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3/48)

12

추격

마녀성에서 갖가지 음식을 먹고, 그것도 모자라 취미 삼아 한 사냥으로 귀한 고기까지 섭취해 온 그레칸의 털은 자르르 윤기가 돌았다. 풍성한 꼬리가 허공에서 살랑였다.

밀라니아는 그 꼬리의 감촉을 알고 있었다.

숲속의 겨울은 추웠고, 불을 떼고 자도 아침이면 불이 꺼지는 일이 왕왕 있었다.

그런데도 밀라니아는 근 15년간 따뜻한 아침을 맞았는데, 그레칸이 밤마다 침대에 숨어들어 와 그녀의 품에 안겼던 탓이었다.

익숙하고 따뜻한 감각. 밀라니아는 자연스럽게 그레칸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 순간, 르베리안즈와 말란도르가 기민하게 움직였다.

“벼룩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깨끗한 이불 덮고 누워요.”

르베리안즈가 털가죽 이불을 탁탁 치며 밀라니아를 불렀다.

첫날 그레칸이 잡았던 멧돼지 가죽이었다.

털은 좀 거칠었지만 깔끔했고 따뜻해 보였다. 그레칸이 눈썹을 꿈틀했다.

“비겁한!”

르베리안즈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여기서 자면 바람을 피할 수 있을 거야.”

말란도르는 재빠른 솜씨로 움막을 만들어 놓고 밀라니아에게 손짓했다.

나뭇가지를 엮어 토대를 만들고 그 위를 나뭇잎으로 꼼꼼히 감싼 것이, 그의 말대로 바람을 막기엔 제격이었다.

“내 털이 제일 따뜻하고 부드럽다!”

“이불보다 나은 게 있을까요?”

“그래 봤자 둘 다 짐승의 가죽. 벼룩이 있을지도 모른다니까.”

미소를 띠고 자신을 바라보는 세 사람을 번갈아 둘러보며 밀라니아는 고민에 잠겼다.

‘이건 함정인가?’

웃고는 있지만 셋의 어깨가 팽팽히 올라선 게 곧 싸울 기세였다.

휘이잉.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밀라니아가 몸을 부르르 떨자 세 사람의 눈이 번뜩였다.

저마다 제게로 오라며 조잘대려는 순간, 밀라니아는 해쓱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화르륵!

모닥불이 두 배로 타올랐다. 백골 노예가 장작을 잔뜩 넣어 둔 탓에 화력이 셌다.

솟아오른 불꽃의 끄트머리가 새끼줄 꼬듯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밀라니아의 몸을 휘감았다.

그런 밀라니아의 모습은 불꽃으로 만든 옷을 얹은 불의 마녀 같았다.

“나는 이걸로 충분하도다.”

따뜻한 기운에 기분이 좋아진 밀라니아가 풀어진 목소리로 말하자 실망한 그레칸의 풍성한 꼬리가 살짝 왜소해졌다.

“잘 자거라, 다들.”

밀라니아는 무릎에 턱을 괴고 눈을 반쯤 감으며 속삭였다.

아쉬운 표정의 르베리안즈는 결국 나무 밑동에 몸을 붙였다. 척, 팔짱을 낀다.

바람이 불어오는 자리에 앉아 밀라니아에게 가는 바람을 막은 그레칸이 모닥불에 장작을 불어넣었다.

흔들리던 불꽃이 얌전해지자 밀라니아는 눈을 뜨고 그레칸을 응시했다.

눈이 마주친 그레칸의 둥글게 휘어지는 눈을 보며 밀라니아는 입꼬리를 다정하게 올렸다.

“고맙구나.”

그레칸의 귀가 대꾸하듯 쫑긋거렸다.

라미에가 불운하게 죽지만 않았더라면 능히 늑대족의 후계로서 자랄 수 있었던 그레칸이다.

눈칫밥을 먹으며 홀로 커서일까. 그는 말하는 대신 조용히 행동하는 편이었다.

여태껏 곤란하게 군 적도 많았지만.

‘이럴 때면 기특하기도 하느니.’

솔솔 잠이 몰려왔다.

원체 잠이 많은 밀라니아의 눈이 완전히 감기자 지켜보고 있던 르베리안즈가 혼잣말을 했다.

“마녀성을 떠나와서 그런가. 유독 피곤해하는 것 같네.”

그때였다.

휘익.

가볍게 바람이 일었다.

고개를 들자 말란도르가 나뭇가지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곧 완전히 사라져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밤마다 사라지는군. 수상하게.”

말란도르의 빈자리를 흘끗한 르베리안즈의 목소리가 차가워지고, 그레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조용한 목소리가 싸늘한 적막을 깨웠다.

“나 때문에 그런 거란다.”

잠든 줄 알았던 밀라니아가 졸음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말란도르와 나는 상극이라 함께 있으면 서로의 기를 깎아 먹지.”

“…….”

“떨어져 있는 게 좋아.”

말을 마친 밀라니아에게서 숨소리가 새근새근 흘러나왔다.

르베리안즈의 눈빛이 묘해졌다.

그레칸은 한결 어두워진 낯빛으로 장작 하나를 모닥불 안으로 던져 넣었다.

“생각보다 배려심이 깊네요.”

한발 늦게, 르베리안즈가 말했다.

못마땅한 기색이 희미하게 어려 있기는 했으나 더는 말란도르에 대해 말을 얹지 않았다.

한 시간가량 지났을 무렵,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던 밀라니아가 눈을 반짝 떴다.

그녀는 곧장 허리를 펴고, 매서운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중천에 뜬 보름달이 요요한 달빛을 쏟아 내고 있었다.

유혹하는 달빛이었다.

“불길하도록 샛노란 달이군.”

그녀를 따라 하늘을 바라본 그레칸이 눈을 깜박였다.

눈치 빠르게 일어난 르베리안즈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아무 이상을 발견하지 못하여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요, 밀라니아.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사박.

위에서 나뭇잎 하나가 살랑살랑 떨어졌다. 귀신처럼 나타난 말란도르가 표정을 굳혔다.

“밀라니아, 하늘에…….”

밀라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누가 오고 있구나.”

밀라니아가 몸을 일으키자 말란도르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기감이 예민하게 확장되었다. 고운 눈썹이 꿈틀했다.

“가서 확인해 볼까요?”

밀라니아와 말란도르가 알아챈 기척을 자신은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르베리안즈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레칸은 이미 인간형으로 변화한 상태였다.

눈을 뜬 밀라니아가 르베리안즈를 빤히 바라보았다.

의미심장한 눈빛에 그가 고개를 기울였다.

“이상하구나.”

밀라니아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날갯짓의 파동이 느껴지느니라.”

“……지금 오고 있는 자들의?”

그런데 왜 날 저렇게 볼까. 무슨 상관이라고.

의아해하던 르베리안즈가 눈을 치켜올렸다.

의문스러운 시선에 밀라니아가 가볍게 대꾸했다.

“박쥐족이다.”

하늘을 쳐다보는 밀라니아를 따라 르베리안즈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란 보름달에 점점이 점이 박혀 있었다.

서서히 커진 점은, 마침내 펄럭이는 날개가 보일 정도로 밀라니아 일행과 가까워졌다.

차라라라!

날개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그 수가 족히 백이었다.

“들려오는 날갯짓 소리로 한둘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밀라니아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숫자에 눈살을 찌푸렸다.

“저 많은 수가 한꺼번에 움직이다니 무슨 일인 것이냐?”

“일단 몸을 피하는 게 좋겠어요.”

밀라니아가 초조해하는 르베리안즈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아니, 뭣 하러. 얘기를 해 보는 게 우선이지 않겠느냐.”

타다다닥.

시간이 좀 더 지나자 박쥐족의 날갯짓 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르베리안즈의 표정도 안 좋아졌다.

그레칸은 하늘의 박쥐족을 경계하면서도 르베리안즈를 곁눈질했다.

“이상하다, 너. 네 동족이 오고 있는데 왜 그런 표정이지?”

르베리안즈가 한숨을 쉬었다.

그레칸이 한쪽 눈을 찡그리는 순간, 르베리안즈가 밀라니아의 손을 낚아채고 숲으로 날아갔다.

밤하늘보다 까만 날개를 펄럭이며 르베리안즈가 사라지자, 안 그래도 그가 미심쩍던 그레칸은 곧장 늑대화하여 그를 쫓았다.

하나둘, 지면에 내려앉은 박쥐족이 멀어지는 르베리안즈를 향해 황망하게 외쳤다.

“마 로드! 어디 가십니까!”

후계자의 호칭을 부르짖는 박쥐족들도 르베리안즈의 뒤를 쫓았다.

상황을 살피던 말란도르가 황당한 숨을 뱉었다.

“뭐 이런……. 미친놈들을 데리고 다니네, 내 밀라니아가.”

밀라니아는 르베리안즈의 품에 안겨서 숲을 통과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안긴 상태라 날카로운 턱선과 높은 콧날만 보였다.

파스스스.

날개가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헤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르베리안즈의 검은 날개에 다 막힌 터라 그녀에겐 작은 나뭇가지 하나 날아오지 않았지만, 밀라니아는 현재 상황 자체가 불가해하여 눈살을 찌푸렸다.

르베리안즈를 멈출까 하다가, 갑자기 이러는 이유부터 묻기로 했다.

“뭐 하는 것이누?”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박쥐족이 백이나 몰려온 걸 보면 범상치 않은 이유일 터였다.

그런 와중에 르베리안즈까지 이렇게 구니, 상관관계를 찾지 않을 수가 없다.

“뭔 짓을 했느냐?”

질문을 바꾸자 르베리안즈의 붉은 입술이 시원한 호선을 그렸다.

그러나 대꾸하는 내용은 두루뭉술하여 영 시원하지가 않았다.

“사랑의 도피를 하는 기분이에요. 설레는군요. 지금 키스해 달라고 하면 키스해 주려나요?”

“뭐라?”

마녀들에게 매혹을 흩뿌리는 걸로도 모자라 자신에게까지 이러는 걸까.

눈을 가늘게 뜨자 르베리안즈가 투덜거렸다.

“그레칸과는 했으면서.”

“그건 그레칸이 한 거지. 그리고 그건 키스라고 할 수 없느니.”

“그러면?”

“뭘 그렇게 묻느냐. 뽀뽀지 않누.”

밀라니아는 르베리안즈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게 갑자기 한심하게 느껴졌다.

먼 곳에서부터 나뭇가지 헤치는 소리가 따라붙고 있었다.

르베리안즈의 속도가 빠르긴 하나 저 많은 수를 쉬이 떨쳐 낼 수는 없다.

결국 이 돌발 행동은 오래가지 못할 터.

“첫 키스가 아니라면서요.”

“그런데.”

“그럼 처음은 누구예요?”

밀라니아는 웃음 같은 한숨을 쉬었다.

“왜 다들 그런 것에 집착하는지 모르겠구나.”

“같은 걸 물은 놈이 있구나. 누가 또 그랬는데요?”

르베리안즈가 불만을 생글생글한 웃음으로 감추고 물었다.

대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밀라니아가 손가락을 튕기자, 정면의 거대한 나무가 동물처럼 움직여 르베리안즈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대로 갔다면 충돌. 르베리안즈는 여유롭게 방향을 돌렸다.

순식간에 위로 솟구쳐 숲을 통과하며 르베리안즈가 가볍게 웃었다.

“하하. 위험해요, 밀라니아.”

“제자리로 돌아가거라.”

“아하, 누군지 알겠어요.”

르베리안즈의 말을 무시하고 밀라니아는 뒤를 힐끗했다.

르베리안즈의 움직임을 알아챈 박쥐족이 하나둘 솟구쳐 올라왔다.

얼음 조각처럼 싸늘한 얼굴을 하고 쫓아오는 박쥐족이 하늘에 바글바글했다.

밀라니아는 한마디로 현 상황을 표현했다.

“개판이로구나.”

르베리안즈는 뒤의 상황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말란도르, 그자죠?”

“…….”

“무슨 사이길래 키스까지 한 걸까.”

한층 낮아진 목소리가 밀라니아의 귓바퀴를 휘감았다.

“궁금하네.”

“별거 있겠느냐. 너처럼 점막을 부딪치는 걸 좋아하나 보더구나.”

시큰둥하게 대꾸한 밀라니아가 딱, 손가락을 튕기자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강한 바람에 저항하는 르베리안즈의 날갯짓이 현저히 느려졌다.

“태풍을 불러오기 전에 얌전히 내려가렴.”

“쳇.”

르베리안즈의 눈썹이 삐뚜름해졌다. 그 얼굴을 보자 밀라니아는 기가 막혔다. 영락없이 떼를 쓰는 아이 꼴이지 않나.

지금 르베리안즈는 고집을 부리는 그레칸처럼 굴고 있다.

드문 모습에 밀라니아는 문득 의아해졌다.

“뭐 때문에 그러는지 말해 보거라.”

“동족들이 쓸데없는 말을 할 테니까요.”

르베리안즈는 전과 달리 순순히 대꾸했다.

밀라니아가 불러들인 바람으로 인해 블론드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휘날렸다.

“쓸데없는 말?”

“그리고 밀라니아는 그 쓸데없는 말에 넘어가 줄 거고요.”

“일단 들어 보고 결정하면 되느니.”

“…….”

르베리안즈의 시선에 밀라니아는 대수롭잖게 말했다.

“일면식 없는 박쥐족의 말보다는 리비 네 말을 믿는 게 당연하잖니.”

산들바람처럼 흘러나온 목소리에 르베리안즈는 광풍에 머리를 맡긴 채 눈을 깜박였다.

“밀라니아가 그런 말을 하니까 굉장히…….”

밀라니아는 르베리안즈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녀들이 왜 그렇게 르베리안즈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하는지 알 듯도 했다.

진심으로 웃는 르베리안즈는 활짝 핀 장미꽃처럼 유혹적이고, 또한 향기로웠다.

“기분이 좋군요.”

르베리난즈가 날개를 크게 펄럭였다.

휙, 위로 솟구친 르베리안즈는 바로 아래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쑥―!

그리고 추락이 시작되었다.

눈을 향해 바람이 달려든다. 밀라니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은빛 속눈썹이 바람에 휘말려 위로 젖혀졌다.

르베리안즈가 착지한 곳은 모래사장이었다. 아까 도망쳤던 그 해변보다 동쪽에 위치한 곳인 듯했다.

우워어어어어!

워터드래곤 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르베리안즈가 밀라니아를 내려 주었다.

지면을 밟은 밀라니아는 르베리안즈의 뒤로 날아들기 시작한 박쥐족을 응시했다.

차가운 손가락이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겨 주었다.

날아오는 박쥐족의 기세가 퍽 흉흉한데도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얼굴이다.

“손 떼라.”

어느새 와이번의 위에서 뛰어내린 그레칸이 으르렁거리며 르베리안즈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르베리안즈가 그레칸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지긋지긋한 자식. 언젠가 네놈을 죽일 테다.”

뱀이 쉭쉭대는 듯한 목소리에도 그레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러기 전에 넌 네 일부터 해결해야 한다. 이 귀찮은 놈.”

그레칸이 르베리안즈의 손목을 쓰레기 던지듯 팽개쳤다.

반동으로 르베리안즈의 몸이 측면으로 틀어졌다.

“마 로드!”

막 땅에 발을 내린 박쥐족 하나가 다급히 달려왔다.

르베리안즈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일족을 일별하곤 밀라니아를 흘끗했다.

그에게 외면받은 박쥐 일족은 격분하며 밀라니아를 노려보았다.

상반된 시선을 받은 밀라니아는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박쥐족과는 15년 전 이후로 간간히 소식을 교환하는 것을 제외하고 별다른 교류가 없었다.

그 역시 최근에는 거의 없다시피 하고 있었다.

‘르베리안즈를 곧 돌려보내겠다는 서신이 마지막 서신이었던 것 같은데.’

그러니 저렇게 분개한 얼굴로 자신을 노려볼 이유가 없었다.

박쥐족은 속속들이 모래사장 위에 내려앉았다. 곧 모래사장은 백 여 명의 박쥐족들로 빼곡하게 찼다.

문제는 그들이 자신을 적의 어린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스칼렛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대신 아름다운 적발의 여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다른 박쥐족들이 묵인하고 있음에 밀라니아는 여자의 정체를 추측했다.

‘이 무리의 대표로구나.’

그녀가 먼저 입을 떼기도 전에 여자가 날카롭게 물었다.

“로드 위치.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밀라니아는 말을 하려다 멈칫했다.

서늘한 시선에 여자의 눈빛이 굳어졌다.

밀라니아에게서 냉정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격분한 듯 눈을 세게 뜨고 있던 여자의 눈매가 다소 아래로 내려갔다.

밀라니아는 그녀가 조금쯤 공손한 모양이 되어서야 말했다.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자와 말 섞기는 싫느니.”

“……로드 대리입니다.”

마지못하다는 표정이기는 했지만 이전보다는 공손하다.

“그래. 로드 대리.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예?”

“밤중에 박쥐족을 백 명이나 끌고 오다니. 누가 보면 대마녀가 홀로 여행을 떠난 틈을 타 습격이라도 한 줄 알겠느니라.”

느슨하게 흘러나오지만 날카로운 내용에 흠칫한 여자는 즉각 항변했다.

“전혀 그런 게 아닙니다.”

“날 해하려 온 게 아니라면 무슨 일로.”

목소리의 고저가 희미한 밀라니아의 말에 여자는 조금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밀라니아는 르베리안즈를 확인하는 듯 시선을 돌렸다.

그가 인상을 구겼다.

“마 로드를 지키러 왔습니다.”

“……?”

“15년 전, 로드와 맺은 약속을 지켜 주십시오. 병이 나으면 돌려보내겠다는 약속 말입니다. 질병은 다 나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연유로 박쥐족의 후계자를 억류하고 있는 겁니까. 마녀족에게 다른 속셈이 있는 게 아니라면 전혀…….”

“잠깐.”

밀라니아는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

안 그래도 말을 듣고는 있지만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던 참이다.

“그게 무슨 말인고? 내가 르베리안즈를 억류하고 있어? 분명 조만간 그를 돌려보내겠다고 서신을 보냈을 텐데. 서신에 답하지 않은 것은 스칼렛이거늘.”

여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럴 리 없다는 태도였다.

“로드는 마녀족에게서 그런 서신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저희 쪽의 서신에 답하지 않은 것은 마녀족이 먼저입니다. 일방적으로 연락이 끊겼음에도 로드는 당신을 믿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후계자를 데리고 2대륙으로 간다는 소식만은 이해할 수 없어 이렇게 나서게 된 겁니다.”

“…….”

“해명해 주십시오.”

단호한 목소리로 요구하는 여자의 얼굴엔 일말의 의구심이 어려 있었다.

그녀 역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눈치였다.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하구먼.”

밀라니아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눈이 딱 마주친 르베리안즈는 왜 쳐다보느냐는 듯 짐짓 양순하게 눈을 깜박였다.

그러나 르베리안즈를 1, 2년 본 밀라니아가 아니다.

그녀의 직감은 이 모든 일의 원흉으로 르베리안즈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레칸이 “아.” 탄성을 지르고 고자질하듯 말했다.

“박쥐 놈이 새들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걸 여러 번 보았다.”

“닥쳐, 그레칸.”

르베리안즈가 상큼한 목소리로 일갈했지만 늘 그랬다시피 그레칸은 가볍게 무시했다.

“공중에서 발목에 종잇조각을 동여맨 새를 붙잡는 것도 보았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증언에 르베리안즈는 차가운 얼굴이 됐지만, 밀라니아의 시선을 받자 재빨리 표정을 바꾸었다.

“내가 말했죠. 저들이 쓸데없는 말을 할 거라고 했잖아요.”

“…….”

“저런 말보단 내 말을 믿을 거죠, 밀라니아?”

감탄이 나올 만큼 달콤한 목소리는 호소력이 짙었다.

밀라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르베리안즈의 입가에 기대 어린 웃음이 걸리는 순간.

“역시 네 짓이었구나.”

그는 웃는 얼굴 그대로 굳어졌다.

밀라니아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가늠하는 박쥐족 수장 대리를 힐끗했다.

“도망가기 전에 붙잡아라.”

마녀족의 수장의 명을 받들 필요는 없지만 수장 대리는 반사적으로 명령을 내렸다.

“마 로드를 보필해!”

명령은 보필이었지만 포박에 가까웠다.

“누가 감히 내 몸에 손을 대는가!”

난동을 부리는 르베리안즈 때문에 몇 명의 박쥐족이 하늘을 날아 모래사장에 처박히는 모습이 얼마간 연출되었다.

그러나 약 백 명의 박쥐족이 달려드는 데야 당해 낼 재간이 없어서, 소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잠시 후, 르베리안즈는 밀라니아의 뒤가 아니라 박쥐족의 앞에 있게 되었다.

만족한 표정의 수장 대리 옆에서 르베리안즈는 쓴 거라도 씹은 얼굴이었다.

“왜 그러셨어요?”

로드 대리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다른 이들도 궁금한 얼굴로 르베리안즈의 입을 바라보았다.

굉장히 불만스러운 듯 눈썹을 구긴 르베리안즈는 팔짱을 낀 밀라니아를 향해 호소했다.

“이러지 말아요, 밀라니아.”

“대답하려무나.”

“……난 아직 떠나기에 어리잖아요.”

떠나기 싫어서 서신을 중간에서 가로챘단 말이다.

밀라니아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르베리안즈의 나무처럼 큰 키와 성숙한 눈매, 호두를 삼킨 것처럼 도드라진 울대를 차례로 훑어보았다.

‘정말 많이 컸구나.’

성체가 되었음을 인식했음에도 왜 이런 일이 생길 거라는 건 생각하지 못했는지.

밀라니아는 혀를 찼다.

“수장 대리. 지금 르베리안즈를 데려가려는 건 내가 생각하는 이유 때문이냐?”

여자는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후계자의 신분에서 벗어나실 때가 왔습니다. 로드께서 애타게 기다리고 계세요.”

‘역시 때가 왔다.’

전대 수장의 자리를 물려받아 새로운 수장이 되는 일.

전생보다는 약간 늦긴 하지만 그레칸에 비해서는 빨랐다.

르베리안즈에게 고개를 돌린 밀라니아는 잔잔하게 미소를 지었다.

“축하한다, 리비. 어른이 다 되었느니.”

그 말에 르베리안즈는 충격받았다.

“난 밀라니아에게 언제나 귀여운 리비인 거 아니었어요?”

성인 남성의 모습으로 귀여운 리비 운운하는 건 차마 눈뜨고 못 볼 꼴일 게 분명했지만 타고난 미모가 있으니 그럭저럭 잘 어울렸다.

오랜만에 본 수장의 깜찍한 모습에 혼란스러워하는 박쥐족에 비해 그레칸은 얼굴을 구기고 짤막하게 평했다.

“역겹다.”

르베리안즈가 차가운 눈으로 그레칸을 응시했다.

두 사람 사이로 차가운 기운이 팽팽하게 감돌자 밀라니아는 또 싸움이 날까 싶어 얼른 앞으로 나섰다.

미래의 수장이 싸우고 있는데 백 명의 박쥐족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으니, 만약 마녀성에서처럼 전투가 벌어진다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을 터였다.

“리비.”

부드럽게 그를 부르자 르베리안즈가 홱, 고개를 돌렸다.

“이만 가야겠구나.”

르베리안즈의 얼굴이 섭섭한 듯 어둡게 흐려졌다.

“그렇게 부드럽게 말하는 걸 보니 밀라니아는 내가 가는 걸 원하는군요.”

“서운해할 필요 없느니라. 네가 해야 할 일을 하라는 것이니.”

“난 아직 어려요. 당신의 보살핌이 필요한 때라고요.”

르베리안즈가 한숨을 쉬며 짙은 금발을 쓸어 올렸다.

연민을 자아내는 연약한 목소리에 오랜만에 후계자를 보는 박쥐족 무리의 날카로운 눈빛이 흔들렸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이가 많은 박쥐족이지만 르베리안즈의 아름다움은 마력에 가까웠다.

그의 영롱한 붉은 눈이 우수에 차자 그가 하는 말도 퍽 진실처럼 들렸다.

밀라니아는 르베리안즈의 호소하는 시선을 덤덤하게 받아 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서 하는 소리는 아니다.

밀라니아는 저 어처구니없는 말에 감춰진 르베리안즈의 속내를 읽어 냈다.

“지금 간다고 영영 못 만나는 건 아니지 않누. 2대륙에도 오래 있지 않을 테니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게다.”

밀라니아는 다정하게 그를 달랬다.

우는 아이에게 선의의 거짓말을 하듯, 밀라니아의 말도 그런 성격을 띠었다.

거짓말은 아니나 의문의 여지는 있는 탓이다.

영영 못 만나는 건 물론 아닐 테지만 박쥐족의 계승 의식은 시일이 좀 걸리는 편이므로, ‘곧’ 다시 만나는 건 힘든 일이었다.

“하필이면 지금.”

르베리안즈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못 미더워하며 그레칸과 말란도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놈들을 밀라니아 곁에 두고 떠나려니 발이 떨어지질 않네요.”

“날개를 펴면 된다.”

그레칸이 얼른 꺼지라는 투로 말하자 르베르안즈가 입을 앙다물었다.

빠득. 이가 날카롭게 갈렸다.

“정말 안심이 되지 않네요. 저런 놈에게 밀라니아를 맡기고 가는 거 말이에요.”

밀라니아는 하아, 한숨을 쉬는 르베리안즈를 물끄러미 보다가 쟤도 있지 않냐는 의미로 말란도르를 가리켰다.

말란도르를 흘끗 바라본 르베리안즈가 얼굴을 구겼다.

“수상한 자는 애초에 제외입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얘기가 길어지자 로드 대리는 탐탁지 않은 얼굴로 하늘을 흘끗했다.

“마 로드, 로드께서 기다리십니다.”

“지금 대화 중에 끼어든 거냐?”

미소를 띠며 한 말이지만 로드 대리는 찔끔하며 한 발 물러섰다.

유들유들하게 굴고는 있지만 속으로 어떤 계산을 굴리고 있을지 모를, 그레칸의 표현을 따르자면 뱀 몇 마리를 품고 있는 르베리안즈다.

“어쩔 수 없죠.”

머리를 쓸어 넘긴 르베리안즈가 짐짓 침울한 투로 말했다.

밀라니아는 입술을 달싹이는 그레칸의 입에 바람을 쏘았다.

얼른 꺼지라고 말하려는 게 분명한 입을 봉인당하자 그레칸이 귀를 축 늘어뜨렸다.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가는 시점에 초를 칠 건 없느니.’

그녀의 의도를 깨달았는지 그레칸은 얌전했지만, 불퉁해진 얼굴을 보니 험한 소리를 하지 못해 아쉬운 모양이다.

“가시죠, 마 로드. 모시겠습니다.”

“잠깐.”

로드 대리가 멈칫하고 르베리안즈를 바라보았다.

르베리안즈는 그녀를 본체만체하며 밀라니아에게 한 발 다가왔다.

“나의 마녀에게 인사는 해야지.”

그레칸이 다시 한번 입을 열려는 것을 한차례 강력한 침묵 마법으로 막은 밀라니아는 다가오는 르베리안즈를 평온한 표정으로 맞이했다.

관에 누워 있던 창백한 소년은 어느새 그녀를 훌쩍 뛰어넘는 청년이 되어 있었다.

이상야릇한 감회가 가슴을 간질였다.

‘벌써 한 일족의 수장이 될 때라니, 시간이 빠르구나.’

생각해 보면 열 번의 회귀 중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갔던 적이 없는 것 같다.

눈앞에 다가온 르베리안즈가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쳐다보면 가기 싫어지잖아요.”

“가거라.”

밀라니아는 즉시 답했다.

감상적이 되는 건 되는 거고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녀의 깔끔한 태도에 르베리안즈의 눈썹이 잘게 경련했다.

“서운하게.”

“서운할 거 없느니.”

“……좋아요. 몸 건강히 있어요. 얼른 따라갈 테니까.”

나지막하게 말한 르베리안즈가 밀라니아의 한 손을 잡아들고 허리를 굽혔다.

밀라니아는 그가 자신의 손등에 입을 맞추는 걸 바라보며 눈을 끔벅였다.

붉은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나 피부를 가볍게 찔렀다.

밀라니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여기서 피를 빨려는 것이냐?’

수면병을 낫게 하기 위해 밀라니아는 르베리안즈에게 주기적으로 피를 먹였고, 다 나은 지금도 그는 호시탐탐 밀라니아의 피를 탐하는 눈으로 보곤 했으므로 충분히 가능한 의심이었다.

‘피를 빠는 게 문제가 아니라, 혈 향에 흥분할까 봐 걱정되느니.’

다행히도 르베리안즈는 송곳니를 입술 안으로 감추었다.

부드러운 입술은 하얀 손등을 지그시 누르기만 했다.

르베리안즈의 튀어나온 울대가 강하게 도드라졌다.

그가 아주 천천히 손등에서 입술을 떼는 순간, 밀라니아는 뒤쪽으로 확 끌어당겨졌다.

불시에 그녀 손을 놓친 르베리안즈의 눈꼬리가 귀신처럼 치켜 올라갔다.

밀라니아를 뒤로 빼낸 이는 그레칸이었다.

그는 명백히 화가 난 얼굴로, 간신히 참는다는 듯 낮게 속삭였다.

“작별 인사이니 봐준다.”

그러면서 밀라니아를 꼭 껴안았다.

여린 어깨에 머리를 묻은 채 흉흉히 노려보는 그레칸의 시선을 받으며 르베리안즈가 야릇하게 웃었다.

“작별 인사 아니야.”

“…….”

“잠깐만 떨어져 있겠으니 양해해 달라는 손등 키스지.”

“더럽다. 밀라니아에게 박쥐 놈이 묻었어.”

“밀라니아를 더럽히는 건 네놈인 것 같은데. 향기가 노린내로 오염되고 있는 걸.”

“네 냄새를 없애는 거다.”

그레칸이 보란 듯이 머리카락으로 밀라니아의 목덜미를 비비고 손등을 부여잡았다.

르베리안즈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예의 그 팽팽한 기 싸움이 시작되었다.

밀라니아에겐 지겹도록 익숙한 일이었지만 이 광경을 처음 보는 박쥐족들은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후계자님이, 아직 아프신 걸까요?”

누군가가 중얼거리자 로드 대리의 눈이 시퍼렇게 빛났다.

“건방지다.”

스신하게 깔리는 목소리에 박쥐족이 서둘러 표정을 수습했다.

박쥐족의 분위기가 싸해지건 말건 르베리안즈와 그레칸의 분위기는 여전히 치열하고도 팽팽했다.

밀라니아가 폭발할 듯한 공기에 찬물을 부었다.

말 그대로, 허공에 만들어진 물이 그레칸과 르베리안즈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멋진 수장이 될 거라고 믿느니라.”

짐짓 자상한 그녀의 말에 르베리안즈가 물을 뚝뚝 흘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밀라니아는 진심이었다.

사실 악연이었기는 해도, 르베리안즈가 수장으로 있었을 적의 박쥐족은 그 기세가 남달랐다.

박쥐족은 아름다운 수장 르베리안즈를 사랑했고, 르베리안즈는 특유의 수완으로 박쥐족을 세련되게 통치했다.

그의 통치는 강력한 힘으로 찍어 눌러 복종을 이끌었던 그레칸의 통치 방식과는 차이가 있었다.

늑대족이 그레칸의 강인함에 매료되었다면 박쥐족은 르베리안즈의 마력과도 같은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내 입장에선 마뜩잖았지만, 박쥐족의 입장에서 르베리안즈는 꽤 멋진 수장이었을 것이다.’

밀라니아가 진지해지자 르베리안즈는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이었다가, 이내 한숨 쉬듯 웃었다.

“다시 찾으러 올 때는 다른 모습일 거예요.”

 작별 인사를 마치고 드디어 르베리안즈가 날개를 폈다.

그대로 날아오른 르베리안즈는 밀라니아를 잠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검은 날개가 보름달을 덮을 듯 크게 펼쳐졌다.

르베리안즈가 날자 그 뒤를 로드 대리가 따랐고, 이윽고 백여 명의 박쥐족이 날아올랐다.

사― 사아. 사사사삭!

박쥐족의 날갯짓 소리가 잔잔했던 공기를 요란하게 울렸다.

하늘을 수놓았던 박쥐족은 금세 작아져 검은 점이 되었다.

꼬옥, 밀라니아는 팔에 힘을 주어 자신을 끌어안는 그레칸의 팔을 힐끗했다.

“부디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레칸이 진지하게 말했다.

얼른 돌아오겠다는 르베리안즈의 말을 신경 쓰는 기색.

박쥐족의 성인식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는 밀라니아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신부를 맞아들이느라 늦을 것이니.”

“신부?”

“그는 수장이 될 테니까. 배우자도 필요하노라.”

르베리안즈는 수장으로서 배우자를 맞게 되어 있다.

과거에는 앨리지 때문에 박쥐족이 내세우는 신부 후보를 거부했지만, 앨리지를 만나지도 못한 지금은 이대로 혼약을 맺을지도.

“그런가? 잘되었다.”

밀라니아의 말에 그레칸은 묘하게 기뻐 보였다.

그의 머리칼을 휘저은 밀라니아는 뒤를 흘끗했다.

말란도르가 팔짱을 낀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곧 그가 몸을 돌려 사라지자, 밀라니아는 그레칸의 몸을 살짝 밀었다.

“여기서 모닥불을 피우고 있으려무나. 장작을 주워 올 테니.”

핑계를 댄 밀라니아는 말란도르가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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