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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의 왕자로 사는 법-342화 (343/527)

제60장. 가능하다면, 꿈은(7)

우스운 짓.

베른은 그것을 우스운 짓이라 여겼다.

'왜 그리 독한 것을 알려 하나.'

'필요해서요.'

'어디에 필요한지를 묻는 것이다.'

'사람 빨리 죽이는 방법 궁금해하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사람 빨리 죽이려고 묻는 겁니다.'

'네가 저기에 있는 기사들과 위치를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 하는 말이다.'

'세크리티아의 2왕자입니다. 정확히 압니다. 내 손으로 사람 죽일 일 없어야 할 위치인 것도 잘 압니다. 함부로 칼 휘두르면 안되는 것도 모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버지한테 칼 대려고 묻는 것 아닙니다. 그러니 알려주십시오, 스승님. 필요합니다.'

사자가 토끼 한 마리 물어죽이면서 아프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만큼 우스운 짓이 또 있을까. 그러나 그 우스운 짓을 베른이 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언젠가 필요성을 느꼈고 언젠가 배웠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그렇게 검을 썼다. 가능한 빠르게, 가능한 한 번에.

테일란은 독하다 했던 것.

상대를 두 번 보지 않는 검술. 단번에 상대의 숨통을 끊어내는 그 빠른 검술을 두고 누군가는 효율적이라 했고 누군가는 잔인하다 했다. 어떻게 말하든 베른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 어떤 수식을 가져다 붙이든 상관없이 그저 사람을 죽이는 기술일진대 무슨 평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베른은 그것을 우습다 여기는 것 외에 달리 평하지 않은 채 늘 그렇게 검을 썼다.

- 콰아앙! 콰앙!

그것이 어느새 버릇이 되었다.

나락에서 살다 한 번을 죽고 다시 살아나 생을 사는 지금까지도.

그랬는데.

지금 칼리안은 그 버릇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땅 속 어디에 어머니 나무가 있는지 알 수 없었으니 평소였다면 분명 그것부터 확인했을 것이다. 과연 이곳에 있기는 한지, 어떻게 생긴 것이 어머니 나무의 뿌리인지조차 모르는 채로 힘을 쓰지는 않았을 터였다. 어머니 나무에게 검을 대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손해를 보는지 이득을 보는지. 가능성은 있는지. 그것 역시 가늠해보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뒤에야 검을 휘둘렀을 것이다. 가능한 빠르게, 가능한 한 번에.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따져보지 않은 채 검을 쓰고 있었다.

'왕자님 탓이 아닙니다.'

'그럼 누구 탓인데.'

'데블란의 탓입니다.'

'키리에. 그건 궤변이야.'

'거짓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제 말이 궤변이라면 왕자님께서 쓰시는 그 검도 탓하십시오. 결국 그들의 생명을 가른 것은 왕자님이 아니라 왕자님께서 휘두르신 검이 아닙니까.'

'억지 부릴 거면 그냥 술이나 마셔. 술잔 앞에서 말 많이 하는 거 아니랬어, 아리안느가.'

'억지 아닙니다.'

'키리에. 형님 목숨과 그들의 목숨을 저울질한 건 나야. 내 검이 아니라.'

'왕자님은 왕세자님 목숨을 지킨 것이고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목숨을 지키지 못한 겁니다. 만약 저였다면, 그것으로 제 동생을 구할 수 있다 했다면, 백 명이든 천 명이든 고민 않고 죽였을 겁니다. 누구나가 다 소중한 생명이라는 그 말이야말로 궤변이 아닙니까. 저에게는 얼굴 모르는 천 명의 목숨보다 제 동생이 더 소중했습니다. 그건 당연한 겁니다. 잘못은 왕자님이 아니라 데블란이 했습니다. 왕자님의 검에 아무런 잘못이 없듯이 말입니다.'

'너는 나한테 너무 후해. 키리에. 아리안느나 에일라였다면 절대 그렇게 말 안했을 걸.'

'적어도 린 영애라면 저와 똑같이 말했을 겁니다.'

- 콰아아아앙!

버릇을 잊어버리고 늘 억눌러오던 것들을 죄 풀어버렸다. 다음 적을 대비해 늘 아껴두던 오러를 풀고 마력을 전부 다 끌어모았다. 그저 오러를 담고 있다는 것만으로 버거움을 느끼는 몸이 아니던가. 때문에 아직 모두 자라지도 않은 몸에 더 큰 무리가 갈까 조금씩 내어 쓰던 힘을 전부 끌어모았다.

'왕자님은 왕자님께 너무 박하십니다.'

'후한거지, 이 정도면. 나도.'

'세상 모든 죄를 끌어안고 있으면서 후하다는 말이 나옵니까.'

'살고 있잖아. 그러니까 후한거야.'

'숨을 쉰다 하여 그것을 무조건 살고 있다 하지는 않습니다.'

어머니 나무의 뿌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있는지, 공격이 통할지, 방어할 수 있을지.

······ 버틸 수 있을지.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았다.

살겠다던 놈 살리려고.

'심장이 뛰고 목숨이 이어진다 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는 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의외인데. 네가 그런 말도 할 줄 아는지 몰랐네.'

'제가 한 말이 아니니까요.'

'그럼.'

'······ 동생이. 동생이 언젠가 그런 말을 했었습니다. 그저 살기만 하는 것이 사는 게 아니라고. 그런 건 사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닌 건가.'

'네. 아닙니다.'

'그래. 동생이 좋은 말을 해줬네.'

그래. 사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살리는 것이 그저 숨만 붙여두면 되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이제는 안다.

'그래서 저는 제대로 잘 살 겁니다. 그러니까 왕자님도 사십시오. 왕세자님만 살리지 말고 왕자님도 사십시오.'

'······ 나는.'

그러니 살리려 한 것이 플란츠인지.

숨만 쉬는 것 말고 살기 시작한 것이 플란츠인지. 그렇게 살라 하나하나 가르치고 있는 것이 플란츠인지. 단지 플란츠 하나가 맞는지. 플란츠를 살려내어 살게 된 것이 플란츠인지. 제가 만든 나락에 빠진 것이 플란츠인지. 그 속에서 꺼내고자 하는 것이 플란츠인지.

'나는······ 글쎄.'

그 모든 이가 플란츠가 맞았는지.

단지 플란츠가 맞았는지.

그걸 모르는 채로 살려놨다.

모르는 척, 기어코 살려놨고 결국 살려놨다.

그것이 일순간 무의미로 돌아간 것에 화가 나서. 그것을 일순간 무의미하게 되돌려버린 것을 참지 못해서. 협상 먼저, 협박은 그 다음에. 그딴 것도 다 집어치운 채로 공격을 했다.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를 대지를 향해 검을 내리꽂았다.

잠시 숨을 돌린 칼리안이 다시 한 번 힘을 끌어올렸다.

아니. 끌어올리려 했다.

"······!"

갑작스레 칼리안의 허리가 크게 휘었다.

울컥 치밀어오르는 핏덩이를 더는 되삼키지 못하고 땅에 쏟았다. 토해냈다.

"어쩌나. 피 냄새 맡고 또 삶아지겠네."

한 바닥 피를 흘린 입에서 느릿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목소리를 들었던지, 어머니 나무의 말이 다시 들렸다.

"고작 꿈 한 번을 두고 목숨을 거느냐."

"사는 놈 죽이겠다는데 그 정도를 못 겁니까."

"너는 나를 상대하지 못한다. 무리한 일이다."

"유리한 것 속에서 살았던 적 없습니다."

"무모한 짓이다."

"죽을 생각 없이 살았던 적 없습니다."

땅을 부수고 용암을 끌어내는 마법은 못 쓴다.

하늘에서 벼락을 떨구는 마법도, 별의 파편을 잡아다 던지는 마법도 못 쓴다. 칼리안은 그런 것은 할 줄 모른다. 그래도 검은 좀 잘 쓴다. 누구보다 예리한 바람을 담아 쓸 줄은 안다.

그래서 검을 또 들었다. 바람을 담았다.

- ······ 우뚝!

그렇게 내리꽂던 검 끝에 비로소 무언가가 걸려들었다. 순간적으로 모든 공격을 멈춘 칼리안이 잠시 눈을 감고 주변을 살폈다. 곧 칼리안의 입꼬리가 긴 호선을 그렸다.

실체화 된 나무 뿌리가 아니었으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고작 꿈이라 했습니까. 그건 꿈 따위가 아니라 상처입니다."

보호의 기운이 가득 담긴 강인한 막이 일순 거두어졌다.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주저없이 베어냈다.

칼리안이 나무를, 베었다.

- 쿠구구궁······!

지진이 인다.

칼리안이 웃는다.

땅이 갈라진다.

마을의 한가운데, 땅 속 깊은 곳. 예리한 상처 속에서 뭉클거리며 요동치는 투명한 무언가가 보였다. 오러의 힘에 잘려나가고 바람의 힘에 헤집어진 채 검붉은 빛을 흩뿌리는 무언가가 분명한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칼리안이 웃었다.

"잘린 곳을 떠올릴 때마다 지금 내 말이 같이 들릴 겁니다. 시간이 지나 흔적이 다 없어져도 생각 날 겁니다. 꼭 피가 흘러야 상처인 것은 아니니까."

봄꽃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아플 겁니다. 당신도. 낫지도 않을 겁니다. 내가 죽고 내 스승님이 죽고 또 누군가 계속 죽을 때까지 안 나을 겁니다. 당신 죽을 때까지, 당신 죽은 뒤에도. 생각 날 테니까. 계속."

잘라낸 것이 손톱만큼인지 팔 하나 만큼인지 마을 하나 만큼인지 확인조차 하지 않고 웃었다. 말간 꽃처럼 웃었다.

- 두근!

심장이 움직였다.

맹세의 인 말고, 축복의 힘이 움직였다. 몸이 이기지 못할 힘을 모조리 끌어낸 탓에 결국 조각난 것들을 계속 밀어올렸다.

"순응하지 말라던 것은 이런 일을 이름이 아니었다. 현명하지 못하구나."

"돌은 새끼인 줄 모르고 건드렸습니까. 미래 잘 보시는 분이."

"이 땅이 아니었다면. 나는 너를 배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몸이 아니었다면, 당신을 이미 땔감으로 썼을 겁니다."

"한 마디를 지지 않는구나. 어리석게도."

"지는 것 싫어합니다. 너무 잘나서."

- 우우웅!

현저히 줄어든 수의 검을 다시 만들었다.

현저히 늘어난 양의 피를 다시 토해냈다.

신경쓰지 않았다.

"그만."

질려버렸는지.

아니면 잘린 곳이 아팠는지. 상처가 되었는지.

"열겠다."

결국 다누로부터 듣고자 했던 대답이 나왔다.

칼리안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시야가 바뀌었다.

익숙한 풍경이 칼리안의 눈에 담겼다.

멈춰버린 세상을 보여주겠노라 하더니, 멈추기까지의 시간이 먼저 펼쳐지고 있었다. 참으로 친절하게도. 실로 욕지거리가 나올 만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을 두고 꺼내놓아도 시원치 않을 험한 말들을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이것저것 잘 배우는 기특한 완두콩이 듣고 배울까봐서. 다누를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런 이유 때문에 웬만해선 욕은 더 안 하기로 했다. 대신 진득한 피를 한 번 더 욕지거리처럼 토해냈다.

그 뒤에는, 하도 놀려댔더니 정말로 완두콩이 된 줄 아는 것인지 동글동글한 모양새로 쪼그려 앉아있는 형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갔다. 밍기적거리지 않겠다 했으니까.

"돌아가죠."

그리고 불러냈다.

제 등 뒤에 누가 있는지, 그 위에 무엇이 올려져 있는지, 그것을 올려 둔 이가 어디로 가는지. 그 뒤엔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서.

"안 늦은 것 같은데. 혹시 늦었습니까."

"······ 조금."

"그럼 됐습니다."

아무튼 완두콩은 아직 안 시들었지 않나. 그럼 된 일이다.

세상이 다시 바뀐다.

발 밑을 채우던 자갈이 사라지고 새하얀 얼음이 든다. 사방에 흩날리던 재 대신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그래도 실드 하나 쳐 줄 수는 있을 것 같아서 마력을 움직이려던 칼리안이 튕기려던 손가락을 도로 내렸다. 안 그래도 지금까지 나무 구덩이 속에 갇혀있었는데 또 막아놓으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한 채 그냥 발을 옮기며 입만 열었다.

"사냥 내기는 못 하겠습니다."

플란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이긴 걸로 하죠."

"왜."

"저는 어머니 나무 뿌리 잘랐는데요."

"나는."

"형님은 아무것도 안 잡으셨잖습니까."

"돼지 잡았는데."

"닭이랑 돼지는 빼기로 했던 것 기억 안나십니까. 똑똑하신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가끔 까먹기도 하시나보네요."

"잘 짖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진짜 짖기만 하네."

"새삼스러운 말씀을 하십니까."

방금 본 것도 정말 다 까먹을 것처럼 짜증이 난 플란츠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짖는 소리에 대해 사람 말을 건넸다.

"돼지 아니면. 나무는."

"돼지는 빼기로 했지만 나무는 빼기로 안했습니다."

"······ 나무가 언제부터."

"사람 가두고 말도 하는데 그 정도면 땔감 아니라 사냥감 아닙니까."

할 말 많은 얼굴이 된 플란츠가 사냥감의 정의를 새로 내리는 동생 놈을 쳐다봤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목에서 올라오던 것을 되삼킨 칼리안이 생글생글 웃었다. 아직 엘프 마을에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알았어."

형이 돼가지고 동생한테 이겨먹으려 들면 안 되니까. 결국은 순한 플란츠가 져 주기로 했다.

"보통 그런 말 들으면 그게 말이 되냐 따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왜 그냥 알았다고 하십니까."

"했잖아."

"더 하셔야죠."

"그렇게 정했다며."

"그래도요. 말이 안 되는 말을 들으셨으면 우기기도 하고 화도 내야죠."

"어쩌라고. 그래서."

"아무튼 다른 데서는 형님 몫도 좀 챙기시라는 겁니다. 져 주겠다 하시니 제가 이긴 셈 하겠습니다만 다른 데서는 그러지 마십시오. 형님 그러다 나중에 왕궁에서 나가자마자 사기 맞기 딱 좋습니다. 정말 어찌나 순하신지. 형님 정말 손 많이 갑니다."

이제 할 말 정말 많은 얼굴이 된 플란츠가 눈꼬리를 잔뜩 찌푸렸다. 그러다 칼리안의 속내를 다 들여다 본 것같은 표정을 하며 말했다.

"그냥 말 해. 짖지 말고."

괜한 소리 해 가며 하고 싶은 말 감추지 말란 이야기에 칼리안이 살짝 웃었다. 다만 그 말을 꺼내는 대신 잠시 입을 다물고 엘프 마을의 밖을 향해 걸음을 이어나갔다. 아무도 살지 않는 언 마을을 지나쳐 마을 외곽을 지나 숲과 연결된 곳까지.

보랏빛 꽃 미네시아스가 갇힌 얼음 위를 지날 즈음, 칼리안이 잘 나오지 않던 말을 건넸다.

"형님이 했던 일이 잘못된 것이든 아니든 상관 없습니다. 이유가 정당했든 아니든 이제와서 잘못을 따져 볼 순 없는 겁니다. 그게 누구라 하더라도요. 그러니 저 안에서 뭘 보셨다 하더라도 형님은······."

"너."

챙김 받는 것 좋아하는 그 재수없는 국왕이 왕세자이던 시절에, 카이리스를 찾아왔던 날의 모습. 그 때의 모습과 정말 많이 비슷했던 사람. 더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했으나 그 날의 체이스보다 머리가 더 길고 팔이 하나 뿐이었던 사람. 생각했던대로, 눈치챘던대로, 먼 첨탑을 보려 했으나 결국은 이루지 못했던 사람.

"봤는데."

그 사람을 봤다고 말했다. 솔직하게.

언제나 한결같이 움직이던 칼리안의 발이 잠시 멈췄다. 밟을 곳을 잊어버린 것처럼 아주 잠시 머뭇거렸다.

곧 아무렇지 않게 다시 발을 내민 칼리안이 플란츠를 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진짜 잘 생겼지 않습니까."

동생 놈의 얼굴을 잠깐 보던 플란츠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못 봤는데. 얼굴은."

"아. 아쉽네요. 두 번 없을 기회였는데요."

"이제 못 보나."

"네. 안 보여드릴 겁니다. 귀한 얼굴이라서요."

"볼 건데. 나는."

"귀한 얼굴이라니까요."

"나중에. 괜찮아지면. 더."

"······ 알겠습니다. 다른 것은, 더 안 보셨습니까."

"안 궁금해서."

"다행입니다. 걱정했는데."

플란츠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다쳤는데요. 많이. 걱정 안해주십니까."

"하고 있어."

"네."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칼리안이 엘프 마을을 나왔다.

한결 따뜻해진 바람이 숲을 머금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새 해가 기울어가고 있었다.

칼리안이 속에서 올라오는 비린내 대신 숲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안 없어지고 잘 따라오는 완두콩을 한 번 확인한 뒤 레이븐을 불렀다.

"어머니와 휘트린에 대한 것을 얻었으니 두 번 다시 이 숲에 올 일은 없을 겁니다. 남아있는 것도 없지만요."

"다누는."

"만날 일이 있으려나······ 또 만나고 싶지는 않네요."

아무튼 다음에 다누를 또 만나야 한다면 반드시 아빠랑 같이 와야겠구나 다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세 마리 말과 마주보고 앉아 오매불망 우리 왕자님 오시기만을 기다리던 오리 엄마 걱정은 하지 않은 채였다.

안 순한 걔는 알아서 잘 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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