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013.
드론이 내뿜는 가느다란 빛만 있는 어두컴컴한 통로 안, 정현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저희 똥 밟은 것 같은데요.”
녀석의 시선을 따라 드론의 불빛이 선로와 그 주변을 밝혔다.
폐쇄되었으니 먼지가 가득 해야 하건만, 선로 주변에는 수많은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정현의 옆에 쭈그려 앉자, 근래에 새로 생긴 것이 분명한 스크래치가 선로에 잔뜩 보였다.
많은 사람의 발자국, 무거운 걸 싣고 가는 통에 생긴 스크래치.
“리벨리온이 이쪽 통로를 이용했나 봐. 인센티브 받는 건 좋은데, 더 가면 뭐가 나올지 몰라서 좀 불안하네.”
그때, 예공방에서 조사원들에게 지급해 준 드론이 허공에서 푸른 빛을 뿌리며 통로를 스캔했다.
-근방의 다른 드론과 링크합니다. 데이터 정리 및 입체 도면 작성 중. 약 5분여의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드론에서 나오는 기계음이었다.
한 시간마다 이동한 통로에 대한 데이터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지 이렇게 멈추어 서곤 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모여서 의견을 나눴고.
시원하게 물을 들이켜는 타이린드에게 물었다.
“정현이 했던 말, 어떻게 생각해요?”
“인센티브 받을 것 같다는 말?”
“네.”
고개를 젓는 타이린드.
“다섯 통로의 시작점 모두 사람들이 드나든 흔적이 있었어.”
나도 봤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모든 통로를 이용한 것처럼 하고 실은 한 곳만 이용한 기만책. 아니면 애초에 여기서 물건을 분배해서 이동하려는 계획일 수도 있었겠군요.”
“머리 회전이 빠르네. 그럼 리벨리온은 둘 중 어느 걸 택했을 것 같아?”
통로를 모두 이용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한 곳만 이용했다기에 탈취당한 무기의 수가 너무 많았다.
화기류만 백 정이 넘고, 다양한 종류의 수류탄이 담긴 박스만 해도 팔레트 대여섯 개를 가득 채울 정도라 들었다.
이외에 충격저장슈트나 부스트 건틀렛 같은 특수 장비도 엄청나게 가져갔다고 하니 통로 하나만 이용해서 나르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지 않았을까.
나중에 한곳으로 모으더라도 일단 처음에는 여러 군데로 분산시켜서 밖으로 빼냈을 것 같았다.
“제 생각은 다섯 통로를 모두 이용했다는 쪽이요.”
타이린드가 입가에 미소를 싱긋 띠었다.
“이유는?”
내가 생각한 이유를 말해주자 정현은 벙찐 얼굴이 됐고, 타이린드는 날 가지고 싶어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이 됐다.
“엘림의 추측이랑 거의 비슷해. 리벨리온이 물자를 빼낼 때 한 곳만 이용했을 것 같지는 않다고 했거든. 루트에 안 들어올래? 네가 있으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
처음 들어보는 단어다.
“엘림?”
“루트의 뇌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야. 우리가 자료를 수집해서 올려보내면 엘림은 그걸 가공해서 정보로 만들어내는 거지.”
정보조직 루트의 뇌, 엘림.
기억해둘 만한 가치가 있는 이름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스카웃은 거절이다.
아무래도 단체보다는 혼자가 움직이기 편하다.
“말씀은 고맙지만 저는 아직 어디에 소속될 생각은 없어서요.”
“‘적어도 지금은’ 중립이라는 건가?”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혹할만한 제안을 가지고 온다면 어딘가에 소속될지도.
하지만 적어도 그게 지금은 아니고, 그 단체가 루트도 아니다.
그동안 드론의 데이터 정리가 끝났는지 다시 각자의 어깨 곁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다시 주위를 경계하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드론이 몇 번이나 데이터 정리를 한 이후, 우리는 마침내 통로의 끝에 도달했다.
그곳의 풍경은 우리를 매우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벽, 선로 위에 내버려진 임시 궤도차량.
여기까지 물건을 싣고 온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았다.
“저희 얼마나 걸었죠?”
정현의 물음에 내가 답했다.
“느린 걸음으로 4시간? 여긴 꽤 습하네. 덥기도 하고.”
“아래로 꽤 내려온 것 같아요.”
주위를 둘러보며 벽으로 향하는 정현을 향해 타이린드의 경고가 날아들었다.
“조심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무런 방해가 없었다는 게 이상해. 폭발 트랩이라도 있으면 그대로 매장되는 거야.”
섬뜩한 그녀의 말에 벽을 향해 손을 내밀던 정현이 흠칫하고 몸을 움츠렸다.
나와 타이린드는 조심스레 궤도차량을 살펴보았으나 별다른 건 없었다.
“이걸 써서 무기를 여기까지 나른 건 확실해 보이네.”
“내 생각도 그래. 그런데 물건이랑 사람을 어디로 옮긴 거지?”
그때, 지반이 가늘게 떨렸다.
좌측에서 아련하게 폭음 같은 것도 들리는 것 같았다.
“다른 팀에서 문제가 터졌나?”
소리를 조금 더 자세히 듣기 위해 통로의 왼쪽 벽에 몸을 밀착한 채로 ‘청력 강화’ 스킬을 사용했다.
폭음은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스킬을 해제하려는데, 정현의 발끝에 차인 돌멩이 하나가 내가 귀를 대고 있던 벽에 부딪혔다.
터엉- 터엉-
증폭되어 들려오는 소리에 재빨리 몸을 떼고 머리를 흔들었다.
“괜찮아?”
타이린드가 내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정현에게 말했다.
“돌멩이 하나 주워서 여기에 던져봐.”
내가 귀를 대고 있던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정현이 돌을 던졌지만, 아까와 같은 소리는 나지 않았다.
터억하는, 반대편이 막혀있는 것 같은 소리만 반사되어 돌아왔을 뿐이다.
이번에는 내가 돌을 들고 처음에 귀를 댔던 곳에 던지자 다시 한번 터엉-하는 울리는 소리가 났다.
“비어있나 본데. 비켜봐.”
어느새 총 한 자루를 꺼내 벽을 향해 겨눈 타이린드의 말.
“누님, 그런 걸 여기서 갈겼다가 잘못해서 무너지기라도 하면요!”
그새 정현은 타이린드를 누님이라 불렀다.
“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냐?”
타이린드의 오른손이 조정간과 방아쇠 근처의 여러 버튼을 누르자 철커덕하는 소리와 함께 총열이 조금 짧아졌다.
그리고, 격발.
타이린드의 상체가 조금 흔들리는 것과 동시에 팟하는 작은 소음이 넓지만 어두운 통로를 가로질렀다.
곧 탄환과 충돌한 곳이 쿠르릉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사람 크기보다 조금 넓게 만들어진 별개의 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타이린드의 기술이었다.
‘목표에 닿는 것과 동시에 충격을 방사형으로 퍼트린 건가? 총이나 탄환 종류만으로는 만들어내기 힘든 기예인 것 같은데.’
형태가 멀쩡한 채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탄두를 집어 들고 타이린드를 바라보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여자의 비밀을 궁금해하는 건 매너가 아니야.”
‘궁금해 죽겠지?’라는 표정을 하고 그런 말을 하면 먹히겠냐고······.
무너진 잔해를 대충 치우자 임시로 만들어진 길 군데군데 예공방 마크가 찍힌 나무 박스 잔해들이 보였다.
“인센티브는 확정인 것 같은데, 할 일이 늘어난 것 같아 썩 반갑지는 않네.”
정현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조했다.
그래, 초과근무는 사절이라고.
“그럼 일단 돌아가서 다른 팀들은 어떻게 됐나 알아볼까요? 아까 폭음도 신경 쓰이고······.”
“이 거리를 또 걸어오라고? 난 총을 두 자루나 짊어지고 다닌단 말이야. 힘들어서 못 가.”
나도 타이린드 말에 동의한다.
어둡고 덥고 습하고 먼지 많은 곳을 왔다 갔다 하는 건 질색이다.
“드론은 최대 72시간까지 가동된다고 했고, 다들 식수랑 식량 체크. 일단 난 문제 없어.”
내 말에 정현과 타이린드 모두 이상 없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럼 들어가는 걸로?”
“가자고.”
먼저 발을 들이려던 타이린드가 멈칫하고는 우리에게 말했다.
“원래 총 든 사람은 후위에 있는 거야.”
옆을 보니 정현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이놈 봐라?
나다 싶으면 앞장서.
대충 상황 돌아가는 꼴을 본 정현이 사장님한테 이를거라고 투덜대면서도 앞장섰다.
그렇게 몇 발자국이나 걸었을까.
정현의 발 근처에서 이질적인 소리가 들렸다.
피잉-
긴장감 있게 팽팽하게 당겨진 것이 풀려나는 소음.
정현의 발목에 걸려 끊어진 가느다란 철선이 어두운 길 안쪽으로 휘말려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불콰한 공기가 훅하고 밀려 나왔다.
무의식적으로 팔꿈치를 접어 호흡기 근처로 가져갔다.
‘독?’
익히고 있는 스킬 중에 만독불침은 없다.
마법과 과학 모두가 발달한 이쪽 특성상 어떤 종류의 독인지 알아내기란 매우 어려울 터, 중독은 피해야 했다.
하지만 정현의 반응은 달랐다.
“가스 냄새?”
철선이 향한 앞쪽에서 작은 불빛이 반짝였다.
그것은 이내 굉음과 열기를 내뿜으며 우리를 향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뭐해! 도망쳐!”
상황판단을 마친 타이린드가 우리가 들어왔던 곳을 향해 몸을 날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 역시 온 힘을 다해 몸을 뒤로 돌리려는 찰나, 굳어버린 듯 제자리에 박힌 정현이 보였다.
‘이거 다 너희 사장님한테 뽑아 먹을 거다.’
손을 뻗어 정현의 뒷덜미를 덥석 잡자 녀석은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 소리를 질러댔다.
“폭발! 가스폭발!”
“닥쳐!”
다시 앞이 막힌 선로로 뛰쳐나왔다.
습하긴 하지만 불이 꺼질 환경은 아니다.
가득한 먼지.
차량기지까지는 폐쇄된 공간.
안쪽에서 연이어 들려오는 폭음.
이건 돌아간다고 피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조금 전, 우리가 뛰쳐나온 새로운 통로 앞에 발을 붙이고 섰다.
그리고 빠르게 말했다.
“못 본 걸로 해주세요. 특히 정현 너는 더욱.”
그동안 해결사 생활을 하며 종종 조그만 화염계 마법을 사용한 적은 있었다.
그것 때문에 화염계 마탑인 불칸 마탑에서 나를 초청하려는 시도도 있었고.
본격적으로 화염계 마법을 사용했을 때는 혼자 얼굴을 가린 채 지하 투기장에 침입하거나, 가브리엘라를 구해내거나 하는 상황 정도.
이후에 가브리엘라에게는 내가 화염계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다짐을 받았다.
이미 검술 때문에 원치 않는 관심을 끌게 되었는데 마법까지 사용한다는 말이 퍼지는 걸 원치 않았다.
즉, 공식적으로 ‘해결사 오메가가 화염계 마법을 사용한다.’라는 것은 업계 사람 누구도 모르는 상황.
가능하면 끝까지 숨기고 싶었는데, 안 쓰면 그대로 구워질 것 같으니 어쩔 수 없다.
함구해달라는 부탁에 기댈 수밖에.
두 손을 앞으로 뻗은 뒤 검지와 엄지를 붙여 삼각형을 만들었다.
안쪽에서 밀려 올라오는 폭발이 나를 덮치기 직전, 모아두었던 숨을 내뿜었다.
손가락으로 만든 삼각형 사이를 통과한 숨은 그대로 불의 장벽이 되어 타이린드의 총격이 뚫어놓은 벽의 구멍을 틀어막았다.
‘저 너머의 공기와 연료가 무한하지는 않겠지. 연소가 끝날 때까지만 버틴다!’
내가 만들어낸 불의 장벽 너머로 넘실대는 폭발의 여파를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그리고 아주 길게 숨을 밀어 넣었다.
#
“아래쪽의 진동이 심상치 않아요. 철근을 잡아두고 있는 마력장에까지 영향이 갈 정도입니다.”
3 보관소의 바닥 공동을 안정화 중인 페룬 마탑 마법사의 말.
한쪽 뿔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로 그 말을 듣고 있던 사이먼이 인상을 찌푸렸다.
위타천의 단 한 방에 실신해버렸다.
눈으로 보기라도 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사이먼의 마지막 기억은 얼굴을 구긴 위타천이 자신을 향해 몸을 돌리던 모습이었다.
깨어나니 자기 대신 임시로 웬 사집 하나를 껴서 조사원들이 내려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체면을 구겨도 제대로 구긴 셈.
하르파고스 이사가 보낸 해결사를 주시하라던 수연 상무의 말도 못 지키게 되었으니 일이 제대로 꼬였다.
일단 성과라도 가져가야 했다.
“중단은 없다. 계속 진행해.”
마법사는 언제 봤다고 반말을 지껄이는 사이먼에게 입을 이죽거렸으나 실제로 꺼내어 말할 용기는 없었다.
마탑 중에서도 거친 마법사들이 많다는 페룬 마탑에서도 사이먼과 같은 이는 드물다.
게다가 다들 눈치만 보면서 쉬쉬하고 있지만, 보관소 안쪽의 모두의 시선은 사이먼을 따라다니고 있다.
그것도 부러져서 붕대를 감은 뿔에 집중적으로.
쪽팔려서 괜히 성질을 더 부리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때, 베이스캠프를 구축하기 위해 내려갔던 예공방 직원이 임시로 설치된 타워 리프트를 타고 올라왔다.
다급하게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직원이 사이먼을 발견하고 달려와 말했다.
“선로에서 다른 하수도로 이어지는 길을 찾았답니다. 폭발도 리벨리온에서 설치한 부비트랩이고요. 그쪽을 이용해 물자를 실어 낸 것 같습니다.”
“그래? 누가 찾았다는데.”
조사원들이 팀을 이뤄 갈라졌다는 건 사이먼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오메가, 타이린드, 정현입니다.”
사이먼은 쩝하고 입맛을 다셨다.
정현은 뒤늦게 합류한 사설집행자이니 저 자리가 원래 그가 있어야 할 자리다.
‘내려갔다면 인센티브도 받고, 사고인 척하고 샴록의 유일한 목격자인 오메가를······.’
아쉬워하던 찰나, 마력장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라는 마법사의 말이 스쳐 지나간 사이먼.
어쩌면 본인이 힘을 쓰지 않고도 일이 잘 마무리되었을지도 모른다.
“폭발이 보통 아닌 모양이던데, 내려간 사람들은 괜찮나? 특히 아까 그 셋 말이야.”
“다행히 무사하답니다. 드론 간 통신으로 확인했습니다.”
위타천이 자연스럽게 오메가의 어깨에 손을 올리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괜한 부아가 치민 사이먼.
“운은 더럽게 좋은 놈이군.”
일단 앞뒤 사정 따위는 미뤄두고 운으로 치부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는 편이 속은 훨씬 편할 테니.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부러진 뿔에서 전해지는 육체적 통증과 뿔의 수리와 재생에 드는 비용, 그리고 그걸 위타천에게 청구하지 못한다는 정신적 통증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방향이지?”
“정면으로 뻗은 선로입니다.”
결국 사이먼은 누가 말릴 새도 없이 공동 아래로 뛰어내렸다.
이 개 같은 기분을 풀 화풀이 상대를 찾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