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6권) (41/48)

40

질투

일행을 다른 길로 이동시키고 밀라니아는 송골매가 가리킨 방향으로 신중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송골매가 말했던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내 하나와 여인 하나.

“아이참, 그런 농담 하시면 제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

여자에게서 약간 높은 목소리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몸에 딱 붙은 옷을 입은 여인은 늘씬하고 관능적인 몸매의 소유자였다.

긴 다리를 쑥쑥 움직일 때마다 치맛자락이 살랑살랑 움직여 매혹적인 다리 선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그 옆에 선 사내는 여자보다 머리 하나는 훨씬 큰 신장에 어깨가 넓고 단단했다. 몸태가 좋으니 대충 걸친 옷조차도 멋스럽게 잘 어울렸다.

여인은 몸을 은근하게 꼬며 사내의 팔에 자신의 흰 팔을 감았다. 매끄러운 살결에는 윤기가 나는 비늘 몇 개가 붙어 있었다.

송골매가 말한 뱀은 저 여인을 가리키는 것일 터.

그러나 밀라니아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여인의 정체 같은 게 아니었다.

“하이로드와 이리 나오니 소녀 가슴이 몹시도 떨립니다.”

매혹적인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러 밀라니아에게까지 당도했다.

그레칸이 고개를 기울여 뱀족 여인의 귀에 뭐라고 속삭였다.

밀라니아는 기가 막혔다.

“허어?”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혹여 그레칸이 눈치챌까 바람을 일으키지 못한 밀라니아는 대화를 엿들을 수 없었다.

하나 그 자세나 분위기가 퍽 야릇해서, 당장 입을 맞추고 그보다 더한 일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저것이……, 총수를 잡으러 간다 하지 않았는고?’

그런데 웬 여자와 데이트를 하고 있단 말인가?

이유는 하나. 그레칸이 거짓말을 한 것이다.

밀라니아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실망스러워졌다.

떨어져 있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굴었던 그레칸이었다.

어제도 사람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말을 하고 떠나더니, 정작 본인은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이다.

여자의 가까운 접근에도 가만히 있는 꼴은 누가 봐도 알콩달콩한 데이트와 다름없었다.

밀라니아의 눈이 냉랭하게 가라앉았다.

‘과민 반응할 필요는 없느니라.’

청춘 남녀가 만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여자를 만나러 간다는 말이 민망한 나머지 그레칸이 다른 말로 둘러댄 것일 수도 있었다.

신부가 되어 달라고, 퍽 절절히 애원했던 적이 있으니만큼 변심했단 사실이 겸연쩍었던 것이리라.

그러니 이 정도의 깜찍한 거짓말은 얼마든지 눈감아 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왜, 마음이 이리 부글부글 끓고 실망스러운 기분이 가라앉질 않는 것인가.

[심장이 터져 버리는 줄 알았지요. 대마녀님은 연인이 없으신가요? 없으시겠죠. 만약 있다면, 그렇게 무미건조한 눈은 하실 수 없을 테니까요.]

[평생 같이하리라 생각했던 상대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다면요. 그것도 늙고 추해져서 저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남자에게요. 정말로 세상을 증오하게 된답니다.]

밀라니아는 머릿속에서 황후의 절절한 목소리를 지웠다.

‘왜 지금 황후의 말이 떠오른단 말이냐.’

고민할 필요 없이 실망감의 원인은 분명했다.

그레칸이 그간 숱한 말로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고 고민하게 하고 머리 아프게 했지만, 실은 이리 쉽게 변심할 정도의 마음이었던 거다.

그래서 허탈한 것이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말란도르만 해도, 어느 날은 이 여인에게 달콤한 말을 속삭이고 다음 날은 다른 여인에게 또 다른 밀어를 들려주지 않았는가.

사랑은 온갖 말도 안 되는 이적을 가능케 하지만, 사랑을 조각내어 흩뿌리고 다니는 사내도 얼마든지 있었다.

밀라니아는 그레칸에게 아는 척하지 않고 몸을 돌려 일행들과 학교로 돌아왔다.

마음은 즐거워질 기미가 없었다.

“마녀님, 저녁 안 드시려고요?”

“입맛이 없느니라.”

피곤하다며 잠자리에 든 밀라니아는 차분했다. 가라앉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그녀는 오늘 낮에 본 그레칸을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니 그때 느꼈던 허탈함이나 실망감은 많이 누그러졌다.

르베리안즈와 말란도르의 난봉꾼적인 행태를 많이 봤었던 만큼 이상할 건 아니라는 생각이지만, 그래도 허무함만은 가슴 밑바닥에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확실히 이상한 기분이구먼.’

쉬이 잠이 오지 않아 그녀는 몸을 뒤척였다.

그레칸이 어디서 구해 왔는지 새로 시트가 깔린 침대는 전처럼 거칠지 않고 부드러웠지만 오늘만큼은 그 부드러움도 잠을 불러오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황궁의 수인족 수장일 수도 있다.’

뒤늦게 데이트 같은 게 아니라는 가능성도 떠올랐다.

하나 만약 그레칸이 누군가와 정말 마음이 통한 것이라면.

가정한 밀라니아의 표정이 다시금 오묘해졌다.

새로운 이가 그레칸의 제동 장치가 될 테니,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그녀가 난감하고 곤혹스러울 일도 없을 일이었다.

밀라니아는 반대편으로 몸을 돌리고 눈을 꼭 감았다.

‘바라 마지않던 일인데 왜 이리 기분이 난잡스러운 게야.’

그러고도 얼마간 뒤척인 그녀는 저녁을 먹고 할 일을 마친 모두가 잠이 들었을 때에야 겨우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 * *

뱀족의 수장 아드라틸란은 거처를 황궁에 옮겼으되 황궁에서 머무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늪지대에서 똬리를 틀고 지내던 그녀는 하이로드가 부른다는 하칸의 전갈을 받고 나는 듯이 황궁으로 복귀했다.

그녀는 하칸이나 여타의 수인족 수장처럼 영달을 바라지 않았다.

그녀가 바라는 건 오로지 강한 힘, 강한 수컷.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서 신에 버금가는 절대자라 칭송받는 그레칸은 무엇보다도 탐나는 사내였다.

추적술의 달인으로서 뛰어난 후각을 이용하여 레지스탕스 총수의 흔적을 쫓으며, 그녀는 그레칸에게 아낌없이 페로몬을 뿌려 댔다.

“총수가 마법 능력이 뛰어난 인간이라 하더니, 추적을 방지하고자 은닉 마법을 쓰며 움직인 것 같아요.”

미끈한 코를 찡그리며 아드라틸란은 그레칸에게 바짝 붙었다.

시력이 좋지 않은 탓에 그레칸과 가까이 있어야만 안심하고 추적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그녀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탓이었다.

그녀가 몸을 비벼 대는데도 가만히 있던 그레칸이 입을 열었다.

“그럼 더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단 말이냐?”

“안타깝지만 더는 비슷한 냄새가 나지 않아요. 하지만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면 어떻게 될 것도 같아요, 하이로드.”

아드라틸란은 몸을 꼬며 매혹적인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뱀족의 페로몬은 박쥐족의 유혹과는 결이 다른 매혹이었다.

그녀는 제 페로몬이 자랑스러웠고, 자신이 있었다.

‘어떤 무뚝뚝한 사내도 거꾸러뜨릴 수 있으리라.’

혀끝 하나 들어가지 못하게 딱딱한 그레칸이 페로몬이 불러일으키는 정염에 휩쓸리길 바라며, 관능적인 미소를 지었던 아드라틸란은 저를 내려다보는 새카만 눈과 마주쳤다.

끝을 알 수 없는 무저갱처럼 깊고 어두운 눈동자.

그녀는 얼어붙었다.

포식자를 만난 피식자의 본능으로 몸이 하염없이 떨렸다.

“실패했단 말이지. 그럼 비켜라.”

“하이로드?”

“비켜.”

섬뜩한 기분에 아드라틸란은 단단한 팔뚝을 휘감고 있던 제 팔을 서둘러 풀어냈다.

손으로 엉켜 있던 부분을 툭툭 털어 낸 그레칸이 그녀를 향해 건조하기 짝이 없는 시선을 보냈다.

“한 번만 더 징그럽게 달라붙으면 머리와 꼬리가 영영 만나지 못하게 해 주마.”

목소리에 고저가 없어 등골이 서늘해지는 협박이었다.

딱 굳어 버린 아드라틸란을 스쳐 지나간 그레칸은 그녀가 닿은 부분을 털어 냈지만 여전히 비릿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얼굴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비릿한 향내가 거슬렸던 참이었다.

콧속이 냄새로 꽉 찬 듯하여 그레칸은 기분이 점점 저조해졌다.

밀라니아의 품에 처박혀 그 청량한 향을 마음껏 들이마시고 싶다.

‘얼른 돌아가야지.’

밀라니아는 아마도 바라지 않겠지만. 그 생각을 하자 입맛이 썼다.

가슴에서 일어난 둔통이 의욕을 탐욕스러운 개미처럼 긁어먹는 것 같았다.

얼른 그녀를 보고 싶다는 간절함도 누그러질 만큼.

하지만 이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뒤집힐 마음이라는 걸, 수없이 같은 경험을 한 그레칸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 있든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다.

[오래됐을 뿐 도니 너와 별다를 거 없다 했느니라.]

‘밀라니아는 정말 너무할 정도로 둔하고 무신경해.’

그의 입가에 쓰디쓰지만 그럼에도 행복한 미소가 맺혔다.

‘그런 당신이 너무 사랑스러워. 가슴이 아픈데도 이 통증마저 달콤할 정도로. 밀라니아가 내게 주는 모든 게 좋아.’

그녀의 거부와 무신경한 태도에 상처받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곁에 있다는 것이, 자신이 그녀 곁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해서 상처가 덮일 뿐이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다.

만나 주지 않았을 때는 만나만 줬으면 하고, 만나 주면 키스를 했으면 하고, 키스를 하면 더한 것을 원하고, 원하고, 원한다.

끊임없는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자 동력이었다.

수인이라서일까?

그는 욕심이 나다가도 그녀가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충만해졌다.

그레칸은 꼬박 하루 동안 부글부글 끓어 대던 속이 식은 용암처럼 진정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도니와 별다를 것 없는 사이란 말은 떠올릴 때마다 분노를 발작시키는 도화선이었다.

그녀가 혹시나 알고 자신에게 또 화를 낼까 봐 피를 보지도 못해서, 마음은 격랑처럼 사나워져 있었다.

그런데도 밀라니아를 생각하니 괴물은 거짓말처럼 얌전해진다.

단지 그녀를 볼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물 가득한 독을 한 바가지씩 퍼내는 것처럼 마음의 들썩임이 잦아들었다.

물이 모두 비워진 독 안에 남은 것은 그리움 하나뿐이었다.

‘이 마음은 어쩔 수 없어.’

피식 웃는 그레칸의 미소는 마음의 짐을 모두 털어 버린 것처럼 후련했다.

이 길은 그녀를 보러 가는 길이다. 그 사실이 행복했다.

그레칸이 이틀 만에 학교에 왔을 때, 학교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레칸을 반겼다.

‘이놈들이 언제부터 그레칸을 이리 좋아했는고?’

와아, 하며 우르르 몰려가는 아이들을 향해 밀라니아는 떨떠름한 시선을 보냈다.

“어, 칸 씨가 왔네요!”

심지어 위제니아마저도 밝은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무슨 중요한 일을 하러 간다지 않았어요? 일찍 오신 것 같아요.”

“중요한 일은 무슨.”

밀라니아는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위제니아의 눈 밑이 거무스름했다.

“근데 너는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구나.”

“사람이 많이 늘었잖아요. 이것저것 할 일이 늘어나서 그런가 봐요.”

“쯧쯧, 쉬엄쉬엄하거라.”

“알겠습니다. 근데 중요한 일이 아니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뭐, 해석하기 나름이니라.”

‘물론 여자 만나러 가는 일도 개인에겐 중요할 수 있으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겠지.’

밀라니아는 위제니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들에겐 이쪽이 나을지도 모른다.

‘자기들 무리의 수장을 어떻게 하려는 것보다는.’

총수를 만나 복수하려는 그레칸의 증오는 얼추 이해할 수 있을 것 싶지만 역시 만류는 해 봐야겠다고, 밀라니아는 아무것도 모른 채 눈을 반짝이는 위제니아를 보며 내심 생각했다.

아직 기반이 단단하지 못한 레지스탕스에서 무리를 이끄는 총수가 죽는다면 매우 힘들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게다가 위제니아에게서 전해 들었던 총수에 대한 단편적 정보에 따르면 총수는 악한이거나 멍청한 사람은 아닌 듯했다.

[지닌 능력이 뛰어난 분이세요. 힘든 사람을 보듬어 살피는 마음가짐도 훌륭하시고요. 저희들이 충분히 신뢰하고 따르는 수장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계시죠.]

그에 따르면 총수는 기억에 남은 황태자의 모습과는 닮지 않았다.

오히려 매너가 좋다든지, 사람을 잘 다룬다든지 하는 특징은 황태자의 부친이자 당시의 황제를 닮은 듯했다.

‘역시 그레칸과 얘기해 볼 필요가 있겠구먼.’

그런데 집 안으로 들어오는 그레칸을 보자 그날 거짓말하고 여자와 만난 일이 떠오르는 게 아닌가.

밀라니아는 빈정이 상해 버렸다.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화르륵 불꽃처럼 사라졌다.

밀라니아를 발견한 그레칸이 곧장 걸어왔다. 밀라니아는 쌀쌀맞게 몸을 일으켰다.

“밀…….”

밀라니아는 저를 보며 방긋 웃는 그의 곁을 말없이 지나갔다.

고개를 돌려 매몰찬 뒷모습을 본 그레칸은 어리둥절해졌다.

* * *

소파에서 햇볕을 쬐는 밀라니아는 나이 든 고양이처럼 곤히 누워 있었다.

그레칸은 그 옆의 의자에 앉아 밀라니아의 얼굴만 빤히 바라보았다.

“오늘 날씨 좋다.”

“빨래하기 딱 좋은데?”

까르르, 웃음소리가 마당과 정원에 음악처럼 깔렸다.

며칠간 구름 꼈던 하늘이 맑아지고 해가 쨍쨍해지자 모조리 밖으로 몰려나온 것이다.

빨래를 벼르고 있던 위제니아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댔다.

밀라니아의 소파는 활기찬 분위기와 달리 적막하기만 했다.

“나 없는 동안 무슨 일 있었어?”

밀라니아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대꾸했다.

“날씨가 좋지 않았던 것 말고는, 다 좋았느니라.”

“근데 왜 그래?”

“뭐가 말이냐.”

“당신 기분이 좋지 않아 보여.”

“일없느니라.”

“그럼 눈 뜨고, 나 보고 얘기해.”

밀라니아 흥, 콧방귀를 뀌었다.

“거짓말쟁이에게 할 말은 없느니.”

그레칸이 미간에 깊은 주름을 잡았다.

“거짓말쟁이?”

“……넌 총수를 만난다 하고 여자와 데이트를 했다.”

여기까지 말하자 느낌이 너무 이상해서 밀라니아는 서둘러 덧붙였다.

“그래서 너 때문에 고민하고 노력했던 시간들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느니라.”

밀라니아는 한탄했다. 빈축을 사도 단단히 사겠다. 이 무슨 형편없는 변명이란 말인가.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얼굴을 찌푸린 그레칸은 생각에 잠겼다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 얼굴을 폈다.

“그날 봤어? 그 여자는 뱀족의 수장이야. 후각으로 흔적 찾는 데 능하다 하여 데리고 있었던 거고. 나는 거짓말한 적 없어.”

밀라니아는 두 사람이 지나치게 친밀해 보였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 말을 들으니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레칸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밀라니아의 눈치를 보았다.

“화났어?”

‘……화?’

비웃음당할 줄 알았던 밀라니아는 움찔했다.

그레칸은 뭘 오해하고 있는지, 비웃음도 분노도 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거짓말 안 할게. 밀라니아가 싫어한다면.”

“…….”

“말했잖아. 밀라니아가 싫어하는 건 안 한다고.”

“…….”

“그러니까 나 봐 줘. 다른 건 다 참아도, 당신이 날 외면하는 건 견디기 힘드니까.”

괜히 멋쩍어진 밀라니아는 슬그머니 눈을 떴다.

눈이 마주치자 그레칸이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그녀의 가슴이 뜨끔할 만큼 어른스러운 미소였다.

천 년이라는 긴 세월의 경험이 쌓여 있어 그레칸과는 비할 바 없이 정신적으로 성숙하다 자부했던 밀라니아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지레짐작하여 질책을 하다니. 나이를 허투루 먹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겠구먼. 에잉, 쯧쯧.’

헛기침을 하고 밀라니아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래. 거짓말은 신뢰를 떨어뜨리는 행위이니라.”

어물쩍 넘어가려는 말에도 그레칸은 탓하는 말 하나 없이 의젓하게 굴었다.

“안 할게. 밀라니아가 날 믿지 않는 건 싫으니.”

‘끄응.’

내심 신음을 흘린 밀라니아는 결국 한숨을 쉬었다.

“아니다. 이번 일은 네 말도 듣지 않고 섣불리 판단한 내 탓이 크구나.”

밀라니아는 손을 뻗었다. 무심코 한 행동이라 손은 중간까지 가서 멈추었다.

그레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웃으면서 그녀의 손 아래 머리를 들이밀었다.

손바닥 아래 복슬복슬한 머리칼이 만져졌다. 밀라니아는 손을 좌우로 흔들어 그의 머리칼을 헤집었다.

그레칸은 눈을 반쯤 감았다. 그릉, 기분 좋은 웃음이 잇새에서 새어 나왔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워서 밀라니아도 웃음이 샜다. 이슬이 튀는 것처럼 낭랑한 소리에 그레칸이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밀라니아는 손을 내리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위제니아가 빨랫줄에 이불을 널고 있었다. 작달막한 아이들이 끙끙거리며 도와주고 있었다.

이불의 양을 보니 학교의 모든 더러운 이불을 다 꺼내 놓은 모양이었다.

‘어찌 저걸 지금 하누. 다들 올 때 하지 않고.’

밀라니아는 혀를 끌끌 찼다.

‘미련한지고.’

위제니아는 꽤 부지런한 편이었다.

어느새 소파 앞에 바짝 붙어 바닥에 앉아 있던 그레칸이 똘망똘망한 눈을 마주쳐 왔다.

밀라니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저쪽을 좀 도와줘야겠구나.”

그레칸은 일어나려는 밀라니아를 다시 눕혔다.

“내가 갈게. 밀라니아는 쉬어.”

밀라니아는 소파에 누운 채로 그레칸이 마당으로 가는 것을 멀뚱멀뚱 지켜보았다.

‘전에도 생각한 것이지만, 그레칸이 있으니 참으로 편하구나.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통칭 골칫덩이 그레칸.

예전에는 그로 인해 심신이 모두 피곤했다면 100년이 지나 눈을 뜬 지금은 그나마 정신만 피곤하다는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레칸이 다가가자 모두 놀란 얼굴을 하더니 곧 환히 웃는다.

‘희한하단 말이야. 딱히 살갑게 군 것도 아닌데 조금 덜 무섭게 굴고 검술과 마법을 가르쳐 줬다는 것만으로도 저들의 환심을 사다니. 저것도 재주로다.’

그레칸이 도와주겠다고 말했는지, 위제니아가 고맙다며 고개를 꾸벅 숙인다. 그러고는 젖은 이불을 가리켰다. 그레칸은 그 이불을 집어 들었다.

서너 명이 달라붙었던 이불을 수월히 펼치고는 빨랫줄에 널기까지 순식간이었다. 위제니아와 아이들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두 사람과 아이들은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빨래를 널기 시작했다.

산더미 같았던 옷감과 이불이 금세 반으로 줄어들었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자 기온이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구름도 끼지 않아 햇볕은 장해물 하나 없이 온전히 지면으로 도착했다.

볕이 너무 뜨거워 밀라니아는 소파를 그늘로 옮겼다.

위제니아의 얼굴에는 땀이 뻘뻘 나고 있었다. 지켜보던 밀라니아는 문득 의문을 떠올렸다.

‘인어와 땡볕은 그다지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지 않나?’

물에 사는 인어는 건조함과 햇볕을 기피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햇볕에 취약한데, 축축한 늪지대와 물 따위에 최적화된 피부가 마르기 때문이었다.

가만 보니 안 그래도 썩 좋지 않았던 안색이 한층 푸르죽죽해졌다.

이상을 눈치챈 건 밀라니아만이 아니었다. 이불을 거의 다 널어 둔 그레칸이 눈썹을 치켜떴다.

“너 들어가서 쉬어야 할 것 같은데.”

“네?”

“당장 쓰러질 것 같아 보여.”

“그래요?”

“응. 좀 심하네.”

“이따 쉬면 괜찮을 거예요. 내일부터는 비가 온대요. 그전에 빨래는 다 말려 놔야 하니까.”

빨래 바구니를 든 위제니아가 휘청거렸다. 괜찮다는 말이 무색해져서, 그녀는 민망해하며 배시시 웃었다.

“확실히 몸이 안 좋긴 하네요. 그러면 이것만 하고…….”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었다. 머리가 핑, 돌아서 위제니아는 바구니를 놓쳤다.

풀썩 쓰러지는 그녀를 보고 밀라니아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런 미련한 것을 보았나.’

달려 나가려는데, 그레칸이 쓰러진 위제니아를 번쩍 들어 올렸다.

“저기 뒤쪽에 우물이 있어요!”

그레칸이 아이들이 가리킨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레칸이 스스로 타인을 돕다니.’

멈칫한 밀라니아가 곧 그 뒤를 따랐다.

우물은 저택의 뒤편에 있었다.

밀라니아가 우물가에 도착했을 때는 그레칸이 위제니아를 그늘에 위치한 평평한 바위에 눕히고 물을 뿌려 주고 있었다.

얼굴이 촉촉하게 젖었을 때 속눈썹이 흔들리며 위제니아가 눈을 떴다. 바로 앞에 그레칸이 있다. 푸른 눈동자가 확장되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운 탓인지 위제니아의 얼굴이 빨개졌다.

“제가 민폐를…….”

허둥지둥 일어나려는 그녀의 얼굴에 그레칸은 손에 남은 물을 뿌려 주었다.

반사적으로 위제니아가 눈을 감자, 물방울이 그녀의 속눈썹에 아롱아롱 맺혔다.

슬며시 눈을 뜬 그녀의 얼굴이 당황스러워졌다. 그레칸이 이마와 뺨에 물기를 스윽스윽 묻혀 주었다.

“카, 칸 씨?”

“이렇게 안 하면 너 병나.”

위제니아의 얼굴이 좀 전보다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바가지에 물을 퍼 날랐던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남몰래 키득거렸다.

장난기 있는 꼬마들은 얼레리꼴레리 놀리기까지 했다.

“보기 좋아요, 두 분!”

“장난 그만하지 못하겠니?”

위제니아가 엄히 말했지만 아이들은 입을 가리며 깔깔 웃을 뿐이었다.

아이들의 야릇한 웃음소리에 당황한 위제니아는 엄격한 얼굴을 풀고 그레칸을 힐끗거렸다.

이들이 왜 이러는지는 관심 없는 그레칸은 도중에 길을 멈춘 밀라니아를 발견했다.

좀 전과 달리 만면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져 나갔다.

밀라니아는 묘한 눈으로 그레칸을 올려다보았다. 돌연 그가 허리를 숙이고 밀라니아와 눈을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 둥글게 휜 그레칸의 까만 눈에 웃음이 번졌다.

“나 잘했지?”

“뭐?”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약간 긴장했던 그녀가 황당하게 되물었다.

“착해졌잖아, 이 정도면.”

“…….”

“아니야?”

기대하던 눈에 실망감이 깃들었다. 칭찬을 받을 거라고 생각한 듯하다.

밀라니아는 다소 당황스러운 기분에 젖었지만, 손은 자연스럽게 움직여 그레칸의 머리 위에 안착했다.

슥슥 매만져 주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레칸이 눈을 감았다.

“그래. 착해졌느니.”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밀라니아의 표정이 구름 낀 하늘처럼 흐려졌다.

싱숭생숭하고 익숙하지 않은 이 기분. 이 기분은 대체 무엇인가.

그레칸의 뒤로 시선을 던졌다. 위제니아가 양손을 뺨에 얹은 채 이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금 기분이 심란해졌다. 이유를 알 수 없다니, 답답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가슴이 아파요, 밀라니아 님. 제가 아니라 다른 여자에게 시선을 주는 말란도르 님을 보면 이렇게 가슴이 아파져요. 하루 종일 입맛이 없고, 즐거운 걸 봐도 즐겁지 않아요.]

[그래서 이리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게냐.]

[제가 병에 걸렸나 봐요.]

[병에 걸린 게 아니다.]

[그럼요?]

그때 자신이 뭐라고 했더라?

[그건 질투라고 하느니라.]

* * *

“저기로 좀 비켜 봐! 네 다리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잖아!”

“그게 나 때문이냐? 내 다리보다는 네 몸통이 두꺼워서잖아.”

“살 좀 빼라.”

“누가 할 소리?”

투닥거리면서 1층으로 내려오는 곰 수인 두 명에게 시선이 쏠렸다.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데릭이 삐걱거리는 계단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러다가 낡은 계단이 또 무너지겠어. 보수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하긴 덩치 큰 놈들이 하도 쿵쾅대니 바닥을 강철로 만든 게 아니고서야 남아나겠나.”

드물게 일찍 일어나 식사 자리에 껴서 수프를 게걸스럽게 들이켜던 깡치는 제게 한 말도 아닌데 지레 찔려 인상을 팍 썼다.

여기서 덩치 하면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

“최근에 저런 다툼이 많아지고 있기는 하죠. 다들 예민해져서 별거 아닌 일로도 싸우는 일도 잦아졌고요. 아, 수프가 부족한가요?”

위제니아가 일어나려 하자 그녀보다 먼저 카닛트가 일어나 수프가 든 냄비를 식탁으로 가져왔다.

“고마워요. 아무튼 거처를 옮기든가 늘리든가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아요.”

어제 도착한 호루스가 여전히 투닥거리는 곰 수인을 응시하고, 깡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깡치가 슬그머니 수프 그릇을 내려놓았다.

“왜 그렇게 보쇼?”

“다들 덩치가 크기는 크구나.”

호루스의 새삼스러운 감탄에 데릭이 킥 웃었다. 깡치는 또 한 번 인상을 썼다.

“이 근방에서 제일 큰 집은 이 집이니 집을 옮기는 건 의미가 없고 거처를 늘리는 게 좋겠어.”

“말이야 쉽지 근처의 빈집들은 성한 데가 없고 먼지가 가득 쌓여 있어서……. 할 일이 많아지겠네요. 아이고,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은데 큰일이네요.”

깡치 일당에 더해 구출한 인간과 수인, 혼혈들의 수가 많아져서 이제 학교는 거의 터져 나갈 지경이었다.

“도대체 뭘 먹고 자랐는지 덩치가 그렇게 커서야…….”

“보자 보자 하니까! 데려와 놓고 눈치 주는 건 너무한 거 아니오?!”

일거리가 늘어난다고 투덜거렸던 데릭은 깡치의 억울한 항변에 뜨끔해서 딴청을 피우며 수저질을 했다.

“깡치, 데릭이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니다. 원래 투덜이 기질이 있으니 서운해하지 마라.”

호루스가 엄중한 시선을 던지자 데릭이 머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깡치는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지켜보던 밀라니아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학교도 나름의 배려와 질서가 잡혀 가고 있었다.

인간과 수인이 함께 섞여 있는 상황.

그간 쌓인 앙금이 많으니만큼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싸움이 날 때마다 이런 식으로 중재하고 한발 물러서니 대체로 평화롭게 끝나는 편이었다.

‘이 정도면 걱정할 일 없겠구먼.’

흐뭇해하는 밀라니아의 숟가락 위에 상큼한 피클이 얹어졌다.

고개를 돌리자 그레칸이었다.

제 몫은 손도 대지 않고 밀라니아가 먹는 것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엔 손바닥만 한 피클 병이 들려 있었는데, 야채를 수확하기 힘든 지금 구하기 어려운 식료품이었다.

트루크가 단춧구멍 같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칸 씨, 그건 어디서 난 거요?”

“어디서 난 게 중요해? 가끔 저런 식으로 별난 물건을 갖고 오곤 하잖아. 치사하다 치사해. 갖고 오면 다 같이 나눌 것이지, 마녀님한테만 주냐?”

미넬라가 다 들으라는 듯 혼잣말했다. 물론 그레칸의 양심을 자극할 수는 없었다. 그는 귀찮은 표정만 지었다.

“알아서 구해 먹든가. 능력이 없나.”

“진짜 치사하네…….”

무덤덤해서 더 얄미운 말에 미넬라가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게 꿍얼거릴 뿐 별다른 항의는 하지 않았다.

밀라니아만 챙기는 그레칸의 행동이 익숙한 것도 있고, 피클이 없더라도 먹을 건 많기 때문이었다.

미넬라 역시 더는 투덜거리지 않았다.

그레칸이 건네준 피클을 입으로 가져가며 밀라니아는 식탁 위를 살펴보았다.

전에는 생선 하나와 풀뿌리로 끓인 묽은 수프로 열댓 명이 먹었다면 지금은 건더기 많은 수프와 구운 생선이 반찬으로 올라와 있어 꽤 풍성했다.

인간들이 만든 어망과 인어족의 자맥질 기술을 이용하여 물고기를 많이 얻은 덕이었다.

농사도 순조로워 빵을 구워 먹을 수도 있고, 인간과 수인이 함께 훈련을 받아 병력도 날이 갈수록 튼튼해지고 있었다.

위제니아가 식탁 위로 긴 천 조각을 꺼냈다.

“그때 회의에서 제안된 두건 말이에요. 밀그렘의 단어를 예쁘게 새겨서 아이들과 함께 완성해 봤어요. 활동에 나가는 요원들은 앞으로 두건을 착용하고 나가면 될 거예요.”

“수고했어, 위제니아. 이제 정말 뭔가 제대로 되는 느낌이다.”

다들 들뜬 얼굴이다.

세상을 바꿀 움직임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고, 순풍을 맞아 순탄하게 항해하는 선원들의 유쾌함처럼 사람들도 희희낙락했다.

“아, 배고파. 나도 밥 좀…… 으아아악!”

빠직!

2층에서 내려오던 곰 수인이 층계에서 발이 빠져 허우적댔다. 두꺼운 다리가 나무 계단 아래 사라져 있었다.

데릭이 이마를 감쌌다.

“사람이 많긴 하네.”

* * *

결국 거처를 늘리기로 결정했다. 깡치 일당과 어린아이들이 학교 바로 옆 건물에 이사를 하기로 했다.

멀리 떨어진 건물은 안전에 위험이 있어 결정한 조치였다.

이 일대 건물 임대업을 꽉 붙잡고 있던 깡치 패거리가 학교에 합류한 덕에 쉘터로 만들 건물을 확보하는 건 쉬웠다.

장정들이 많았으므로 짐을 옮기는 것 또한 어렵지 않았다.

하루 동안 임무를 나간 이들을 제외하고 모두 달려들어 이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밀라니아는 가만히 있는 게 계면쩍어 의자 하나를 나르려 했다.

움찔.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어이구, 마녀님! 제가 옮길게요. 앉아 계세요!”

깡치 패거리의 곰 수인이 만류하며 그녀에게서 의자를 뺏어 들었다.

밀라니아는 허리를 퉁퉁 때리며 엉거주춤하니 소파에 앉았다.

몸 쓰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젬병인 그녀였다.

“아! 모서리가 엉덩이를 찍었어.”

“미안하네. 더 조심하지.”

침대를 머리 위에 인 깡치가 투덜거리며 지나갔다. 수인들과 선생들은 서로 배려하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밀라니아는 흐뭇해졌다. 왠지 설렜다.

‘시일은 걸리겠지만 100년 이내에 세상은 예전의 풍요로운 질서를 찾아갈 것이다.’

물론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직도 산적해 있었다.

우선 황도를 제외한 다른 곳은 여전히 비참한 상황이다.

현재 밀그렘의 이름을 단 학교의 요원들은 황도에서만 활동하고 있는데, 2대륙의 전체 면적에 비하면 활동 구역이 매우 좁았다.

모든 이들이 배척이 아닌 화합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려면 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두 번째로는 수인 수장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알게 되는 게 있지. 방황하는 대부분의 수인들은 저들 종족의 수장에게서 버려진 이들. 그래도 수장에 대한 경외는 여전하니라. 황궁의 안방을 차지한 수인 수장들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화합은 쉽지 않을 것이야.’

방법은 둘. 새로운 수인 수장을 세워 황궁의 수장들을 유명무실하게 만들든가, 황궁의 수장들을 설득하든가.

“황궁의 수장들 문제는 그레칸에게 물어봐야…….”

“나한테 뭘 물어봐?”

밀라니아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홱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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