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장. 나락으로, 당신을(2)
발을 옮겨감에 따라 새카만 망토가 너울거린다.
한쪽 어깨를 뒤덮은 검은 깃털이 함께 흔들렸다.
다시 눈을 뜬 이래 칼리안은 줄곧 검은 옷을 입었다. 언제는 검은 색 옷을 안 입었느냐 할지 모르지만 이 정도로 유난스럽게 검은 색을 고집한 적은 없었다. 아마 메를린이 알았다면 이 극단적인 모습에 대해 분명히 한 소리를 했을 터였다.
셔츠와 재킷, 바지는 물론 장신구까지 전부 다 검은색 일색이었다. 검은 단추, 망토를 여미는 검은 광택의 체인, 셔츠 칼라 끝에 달린 오닉스 핀까지. 무채색 일색인 가운데 색을 내는 것은 붉은 두 눈, 그리고 나비 모양의 루비 브로치 뿐이었다.
"······ 카이리스에서 검은 나비는 죽음을 의미한다지."
시선을 사로잡는 검은 옷.
지나칠 만큼 눈에 띄는 붉은 나비.
칼리안을 보던 이가 혼잣말을 했다. 가슴에 매달린 나비와 칼리안의 걸음마다 흔들리는 망토 자락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났다.
"저리 정성을 들인다니, 나에 대한 마음이 참 한결같지 않더냐."
칼리안이 숨김없이 드러낸 의미를 데블란은 제대로 알아봤다. 죽은 에반도 같은 것을 떠올렸었다는 사실은 몰랐으나 칼리안이 무슨 생각으로 지금과 같은 옷을 입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렇게 잘 알아본 것을 풀이하듯 입에 담은 것에 대해, 곁에 있던 체이스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는 것처럼 작약 모양의 타르트를 입에 넣고 아주 천천히 삼켜냈을 뿐이었다.
"혹여 세크리티아에는 다른 뜻이 있습니까."
"다른 뜻이라. 글쎄."
대신 어느새 데블란의 앞까지 찾아든 죽음의 전령이 질문을 건넸다. 그리고 데블란은 놀랄 것도 없다는 것처럼 칼리안의 말에 대한 대답을 전했다.
"무언가 뜻이 있었는데······ 내가 그것을 그만 잊었구나. 혹 잊지 않고 있다면 알려줄 수 있겠느냐?"
둘의 대화가 시작됨에 따라 음악 소리가 천천히 줄어들더니 이내 멈추었다. 귀족들의 눈과 귀가 둘을 향하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잠시 시간을 두고 데블란을 바라보던 칼리안이 나지막이 대답했다.
"잊지 않았다 하기보다는 모른다 해야 맞습니다. 카이리스 사람이라서."
"카이리스 사람이라······ 하긴 그렇지. 카이리스의 왕자였지."
"그렇습니다."
"그대와의 친밀감이 깊어 내가 그것을 잠시 잊었구나."
귀족들이 술렁였다.
지금껏 데블란은 이렇게 직접적으로 누군가와의 친분을 강조한 적 없었다. 그런데 방금 말은 데블란이 자신에게 노골적인 적개심을 표현한 플란츠와 달리 칼리안과는 친밀하다는 말이 아닌가.
"······ 좋은 의미로 걸러 듣겠습니다."
"기분을 거스를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했는데. 혹여 이 말이 그대에게 결례가 되었다면 사과하지. 양국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이 말을 들은 플란츠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플란츠의 일을 두고 칼리안에게 갚는 것이 뻔히 보인 탓이다. 때문에 적당한 말을 대어 칼리안을 밖으로 내보낼 생각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칼리안이나 체이스를 대신해 '그렇게 친밀해서 당신 자식을 그렇게 대했는지'를 물어보고 싶었으나 지금 그 말만은 꺼낼 수 없었으니까.
"계십시오."
그런데 어느새 돌아온 키리에가 플란츠의 앞을 막고 섰다.
"한 번은 왕세자 저하의 무례함으로 보고 넘어갈 수 있겠으나 두 번은 카이리스의 자만으로 보여질 것이라 했습니다."
"누가."
"왕자님의 말입니다."
데블란이 무슨 말로 또 속을 뒤집으려 할지, 그리 되면 플란츠가 어떻게 나올지를 이미 알고 나섰다는 뜻의 말. 때문에 잠시 인상을 찌푸리는 플란츠의 귀에 저 멀리 서 있던 칼리안의 대답이 들렸다. 의외로 느긋한 목소리였다.
"잠시 잊으실 정도의 친밀감이라 다행입니다, 전하. 조금만 더 친밀했다 여겼다면 플란츠 저하의 목숨을 빼앗을 뻔 하셨으니 말입니다."
"빼앗을 뻔했다니. 그대가 큰 오해를 불러 일으킬 말을 하는구나. 그 일의 배후는 이미 밝혀졌거늘."
오해가 생길만 하기는 하다. 데블란이 죽이려 든 것은 칼리안이었지 플란츠가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지금 칼리안에게 이름이 또 팔렸다. 저렇게 형님 이름 잘 팔아 먹고 있는 정도면 지난 번처럼 앞뒤 안 재고 짖거나 으르렁거릴 걱정은 없는 듯 했다.
"······ 누가 누굴 걱정하는지."
플란츠가 피식 웃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히나는 플란츠의 이름값으로 치료비를 제해줬는데 저 망할 동생 놈은 값 매겨 줄 생각도 않고 참 잘도 팔아먹는다 싶어서 그냥 의자에 등을 기대고 편히 앉았다. 다시 들려오는 데블란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였다.
저 상황에 누군가 나서 줘야 한다면,
"맞습니다, 칼리안 왕자. 플란츠 왕세자와 칼리안 왕자를 바다로 안내했던 이들 중 의심되던 두 명의 기사를 통해 자백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 암살자는 마법사 협회장 메이린 론즈가 사주한 일인 것으로 말입니다."
이렇게.
"물론 그 사실이 곧 아버지께서 연관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기는 힘들다는 것을 압니다. 때문에 의혹을 가지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는 않지만, 그렇다 하여 듣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은 곳에서 섣부른 의구심을 지닌 이야기는 삼가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체이스가 알아서 나설 테니까.
어쩌면 뱀 같은 데블란을 제일 많이 닮은 것은 지금의 체이스가 아닌가. 짖고 무는 놈 보다 더 말이다.
이런 생각이나 하며 체이스가 알아서 잘 나서 준 것을 확인한 플란츠는 이제 정말로 신경쓰지 않고 소원이나 계속 고민하기로 했다. 루시와 안네 오래오래 살게 해달라 하려다 조금 더 고민을 해보기로 했다. 루시와 안네 말고, 르메인이 무병장수해서 그 머리 아픈 자리 서로 떠넘기느라 바쁠 날 빨리 돌아오지 않게 해달라는 것도 말고, 플란츠 스스로를 위한 소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렇다면 체이스 왕세자께 그 일에 대한 정확한 조사를 믿고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자칫했다면 카이리스의 왕세자께서 큰 화를 당할 뻔했던 사건이라 우리 역시 이대로 무마하기 어렵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이렇게나 많으니, 모두가 있는 곳에서 확답을 듣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차피 그 일은 내가 제대로 확인 중에 있으니까요. 플란츠 왕세자 뿐 아니라 내 어머니의 사고 역시 연관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체이스 왕세자께서 약속해주신다면 우리도 다른 말 없이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칼리안이 잠시 뒤로 돌아 주변을 훑어봤다. 그리고 다시 데블란 쪽으로 고개를 돌려 말을 맺었다.
"······ 양국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자신의 말을 고스란히 돌려주는 소리에 데블란이 작게 웃었다. 칼리안도 똑같은 얼굴로 웃으며 데블란을 마주 봤다.
그리고 그 순간, 칼리안의 주변으로 미약한 마력의 흐름이 돌며,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을 반투명한 사일런트 막이 펼쳐졌다.
"갑작스런 대화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물의 정원에서 작별 인사를 이미 드렸었는데 급한 사정이 있어 다시 이야기를 청하게 되었습니다."
칼리안의 남은 말이 데블란의 귀로 들어왔다.
데블란의 죄에 대해 체이스의 입을 빌어 확답을 받아낼 겸, 앨런과 테일란이 준비를 모두 마칠 때까지 기다릴 겸, 잠시 데블란의 시선을 가져왔던 칼리안이 말을 이었다.
"덕분에 소중한 시간을 마련하게 되었으니."
"이런. 그랬던 것인가. 괜스레 반가워하였군."
데블란이 웃었다.
갑작스레 걸어와 이야기를 이어간 진짜 의도를 이제 알았다. 기껏해야 암살자 배후를 밝히라며 우는 소리나 할 줄 알았지 레이지안 린 후작의 일에 손을 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세크리티아와 카이리스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라도 당장은 나서지 않으리라 장담하고 있었지 않나.
"의외의 선택을 하는구나. 밖의 일에 네가 나설 줄은 몰랐는데."
"화가 치밀면 생각보다 더 못 참는 사람이라서. 홧김에 체이스 형님께 이 정도의 도움은 주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이 일에 네가 끼어든다면 이 나라가 전쟁에 휩싸일텐데. 상관 않겠느냐."
칼리안이 데블란을 바라봤다.
'데블란은 아우님이 이 일에 먼저 손을 대리라고 생각 안 할 텐데.'
'사실이니까요. 이 일에 제가 손을 대면······.'
'전쟁 안 나. 손 대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곧 칼리안의 입가에 예쁜 웃음이 그려졌다.
"나 하나 끼어드는 정도로는 전쟁 안 납니다. 그래서 상관 안합니다."
"그리 생각하느냐."
"데블란, 당신만 없다면."
"그래."
별 것 아니라는 듯 답한 데블란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사일런트 막 밖에 선 시종장을 향해 걸어가 칼리안과 체이스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명을 전했다.
"왕궁을 향해 모여드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네, 전하."
"치우거라. 전부 다."
쫓아보내지 말고 전부 다 죽이도록 명령을 했다.
칼리안이 혼자 끼어들지 말고 앨런의 힘까지 제대로 끌어들이도록. 그리하여 데블란이 앨런을 대비해 숨겨두었던 것을 꺼내도 정당방위로 보여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 * *
세크리티아 왕궁의 내성 앞.
긴장감 가득한 얼굴의 기사와 병사들이 도열한 채 성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멀찍이 몸을 드러내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앨런이 쓴 입맛을 다셨다.
"저 꼬락서니를 왕자님이 안 보아 다행이지 않은가."
언젠가의 어느 날에도 비슷한 모습이 있었으리라.
성문을 지키는 기사들. 그리고 그 앞으로 나타나 왕궁을 향해 움직이는 이들 말이다.
"왕자님의 말을 들어보자면 세크리티아의 국경 안쪽까지 병사들을 옮기지는 않았던 모양이니 그나마 그것이 어찌나 다행인지."
진심어린 안도가 반, 안타까움이 반.
들을 이 없는 말을 중얼거린 앨런이 큰 숨을 들이쉬었다. 기억나지 않는 일에 대한 남은 감상은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은 해야 할 일에 먼저 신경을 집중했다.
- 우웅!
이제 갓 8서클이 된 마법사가 마력을 모았다.
대기가 진동하는 듯한 느낌이 일며, 일반인이라 해도 잠시 뒤를 돌아볼 정도의 엄청난 기운이 서로 충돌하며 거대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손에 모여든 기운이 일렁이는 느낌을 자아냈으나 그 뿐, 앨런의 손에 모인 마력에서는 그 어떤 색도 보이지 않았다. 속성의 한계에서 완벽히 벗어나게 된 까닭이다.
곧 앨런의 손 끝이 저 멀리 내성 앞을 가리켜 보였다.
그와 함께, 도열해 있던 기사들이 맞은편의 땅 위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겨울 이 밤에 그것이 무슨 징조일지를 따져보던 이들은 곧 검을 다잡으며 알 수 없는 일에 대비했다.
- 촤아아악!
거의 동시에 멀쩡한 땅 위로 거대한 마법진 하나가 번개같은 속도로 새겨지기 시작했다. 어둠을 잠시 밝힐 듯한 하얀 빛이 몇 번을 명멸하다 번갯불이 튀어오르는 듯한 강렬한 섬광을 일으켰다.
- 화아악!
대지 위의 마법진이 눈부실만큼 새하얀 빛을 냈다.
그에 대해 기사들이 어떤 대응도 하기 전에, 마법진의 흰 빛이 곡선을 그리며 치솟아 올라가다 어느 한 지점에서 일제히 만났다. 왕궁의 앞에 거대한 반구가 생긴 듯한 형상을 만들어냈다.
스스로의 마법에 집중하느라 그 장관을 눈에 담지 못한 앨런이 짧은 시동어를 내뱉었다.
눈부신 빛이 공기 사이로 스며들며 조금씩 사라져갔다. 기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을 바라봤다.
"후작, 레이지안 린이다."
그때, 이와 같이 스스로를 소개하는 말이 들렸다.
밝은 빛에 잠시 흐려졌던 시야가 돌아온 것을 느낀 기사단장이 앞을 바라봤다. 기사단장의 눈에 큰 당혹감이 어리는 것이 앨런의 눈에도 보였다.
검은 복면의 무수한 이들, 그들의 손에 들린 마법 등불. 누가 보아도 일반적인 경우로 왕궁을 찾았다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으니까.
"후작께서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이대로 전하를 만나뵙고 말씀을 드릴 것이 있어 왔다."
둘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앨런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이것까지였다. 레이지안의 곁에는 테일란이 있을 것이고 이 일은 어디까지고 저들 손에서 해결이 되어야 할 문제였다. 이 이상 앨런이 끼어든다면 이 일은 정말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릴 테니까.
- 따악!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앨런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함께 성문 쪽을 확인하던 앨런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런 사실은 모를 기사단장이 검 손잡이 위에 올린 손은 그대로 둔 채로 입을 열었다.
"린 후작님. 성문은 열 수 없습니다. 돌아가십시오."
"들어가겠다."
"돌아가십시오. 사병들을 이끌고 왕궁을 찾는 것은 규율에 어긋납니다."
방문 목적을 몰랐던 것처럼 말하고는 있었으나 이미 진작부터 수비 태세인 것을 보면 이 일의 발단과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는 이는 없는 듯 보였다.
"왕궁 앞까지만 다가갈 생각이다. 그 곳에서 전하를 만나고 다시 돌아 갈 예정이니······."
"더 이상의 경고는 없습니다. 돌아가 주십시오."
"정말 이 자리에서 서로 검을 뽑아야 돌아가겠느냐."
"왕명을 따를 뿐입니다."
"어느 왕의 명 말이더냐. 이 왕궁에 제대로 된 왕이 있더냐."
"······ 우리는 그저 왕의 기사입니다. 후작."
그것이 제대로 된 왕이든.
제대로 된 왕이 아니든.
곁에 서 있던 테일란으로부터 낮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저들은 레이지안의 곁에 있는 것이 테일란임을 몰랐다. 모두 다 같은 옷을 입었으니까.
때문에 테일란 역시 기사임을, 수비대원들은 알지 못했다. 결국 한 발을 나선 테일란이 제 손으로 키워낸 기사들을 향해 검을 써야 할지도 모를 상황에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검 손 잡이에 힘을 주려다 다시 풀었을 무렵.
- 쌔애액!
날카로운 파공음이 테일란의 귓가에 꽂히듯이 들려왔다. 화살이 향하는 곳에 있던 화살촉을 레이지안은 보지 못했다.
테일란은 검를 뽑지 않았다.
- 카앙!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과 날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며 쇳가루 섞인 스파크가 일었다.
그렇게 찰나의 시간이 지난 뒤.
툭, 하고 검에 막힌 화살이 멀찍이 날아가 떨어졌다.
달빛에 아주 잠시 반짝이다 바닥을 뒹구는 것을 본 레이지안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테일란이 레이지안이나 화살 쏜 쪽이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곳.
레이지안의 바로 곁을 지켜야 할 테일란보다 한 발 앞서 나간 곳. 발이 무거운 만큼 섣부르게 검을 뽑아들 수도 없을 테일란을 대신해 멀리서 날아오는 화살촉을 미리 막은 이가 있는 곳.
"설명하거라."
왕의 기사 말고, 왕세자의 기사 말고, 후작 말고, 후작의 사병 말고. 다른 나라의 왕세자 말고, 다른 나라의 왕자와 대마법사 말고.
"저하의 기사가 왕궁에 가는 것을 막는 것은, 무슨 이유이냐."
복면 쓴 테일란을 한 눈에 알아 볼 이들.
그들이 있는 곳을 본 테일란의 입가에 웃음이 어렸다.
올곧은 명분 없이 아비를 쳐낸 아들은 폭정을 이을 뿐이고, 귀족과 타국 왕자의 힘만을 등에 업은 새로운 왕은 그저 나약할 뿐이라.
앨런의 힘이 닿은 거대한 날개를 달고 일순간에 모여든 이들. 검은 옷을 입었으나 아무도 얼굴을 가리지 않은 이들. 이름을 감추고 살아왔으나 이제는 조금 다른 생을 살게 될 이들.
"방금 전의 공격은 내 주인을 향한 선전포고로 보아도 되겠느냐."
체이스의 새들이 정당하고 강인한 검을 드리웠다.
왕궁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