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의 왕자로 사는 법-328화 (329/527)

제58장. 완두콩이 또(3)

플란츠를 재웠단다.

아무튼 아리안느는 아리안느다.

"난 분명히 자라고 말했어."

칼리안과의 대화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려는데 아리안느가 찾아왔다. 그래서 선실 중 가장 높은 층에 마련된 테라스로 함께 나가던 길에 이야기를 들었다. 멀미 심한 옆 나라 왕세자를 곱게 재워버렸다고 말이다.

정혼자의 당당한 고백을 들은 체이스가 손을 올려 얼굴을 가렸다. 곧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긴 손가락 새를 비집고 나왔다.

"아······ 정말이지. 아리안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도록 멀미를 하면서 고집은 고래 힘줄이잖아. 슬립 싫다고 한 건 그 저하고 나한테는 당신 주던 약이 있었고. 그래서 준 거지."

아리안느는 감수성 참 풍부할 시기의 막바지에 다다른 왕세자의 속마음을 몰랐다. 긴 잠에 빠져 고래가 나타나도 못 볼까봐 안 자고 버티던 것임을 알았다면, 아마 그렇게 극단적인 처방이 담긴 차를 건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전하가 예전보다는 잘 자니까 좋네. 덕분에 약도 남고."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 수면제 함부로 쓰다가는 큰일 나. 또 그러지는 마, 아리안느."

"이제 안 할게. 그런데 어차피 그 저하는 앞으로 내가 주는 차는 절대 안 마실 걸."

"아마 당신이 또 주면 또 마실 거야."

주변 사람 의심 안하기로는 칼리안에 버금가는 플란츠가 아니던가. 때문에 웃음기가 남은 얼굴로 대답한 체이스가 마주 불어오는 바람에 흐트러진 아리안느의 앞머리를 정돈해줬다. 모친 루이즈와 함께 보낸 시간이 많다보니 밴 버릇이었다.

그렇게 아리안느를 챙기는 체이스의 머리카락도 이리저리 흩날리기는 마찬가지였던 터라, 체이스의 손이 닿는대로 그냥 두었던 아리안느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전하도 머리 묶어. 정신 사나워."

지난 해 카이리스에 다녀온 뒤로 짧아졌던 머리가 어느새 다시 많이 자랐다. 풀어두어도 좋고 느슨히 묶어도 좋을 만큼 자랐다. 베른에 대한 기억 때문이 아니라 체이스의 긴 머리를 아리안느가 꽤 마음에 들어했었다는 이유로 다시 기르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건네진 것이 아리안느의 머리에 잘 어울릴 새빨간 색의 레이스 끈이었던 탓에, 손바닥 위에 올려진 끈의 모양새를 본 체이스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이유를 짐짓 모르는 척 아리안느가 물었다.

"묶는 법 까먹었으면 내가 해줄까?"

"그래. 좋지."

잊은 것은 아니었지만.

까만 밤바다도 좋고 살랑이는 바람도 좋고 사그락거리는 손길이 좋아서.

아리안느에게 등을 돌리고 앉아 살짝 눈을 감았다.

"전하."

"응."

등 뒤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곧바로 대답을 했는데 돌아오는 말이 없다.

엉킨 머리카락이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도 아리안느는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계속 빗어내리기만 했다. 체이스는 채근하는 대신 가만히 아리안느의 말을 기다렸다.

"난 할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

얼마동안 계속 청은빛의 머리를 매만지던 아리안느가 이렇게 입을 열었다.

"집에 심어 둔 레몬 나무에 레몬 열리는 것도 볼 거고, 새로 만든 연못에 물고기도 잔뜩 풀어서 키워 볼 거야. 엄마가 하는 일도 더 배울 거고, 술도 더 마시고, 더 신나게 놀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더 많이 해볼 거야."

"응."

"그러니까 기다려. 국혼하지 말고."

"응."

"나중에 나랑 해."

"그래."

체이스가 몸을 돌려 아리안느를 쳐다봤다.

예쁘게 잘 매듭지어지던 빨간 리본이 조금 비뚤어진다.

"그럴게. 아리안느."

언제나 고요한 물결같은 대답을 들은 아리안느가 웃었다. 어느새 바람이 잦아들었으나 그것을 모르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불어오던 바람이 그쳤다.

잔잔히 이어지던 파도가 더 일지 않는다.

막막한 바다 한 가운데 정적이 찾아든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 * *

시스파니안과는 생김이 다르다 했었다.

사파이어와 흑진주를 곱게 갈아 잘 섞은 듯한 빛의 영롱한 비늘. 천 년을 훌쩍 넘게 살아왔다던 떡갈나무보다 몇 배는 더 두껍고 긴 몸통. 태양에 녹아내리고 바람에 찢겨나갈까 걱정될 만큼 얇은 피막으로 이루어진 한 쌍의 흑진주빛 날개. 대륙에서 가장 큰 범선도 순식간에 토막낼 수 있을 듯한 날카롭고 거대한 발톱.

그것이 바로 책에서 설명한 해룡 아르나이젤이었다.

대륙을 수호하는 시스파니안이나 대사막에 터를 잡았다던 황금빛 어린 용 실레스티안과는 생김이 다르다 했다. 익히 알려진 드래곤의 모습보다는 차라리 박쥐의 날개를 단 푸른 뱀과도 같다 했었다.

- 형님 고래 보신 셈 쳐도 되겠는데요.

달빛을 베어내고 별빛을 조각내 세뉴강의 얼음 속에 담아둔 듯한 신비로운 빛을 가진 고래의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알았다. 칼리안 뿐 아니라 곁에 있던 플란츠마저도 바로 눈치를 챘다. 푸른 비늘도, 긴 몸통도, 반투명한 피막의 날개도 없었으나 알 수 있었다.

사람의 피어와 격이 다른 공포감. 그리고 위압감.

아르나이젤이 아니라면 이 바다 한 가운데에서 누가 그런 기운을 흘리겠는가.

아르나이젤은 시스파니안과 조금 달랐다. 이 자리의 둘 말고는 이상점을 느끼지 못하도록 자신의 존재감을 적당히 숨겼으나 완벽히 가리지도 않았다. 때문에 칼리안의 말이 끝난 직후 플란츠의 앞으로 앨런이 나타났다. 다른 마법사들과 앨런은 아주 많이 달랐으니.

"괜찮으십니까, 저하."

"괜찮아."

칼리안의 실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흰 빛의 두터운 방어막으로 범선 전체를 감싼 앨런의 말에, 플란츠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마주 끄덕인 앨런이 주변을 살폈으나 고래의 거대한 덩치는 어느새 사라져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위압감은 여전했던 까닭에 긴장을 풀지 않은 앨런이 한 가지를 더 물었다.

"칼리안 왕자님은 어디 계시는지요."

그 말.

앨런이 건넨 그 말에 플란츠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 하."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은 깊은 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답답함 때문도 아니었고 짜증이 나서 내보낸 한숨도 아니었다. 기껏 펼친 것이 무색하게 어느새 흩어져버린 동생 놈의 실드 탓도 아니었다.

"사라졌어."

칼리안이 사라졌다.

아무 흔적도 없이, 플란츠의 눈 앞에서.

그러니 칼리안의 이름을 입에 담는 사람이 또 하나 있다는 것을 확인 받은 까닭에 나온 숨소리였다 하면 맞을 것이다. 앨런이 나타나 칼리안의 이름을 말하기까지의 시간, 그 짧은 시간 동안 이것이 혹여 칼리안이 그렇게나 대비해오던 '잊혀짐'인지를 홀로 가늠해야 했으니까.

그 사이 플란츠가 무엇을 떠올렸을지, 왜 그런 얼굴로 눈을 감고 잠시 멈췄던 숨을 그리 길게 내쉬었는지를 짐작한 앨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느리게 깜빡이던 플란츠의 눈이 다시 감겨들지도 않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 * *

이 정도면 두 번을 살아 볼 만도 한가.

문득 떠올린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칼리안이 조소를 머금었다.

불어오던 바람에 날리는 청은빛의 머리카락과 새빨간 레이스 끈이 보였다. 비뚤어진 리본을 보다 웃음을 짓는 아리안느가 보였다. 뱃전 아래를 빛내는 밝은 녹빛에 감탄을 터뜨리는 우리 히나가 보였다. 녹빛에는 크게 관심 없다는 듯한 얼굴로 수평선을 바라보는 에일라, 그리고 레이첼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키리에가 보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에우리아와, 에우리아에게 눈길을 두는······ 아. 내 따까리 누구랑 연애하나 했더니.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 모든 것이 '보였다'.

배에 올라 있던 모든 이들의 모습이 한꺼번에 보였다. 이내 그들의 목소리와 발소리가 멈추는 것이 보였다. 그런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으니 두 번을 살아볼 만도 하지 않겠나.

"아무튼 다행이네."

아리안느가 오랜 숙제를 제 방식으로 잘 풀어낸 것에 체이스가 기뻐하는 것 같아서. 히나가 늦은 밤의 항해를 마음껏 누리는 것 같아서. 게다가 이유도 모르겠고 방법도 모르겠지만 일단 시간이 멈춘 것 같아 보이지 않나. 그러니 물 줄 사람 없어진 것을 본 완두콩이 더 시들시들해질 일도 없겠고 아들이 사라졌음을 안 앨런이 오랫동안 놀랄 일도 없겠어서, 무슨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안심하기로 했다.

시스파니안을 시작으로 어머니 나무까지 칼리안에게 참 관심이 많았던 것을 알아서 이번에도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러다 대사막 땅을 밟으면 실레스티안이 찾아오겠구나, 혹은 세렌티의 신전에 갔을 때 잠든 세렌티의 의지가 찾아오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생각되는 정도의 심정이라 하면 맞을 것이다.

사람이 너무 잘나 피곤해지는 일에도 면역이라는 것이 생기게 마련이니까.

"그런데."

이해한 것은 이해한대로 이해 못한 것은 이해 못한대로 내버려 둔 칼리안이 담담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필 바닷속이라니. 아르나이젤."

까마득한 위로 흐릿하게 보이는, 밝게 불을 밝힌 호화로운 범선의 밑바닥을 살피려니 고개가 아플 지경이다. 주위에는 흐름을 멈춘 어둠 짙은 바닷물이 가득하고 발밑으로는 산호에 뒤덮인 바위와 새하얀 모래가 잔뜩이었다.

한 마디로 바다 깊은 곳의 공기방울 속이라 하면 맞을까. 이제야 비로소 나아졌다지만 엘프 도시에 가기 전까지는 바닷물에 발가락 끝도 가져다대지 못하던 칼리안을 이런 곳에 초대했다. 생명 잃은 이들로 가득했던 빨간 만화경 속에 칼리안을 불러들인 어머니 나무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고약함이 아닌가.

"미안해. 바다를 싫어하는 줄은 몰랐어."

고약하다 여겼던 마음을 곧바로 집어치웠다.

몰랐다는데 어쩌겠나.

크게 시무룩해진 목소리를 들은 칼리안이 자신의 몸을 감싼 기포 밖 어딘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싫어하지는 않아. 무서워했던 거지."

"그럼 다행이야."

공기방울이 크기를 살짝 부풀렸다 돌아오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것이 마치 기쁨에 겨워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느낌이라, 칼리안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무서워했다는 말을 듣기는 했을까 싶은 천진한 대답이 어쩐지 재미있어서.

- 휙!

그때, 무언가가 공기방울 곁을 지나갔다.

- 휘익!

생경한 느낌이 이번에는 팔을 스친다. 여전히 빠른 속도로 지나쳐갔으나 누구보다 빠른 움직임을 지닌 칼리안의 눈에는 그것이 똑똑히 보였다.

사파이어와 흑진주를 섞은 듯한 빛.

해수면을 내리치던 거대한 고래의 꼬리 말고 또 다른 모습. 그리 아름답던 고래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지닌 빛의 커다란 지느러미였다.

그것을 익숙하다 해야할지 낯설다 해야할지.

책에서도 여러 번을 보았고 엘프들의 도시에 놓인 분수에서도 보았던 모습. 하반신 전체가 비늘로 뒤덮이고 두 개로 갈라진 거대한 지느러미를 가진, 직접 만나본 적 없던 또 다른 종족.

"······ 생선."

"아니야!"

"큰 생선."

"아니라고!"

인어였다.

제 거대한 몸집으로는 칼리안과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다 여긴 것인지, 말로만 전해듣던 생소한 모습을 취한 아르나이젤이 억울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칼리안의 주변을 빠르게 헤엄치던 것도 잊은 채 비로소 멈춰서서는 칼리안을 바라봤다. 생선 아닌 것을 확인시켜주듯이.

그래. 대화를 할 거면 마주봐야지.

그제야 대화할 요건을 갖춘 칼리안이 생글생글 웃었다.

"장난 그만 치고 설명해. 왜 불렀는지."

에반의 저택에서 마주쳤던 리리에라는 이름의 아이보다도 더 어린 남자 아이. 아니, 인어. 아니. 해룡. 아르나이젤이 꼬리 지느러미를 한 번 휘저었다. 그리고 칼리안으로부터 저만치 떨어진 곳까지 헤엄을 쳤다.

"시스파니안을 기다렸는데 시스파니안이 안 와. 그런데 너한테서 시스파니안 냄새가 났어. 그래서 불렀어."

"시스파니안이라면······."

바로 몇 달 전에 브리지트 숲에 왔었다고.

그 말을 하려던 칼리안이 입을 다물었다.

아르나이젤은 칼리안에게서 시스파니안 냄새가 나서 불렀다 했다. 그런데 시스파니안을 가장 최근에 만난 것은 칼리안이 아닌 앨런이었다. 아델리아라는 7서클의 마법사를 상대하다 어머니 나무의 뿌리를 부숴버릴 뻔한 것 때문에 찾아왔다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칼리안이 아니라 앨런을 불렀어야 맞을 일이다.

헌데 아르나이젤은 앨런을 부르지 않았다. 로젤리타 중에 시스파니안의 의지를 만났던 플란츠를 부르지도 않았다.

시스파니안의 본신을 만난 유일한 사람, 칼리안을 불렀다. 시스파니안의 의지가 찾아오는 것은 느끼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시스파니안이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찾아왔던 일을 굳이 입 밖에 낼 이유가 없었다.

"시스파니안은 왜 기다렸는데."

"바다에. 이상한 게 떨어졌어. 시스파니안이 찾는 것."

칼리안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시간의 축."

아르나이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맞아."

열심히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여보인 탓에 밀려난 바닷물이 칼리안의 공기방울을 살짝 건드렸다. 순수한 것인지, 시스파니안의 냄새가 난다는 이유 하나 때문인지. 칼리안이 그것을 어떻게 아는지를 의심하는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디 있는데."

"내가 가지고 있어."

순간 칼리안은 그것을 그냥 나에게 넘기라 이야기 할 뻔했다. 시스파니안이 시간의 축을 어디에 보관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으니 내가 가져다 두겠노라고. 어차피 언젠가 그것을 쓰게 될 사람은 나라고. 그리 말할 뻔했다.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목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은 탓이다.

칼리안의 입이 막히는 것을 보던 아르나이젤이 웃음소리를 냈다. 무엇이 그리 재밌었는지 몰라도 공기방울이 윙윙 울릴 만큼 한참을 웃었다.

"다누가 만났다는 아이가 너였구나. 세렌티의 손이 닿은 아이가 있다 했는데."

그 손이 정말 닿았었으면 손모가지를 분질러 뒀을 거라고.

세크리티아의 왕족이었던 사람이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애써 삼킨 칼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파니안을 불러줄 수 있어?"

"가능해. 아마도."

왕궁의 석실 안에서 시스파니안을 찾으면 올 테니까. 아마도.

"그럼 얘기해줘. 시스파니안의 것이 여기 있다고."

생각이 멈췄다.

담담하던 칼리안의 얼굴이 일순 굳었다. 귀로 들린 말을 이해하는 것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칼리안의 입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무슨 소리야. 그게."

흑진주색 눈으로 칼리안을 보던 아르나이젤이 말했다.

"네가 없어지면 네 일행들이 놀랄까봐 내가 잠깐 조각의 힘을 빌려 썼어. 그런 대단한 걸 처음 만든 게 누구였을 거라고 생각한거야?"

브리지트 숲의 폐허를 되돌려 두었다던 시스파니안의 힘. 시간의 축을 가지고 있다던 아르나이젤이 지금 흐르는 시간을 멈추어 둔 것.

문득, 시스파니안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시간의 축을 입에 담았을 때 시스파니안이 지어보였던 표정이 생각났다.

"그래서. 나를 그렇게."

그래서 나를 그렇게 챙긴 거구나 하고.

이제야 이해를 했다.

자신이 만든 물건 때문에 시간을 거스른 사람을 만나게 된, 사려깊은 고룡의 오지랖 넓은 죄책감 때문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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