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의 왕자로 사는 법-379화 (380/527)

제68장. 수면(1)

저녁.

왕세자 플란츠와 3왕자 칼리안이 출궁하였다.

밤.

나에랑샤 상공에서 마력탄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태 파악을 위해 발칸이 출궁하였다.

사고를 일으킨 왕궁 소속의 검사가 큰 부상을 입고 입궁하였다. 왕실의 법도를 어기고 해당 검사를 강제로 연행하려 한 수도 경비대가 왕궁으로 호송되었다.

왕세자 플란츠가 발칸과 함께 입궁하였다. 함께 입궁한 지그프리드의 소공작이 사건에 대해 상세히 보고 후 출궁하였다.

3왕자 칼리안이 입궁하지 않았다.

자정.

지그프리드 공작저 인근에서 3왕자가 마지막으로 목격되었음을 확인하였다. 관련하여 지그프리드 소공작을 다시 입궁하게 하였으나 3왕자의 행적은 확인하지 못하였다.

새벽.

비밀리에 출궁한 발칸의 마법사단이 수도 내부 수색을 시작하였다.

아침.

국왕 친위대 엘라자르가 브리센 후작저를 수색하기 시작하였다. 후작 그레이 브리센이 이를 항의하고자 입궁하였다.

국왕 르메인의 명에 의해, 체포된 수도 경비대원들을 모두 파면하고 수도에서 무기한 추방하였다. 수도 경비대장과 부대장 일부의 기사 작위를 박탈하고 지난 해 외성 수비대장에 임명된 트리번 피아트를 수도 경비대장으로 보직 변경하였다.

후작 그레이 브리센이 후작저 수색에 대한 항변 없이 귀가하였다.

낮.

저녁.

브리센 후작저 수색이 완료되었으나 3왕자의 행적은 발견하지 못하였다.

밤.

3왕자의 말이 홀로 왕궁에 돌아왔다. 이를 확인한 발칸의 군단장 앨런 마나실이 출궁하였다.

* * *

- 벌컥!

주인이 들지 않았으나 잠겨있지도 않은 문을 멋대로 열어젖혔다. 검은 방 안을 서성거리는 한 사람의 청회색 눈이 곧바로 내리꽂힌다. 그 눈에 날이 서는 것을 본 플란츠가, 레릭을 밖에 둔 채로 문을 닫았다.

왜 함께 오지 않았느냐고.

함께 나갔으면 같이 와야지 왜 혼자 자리를 떠나게 두었느냐고. 아무도 없이 혼자 돌아다니게 왜 그냥 보냈느냐고. 대체 왜 그랬느냐고.

플란츠 때문에 칼리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지만, 대신 닿아야 할 곳을 아직 알지 못할 원망의 빛이 그득하여서. 숨기지도 못해 얼굴에 가득 떠오른 그 말을 레릭이 보지 못하도록 문을 닫았다.

"······ 왜요."

"수정판. 꺼내."

체이스의 얼굴을 보며 지내라 수정판을 건네주었음에도, 칼리안은 체이스와 연결된 반지를 자신에게 돌려달라 했었다. 필요하다 하면 그 때마다 빌려드릴 테니 자신이 쓰겠다 했었다. 돌아다니며 체이스와 연락을 취하기에는 그것만한 게 없다 했었다. 그래서 건네줬고 지금 플란츠는 체이스와 곧바로 연락할 수단이 없었다.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이었다.

얀이 대답없이 플란츠를 쳐다봤다.

이 상황에 세크리티아의 국왕을 불러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눈으로 그렇게 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를 묻지 않은 채 칼리안의 금고 쪽으로 걸어갔다. 그 문을 열었다.

- 차르륵!

조심스레 꺼낼 것도 없다는 듯, 급히 움직인 얀의 손이 금고 속을 털어내듯 비워냈다. 동화는 물론 은화와 일반 금화조차 없는 커다란 금고 안에서 금화보다 두꺼운 플로린과 수표들이 우르르 빠져나왔다. 그것들을 대충 밀어 치운 얀이 손을 쑥 집어넣었다. 그런 얀을 지켜보던 플란츠가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금고. 그 안의 가장 깊은 곳.

손도 잘 닿지 않아 쉬이 꺼내지도 못할 곳. 수정판을 그런 곳에 두었었음을 알게 되어서.

목소리만 전해주던 반지와 팔찌는 아무렇지 않게 가지고 다니면서, 얼굴 보며 지내라 건네 준 수정판은 그런 곳에 그렇게. 꾹꾹 눌러담듯 숨겨두듯 그렇게 두고 지냈음을 알게 되어서.

"여기요."

오래지 않아 얀의 목소리가 곁에서 들려왔다. 그 손에 들린 익숙한 수정판을 받아 든 플란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몸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 괜찮을 테니까."

수정판을 내려다보던 얀이 플란츠를 쳐다봤다.

지금 내가 우리 왕자님 사라져서 잠이 부족하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 입에서 그런 말 듣는 꿈을 선 채로 꿀 정도는 아닌 것 같다는 얼굴이 됐다.

특별히 그런 얀을 신경써 줄 만큼 세심할 생각 없는 플란츠가 다시 저벅저벅, 칼리안의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방에 올라가 곧바로 수정판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화면이 밝아지는 듯 하더니 잠시 검게 변했다. 그리고 곧바로 누군가의 모습을 비춰냈다.

상대의 얼굴에 가득했던 반가움이 씻은 듯이 지워지고, 보랏빛 눈이 싸늘하게 굳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어깨에 감긴 붕대, 그리고 플란츠의 표정. 그것을 보자마자 숨 한 번을 쉴 시간보다도 짧은 순간에 상황을 짐작한 체이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기해요, 플란츠 왕세자. 무슨 일인지."

"연락. 혹시 없었습니까."

"······ 칼리안이 없어졌습니까."

"그렇습니다."

"없었습니다. 잠시만."

이렇게 말을 맺은 체이스가 다른 말 없이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분명 칼리안과 연결을 시도해보는 것일 터라서, 플란츠는 묵묵히 기다렸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체이스로부터의 답이 들렸다.

"대답 없습니다."

"알았어."

플란츠가 잠시 눈을 감았다.

체이스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서 입을 열었다.

"혹시 오면."

"무슨 상황이 있었는지. 플란츠 왕세자는 아는 바가 없습니까. 이젠 그 쪽에 내 새들도 없는 터라 지금 나는 정황 파악이 안 되어서."

"아니······ 갑자기. 없어져서. 칼리안의 말이 혼자 돌아왔는데. 칼리안은······ 아. 그 바닷가. 거기 혹시 갔는지. 갔을 수도 있어서. 거기 갔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만. 아마도 오지 않았을 겁니다. 플란츠 왕세자도 알겠지만 그럴 아이는 아니라서."

"······ 그래."

어느새 플란츠의 말이 내려간 것을 알았으나 그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체이스는 긴 한숨만 쉬고 말았다.

"일단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니었으면 하지만. 무슨 일이 없다면 그렇게 없어질 아이도 아니니까요. 만약 어떤 일이 있다면 알아서 그 곳으로 돌아갈테니······."

이렇게 말한 체이스가 가라앉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좀 쉬라고. 얘기를 하려 했는데. 그 말은 소용이 없겠고. 어쨌거나 연락이 오면 알려주겠습니다."

플란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은 얼굴을 채 지우지 못한 체이스가 먼저 통신을 끊었다.

칼리안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면 체이스 쪽에서 먼저 수정판으로 알려왔을 텐데. 괜히 먼저 연락해 걱정거리를 준 것일까. 잠시 후회를 하던 플란츠는 그런 후회와 수정판을 함께 내려놨다. 체이스도 똑같이 알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한동안 창 밖을 보던 플란츠가 어둠이 짙은 하늘을 올려다보다 잘 잠궈 두었던 셔츠 단추 하나를 풀었다. 그것으로도 충분치 않아 다시 눈을 꽉 감았다.

그러나 이내 더 견디지 못하고 방 밖으로 걸어나갔다.

* * *

벌써 아침이 되고 있다고, 그리 말했다.

공기가 차니 좀 들어가자, 그리 말했다.

"칼리안은."

그래서 물었다.

레릭이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기다리며 버릇처럼 얼굴을 살핀다.

"칼리안 왕자님은 아직 왕궁에 들지 않았습니다, 저하."

그 안에 이름이 섞여있음에, 습관처럼 긴 한숨을 쉰다.

"알았어."

답답하거나 짜증이 났기 때문이 아니라 조금 다른 의미의 한숨임을 알아보지 못할 레릭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저하. 돌아오신 뒤로 내내 이곳에 계셨습니다."

"알아."

"별 일 없을 겁니다. 어젯밤에 마나실 후작이 나섰다 하지 않습니까. 기사 베른 경이나 헤르츠 부군단장도 인근을 샅샅이 뒤지고 있고, 마법사 협회와 지그프리드 공작가에서도 찾아보고 있으니 곧 찾을 겁니다."

알겠다 대답하지 못했다.

그럴 것이다 말하지 못했다.

곧게 선 다리에 다시 한번 힘을 줬다.

체르밀 궁의 호숫가.

풀 소리와 바람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안 들리는 곳에서 밤을 새우고 잠시 안에 들었으나 견디지 못하여 다시 나와 또 하루를 보내고. 남은 두 아들을 찾아와 살피고 간 르메인의 말을 이기지 못해 식사를 하고. 그러나 그 방 안이 마치 깊은 바닷속이라도 되는 것처럼, 수면 밖으로 고개를 내밀듯 도로 뛰쳐나와 이 곳에 섰다.

밤을 보냈다.

"아직 모두 치료한 것이 아니니 따뜻하게 계시는 것이 좋다고, 베른 경도 그렇게 당부하고 갔습니다. 이만 들어가 쉬세요. 전하께서도 그리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레릭의 얼굴에 깊은 걱정이 든다.

그래. 걱정이 든다.

안다. 알고 있다. 알았는데.

모르지 않았는데. 왜.

"······ 괜찮아."

팔을, 손을.

다쳤었는데.

"그럼 모포라도 드리겠습니다. 의자를 가져다 드릴게요."

"레릭."

"네. 저하."

"혼자. 잠시만."

"계속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제 들어가셔서······."

"레릭."

"······ 알겠습니다."

조용히 대답한 레릭이 아주 천천히 걸어가는 소리가 멀어졌다. 바람이 풀잎을 흔들어대는 소리에 묻혀 사라져갔다. 그 소리에서 귀를 뗀 플란츠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사이 사이로 스민 바람에 일렁이는 호수를 바라봤다.

'사과하고 받을 일이 있다고, 저하께 가 봐야 한다며 돌아가겠다 했습니다. 그러니 저하와 싸운 일 때문에 왕자님이 왕궁에 들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더 걱정하시게 될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혹시나 저하의 탓으로 여기고 계실까 해서 전해드립니다.'

해가 뜬다.

바람 담긴 수면이 붉게 반짝이기 시작한다. 그것이 마치 그 어느 날 하늘로 올랐던 수많은 불꽃처럼 보여서, 눈부심을 잊고 한없이 지켜봤다.

그러나 결국 이기지 못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오래 감아두지 못하고 다시 눈을 떴다.

'죽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고. 언제까지고. 내가.'

다시 지켜봤다.

언제까지고 못박힌 듯 머물 것처럼, 그렇게.

- 저벅, 저벅.

발소리가 났다.

서로 다른 이유지만 레릭도, 칼리안도, 발소리를 내지 않는다. 똑똑한 머리는 이미 그것을 상기했으나 고개가 돌아간다. 연두색 눈에 실망이 반, 경계가 반 섞인 빛이 들어선다.

다시 호수 쪽으로 시선을 둘까 하다가 이미 눈이 마주쳤음을 뒤늦게 깨닫고 발소리 쪽을 향해 몸을 돌린다.

- 탁.

- ······ 저벅.

마찬가지로 플란츠를 발견한 이도 잠시 발을 멈췄다. 똑같은 고민을 한 듯 본래 가던 방향으로 발을 내려던 이가 방향을 바꾸고자 한 걸음을 살짝 움직였다. 그리고 멈추어 섰다.

그 만큼의 거리.

목소리는 들리겠으나 또렷한 표정이 보이지는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둔 채 서로를 향해 멈추어 만들어진 거리. 딱 그만큼의 거리감을 두고 마주봤다.

한 쪽은 동생이기 이전에 왕세자였고 한 쪽은 왕자이기 이전에 형이었던 탓에 그 누구도 서로를 향해 먼저 예를 보이지 않았다.

"의외로구나."

다만 대화에 있어서까지 세자 자리 앞세울 생각은 없는 이를 대신해, 동생보다 위치가 낮지 않음을 아는 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를 마주칠까 이곳으론 발도 들이지 않더니."

"제가 있는 것 모르지 않을 테니 안 오시리라 여겼습니다."

"하여 어제는 걸음하지 않았다."

란델의 시종 덴의 손에 정원 가위가 들려 있는 것이 보인다.

"······ 어제도 걸음하지 않으셨다 해야 맞는 것 아닙니까."

란델은 아직까지도 정원에 발을 들이지 않고 있었다. 자리에서 벗어나 비죽비죽 자라난 가지가 어느새 가득하다며, 그 장미 가지들을 대신 잘라드리면 형제 관계도 같이 잘려나가려나 하고 농담같은 말을 하던 놈 때문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리 따져 차이를 두면, 달라질 것이 있더냐."

"어제만 안 온 것이 아니라 어제까지도 오지 않았던 정원임을 상기하게 되면."

하필 칼리안이 사라진 지금 이제껏 들어서지 않던 정원에 왜 갑자기 발걸음을 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게 되지 않겠느냐고.

이렇게 말하려던 플란츠가 입을 다물었다.

동생에 대해 여전히 외면하는 란델의 고개를 억지로 돌려놓으려 하지 말라 했던 놈의 말이 생각 나서. 제 방식대로 칼리안을 도우려 하고 칼리안의 자리를 만들어주려 할 때마다 결국은 칼리안을 방해하고 상처만 헤집어놓게 되는 꼴이 반복되었던 탓에 이번에도 그리 될까봐 그냥 말을 멈추었다.

"······ 가보겠습니다."

또다시 숨이 막히는 기분이 되어 버린 플란츠가 발을 내딛었다. 호숫가에 앉으면 다시 일어나지 못할까봐, 못을 박아두듯 억지로 세워두었던 다리가 꺾이려는 것을 힘주어 다잡았다. 걸음을 옮겼다.

- 왕궁에 있다 해서 형님처럼 숨이 막히지는 않습니다. 저는 알아서 잘 도망가기도 하고······ 왕궁 안에도 숨이 트일 만한 곳 많지 않습니까.

숨 막히는 방 안 말고, 억지로 숨 쉬게 할 호숫가 말고, 좀 더 숨이 트일 만한 곳에 가려고. 그러니 레릭에게 에스티나를 좀 데려다 달라 해야겠노라고. 그런 생각을 하며 발을 움직이는데.

"괜한 수선을 그리 부려서야 되겠느냐."

란델이 자신의 발치에 닿은 플란츠의 그림자를 밟으며 입을 열었다.

"앉은 자리를 잊고 지내는 모습은 도무지 달라지질 않는구나. 이제껏 보고 배운 것이 그 뿐이라 달리 행동할 방법을 모르겠더냐."

이어진 말은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마주칠 때마다 들어 온 가시는 귓가를 스치지도 못했다. 대신 함께 들렸던 다른 말 한 마디가 머릿속을 파고든다.

다친 어깨를 덮어 둔 긴 가디건 속의 손 끝이 차게 식었다. 그 역시 흔들리지 않도록 꽉 붙들어 잡은 플란츠가 낮은 목소리를 냈다.

"······ 지금, 괜한 수선이라 하신 겁니까."

"다른 이들의 눈에는 괜한 것으로 보이지 않겠느냐."

"형님의 눈에도 그리 보이십니까. 그리 보이는 분께서 정원을 찾으신 겁니까."

호숫가를 향했던 란델의 시선이 플란츠에게 꽂혀들었다. 조금도 닮지 않은 형제의 연두색 눈을 힘주어 누르듯 응시했다.

"무의미한 질문을 하는구나."

긴 것인지 짧은 것인지 모를 한숨이 소리없이 새어나왔다. 욕설과 책망과 질책을 모두 담아 숨과 함께 내보낸 플란츠를 향해 란델의 말이 이어졌다.

"네 행동이 괜한 수선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느냐."

저벅.

플란츠의 발이 란델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저벅.

한 걸음을 더 다가섰다.

이제는 목소리도 들리고 얼굴에 올려진 표정까지 완연히 볼 수 있게 된 거리에서 잠시 멈춘 플란츠가 란델을 쳐다봤다. 숨통을 막으려 드는 짙푸른 눈을 무감하게 마주하면서, 고요한 목소리를 냈다.

"걱정하고 있는 겁니다. 이제껏 보고 배운 것이 그 뿐이라."

바람 떠안은 물같은 발소리가 란델을 지나쳤다. 제 자리에 서 있는 란델을 남겨두고 멀어져갔다.

* * *

졸음이 쏟아진다.

- 깜빡.

내가. 뭘······ 했더라.

드미레아.

그래. 드미레아를 만났지. 만나고 나와서.

나와서. 내가.

- 깜빡.

외팔이 검사를 봤는데.

낯이······ 익어서.

그래서. 내가. 누구였나, 생각하다가.

그래.

에일라.

라트란 영지. 그래. 그랬지. 그 곳에서 신물 훔치던 놈들 손에 놀아났던 놈. 나 공격했다 결국 팔이 잘린 놈. 그 놈. 노튼 라미레즈.

내 영지에서 잘 있어야 할 그 놈이 수상하게 돌아다니는 걸 봤는데.

그래서 그냥 지나쳤나. 아닌가.

쫓아갔었나.

어떻게······ 했더라.

- ······ 깜빡.

쫓아갔던 것 같네. 내가.

몰래 따라갔는데.

······ 그 뒤에 뭘 했더라.

향기. 그래.

향기가 났고.

- 깜빡······ 깜빡.

향기.

향기가 나서. 그걸 맡아서.

레이븐. 레이븐이 멈춰섰는데. 레이븐이 발을 멈추더니 갑자기 무릎을······ 꿇었는데. 눈을 꿈뻑이다가 레이븐이.

- 깜빡.

정신이 다른 데 팔려 있어서. 내가.

레이븐이 잠이 든 것 같아서······ 그래서 내가. 화가 나서.

그러다. 내가.

"음? 또 깼어? 아니야. 깨지 마."

저 여자.

그래.

"너 일어나면 나 골치아파.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안 끝났어. 좀만 더 자."

저 여자가 앞을 가로막아서.

그러다 향기가 또 나서. 그걸 맡으니 졸음이 와서. 내가.

"[슬립]."

돌아가느라.

정신이 다른 데 팔려 있어서.

그러다 저 여자.

"슬립······."

저 여자. 그래.

아델리아를 만나게 되어서.

"같은 소리 하네."

······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 콰아아앙!

감히.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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