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의 왕자로 사는 법-377화 (378/527)

제67장. 향기(3)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다.

"브리지트 경이 옥상에서 뚝 떨어지는 것을 어디선가 나타난 우리 왕자님께서 받아내셨다 했고, 우리 왕자님께서 브리지트 경을 한 번 더 죽일 것처럼 조치를 하셨고······ 아 그건 나도 대충 알 것 같네. 겪어봤거든. 그 솜씨가 어찌나 야무지신지. 하여간 그때 우리 왕자님께서 매 주신 것을 우리 집에 아주 잘 보관······ 아니. 그건 됐고."

내 앞에 서 있는 놈이 내 상관이 진짜 맞긴 한지 모르겠다는 눈이 된 니들렌에게서 은근슬쩍 시선을 뗀 아르센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뒤에 오신 지그프리드 소공작께서 수도 경비대를 막아설 때 쯤. 대체 언제까지, 아니. 말 실수니 귀에 담지 말게. 어쨌거나 왕세자이신 부군단장께서 도착해서 수도 경비대를 이겨주셨고······ 그럼 수도 경비대 그 놈들이 저기 잡혀있는 저 놈들인가?"

"네, 부군단장님."

"그래. 아무튼 그러고 나서 왕세자이신 부군단장께서 자네한테 향수를 사셨다고."

"네. 맞습니다."

"얼마에?"

"네?"

"아. 아니야. 그냥 궁금했네."

향수를 사지 말고 사재기를 하라는 것인지 의심될 만큼의 돈을 주시려 하기에, 향수 시장의 투명하고 원활한 거래체계 유지를 위해 그냥 나중에 혹시나 단원들 혼낼 일 생기면 한 번만 감해달라 하는 것으로 거래 끝냈다는 말을 그냥 삼킨 니들렌이 고개만 끄덕였다.

"아무튼 그러고 나서 내가 도착한 것이군."

"네. 부군단장님."

이 곳에 왔던 이들 중 절반을 이끌고 왕궁에 돌아간 에일라와 히나를 떠올린 아르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잠시 옥상 쪽을 바라봤다.

곁에 있던 니들렌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아르센을 향해 물었다.

"올라가서 지원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싸우는 소리가 큽니다."

"자네 혹시 우리 왕자님께서 직접 싸우시는 것 본 적 있나?"

"네. 3왕자님께서 시오나 힐과 맞붙으신 것을 본 적 있습니다."

"어떻던가?"

"무섭던데요."

"나는 아니었네."

"안 무서우셨습니까?"

"아니. 죽을 것 같았네."

"아······ 네."

"아무튼 안 올라가도 될 것 같네. 여기나 잘 지키고 있게."

"괜찮겠습니까?"

걱정 가득한 니들렌의 질문에, 아르센이 물끄러미 고개를 돌려 니들렌을 쳐다봤다.

"향수 사셨다며?"

"네."

"산 것을 그냥 두진 않았을 테니 잔뜩 뿌리셨을 것 아닌가?"

"······ 뿌리셨다기보단. 들이부으셨습니다."

"그렇겠지. 여하간 그랬으면 그냥 두고 지그프리드 기사들이랑 같이 사이좋게 잘 지키고 있게. 저 수비대 놈들 어디 안 가게 눈 부릅뜨고. 이따 왕궁으로 같이 데려가야 하니까."

별 것 아니라는 듯 이야기 한 아르센이 한 발을 옮겼다. 그러자 니들렌이 아르센 쪽으로 한 발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어디 가십니까?"

"뒤에 가네."

"건물 뒤요?"

"그래."

"거긴 왜 가십니까?"

"자네도 우리 왕자님 싸우시는 것 봤다면서?"

"네."

"애초에 지난 번에 자네들 술 퍼먹고 가게 부쉈을 때에도 우리 왕자님 살기 잔뜩 맞아봤지 않나?"

"그랬죠."

"그럼 지금 저 살기가 우리 왕자님 것인지 아닌지는 알아봐야지."

"3왕자님 것 아닌 건 저도 압니다."

"그래서 뒤로 가네."

"······ 부군단장님 지금 부군단장님 닮아가십니까?"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수수께끼같은 말만 해대니 하는 소리였다.

이게 무슨 내 스승님 욕 드시는 소리냐는 얼굴이 된, 정확히는 엄청나게 불명예스러운 말을 들었다는 얼굴이 된 아르센이 미간을 찌푸렸다.

"왕세자이신 부군단장님께서 향수 들이붓고 올라가신 뒤에 위에서 싸움 난 거면, 위에 있는 저 놈이 칼 들고 살기 뿜게 만든 분이 바로 왕세자이신 부군단장님이라는 소리라네. 그분께 사람 인성 바꿔놓게 하는 재주가 좀 있으시거든. 아무튼 그랬다는 건 일부러 싸움을 일으켰단 소리인데, 수도 한가운데에서 우리 왕자님이 사람 잡으실 분인가? 협회장님도 아니고. 아니지. 이 말도 잊어버리게."

"네. 그래야 될 것 같네요."

"고맙네. 여하간 일부러 일으킨 싸움에 우리 왕자님이 안 잡고 놓쳐주는 놈은 뭐가됐든 뒤가 구린 놈일 테니 내가 좀 잡아드려야 하지 않겠느냐 이 말이네. 그러니 자네는 여기에서 저 놈들 지키고 있고 지그프리드 소공작님이나 기사들과 안면도 좀 터놓고 있게. 다른 사람들 눈에 발칸이랑 지그프리드랑 친한 것처럼 보이게끔. 알겠나?"

"······ 네."

고개를 끄덕인 아르센이 또 한 발을 옮겼다. 그러다 다시 또 발을 멈추고 니들렌을 쳐다봤다.

"아, 그리고."

"네?"

"자네 요즘 왕세자이신 부군단장님 주변에 자주 가던데."

"네, 헤르츠 부군단장님 일 돕느라고요."

"······ 그래. 내 일 돕느라고."

"네."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자네 혹시 왕세자이신 부군단장님께 향수 판 돈으로 새 향수 살 거면, 꽃 향수는 사지 말게."

"왜 그러십니까?"

"묻지 말고."

"네."

"자몽 향도 사지 말게. 그건 인생 내리막길 가는 지름길이야."

"······ 왜요."

"바쁘니까 설명은 나중에 해 주겠네. 아무튼 가겠네."

그것을 보았을지 아닐지는 몰라도 아르센은 언제나와 같은 걸음걸이로 휘적휘적, 건물 뒤를 향해 움직였다.

그 발 끝이 달 그림자 속에 닿았을 때 쯤.

아르센의 발 끝이 사라졌다. 그러더니 발목이, 종아리가, 어깨가, 그리고 끝에는 그 새파란 머리까지 전부 다 지워지듯 사라졌다.

그렇게 투명하게 몸을 가린 아르센은, 오래지 않아 이 쪽으로 뛰어내릴 '뒤 구린 놈'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 * *

이유가 있었다.

그레이를 그저 계속 참기만 하였다. 무슨 가시를 내뱉든 어떤 모욕을 건네든 전부 다 받으며 참아냈다. 동생의 손으로 그 말을 갚아주었다 하나 그마저도 완전한 되갚음이 될 순 없었다. 결국 그저 참았다. 지금은 그래야 함을 이해했으니까.

그러나 라시드의 것마저 참을 수는 없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동생에게 또 걸림돌이 되는 일에 이 이상 익숙해지는 것이 싫어 참지 않았다. 이제는 그래도 됨을 알았으니까.

그래서 할 말이 많았다.

이유가 있었다고. 네가 대신 화를 내느라 못 붙든 것을, 놈들을 눌러놓을 수 있을 약점을 직접 꺼내놓게 할 필요가 있었다고.

이미 많은 것을 확인해봤으니 무모한 것이 아니었다고. 곁에 있던 놈이 누구인지도 봤고 그 놈 심장에 뭐가 들었는지도 알았고 뭘 꺼려하는 놈인지도 알고 무력이 어느정도인지도 가늠했다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니들렌과 아르센을 보내지 않고 그냥 두었다고.

그렇게나 할 말이 많았다.

설명도 하고 설득도 하고 변명도 하고.

나 방금 욕 먹은 건 둘째치고 내가 지금 '야' 라는 호칭을 태어나 처음 들었는데 그걸 두고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이었다 치기에는 하필 그게 동생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사실이 문제가 좀 되는 것 같지 않느냐고. 아무래도 그것까지 편견 없이 듣기에는 어처구니가 좀 없어서 그러는데 아무튼 지금 너 엄청 버릇없다고.

그나저나 너나 나나 똑같은 건 아느냐고. 나한테 화내는 너는 네 목숨 안 걸어놓고 사는 줄 아느냐고.

그런 말도 해야 했다.

하지만.

"똑똑하신 그 머리로 따져보고 계산했겠지. 히나랑 같이 왔으니 저 새끼 수상하다, 곧바로 알았겠지. 저 새끼 살살 긁어서 밑바닥 보이게 하면 그거 잡아 휘두르면 되겠구나. 했겠지."

버릇없는 꼴 도무지 더는 못 봐주겠다 화도 내고. 나보다 셀 뿐이지 너도 결국 나랑 똑같다 면박도 주고.

그렇게 말하려 했지만.

"에일라 반 죽여놓은 새끼가 소드마스터였으면 내가 그냥 이 놈 미쳤으니까 오지 마라 말하진 않았을 테니 그걸 따져봤든. 아니면 여기 오는 동안 뭘 또 확인했든. 놈 실력이 에일라와 나 사이 어느 정도는 되겠거니, 어떻게든 잘 알아냈겠지. 발칸도 있으니 괜찮겠거니, 그렇게 계산했겠지. 그랬으니 그랬겠지. 어련하셨을까."

머릿속을 반쯤 들여다 본 듯한 동생 놈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그것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고스란히 사라져버렸다.

눈앞이 캄캄해질 만큼 풍겨오는 피냄새 때문에, 그 속에 섞인 향기 때문에, 다른 무슨 말을 꺼내야 하는지 떠올리질 못했다.

"심장을 내놓던 목을 내놓던. 그 새끼 숨은 실력까지 그 똑똑한 머리로 싹 다 알아내면 되니까. 너무 똑똑해서 다섯 수든 열 수든 훤히 내다보며 체스 두듯이. 그렇게 하면 되니까. 전부 다, 형님 생각대로 잘 돌아갈 테니까."

- 뚝, 뚝, 뚝.

그새 뭘 하다 그랬는지 몰라도 살점이 깊이 패인 자리 위에 한 번을 더 베인 상처에서, 대체 얼마나 힘을 줬는지 왕족의 몸에 흠이 갈까 뭉툭하게 만들어내는 셔츠 핀이 깊숙이 박혀버린 상처에서, 붉고 무른 것이 뚝뚝 흘렀다.

그러니 그만 이 손부터 놓으라 해야 할지.

아니면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물어야 할지.

계속하여 생각을 해봐도 정답이 나오질 않아서 가만히 있었다.

"내가 어련히 알아서 살려드릴까······ 그것도 믿었겠지. 그 새끼 화 나면 형님이 다 막진 못해도 형님 동생이 알아서 해결해 줄 테니까 괜찮겠거니. 했겠지. 한 치도 의심 않고 그렇게 믿었으니 그랬겠지."

플란츠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피가 흥건히 묻은 손을 쳐다봤다. 그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래."

그리고 입을 움직였다.

"어차피 잘 막아주실 텐데. 어련히 잘 살려주실 텐데. 내 아우님께서."

화가 난 것은 알았으나.

또 돌아버렸다는 것은 아주 잘 알았으나.

"내가. 죽겠다는 것도 아니고, 살기 싫다는 것도 아니고. 내 아우님까지 위험해질 자리가 아닌 것을 아는데. 툭하면 실드부터 둘러주시는 참 강하신 내 아우님께서 그냥 두고 보지도 않을 테니 나도 안 죽을 테지. 그렇다면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 아닌가. 그래서 그랬는데. 왜."

왜, 인지. 왜 화를 내는지.

칼리안이 여전히 내 동생인 채로 왜 이렇게 돌아버렸는지.

여전히 그 이유를 알지 못하여.

"······ 아. 죽겠다는 것도 아니고 살기 싫다는 것도 아니었구나. 그랬는데 형님 목을 형님 스스로도 아니고 나한테 냅다 맡기셨구나."

냉소 가득한 목소리가 들린다.

"혹시라도 그 새끼 말고 다른 누가 이 자리에 더 숨어있을 수 있든 없든. 그 새끼 검을 내가 놓칠 일이 벌어지든 아니든. 그 새끼 머리가 돌아버려서 나는 안중에도 없고 형님한테만 달려들든 말든. 그런 건 계산할 필요가 없는 거지. 눈에 보이는 것만 알아내면 되니까. 머릿속으로 따져 본 그게 전부니까. 어차피 아무것도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을 테니까. 예외 따위 아무것도 없이 그렇게. 따져 본 대로 그렇게.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게 돌아가겠지. 혹여 안 돌아가더라도. 그렇게 안 되더라도."

플란츠의 멱살을 쥐지 않은 손이 움직였다.

흰 손가락 하나가 플란츠의 어깨 뼈를 꾹 눌렀다. 아무렇지 않은 듯 잘 다물려 있던 플란츠의 입에 힘이 꽉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그래.

아주 잘 보인다.

"그 새끼 검 몇 번 막아내고 형님 어깨 나갈 일은 절대로 안 일어나겠지. 그 새끼가 형님 근처에 오도록 그냥 놔두지 않을 테니까, 내가. 문제 될 건 없겠지."

칼리안이 멱살 쥔 손에 더 힘을 줬다.

사일런트 따위는 쓰지 않았다. 소리를 높이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낮췄다.

속삭임에 가까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렴. 어련히, 알아서, 살려드릴까······ 형님을. 내가."

꾸우욱.

플란츠의 어깨 위에 살짝 닿은 손 끝에 다시 한 번 힘이 들어간다.

아프다.

"그런데. 나를 그렇게 믿으면서. 무조건 형님 앞에 실드부터 둘러지는 건 왜 싫다 하십니까. 강보에 싸인 어린애 취급하는 건 왜 짜증난다 하십니까. 지금 그거 엄청 모순되는 일인 건 모르십니까. 똑똑한 머리로도 그런 생각은 안 해봤습니까."

플란츠는 대답하지 않았다.

칼리안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게 싫고 짜증나면. 무조건 보호부터 받는 기분이 개 같으면. 나한테 형님 목숨 맡겨놓지 말고, 검 잘 써서 강해지겠다 하지도 말고. 겁 먹는 법부터 배우십시오. 진짜 무서운 게 뭔지 생각을 해보십시오. 상대방도 한 명, 나도 한 명, 그러니까 형님도 한 명. 다 똑같이 공평하게 한 명씩 따져서 셈하는 그딴 숫자놀이 때려치고. 혹시나 일이 잘못되면 어떻게 될지, 다치게 될지, 죽게 될지, 그것이나 먼저 걱정하시라는 겁니다."

낮은 으르렁거림같은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겁을 먹고 생각을 하십시오. 계산하지 말고. 다친 게 이 정도면 죽을 때에는 어느 정도로 아플지, 대체 얼마나 무서울지······ 그걸 생각해보면 나한테 목숨 맡겨놓고 그렇게 태평하게 못 굴 테니까. 그럼 나도 무턱대고 형님 앞 막아서는 짓 안 할 테니까."

그래.

틀린 말 아니었다. 칼리안의 말은 언제나 맞았다.

모순인게 맞다. 실드 안에 가둬지고 등 뒤에 세워지는 게 싫으면서, 동생 지키는 형 노릇을 하겠다 나선 와중에도 결국 칼리안의 무력을 보루로 삼고 있던 것임을 안다. 그렇게 싫던 향기를 온 몸에 두르고 라시드 앞에 나선 뒤에도 결국 라시드의 칼은 칼리안이 막겠거니 했던 것임을 안다. 모순이 맞다.

"생각했는데."

하지만 틀린 말이었다.

"생각했어. 겁나는 것 있어. 나도."

"생각을 하고 겁을 먹었는데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겁니까."

"그래."

플란츠가 칼리안을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생각에 겁을 먹고 그랬는지.

그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러는 거라고."

"······ 하."

그것을 칼리안이 굳이 알아들었다.

툭, 하고.

고장나버린 셔츠 핀이 바닥에 떨어졌다.

어긋난 어깨 사이를 파고들듯 눌러내리던 손가락이 떨어졌다. 멱살을 쥐고 있던 손이 풀렸다.

"살겠다 했고 죽고싶지도 않다면서. 심장을 걸고, 목을 내걸고. 제가 앞에서 막아주는 걸 당연한 일인 양 계산에 넣어가면서. 그렇게 철썩같이 저를 믿으면서. 형님 바라는 대로 그렇게······ 제가. 언제까지고 계속 막아 줄 거라고. 믿으면. 그렇게 한 점 의심없이 저를 믿으면. 그게 거슬려서라도 제가 계속 막아 줄 것 같습니까."

붉은 눈이 연두색 눈을 노려봤다.

전부 다 헤집고 도려낼 듯이 노려봤다.

"벼랑 끝에 세워 놓은 어린애처럼 그렇게 굴면. 제가. 형님 옆에서 장난이나 치다가, 밥 좀 먹으라 잔소리나 하다가, 열심히 꽃 냄새 치워주다가, 필요하면 살려줘 가면서 계속 그렇게 있을 것 같습니까. 그게 쉬운 일 같습니까. 그렇게 될 것 같습니까."

"······ 그만하지."

"형님이 계산한대로, 제가 마음만 먹으면 되는 일 같죠, 그게."

"그만하라고. 했는데."

"제가. 언제까지고. 계속."

"야."

"죽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고. 언제까지고. 내가."

할 말이 없었다.

할 말이 딱히 생각나질 않아서.

말 안 했다.

- 퍼억!

칼리안의 고개가 확 꺾여들었다. 휘두른 팔을 제 자리로 돌려놓던 플란츠가 제 입 속을 꽉 깨물었다.

플란츠는 말할 수 있었으나 하지 않았고.

칼리안은 피할 수 있었으나 그냥 맞았다.

반말 뱉은 값인 셈 치고 그냥 맞았다.

"동생 또 잃어버리는 게 그렇게 겁나면."

다만 그 값으로 치기엔 생각보다 좀 더 아파서, 맞은 김에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 형님 또 잃어버릴까봐 전전긍긍하는 동생 새끼 생각도 좀 해보시죠. 그것도 혹시 이미 생각했던 건 아닐 테니까. 생각했었는데 알고도 이딴 짓 계속 했을 놈 아닌 건 아니까. 그딴 새끼 동생한다고 이 고생 할 사람 아니니까. 나도."

고개가 돌아가도록 얻어맞고 입술 터진 놈이 기어코 한 번을 더 짖었다. 그리고 탈골된 어깨 신경 안 쓰고 기어코 주먹질했던 놈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 휙. 혼자 내려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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