어서 컨버터의 동력을 아래로 전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엉망으로 만들면 움직이지는 못하겠지.’
좀비의 가슴 부근에 위치한 컨버터 본체가 박살이 나는 것보다는 그게 더 나을 거다.
주먹 쥔 손을 치켜든 순간!
“그만! 이제 됐어요!”
신시아의 말이 귓전을 때린다.
그녀가 허공에 그려낸 도형이 다시 좀비의 몸에 스며드는 것이 보이는 것과 동시에 좀비의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놈의 하반신은 움찔대고 있었다.
“어서 와! 이거 벗겨!”
사령술 협회의 사람들이 달라붙어 좀비로부터 컨버터를 분리했다.
그제야 완전히 좀비의 움직임이 멈췄다.
놀란 표정의 타이린드가 소리쳤다.
“상대가 아무리 좀비라지만 완전히 가지고 놀던데!”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정답이다.
주제 모르고 덤벼드는 놈들을 최대치로 능욕하기 위해 배워둔 맨손 계열 유술과 기공 스킬들이다.
맨손으로 격차를 보여주면 우는 것과 화내는 것의 중간 정도의 표정을 짓고 달려드는 것이, 절경도 그런 절경이 없다.
타이린드의 칭찬은 일단 흘린 채, 신시아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죠?”
“컨버터가 완벽하지는 않아요.”
아직 안정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제대로 동작할 때 좀비가 보여주었던 움직임은 일반 성인 이상이라고 봐도 좋았다.
“며칠 동안 처음부터 이 정도로 만들어내신 거죠?”
“네. 믿을만한 사람을 여럿 찾아 부분부분 제작해서 합친 거라. 다들 자기들이 뭘 만들었는지는 알지 못할 거예요.”
“이게 초기 도면이라고 하셨는데, 만약 누군가가 이걸 계속 연구하고 발전시켰다면 더 높은 안정성과 운동성을 가졌겠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남겨진 설계도만으로 이 정도의 실물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니까요. 아마 이걸 설계한 사람은 대단한 재능이 있었을 것 같아요.”
학교를 습격한 것들의 정체가 기계화 좀비라고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다.
하지만 눈앞에서 목격하니 생각이 기울었다.
움직임도 재빠르고, 사령술사의 힘을 전환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상처에서 아무 흔적도 묻어나지 않는다.
“사령술에 대한 이해도 굉장히 뛰어나요. 제안은 기계 교단 측에서 했다지만 어쩌면 애초에 사령술사가 개입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조건에 너무나 부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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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나와 앨리스를 태워주겠다는 신시아의 말에 못 이기는 척 차를 얻어 탔다.
호버 바이크를 타고 뒤따르는 타이린드를 보고 앨리스가 우와 하는 탄성을 뱉을 즈음, 앨리스와 잡담을 나누다 26구역의 폐교 이야기가 나왔다.
“그럼 오메가 님은 폐교의 마법사를 직접 보셨겠네요.”
나이누안 얘기다.
그의 마나 하트가 내게 전해진 것은 앨리스를 제외하면 누구도 모른다.
혹시나 말실수를 할까 싶어 말을 짧게 했다.
“네.”
“어땠나요?”
“어땠냐는 건 무슨 말씀이신지?”
“마나 하트가 과부하해서 마법사의 영이 남아 있는 사례는 매우 드물거든요. 거의 없다고 봐야죠. 사령술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어요.”
“어째서요?”
“마나 하트가 워낙 신비로운 기관이긴 하지만 마법사의 원령 자체가 목적을 가지고 남아 있는 경우는 보고된 적이 없거든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는 모르지만 오로지 원한과 과부하된 마나 하트로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전장에서 그런 현상이 많이 보여야 할 텐데 말이죠.”
나는 나이누안의 시야로 사건을 직접 보았다.
폐교를 습격한 사건은 분명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하지만 억울한 죽음을 맞은 마법사가 나이누안 뿐이었겠는가.
머릿속을 스멀스멀 잠식하던 안개가 걷혀 드는 기분이었다.
내가 흥미를 보이는 게 즐거운지 앨리스가 조잘조잘 떠들었다.
“그런데 그 주위가 워낙 위험하고 마탑들까지 개입하니까 협회 측에서 주의 권고를 내려서 가보진 못했죠. 제가 위험한 곳으로 가는 걸 아버지가 워낙 안 좋아하시기도 하고요.”
“잠시만요.”
“네?”
“만일 주위에 사령술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럼 원령이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요?”
“사령술사가 폐교의 마법사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조금 불쾌하네요.”
신시아가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사건을 대놓고 얘기해 줄 수 없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지만, 최대한 문제가 될만한 요소를 제외하고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습격 주체를 찾고 있는데, 그게 좀비일지도 몰라서······그래서 기계화 좀비에 대한 걸 알고 싶어 하셨군요!”
눈이 동그랗게 변한 신시아.
“타이린드에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제가 직접 말할게요. 타이린드는 정말 좋은 사람인 것 같지만 아무래도 루트에 얽혀있다 보니······.”
내 말에 신시아의 고개가 빠르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말을 이어나갔다.
“습격에 백 명 정도의 인원을 움직였다고 추정하고 있어요.”
“오메가 님은 그 백여 명이 기계화 좀비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거고요.”
“네.”
내 말에 신시아가 단칼에 답을 내렸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든 흔적이 남았을 거예요. 사령술의 인식이 부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짙은 흔적이거든요. 아마 그 사령술사도 본인이 그런 흔적을 남겼을 줄은 몰랐겠죠.”
“하필이면 마나 하트가 폭주했고, 이상 현상에 사령술의 흔적이 섞여들면서 원령이 남았다고 봐도 되겠죠?”
“정황 증거로만 봤을 때는 거의 확실해요.”
얘기를 나누는 사이 차는 대림 에어리어의 사무실 앞에 닿았다.
뒤를 따르던 타이린드는 어디론가 사라진 채였다.
“저는 협회로 돌아가서 관련된 사람이 더 없나 찾아볼게요.”
“그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돼요. 이건 제 의뢰인걸요.”
“아뇨. 사령술사가 이런 일에 얽혔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디 가서 말하지는 않을게요.”
그날 저녁, 나는 신시아에게서 걸려 온 통신을 통해 놀라운 말을 전해 듣게 되었다.
“컨버터의 프로토타입이 제작된 적이 있고, 그게 기계 교단 대림 교구로 옮겨졌다는 기록이 있다구요?”
관련자의 이름은 모두 지워지고, 그것이 마지막 기록이라는 신시아의 말이 있었다.
웅장한 성전聖殿 안에서 뭔가 구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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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다시 기계 교단의 성당을 방문하자 이번에도 파라터스가 나를 맞았다.
“명목상의 의뢰인 걸 아시면서도 이렇게 다시 방문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놀고 돈만 받아 가는 건 취향이 아니라서요.”
“허허, 그러십니까.”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처럼 성당 이곳저곳을 걷다가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저번에 미사를 보니 제단 아래에서 엔진이 나오던데 말입니다. 지하에도 공간이 있나 보죠?”
“방대하지요. 오랜 세월 개축과 증축을 거듭한 건물이라 지하의 면적이 지상의 몇 배는 될 겁니다. 대주교님을 제외하면 지하의 모든 공간을 아는 사제는 없다는 농담이 돌지요.”
이곳에서 시간 대부분을 보내는 사제들도 다 가보지 못할 정도의 공간.
비밀리에 실험할 곳은 충분하다는 말과 동의어다.
“또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입니다.”
“네, 말씀하시죠.”
“신자를 가리지 않고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기계장치의 신께서 품으신 뜻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사령술사도 기계 교단에 들어올 수 있습니까? 일반 신자가 아니라 사제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