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잡캐여도 너보단 강함-21화 (22/258)

021.

021.

“네. 신시아 씨. 사령술 협회 쪽에도 문의해주시겠다고요? 그렇게 해주시면 저야 감사하긴 한데 아직 확실한 게 아니라서······.”

“예? 식사나 한번 하자고요? 예. 예. 일단 일 마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택시에서 내려 불편한 엉덩이를 쓰다듬을 때쯤 걸려 온 신시아의 통신.

기계화 좀비에 대한 내용을 찾아봐 주겠다는 것이었다.

폐교를 습격한 것이 기계화 좀비인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수고를 들이는 것 같아서 극구 사양했지만, 자기가 나서서 돕고 싶다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신시아였다.

“식사는 괜찮은데······.”

밥 먹다가 내 목덜미가 뜯기는 거 아닌가 싶다.

주위를 둘러보자 최소한 신체 몇 군데를 기계로 교체한 사람들이 보였다.

안드로이드도 눈을 돌렸다 하면 보일 정도.

다들 눈 하나밖에 없는 곳에 가면 눈 두 개 달린 놈이 잘못한 거라고 했던가.

몸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잘못된 것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흘끔거리는 것 같아 괜히 신경 쓰여 외투를 여몄다.

내가 도착한 곳은 구舊 여의도라 불리는 곳.

대림 에어리어의 1번 구역에서 7번 구역을 아울러 부르는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현실의 국회의사당이 있던 자리인 대림 에어리어의 1번 구역 앞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거대한 녹색 반구를 뒤집어쓴 건물 대신, 그것의 대여섯 배는 될 정도로 거대하고 웅장한 성당 형태의 건물이 그 자리에 있으니, 기계의 성지인 기계 교단 대림 교구의 성당이었다.

같은 대림 에어리어인데도 이곳은 일전에 갔던 강남 에어리어의 분위기가 풍겼다.

곧고 넓게 뻗은 도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 오른 건물들.

하지만 발전된 정도만이 강남 에어리어와 같을 뿐, 세부적인 느낌은 조금 달랐다.

강남 에어리어가 다양한 형태와 색감의 건물로 눈을 즐겁게 했다면, 이곳 구 여의도는 네모반듯하게 딱 떨어진 형태와 청동빛, 황동빛, 은빛이 지배하는 세계 같았다.

성당 앞에서 오른편에 저 멀리 보이는, 기계 교단 신자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봉사로 만들어졌다는 한강 위의 인공 부양 대지가 기계 교단의 번성을 대신 말해주고 있기도 했다.

성당으로 들어가자 안드로이드 하나가 나를 제지했다.

“오전 미사는 종료되었습니다. 오후 미사는 점심 이후에 있을 예정이니 그때 방문 부탁드리겠습니다.”

친절하지만 닳고 닳아 기계적으로 나오는 멘트.

진짜 기계가 하는 소리니, 기계적이란 말은 실례이려나?

“해결사 일을 하는 오메가라고 합니다. 파라터스 사제님과 일정을 잡았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단말기에 손가락을 꽂은 안드로이드가 잠시 뒤에 내게 말했다.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디바이스를 소지 중이십니까.”

귀걸이를 가리키자 단말기에 연결되지 않은 손으로 내 귀걸이를 한번 톡 건드렸다.

“디바이스에 등록된 정보와 일치합니다. 안전을 위한 전기신호 검문에 동의하십니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안드로이드의 손이 내 어깨에 닿았고, 정전기와 같은 느낌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위장물 전무. 위험물 발견. 날붙이의 손잡이, 검으로 추정.”

그 정전기로 내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 자루를 감지한 모양.

“안전을 위해 저희가 맡아놓도록 하겠습니다. 제출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순순히 내놓으려는데, 누군가가 이쪽으로 급히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오메가 님 맞으시지요? 사제 파라터스입니다.”

찰랑거리는 금속 재질의 성직자 의복 아래로 내게 내민 파라터스의 손.

그의 피부는 투명했고 자연히 피부밑에 존재하는 인공 근섬유와 오일이 타고 흐르는 혈관이 선명했다.

내가 흠칫 놀라자 파라터스가 웃으며 자신의 손목을 몇 군데 눌렀고, 곧 피부가 불투명하게 변했다.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그의 손을 맞잡고 악수했다.

“아닙니다.”

“퓨어라고 들었습니다. 퓨어라면 그럴 수 있죠. 이곳에는 저희밖에 없다 보니 종종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잊곤 합니다. 이쪽으로 가시죠.”

안드로이드가 파라터스를 제지했다.

“위험물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을 성당 안에 들일 수는 없습니다.”

“위험물?”

파라터스의 말에 허리에 결속되어 있던 칼자루를 풀어 내밀었다.

그걸 들고 사라지는 안드로이드의 뒷모습을 보고 파라터스가 말했다.

“나가실 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부에서는 어떠한 무기도 소지를 허용하지 않고 있어서요. 안쪽으로 가시죠.”

#

거대한 성당 안쪽의 복도를 걸어가는 중, 내가 물었다.

“ABT와의 사건은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기계 교단과 ABT사社는 각자 기계공학과 생명공학을 이끄는 거대 단체.

기계 교단의 본부와 ABT사의 본사는 모두 네오 서울 강남 에어리어에 있지만, 교의 성지와 기업의 연구소가 모두 대림 에어리어, 그것도 멀지 않은 곳에 있기에 계속해서 기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서로 스파이를 보내고 암살 시도까지 있다는 얘기도 들리는 걸 보면 기싸움 단계는 한참 지난 것 같은데 대림 에어리어답게 이 정도는 아직 기싸움의 영역인 모양.

내게 처음 온 기계 교단의 의뢰도 ABT 연구소 염탐이었다.

파라터스가 자신 있게 답했다.

“곧 ABT연구소가 있는 곳에 교단의 성당이 하나 들어설 겁니다. 이곳, 본당 하나만으로는 성지로 밀려드는 신자들의 수를 감당하기 힘들거든요.”

왠지 ABT측의 인물에게 물으면 ‘머지않아 구 여의도의 기계 교단 성당에 저희 신형 연구소가 들어설 겁니다.’ 하는 소리를 할 것 같다.

이 두 거대집단이 으르렁대는 것은 사실 서로 잘 지냈으면 하는데, 어디가 숙이고 들어가느냐의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둘 다 각자의 중요함은 인정하지만, 동시에 각자 영역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어서 조금의 양보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 아닐까.

나를 정갈하고 깔끔한 응접실로 안내한 파라터스가 탁자 위에 놓여있던 휴대용 패널을 집어 들고 손짓을 몇 번 했다.

“잠시 의뢰 내용에 관한 확인을 좀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ABT 연구소에 대한 침투······크흠······이건 예전에 드렸던 제안인데······.”

“예전에 교단에서 제게 제안한 의뢰 중에 그런 게 있었죠.”

그 의뢰가 내게 왔을 때는 불륜 상대의 현장을 잡기 위해 잠복하고, 도박중독자를 찾으려고 카지노를 뒤지던 시기다.

지금은 테러리스트의 공격에서 중요 인물을 지켜냈고, 테러 조사에서 그들의 흔적도 밝혀냈다.

페룬 마탑의 대대적인 사회 공헌인 대림 26구역의 학교 사업에도 한 발 걸치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소문이다.

테오릭 경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돌아다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곧 페룬 마탑으로 들어갈 거라는 말도 돈다.

그렇게 하려고 몸을 만들고 있다나······.

하지만 이런 것들을 한 번에 쓸어내리는 대단한 소문이 있으니······바로 위타천이 인정한 해결사라는 소문이다.

나로서는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옷을 억지로 입은 것 같은데, 내 이름을 대면 ‘위타천이······.’ 하는 반응이 늘어난 걸 보면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억지로 밀어 올리고 ‘예에······뭐 그렇습니다.’ 하는 반응을 할 수밖에 없다.

여튼, 내 입지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직후와 비교해 급변했다.

아직 대림 에어리어 내부의 의뢰가 대다수이긴 하지만 차차 다른 에어리어, 심지어 드물지만 다른 도시 권역에서의 의뢰도 들어오고 있는 상황.

나는 기계 교단으로부터 다른 의뢰를 받고 이곳에 왔다.

“교단 내부의 이단에 대해 조사를 맡기고 싶다고 하신 걸로 압니다.”

내 말에 신경질적으로 패널을 두드리던 파라터스의 미간이 펴졌다.

“맞습니다! 그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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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의뢰 내용을 보고는 조금 의문이 들었다.

기계 교단은 작게는 의수나 의족 착용자부터 시작해서 넓게는 사이보그나 안드로이드, 심지어는 강철계 마법사들까지 포용할 정도로 신자의 스펙트럼이 넓다.

믿는 건 자유고 떠나는 것도 자유로운 편으로, 교단 내에 이단심문청이 있음에도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내게 굳이 이단 조사를 맡기는 걸 보고 옆에 있던 앨리스에게 말했다.

“이거, 사실 별거 아닌데 일단 관계를 맺어두고 싶다는 거겠지?”

“그래 보여요. 안 그래도 덩치 큰 클라이언트들이 사장님한테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파티나 경호 의뢰로 우회해서 들어오던데, 기계 교단은 이런 방식을 썼네요.”

“이단 조사······나쁘지 않아. 명목상이라도 내부의 이단을 조사한다는 이유로 조금 더 깊게 파낼 수 있을 것 같아. 이거 하겠다고 응답 좀 해줄래?”

“알겠어요. 아마 사장님이 ABT의 의뢰보다 자기네 의뢰를 먼저 받아들였다고 좋아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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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하고 계시겠지만 어려울 건 없습니다. 저희 내부에도 이단심문청이 있기도 하고 해서······. 대림 에어리어 내부에서 애쓰시는 해결사님께 잠시 휴식이 되었으면 한다는 대주교님의 뜻도 반영된 의뢰입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나를 바라보는 파라터스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마치 게임을 처음 시작한 뉴비를 본 썩은물 느낌.

그런데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뉴비가 제법 잘 해나가는 모습을 목격한, 그런 느낌의 눈빛?

“제 몸에 뭐 묻었습니까?”

황급히 손을 내젓는 파라터스.

“아닙니다. 퓨어인데도 그 정도의 성과를 내시니, 교단에 들어오셔서 신체 강화를 이루어 내신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조금 하고 말았습니다.”

‘몸에 기계 뭉치 하나 달지 않을래?’의 정중한 권유 버전.

들어올 때 여몄던 외투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나는 퓨어인 지금이 좋다.

신체 일부를 갈았다가 스킬이 안 나가면 어떻게 되나 하는 막연한 걱정도 있다.

전유민과 오메가의 공통점은 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뿐이니까.

마지막 남은 공통점이자 연결고리를 비틀었을 때 어떤 반응이 되돌아올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저는 괜찮습니다.”

“아쉬움에 드린 말씀입니다. 저희는 신앙을 강권하지 않습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은 파라터스가 일어섰다.

“안내해드린 뒤에 일주일간의 통행증을 발급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통행증이 있으면 매번 검문받으실 필요가 없어질 겁니다. 본당에 들어올 때 무기는 맡겨야 하겠지만요.”

파라터스의 뒤를 따라 성당 이곳저곳을 안내받았다.

너무 넓고 거대해서 내부 대부분에 무빙워크가 깔려 있었고, 엘리베이터만 백여 개가 된다고 했다.

어느새 오후 미사 시간이 되었는지 신자들이 성당으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앞에 놓인 기름에 손가락을 찍어 이마에 기계 교단의 문양을 그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기계장치의 신께서 사도들에게 하신 ‘기름 부음’을 간략화한 의식입니다. 신의 전당에 발을 들이기에 앞서 몸과 마음을 정화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기계 교단의 성지답게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안드로이드들이 순식간에 신자들의 행렬을 정리했고, 거대한 인파의 물결 속에 질서가 자리 잡았다.

“이렇게 오신 것도 인연인데, 미사나 참관하고 가시죠. 독특한 경험이 될 겁니다.”

“그럴까요?”

미사보다는 성당의 내부 구조를 더 알고 싶었기에 순순히 응답했다.

당연히 신자들이 모여들고 있고 끝에 제대祭臺가 놓인 홀로 향할 줄 알았더니 파라터스는 나를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중요한 분들이 미사를 모시는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멈춘 곳은 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이에 위치한 작은 방으로, 10명 내외의 인원이 앉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난간에서 고개를 좌우로 돌려보니 비슷한 공간이 벽에 상당히 많이 돌출되어 있었다.

사생활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는 신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인 듯싶었다.

“곧 시작할 것 같군요.”

파라터스의 의복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금속 질감이 강한 옷을 입은 성직자가 제대 앞에 섰다.

귀에 파라터스의 속삭임이 들렸다.

“대주교님이십니다.”

제대가 분리되며 아래로 사라지고, 그곳에서 거대한 엔진이 올라왔다.

대주교의 엄숙한 목소리가 홀에 퍼져나갔다.

“기도합시다.”

부와아앙-

우렁찬 배기음을 뿜어대며 검은 매연을 울컥 토해내는 엔진.

“기계장치의 신께서 사도들에게 남긴 16기통 엔진입니다. 전해지는 성물 중 가동되는 것은 저게 유일한 것이지요.”

당장이라도 양손을 교차한 채 머리 위로 올려 ‘V16!’하고 외쳐야 하나 하는 충동이 들 때쯤, 파라터스가 말했다.

“저는 다른 사제가 불러 잠시 그쪽으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미사가 끝나기 전에는 오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미사 중에 다른 분이 들어오실 수도 있으나 놀라실 필요는 없습니다. 챔버로 모시는 분들은 모두 신원 확인이 확실하게 끝난 분들이니 말입니다.”

말을 마친 파라터스가 밖으로 빠져나갔다.

엔진 배기음에 맞춰 성가를 불러대는 광기의 현장을 목격하고 기가 막혀 하고 있을 무렵,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내게 다가오는 발소리가 아까 들었던 파라터스와는 달랐다.

스윽 스윽-

면적이 넓은 무언가가 바닥을 쓰는 듯한 소리.

익숙하게 손을 허리춤에 가져갔으나 검은 잡히지 않았다.

‘들어오면서 줘버렸지.’

어둑어둑한 공간에서 내게 다가오는 이질적인 울림.

나도 모르게 어깨와 허벅지에 힘이 들어갔다.

이상한 징조라도 있으면 바로 몸을 피할 셈-

이었지만 다행히 소리는 내게서 오른편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추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하반신은 뱀, 상반신은 인간인 반인반사半人反蛇 종족, 라미아였다.

특이한 것은 하반신의 비늘 대부분이 얇은 철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공간이 어두웠던 터라 ‘안력 강화’를 사용했다.

철판 사이사이로 보이는 부분도 미세하고 정교한 기계장치가 가득했다.

시선을 위로 올리자, 고혹적이라고 표현하면 딱 좋을 인상의 여인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결사 오메가, 맞죠?”

“누구시고, 저를 어떻게 아시는지······?”

의도적인 만남 같았다.

“교단의 인물이십니까?”

“신자 중 하나일 뿐이에요. 다만 영향력이 조금 있죠. 기계 교단에 방문할 것 같다기에 무리를 해서 자리를 내어달라고 했어요. 파라터스 사제님은 제 부탁을 들어주신 것뿐이니 나중에 타박하는 일은 없길 바라요.”

여인의 새빨간 입술이 움직였다.

“저는 수연이라 해요.”

수연······수연······생각났다.

그와 동시에 여인이 내가 떠올린 것을 말했다.

“예공방의 상무죠. 혹시 하르파고스 이사가 제 얘기를 하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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