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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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모습인데, 고통도 느끼지 않고, 상처에서 피도 안나는 존재가 있을까요?"
내 질문은 나이누안의 두 번째 의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이누안은 내게 보상을 먼저 냈고, 그 결과 나는 페룬 마탑의 위상을 높여줌과 동시에 빙결계 마법에 대한 실마리를 얻었다.
첫 번째 의뢰였던 학교의 재설립도 페룬 마탑의 힘을 끌어와 완료한 상태.
지금에 와서는 나이누안의 영체도 사라져버렸으니 이 건은 그냥 입을 닦을까도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자려고 누워있으면 나이누안의 시선을 통해 보았던 그 날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 힘도 없고 죄도 없는 아이들이 피를 흘려가며 부모를 찾던 모습.
이것 때문에 잠을 설쳐 번아웃이 가속화된 걸지도 모른다는 나름의 가설을 세우기도 했다.
‘지켜본다더니 이딴 식으로 지켜보는 거였냐.’ 하고 나이누안 욕을 하면서.
결국 나는 마음의 짐을 털어내기 위해 나이누안의 두 번째 의뢰인 괴한들의 정체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마침 루트의 조직원인 타이린드가 있으니 뭐라도 아는 게 있나 해서 물었는데, 타이린드는 손가락까지 꼽아가며 답을 툭툭 내놨다.
“안드로이드, 호문쿨루스, 강시, 스켈레톤, 좀비······정도?”
“안드로이드는 상처에서 피가 나지 않아요?”
내 물음에 앨리스가 답을 했다.
“혈액 세트를 별도 옵션 추가하지 않는 이상 유동액이나 오일이 혈액을 대체하죠. 사실 혈액 세트도 색이랑 점도를 조절한 오일이에요.”
“앨리스 설명이 맞아.”
조금 더 상세한 조건을 말했다.
“상처에서 피가 안 난다는 건 어떤 액체도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였어요. 제가 헷갈리게 말한 것 같네요.”
“움직일 수 있는 상태에서 상처가 났는데, 피가 묻어나오지 않았다는 거지?”
“네. 살점도 거의 묻어나오지 않는다고 하죠.”
“안드로이드는 이미 아니라고 했고, 호문쿨루스도 술자의 혈액 일부와 마나 용해액이 들어가니 패스. 남은 건 강시, 스켈레톤, 좀비 정도일 것 같은데?”
범위가 좁혀졌다.
모두 망자와 관련된 부류였다.
“흠······. 그렇군요.”
“그건 왜?”
타이린드의 말에 앨리스도 나를 바라봤다.
이 의뢰는 아직 앨리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앨리스는 아직 내가 빙결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언질을 줬어야 했는데, 며칠간 몸과 마음이 나무늘보가 되어버린 내 잘못이다.
일단 얼버무렸다.
“의뢰 도중에 비슷한 사람을 본 것 같아서요.”
“그래? 흔하지는 않지만 드물지도 않지.”
그리고는 태연히 빵을 잘라 입에 욱여넣는 타이린드.
무슨 소리야.
나는 나이누안의 기억 말고는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이런 경우가 좀 있어요?”
“응. 탈취 기능 있는 두꺼운 옷 입혀 놓으면 잘 못 알아볼걸? 대신 주위에 사령술사나 샤먼이 있어야겠지. 연결 끊어지면 시체로 돌아가는 거니까.”
그런데 말만 들어서는 학교를 습격했던 놈들이 어떤 놈인지 알기 힘들었다.
“스켈레톤은 다른 둘과 구분되는데, 강시랑 좀비는 어떻게 구분하죠?”
“음······.”
이리저리 궁리하던 타이린드가 의외의 답변을 가져왔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설명하기가 어렵네. 대신 아는 사령술사 있는데, 소개해줄까? 전문가한테 들으면 더 쉬울 거 아니야.”
“그래도 돼요?”
“연락해볼게. 대신 아까 그건 그냥 잊는 거다?”
스냅샷의 이름을 적었던 손바닥을 비벼 날리는 타이린드.
너무 몰아세우는 것도 좋지 않다.
이 정도 수확이면 타이린드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대신 이제 스냅샷에게 가서 스리슬쩍 루트 얘기를 꺼내 천천히 말려 죽여야지.
협상이 잘 끝나면 연회를 여는 것처럼, 나도 기분 삼아 대접하기로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이걸로 사세요. 제가 쏩니다.”
테이블 위에 카드를 올려놓았다.
디저트가 비싸봤자 디저트라는 생각, 이미 하나를 거의 다 먹어가니 다음 건 사양하겠지, 하는 완벽한 논리회로가 완성된 직후 나온 선의의 표현이었다.
타이린드가 사양하는 사이, 내 카드는 앨리스의 손으로 넘어갔다.
콧노래를 부르며 타이린드를 일으켜 세우는 앨리스의 눈빛에서 디저트에 대한 광기가 새어 나왔다.
사실 이 휴가의 가장 큰 수혜자는 앨리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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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린드는 바로 다음 날 동행 한 명과 함께 사무실로 찾아왔다.
“찾느라 한참 걸렸네. 사무실 주소라고 갔는데 갑자기 목에 주사 꼽혀서 쓰러지는 거 아닌가 걱정하면서 왔어.”
너스레를 떠는 타이린드의 옆에는 피부가 하얗고 홍채가 붉게 물든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인사해. 이쪽은 신시아 야즈민. 신시아, 이쪽은 오메가. 요새 유명해서 알고 있지?”
신시아는 달달 떠는 손으로 내게 악수를 청해왔다.
“시, 시, 신시아라고 부르시면 돼요. 팬이에요!”
신시아가 말을 하기 위해 입을 벌릴 때마다 날카롭게 삐죽 솟은 송곳니가 인상적이었다.
“팬요?”
“마법사들 엿 먹이는 영상 봤어요! 너무 멋있어서 더 찾아보려 했는데 정보가 너무 없는 거예요. 대림 에어리어에서 활동하는 해결사라는 거 정도? 저 26구역 폐교에서 테오릭 경이 연설하는 영상도 찾아봤어요. 거기 오메가님이 아주 작게 잡혔더라고요! 너무 아쉬운 거 있죠?”
“아······그러셨구나.”
“그런데 타이린드가 직접 봤다고 그래서 너무 부러웠거든요? 한번 뵙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타이린드가 저를 오메가 님 뵙는 데 데려간다는 거에욧!”
말이 빨라지는 것과 동시에 과호흡 증상을 보이는 이 처자에게 붙잡힌 손을 빼고 싶었지만, 어찌나 힘이 좋은지 쉽게 놔줄 것 같지 않았다.
‘관절 탈구’나 ‘비눗물 생성’ 같은 스킬이라도 써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타이린드가 웃으면서 신시아의 어깨를 여러 번 쳤다.
정신이 돌아온 신시아가 화들짝 놀라며 악수를 풀었을 때, 내 손에는 신시아가 쥐었던 손 모양대로 시퍼렇게 멍이 들기 직전이었다.
“신시아는 네 엄청난 팬이야. 너랑 만나게 해달라고 몇 날 며칠을 들볶던지······.”
“그······렇군요.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같이 오신 거죠?”
“말했잖아. 아는 사령술사가 있다고.”
“그럼 신시아 씨가?”
“으악! 오메가 님이 내 이름을 불러주셨어!”
앨리스가 달달 떠는 신시아를 데려가 소파에 앉히고 물을 건네주자 신시아는 정중히 사양한 뒤 품에서 작은 팩을 꺼내 빨대를 꽂아 쪽하고 빨아들였다.
거친 호흡 탓에 신시아의 입술에 튕겨 나와 책상에 묻은 액체는 선명한 붉은 색이었다.
타이린드가 내게 말했다.
“신시아는 흡혈귀거든. 사령술사기도 하고.”
영생을 갈구하는 흡혈귀와 죽음을 탐닉하는 사령술사.
어울릴 듯 어울리기 힘들어 보이는 조합.
‘서리얼에서 사령술 테크트리를 탄 유저들은 다른 테크트리에 비해 익히는데 너무 오래 걸린다고 투덜거리곤 했었지.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길다면······?’
갑자기 신시아가 달라 보였다.
시간이 부족하면 영생의 삶을 살면 되는 거 아니겠나.
타이린드의 말이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시체를 다루는 전문가지.”
아직 시퍼런 멍이 들어있는 내 손을 내려다봤다.
왠지 시반(屍斑:시체에 나타나는 얼룩) 같기도 해서 다른 손으로 문질렀더니 옅게나마 피가 통하는 모습에 안도했다.
그때쯤 혈액 팩을 마시고 쌩쌩해진 신시아가 벌떡 일어섰다.
“강시랑 좀비를 구분하고 싶다고 하셨다면서요? 그런 건 제가 전문가죠.”
내가 빤히 바라보자 신시아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다시 말이 빨라졌다.
“예전에 도교 사원에서 강시술을 배워둔 적도 있거든요. 사령술이랑은 방향이 달라서 익히는데 고생을 조금 하긴 했지만 남는 게 시간이어서 익히긴 했어요. 제대로 써본 적은 별로 없는데,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려고 배운 건 가봐요. 자 이제 나가볼까요?”
그러더니 팔과 다리가 같이 나가는 어색한 걸음걸이로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
나를 톡톡 친 앨리스가 속삭였다.
“아무래도 신시아 씨, 사장님한테 반했나 봐요.”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하고 있어.
상대는 흡혈귀에다 사령술사야.
이런 사람이랑 사귀면 연락 좀 안 받았다고 바로 좀비가 돼서 영겁의 시간 동안 부려 먹히는 거야.
‘우린 죽어서도 함께하는 거야. 물론 죽을 수도 없겠지만.’
이딴 소리나 들어가면서.
얼마나 끔찍하면 앞에 가던 타이린드가 듣고 움찔하겠냐고.
앨리스를 타박하며 사무실에서 좀 걸어가자 쓰레기가 쌓여있는 공터에 양복 입은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그들이 신시아를 보고 달려왔다.
“오셨습니까, 아가씨.”
흠칫한 내게 타이린드가 속삭였다.
“야즈민 가문은 흡혈귀 가문 중에서도 굉장히 전통 있는 가문이야. 신시아는 그런 집안의 막내딸이고. 교제는 쉽지 않을걸.”
“마지막 말은 왜 붙이는 거죠?”
“혹시나 해서.”
“생각 없습니다.”
그러는 사이, 양복 한 명이 시체보관소에서 쓰일 것 같은 긴 비닐 백을 어깨에 짊어지고 가져와 신시아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거침없이 지퍼를 내리자······.
“오우······.”
앨리스의 탄식.
양손을 가슴에 모은 노인이 눈을 감고 있었다.
“걱정 마세요. 사망 전에 본인에게 시신 양도 허가받았고, 유족들에게도 매년 운송비 드리고 있거든요. 네오 서울 허가도 받은 깨끗한 시체에요.”
“운송비······.”
내 혼잣말에 타이린드가 부연했다.
“원래 강시술이 시체를 이동시키기 위한 술법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이 있거든. 그런데 그게 의미가 좀 바뀌어서 유족들에게 가는 성의 표시를 말하게 됐어. 시신 이용료하고 하면 어감이 좀 그렇잖아.”
그 사이, 신시아는 주머니에서 노랑 괴황지를 꺼내 들고 새끼손가락 끝을 깨물었다.
그녀의 새하얀 손가락 끝에 맺힌 핏방울이 괴황지 위로 떨어지는 순간, 물에 잉크가 번지듯 한 번에 기이한 그림이 그려졌다.
붉은 그림이 가득한 부적이 노인의 이마에 붙자 노인이 흰자위 밖에 보이지 않는 눈을 번쩍 뜨고는 벌떡 일어나 양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피부가 새파랗고 다리는 양다리가 붙은 채로, 팔을 앞으로 내민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 빼면 그냥 사람과 같은 모습이었다.
“강시는 이렇게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대신 신체 능력이 뛰어나요.”
신시아가 손짓하자 강시가 몸을 웅크렸다가 위로 펄쩍 뛰었다.
성인도 어렵지 않게 넘을 듯한 높이.
이마에서 부적을 떼자 노인은 다시 시체로 돌아갔다.
양복들이 달려와 노인을 다시 비닐 백에 넣고 어깨에 짊어진 뒤 어디론가 데려갔다.
“하지만 좀비는 그렇지 못해요.”
손가락을 들어 신시아가 앞을 가리키자, 손가락 끝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사람 하나가 드나들 정도의 원이 되었다.
거기서 좀비 하나가 느릿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안 놀라네?”
타이린드의 말.
“저게 왜요.”
“엄청 비싼 장비야.”
신시아의 손가락에 낀 반지가 빛을 내고 있었다.
“포탈 링이라고 부르는데, 지정된 공간과 반지가 있는 곳의 공간을 접어서 통로를 내는 장치야. 비싸기도 비쌀뿐더러 범죄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어서 허가도 잘 안 나. 야즈민 가문 정도 되니까 쓸 수 있는 거라고.”
게임 속에서는 스크롤을 찢거나 ‘포탈’이라고 명령어만 외치면 됐는데, 여기서는 엄두도 못 낼 기술들의 결정체가 되었구나.
아마 앞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 보이는 포탈을 보며 기분이 울적해지려 할 때쯤, 마침내 느려터진 좀비가 포탈 밖으로 걸어 나왔다.
포탈을 없앤 신시아의 몸에서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오르더니 좀비를 장악했다.
그러자 좀비는 그어어어얽하는 낮은 소리를 중얼대며 우리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이게 최대로 빠른 건가요?”
“네. 강시에 비하면 신체 능력이 형편없죠. 대신 많은 수를 한 번에 부릴 수 있어요.”
“신시아 씨라면 동시에 얼마나 많은 좀비를 움직일 수 있죠?”
“오로지 좀비를 통제하는 데만 집중하면 300구 내외? 강시는 10구도 동시에 움직이기 힘들어요.”
사령술사가 아니라 공동묘지 대대장이라고 불러도 좋을 수준.
나이누안의 기억 속에서 본 괴한들은 얼핏 봤을 때 100명 이하로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운동성.
강시의 근력을 가지면서 움직임이 자유로워야 하는데, 좀비는 도구를 들 수 있다는 것 말고는 괴한들과 하나도 일치하지 않았다.
“흠······. 외형으로 보면 좀비가 그나마 맞는 것 같은데 움직임의 부드러움이 좀······.”
고민 끝에 타이린드와 신시아에게 미안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긴 한데 아무래도 제가 찾는 건 아닌 것 같네요.”
바로 울상이 된 신시아가 특유의 빠른 말로 어떤 걸 찾냐고 물어왔기에 나는 최대한 나이누안과 관련된 부분을 빼고 괴한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 얘기를 들은 타이린드와 신시아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과 피가 안 나왔다는 걸 생각하면 분명 시체나 사령술 계통 같은데.”
“그런데 움직임이 자연스러우면서 총기를 사용할 정도로 근력이 좋다니······. 너무 어려운데.”
그 사이, 나는 앨리스의 시선을 피해 계속해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야 했다.
뭘 감추고 있냐는 눈빛.
어째 사장은 난데 실세는 앨리스가 되어간다.
다행히 신시아가 나를 압박의 구렁텅이에서 꺼내주었다.
“오메가 님, 다른 특징은 없을까요?”
“그게 전부에요. 얼굴도 확인할 수 없고, 특별한 신체적 특징도 없대요. 그런데 강시처럼 신체 능력이 엄청나지는 않았어요. 딱 일반인 정도의 신체 능력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중얼거렸다.
“좀비 관절에 기름칠해놓으면 좀 비슷할 것 같기도 하네요.”
짝-
신시아의 박수 소리.
그녀는 뭔가 떠올랐다는 표정이었다.
“기계화 좀비!”
뭐야.
또 나만 모르는 거 나오는 거야?
고개를 돌려보니 다행히도 타이린드와 앨리스도 모르는 눈치였다.
신시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10년 전에 기계 교단이 사령술 협회에 합작하자고 보내온 내용이었는데! 기계화 좀비! 관절이나 근육을 기계로 보강하고 기계 혼을 심는댔나?”
뭔가 풀려가는 느낌이다.
“그래서요? 어떻게 됐어요?”
“몇몇 사령술사가 관심을 보이긴 했는데 기계 교단 측에서 제안한 조건이 너무 까다롭고 제한적이라 포기했을 거예요. 저한테도 제의가 왔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얼마 되지도 않은 일인데.”
10년 전이면 좀 되지 않았나······.
시간 감각이 다르다.
“기계화 좀비라······. 난 들어본 적 없어.”
“기계 교단과 사령술사 사이에서만 반짝하고 말았으니까. 그리고 10년 전이면 타이린드 넌 고작 열아홉이었잖아.”
충격이다.
노안이라고 읽을 수 있는 성숙미가 느껴지길래 초면부터 지금껏 쭉 존댓말 했었는데 타이린드가 나랑 나이가 같았다니.
당연히 30대일 줄 알았는데.
그런 타이린드가 얼굴은 어려 보여도 나이는 훨씬 많이 먹었을 걸로 생각되는 신시아에게 말을 편하게 하는 것도 충격이다.
일단 호칭 정리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서로 간의 연락처 교환을 한 뒤에 둘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보냈다.
사무실로 올라와 앨리스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기계······교단에서 의뢰······들어 온 게 있지······않나?”
“사장님.”
앨리스의 차가운 목소리에 등줄기가 얼어붙는 것 같다.
빙결계 스킬은 사실 내가 아니라 앨리스에게 간 게 아닐까.
“저한테 뭐 숨기는 거 있죠.”
“숨기려고 했던 게 아니라······.”
나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보던 앨리스가 말했다.
“허락보다는 용서가 쉽대요. 말이나 해봐요.”
결국 부모님께 학교에서 혼난 전후 사정을 말하는 아이의 기분이 되어 그동안의 일을 말해줬더니 앨리스가 질겁했다.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의 의뢰라고요? 얼른 해버려요. 으으 소름 돋아. 기계 교단이랑 엮일 만한 의뢰로 드리면 되죠? 네? 사장님?”
“어어······. 그거면 돼.”
자리로 돌아가자 책상의 패널에 앨리스가 정리해서 보낸 파일들이 떠올랐다.
그걸 하나하나 열어보며 생각했다.
‘시체를 앞에 두고도 멀쩡하던 안드로이드가 귀신을 무서워하고 세상 참 요지경이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