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장. 고양이가(5)
오늘만 벌써 세 번째로 차를 우리고 있었다.
그것이 어쩐지 즐거워서, 좋은 향이 올라오는 세 잔의 차를 내어놓은 히나가 생긋 웃었다.
- 말린 살구랑, 장미, 꽃잎으로, 만든 차에요.
히나의 설명을 들은 드미레아가 곁에 앉아있던 이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말린 살구와······."
"장미! 맞죠?"
히나의 수어를 사탕 내기 퀴즈처럼 여기는 것인지.
"말린 살구랑 장미로 만든 차에요?"
환자의 곁에 오래 있기는 어려웠던 탓에, 칼리안과 인사는 잘 마친 아리안느는 치료실에서 먼저 나왔다. 히나를 만나고 있던 드미레아와 함께 치유사의 집무실을 찾아온 터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히나의 수어를 통역해주는 드미레아의 말을 잘라내고 정답을 맞춰보듯 말했다. 실웃음을 지은 드미레아가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아, 다행이다. 잠깐 안 보는 동안 다 까먹었으면 어떡하나 걱정했거든요."
세크리티아에서 히나에게 잠깐 수어를 배웠었으나 완전히 다 익히지는 못했던 탓에 하는 말이었다.
- 여기서, 지내는 동안, 더, 알려 드릴게요.
"네. 이번에는 완전히 다 익혀서 돌아갈게요."
히나의 웃음에 햇빛의 온기가 담겨있다면, 아마 아리안느의 웃음에는 햇빛의 밝음이 배어 있을 것이다. 그늘진 곳 하나 없는 얼굴로 웃음을 보인 아리안느가 히나의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향이 마음에 든다는 듯 곧바로 한 모금을 더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아까 여기에서 나가던 엘프가 시오나 힐이에요?"
"네. 맞습니다."
히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드미레아는 말로 답했다.
둘 모두를 보며 '아하' 하는 표정을 짓던 아리안느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저랑 같이 온 카스트린 경까지 합치면 이곳에 소드마스터가 다 모여 있는 셈이네요. 대륙에서 여기만큼 안전한 곳도 없겠어요."
- 그래야 되는데, 그렇지, 않은가봐요. 매번, 어쩜 그렇게, 많이 다치시는지, 몰라요.
"칼리안 왕자님 말씀이십니까."
- 네. 소공작님도, 보셨겠지만, 이번에도 심하게, 다쳐서 오셨으니까요. 자상한 왕자님, 걱정, 안 할 날이, 언제 올지, 모르겠어요.
조금 어려운 말들이 섞여있던 까닭에 아리안느가 드미레아를 쳐다봤다. 드미레아가 히나의 말 뜻을 알려주자 아리안느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말했다.
"걱정 안 할 만큼 건강할 땐 벽이라도 부수겠던데요."
히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것을 본 드미레아가 살짝 헛기침을 했으나, 히나의 의문만 눈치챈 아리안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잖아요. 심하게 다쳤다는 사람이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가는데, 건강할 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고를 치는 건지 싶고."
- 창문을······ 넘어요?
히나의 말을 본 드미레아가 소리없는 한숨을 쉬었다.
세크리티아 사람들 지독하다더니.
저래서야 대체 새들은 어떻게 부린 것일까, 이제는 그냥 그것이 궁금해진다.
"치료실은 2층에 있고 그 정도면 그다지 높은 것도 아니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래도 내 정혼자님이니까.'
아무리 그래도 팔이란 안으로 굽는 법이라.
"폭음이 있어서 마음이 급하셨던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 브리지트 경의 일도 있었으니 걱정이 과하신 것을 너무 나무라지는 마십시오, 베른 경."
아침부터 한참동안 칼리안을 혼냈던 드미레아가, 낯선 얼굴의 칼리안이 주섬주섬 내어놓던 변명들 중 하나를 골라 히나에게 전했다.
- 스스로 챙길 줄을, 모르니까요.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는지, 저는 정말 모르겠어요.
이 말에, 드미레아가 찻잔 속의 장미꽃잎을 내려다보다 입을 열었다.
"겁이 많은 분이라 그렇습니다."
또 늦을까봐.
또 잃어버릴까봐.
'지키는 게 어렵네.'
또 지키지 못할까봐. 겁을 먹어서.
"스스로를 챙길 줄 몰라 챙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겁이 많아 저러시는 것이니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 주십시오. 시간이 지나갈수록 점점 나아질 테니까요."
"······ 두고 왔다 하더니. 이렇게 보니까 알겠네."
달칵, 하고.
따뜻한 맛이 가득한 찻잔을 내려놓은 아리안느가 혼잣말을 했다.
'······ 아리안느.'
'응.'
칼리안에 대한 비밀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던 날. 세크리티아로 돌아와 아리안느를 만난 체이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뭔가를 두고 왔어. 내가.'
'찾아다 줄까?'
'아니. 그러면 안 되는 거라서. 두고 왔어.'
'당신한테 많이 중요한 거야?'
'많이 중요하지.'
'내가 찾아다 줄까?'
'아니.'
제자가 또 무리하게 움직일까 걱정한 스승이 제자의 옛 스승을 데려다 놓고, 다쳤다는 아들을 지척에 두었으나 만나지도 못한 아버지는 찾아든 손님과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하고, 제가 모시는 상관이 불편할까 부득부득 쾌활한 모습만 보이는 마법사가 있고, 창 밖으로 뛰쳐나간 동생을 따라나서려는 형은 발 밑 한 번을 안 쳐다보고 뛰어내리고,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것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치유사가 있고, 그런 행동을 전부 이해하는 정혼자가 있고.
세크리티아에서는 미처 보이지 않던 것들이 카이리스에 찾아온 뒤 반나절도 안 되어 이렇게 많이 보인다.
그것을 체이스도 보았을 터였다.
그 오랜 기간동안, 보고 싶지 않았어도 결국은 전부 다 보게 되었을 것이다.
'두고 와야 해서 두고 왔어.'
그래서 그리 한 것이다.
"이제야 알겠네요, 나도. 왜 두고 왔는지."
두고 와야 해서 두고 왔다.
두고 올 수밖에 없어서 두고 왔다.
칼리안을, 체이스가.
* * *
낮은 목소리.
지금 칼리안의 것과 달리 본래부터 낮았던 목소리가 치료실을 가만히 울렸다.
"칼리안, 돌아왔습니다."
체이스와 연결되었던 반지를 플란츠에게 도로 건넸다.
베른의 모습으로 몸이 바뀌고 목소리도 바뀐 탓에, 혹시나 반지로 전달되는 목소리도 바뀔까봐. 그것이 걱정되어서 직접 연락을 하질 못했다.
아무런 말도 없이 전해진 반지를 받은 플란츠는 이것을 왜 주는지 묻지도 않고 곧장 체이스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이렇게 칼리안이 무사히 돌아왔음을 알리는 중이었다.
"다쳐오기는 했습니다만. 무사합니다. 지금은 쉬고 있습니다. 네. 괜찮습니다."
그런데 플란츠가 들고 있는 것은 수정판이 아니다. 분명 반지였다.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해야 소리가 전해지는 물건이다. 플란츠는 그것을 가지고 이렇게 입을 열어 대화를 하고 있었다.
체이스의 말을 들려 줄 수는 없더라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칼리안이 함께 듣는 것이 나으리라 생각한 까닭이다. 입과 머릿속으로 동시에 같은 말을 하는 것이 플란츠에게 있어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기특한 배려에, 가만히 앉아 플란츠의 손에 들린 반지를 내려다보고 있던 칼리안의 입가에 웃음이 머물렀다.
"그건······ 아닙니다. 제가 세크리티아 국왕 전하에게 얘기를 전했던 것은 이미 알렸습니다."
체이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는 기분이다.
칼리안은 무사한지, 지금 칼리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물어온다. 플란츠가 자신에게 상황을 알렸음을 칼리안이 알면 오히려 걱정할 테니, 자신에게 연락했던 것은 알리지 말라 한다. 칼리안이 신경쓰지 않도록 이 일에 대해 모르고 있는 척 하겠노라고.
체이스는 분명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 뒤에야 상대가 누구인지, 잡혔는지를 물을 것이다.
"공격했던 것은 브리센 후작의 아들, 제온과 관련된 사람이었고······ 아직 잡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네. 맞습니다. 브리센 후작의 아들이 칼리안을 공격했다 밝히고 사형시키면 후작이 함께 엮이게 될 텐데. 상황 상 아직까지는 후작을 온전히 둬야 하고, 소리없이 죽였다가는 후작이 칼리안을 범인으로 몰 것이라서. 양쪽을 함께 경계하느라 우선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렇게.
곁에서 전해지는 말만 들어도 체이스의 대답을 알 만 하다.
사실 아무 소리가 전해지지 않았다 해도 칼리안은 체이스의 반응을 쉬이 상상할 수 있었을 터였다. 시간이 뒤집혔어도 체이스는 체이스니까.
"마나실 후작은 지금 아델리아를 찾으러 갔습니다. 아닙니다. 묻고 확인할 것이 있다고, 아닙니다. 죽이러 간 것이 아니라······ 질문하고 확인할 것. 네. 아델리아가 개입한 까닭에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다만 아델리아는 도움을 준 쪽입니다. 믿기 어렵습니다만, 사실입니다."
계속 이어지는 말을 들으며 그 반지를 돌려받아 체이스에게 직접 안부를 전하고픈 마음을 다시 한 번 꾹 누른 칼리안이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티없는 창에 언뜻 비치는 연보랏빛 눈을 물끄러미 마주 바라봤다.
처음에는 스스로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 뒤에는 길었던 머리카락을 봤다. 훌쩍 자란 몸을 보았고 손을 보았다. 그러다 이제는 눈을 마주보고 있었다. 귀도 닫고 입도 닫고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 거울, 필요하면."
"아뇨."
어느새 체이스와의 대화를 끝마친 플란츠가 물어왔다.
창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던 그대로, 칼리안이 대답했다.
"지금이 낫습니다. 거울은 너무······ 또렷해서. 그건 어쩐지 이상하지 않을까, 하고."
거울처럼 또렷이 보이지 않고 지금처럼 이렇게 희미하게 비춰지는 것이 베른에게는 더 잘 어울리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체념이라 하기보다는 솔직한 감상이었다.
사라져 아쉬운 것이야 한 둘이 아니지만 그렇다 해서 신기루같은 이 모습이 진짜가 될 수도 없는 일이니까. 어차피 계속 이런 모습으로 살 수도 없는 일인데 다시 한 번 눈에 담아 봐야 도움이 될 것이 있겠나. 잘 붙들어 둔 마음만 시끄러워질 뿐이다.
그런 칼리안을 한동안 쳐다보던 플란츠가 입을 열었다.
"휘트린 영지에는 왜 가는데."
플란츠 쪽으로 고개를 돌린 칼리안이 침대 옆 테이블에 올려진 귤을 하나 집어들었다. 앨런이 가져다 둔 단 귤이었다.
플란츠를 제대로 보는 대신 꼼지락 꼼지락, 제 손에 반도 안 찰 귤 껍질을 괜스레 조금씩 까던 칼리안이 대답했다.
"라트란 영지, 혹시 기억하십니까."
"······ 마나실 후작 영지잖아."
"아뇨. 전하께서 스승님에게 내리시기 전에······."
"로젤리타 때 있었던 일 말인가."
"네. 맞습니다."
"알아."
"그때 에일라 밑에서 일하다가 저에게 공격을 보냈던,"
"노튼 라미레즈. 만났어. 나도."
"아, 만나보셨습니까."
"그 자가 알려 준 건데. 아우님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줬다 하기보다는 플란츠가 눈치를 챈 쪽에 가까웠지만, 어쨌거나.
"노튼 라미레즈. 그 자가 지난 겨울에 사람 한 명을 주웠다고 합니다. 다 죽어가는 채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걷기만 하던 사람을 우연히 주워 집으로 데려갔다고요. 제대로 먹이고 입히고 재워놓고. 봄이 되었을 때 쯤에야 다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어 두었는데······ 그 자가 어느 밤 갑작스레 사라진 뒤 얼마 후에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합니다."
살짝 미간을 찌푸린 플란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이 있고 그 자에게 내줬던 방을 정리하다가, 낯이 익은 듯 아닌 듯한 낙서가 벽에 새겨진 것을 봤다고 합니다."
"무슨 낙서."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던 사람이 지냈던 그 방에, 낙서처럼. 하얀 수리, 라는 말이 적혀있었다고. 그러더군요."
아는 이름이었다.
지난 르메인의 탄신 기념일 때. 체이스를 배반했던 새의 무리들을 이끌던 세작이 아니던가. 때문에 체이스가 건넨 독에 보고 듣고 말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이가 아니던가.
"푸른 솔새, 에일라의 세작명을 알고 있던 자라서. 혹시나 세작이 아니었을까, 그리 생각했나 봅니다. 그 길로 집을 불태우고 안전한 곳에 아내를 숨겨두고 이곳에 왔다 합니다. 혹시라도 하얀 수리를 죽인 이들이 자신에게 손을 뻗을까봐, 저에게 이야기를 전하려고요."
"······ 그래."
"그런데 라시드 브리센 남작이 저에게 재밌는 얘기를 했습니다. 보고 듣고 말하지 못하던 이를 죽였다고."
플란츠가 칼리안을 쳐다봤다.
칼리안의 시선은 이제야 껍질을 반쯤 벗겨낸 귤에 닿아 있었다.
"놈이 죽인 것이 하얀 수리가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맞다면, 놈이 왜 그곳에 갔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가려고요."
"그럼. 란델 형님은, 왜 굳이 여기로 불렀는데."
"브리센 후작의 아내가 누구였는지 형님 혹시 아십니까."
"알아."
"그것 때문에요. 에일라 편에 라시드 브리센에 대한 정보를 좀 알게 되었는데······ 그냥. 란델 형님께 여쭤 볼 것이 좀 있어서요."
칼리안이 이렇게만 말하는 것은 아직은 알려 줄 뜻이 없다는 의미였다. 무엇을 알았고 무엇을 물어 볼 것인지 묻는다면 아마도 대답을 해 주겠지만 플란츠는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란델과 관련된 일이라서가 아니라.
- 예를 보이렴.
한 번 만난 적 있던 그레이의 아내가 생각나서.
너무 어렸던 탓에, 반가운 마음에, 처음 만난 사촌 동생에게 악수를 청했던 라시드가 생각나서.
- 네 손이 향해야 할 곳은 왕자의 손이 아니란다. 바닥을 짚고, 무릎을 대고, 고개를 숙여야지. 너도 네 아비도 결국은 그 바닥에 무릎을 대고 머리를 숙여야 할 것이란다. 그러니 아이야. 이르다 여기지 말고, 어서. 예를 보이려무나.
그리고.
그것을 보게 된.
- 아니지······ 아직 배우지 못해 그리 하기가 어렵다면 네 어미가 먼저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좋겠구나. 어떻게 하라 알려주는 것이 좋겠니? 플란츠, 내 아가. 대답해주렴.
실리케의 다정한 목소리가 생각나서.
"······ 휘트린에는 아우님의 새 부하를 보내도 될 텐데."
칼리안도 아마 그것을 짐작했기 때문에 바로 입을 열지 않는 것일 테니 굳이 묻지 않기로 했다. 대신 본래 주고받던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에일라 다 나으려면 아직 좀 걸립니다. 마법사 협회장을 보내자니 너무 멀고, 협회의 다른 마법사들은······."
"위험할 것 같아서. 직접 가시는건가."
"······ 네."
"위험할 것 같다면서. 나까지 데리고 가겠다 하시는군."
"평소에는 위험할 것 알면서도 가셨잖습니까."
플란츠가 대답 없이 입을 꾹 다물었다.
흘깃 시선을 움직여 그 꼴을 잠깐 보던 칼리안이 소리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할 것 알면서 동생이 왕궁 밖에 나가 있으면······ 그놈의 완두콩이 또 어찌나 걱정을 할지. 인공호수 옆에 풀 안 나는 자리 생길 겁니다, 아마. 완두콩이 맨날 서있느라고."
푸념하듯 중얼거린 칼리안이 마지막 귤 껍질을 벗겨냈다.
인상을 찌푸린 플란츠가 무어라 대답을 전하기도 전에 칼리안의 말이 이어졌다.
"그 완두콩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형님은 아마 모르실 겁니다. 순식간에 자꾸 시들었다 파릇해졌다 하는데 좀 이상하게 크곤 있어도 시든 것보단 파릇파릇한 쪽이 나은 것 같아서요, 제가 볼 때는."
곧 칼리안이 둥근 귤을 반으로 나눴다.
속 시원한 소리가 난다.
"그러니 별 수 없지 않습니까. 데려가 형님 안 죽게 알아서 잘 살려드리면서 다녀와야지."
그 반쪽을 플란츠에게 건넨 칼리안이 플란츠를 쳐다봤다.
제 딴에는 생글생글 웃는다 여기는지 모르겠지만, 큼지막한 놈이 저렇게 웃어봐야 짜증만 난다.
그러니 거울이나 좀 가져다 줘야겠다고.
제 얼굴이나 제대로 보고 그렇게 웃으라 해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한 플란츠가 귤을 받았다. 그리고 나지막이 경고하듯 말했다.
"짖지, 또."
"네."
칼리안이 또 생글생글 웃었다.
얼굴이 어떻든 짖는 것은 똑같다는 말임을 알아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