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012.
강남 에어리어에 위치한 위타천의 자택으로 향하는 수송기 안.
제법 오래 위타천을 모셔온 부관, 장이 조심스레 말했다.
“잘하신 겁니다.”
그 말에 뒷좌석에서 눈을 감고 있던 위타천이 눈을 떴다.
그의 눈치를 살핀 장.
다행히 상관의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틀림없이 사이먼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뿔 하나만 부러트리셨으니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이 위타천님의 아량에 감탄하겠지요.”
위타천 앞에서 말 몇 마디 잘못해서 어딘가 부러지거나 심지어 머리통이 터지는 사람을 수두룩하게 보아온 장이다.
게다가 요새 입에 침이 마르게 다른 집행자들에게 언급하던 해결사를 보러 직접 간 자리에서 사이먼은 위타천의 흥을 깼다.
솔직히 말해 장은 위타천이 사이먼의 목을 180도 뒤로 돌린 다음 근육질의 몸통이 다 흐물흐물해지도록 매타작해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평소에는 피로에 쩔어 세상만사 귀찮아하는 것 같은 위타천이지만, 자신이 흥미 있어 하는 대상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그런 관심을 둘 대상이 몇 되지도 않는데, 그 흥을 깼으니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장이 아는 위타천은 그럴 힘이 있었고 충분히 그렇게 해도 되는 위치였다.
그런데 마지막에 영력으로 뭉친 봉의 방향을 틀어 사이먼의 뿔 하나만을 부쉈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위타천의 잔혹함이 조금은 줄었다는 말이 돌 것이고, 네오 서울 시청과의 다음 계약이 순탄히 진행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부관인 장 역시 계속 고용될 것이고.
위타천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부관은 이제 말을 멈춰야 할 때라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
눈을 감은 위타천은 봉을 쥐었던 손을 움츠렸다 펴보았다.
사이먼을 징벌하기 위해 치켜든 영력의 봉.
그 시작점에 한순간의 이질감이 있었다.
‘이질감이라기보다는 흘림이 맞으려나.’
봉이 떨어지기 직전, 살짝 밀고 들어와 원래 목적했던 타격지점에서 아주 약간 밀려났다.
위타천의 타격이 빗겨나게 설계한 것이다.
그 결과 머리통이 봉 모양대로 움푹 들어갔어야 할 사슴 놈의 뿔이 하나만 부러지고 말았다.
위타천의 존재감이 공간을 집어삼켰던 그 순간, 단 한 명 자신에게 반응한 사람이 있었다.
여전히 눈을 감은 위타천이 그의 이름을 조용히 읊조렸다.
“오메가.”
아직까지 손에 남아 있는 타인의 감각.
그리 불쾌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위타천의 입꼬리가 귀를 향해 길게 올라갔다.
‘알아갈수록 재미있는 후배로군.’
흘끔거리다 우연히 눈을 감은 채로 히죽거리는 위타천을 본 장은 곧장 허리를 곧게 펴고 시선을 앞에 고정했다.
저런 식으로 즐겁게 웃는 상관을 본 적은 맹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딘가 두려워지는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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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위타천, 위타천 말만 들었지 그대로 뚝배기를 쪼개려고 드네요.”
“압도돼서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하다니. 격차라는 말로도 부끄러울 지경이야.”
“우리 오메가 형님이 저런 인물과 대등하게 맞섰다는 거 아닙니까.”
정현과 타이린드가 되도 않는 소리를 나누고 있을 때,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멀지 않은 곳에 사이먼의 뿔이 박살 나면서 생긴 피와 유동액 흔적이 보였다.
사이먼은 그대로 쇼크 상태, 어디론가 실려 간 후였다.
‘틀림없이 머리 정중앙을 박살 낼 생각이었다.’
그걸 알아챈 순간, 칼자루를 꺼내 한 번만 비틀어서 칼등만을 나오게 한 채로 봉의 끝부분을 아주 살짝 건드렸다.
‘무게 중심 이동’과 ‘영력 간섭’ 스킬 덕이었다.
아마 영력 간섭 스킬이 없었다면 내가 뻗은 검은 그대로 영력으로 응축된 봉을 통과했을 것이다.
설령 건드렸더라도 무게 중심 이동을 통해 검의 끝부분에 무게를 싣지 않았더라면 봉의 움직임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을 수도 있고.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위타천이 사이먼을 죽이지 않게 하는 것에 성공할 수 있었다.
사이먼이 예뻐서 그런 짓을 한 건 아니다.
노골적으로 나에 대한 악의를 드러냈고, 드론맨의 말을 들어보면 사이먼은 예공방의 상무 라인인 모양.
확실하지는 않지만, 하르파고스도 상무 어쩌고 얘기를 했으니 뒤에서 리벨리온을 지원하는 자의 수족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좋으나 싫으나 나는 이 건에 깊게 얽혀든 상태.
이런 상황에서 대놓고 내게 호의를 표시하는 위타천이 등장해서 사슴 두개골 개방쇼를 하고 사라지면 모든 부담과 견제는 내게 향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하와이안 아저씨야 막 나가도 다른 사람이 그걸 가지고 뭐라 못하겠지만, 나는 다르다.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려는 차에 너무 많은 관심은 사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관심이 내 주도적인 의지가 섞인 것이 아니라면 더더욱.
일단 위타천이 떠난 후에도 다른 사람들이 내게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으로 봐서 계획은 성공한 것 같다.
“사이먼이 한창때 저 뿔로 들이박아서 장갑차도 몇 대 뒤엎었다 하던데 그걸 일격에 박살 내버리네요.”
“위타천의 무위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어.”
나를 보는 타이린드의 시선이 다시 허리춤에 결속해놓은 칼자루에 닿았다.
“아까와는 다르게 결속되어 있군.”
빠르게 뽑고 다시 납검하느라 앞뒤가 바뀌었나.
“꼬였나 보죠.”
아무렇지 않은 척 시치미를 떼며 칼자루를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정보 조직의 일원이라더니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다.
어수선해진 현장 분위기는 곧 잠잠해지고 마침내 보관소의 문이 열렸다.
안쪽에 있던 예공방 직원 몇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사이먼 팀장님은 못 오실 것 같은데······.”
“서류에 적힌 인원은 맞춰야 나중에 뒤탈이 없을 텐데요.”
“일단 내려보내고 땜빵하죠? 유도리 있게.”
“이거 테러 조사에요. 추후에 감사 나오면, 그래서 땜빵 친 거 발각되면 누가 책임집니까?”
듣고 있자니 끝이 없을 것 같아 가서 말했다.
“이 친구 데려가죠? 정현이라고 사설 집행자인데 인원 채우는 정도로는 괜찮을 겁니다. 하르파고스 이사님이 하청 내린 업체 소속이니까 신원도 확실하고.”
“저요?”
정현이 놀라는 사이, 직원들의 시선이 정현을 위아래로 훑는다.
“아래에 어떤 위험이 있을 줄 몰라서요.”
“위험하면 사집한테 딱이겠네요. 그렇지? 너도 괜찮지?”
“어어······사장님한테 여쭤봐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럼 잠깐 있어.”
나가서 키클롭스 아재에게 대략 상황을 설명하자, 그때까지도 위타천 왔다 간 걸 말 안 해줬냐면서 꽁해있던 아재 표정이 펴졌다.
“우리야 낄 수 있으면 만세지. 오 사장! 일 마치면 내가 찐하게 쏠게. 진짜로!”
돌아와 말했다.
“문제없대요.”
직원들은 그사이 간략히 써진 동의서를 정현에게 받았다.
조사원들이 하나둘 내려앉은 보관소 바닥 근처로 모여들었다.
총원 열다섯.
좀 높아 보이는 예공방 직원이 소리쳤다.
“페룬 마탑의 마법사분들이 잠시 마력장을 해제할 겁니다. 그때 내려가시면 되겠습니다. 지하 구조 조사가 우선이고 리벨리온 추적은 후순위입니다. 혹여 흔적을 발견하시면 나눠드린 드론으로 저희에게 연락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신호하자 마법사들이 유지하고 있던 마력장을 해제했다.
깊은 어둠 속, 어렴풋이 녹슨 지하철 차체와 선로가 드문드문 보였다.
“저희는 보강공사를 진행한 뒤, 이곳 바로 아래에 베이스를 차려놓겠습니다. 예정된 조사 기간은 이틀이니 베이스에서 식량과 식수를 보충하시면 되겠습니다.”
말이 끝나자 하나둘 깊은 무저갱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날개를 펼쳐 내려가는 사람도 있었고, 주위의 공기나 중력을 조정해서 하강하는 인원도 있었다.
정현은 날랜 몸놀림으로 이리저리 튀어나온 콘크리트와 철근들을 밟고 내려섰다.
“해결사는 어떻게 내려가려나?”
타이린드가 말에 음을 실어 내게 말했다.
“저는 명사수가 내려가는 방식이 궁금한데요.”
피식 웃은 타이린드가 등에 매어두었던 장총 두 자루를 꺼내어 총구를 아래로 했다.
그리고 안쪽으로 폴짝 뛰자 총구에서 마치 로켓의 엔진처럼 불꽃이 분사되어 천천히 중심을 잡고 아래로 향했다.
고개를 위로 올려 나와 눈을 맞춘 타이린드가 웃으며 말했다.
“죽이지? 끝내주지? 아찔하지?”
총이 숨을 쉬듯 부품이 들썩거리며 압력과 분사량을 조절하는 모습은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올 정도.
하지만 중심을 잡기 위해 연신 이리저리 몸을 비트는 타이린드를 보고 있자니 어딘가 웃음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었다.
“형님! 내려오시죠!”
정현이 나를 불렀다.
마침 인원 대부분이 내려간 상황.
나는 계단을 밟듯 허공에서 한 걸음씩 내려왔다.
기공 계열의 스킬, ‘천상제天上梯’.
순전히 멋과 분위기만을 위한 스킬이라 시전 도중 한 대 맞으면 그대로 취소되어 추락하곤 해서 이동류 스킬 중에는 최악으로 평가받았던 스킬이다.
하지만 로망만은 가슴에 살아 숨 쉰다.
아래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내려다보며 천천히 움직였다.
내가 제일 잘난 놈인 것 마냥.
그걸로 된 거 아니겠나.
아래로 내려서자 위쪽에서 다시 마력으로 당겨진 철근이 삐그덕하는 소리가 들렸다.
일단 사람들 모두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 없는 이들과 한 곳에 구겨 넣어진 상황.
게다가 이곳은 리벨리온이 사용했던 곳.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른다.
다만 타이린드만이 신기한 듯 다 부스러지기 직전인 지하철을 쓰다듬고 있을 뿐이었다.
차츰 어둠이 눈에 익자 차량기지에서 뻗어나간 통로가 보였다.
어깨를 으쓱한 타이린드가 중얼거렸다.
“다섯 개네? 우리 정보에는 세 개 정도 있을 거라고 했는데. 네오 서울 난개발은 진짜 끔찍해.”
통로는 다섯. 인원은 열다섯.
모두 다 같이 움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기간은 이틀이라고 했는데, 그 전에 조사 끝나면 바로 종료인 거. 다들 알죠? 혹시 이 중에 시급 계약으로 오신 분 있나? 먼지 가득한 지하에서 이틀 꽉 채워야 하시는 분?”
내 말에 반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후딱 끝내고 나가는 데는 다들 동의하실 것 같고. 그럼 셋씩 찢읍시다.”
“왜 셋이지?”
등허리에 두 쌍의 날개가 달린 인간이었다.
“저는 여기 인원 대부분을 처음 보거든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웬수인데 여차저차해서 한자리에 모인 걸 수도 있잖아요. 웬수랑 둘이 다니긴 좀 그렇지 않겠어요? 셋이면 그래도 다른 하나가 중재하겠죠.”
내 말에 벌써 몇몇은 주위를 둘러보며 팀을 짜려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인원이 딱 맞네요. 사람 셋, 통로 다섯. 열다섯. 괜히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한 번에 끝냅시다. 리벨리온 흔적 발견한 사람한테 인센티브 있다던데, 이렇게 가는 대신 그건 발견한 팀한테 깔끔하게 주기. 인생은 운이라잖아요?”
대부분 내 말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자, 나는 양손으로 정현과 타이린드를 끌어당겼다.
뭔가 좀 아는 것처럼 보이는 녀석 하나, 데리고 다니기 편한 동생 하나.
후딱 일을 마치고 돌아갈 최상의 조합이다.
타이린드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통로 세 개는 안다는 소리죠? 제일 짧고 확실히 막힌 곳으로! 빨리! 빨리!”
나는 조사만 잘 마치면 돼.
그 외 다른 조항은 없었어.
갑자기 위타천이 휩쓸고 지나간 통에 심신미약 상태인데 좀 날로 먹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