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의 왕자로 사는 법-332화 (333/527)

제59장. 의외로 서툴러서(2)

시간의 축.

처음 나타났을 때, 체이스와 루이즈 그리고 데블란이 그것을 함께 보았다 했다. 얼마 후 축이 사라지던 자리에 홀로 있었던 체이스가 기억을 찾았으나 루이즈와 데블란은 그렇지 않았다. 그 뒤 루이즈와 데블란은 엘프들을 만났다. 오래지 않아 루이즈는 기억을 찾게 되었으나 데블란은 아니었다.

처음 체이스가 기억을 찾았음을 알았을 땐 그것이 시간의 축을 보았기 때문에, 혹은 시간의 축이 사라지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루이즈가 베른을 기억하게 되었다.

"데블란은 끝까지 기억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그 날의 일이 있기 한참 전에 이미 사망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을 정리한 칼리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시간의 축과 축이 사라지던 것을 모두 본 체이스 형님은, 형님 스스로가 겪으셨던 과거의 일을 꿈 속에서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의 축을 보았으나 사라지던 자리에는 계시지 않았던 어머님은 엘프들을 만난 뒤······ 직접 겪을 수 없던 때의 모습을 제일 먼저 본 이후에야 꿈을 꾸기 시작하셨다 했고요. 그런데 어머님께서 가장 처음 보셨다는 그 꿈이 어쩐지 제가 어머니 나무를 만나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방식인 것 같았습니다."

그때 엘프의 도시에서 어머니 나무를 만나고 보았던 장면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려주지는 않았다. 다만 그곳에서 시나스타를 건네받던 날 칼리안의 반응 덕에 플란츠도 조금은 눈치를 채고 있었다.

죽기 전에 보지 못했던, 몰랐던 것들을 보지 않았을까. 하고.

물론 자신이 본 것을 모두 드러내어 전하지는 않았으나 어느정도는 눈치를 챘으리라는 사실을 칼리안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편히 이야기하는 것이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기억을 찾는 기준을 알 수가 없네요. 시간의 축을 보았다는 것이나 시간의 축 앞에서······."

"알아들었어."

"네."

시간의 축 앞에서 마지막을 맞이했으리라는 것.

플란츠는 칼리안이 입 밖에 내기 어려워 하는 이야기를 이번에도 잘 잘라내줬다.

"아무튼 그 정도의 공통점만으로는 기준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인지도."

"네. 기준도 모르겠지만 기억을 찾은 이유도요. 체이스 형님 뿐이었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 짐작은 해보겠습니다만, 어머님까지 꿈을 꾸셨다 하니 말입니다."

루이즈의 꿈을 단순히 아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 때문에 겪게 된 일이라 볼 수는 없지 않겠나.

"그래서 두고 왔나."

"히나와 키리에 말씀이십니까."

"셋 다."

"에일라까지요. 네. 맞습니다. 기억이 돌아오는 기준을 모르겠어서 두고 왔습니다."

플란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브리지트 숲까지 갈 길이 멀었던 탓에 처음에는 셋 모두 아무 말없이 걸음만 옮겼으나 이내 무료함이 들어섰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다 지금의 주제가 나온 참이었다.

아르센은 데려가면서 베른 남매와 에일라는 왜 두고 왔는지에 대해 말이다.

"기억을 찾는 것에 어머니 나무의 영향도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셋이 시간의 축을 본 것은 아니었다지만, 그래도 혹시나 한 명이라도 꿈을 꾸게 될까 걱정이 되어서 그냥 별장에 있으라 했습니다. 적어도 그 셋만은 '과거'의 일을 영원히 몰랐으면 해서요."

이번 생에는 입지 않은 상처들을 굳이 들춰내어 끌어안고 살 필요는 없으니.

"히나와 키리에가 그 숲에 가고 싶어했고 에일라도 궁금해했다는 건 알지만, 만약 이곳에 다 함께 다시 오게 되더라도 지금은 말고 나중에요. 시간이 조금 더······ 더 많이 지난 뒤에요."

"알았어."

플란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자코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르센이 칼리안을 쳐다봤다.

"그럼 제가 기억을 찾는 것은 괜찮으신 겁니까, 왕자님?"

자신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이렇게 끌고 온 것에 대한 질문이었고 칼리안은 조금 짓궂은 웃음을 띄우며 대답했다.

"헤르츠 경이 그 기억을 찾으면, 나는 좋을 것 같은데."

히나와 나머지 두 따까리는 그렇게나 보듬보듬 애지중지하면서 미친 따까리에게만은 그리 큰 신경을 안 쓴다. 옆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에게도 이보다는 더 관심을 줄 것 같다 여긴 아르센이 볼멘소리를 냈다.

"왕자님 제 걱정은 안 해주십니까."

"응. 안 해요."

물론 솔직한 마음으로 칼리안은 둘 역시 함께 가지 않았으면 했다. 별장에 남은 셋 뿐만 아니라 이미 사라진 일에 대해 일부러 떠올릴 필요가 없는 것은 이 자리의 둘 역시 마찬가지니까.

플란츠가 시간의 축을 정말 사용하기는 했는지, 사용한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사용했는지. 이런 것을 빠르게 알아야 할 이유가 생겼고 그에 대해 누구보다 정확히 알만한 이들이 바로 플란츠와 아르센임을 왜 모르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키지 않았을 뿐이다.

- 형님 저 따라오실 생각이죠.

- 당연히.

그런데 완두콩이 어디 얌전히 있는 사람이어야지.

과거의 일을 모르고 지나가는 것보다는 그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함은 칼리안도 알았다. 몰라서 막아서던 게 아니었다.

- 파란 머리 미친 마법사도 데려가.

- 아무리 헤르츠 경이라 해도 과거의 기억을 보고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을 텐데요.

- 영향 안 받을 사람이면 데려가자는 말 안하는데.

- 그럼 헤르츠 경 의사라도 확인하고······.

- 얘기할테니까. 내가.

- 알겠습니다.

물론 이 대화 이후에 서슴없이 아르센을 찾아간 플란츠가 '따라와' 라는 딱 한 마디로 아르센을 불러내리라는 것을, 출발 전의 칼리안은 몰랐다. 그저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플란츠든 아르센이든 기억을 빨리 찾아서 제대로 대비하는 게 여러모로 낫다는 쪽으로 마음을 애써 돌려먹고 있었을 뿐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경호를 핑계로 아르센을 데려왔다. 이유를 멋지게 포장하자면 믿음의 표시였고 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플란츠의 기억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때를 대비한 두 번째 방책인 셈이다.

"혹여 과거의 일을 기억하게 될까 꺼려집니까."

"꺼려할 이유 없습니다. 오히려 반겨할 것 같습니다."

"좋네. 그리고 경은 내 걱정 받을 나이 지났지 않았습니까."

"지난 것은 맞습니다만. 그래도 협회장님은 제 걱정 해주던데요."

"그럼 가서 협회장 따까리 하던가."

"아닙니다, 왕자님. 실언했습니다."

에우리아 쪽에는 따까리 말고 다른 것 되고 싶은 아르센이 재빨리 말을 집어넣었다. 그런 아르센을 보며 피식 웃은 칼리안이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다른 말을 꺼냈다.

"혹시 숲에 다녀온 뒤로 이상한 꿈 꾸면 말해요."

"제가 그 일을 기억해내면 선물 주십니까?"

"스푼 부러뜨려 줄 테니까."

"좋습니다."

아르센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확실히 미친놈이 맞기는 하다.

플란츠가 기막혀하는 표정이 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을 아르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선물 주시는 김에 그럼 왕자님 동상도,"

"헤르츠 경 동상은 세워 줄 수 있는데. 내가. 경이 써 준 반성문 멋있게 옮겨적은 추모비 포함해서."

"아······."

"비문 옮겨적는건 형님께 부탁하고요. 내 형님도 글씨 잘 쓰시니까."

"아닙니다, 왕자님. 실언했습니다."

이렇게 정겨운 대화를 하는 동안 조금씩 브리지트 숲에 가까워졌다. 그래도 거리가 거리였던 탓에, 이른 아침에 별장으로 돌아와 사냥 준비를 마치고 곧바로 출발했음에도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그리고 마주쳤다.

- 쌔애애애액!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는 세르제인을.

"세크리티아 국왕 전하와 오찬을 마치고 바로 왔다 하더라도 시간이 잘 안 맞는데. 텐실의 왕세자께서는 어쩌다 여기에 계시는지."

일단은 보는 눈이 있어 말을 높였다.

다만 존중을 담진 않았다.

"예정대로면 제 때 왕궁에 도착했을 테지만. 일이 좀 어긋났군."

"그런데 굉장히 여유로워 보입니다."

"지원군이 왔으니 여유로워져도 괜찮겠지."

자신의 진짜 이름은 가르쳐주지 않은 '세르제인'이 다급할 것 없다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방금 전까지 위협을 받고 있었음을 잊은 듯한 목소리였다.

"그쪽 일에 우리는 참견할 생각 없습니다만."

상황 파악 덜 된 기사들이 칼리안 쪽과 세르제인을 번갈아가며 살피는 사이, 세르제인이 플란츠 쪽을 가리켜보였다. 정확히는 플란츠가 여전히 손에서 놓지 않은 은빛의 아름다운 세공이 더해진 거대한 묵빛 활을 향한 것이었다.

"참견 안하겠다는 것치고는 준비자세가 너무 훌륭하지 않나."

"사냥 중이라."

여섯 명의 기사 무리는 딱 봐도 의심스러운 놈들이었고 나머지 놈은 의심스럽긴 해도 한 번 만난 놈이었다. 그래서 기사들이 살아있는 텐실 왕세자를 죽여버리려던 것은 일단 막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무조건 세르제인의 편을 들 일은 아니지 않나.

"왜."

기사들을 다시 겨누고 있던 플란츠가 짧게 말했고 세르제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때문에 칼리안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여기 왜 왔는지 제대로 말 안하면 그냥 가겠다는 말씀입니다."

"······ 그렇게 긴 말인 줄은 몰랐군."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던 기사들 중 갈색 머리 한 명이 다른 이들을 향해 눈짓을 했다. 지금 숲에 들어서 자신들에게 화살을 날린 이들이 누구인지, 그들 역시 모르지 않았다. 모르기에는 각자의 외모가 너무 튀었다.

잠시 때를 보던 갈색 머리 기사가 고개를 아주 살짝 끄덕였다. 칼리안과 아르센을 상대로 이길 방법이 없으니 일단 자리를 벗어나자는 의미였다. 그것을 본 기사들이 일제히 발을 놀리려 했을 때.

- 피잉!

- 쌔애액!

한 발의 화살이 기사들의 발을 막았다.

"가라고 한 적 없는데."

가장 앞에 서 있던 기사의 발 앞에 박힌 화살을 쳐다본 플란츠가 낮은 목소리를 냈다.

"신성기사들."

텐실의 신성기사.

그들의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경장갑옷 차림이라고는 하나 그 어디에도 텐실의 문양이나 신성기사를 뜻하는 표식은 없었다. 그런데도 한 눈에 정체를 알아보았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어쩐지 공격을 하시더라니."

칼리안이 속삭이듯 작은 소리를 냈다.

아무리 그래도 가타부타 공격부터 할 플란츠가 아니라 생각했는데 이유가 있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지난 르메인의 탄신일 축제에 카이리스를 찾아왔던 텐실의 치유사들. 정확히는 치유사로 가장한 신성기사들. 그들을 보았던 모양이다.

봤다면, 잊지 않는 플란츠니까.

"형님께서 이렇게 똑똑하게 나서주실 때마다 제가 참 뿌듯합니다."

"내 아우님 잘 짖는 것이 텐실까지 소문나겠군."

"잘 무는 것도 이미 알 놈들이라서. 괜찮습니다."

란델에게 살기까지 뿌려가며 신성기사들을 당장 내보내라 화를 냈던 칼리안 아니던가. 그러니 저기 저 텐실의 사람들에게 칼리안이 어떻게 소문이 나 있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그래서. 어쩔 건데."

"다 죽이면 됩니까."

플란츠와 아르센의 말이 동시에 나왔다.

플란츠의 말은 조금 작게, 아르센의 말은 조금 크게.

세르제인과 칼리안 일행 사이에 끼게 된 기사들이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는 것이 이곳까지 보인다.

칼리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크리티아 땅에서 텐실 기사 죽여봐야 득될 것이 없으니까.

"아니요, 일단······."

그런데 그 때.

- 휘이익!

칼리안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세르제인이 움직였다.

셋에게 집중하느라 자신에게서 시선을 뗀 기사들을 향해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스스로 칼을 쓴다 말한 것이 허언은 아니었다는 것처럼.

- 서걱!

- 콰직!

한 명의 목에 나을 수 없는 깊은 상처가 생긴다.

다른 한 명의 심장이 뒤에서부터 꿰뚫렸다.

- 풀썩!

스스로 혹은 서로간에 치유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이라 하여, 이미 꺼진 생명을 다시 되돌리지는 못한다. 때문에 일격에 생명을 잃은 두 명의 기사가 속절없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세르제인이 다시 발을 놀렸다. 이제껏 자신을 위협하던 나머지 네 명의 기사들을 향해서였다.

급격히 벌어진 상황에, 아르센의 손 끝에 냉기가 어리고 플란츠는 활 대신 검을 잡았다. 그리고 칼리안은.

"대화중이잖아. 지금. 내가."

어느새 세르제인과 기사들의 사이에 서 있었다.

속도를 따르지 못한 바람이 조금 늦게 불어와 칼리안의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 우우웅!

붉고 투명한 기운이 어둠에 잠기기 시작한 숲을 밝힌다. 긴 검을 손에 쥐게 된 칼리안이 검보다 더 붉은 눈으로 세르제인을 응시했다.

"왜 남의 나라에서 난리인지부터 설명하고 싸워."

"······ 정말 빠르군."

"그건 내가 제일 잘 아니까 말 안해줘도 되고. 설명."

"설명하면 알아듣긴 하나."

눈 깜빡 할 새 두 명을 죽여 없앤 세르제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여유있던 목소리는 전부 다 거짓이었다는 듯,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역력한 표정이다.

"말 안하면 너도 죽어. 나한테."

"독한 성정이었군."

"애매하게 엮여서 카이리스나 세크리티아에 골치아픈 일 만드는 것보다 그냥 다 죽여버리는 게 낫잖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시신 없애는 건 일도 아닌데."

이 자리에 있는 놈들 싹 다 죽여버리고 텐실의 가짜 왕세자 따위 만난 적 없다 해버리면 누가 알겠나. 안다 한들 증거 하나 없이 어찌 해볼 수도 없는 것을.

"정당방위다. 공격은 기사들이 먼저 했으니까."

"근거도 같이 말해야지."

"여기 죽은 이들은 신성기사가 아니다. 너희쪽 치유사 데려다 확인해보면 알 것 아닌가."

치유사들이 서로의 힘을 알아볼 수 있다는 듯한 말이다. 다만 히나는 일반적인 치유사가 아니었던 탓에 아마 그런 방법까지 알지는 못하리라 여겼다. 안다 하더라도 시신을 가져다 놓고 확인해봐라 할 마음도 없었지만.

대신 플란츠가 확인해보면 될 일이다.

죽은 놈들 중 카이리스에 왔던 신성기사가 섞였는지 정도는 알아 볼 수 있을 테니.

"나는 저들이 내 호위기사인 줄 알았는데 날 죽이려고 드는군."

"배후는."

"모른다. 한 명만 남겨서 알아보려는 중이고."

"여긴 왜 왔는데."

"누굴 좀 만나러."

"누구."

세르제인의 대답이 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것을 보던 칼리안이 입을 열었다.

"저하."

"왜."

"세크리티아 국왕 전하께 말씀 전해주십시오. 텐실 왕세자 여기 있다고."

"알았어."

곧바로 플란츠가 끼고 있던 반지에 빛이 돈다.

반지는 칼리안에게 수정판을 주는 대신 받은 것이었고, 수정판과 달리 그 용도가 꽤나 잘 알려져있는 물건이기도 했다. 오래 전의 에반도 알아봤었을 만큼.

"잠깐."

때문에 마찬가지로 반지의 용도를 알아 본 세르제인이 플란츠를 막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누굴 만나러 왔다."

"누구."

"······ 어머니 나무."

칼리안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네가 '다누'를. 왜."

"잠시 만나서."

세르제인이 말을 멈췄다. 그 얼굴이 살짝 변했다가 재빨리 돌아온 것을, 칼리안은 놓치지 않았다.

"세르제인. '다누'의 이름을 어떻게 알아?"

어머니 나무의 이름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어머니 나무를 직접 만났던 칼리안조차 시스파니안의 말을 전달받은 덕에 알게 되지 않았던가.

애초에 이곳에 어머니 나무가 있음을 아는 것부터 수상한 일이었는데, 나무가 있다는 것 뿐 아니라 이름까지 안다.

"재밌네. 너."

칼리안의 즐거운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와 동시에 칼리안의 뒤에서 네 개의 작은 단도가 떠올랐다. 그리고 남아있던 네 기사를 향해 날아갔다.

- 쉬이이익!

단도가 생성된 것을 보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손을 쓰기 힘들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붉은 잔상 뿐인 검은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다.

- 퍼억!

때문에 오래지 않아 둔탁한 소리가 네 번을 울렸고, 칼리안의 뒤에 서 있던 네 명이 바닥으로 풀썩 쓰러졌다.

목표한 이들을 모두 기절시켰음에도 칼리안의 단검은 멈추지 않았다.

허공에 띄워져 있던 네 개의 단검이 일순 한 곳으로 모여드나 싶더니, 빈 공간의 어느 한 지점을 향해 매섭게 날아갔다.

- 카아아앙!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날선 소리가 들린다.

그것을 확인한 칼리안의 입가에는 예쁜 미소가 어렸다.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너한테 갔구나."

아르센의 손 끝에서 얼음창이 생성되었고 플란츠는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아델리아가."

칼리안의 소름끼치는 미성이 세르제인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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