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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1화 (2/258)

001.

001.

얘기는 두 달 전, 내가 막 이쪽 세계로 넘어왔을 때부터 시작된다.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내 몸에 부착 되어 있는 갖가지 기계 장치들과 그걸 조작하는 간호사였다.

머리통 너머로 반대편 벽이 투과되어 보이는 간호사.

너무 놀라 비명을 지르려는데, 인공호흡장치가 그걸 방해했다.

“으흐어크어억.”

그러자 간호사가 내 쪽으로 몸을 휙 돌렸다.

“세상에! 혼수 상태 두 달 만에 일어나셨네!”

그리고는 나를 향해 휘적휘적 다가왔다.

“어히마! 어히마!”

오지말라는 말이 이렇게 힘든 거였던가.

간호사는 약간 기분 상한 표정을 했다.

“뭐야. 유체이탈자 처음 봐요? 기분 나쁘려고 하네.”

당연히 처음 보지.

그딴 걸 말이라고.

이제 간호사는 눈에서 녹광을 뿜어 내 눈에 비췄다.

“동공반사 정상.”

다음으로는 내 손가락 끝을 꼬집으려 했으나 휙 통과하고 말았다.

“밀도를 너무 낮게 잡았나? 오메가 씨, 손가락 끝으로 시트 긁어보세요.”

오메가?

날 보고 그러는 건가?

분위기 상 날 지칭하는 것 같아서 시키는 대로 했다.

“느낌 있으시죠?”

끄덕끄덕

“말초신경 정상인 것 같고. 잠시 이대로 계세요. 선생님 모셔올게요.”

그런 말을 남기더니 간호사는 위쪽의 천장을 통과해 사라졌다.

나는 다시 한번 숨을 들이키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간신히 호흡이 진정될 무렵, 눈을 돌려 병실 밖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 모습은 너무나 황당해서, 나는 힘도 잘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침대의 시트를 꽉 움켜 쥐었다.

머리의 절반이 기계인 남자, 닭벼슬을 턱에 달고 다니는 여자, 몸 주위에서 알 수 없는 글자가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인간 모양의 구름형체 등등.

황당한 꿈을 꾸고 있나 싶었지만, 침대 시트를 꽉 쥐고 있는 손이 얼얼했다.

분명 현실이다.

그렇게 병실 밖의 광경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을 때, 문이 벌컥 열리고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이 뛰어 들어왔다.

열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어린 아이였다.

“정말 일어나셨군요. 솔직히 말해 이대로 영원히 혼수상태가 아닌가 걱정했는데 말이죠.”

이제는 머리통 너머로 반대편 벽이 투과되어 보이지 않는 간호사가 의사 옆에서 말을 보탰다.

“동공반사, 말초신경 모두 확인했습니다.”

“어떻던가요.”

“정상범위입니다.”

말초신경 테스트는 제대로 안 했잖아!

입을 틀어막고 있는 인공호흡장치를 씹어 뱉기 위해 애쓰자 소년 의사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두 달 동안이나 누워 계셨기 때문에 몸의 근육들이 약해져있을 겁니다. 호흡기 근육도 마찬가지고요. 한동안은 보조 장치의 힘을 빌리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리고는 내 옆으로 다가왔다.

“혼수상태일 동안 신체의 이상 현상을 야기할 수도 있어 막아두었던 기혈을 개방하겠습니다. 조금 아플 수도 있습니다. 환자분.”

뭐요?

뭘 막아두고 뭘 개방해요?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소년의 손에 따스한 빛이 맺혔다.

그리고 그걸로 내 몸을 이곳 저곳을 쿡쿡 찌르는데, 어딘가 묘한 기시감이 있었다.

‘이거······. 혈도를 짚는 것 같은데? 설마 점혈?’

그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소년의 손이 닿았던 곳에서 우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이 등줄기를 가로질렀다.

“흐그윽?”

“침잠되어있던 몸속의 기운이 움직이기 시작할 겁니다. 환자분이 보기 드문 퓨어Pure셔서 기공이 잘 받더군요. 도핑 내역도 전혀 없으시고, 시공이나 시술 내역도 없으시고.”

고통의 물결이 연속해서 몸을 휩쓸었다.

내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으게흐갹?”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조금 고통스러우실수도 있습니다. 오메가 씨.”

조금?

아니 그리고 오메가는 누군데.

의문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의식이 멀어진다.

계속해서 번져오는 고통을 견뎌가며 궁금증을 파헤치기에는 내 정신이 너무 연약했다.

#

닷새 뒤, 나는 환자복을 입은 채로 병원 옥상 의자에 앉아 어느 소녀와 말을 나누고 있었다.

“자, 다시 정리해보자. 여기 지명은 네오 서울.”

“맞아요.”

“나는 오메가. 대림 에어······리어에서 해결사 일을 하고 있었고.”

“차린 지 두 달 되셨어요.”

“첫 의뢰를 나갔다가 건물에서 떨어져서 혼수상태.”

“그것도 맞고요.”

“자, 그럼 너는······.”

예쁘장한 외모를 한 소녀의 눈이 기대감으로 초롱초롱 빛났다.

“이름은 앨리스. 사무 보조 안드로이드. 맞지?”

“기억하고 계시네요. 사장님!”

“네가 알려줬잖아.”

앨리스는 그 뒤로 혼자 열심히 조잘거렸다.

공장에서 출고 됐는데 주인이 혼수상태가 되어버려서 용도 변경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는 둥, 두 달 동안의 월세와 내 병원비를 제하면 계좌 잔고가 아슬아슬하다는 둥의 얘기였다.

“잠깐만. 그래서 해결사가 뭔데.”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의뢰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그런 일이겠죠? 진짜 기억상실증이신가보네요.”

그래, 나는 해결사 오메가의 몸에 빙의했다.

원래 주인의 자아는 남아있지 않다.

소설이나 만화에서는 원래 주인의 자아가 남아서 여러 가르침을 주던데, 내게 그런 특전은 없는 모양이다.

이 황당한 사태를 타파하기 위해, 기억상실이라는 절대 논리를 가져다 붙였다.

의심하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잘 먹혀들었다.

앨리스의 설명에 따르면 고도로 발달한 과학과 마법이 공존하는 세계라서 기억상실 정도는 흔하다나.

흔하면 안 될 것 같은 게 흔하다니까 왠지 두려워졌다.

들고 있던 커피 캔을 가볍게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깔끔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캔은 쓰레기통의 정 중앙으로 쏙 떨어졌다.

클린샷이다.

내가 일어서려는데, 앨리스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어떻게 하신 거예요?”

“뭘.”

“방금 그거요.”

“그냥 던진 거지.”

“사장님 깨셨다는 연락 받은 게 닷새 전이고. 면회가 허용된 게 사흘 전이에요. 두 달이나 누워있어서 근육이 쪼그라든 사람이 사흘 동안 매일 저렇게 깔끔하게 캔을 던져 넣을 수 있는 건가 싶어서요. 그것도 하루에 두 세 번씩이나요.”

그 말에 내 몸을 내려다봤다.

볼품없이 마른 몸 위에 환자복이 펄럭였다.

두서없이 생각이 떠올랐다.

‘마법, 과학, 기공, 점혈, 심령체, 안드로이드······.’

단어들이 쉽사리 엮이지 않았다.

앨리스가 손에 쥐고 있던 캔을 받아서 입에 털어 넣었다.

한 번 더 던져보고 싶어졌다.

“퉤. 뭐야 이거.”

“안드로이드용 텍사스 퇴적층 맛 윤활 오일요. 다짜고짜 이걸 가져가서 마시면 어떻게 해요.”

몇 번이나 입 안에 있던 걸 뱉어냈지만 찐득한 기름 맛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일단 이건 나중에 생각하고, 다시 한번 캔을 던졌다.

이번에는 팔을 옆으로 꺾어서, 마치 언더핸드 스로를 구사하는 투수처럼.

휘리릭 날아가던 캔은 목적지인 쓰레기통을 빗나가나 싶더니 쓰레기통의 위쪽 경계를 긁고서는 아슬아슬하게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앨리스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더니 호들갑을 떨었다.

“기억을 잃은 대신 다른 영역이 발달하신 건가요?”

주위를 둘러보니 쓰레기가 몇 개 떨어져 있었다.

날아갈만한 것들을 집어서 다시 던졌다.

달리면서, 뒤돌아서, 가랑이 사이로.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쓰레기통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느새 환자복을 입은 어린애들이 내 주위에 몰려들어 기대감 가득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앨리스를 데리고 병실로 내려온 뒤 차근차근 상황파악을 시작했다.

‘방금 그 궤적과 정확도는 분명 내가 서리얼에서 익히고 있던 던지기나 투척 스킬이야.’

‘제멋대로인 세계관. 네오 서울. 설마 여긴······!’

서리얼 속이다.

다만 사람들의 외모가 너무 특이하다.

고인물, 그것도 썩어빠진 고인물들이나 할 법한 커스터마이징이 너무 흔하게 보인다.

게다가 네오 서울은 몇 년 후에나 나올 것으로 추정되던 로드맵 상의 지역과 확장팩.

믿기 힘들지만 나는 게임 속으로 떨어졌다.

그것도 내가 알던 때보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로.

그렇다면 아까의 던지기는 뭐지?

영창이나 시동어, 예정 행동을 하지 않고도 자연스레 발현됐다.

그렇다면 설마 내가 익히고 있던 마이너 스킬들을 쓸 수 있다는 건가?

#

그날 오후, 나는 이상한 점이 있으면 바로 연락하라는 소년 의사의 명함과 함께 퇴원했다.

이렇게 재활이 빠른 환자는 처음 본다는 덕담과 함께였다.

이건 아마 자연회복 스킬 덕일거다.

지상에서 약간 떠 있는 에어로 택시에서 내리자 대림 에어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병원이 있던 서대문 에어리어는 그나마 정돈된 고풍스러움이 있었는데, 여긴 뭐······.

얻어맞은 불량배의 이빨마냥 제멋대로 치솟고 내려 앉은 건물.

그 사이를 마구잡이로 파고든 전선 가닥.

여기저기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하나같이 온건하지 못한 눈빛을 하고 스쳐가는 인간군상.

디스토피아가 별 게 아니다.

바로 여기가 디스토피아지 뭐겠나.

왜 이런 곳에서 해결사 같은 일을 하려고 했던 걸까.

몸의 전 주인 취향도 참 별나다.

택시에서 폴짝하고 뛰어내린 앨리스가 손에서 홀로그램 지도를 띄웠다.

“21-D 구역이 통제됐네요. 좀 돌아가야겠어요.”

“통제?”

“허구한 날 싸우고 터트리니까요.”

많은 게 함축된 문장이다.

앨리스가 자유로운 손으로 지도를 여기저기 건드리자 지도에 경로가 표시됐다.

“그리 많이 돌아가지는 않네요. 가요.”

앨리스가 지도를 없애기 직전.

“잠깐만. 더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네? 이거 실시간으로 받아오는 최단거리예요. 그리고 기억도 온전하지 않으신 분이 무슨 말씀이세요.”

분명 아닌데.

내 지도분석 스킬이 그렇게 말하고 있단 말이야.

하나 확실해졌다.

여기서 스킬은 내가 발동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발동한다.

“푸른 점이 우리 위치고, 붉은 점이 사무실 위치라는거지?”

“네.”

앨리스의 손목을 잡고 지도에 가져대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게 빠를 걸?”

“딱 봐도 경로가 더 길잖아요. 잔말 말고 따라오세요.”

“그럼 넌 그대로 가. 난 내가 그린대로 갈게.”

“기억을 잃으셨다더니 고집을 얻어오셨나······. 그럼 각자 가되, 늦는 사람이 간식 쏘기로 해요.”

“콜.”

앨리스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나는 아까 앨리스의 지도에 있던 시작점과 도착점을 기억한 후 앨리스가 사라진 쪽과는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길찾기 스킬이다.

내가 이 지도 분석과 길찾기를 이용해서 날로 집어삼킨 레이스만 해도 두 손이 모자란다 이 말이야.

#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요. 분명 저한테 입력한 사전 정보에는 길 찾기가 힘들어서 강화판 지도 소프트웨어를 탑재해달랬는데······. 출고지로 저 찾으러 오셨을 때도 길을 못 찾아서 늦게 왔다고 그러셨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앨리스가 내 앞에 캔 하나를 놓았다.

약속은 잘 지키는 안드로이드······.

“우웩, 이거 맛이 왜 이래.”

캔을 돌려 상표를 살폈다.

[제로 오일 -  여성형 안드로이드들의 가벼운 몸을 위해]

어느새 자리에 앉아 있던 앨리스가 내 눈을 피하면서 말했다.

“간식은 간식이죠. 안드로이드 용이라서 그렇지.”

인간의 존엄성이 농락, 유린 당하고 있다.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 해서도 안 된다.’ 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제 1원칙이 박살 나는 순간이다.

하긴, 아서 클라크가 와도 욕하고 도망갈 세계관인데 아이작 아시모프가 온다고 뭐 다르겠냐.

이것도 이 잡탕 세계의 일부려니 하면서 적응해야지.

캔을 통째로 쓰레기통에 던져 넣은 뒤, 몸의 전 주인이 썼을 책상을 눈에 담았다.

‘해결사 오메가’라는 명패가 번쩍였다.

사무실도 있고, 스킬들의 발동도 확인했다.

일단 생활비도 필요하고 이쪽 세계도 좀 알아가야 하니 이대로 해결사 일을 좀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 전에, 일단 해야 할 일이 있다.

앨리스에게 물었다.

“근데, 난 어떤 사람이었니?”

걱정된다는 눈으로 날 보던 앨리스가 한 마디를 던졌다.

“자리로 파일 보내드렸어요.”

엉거주춤 자리로 가서 앉자 우웅하는 소리와 함께 책상에서 반투명한 패널이 떠오른다.

이야.

양피지랑 깃펜이라도 나올 줄 알았더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오메가, 29세, 전직 사설 집행자

-양친 부재

-기타 등등

신상을 쭉 읽어 내려가던 차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빙그레 웃음이 걸렸다.

[특기: 검술, 마법(화염계)]

“이건 나랑 같네.”

“네? 뭐가요?”

“아냐. 내일부터 간단한 일이라도 하려고 하는데, 뭐 들어온 의뢰 같은 거 있을까?”

“잠시만요. 개점휴업을 오래 해서 좀 찾아 봐야 해요. 웹에도 올려 둘게요.”

“그래.”

앨리스가 패널을 두드리는 동안, 나는 일어서서 그리 크지 않은 창문을 내다봤다.

이질적인 도시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대림 에어리어.’

내 새로운 터전이었다.

이제부터 이곳에서 적응하고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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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시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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