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
016.
기묘하다.
학교의 외관은 불에 타고 있지만, 내부는 말끔했다.
가까이 가거나 손을 가져다 대면 비로소 그 부분만 원래의 불타고 망가진 형태로 돌아온다.
폐교의 모든 부분에 멀쩡했던 시절의 환영이 덧입혀진 것 같다.
“이게 한 사람이 만들어낸 거라고?”
중얼거리던 찰나, 위에서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우우우우-
늑대인간이 낼 법한 소리.
나이누안의 원령이 틀림없다.
조심조심 나아갔다.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는 길, 멀지 않은 곳에서 고통에 차서 그르륵대는 소리가 들렸다.
벽에 등을 딱 붙인 채로 안경의 영체 감도를 최대로 높인 후, 고개만 살짝 내밀었다.
전신에 가득한 회색 털, 솟아오른 어깨와 등, 머리 위의 귀, 근육이 가득한 역관절의 다리.
늑대인간.
다만 특이한 점은 전신이 반투명하다는 것.
그리고 그 반투명한 늑대인간의 가슴에는 생전에도 그랬을 것같이 맹렬히 뛰는 기관이 있었다.
마나 하트다.
“목표 포착했어.”
-가능하면 빨리 마무리하셔야 할 것 같아요. 주위에 모여드는 마법사들의 수랑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알겠어.”
속삭이듯 앨리스와의 통신을 마치고 다시 고개를 내밀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천천히 복도를 배회하고 있던 늑대인간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소름이 쭈뼛 돋았다.
“아이들은······보내줘······.”
안경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영체가 가까이 있다는 신호.
장갑의 보호장을 활성화하고 검을 들어 몸을 보호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몸에 격통이 느껴졌다.
“커헉!”
벽을 뚫고 교실에 처박혔다.
고개를 드니 잇새로 냉기를 풀풀 흘리는 늑대인간의 주먹에 얼음이 뭉쳐있는 것이 보였다.
손을 움직여 갈비뼈 근처를 매만졌다.
아파 죽을 것 같긴 한데 다행히 부러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예공방의 장갑과 티셔츠, 생각 이상이다.
“영력으로 이 정도의 물리적 타격까지 줄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달려들어 검을 박아넣으려는데, 놈의 입이 달싹거리나 싶더니 빙벽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몸을 뒤틀어 중심을 잡으며 빙벽을 베어냈다.
부서지는 빙벽 너머로 보이는 것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나이누안.
그리고 그가 맺고 있는 수인手印과 그 주변에 가득한 마법진들.
“아이들도 이런 고통 속에서 죽어갔겠지. 셀티스도. 나도.”
나이누안의 말에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더욱 섬뜩하다.
“업화業火”
나이누안의 간결한 영창이 끝나자 그의 손 주변에 떠 있던 마법진들이 일제히 열기를 뿜기 시작했다.
‘이거 보통이 아닌데.’
이건 역려건곤으로 위력을 반감시켜도 남은 절반으로 죽을 수도 있다.
플람 수플레로 화염의 벽을 세우면 벽과 함께 잡아 먹힌다.
그런 위기감이 전신을 관통했다.
감각이 극한으로 곤두섰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며, 주위의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물론, 느리게 가는 흐름 속에서도 나이누안의 마법은 나를 향한 거대한 불줄기를 완성시키고 있었다.
‘1보 후퇴다!’
바꿔치기 스킬로 교실 문 바로 옆에 있던 책상과 위치를 바꿨다.
멈추지 않고 고속 이동으로 교실 밖으로 탈출, 곧바로 ‘화염 내성 증가’, ‘피부 경화’, ‘1초간 주변 공기 없애기’ 등등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마이너 스킬을 동원해 화염이 가까이 오는 것을 막았다.
나이누안의 마법은 교실이 있던 층 대부분을 불사르고서야 사라졌다.
남아 있는 열기가 몰려들어 숨을 쉬기 힘들었다.
잿더미가 되어버린 교실은 차츰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인간 형태의 나이누안이 중얼거렸다.
“이걸로는 안 돼. 이래서는 아이들을 지킬 수 없어.”
그리고는 단숨에 늑대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나에게 달려들었다.
검을 휘둘러 막아낸 뒤, 한 손을 뻗어 늑대인간의 옆구리에 불덩이를 한 방 먹여줬다.
움찔.
놈이 반응을 보였다.
같은 자리에 연속해서 불덩이를 박았다.
두 방, 세 방.
결국 나이누안은 뒤로 몸을 날린 뒤 나를 노려봤다.
그런 녀석을 위해 다음을 준비했다.
내 손끝이 향한 나이누안의 발 근처로 마법진이 순식간에 그려졌다.
“화염계는 나도 좀 익혔거든.”
숨을 한 번 내쉬기도 전에 벌어진 일.
업화가 대규모 공간 장악 스킬이라면, 이건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한 잔혹한 불의 엄벌.
[아우토다페auto-da-fé]
나이누안은 몸을 피하려 했으나 내 발 묶기 스킬 사용이 더 빨랐다.
녀석이 움찔거린 짧은 순간, 마법이 완성되었다.
보기만 해도 눈이 아려올 것 같은 화염이 마법진에서 치솟는다.
화형의 거행이다.
모든 걸 살라버릴 듯 무섭게 타오르는 불 너머로 얼음에 갇힌 늑대인간의 눈빛이 보인다.
그 짧은 순간에 스스로를 거대한 얼음으로 만들어 보호한 것.
아우토다페가 사라진 이후, 늑대인간이 갇혀 있던 얼음이 쩍 소리와 함께 갈라지고 털끝이 약간 그을린 나이누안이 걸어 나왔다.
저건 ‘진짜 재능’이다.
내가 마탑주였어도 눈이 돌아가지 않았을까.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테오릭 경도 이름을 들어 봤을 정도라고 했으니 나이누안은 틀림없이 훌륭한 마법사였을 거다.
어쩌면 정말로 대림 에어리어를 바꿨을 수도 있다.
그런 이가 왜 지금은 이런 신세가 된 걸까.
왜 죽어서도 원령이 되어 배회하고 있는 걸까.
짧은 상념 속에서 수십 회의 공방이 오갔다.
모든 걸 동원한 것 같다.
검과 마법은 물론이고 짜낼 수 있는 마이너 스킬들도 최대한으로 짜냈다.
비로소 내가 이 세계에 녹아들어 살아 숨 쉬고 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점점 또렷해지는 정신과는 다르게 몸은 엉망이 되어갔다.
한쪽이 깨진 안경의 진동은 계속되고 있고, 장갑은 너덜거려 보호장 따위는 가동되지 않는다.
특수강 티셔츠 덕분에 배와 가슴에 얼음이 꽂히는 꼴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번져오는 고통은 어쩔 수 없다.
화염을 피해 뒹구느라 팔다리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될 동안 나이누안 역시 모습이 온전치는 못하다.
거의 잘려 나가 덜렁거리는 팔, 흐려지다 못해 사라지기 직전인 하체.
“끝인가.”
인간 모습을 한 나이누안의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미친 듯이 마나를 그러모아 마법을 뿌려대던 그의 마나 하트도 이제 가느다란 맥동만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그가 만들어냈던 학교의 온전한 모습도 차츰 사라져 원래의 흉측한 모습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줄곧 혼탁했던 그의 눈이 맑았다.
마지막 힘을 끌어낸 것일까, 내게 전해져오는 그의 목소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정갈했다.
여태껏 과거의 일에 매여 있던 말투도 사라졌다.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요.”
나이누안의 몸은 점점 흩어지고 있었다.
전투의 여파로 지친 나는 검의 전개를 해제한 채로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앉았다.
외양으로만 봤을 때 나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서로의 목숨을 노리며 피어난 미묘한 동질감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자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순순히 나이누안의 령이 묻는 대로 대답해주었다.
“오메가.”
“화염계 마법사이신 것 같던데, 검에도 매우 능숙하시더군요.”
“마법은 쓸 줄 아는데, 마법사는 아니야. 해결사지.”
놀란 표정을 짓는 나이누안.
“의외네요. 화염계 마탑의 중진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너저분하게 싸운 건 오랜만이야. 온몸이 쑤셔.”
피식 웃은 나이누안이 내게 물었다.
“해결사가 여기 있다는 건 누군가 절 없애달라는 의뢰를 했나 보군요.”
“아니.”
나이누안의 마나 하트를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그걸 가져가서 내가 쓸 거야. 나를 위한 일이지.”
내 말에 입을 헤 벌리던 나이누안이 배를 잡고 웃었다.
순진한 웃음이었다.
“많은 마법사들이 와서 제 마나 하트를 노렸는데 정작 가져가는 사람은 해결사라니, 재밌네요.”
“그러게.”
이제 나이누안의 하체는 거의 사라지고, 상체도 흐릿해지고 있었다.
끙- 하는 신음과 함께 몸을 일으킨 내게 나이누안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혹시, 샴록을 알고 있나요? 당신의 검에서 샴록이 데리고 있던 소환수의 기운이 어렴풋하게 느껴져요.”
그리핀이라 부르던 그 소환수의 다리와 날개를 잘라낼 때 잉크가 터져 나와 검에 가득 묻었었다.
신경 쓰여서 틈나는 대로 닦아냈는데,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나 보다.
고민했다.
나이누안에게 그가 죽은 뒤의 일을 알려주어야 하는 것인가.
모르는 채로 사라지는 편이 그에게는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나이누안에게 거짓을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마음을 정한 나는 진오와 샴록이 지금 어떤 일을 하려는지 알려주었다.
처음에는 듣기 힘들다는 듯 고통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던 나이누안은 차츰 씁쓸한 얼굴로 바뀌어 갔다.
“그렇게 해서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텐데.”
그건 모를 일이다.
나이누안이 지닌 힘으로 무장투쟁을 했더라면 또 다른 미래가 그려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하는 건 부질 없는 짓이니까.
오히려 고민을 안겨 준 건 나이누안이었다.
“해결사라고 했죠? 의뢰를 하고 싶어요.”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진오와 샴록을 바른길로 돌려주세요.’ 같은 의뢰는 사절이야. 네가 뭘 줄지는 모르겠는데, 가성비가 너무 구린 의뢰라고. 그리고 걔네도 알 거 다 아는 성인인데 내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하는 것도······.”
“그거 아닌데요.”
나는 입을 다물었고, 나이누안은 그런 내가 재밌다는 듯 킥킥거리며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달싹거리는 나이누안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나를 혹하게 했다.
“거절하기 힘든 의뢰네.”
나이누안이 빙글 웃고 내게 말했다.
“받아들일 건가요?”
“그래.”
나이누안의 손이 내 이마에 닿았고, 그 순간 나는 나이누안의 잔류사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