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007.
과자에서 번져 올라오는 옅은 기름 냄새에 코를 막은 채로 앨리스에게 말했다.
“나 하나 물어봐도 되냐.”
“네. 말씀하세요.”
앨리스가 건성 가득한 음색으로 답했다.
그녀의 눈은 패널 위에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는 브라우저 창에 고정되어 있었고, 손가락 끝에서는 촉수와도 같은 기계 다발이 생겨나 거미발처럼 움직이며 탐색을 돕고 있었다.
“너 전기랑 태양광이면 충전되지 않아?”
“맞아요.”
“근데 이런 간식은 왜 먹는 거야. 기름 냄새 풀풀 나는걸.”
바삐 움직이던 앨리스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그리고는 내게 말했다.
“인간은 살아가려면 6가지의 영양소가 필요하대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 무기염류, 물. 한 가지를 더 꼽자면 섬유질까지 들어간다고 해요.”
“그······런데?”
“요새는 영양보조제나 건조식이 잘 나와서 그런 것들만 먹어도 필수 영양소를 보충하는 데는 아무 이상이 없대요. 이상하죠? 효율성의 논리면 마트의 식료품 코너나 식당은 진즉 없어져야 할 텐데요.”
“그런데 없어지기는커녕 계속 성업하는 이유와 네가 기름 맛이 나는 과자나 음료를 좋아하는 이유가 비슷하다?”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앨리스는 다시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만 말해도 알아들으시니 다행이네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필수 영양소 이외에도 다양한 것들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그중 하나가 맛을 찾는 즐거움과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찾아가는 배덕감일 테고요.”
“간식 먹는 일이 그렇게까지 의미 부여를 해야 할 일이야?”
“바쁜 일상에서 잠깐 숨을 돌리는 여유를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잠깐이라기에 앨리스는 간식을 입에 달고 살았다.
증, 감량 기능이 없는 안드로이드 모델이라 그렇지 만약 기능이 들어있는 모델이었으면 이미 헤비급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앨리스가 까놓은 오일샌드 봉투의 끄트머리를 묶어서 사무실 한쪽의 찬장에 넣었다.
“왜 가져가요!”
“기름 냄새 나. 여기 쓰여 있네. ‘과자에서 나는 냄새로 타인의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으니 섭취 시에 주의하세요.’ 너는 네가 행복하려고 나를 괴롭히고 있었어.”
“하나만 더, 하나만 더요!”
“음료수는 냄새라도 안 났지, 이건 냄새가······ 어후. 환기하고 냄새 좀 빠지면 다시 꺼내 먹어.”
부루퉁한 목소리의 앨리스가 말했다.
“키워드 검색은 끝냈어요. 양이 좀 많아요.”
“5만 8천 건? 이건 너무 많잖아.”
“키워드가 너무 두루뭉술하잖아요. 푸른 눈, 여성 엘프, 문신. 엘프는 대부분 푸른 눈 아니면 녹색 눈이고, 남자 아니면 여자고, 거의 다 일족 문신을 새기고 다니는데.”
호모로맨스 에이섹슈얼 안드로진 엘프도 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중요한 건 아니니 제쳐놓자.
“엘프들 일족 문신은 손등이나 팔뚝에 새기잖아.”
“그렇죠.”
“내가 찾는 사람은 목까지 문신이 있었어.”
“일찍 좀 말해주시지.”
앨리스가 다시 검색하는 동안, 내 나름대로 아이디어를 냈다.
“예공방 근처의 CCTV 네트워크에 침투하면 안 되나? 일이 쉬워질 것 같은데.”
“힘들어요. 위타천 때문에 사장님 연락 두절 됐을 때 이미 한 번 침투했었거든요. 키클롭스 님 말로는 아마 사무실 주소가 시청 정보과에 올라 있을 거라서 한동안은 하지 말래요.”
위타천 얘기가 나오자 할 말이 없어졌다.
통제가 이뤄지고 통신이 끊기자마자 앨리스는 19구역의 CCTV 네트워크를 해킹해서 영상을 확보했고, 내 마지막 신호와 CCTV 속의 풍경을 비교해 내 위치를 특정해냈다.
그리고 통제가 풀리자마자 키클롭스를 대동하고 진입해 쓰러져있던 나를 데리고 병원에 입원시켰다.
내가 군말 없이 간식을 사다 바치는 이유였다.
손을 탁탁 털어낸 앨리스가 내게 말했다.
“필터링 중이에요. 결과 나올 때까지 좀 걸려요. 그동안 몽타주 그려보죠.”
종이와 펜을 가져온 앨리스는 내가 말하는 대로 곧잘 슥슥 그려냈다.
“눈썹은 더 얇았던 것 같고, 턱은 더 갸름했어.”
“이 정도로요?”
“음······. 좀 다른데. 잠깐 줘봐.”
“아마추어가 손대면 전체적인 균형이 망가져요······!”
내 손에서 잠깐 수정을 마친 그림은 더욱 깔끔해져 있었다.
앨리스가 몽타주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이런 거랑은 거리가 멀게 생겨서는······.’ 하는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이럴 거면 그냥 사장님이 몽타주 그리시면 되는 거 아니었을까요?”
익히고 있던 그림그리기-초상화다.
다들 스크린샷 찍으면 된다고 배우지 않았던 마이너 스킬 중의 마이너 스킬.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와 버렸다.
“그래도 네 툴만 못하지. 자, 머리카락 색은 백금발이었어.”
수정된 그림과 추가된 정보를 들은 앨리스가 몽타주를 데이터화 해서 3D로 재구성한 뒤 내게 보여줬다.
“흠······. 예공방 이사가 이 엘프를 추적해달라고 했다고요?”
“정확히 말하면 이 엘프가 속한 집단인데, 내가 그쪽에 대해 가진 정보는 이 엘프 생김새밖에 없어.”
“이거 그 이사나 사장님 사심 들어간 거 아니죠?”
“그게 무슨 소리야.”
“몽타주대로라면 너무 예뻐서요.”
앨리스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천천히 돌아가는 3D 모델링 속의 엘프는 조각과도 같은 외모였다.
“근데 몽타주라 그런지 실제 얼굴보다는 못한 것 같기도 하고?”
“더 예쁘다고요?”
“내 느낌은 그래.”
“이 정도 외모면 걸려드는 정보는 많겠네요.”
앨리스가 검색 브라우저를 정리하는 사이, 나는 창문을 열면서 물었다.
“스냅샷한테는 별말 없었어?”
“어······. 사장님 앞으로 남겨달라는 말이 있었어요.”
“뭔데?”
“‘정식 계약은 아니지만 상호 간의 신의와 합의로 이루어진 약속에 대해 한쪽이 논의된 사항을 잘 이행하지 않았기에 적극적인 협력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래요.”
요새 경쟁 카지노에서 안 놀았다고 징징대는 거야?
다행히도 이번 사안은 앨리스 덕에 스냅샷의 협력이 필수적이진 않을 것 같다.
일이 마무리되면 스냅샷의 카지노에서 밤새 눌러앉아 있는 것으로 갑을 관계를 다시 새겨주도록 하자.
그때, 앨리스가 나를 불렀다.
“끝났어요. 웹에 올라와 있는 키워드 목격 정보를 5회당 점 한 번으로 도식화한 지도에요.”
이곳의 대림 에어리어는 현실의 영등포구와 구로, 가산, 가리봉, 광명 일부까지 포함한 대규모 에어리어 중 하나다.
게다가 기계 교단 신자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봉사로 만들어진 한강 위, 정확히는 여의도와 마포 에어리어 사이의 인공 부양 대지도 행정구역상으로는 대림 에어리어다.
이 거대 구역이 여의도와 근처 극소수 지역을 빼고는 죄다 슬럼가라는 게 그저 놀라울 뿐.
지도 위의 점은 그런 대림 에어리어에 한가득이었다.
“열심히도 돌아다녔네.”
“그러게요. 그런데 이 점들이 꼭 이 엘프를 뜻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의미 없이 쓴 글이나 거짓 정보를 필터링하지는 못한다는 거지?”
“네. 추적을 막으려고 일부러 뿌려 놓은 정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요.”
“이 주변에도 점이 있네. 일단 발로 뛰어야겠다. 나갔다 올게.”
“다녀오세요.”
“혹시나 다른 의뢰 맡기려는 사람 있으면 킵 해두고, 냄새 빠지면 창문 닫고.”
그렇게 건물 밖으로 나서려는데, 귀걸이를 안 챙겼다는 걸 알고 다시 사무실로 올라갔다.
“너······!”
오일샌드를 넣어두었던 찬장의 문을 열던 앨리스와 눈이 딱 마주쳤다.
“냄새는 금방 빠질 거고······. 뜯은 오일샌드는 금방 먹어야 해서······.”
“됐다. 환기나 잘해. 나 들어왔을 때 냄새 안 나게.”
귀걸이를 챙겨 밖으로 나와 손목시계를 조작하자 앨리스가 미리 보내둔 엘프의 3D 몽타주가 작게 떠올라 천천히 한쪽으로 회전했다.
“어디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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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공방의 지원은?”
“모두 옮겨 뒀어요.”
“거사가 얼마 남지 않았어. 보안에 더욱 신경 쓰도록. 특히나 네가 협력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곤란해.”
중저음의 목소리가 하는 말에 엘프는 답하지 않았다.
예공방에서 얼굴이 노출됐다.
평소 외부에 나갈 때면 문신을 가리고 다니지만, 그날은 다른 곳에 갔다가 급하게 합류해야 했기에 문신을 그대로 노출했다.
‘봤을까?’
해결사 오메가라고 했다.
복잡하고 지저분한 대림 에어리어에서 맡은 의뢰는 어떻게든 해낸다는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사람.
소문의 진위는 정확하지 않지만, 위타천과도 맞설만한 무력을 가졌다는 말이 돈다.
“한 번 더 입단속을 시킬게요.”
“그래.”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어느 허름한 창고.
켜켜이 쌓인 박스에는 하나도 빠짐없이 화기 엄금이나 취급 주의 같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막상 다가오니 흔들리나, 샴록?”
샴록이라 불린 엘프가 천천히 눈을 깜빡인다.
끼익거리며 돌아가는 창고의 환풍기 너머로 새어든 달빛에 비친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올곧고 선명하다.
“흔들리지는 않아요. 다만, 이게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흔들림이다.”
“처음을 생각해봐요. 우린 그저 대림 에어리어를 살만한 곳으로 만들고자 했어요. 그렇지 않나요, 진오?”
“그랬지.”
“아이들을 모아 희망을 꿈꾸게 했었죠. 어른들에게는 늦지 않았음을 설파했고요.”
진오라 불린 남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때의 우리는 힘들었지만 스스로 나아갔어요.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대림 에어리어를 더 엉망으로 만들려는 세력들에 휘둘리고 있는 건 아닌가요?”
낡은 공장 안, 녹슨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만이 둘의 불편한 마음을 알아주고 있는 것 같았다.
진오는 샴록을 향해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로 말했다.
“네 말이 옳아, 샴록. 우린 그저 우리가 나고 자란 곳이 더 망가지는 걸 막고자 했었지.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떤지 너도 알고 있잖아.”
진오의 낮은 목소리가 떨렸다.
“세상은 힘없는 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아. 우리가 아등바등 세웠던 학교와 공동 농장, 노동조합들은 다 어디로 갔지? 이런 무기들이 한 줌 잿더미로 만들었어. 너도 그걸 목격하지 않았나?”
샴록은 눈을 질끈 감았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자들의 비명이 귀에 생생했다.
감정을 추스른 진오의 말이 이어졌다.
“이용당한다 해도 좋아. 하지만 우리를 이용하려는 자들에게 한 방 정도 날릴 수는 있겠지.”
진오가 몸을 돌려 샴록에게 다가왔다.
3m는 될듯한 거대한 덩치.
샴록은 그런 진오의 얼굴을 바라봤다.
불타는 학교의 모습을 기억하기라도 한다는 듯, 넘실대는 화상 자욱이 그의 얼굴 절반을 먹어 치우고 있었다.
“화상이 얼굴, 아니 전신을 다 뒤덮더라도 그날 학교 안의 아이들을 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매일 생각하곤 해.”
거대한 덩치와는 다른 가벼운 걸음으로 진오가 창고를 빠져나갔다.
혼자 남겨진 샴록이 목의 문신을 살그머니 쓰다듬었다.
예쁘다면서 자기들에게도 그려달라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그려줬더라면, 너희가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공명하듯 그녀의 문신이 일순간 반짝이다 빛을 잃었다.
흔들리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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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허탕이야.”
엘프의 몽타주를 들고 대림 에어리어 곳곳을 누빈 지 이틀째의 저녁.
다리만 아프고 성과는 전무 했기에 나는 사무실의 소파에 벌렁 누워서 투덜대는 중이었다.
“혹시나 해서 엘프 종친회에도 가봤는데, 자기들은 잘 모르겠대. 요새 엘프들은 종친회에 엮이는 걸 싫어해서 가명이나 가짜주소를 댄다나?”
“엘프 종친회에 들어가면 1년 내내 행사 불려 다니느라 정신없대요. 그러니까 어릴 때 일족 문신만 새기고 빠이빠이 하는 거죠.”
누워서 앨리스가 준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뭔가 규칙성 같은 것이 보일 것도 같았다.
“1부터 12구역까지는 주로 어떤 게 있지?”
“1번부터 7번까지는 구舊 여의도고. 8번부터 12번까지는 한강 위의 인공 부양 대지죠. 한강 기계지구라고 불리는 곳요. 둘 다 대림 에어리어에서 그나마 사람 사는 꼴 갖춘 곳이네요.”
“13부터 15구역은?”
“기업들 연구소가 모여 있죠. 구 여의도 옆에 붙어 있어서 그렇다고들 해요. 15구역에 ABT 대림지부랑 연구소가 있을걸요.”
“거기만 점들 빈도가 낮아.”
지도를 들여다본 앨리스도 동의를 표했다.
“그렇네요.”
“대림 에어리어에서도 낙후 지역에만 출몰하는 것 같은데······.”
낙후 지역에 자주 보이면서 무기를 쓸 일이 뭘까.
항쟁이라도 일으켜서 대림 대통합을 꿈꾸는 걸까.
“여긴 유독 많은 것 같은데? 26구역. 특히 이 근방.”
“26구역은 딱히 장악한 세력이 없어서 굉장히 혼란한 구역이에요. 그리고 점들이 몰린 쪽에······.”
굉장히 의외라는 앨리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출입 금지된 폐교가 있네요? 꽤 오래된 것 같은데 26구역이 워낙 바람 잘 날 없어서 네오 서울 측에서도 철거를 포기한 것 같다는 기사가 있어요.”
밖을 내다보니 저녁이긴 하지만 아직 해가 완전히 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있을 것 같았다.
“나갔다 올게. 뭔가 실마리를 잡은 것 같아.”
지도에 표시된 곳으로 가자 벽 대부분이 검게 그을은 폐건물이 있었다.
학교라는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그저 대림 에어리어에 흔한 폐건물이겠거니 하고 지나칠 것 같았다.
3D 몽타주를 꺼내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외부인에 대한 경계 때문인지 제대로 된 답을 듣기는 어려웠다.
어두워지면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끌려가 장기를 모두 털릴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정도가 들을 수 있는 최대치의 덕담이었다.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다시 학교 앞으로 돌아와서 천천히 주변을 돌아봤다.
다 허물어진 담벼락에 아이들의 낙서가 가득했다.
그나마 멀쩡한 벽 앞에서 돌을 하나 주워들고, 천천히 선을 그었다.
엘프의 목에 있던 문신을 생각하며, 최대한 비슷하게.
선은 깔끔했지만, 스쳐가듯 본 것이 전부라 완전한 형상을 그려낼 수는 없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내게 말했다.
“그 그림······선생님의 목에 있던 문신인데···. 샴록 선생님과 아시는 사이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