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011.
“하르파고스 이사님과는 이전에 별도의 만남을 가진 적이 없었다는 말씀이시죠?”
“네. 애초에 저는 여기 다른 의뢰를 받아서 왔던 거였어요. 먼저 보자고 하신 분은 이사님이었고요.”
기록용 드론이 녹색 빛을 띄우며 내 모습과 발언을 녹화했다.
나는 지금 예공방 대림 생산기지의 한편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당시 현장에 대해 증언을 하고 있다.
몸 자체가 드론 충전기인 듯, 날갯죽지에서 초소형 드론을 들여보냈다, 내보냈다 하는 직원이 계속해서 몇 가지를 물었다.
“이사님 말씀에 따르면 해결사님께 뭔가를 의뢰하셨다던데, 맞습니까?”
“의뢰를 한 건 맞지만 내용까지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개인에게서 받은 의뢰라서요. 비공개가 원칙입니다.”
“비공개가 원칙······알겠습니다. 혹시 당사자의 동의를 받으면요?”
“그때는 상관없죠.”
“알겠습니다. 이미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살펴봤는데요. 하르파고스 이사님이 습격당하던 차에 때마침 도착하셨더라고요.”
“그랬죠.”
직원이 잠깐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사실 그 당시에 제3 보관소가 습격을 받았단 말이죠. 폭발과 굉음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쪽으로 가지 않고 굳이 하르파고스 이사님께 가신 이유가 있는지요?”
“영업 기밀입니다.”
가진 패를 보여줘야 할 이유는 없다.
내가 하는 일이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오가는 만큼, 명성은 높일수록 실력은 숨길수록 좋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말에 날 찍고 있던 녹화 드론의 불빛이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직원의 몸에서 다른 드론들이 드나드는 것도 멈췄다.
“이건 오프 더 레코듭니다.”
말이 빨라지는 직원.
“하르파고스 이사님의 부탁을 받고 나왔습니다. 지금 내부감사 때문에 회사가 복잡한 터라 직접 나오지 못한 걸 이해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째 예공방 테러가 뉴스와 신문, 찌라시 할 것 없이 다뤄지고 있는데 바쁠 것이다.
그 와중에 누가 이런 일을 사주했는지도 알아내야 하니 하르파고스는 더더욱 그렇겠지.
“이사님은 해결사님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해결사님이 리벨리온rebellion과 손을 잡은 것이 아니냐 하는 의견도 있는 상태입니다.”
리벨리온.
근래 들어 언론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단어다.
진오와 샴록이 이끄는 단체를 부르는 말.
대림 에어리어는 물론이고 인천 권역, 서남해 권역에도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저 대림 에어리어를 바꾸고 싶어 하는 그들로서는 자신들에게 반역자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 달갑지 않겠지만, 방산기업의 생산기지를 습격한 것만으로도 중대한 테러 행위다.
게다가 이곳에서 탈취한 무기들을 가진 사람들이 대림 에어리어 곳곳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위험천만한 구역인 대림 에어리어에 그들로 인한 긴장감이 새로이 조성되고 있었다.
“단언컨대 일전에 방문했을 때 우연히 마주친 게 전부입니다. 그때는 그들이 리벨리온이라는 것도 몰랐고요.”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알겠습니다. 증언 청취 직후 시작될 외부 조사에서도 해결사님을 의심하는 자들이 있을 겁니다. 외부조사원들은 거의 다가 임원분들의 입김이 닿아······.”
누군가 사무실을 향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녹화 드론의 불빛이 녹색으로 바뀌는 것과 거의 동시에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아직 안 끝났나? 곧 내려가야 한다는데?”
기계로 된 거대한 뿔을 달고 있는 사슴 수인이었다.
입고 있는 컴뱃셔츠 위로도 근육과 핏줄이 도드라져 보일 정도의 근육질 거구.
“거의 끝났습니다.”
사슴 수인은 직원의 말을 무시한 채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쪽이 하르파고스 이사가 지목한 외부조사원인가? 이름이 뭐랬지?”
대놓고 무시하는 어조이길래 나도 간략하게만 답했다.
“오메가.”
“오메가? 들어본 적 없는데. 마법사신가?”
“해결삽니다.”
사슴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해결사? 참 나. 요새 예공방 많이 힘든가 보네. 이런 큰 사건에 외부 조사인으로 해결사를 부르고.”
모욕은 감내해야 할 때가 있고, 반박해야 할 때가 있다.
초면에 성질 긁는 말을 찍찍 내뱉는 놈에게 듣는 모욕은 어느 때라도 감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손가락을 푸는 척하며 손바닥에 작은 불덩이를 하나 만들었다.
털을 좀 그슬려주면 입을 좀 다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다가가려는데 드론맨이 벌떡 일어나 나와 사슴 수인 사이를 가로막았다.
“내려가시죠. 사이먼 팀장님. 안 그래도 오늘 바쁘실 것 같은데 왜 미리 힘을 빼십니까.”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어느새 여러 대의 드론이 드론맨의 몸에서 나와 초록색 빛을 내며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그걸 본 사슴 수인은 뿌득하고 이를 한 번 갈고는 밖으로 나갔다.
드론을 회수하고 나를 향해 몸을 돌린 드론맨이 말했다.
“보셨죠? 일이 이렇게 되어서 미안하다는 이사님의 말씀도 있으셨습니다. 원래 조사원은 오메가 님 한 분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다른 임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라인들을 밀어 넣는 바람에 복잡해졌답니다.”
어째 쉬운 일이 없다.
그래도 이 일이 잘 마무리되면 지원 든든히 받아서 마나 하트를 가지러 갈 수 있을 테니 참자.
일단 저 사슴 수인이 요주의 인물이 될 것 같았다.
“방금 저 사람은 누굽니까.”
“사이먼이라고 보안 팀장입니다. 전직 군인인데 가끔씩 이렇게 조사 현장에 파견 나와요.”
“저 사람도 조사원으로 참여하는 겁니까?”
“아마도요. 원래는 상황 조율만 맡는데 이번에는 굳이 내려간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저쪽 라인인 수연 상무님 입김이 닿았겠죠.”
내가 여기 조사에 협력하기로 한 이유는 일단 페룬 마탑의 마탑주와 자리를 마련해주겠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고, 샴록과 진오를 추적할 수 있을 거라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그런데 어째 조금 꼬여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게나 몸을 사리면서 기업 내부 일에는 개입하지 않으려고 했건만 아까 사슴의 눈빛을 봐도 그렇고 나를 하르파고스 라인으로 인식하는 눈치다.
어쩌면 하르파고스는 이걸 생각하고 나를 여기에 참여시킨 건가?
힘 쎈 검덕후인 줄로만 알았더니 이사 직함은 괜히 단 게 아닌 모양이다.
여기까지 와서 못한다고 할 수도 없으니 일단 마무리를 지어놓고 대가와 보상을 제대로 청구할 거다.
앨리스한테 얘기하면 알아서 탈탈 털어주겠지.
좀 지내면서 보니까 돈이나 보상이 걸려 있으면 앨리스가 좀 악랄해지는 면이 있다.
근데 그 악랄함이 나한테만 안 뻗치면 되지 뭐.
밖으로 나가니 키클롭스 아재가 옆에 갈색 털이 인상적인 개 수인 하나를 대동하고 서 있었다.
“오 사장이 우리 사무소 추천했다며? 진작 말하지 그랬어. 어제 예공방 연락받고 깜짝 놀랐잖아.”
사고 현장에 일정 부분 현지 업체가 참여해야 한다는 네오 서울 조례가 있었고, 아는 업체 있냐는 하르파고스의 말에 키클롭스 아재네를 알려줬더니 불러들인 모양.
“저는 쉬는 날인데 끌려 나왔습니다. 형님이 봐도 이건 좀 아니죠?”
옆에서 투덜거리는 개 수인은 정현.
키클롭스 아재의 사무실에 소속된 사설 집행자다.
우리 사무실에도 키클롭스 아재 따라서 몇 번 놀러 온 적 있는데, 개 수인이라 그런지 아니면 얘 자체가 그런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는데, 그건 원래 개 수인들 특징 아니냐니까 자기는 좀 남다르다나?
정현을 향해 손을 한 번 흔들어 준 뒤 키클롭스 아재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 사람 좀 아세요?”
“누구?”
“기계 뿔 단 사슴요.”
“사슴······. 아! 사이먼? 나름 유명하지. 퇴역 군인인데 어디 갔나 했더니 예공방에 있었구만. 만주 권역이랑 허베이 권역 사이에 있던 도시 간 전쟁에서 이름 좀 날렸어. 왜?”
“영 띠껍게 굴어서요. 사슴 새끼.”
“정확히는 순록 수인일 거야. 사슴 수인이라고 하면 눈 뒤집힌다니까 조심해.”
“고놈이 고놈 아니에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자기들끼리는 또 뉘앙스가 다른가 보지.”
잡담을 가장한 뒷담화를 하는 사이, 3 보관소에서 뛰쳐나온 직원이 소리쳤다.
“조사 시작하겠습니다! 조사원분들은 모두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곧 신원 증명 마치면 즉시 내려가겠습니다!”
보관소 앞으로 들어가자 비틀린 문 사이로 안쪽 풍경이 살짝 보였다.
마법사들이 마력장을 형성해 더 이상의 붕괴를 막고 있었다.
철근을 붙들고 있는 마력장의 모습과 마법사들의 흉장에 그려진 문장을 보니 페룬 마탑의 마법사인 것 같았다.
26구역 폐교에서 봤던 마법사들과는 다르게 페른 마탑의 마법사들은 군복과 비슷한 형태의 의복을 입고 있었다.
“살벌하네.”
“그러게요. 형님.”
고개를 돌려보니 정현이었다.
“너 경비로 온 거 아냐? 여기 있어도 돼?”
“어차피 서류상 올라갈 회사 이름이 필요한 거라 제가 가봤자 도움 안 돼요.”
그건 네가 판단할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조사원들이 나를 흘끔거리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노가리 깔 동생 하나 있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 구태여 돌려보내지는 않았다.
직원 관리는 사장이 하는 거니까 키클롭스 아재가 알아서 할 거다.
그렇게 신원 확인을 마쳤는데도 보관소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왜 안 열지?”
“아직 승인 서류가 안 왔나 봐요. 아마 이 정도 규모면 공공 집행자의 승인 서류가 있어야 할 거예요. 다 요식행위긴 한데, 어느 일이나 책임자는 필요하니까요.”
정현의 말에 옆에서 장총 두 자루를 등에 X자로 멘 여자 하나가 끼어들었다.
“말하는 게 집행자들이랑 일 좀 해본 것 같아?”
“내가 사집(사설 집행자)이니까요.”
“그래? 이번 조사원 중에 사집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나는 조사원 구성에 대해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 이 여자는 뭔가 알고 있는 눈치.
“저는 조사원 아니에요. 이 형님이 조사원이죠.”
여자의 눈이 내게 닿았다.
그녀의 시선이 순식간에 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칼자루밖에 없는 검. 퓨어. 해결사 오메가 맞지?”
여인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타이린드. 루트 소속이야. 적어도 지금은 중립이지.”
루트란 단어를 어디서 들어봤나 하고 생각하는 사이 정현이 먼저 반응했다.
“루트요? 정보 조직 루트? 타이린드면... 쏘는 대로 다 맞힌다는 명사수!”
기억났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어느 편이든 붙는다는 루트.
역설적으로 그런 다중성 때문에 나름의 중립이라는 평을 받는 집단.
루트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을 소개할 때 꼭 ‘적어도 지금은’ 중립이라는 소리를 붙인다고 한다.
쓸만한 정보를 내놓으면 네 편, 내놓지 못하면 남의 편이라는 말을 함축한다고.
여전히 날 향해 내민 타이린드의 손을 가볍게 맞잡았다.
“오메가. 23구역에 사무실이 있는 해결사입니다.”
눈을 반짝인 타이린드가 날 향해 말했다.
“그 쪽에게 궁금한 게 아주 많단 말이지.”
그때, 멀리서 수송선 하나가 날아와 보관소 근처에 내려앉았다.
내 손을 놓은 타이린드가 중얼거렸다.
“시의 중요 인사들에게나 제공될 법한 모델인데. 이런 사고 현장에 올 사람이 있나?”
그녀의 말을 정현이 받았다.
“공공 집행자가 직접 온 거 아니에요?”
“그럴 리가. 서류에 싸인은 하겠지만 이 정도 일에 공공 집행자가 직접 움직이지는 않아.”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토끼 때는 뒤에 숨은 거물을 잡겠다고 위타천이 근처 통신까지 마비시키면서 직접 행차했었다.
이런 테러 상황에도 공공 집행자가 직접 움직이지는 않는다는데. 그때는 얼마나 큰 일이었던 거지?
괜스레 뒤통수에서 식은땀이 송글송글 솟아나는 것 같았다.
아, 몰라.
지나간 일이야.
타이린드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가 파악했을 때, 이 안건은 공공 집행자 ‘마고’에게 갔어. 대부분의 일은 가상공간에서 처리하는 그 인간 특성상, 강남 에어리어가 불바다가 돼야 모습을 보일걸.”
수송선의 문이 열리고 안에 있던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 일대의 모든 사람의 움직임이 멈췄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사이먼이었다.
바로 수송선으로 달려가서 그 큰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두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모은 채로 연신 몸을 옹송그려 허리를 굽혔다.
“간만에 뵙습니다. 이런 자리에까지 행차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허베이 권역에서는 덕분에 살았습니다.”
하는 소리를 덧붙여가면서.
하지만 찬사의 대상은 사이먼의 말에는 일절 반응하지 않고 고개를 몇 번 돌리더니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고, 그 걸음이 멈춘 곳은 나의 정면이었다.
“심심해서 마고의 서류를 뒤적이는데 익숙한 이름이 보이더군. 그래서 얼굴이나 볼 겸 와 봤네.”
나는 뻣뻣한 혀와 입가를 움직여 간신히 한 마디를 토해냈다.
“위타천······.”
내 말에 여전히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새치가 듬성듬성 난 아저씨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저번에 봤을 때는 날 알아보지도 못하더니!”
어느새 내 뒤로 몸을 피한 타이린드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사람도 아닌 위타천에게 그런 식의 도발을 했다니······! 오메가, 당신 미친 건가?”
진짜 몰랐어.
갑자기 튀어나와서 자기 아냐고 묻는데 모르는 걸 모른다고 했을 뿐이야.
위타천이 내 귀걸이를 보고 말했다.
“내가 준 걸 쓰고 있었군! 연락해도 연결이 되질 않아서 그대로 버린 건가 했는데!”
초기 등록된 번호 하나 있는 거 보고 느낌이 쎄한 나머지 바로 공장 초기화 10번 돌렸다.
어느새 내 옆으로 와서 어깨동무까지 한 위타천.
다시 타이린드의 혼잣말이 들린다.
“위타천과의 개인 연락! 하지만 거부하는 패기와 배짱!”
“형님······대단하십니다.”
정현까지 쌍으로 헛소리 퍼레이드다.
일단 둘의 오해는 나중에 풀도록 하고, 위타천에게 물었다.
“여긴 왜 온 겁니까.”
“말했잖나. 자네 얼굴이나 보러 왔다고. 자네랑 만난 뒤에 계속해서 자네의 그 검술이 아른거려. 근래 내가 봤던 것 중 가장 감탄 나오는 솜씨였어.”
위타천에게 나가떨어진 후, 자칭 위타천 빠돌이인 키클롭스 아재에게 들은 건데 위타천이 칭찬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엄청나게 강하고 그 조건을 타인에게도 요구하는 인물이라 그렇다나?
날고 기는 초인들을 죄다 자기 아래로 깔아본다는 위타천이 대놓고 칭찬하자 주위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자네같이 재능있는 친구들 주위에는 필연적으로 나쁜 유혹이 접근하기 마련이지. 나는 자네의 선배 되는 입장에서 그런 유혹을 쳐낼 의무가 있는 것이고.”
말은 고마운데,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
그리고 누구 마음대로 선배래.
선배가 후배를 그렇게 병원 실려 갈 정도로 줘패?
큰일 날 마인드 가진 아저씨네.
그때까지도 위타천의 뒤에 붙어서 굽실거리고 있던 사이먼의 말이 들렸다.
“고작 해결사에게 뭐 그리 큰 관심을 쏟으십니까. 낙후 지역에서 근근히 벌어먹는 놈이 위타천 님 눈에 들려고 잠깐 반짝 한 것뿐이겠지요.”
빙글거리는 미소를 보여주던 위타천의 표정이 굳었다.
내 어깨에 올린 손을 풀고 뒤로 돌아서는데,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변해 있었다.
“내 눈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건가?”
“그, 그게 아니라.”
“그리고 내가 일전에 말하지 않았나.”
“예? 무슨 말씀이신지······.”
짜증을 형상화할 수 있다면 딱 지금 위타천의 이마를 가로지르는 주름 형태일 것 같았다.
“허베이에서 말한 것 같은데. 한 번만 더 거치적대면 죽여달라는 뜻으로 알겠다고.”
찰나라는 단어도 묘사하기 부족할 정도의 짧은 간격, 위타천의 한 손이 그의 머리 위로 들렸다.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파악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위타천이 불러내어 몸에 두른 영혼이 손에 거대한 봉을 들고 사이먼을 찍어 내리는 광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