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장. 뱀의 무덤(4)
맑았던 검은 하늘에 먹구름이 모여들었다.
고요한 검은 하늘이 보랏빛으로 번쩍였다.
자연 현상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갑작스럽고 강력한 번개. 분명 에우리아의 힘이었다.
- 히나 그 아이와 키리에가 레이첼 그레이스라는 마법사와 함께 후작저에 도착했다는구나. 플란츠 왕세자는 별관에 남았다 하는데.
만약 이 자리에서 말 한 마디 혹은 행동 한 번이라도 잘못했다간 그대로 반역자로 낙인찍혀 평생을 지하감옥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때문에 체이스는 키리에의 설명을 그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대신 가장 중요한 몇 가지 내용만 공유했다. 그 뒤 자세한 내용을 더 말하는 대신 키리에와 연결되던 반지를 칼리안에게 건넸다.
"내가 그저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았더냐."
그 뒤 체이스를 향해 흘러나온 데블란의 말.
그리고 플란츠의 살기.
그것이면 무슨 상황이 생겼는지 눈치채기에는 충분한 일이다. 데블란이 또 뱀같은 짓을 꾸몄고 플란츠가 그것을 알았다. 히나를 저택으로 보냈다. 저택에서 싸움이 생겼다.
가능한 이곳의 일과 엮이지 않아야 할 카이리스의 마법사가 저 정도로 눈에 띄는 행동을 한 것은 그러니까, 저 정도로 눈에 띄는 힘을 써야만 하는 일이 터졌다는 소리다.
- 스승님. 바로 와주세요. 린 후작의 저택으로.
- 알겠습니다.
그래서 루벤이라는, 또 다른 7서클 마법사를 만날 예정이라던 앨런을 당장 불러들였다.
"데블란······ 감히."
웃음이 났다.
본래부터 조용했던 곳.
덕분에 카이리스 3왕자의 말을 고스란히 들은 이들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신경 안 썼다.
"내 사람들을 건드린겁니까. 이곳에 내 발을 묶어두고, 내 앞에서, 당신이. 감히."
계산 잘하고 처세 잘 하는 왕자 칼리안 말고. 힘을 쓸 때와 참아야 할 때를 잘 구분하는 소드마스터 칼리안 말고.
칼리안이 분노했다.
- 우우웅!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던 손 끝에 열화가 담긴 듯한 오러가 맺혔다. 새빨갛게 타오르는 모습의 길고 날카로운 검 한 자루가 손에 들렸다. 그것을 쥔 채로 칼리안이 뚜벅뚜벅. 앞으로 걸었다.
"칼리안 왕자님. 멈추십시오."
데블란의 기사들이 일제히 움직여 칼리안의 앞을 가로막았다. 칼리안은, 그들 역시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손에 들린 검을 들어올려 그대로 집어던졌다. 그것이 마치 단도나 암기라도 되는 것처럼.
- 쌔애액!
길고 긴 검의 형상을 취한 오러의 날이 데블란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갔다. 체이스는 지켜봤고 기사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며 테일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데블란은 칼리안을 보고 있었다.
칼리안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데블란의 심장을 향해 곧게 날아갔다. 데블란의 심장을 관통하듯 주저없이 뻗어나간 그 검은,
- 콰직!
데블란의 바로 뒤에 있던 왕궁의 정문 기둥. 그 한가운데에 깊숙이 박혀들어갔다.
사람들이 숨을 멈췄다.
칼리안을 바라보던 데블란이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방금 전 칼리안의 검에 꿰뚫린 듯한 제 몸을 내려다보지 않았다. 여전히 칼리안의 붉은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였다.
칼리안이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을 죽이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데블란의 몸을 통과할 잠깐 사이에만 무형의 기운으로 바뀌었던, 때문에 데블란의 심장을 꿰뚫고 지나갔으나 실제로는 조금의 상처도 내지 않은 칼리안의 검. 손잡이 부분만 남기고 왕궁의 기둥에 완전히 박혀들어간 그 검이 이글거리는 붉은 기운을 후두둑 흘려냈다.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으나 살려두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카스트린 경."
"네, 저하."
"지금 전하께서 후작저와 별관을 공격하고 계신다."
체이스의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알겠지만 후작저에는 나의 어머니와 린 영애, 그리고 플란츠 왕세자의 정혼자인 베른 자작이 있고······ 별관에는 플란츠 왕세자가, 혼자 있다."
들으라는 듯 꺼내진 말.
사람들이 숨 들이키는 소리를 냈다.
레이지안 린 후작의 시선이 체이스를 향했다.
"지금 당장 후작저로 가서 린 영애를 돕고 모두 구출해 왕궁으로 안전히 모시거라."
"네. 저하."
잠든 아이를 곁에 선 이에게 건넨 테일란이 사람들 틈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말에 올라 레이지안의 저택을 향해 달렸다.
체이스의 기사가 데블란의 기사들과 대치중인 이들을 돕는다는 것은 반역이었다. 지금 체이스는 자신의 입에 반역의 뜻을 올렸다. 그러나 그 누구도 동요하지 않았다.
대신 데블란은 조금, 아주 조금 흐트러진 얼굴을 했다. 별관에 플란츠가 혼자 있으리라는 것을, 레이지안의 저택에 히나가 있으리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을 테니까.
- 저벅.
칼리안이 발을 옮겼다.
"한 달에 한 번. 많을 땐 일주일에 한 번씩."
기억을 들쑤셔가며 걸었다.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토악질 나오는 오랜 기억을 전부 다 떠올려가며 데블란을 향해 걸었다.
"귀족 가문이 통째로 사라지고 불에 탔다 하기에, 아무리 제 가족도 못알아보는 정신 빠진 국왕이라 하나 사람이니까. 설마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잔혹할 수 있겠나 하였는데. 오늘 내 형님과 내 사람들에게 벌인 짓을 보니 알겠습니다. 그 모든 것이 사실이었음을, 명확히 알겠습니다."
- 저벅, 저벅.
"카이리스는 결코 이 일에 대해 조용히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나는."
오늘 보고 들어 알게 된 사실들, 그리고 겪어본 적 없는 짙고 짙은 살기에 짓눌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 왕의 기사들을 지나쳐 데블란에게로 한 발을 더 옮겼다. 데블란의 숨소리가 들리는 곳까지 걸어갔다.
칼리안이 데블란을 향해 길고 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데블란의 귓가를 향해 고개를 가까이 가져갔다. 굳이 사일런트를 쓰지 않은채 새빨간 입술을 가만히 움직였다.
"매일 매일, 찾아갈거야. 당신 죽을 때까지."
어느 한 곳 흠잡을 데 없을 고운 미성이 꿈결같은 속삭임을 전해왔다.
"내 사람들 건드린 것만은 후회하고 죽게 해 줄게. 언제 어디에 있든, 숨을 쉬고 있든 쉬지 않고 있든. 당신이 있는 곳이 바로 뱀의 무덤이 되게 해 줄게."
데블란의 유령이 될 이가 경고를 전했다.
"······ 내가."
데블란이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자신의 왕을 애써 지키는 것을 포기한듯한 기사들과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고 서 있는 사람들의 눈빛을 한 번씩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칼리안은 사라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붉은 오러가 지나간 심장에 서늘한 기운이 맴도는 듯했다.
마치 유령을 마주친 것처럼.
* * *
아델리아의 긴 눈에 동글동글한 웃음이 담겼다.
"와. 앨런 마나실이 왔네. 잠깐 여기서 놀라던 말이 널 두고 한 말이었구나."
그것이 장난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퍽 닮았다고, 아델리아를 보던 히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나저나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8서클 올라갔구나, 너."
한껏 멀리 떨어진 곳에 서있던 아델리아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 오자마자 자신의 모든 공격을 한순간에 무력화시키지 않았던가.
친근한듯 건네진 말에 앨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아델리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나 잡으러 온 거야, 올라간 것 자랑하려고?"
"상늙은이 잡아서 뭣하겠나. 내새끼들 건드려서 왔지."
"아······ 말이 너무 심하잖아."
7서클이 된 마법사는 자신의 마법을 구현하기 가장 적합한 나이로 되돌아간다. 대부분 20대 초중반의 모습을 되찾는 그것을, 사람들은 마법사의 나이 역행이라 불렀다. 그렇게 나이를 거슬러 간 마법사의 노화는 일반인보다 느리다. 리베른에 도착해 7서클이 되어 스물 셋 정도의 몸으로 나이를 역행했던 앨런이 얼마 전까지 20대 중반의 모습을 가지고 있던 것처럼.
그러므로 지금 서른 중반의 외모를 가진 아델리아는, 따져본다면 앨런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델리아의 말이나 행동은 연륜과는 꽤 거리가 멀었다. 아르센이나 발칸의 미친놈들을 생각해보면 나이값 제대로 치르면서 사는 마법사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나 싶지만 아무튼 그랬다.
"심한 말은 시작도 안했으니 그리 듣지 말게. 그나저나, 골방에 처박혀 연구나 하던 놈이 무얼 하겠다고 세상에 나왔느냐."
"심심해서."
앨런의 질문에 눈웃음을 지어보인 아델리아가 별 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아델리아는 여전히 후작저의 대문 기둥 위에 서 있던 채였다. 그 상태로 대화를 하기가 불편하다 여겼는지, 아델리아가 앨런의 앞쪽으로 가볍게 뛰어내렸다. 그리고 앨런의 등 뒤에 있던 히나를 보며 다시 한 번 미소를 짓다 말했다.
"그런데 저 하프엘프 말야. 아까 나한테······."
- 따악!
아델리아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앨런이 손을 튕겼고, 그와 동시에 후작저 한가운데 서 있던 두 마법사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산책하는 정도로 힘을 쓴 앨런과 자신의 온 마력을 다 비워낸 칼리안이 싸운 숲이 초토화되지 않았던가. 아델리아는 몰라도 앨런은, 세크레타를 없애버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아주 잠시 동안 엄청난 이를 마주하고 금세 벗어나게 된 이들이 복잡한 얼굴을 했다. 그 누구도 자리를 쉬이 벗어나지 않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히나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꼭 쥐고 있던 주먹을 폈다. 그리고 그 안에 든 것을 집어 자신의 손에 끼웠다.
투박한 은색의 반지.
조금 전 앨런이 건네주고 간 것이다. 아델리아가 부서뜨린 팔찌 대신 칼리안과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을 수단이었다.
그것을 본 아리안느가 다가와 손을 가져다 댔다.
히나가 치유사임을 알았고, 마력을 다루지 못하리라는 것을 짐작한 까닭이었다.
곧 반지에서 미약한 빛이 일기 시작했다.
- 칼리안 왕자님.
그러나 부르는 말에 대한 대답이 없었다.
무얼 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히나는 더 부르지 않고 칼리안을 기다렸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뒤 대답이 건네져 왔다.
- 히나.
- 괜찮으세요?
- 글쎄. 모르겠어. 그 쪽은 어때.
- 머리가 하얀 마법사가 찾아왔는데 마나실 후작님이 오셨어요. 모두 무사해요. 마나실 후작님은 그 마법사랑 같이 사라졌어요.
- ······ 그래. 히나. 다행이야. 고생했겠네.
한껏 가라앉은 칼리안의 목소리. 그 가운데에서도 깊은 안도감이 느껴진다.
- 고생 안했어요. 괜찮아요.
- 그래.
- 플란츠 저하는요.
잠시 대답이 없다가, 조금 더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잠들었어. 별관 안으로 옮겨서 지켜보는 중이야.
- 마취액이 묻은 암기가 있었어요.
- 그것 때문인 것 같아. 그리고 오른쪽 어깨에 상처가 있고.
히나가 놀란 얼굴이 되어 되물었다.
- 상처 심해요?
- ······ 관통됐는데. 낫지 못할 상처는 아니야. 치유되고 있고 피도 멎었어. 다른 곳은 괜찮은 것 같고.
- 돌아가면 제가 살펴볼게요. 너무 걱정 마세요. 마나실 후작님도 세자 저하도 괜찮으실 거예요.
- 응.
길지 않은 대화를 이어가는 사이,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아리안느였다. 저택 안에 있던 이들 중 그 사이 다친 이들은 없는지를 살폈다. 멀리 지붕 위에서 눈을 감은 채 주변 경계에 여념이 없는 에우리아도 보였다. 루이즈를 호위해야 할 아르센은 보이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는 것은 위험하니 방 안에서 루이즈를 계속 보호하고 있을 터였다.
그렇게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고요한 밤이 깊어갔으나 누구도 쉬이 입을 열지 못하고 있던 때.
참을 필요가 없어진 또 한 명의 사람.
테일란이 도착했다.
후작저 밖에서 길고 긴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 *
깊은 숲.
작은 마을.
아무리 망가뜨려도 숲 밖에는 피해가 가지 않을, 세크리티아의 지도가 바뀌지 않을 수 있을 가장 안전한 곳. 얼마 전까지 이 곳에 머무르던 이들이 모두 몸을 피한 곳. 그래서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곳.
- 쿠과과광!
브리지트 숲.
그 한가운데, 엘프들의 결계로 보호되고 있던 마을이 흔들렸다. 말 그대로 마을이 흔들렸다. 작은 언덕에 피어난 풀잎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작은 집들의 천장에서는 흙먼지가 떨어져 내렸다.
그 뒤로 세크리티아 왕궁의 첨탑 정도의 거대함을 지닌 불의 회오리들이 용솟음치며 대지를 뚫고 올라왔다. 그것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앨런을 향해 뻗어나갔다.
드센 불길이 앨런을 덮치기 직전, 담담한 눈으로 그것을 지켜보던 앨런의 손이 움직였다.
숲을 이루던 대기가 멈추고 불기둥 주변의 산소가 모조리 사라졌다. 삽시간에 번져오던 불기둥이 허무하리만치 식어버리며 형태를 잃었다.
7서클의 플레임 스톰을 손짓 한 번으로 사라지게 한 것이다. 앨런 마나실이.
"과연."
예상했다는 듯, 멀찍이 서 있던 아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직후 거대한 마력의 파동이 앨런의 사방에서 느껴졌다.
- 휘이잉······.
- 사아아아······!
바람이 밀려든다.
하늘에서 뻗어내린 바람의 회오리와 대지에서 솟아오른 회오리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앨런을 향해 짓쳐들었다.
앨런이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아델리아가 서 있던 곳의 바로 뒤에서 나타났다. 동시에 아델리아가 지워지듯 사라지더니 방금 전 앨런이 있던 곳에서 튀어나왔다. 아델리아와 자신의 자리를 바꿔버렸다.
아델리아의 입가에 감탄한듯한 미소가 어렸다.
- 쿠아아아!
대지가 울린다. 앨런의 발 밑이 쑥 꺼지는 듯한 느낌이 나더니 바닥이 갈라지고 서로 멀어졌다. 그 위로, 조금 전 아델리아가 만든 집채만한 회오리가 아델리아를 지나쳐 앨런에게로 뻗어나갔다. 동시에 땅 속에서 솟아오른 여러 개의 불기둥이 마치 덩굴손처럼 가지를 뻗어 앨런의 발목을 붙들었다.
- 따악!
앨런의 손 끝에서 경쾌한 소리가 났다.
마법사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 지진이 멎었다. 서로 갈라지며 멀어지던 대지가 다시 움직여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 강제로 일어난 지진을 되붙인 앨런이 아델리아를 향해 다시 팔을 뻗었다.
- 쿠구구궁!
- 쿠와아앙!
아델리아가 밟고 선 대지가 거대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산산히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도 보이지 않을 아래를 향해 떨어져내렸다. 디딜 곳을 잃은 아델리아의 몸이 사라지더니 또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쪽의 바닥이 무너져내렸다.
땅 속 먼 곳에 부글거리는 용암이, 마치 아델리아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붉은 아가리를 내밀고 있었다. 조각나 추락하는 바위를 잠시 디딘 아델리아가 다시 다른 곳에서 몸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곳에,
- 콰아앙! 콰광! 콰앙! 쾅!
하늘의 별이 떨어져 내렸다.
강제로 끌어당겨져 지면에 추락한 별 조각 하나하나가 대지 위에 깊은 생채기를 냈다. 실드가 소용없음을 안 아델리아가 살짝 웃으며 다시 먼 곳으로 워프했다. 그 후 앨런을 향해 팔을 뻗었다.
- 쉬이이익!
바람이 소용돌이친다. 그 안으로 예리한 돌조각과 얼음 조각, 그리고 불의 기둥이 모두 섞여 들어갔다. 그것을 확인한 앨런의 발 밑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든다. 앨런 주변의 중력을 움직여 앨런을 묶었다.
한꺼번에 다섯 종류의 마법을 구사하는 것.
단순한 7서클이기 때문에 가능한 마법이 아니었다.
히나에게 사실을 전해듣지 않았으나 알 수 있었다. 앨런의 입에 부드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괜한 치기는 아니었구나."
어쩐지 8서클을 앞에 두고 지나치게 여유롭더라니.
앨런이 손을 들어올렸다. 팔을 묶고 있던 중력의 힘은 이미 오래전에 강제로 되돌려두었다.
곧 앨런이 짧은 주문을 외기 위해 입을 연 그 때.
- 소란하구나.
팔랑, 팔랑, 하고.
검은 나비 한 마리가 고요히 날아와 앨런의 손 끝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