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잡캐여도 너보단 강함-0화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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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SF 소설의 거장, 아서 C. 클라크가 주창했던 과학 3법칙 중 세 번째 항목이다.

첫 번째는 나이 먹은 과학자가 ‘가능하다’라고 하면 대부분 가능하고 ‘불가능하다’라고 했던 것도 결국엔 가능해진다는 것.

두 번째는 가능성의 한계를 알아보는 방법은 불가능을 약간 찍먹해보라는 것인데 크게 관심이 있지 않는 이상 더 알아볼 필요는 없다.

누가 뭐래도 세 번째 항목이 가장 임팩트 있으니까.

근데 아서 C. 클라크 경에게 묻고 싶다.

충분히 발달한 과학이 마법과 구분하기 힘든 건 알겠는데, 마법이 실존하는 세계라면 어떻게 할까요.

마법으로 만들어진 인공 인간 호문쿨루스와 과학 기술로 인간의 모습과 흡사하게 만들어진 안드로이드는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건가요.

만날 때마다 대가리라는 이름의 뚜껑을 따봐야 할까요?

플라스크 속의 난쟁이니, 고도로 발달된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니 하는 철학적, 윤리적 문제를 묻는 것이 아니다.

사고 친 ‘인간’을 잡아 오래서 갔는데 호문쿨루스와 안드로이드가 있어서 하는 소리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직업적인 문제 아니겠나?

이런 의뢰를 한 놈이 뇌와 안구 한쪽을 제외하면 신체 대부분을 기계로 갈아치운 사이보그라는 것도 부연해둔다.

자기 스스로도 5% 미만만 생체학적 인간이면서······.

과학과 마법만 있으면 말도 안 한다.

몸에서 기파를 뿜어대는 기공氣功 수련자들, 사람이 죽을 때 육신에서 빠져 나온다는 영혼을 잡아서 부려대는 심령주의자와 샤먼들, 수인을 비롯한 이종족들.

이런 것들이 득실대는 세상에서 아서 클라크 경 당신이었다면 어떤 법칙을 말씀하시고 어떻게 살아가셨을까요.

아! 대체 뭘 믿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신앙을 빛과 비슷한 에너지로 전환하는 광신도들도 있다.

이외의 기타 등등에 속하는 소수집단도 득시글거린다.

물론 수가 소수라고 과격성이나 화력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인간군상 중에서도 가장 험하고 거친 놈들이 득실거리는 할렘가에서 돈 되는 일, 안 되는 일 가리지 않고 뛰어 다니는 해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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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찌어찌 내가 하던 게임인 [서리얼Surreal]에 들어온 것 같긴 한데 세계관이 너무 지멋대로 가지를 뻗어버렸다.

내가 알던 때와 비교하면 막장 대규모 패치를 50번 정도 쏟아부은 느낌?

원래부터 서리얼은 세계관으로 유명하긴 했다.

방대하다 못해 비대한 걸 넘어서, 잡탕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게임.

근데 그 잡탕이 내 입맛에는 딱 맞았다.

물론 아무리 잡탕 게임이라도 육성의 정도正道가 있어 대개 유저들은 스스로가 택한 테크트리를 심화시킨다.

그런 반면에 나는 개발자들이 만들어 놓은 이 잡탕 게임을 120% 만끽하며 게임을 플레이 했다.

다른 사람들이 익히지 않는 마이너 스킬을 죄다 익히고 그것들의 여러 조합을 짜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변태 플레이의 진수를 보여준 것이다.

앞서 말했던 ‘정도를 걷는’ 고지식한 친구들은 나를 보고 잡캐, 똥캐, 쓰레기 스킬 모음집이라고 무시하곤 했다.

나는 친히 그런 놈들을 찾아가 그들이 쓰레기 스킬이라고 무시했던 스킬들로 개박살을 내줬다.

쓰러진 시체 머리통에 원예 스킬로 꽃을 피우는 쾌감은 정말... 안 해 본 사람은 얘기를 하지 말자.

삐딱선을 탄 건 날 보고 비아냥거리던 놈들에게만 그랬고, 뉴비들에게는 잘 대해줬다.

나라의 근간은 어린이들이라는데, 게임의 근간은 뉴비들 아니겠나.

게임이 워낙 갈래가 많고 불친절해서 찍먹하러 온 뉴비들이 질겁하고 도망가려는 경우가 왕왕 있었는데 붙잡고서 문제점들을 해결해주곤 했다.

사실 내가 익히고 있던 마이너 스킬들 보여주면 신기하다고 좋아하는 반응을 보길 즐겼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게 붙여진 별명은 ‘고인물 도살자’ 혹은 ‘해결사’

양쪽 다 마음에 썩 드는 별명이었다.

근데 개발사에서는 내 육성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이너 스킬들의 효과를 반감시키겠다는 발표를 한 것.

나는 당장 대응에 나섰다.

공홈이랑 공카에 ‘이래서는 안된다’ 글을 남기고 개발자들 메일로 폭탄 메일을 쏟아부었다.

내 마지막 기억도 공카에 ‘개발자 명치 존나 쎄게 때리고 싶다.’, ‘밤길 조심해라. 5천만 마이너 스킬 유저가 네 뒤통수를 노린다.’ 와 같은,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썼을 글들을 남기고 있었던 기억이다.

그 결과가 게임 속 혼수상태인 사람 몸에서 깨어나 이 모양 이 꼴로 온갖 일을 다 하는 중이다.

성골 흑우의 게임을 향한 애정의 결과가 이 꼬라지인 건가?

‘답답하면 네가 뛰던가’ 하는 어느 축구 선수의 마음을 가진 개발자가 나쁜 마음을 먹고 날 여기 처박기라도 한 거야?

아니 근데 데려다 놓을 거면 축구 경기에 데려다 놔야지.

이건 말만 축구지 골대가 6개 정도 있고 공은 20개 정도 있는, 그리고 무기도 쓰는, 구기종목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경기다.

그래도 빙의랍시고 갑자기 혼수상태였던 사람의 몸에 박아 놓은 것에 대한 보상인지 모르겠지만 익히고 있던 마이너 스킬들이 상당히 쓸 만해졌다.

뿐만 아니라, 게임할 때 메인 스토리를 맛보기는 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익혔던 메이저 스킬인 검술, 마법 따위는 마이너 스킬들 이상으로 성능이 훌륭해졌다.

이제 슬슬 전유민이라는 현실의 이름보다는 이곳에서의 이름이 익숙해지고 있다.

그래. 왠지 어느 시계 브랜드의 이름을 연상케 하지만, 어찌 됐든 내 이름은 오메가.

초 거대 도시 권역, 네오-서울.

그중에서도 미친 나락 할렘 구역인 대림 에어리어에 터를 잡은 해결사다.

죽어도 부활하는 게임이 아니라, 죽으면 그대로 끝인 새로운 현실에서 적응과 생존을 해야 하는 경력 신입.

믿을 건 게임에서 구르며 익힌 경험과 타고난 직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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