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장. 한 마리 대 여든일곱 명(5)
- 파지직!
빠르다.
늘 그런 이야기를 들어왔다.
시전이 끝날 즈음엔 이미 상대의 근육을 경직시키고 있었다. 장기를 태우고 있었다. 심장을 마비시킨 뒤였다. 그만큼 빨랐다. 말 그대로 번개같이 빨랐다.
그것이 니들렌의 번개였다.
모두가 흠칫거리는 덩치의 스칼렛이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니들렌의 번개였다. 제 새끼들의 이름조차 읽지 못하였던 안쓰러운 아비를 자작의 부친으로 만들어 놓은 니들렌의 번개였다. 가진 것 하나 없던 평민 고아를 이 대륙에서 가장 강한 군대의 사단장에 올려 둔 그것이.
그것이 바로 니들렌의 번개였다.
그런데.
느리다니.
"무슨 그런······ 생소한 말씀을."
- 파지직, 파직, 파직!
"······ 하십니까, 왕자님!"
- 쉬이익!
- 콰아아아앙!
칼리안의 검이 내리찍혔다.
잿빛의 검이 소름끼치는 울음을 내며 박혀들어갔다. 사람의 몸 말고, 뼈와 근육 말고. 단단하기 짝이 없는 강인한 대지 위에 푹 박혀들었다.
칼리안이 몸을 띄움과 동시에 텔레포트 준비를 해둔 뒤 시기 좋게 몸을 빼냈던 니들렌이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팔을 뻗었다. 목표가 사라져버린 빈 바닥에 박힌 검을 뽑아드는 칼리안에게 깊은 심연과도 같은 빛의 번개자락이 줄기줄기 꽂혀들어갔다.
굉음이 인다.
먼지가 피어오른다.
이제야 간신히 밝아오는 하늘을 등진 칼리안. 아스라한 그 빛을 담은 칼리안의 실드에서 끊이지 않을 스파크가 일었다.
- 파지직, 파직!
- 콰앙, 콰앙, 콰아앙!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하여 뻗어나간 번개가 칼리안을 향해 쏟아지듯 뻗어나갔다. 목숨을 위협할 만큼의 위력은 아니었으나 칼리안의 발을 막을 정도는 될 힘을 담은 채였다.
- 콰아아앙!
계속하여 칼리안의 시야를 막던 번개의 힘이 폭발했다. 지면이 패이고 강한 바람이 휘몰아친다.
번개가 가라앉은 그 순간 도약하려던 칼리안에게 네 명의 기사가 달려든다. 또 다른 한 명의 기사가 뛰어와 칼리안의 앞을 막는다.
- 카앙, 캉, 카아아앙!
모인 놈들의 움직임이 마치 한 사람의 것과도 같다.
빈 곳을 향해 검을 내지르면 여지없이 다른 곳에서 검이 뻗어나온다.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검을 휘두르면 기사들의 앞에 몇 겹의 실드가 둘러진다. 사방에서 찔러드는 기사들의 검이 칼리안의 팔을 막고 발을 가둔다.
- 사아아아······.
바람이 분다.
칼리안이 발을 디뎠다. 팔을 내밀었다.
바람이 분다.
나비의 춤인 듯. 저물어 흩날리는 꽃잎인 듯. 별이 담긴 윤슬인 듯. 높이 올려 묶은 긴 머리가 싸움 한복판에 소슬한 그림을 그린다.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으며 움직이는 이의 발자취가 되어 뒤를 따른다.
- 휘이익!
- 카강, 카가가가강!
가장 앞에 선 놈이 칼리안이 찔러낸 검을 피했다. 그리고 몸을 숙였다. 곁에 있던 다른 놈의 검이 검을 쥔 칼리안의 손을 노린다.
- 채앵!
손잡이 끝을 올려 놈의 검을 튕겨낸 칼리안이 자신의 검을 다시 휘둘렀다. 길게 뻗어낸 검은 오러가 두 기사의 검을 그대로 잘라내며 그들의 상체에 깊은 상처를 하나씩 남겼다. 그와 함께 허리를 틀어 뒤에서 치닫는 검을 피한 뒤, 검이 움직이던 방향대로 팔을 놀렸다. 검 끝에 닿은 여러 겹의 실드를 뚫고 그 너머에 있는 기사의 목젖을 살짝 누른 뒤 떨어졌다.
주르륵, 하고.
예리하게 벼려진 오러의 기운에 닿은 피부에서 붉은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열외' 판정을 받은 기사가 지체없이 몸을 낮춰 빠져나갔다. 기사의 바로 뒤에 서 있던 이가 곧바로 자리를 메운다.
- 타앗!
진영이 재정비되는 그 찰나의 틈.
세 번의 격돌만에 그 방법과 순서를 완전히 파악한 칼리안이 몸을 비틀었다. 기사가 빠져나가며 만들어진 빈 곳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그런 칼리안의 앞을 서둘러 막아서는 세 기사의 목줄기에 어느새 긴 자상이 생겨난다.
- 후두둑!
손에 들린 검을 살짝 튕겨 피를 털어낸다 싶던 칼리안이 일순간 벼락같이 움직였다.
그런 칼리안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떨어진 적 없음을 안 니들렌이 다시 한 번 텔레포트했다. 칼리안을 저지하려는 기사들이 도달하기까지 세 번의 번개가 칼리안을 향해 내리꽂혔다.
그러나 그 뿐.
마법사는 넷이나 더 있는데 날아오는 것은 번개 뿐이라.
기사들은 계속 덤비는데 보내져 오는 힘은 실드 뿐이라.
다시 멀찍이 물러선 니들렌을 향해 칼리안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맹수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다시 드러났다 이내 사라졌다.
"시간을 버네."
왜일까.
기대감 가득한 미소가 뒤를 이었다.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낀 니들렌이 고민없이 마력을 회전시켰다. 정제된 마나를 응집하고 전류를 만들어냈다. 칼리안을 향해 쏘았다.
기사들이 둘러싼 곳.
칼리안으로부터 숨겨둔 곳.
그 곳에 모인 네 마법사의 손에 무엇이 얽혀들고 있는지, 칼리안이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마법사 협회장은 물 속에 번개를 담은 구슬을 만든다던데. 그런 것은 못 하나.'
'그······ 부군단장님. 세이렌 협회장은 이중 속성 마법사입니다. 그래서 가능합니다만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이중 속성을 다루지 않습니다.'
'파란 머리 마법사는 화염 마법 쓰잖아.'
'헤르츠 부군단장의 화염 마법은 이중 속성이라 하기 보다는 그냥 취미입니다. 사용 서클도 다르고 화염 마법에 대한 이해 정도도 얼음보다 낮습니다. 이중 속성과는 다릅니다.'
'이중 속성이 아니면 그런 것은 못 쓰나.'
'네. 그렇습니다. 두 속성의 마법을 융합하기 위해서는 각 속성에 대한 깨우침이 동일해야 합니다.'
불의 기운을 담은 두 개의 구체.
물의 기운을 담은 두 개의 구체.
네 마법사의 손 끝에서 네 개의 구체가 만들어진다.
니들렌의 손이 움직인다.
기사들의 검이 움직인다.
칼리안을 다시 막아선다.
불의 기운이 담긴 두 개의 구체가 하나로 합쳐진다.
물의 기운이 담긴 두 개의 구체가 하나로 합쳐진다.
계속 움직인다.
- 콰직!
- 쿠우웅!
두 명의 기사가 자신의 정강이와 허벅지를 붙든 채 열외되었다. 어김없이 달려든 새로운 두 기사가 방금 사라진 검을 대신했다.
화염을 담은 거대한 구체가 둥실 떠올랐다.
짙은 농도의 물이 커다란 구체로 바뀌었다.
'서로 다른 속성의 마법이 잘못 합쳐지면 굉장히 불안정한 힘이 됩니다. 오히려 시전자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완전히 다른 두 개의 힘이 칼리안을 향해 쏘아진다.
마력을 보낸 마법사들의 시선이 구체를 따라간다. 두 개의 구체가 칼리안의 코앞까지 날아갔다. 그것을 쳐내기 위해 칼리안이 검을 들었다. 그리고.
- 슈우욱!
- 휘익!
화염과 물의 구체가 하나로 뭉쳐들었다.
기사들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들의 앞에 마법사들의 실드가 둘러쳐진다.
'혼자 두 개를 시전해서 위험할 거면, 둘이 하나씩 만들어서 합치면 되잖아.'
니들렌이 시선을 빼앗고 기사들이 앞을 막은 사이, 네 명의 마법사가 제각각의 마력으로 만들어 낸 힘이 한 곳에 모였다. 하나의 둥근 구체 속에 꾸역꾸역 담겼다.
칼리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본디 협동 따위를 모르던 마법사들이 심혈을 기울여가며 연습해온 것. 완전히 똑같은 속도로 마법을 발현하기 위해 그렇게나 애를 써온 것. 그 결과가 눈에 보여지고 있었다.
힘이 제멋대로 충돌한다. 물과 불이 멋대로 섞인 한 개의 구체가 요동친다. 섞이지 못할 힘을 한 가지로 섞기 위해 일렁인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융합되지 않는다.
'그리고. 섞인 힘이 불안정하다면.'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힘이 충돌한다.
이러한 충돌은 곧.
- 쿠구구구궁!
'······ 더 좋은 것 아닌가.'
- 콰과광, 콰아아앙, 쾅!
폭발이 된다.
* * *
느긋한 손길로 따라낸 술이 잔 속에 채워졌다.
- 우르릉······.
미약한 진동이 건물을 타고 전해졌다.
그 덕에 황금빛을 띠는 술에 잔잔한 파문이 인다.
"······ 진동이 이곳까지 전해집니다."
"괜찮네. 숲 인근으로는 아무도 오지 않고 그 너머로까지 울림이 가지는 않을 터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다른 이들이 눈치채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술잔을 내려다보던 이가 멀리 솟아오르는 검은 연기를 가리켜보이며 말했다.
"폭발이 계속 이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폭발음도 새어 나가지 않을 것인데 무얼 그리 걱정하나? 밤 사이 잠시동안 왕궁 숲에 불길이 일었다 하면 의심 않을 것이네."
"마나실 경. 제 말은."
"대륙의 첫 번째 검에게 검을 배우고. 대륙 유일한 8서클 마법사에게 마법을 배우고. 물론 내가 마법 가르치는 것을 많이 소홀히 하고 있기는 하네만. 어찌됐건 두 스승을 이렇게 잘 둔 왕자님이 저 정도 폭발에 꿈쩍이나 하실 분인가?"
이렇게 말한 앨런이 여전히 유유자적한 움직임으로 술잔을 들었다.
"일시적으로 근육이 더 붙었다 하나 조금도 단련되지 않은 가짜 몸이 아닙니까. 강제로 힘을 끌어다 쓰면 결국은 한계가 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걱정이 될 수밖에요."
"그리 되기 전에 끝내시겠지."
"전하께서 간혹 첨탑에 오르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르면 어찌하지를 못해 첨탑을 찾아가 하염없이 성문을 보셨습니다. 그저 꿈으로만 접하는 전하께서 그러실 정도인데."
테일란의 손가락이 숲이 있는 방향을 가리켜보였다.
"정말 괜찮으리라 여기시는 겁니까."
"정말 괜찮으리라 여기고 있네."
앨런은 일말의 걱정도 없는 얼굴로 태평하게 웃어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앨런의 시야가 남들보다 넓다는 것을 믿는 테일란은 결국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걱정스런 마음을 애써 접어넣으며 앨런이 따라놓은 히몰리카를 한입에 쭉 들이켰다.
한동안 숲을 바라보던 테일란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뒤에는 숲을 향한 관심을 억지로 밀어내려는 듯 다른 주제의 말을 꺼냈다.
"마법 가르치는 것을 소홀이 하신다면······ 지금 왕자님은 그럼, 마법이 아니라 검을 주로 쓰십니까."
"왕자님의 검을 본 적 없는가?"
"아무래도 제가 영향을 받을까 걱정하시는 것인지. 제 앞에서는 제대로 된 검을 쓰신 적 없습니다. 마법을 사용하시는 모습만 주로 보았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린 앨런이 뿌듯한 얼굴을 했다.
"그보다 잘난 검이 또 어디 있을까. 내가 마법 부리는 사람이라 자네의 검을 제대로 본 적은 없었네만. 우리 왕자님의 검을 본다면 자네도 아마 꽤 놀랄 걸세."
그 검 가르쳐 놓은 스승을 앞에 두고 늘어놓는 제자 자랑에, 테일란이 피식 웃었다.
"깃털처럼 가벼운 검이 또 어찌나 예리한지······. 게다가 숨 소리, 발 소리 하나를 안 내고 검을 쓰시는데. 왕자님의 검이 그야말로 빛과도 같아서 나도 종종 놀라곤 하네. 지켜보고 있자면 시간이 멈춘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드는 지경이니."
"소리가 나지 않을 만큼 가볍고 빠르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것이 과장된 소문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런 검을 쓰십니까."
"소문이 덜 났지. 그것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여 전하겠나. 언제 한 번 마주해보게."
앨런의 설명을 들은 테일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지워졌다. 살짝 미간을 찌푸린 테일란이 앨런을 쳐다봤다.
"네, 마나실 경."
빠르다.
빠른 것은 맞다.
하지만 가볍지 않다. 예리하다 하기보다는 힘이 있다. 결코 조용하지 않다. 때문에 슬레이만이 그리 물었었다. 그 가벼운 검에서 어떻게 그런 묵직한 소음이 나느냐고.
그런데 지금 들린 이야기는 그렇지 않았다.
슬레이만이 왜 테일란에게 칼리안의 검술을 언급하지 않았었는지. 그것이 테일란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슬레이만조차 둘의 검술을 서로 연관지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음을 깨달은 테일란이 조용히 목소리를 낮췄다.
"······ 꼭 한 번 마주해봐야 하겠습니다."
칼리안이 자신에게 배워간 그 검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가지치기를 하던 그 왕제가 테일란의 검을 어떻게 바꾸어 두었는지.
무엇을 새로 만들고 무엇을 버렸는지.
그것을 꼭 보아야 하겠다고.
* * *
강력한 폭발이 이어졌다.
바람이 휘몰아친다.
그런데 그 때.
허벅지를 관통당한 기사가 나무 뿌리에 걸렸다. 넘어진다. 바닥을 굴렀다. 실드 범위 밖으로 벗어났다. 칼리안의 눈에 폭발의 빛 너머로 널브러지는 기사가 들어왔다.
칼리안이 기사가 넘어진 곳으로, 폭발이 이는 방향으로 뛰쳐들었다. 멀찍이 서 있던 니들렌이 그 모습을 보았다.
서둘러 마력을 운용한 니들렌이 칼리안의 앞에 실드를 둘렀다.
기사는, 마법사는, 싸움 중 얼마든지 크게 다칠 수 있으나 왕족은 아니니까. 싸움에서 물러나게 할 만큼의 부상이면 몰라도, 목숨을 위협할지 모를 중상을 입힐 마음은 조금도 없었으니까.
"미친 새끼가······ 처돌았지."
제 앞에 씌워지는 실드를 본 칼리안이 마력을 움직였다. 실드를 펼쳤다. 실드에 오러를 담았다. 전부 다 담았다. 기사를 감쌌다.
칼리안 역시, 이 원수같은 미친놈들을 또 죽일 생각이 조금도 없었으니까.
- 콰앙, 콰아앙!
- 콰과과광!
대지가 뒤흔들린다.
온통 솟아오른 흙먼지가 시야를 흐트렸다.
눈을 뜨기 힘든 상황임에, 니들렌이 눈을 감고 마력을 풀었다. 시력 대신 마나의 힘으로 주변을 살폈다.
칼리안이 있던 곳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둘.
아니, 하나.
- 카아앙, 캉!
칼리안이 움직인다.
풀썩, 쓰러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온다.
주변의 기운만으로는 칼리안을 공격할 수 없던 니들렌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입을 열어 주문을 외웠다. 좀처럼 사용하지 않던 바람의 마력을 손에 모았다. 시동어를 외쳤다.
- 휘이이잉!
나뭇가지가 정신없이 흔들린다.
거센 바람이 모든 것을 쓸어 없앨 듯 불어닥친다.
그렇게 얼마쯤의 시간이 지났을까.
비로소 먼지구름과 잿가루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니들렌이 시선을 움직였다. 허벅지를 다친 채 바닥을 굴렀던 기사가 있던 곳을 쳐다봤다. 그 쪽으로 달려갔다. 정작 자신의 실드는 칼리안에게 씌웠으면서 기사를 먼저 살폈다.
"······ 하."
멀쩡하다.
칼리안에게 다쳤던 곳을 제외한 다른 어떤 상처도 늘어나지 않은 채 편안히 기절해 있었다.
"제이아 경."
조용하게 변한 공터에서 낮은 목소리가 니들렌을 불러세웠다. 고개를 돌리니, 끝이 살짝 그을은 청은색의 머리를 탁탁 털어내던 칼리안의 얼굴이 보였다.
"······ 네. 왕자님."
주변에 있던 기사들과 마법사들에게 전부 검을 보내고, 깨끗하게 다 기절시켜 둔 뒤 머리 정돈까지 마친 칼리안이 니들렌을 쳐다봤다.
"구덩이, 마력탄, 협동 공격, 듣도 보도 못한 마력 융합······. 내 형님께서 안배해 두신 것들이 이렇게나 많아서 나도 참 즐겁기는 한데."
나지막한 목소리가 니들렌을 향했다.
대사막의 녹지 않는 설원. 그 추운 곳에서 평생을 보낸다 했던 새하얀 늑대가 생각나는 눈빛. 서리를 뭉쳐 둔 듯한 싸늘한 눈이 니들렌을 내려다봤다. 그런 눈으로 니들렌을 보고 있었다.
"아직 싸움 안 끝났어. 경이 나한테 실드 보내준 덕분에."
그 목소리 끝에 여전한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것을 느낀 니들렌이 눈에 날을 세우며 마력을 모았다. 손을 뻗었다. 번개를 내보냈다.
- 파지직!
뻗어나간 번개가 공허하게 허공을 가른다.
아무것도 스치지 못한 채 스러지고 말았다.
"싸움 중인 것도 잊어버릴 만큼 걱정할 거면서. 제 아랫사람 안 챙기고 왕족을 구하고. 그래놓고는 다른 놈들 다 쓰러질 때까지 지휘하는 것도 잊고 여기로 달려오고. 그러면 어떡해."
훈련 이상의 훈련.
전쟁과도 같은 내기. 싸움.
그런 곳에 처음 나선 마법사. 다른 이들과 함께 움직이는 법을 발칸에 들어와서야 배운 마법사. 그 전까지는 그저 제 가족만 지키면 되었던 마법사.
그런 마법사인 니들렌에게, 어느새 등 뒤로 다가온 이가 속삭였다.
"······ 사단장 씩이나 되는 새끼가."
- 콰직!
기사와 똑같은 곳에 생긴 깊은 상처에서 더운 피가 흘러내렸다.
* * *
폭발과 바람이 지나간 자리.
전부 다 쓰러져 누워있는 놈들을 잠시 지켜보던 칼리안이 입을 열었다.
"쉰."
이제 서른일곱 남았다.
긴 숨을 쉬며 뻐근해지기 시작한 근육을 잠시 풀어낸 칼리안이 발을 움직였다.
다음 놈들이 어디에 있을까.
그것을 다시 가늠하면서.
- 쌔애애액!
그런 칼리안에게 무언가가 매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봐 줄 것도 없다는 듯 정확히 관자놀이를 향해 쇄도하는 그것을 향해 칼리안이 검을 뻗었다.
- 카앙!
뾰족한 무언가가 튕겨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화살.
형형한 빛을 내는 화살이 바닥에 떨구어져 있었다. 날아온 것을 확인한 칼리안이 기대감 가득한 얼굴을 했다.
"드디어 오셨네."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린 칼리안의 눈에 새하얀 말 위에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는 형제가 보였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대원들을 본 플란츠가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칼리안을 마주 바라봤다.
그런 플란츠를 향해 싱긋 웃어보인 칼리안이 시선을 움직였다.
"······ 그런데."
연보랏빛의 시선이 플란츠의 뒤를 향했다. 남은 서른일곱 명 사이에 누군가 섞여 있었다.
수련장에 칼리안이 떨어져내렸던 그 날 그 시간, 분명 치료실 안에 있었던 놈. 그래서 이번 싸움에 끼어들 자격을 못 얻은 놈. 그런데 칼리안과 마찬가지로 기대감 가득 어린 얼굴을 하고 끼어들어 있는 놈. 그 놈을 봤다.
"내 따까리가 왜 저기에 있나."
흥미가 반, 의문이 반.
기분 상한 기색 없이 자신을 살피는 칼리안을 향해 한 걸음 다가온 놈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마지막 패 왔습니다, 왕자님."
아르센 헤르츠.
칼리안의 미친 따까리가 멋진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잘 됐다."
혼잣말을 중얼거린 칼리안이 마주 웃었다.
"이참에 진짜 죽여버려야지."
그리고 솔직한 감상을 입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