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
019.
“테오릭 경도 테오릭 경인데, 사장님에 대한 언급도 장난 아니네요.”
소파에 누워 있는 내게 들리는 앨리스의 말.
나른한 오후인만큼 내 대답도 흐물흐물했다.
“그으래?”
“네. 근처에 있던 누가 탈출 직전에 사장님이 인사하는 걸 영상으로 찍어 올렸나 봐요. 반응이 폭발적이에요.”
“뭐라는데.”
“맨날 다른 사람들 무시하던 마법사들이 저렇게 멍청한 표정 짓고 있는 거 보니까 너무 통쾌하대요.”
“그렇구나.”
끄응하며 화를 삭이는 것 같은 소리를 내는 앨리스.
“그 덕에 의뢰도 많이 들어왔어요. 예공방 측에서도 연락이 왔는데, 무사 안전 귀환 마법진에 대한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대요. 워낙 비싸서 구매로 이어지는 건 얼마 안 되지만요.”
“좋은 일이네.”
결국 화가 잔뜩 난 앨리스의 얼굴이 누워있는 내 시야를 가득 채우고 말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며칠째 왜 그러는 건데요. 의뢰 상담도 너무 건성이잖아요.”
길게 하품을 한 뒤, 앨리스를 바라봤다.
너는 몰라.
전기랑 태양광, 그리고 조금의 간식만 있으면 종일 활력을 뿜어대는 안드로이드랑은 다르다고.
밍기적대며 소파에 일어나 앉아 말했다.
“일하기 싫어.”
나는 요근래 너무 뛰어다닌 후폭풍을 겪고 있다.
번아웃을 쎄게 맞았다는 뜻이다.
테오릭 경과 하르파고스가 계속 주위에 내 소개를 해주고 있는 것인지 고양이 잡으러 다니고, 밀린 돈 대신 받아주러 다닐 때보다는 의뢰의 질이 한 단계 높아진 건 사실이다.
그런데 너무 많은 힘을 써버렸는지 그저 빨랫줄에 널린 빨래처럼 축 늘어져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이미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더욱, 전력을 다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나무늘보가 됐으면 좋겠어. 나무늘보는 원래 느리니까 일을 느리게 해도 다들 그러려니 하지 않을까.”
아무 말이나 뱉고 있는 나를 본 앨리스가 잠시 고민하더니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침 맞으러 갈래요? 안 그래도 청운 선생님이 이상징후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오라고 그랬거든요.”
서대문 에어리어의 그 소년 의사 얘기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이를 질끈 물고 고개를 빠르게 좌우로 저었다.
“으으······. 싫어.”
그 의사, 늘 웃고 있지만 사실상 매드 사이언티스트나 다를 게 없다고 본다.
웃으면서 장침을 쑤시는 그 모습을 그대로 가져다가 어두운 분위기의 컨테이너로 옮겨 놓으면 사이코패스 영화 하나 뚝딱이다.
알쏭달쏭한 얼굴을 하고 자리로 돌아가 패널을 두드리던 앨리스는 몇 분 뒤 다시 내게로 와서 말했다.
“짧게라도 휴가를 가지는 건 어때요. 리프레시하게.”
그 말에 벌떡 일어났다.
“휴가? 그래도 돼?”
“그건 사장님이 결정하면 돼요. 해결사 사무소라지만 저랑 사장님이 전부니까요.”
아.
나 사장이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의뢰 들어오는 걸로 봐서는 며칠 쉬었다고 굶어 죽을 것 같지도 않다.
그래. 일은 잠시 잊고 충전을 할 필요가 있다.
“그래! 쉬자!”
다시 소파에 벌러덩 나자빠지려는 내 등을 얼른 밀어 올린 앨리스.
“쉬는 날이라고 누워만 있으면 기운만 더 빠져요. 나가서 맛있는 거라도 먹어요.”
그것도 괜찮게 들려서 잠깐 고민하는 사이, 나를 바로 앉히는 데 성공한 앨리스가 얼른 옷걸이로 달려가서 나를 향해 후드와 얇은 재킷을 던졌다.
“아고!”
후드는 나를 향해 날아왔지만, 재킷은 방향이 어긋나서 내게 닿지 못하고 떨어질 것 같았다.
매듭 묶기 스킬로 후드의 소매 끝부분을 묶은 뒤에 묶지 않은 다른 소매를 잡고 한번 휘둘러 던졌다.
묶인 소매가 재킷의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챔질!
힘을 받은 재킷이 펄럭거리며 나를 향해 날아왔고, 가볍게 낚아챘다.
주섬주섬 후드와 재킷을 입고서 고개를 돌리니 앨리스의 눈이 동그래져 있었다.
“방금 뭐하신 거예요.”
“응?”
“낚시하는 것 같았어요. 낚싯대랑 낚싯줄 휘휘 휘두르면서 하는 그런 낚시.”
플라잉 낚시 스킬과 챔질 스킬을 응용한 거니까 앨리스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사장님 보고 있으면 참 게을러 보이는데 어떨 때는 기가 막히게 일을 착착 해내는 거 아세요? 청소할 때도 그렇고, 창가에 식물도 잘 기르시는 것 같고······.”
그거 대부분 스킬이란다.
게으른 건······활동을 위해 휴식을 취하는 상태라고 이해해주면 고맙겠어.
이런 걸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으니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다.
“넌 아직도 날 그렇게 모르니. 할 때는 잘한다니까.”
“그런 의미랑은 좀 다른데······.”
사무실 앞에 걸린 알림판을 CLOSE 상태로 바꾼 뒤 내려가 택시를 잡았다.
앨리스가 내게 물었다.
“사장님, 차 살 생각은 없어요?”
“차?”
“매번 이동하는데 택시 부르기도 그렇잖아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그럼 전기차?”
“전기차는 보조금도 안 나오고 매년 부담금이 좀 들어갈 텐데요?”
“왜?”
“네오 서울 전력 사용량이 엄청나니까요. 차량까지 전기로 돌리고 싶으면 돈을 내라는 거죠.”
전기차 보조금이 익숙하게 들리던 내게는 문화충격이다.
“그럼 차는 여전히 기름으로 굴러가는구나.”
“사장님 또 이러시네.”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앨리스의 눈빛.
이제는 익숙한 패턴이다.
여기서는 아주 당연한 상식이지만 빙의한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그럼 수······소?”
“인프라 구축에 애 먹다가 슬슬 시장에서 사라지는 모양새죠.”
“그럼?”
“안전성 테스트를 통과한 소형 원자로를 박아서 동력 공급하죠. 한동안 안 이런다 싶었는데······역시 청운 선생님한테 한 번 더 가봐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아니 수소는 안 괜찮고, 소형 원자로는 괜찮아?
종잡을 수 없는 안전의식에 다리에 힘이 풀리고 있다.
마침 에어로 택시가 도착했고, 앨리스가 얼른 안에 탔다.
소형 원자로라는 말을 듣고 나니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밖에 분은 안 타시는 거요?”
기사 아저씨가 앨리스를 향해 물었다.
나를 끌어당겨 택시에 앉힌 앨리스가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했다.
“강남 에어리어 5-H 구역이요.”
“강남 5-H. 클리어 폰드Clear Pond. 맞죠?”
“네. 맞아요.”
클리어 폰드. 맑은 연못. 맑을 청淸, 연못 담潭.
청담이다.
그나저나 일정 높이로 부양해서 움직이는 이 에어로 택시의 안에도 소형 원자로가 돌아가고 있겠지?
왠지 모르게 기도하고 싶어진다.
#
“그렇게 맛있냐?”
행복함에 녹아내리는 표정을 한 앨리스에게 물었다.
“사장님도 맛있게 먹어놓고!”
앨리스가 내 앞의 접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양한 색의 조각 케이크는 없어진 지 오래다.
“여기 와보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됐어요.”
우린 지금 청담의 한 디저트 카페에 와 있다.
말이 카페지, 3층 규모에 안쪽에서 계속해서 디저트를 만들어내 진열하는 직원들까지.
공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규모다.
역시 지칠 때는 단 걸 좀 먹어줘야 회복이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림 에어리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된 거리와 고개를 들어도 끝이 보이지 않게 높이 솟은 건물들.
여전히 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덜 튀는 외양의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굳이 밖을 볼 필요도 없다.
안쪽을 둘러봐도 다양한 사람들이 평화롭게 디저트를 즐기고 있었다.
대림 에어리어에 이런 가게가 생겼다면 대기 순번이 생겼을 거다.
가게 대기 순번이 아니라 소문 듣고 외지에서 찾아오는 손님들 털어먹기 위한 대기 순번이.
그나저나 날 흘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 뭐 묻었냐?”
끝이 풀리고 있는 후드의 소매를 정돈하지 않아 아까 크림이 묻긴 했다.
그렇다고 저렇게나 빤히 쳐다본다고?
칠칠치 못한 사람은 서러워서 디저트 먹겠나.
앨리스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아까 사장님 얼굴 엄청나게 팔리고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리고는 항상 끼고 다니는 휴대용 패널을 꺼내 몇 번 두드리고는 내게 내밀었다.
패널에는 폐교 위의 내가 인사를 하며 사라지는 동영상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그 아래 숫자를 본 나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2억 3천만?”
“조회 수 올라가는 추세가 많이 줄어든 거예요. 사흘 만에 1억 2천만 찍는 거 보고 얼마나 황당했던지.”
“이, 이거 돈 되는 거지? 앨리스 네 계정이야?”
“누가 찍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 영상 곧 내려갈걸요.”
“왜?”
“불칸 마탑이랑 프로이데 마탑에서 업로더한테 지워달라고 접촉한 모양이더라고요. 그쪽 입장에서는 쪽도 그런 개쪽이 없잖아요.”
하긴, 내가 사라진 뒤 닭 쫓던 개처럼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법사들의 가슴에 그려진 흉장이 너무 선명하다.
거대 마탑인 불칸과 프로이데에서 지우고 싶어 할 만했다.
“그런데 넌 그런 걸 다 어떻게 알아?”
“페룬 마탑에서 알려줬거든요. 영상 내려갔다고 당황하지 말래요. 이번 사회적 책임 프로젝트랑 엮어서 새로 홍보용 영상 내놓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내용을 왜 나는 모르지?”
“요새 계속 소파에 드러누워서 ‘몰라.’, ‘네가 알아서 해.’, ‘나무늘보 되고 싶다.’ 이런 소리만 계속하셨잖아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고 팬케이크를 오물오물 먹고 있는 앨리스를 보고 있자니 심술이 났다.
“그거 맛있어?”
앨리스가 잘라놓은 팬케이크 조각을 포크로 푹 찔러 입으로 가져갔다.
당황한 앨리스의 표정이 아주 볼만 하-
“그웨에엑. 이거 맛이 왜 이래. 상했나?”
“안드로이드용 팬케이크로 주문했잖아요! 바로 옆에서 계산했으면서! 못살아 진짜! 아무거나 덥석덥석 집어 먹을 거예요?”
강철 위장이나 다른 차원으로 향하는 목구멍 같은 스킬도 배워 놓을걸.
게임 속에서 느끼는 맛은 이질적이라 음식 섭취 관련한 스킬을 배우지 않았던 과거의 내가 원망스럽다.
내가 헛구역질을 멈추지 못하자 내 곁으로 와서 그동안의 답답함을 풀어내듯 신나게 등을 두들기던 앨리스가 물을 가지고 오겠다며 사라졌다.
“그어어어. 보기엔 그냥 팬케이큰데······.”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팬케이크를 보며 원망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오메가?”
앨리스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돌아보니 만난 적 있는 얼굴이었다.
그때, 앨리스가 물을 가져와서 내 앞에 내려놓았다.
“입 헹구세요.”
뒤에서 나를 불렀던 사람이 놀라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오메가 당신, 딸이 있었어?”
입에서는 역한 맛이 나고, 올라오는 기름 냄새에 머리는 어지럽고, 나와 앨리스보고는 아빠와 딸이 아니냐고 하고.
총체적인 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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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하! 사무 보조 안드로이드였구나? 앨리스라고?”
“네. 저와 사장님의 관계를 부녀관계로 오인하신 부분에 대해 사과를 받고 싶네요.”
“미안해. 겉으로 봐선 몰랐어. 난 타이린드야. 루트에서 일해.”
나를 부른 사람은 타이린드였다.
예공방 조사 때 장총을 두 자루 들고 있던 것만 보다가 캐주얼한 차림이 새로웠다,
빵 위에 크림과 초콜렛이 잔뜩 올라간 디저트를 주문한 타이린드가 합류했다.
정현과 빠르게 친해졌던 것처럼, 타이린드는 앨리스와도 빠르게 친해졌다.
“딱딱하게 타이린드 님이 뭐야. 언니라고 불러. 자, 해봐. 언니.”
“어······언니.”
둘은 금세 이런저런 화제를 꺼내 떠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너희 사장님 유명해졌더라.”
“네. 팬이라고 장난 전화하는 사람들도 늘었어요. 일 안 나가면 맨날 소파에 늘어져 있는 걸 그 사람들도 알까요?”
“그래? 나랑 비슷하네. 나도 일없으면 집에서 뒹굴뒹굴해.”
앨리스와 재잘재잘 떠들던 타이린드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근데 강남 에어리어, 그것도 디저트 카페에는 무슨 일이야?”
“휴가요. 요새 뭘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저 아니었으면 이런데 오지도 않았을 거면서······.’ 하는 앨리스의 말에 타이린드가 킬킬거렸다.
“철없는 아빠와 똑 부러지는 딸 같구만 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앨리스가 먼저 했다.
“아니거든요.”
입에서 맴돌던 기름 냄새가 사라지니 정신이 조금 드는 것 같았다.
타이린드에게 묻고 싶은 것이 생겼다.
“근데요.”
“응?”
“루트 소속이라고 그렇게 밝혀도 돼요? 잠입이나 탐문 같은 일할 때 불리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친구들도 있지. 언더under라고. 걔네는 신원을 비밀로 해야 하지만, 나는 오버over라서 크게 상관없어.”
“언더랑 오버······.”
“근데 오메가 너는 이미 우리 언더 한 명이랑 알고 지내잖아. 다 알면서 모르는 척은······.”
응?
누구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어서 생각하느라 미간을 찌푸렸더니 타이린드가 웃으면서 나를 가리켰다.
“연기하는 것 봐. 연기자 해도 되겠어.”
“언니, 우리 사장님 진짜 모르는 것 같은데요. 그럴 때 특유의 멍청한 표정이 있어요.”
앨리스의 말에 삽시간에 굳어버린 타이린드.
“나 말하면 안 되는 거 말한 것 같은데. 맞지?”
그때쯤 얼추 누굴 말하는 건지 감이 왔다.
“손 줘봐요.”
눈치를 보며 타이린드가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위에 짐작이 가는 사람의 이름을 썼다.
스냅샷
“아, 아, 아, 아닌데? 그, 그, 그 사람 아닌데?”
감정 표현에 거침이 없다 싶더니 대형 사고를 친 것이 분명하다.
내가 딴청을 피우자 곧 울 것 같은 표정의 타이린드가 말했다.
“비밀로 해줄 거지? 어디 가서 말 안 할거지?”
알았다고 말하려던 찰나, 문득 타이린드라면 알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있었다.
이건 절대로 약점을 잡고 협박하는 게 아니다.
다 타이린드가 신나서 떠들다가 벌어진 일을 수습하기 위해 도와주려는 것일 뿐이다.
“적당한 거 하나 알려주면 방금 타이린드가 말한 건 까먹을 것 같기도 한데······.”
타이린드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너머로, 나를 구제불능 폐급 쓰레기처럼 보는 앨리스의 눈빛이 보인다.
아오, 진짜.
인간의 존엄성 어디 갔냐고.
이미 바스라져 형태를 찾기 힘들어졌을 내 존엄성은 잠시 뒤로하고, 타이린드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람 모습인데, 고통도 느끼지 않고, 상처에서 피도 안나는 존재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