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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22화 (23/258)

022.

022.

수연이라는 라미아족 여자, 매혹적인 미소를 짓고 있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보통 이상이다.

바라보고만 있을 뿐인데도, 거대한 뱀이 내 몸을 감고 있는 기분.

자기네 회사 생산기지를 테러하는 조직을 뒤에서 지원했다는 의혹이 도는 만큼, 수완과 영향력이 보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긴장한 기색을 내보이지 않고 담담하게 답했다.

“듣지 못했습니다. 이미 알고 오신 것 같지만, 해결사를 하고 있는 오메가라 합니다.”

내가 내민 오른손을 보는 수연의 눈빛이 묘하게 반짝였다.

“경계할 줄 알았는데, 이런 반응은 의외군요.”

“제가 상무님을 경계할 이유는 없습니다.”

“왜죠?”

“알고 계시면서 답을 묻는 것 같군요.”

끝이 갈라진 라미아의 혀가 맛있는 것을 본 듯 입술을 살짝 핥았다.

“그래도 한 번 들어보죠.”

“저는 예공방 내부의 인물도 아니고, 하르파고스 님을 지원하는 입장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클라이언트와 서비스맨일 뿐이죠.”

“상당히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더니, 이제 와 몸을 빼는 건가요?”

“빼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애초에 내부 사정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하르파고스 이사님께 몇 번이나 말씀드리기도 했고요. 그리고 제 행보는 이미 잘 전달되었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법 쉬쉬하는 모양이지만, 테러 조사 이후 갑자기 양 뿔을 잃은 사이먼에 대한 말이 돈다.

한쪽은 위타천이 부쉈지만, 다른 뿔을 잘라낸 사람은 누군지에 대한 관심이 솟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사이먼 본인과 선우가 입조심하고 다니는지 그게 나라는 말을 퍼지지 않았지만 둘을 조사에 끼워 넣은 수연 상무에게는 말이 올라갔을 것이다.

다시 한번 그녀의 혀가 나왔다 들어갔다.

혀를 통해 주위의 온도와 습도, 먹잇감의 위치와 거리, 그것의 온도까지 파악하는 뱀의 습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긴장도 안 할 줄이야.”

역시, 내 활력징후를 훑어봤음이 분명하다.

사실 뒤에서 스륵스륵 소리가 날 때부터 긴장과 공포를 없애기 위해 [명경지수] 스킬을 발동하고 있었다.

그 덕에 땀도, 호흡도, 정신상태도 맑은 거울과 미동 없는 호수처럼 평안하다.

억지로 감정을 제한하는 것 같아 좋아하지는 않는 스킬인데, 이럴 때에는 도움이 된다.

“아쉬워라. 하르파고스 같이 팔만 많은 인간이 아니라 나랑 먼저 만났으면 좋았을걸.”

그 말과 함께 찢어질 듯 당겨지던 주위의 분위기가 일소된다.

그녀의 하반신 끝이 바르르 떨리는 것과 동시에 들려오는 옅은 마라카스 소리.

명경지수 스킬을 뒤흔든다.

그러나 뚫어내지는 못했기에 눈살을 조금 찌푸리는 것으로 내 불편한 심기를 표현했다.

그러자 눈에 띄게 당황하는 수연.

“이런, 제가 실례를 했군요. 마음에 드는 남자를 보면 먼저 유혹하고 보는지라. 통하지 않을 줄은······상상도 못 했어요.”

내게 뭔가를 시도하려 한 건가.

대범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넘어가는 건 한 번뿐입니다.”

“가질 수 없는 남자라······더욱 탐이 나는데요.”

그녀가 혀를 내미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를 보는 눈빛에 소유욕이 어리는 것 같았다.

흡혈귀와의 식사에서 목덜미 물리는 걸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성당에서 뱀에게 통째로 소화되는 걸 염려해야 하는 처지였던 것이다.

분위기를 환기할 겸, 그녀에게 물음 하나를 던졌다.

“리벨리온을 지원하는 건 무슨 이유입니까.”

“지원이라. 그런 떨거지들에겐 과분한 표현이군요.”

그렇게 말하는 수연의 표정은 진정으로 불쾌해 보였다.

“오메가, 당신은 도구를 지원하나요? 도구는 사용하는 거예요. 용도를 다하면 버리는 거라고요.”

“고작 사용하고 버리기 위해 그 많은 무기를 쥐여준 겁니까. 그들은 위험합니다.”

“귀여워라.”

예상치 못하게 들린 단어.

수연은 몸을 일으켜 마치 어린아이를 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은 이 네오 서울에서 위험이라는 말이 가지는 무게를 잘 모르는군요.”

다시 한번 그녀의 하반신 끝이 떨리며 마라카스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끝이 갈라진 수연의 혀가 날름거리는 횟수도 증가했다.

“이런 말까지 해줄 생각은 아니었지만, 정말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남자가 나타났는데 죽음으로 달려가는 꼴은 볼 수 없어서 해주는 말이니 잘 들어요. 더 이상 나와, 그리고 그들과 엮이지 말아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눈에 힘을 주고 수연을 응시했다.

규칙적인 마라카스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 도시의 내면은 심연이랍니다. 모르는 게 좋을 지경이죠. 부디 오만과 혈기로 자신을 버리는 짓은 하지 말길.”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일을 방해한다면 쓰러트릴 뿐입니다.”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가늘게 떨리던 수연의 꼬리 끝이 멈추었다.

그리고 그녀는 썩 재밌다는 미소를 다시 한번 지었다.

“그래서 사이먼이 그 꼴이 된 거군요. 당신에게 거치적거려서.”

사라진 압박감 속에서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였다.

수연의 짧은 탄식.

“보면 볼수록 탐이 나요. 어째서 내가 아니라 하르파고스가 먼저였을까!”

고혹적인 얼굴로 투정을 부리는 라미아족은 꽤나 귀엽다······?

꼬리에서 들려오던 소리에 나도 모르게 홀린 걸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명경지수를 펼치자 호흡이 가라앉았다.

“어떤 사람인지 얼굴이나 보려고 왔는데, 꽤 많은 걸 얻어가는 것 같아 기쁘네요. 나중에 뵙죠.”

다시 특유의 스륵거리는 소리를 내며 챔버를 빠져나가려는 수연.

그녀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저기.”

귀걸이에 손을 대자 손바닥만 한 스파크가 일렁였다.

사무실도 있는데 명함이라도 파야 하는 것 아니냐니까 요새 누가 종이 명함 쓰냐며 앨리스가 만들어준 데이터 명함이었다.

투척 스킬을 발동해서 수연을 향해 데이터 명함을 날렸다.

팔랑거리던 명함이 수연의 손바닥에 닿았다.

“명함?”

“하르파고스 이사님과는 비즈니스 관계입니다. 그 말은 수연 상무님과도 비즈니스 관계가 될 수 있다는 뜻이겠죠.”

“우린 제법 악연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해야죠. 악연치고는 제게 상당히 호의적이시던데요. 게다가 악연이라고 느끼실 정도라면 제 능력은 증명됐다고 봐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내 말에 입을 가리고 웃던 라미아가 눈을 흘겼다.

“마성의 남자군요.”

그러더니 데이터 명함을 목걸이에 가져다 댔고, 명함이 목걸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안 되는 일도 되게 만드는 해결사 오메가였습니다. 의뢰는 사무실로 발주하시면 검토 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마지막까지도 입술 끝에 걸친 웃음을 지우지 못한 수연이 사라졌다.

챔버의 문이 닫히자 나는 무너지듯 의자에 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압박감이 무슨······.”

위타천과는 또 다른 종류의 초인이 분명하다.

매혹하는 기술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녀와 말을 나누며 솟았던 팔뚝의 소름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확실한 건 수연 상무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거대한 존재다.

테러리스트를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도구쯤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도시의 내면에 대한 언급도 했다.

그곳에는 수연 상무와 같은, 어쩌면 더 커다란 인물이 있을지도 모른다.

새삼 다시 한번 느꼈다.

나는 여기서 너무나 작은 존재다.

동시에 고양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밟고 올라갈 놈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때쯤, 챔버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파라터스의 발소리.

여전히 미사가 집전 중인 홀을 바라보며, 파라터스에게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저를 뱀의 입속으로 밀어 넣으셨더군요.”

사제의 표정이 뻣뻣하게 굳는다.

#

성당 밖으로 나오기 무섭게 신시아에게서 통신이 왔다.

“네, 신시아 씨.”

-기계화 좀비에 대한 문건을 찾았어요.

“정말요?”

-네. 얼추 재현도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어떤 문제요?”

-사령술 협회 측에서 재현을 반대하지는 않는데, 자료에 대한 외부 반출을 금지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번처럼 오메가 님 사무실 근처에서 보여드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협회의 방침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죠. 그럼 제가 사령술 협회로 가야 하나요?”

-오셔도 연구실이나 실험장은 등록된 사령술사들에게만 개방돼서 직접 보실 수는 없을 거예요.

“아······그래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음······. 사흘 정도 뒤에 제가 말씀드린 곳으로 오실 수 있을까요?

#

사흘 뒤, 앨리스와 동행한 내가 찾은 곳은 네오 서울 동쪽 경계에 다다른 뒤에야 보이는 어느 울창한 숲이었다.

“누가 돈 안 낸댔나? 분명히 목적지 말했고, 돈도 더 준다고 했는데 그저 투덜투덜!”

택시가 사라지는 것을 보기 무섭게 앨리스가 택시 기사의 불친절한 태도에 역정을 냈다.

더럽게 멀고 도로도 비포장길이 많으니 택시 기사의 심정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지만, 어찌나 투덜거림이 심하던지······.

“차를 하나 사긴 해야겠어.”

“잘 생각했어요, 사장님. 그런데 신시아 씨는 왜 이렇게 외진 곳까지 오라고 한 거래요?”

“기계화 좀비에 대한 걸 보여준다고 하던데”

“그래요? 근데 저는 왜 같이 온 거죠?”

“오늘까지 휴가인데 나만 일하기 억울해서.”

“네에? 그게 사람 입에서 나올 말인가요?”

성질내는 앨리스와 함께 숲 안쪽으로 뻗은 길을 걷고 있으려니, 뒤에서 웅웅거리는 엔진 소음이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헬멧을 쓴 사람 하나가 호버 바이크를 타고 우리가 왔던 길을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누구죠? 이런 외진 숲에······.”

앨리스가 불안해하며 내 뒤로 숨었지만, 나는 정체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호버 바이크 양옆에 하나씩 부착된 긴 장총, 타이린드가 분명했다.

곧 우리를 따라잡은 타이린드의 헬멧 바이저가 스르륵 사라졌다.

“안 늦게 도착한 모양이네?”

호버 바이크에서 내린 타이린드에게 앨리스가 달라붙었다.

“언니! 이거 언니 거예요?”

“앨리스도 있었구나? 그럼, 내 거지.”

서로 간의 안부 인사를 마친 뒤, 타이린드에게 물었다.

“여긴 어쩐 일이에요? 신시아 씨가 타이린드도 불렀어요?”

“뭐야? 나는 빼고 셋이서만 뭔가 하려는 말투인데?”

“그런 건 아니고요.”

호버 바이크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한 마디가 절로 흘러나왔다.

“멋있네요.”

“이거? 완전 멋있지? 트리온 사의 작년 모델인 RW90 모델인데 개량된 원자로 엔진 덕에 속도는 높이고 안전성은 증가해서······.”

엔진 사운드를 복각해서 어쩌고 저쩌고 최고 속도가 350km 어쩌고 저쩌고.

괜히 물었다 싶었다.

그런데 공중에 떠서 움직이는 게 멋있기는 했다.

차 대신 이런 걸로 하나 사?

마음속 장바구니에 넣어둔 뒤, 화제를 이곳으로 돌렸다.

“그런데 여긴 어딘지 아세요? 신시아 씨가 기계화 좀비 재현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사령술 협회 내부에서는 보여주기 힘들다고 하더니 여기로 오라고 하더라고요.”

타이린드는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재현한다고? 여기서?”

“네. 못 들으셨어요?”

“나는 그냥 오메가 네가 온다고······아니, 아니. 기다려 봐.”

그러더니 혼자 중얼중얼하더니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신시아가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인 것 같아.”

“무슨 일요?”

“사령술 협회는 내부 문건이나 자료 유출을 극도로 꺼리거든. 다른 마법들과는 다르게 사령술은 안 좋게 보는 눈길이 항상 있으니까.”

마법은 여러 계통으로 분화해 도시 권역에 지부까지 둘 정도의 대형 마탑도 있지만, 사령술은 그 난해함과 인식 때문에 마탑은커녕 협회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도 이름을 알린 사령술사들의 지원으로 협회 건물이 네오 서울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게 용할 정도.

“그런데 내가 알기로 여긴 야스민 가문의 사유지거든? 아마 신시아가 자기네 외진 사유지로 자료를 반출하는 선에서 협회와 합의를 본 게 아닐까?”

멀리서 신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메가니이이임!”

가까이 다가가자 신시아가 곁에 있는 사람들을 소개해주었다.

사령술 협회에서 나왔다고 했다.

우리가 도착한 공터 중심에는 수술실에서 볼 수 있는 장비들이 놓여있었다.

타이린드의 추측을 말해주니 신시아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역시 타이린드는 모르는 게 없네!”

그리고 신시아는 아직 준비를 덜 마쳤다면서 사령술 협회 사람들과 함께 수술대 근처로 가버렸다.

“저 좀 이해가 안 되는데요.”

“뭐가.”

“사령술 협회는 자료를 밖으로 가져오는 걸 극도로 꺼린다면서요.”

“맞아.”

“그런데 어떻게 야스민 가문의 사유지에서 기계화 좀비 재현 실험이 가능한 거죠?”

“가주인 야스민 공이 막내딸인 신시아를 엄청 예뻐하거든.”

“그게 왜요?”

“야스민 가문에서 사령술 협회에 기부하는 금액이 상당해. 그 덕에 신시아는 협회 내에서 아무 직책을 맡고 있지 않은데도 발언권이 엄청 강해. 그런데도 협회에는 별 요구를 하지 않으니 협회 쪽에서는 감사한다고 머리를 조아려야 할 판이지. 그런 애가 부탁을 하니 이 정도 선에서 합의를 봤을 거라는 게 내 추측이야.”

나와 타이린드 간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앨리스가 물었다.

“기부를 얼마나 하길래요?”

액수를 듣자 앨리스가 중얼거렸다.

“그걸 그냥 기부한다고요? 막내딸이 사령술사라는 이유로? 그거면 우리 사무실 유지비 몇 년 치······아니 사무실이 있는 건물을 사버릴 수 있는 금액이잖아요.”

“사고도 한참 남겠는데?”

나와 앨리스의 말을 들은 타이린드가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밝혀진 적이 없어서 추정 금액일 뿐이야. 아! 확실한 게 있긴 하네.”

“뭔데요?”

“방금 말했던 액수는 아마 반기 기부금이라는거?”

나와 앨리스의 시선이 동시에 신시아에게 닿았다.

“오메가님! 다 됐어요!”

자본주의······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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