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의 왕자로 사는 법-300화 (301/527)

제53장. 이성이 없는 듯하여(3)

칼리안이 또 한 번 머리를 감싸쥐었다.

본궁에 새로 마련된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뒤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마셨는데."

"마셨는데, 라니요."

차 마시지 말랬더니 아주 쭈욱 들이켜고 오셨다는 말을 이제 들었다.

왕궁에서는 루이즈가 왜 쓰러졌는지에 대해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체이스의 새들을 통해 전해듣기로 귀족들 사이에 조금씩 이야기가 돌고 있으나 아직은 그 소리가 커지지 않고 있다 하였다. 지금의 카이리스라면 이미 세뉴 관으로 달려왔거나 혹은 아스트리샤 거리에 모여든 귀족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했을텐데 세크리티아는 그렇지 않았다.

사리분별 할 줄 알고 목소리 키울 줄도 알면서 데블란에게 반감을 가진 귀족들은 이미 모두 죽었다. 사리분별을 못하거나 목소리 키우는 법을 다 잊어버린 귀족들만 살아남았던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그러니 귀족들 생각과 행동이 다 타고 남은 양초의 심지만큼 짧고 약할 수밖에 없지 않나.

이런 상황에 데블란을 찾아간 플란츠는 귀족들에게 상당히 좋은 먹잇감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란츠를 죽여야 되겠다는 계획이 아직 바뀌지 않았다면 루이즈가 겪은 일이 다시 재현되지 않을까, 루이즈가 의도한대로 체이스와 손을 잡는 쪽으로 귀족들의 의견들이 기울었다면 어떻게든 체이스에게 도움 될 일을 하려 들지 않을까, 하고.

데블란과 독대를 했을 당시에는 플란츠가 세자위에 올랐다는 사실이 미처 퍼져나가기 전이었지 않나. 게다가 플란츠가 독으로 쓰러지면 루이즈의 일도 함께 알려질 것이고, 플란츠가 귀족들에게 보복을 하고자 하더라도 데블란과 손을 잡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그래서 조심하라고 말했다.

플란츠는 이미 알고 있다고 대답했었다.

"그걸 왜 처······ 왜 드셨는데요."

"다시 생각해보니 안 넣었을 것 같아서."

"독을 넣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마셨는데 알고 보니 들어있었으면 어쩌려고 그러셨습니까."

"안 들었잖아."

어지간한 독에는 안 죽는 것까지 보고 배우셨는지, 축복 믿고 참 잘도 날뛰시는 고아하고 존현하신 우리 형님 저하 이 자식 너 때문에 내가 아주 늙어 죽을 것 같다는 얼굴이 된 칼리안이 조용히 눈을 내리떴다.

만약 누군가 인내심의 한계를 극복해보고 싶다면 카이리스 3왕자 노릇을 해보면 될 것 같다. 하루 아니라 한 시간만 나 대신 누가 내 자리 좀 맡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기분이다. 그 동안 나는 그냥 세크리티아 2왕자 하겠다고.

잠시 후, 회복이 되어서인지 혈압이 올라서인지 몰라도 어쨌거나 혈색이 많이 돌아온 빨갛고 고운 입에서 가는 미성이 흘러나왔다.

"······ 히나."

분명히 누구든 차에 독을 넣으려 할 테니 마시려다 말고 내려놓는 것까지만 하고 절대로 입에 대지 말라고 내가 그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경고를 했는데 저기 계시는 단풍나무 새싹 뒷면같은 세자 저하 저 분이 그걸 홀랑 마시고 왔다고 미주알고주알 싹 일러바쳤다.

오래지 않아, 히나의 손을 보던 플란츠의 입에서 다시 한 번 '알았어'가 끝없이 튀어나오는 것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칼리안이 오트밀 바나나 스프를 마저 비웠다. 굵직한 스테이크 열 덩이 쯤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히나가 그러지 말라고 했다. 계속 혼나고 계시는 저기 저 분과 달리 히나 말 잘 들을 거니까 열심히 잘 참았다.

그 뒤에는 고생 많이 한 우리 히나 맛있게 밥 먹는 것을 배부른 얼굴로 지켜보다가, 올리브 오일에 구워낸 뒤 검은 소금으로 간을 한 스테이크 한 덩이를 싹싹 다 먹기 시작하는 파릇파릇한 왕세자를 보며 애꿎은 물을 한가득 마셨다.

"키리에."

"네. 왕자님."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딸기 케이크와 딸기 아이스크림까지 잘 먹은 우리 히나 어서 들어가 푹 자라고 들여보낸 칼리안이 입을 열었다.

"스승님께서 너무 안 오시는 것 같아."

"협회. 파란 머리 미친 마법사 늦어서."

보란듯이 딸기 케이크까지 먹던 플란츠가 키리에 대신 대답을 전했다.

지금 칼리안의 손목과 손에는 팔찌도 없고 반지도 없었다. 잠시 동안이라도 마법 쓰지 말고 쉬어야 한다는 히나의 말을 아주 잘 들어준 플란츠가 식사 전에 다 뺏어갔다.

"헤르츠 경 찾으러 가신다는 것 말고 또 다른 말씀은 없었습니까."

"없었어."

"거짓말."

"반말."

"거짓말 마십시오, 저하."

플란츠가 미간을 찌푸렸다.

플란츠가 하는 말을 이제 반쯤은 걸러듣기로 한 칼리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일국의 세자께서 그리 연약하다던 동생 앞에 거짓말이나 꺼내놓으시면 어찌합니까."

플란츠가 민트 잎이 가득 들어간 탄산수를 아주 시원하게 쭉 마셨다. 당연하겠지만 지금 칼리안은 절대 못 마시는 음료다.

"그리 연약하신 내 아우님께서는 당장 휴식부터 취하셔야 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히나가 머무는 방이 어디였는지를 떠올려보려는 희멀건한 얼굴을 마주한 칼리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 누구 때문인지 혹시 다 까드셨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애써 참은 칼리안이 말했다.

"걱정이 되어서 그럽니다."

"누가 누구를."

"제가 스승님을 걱정하는 거죠."

"잘 짖네."

아.

시스파니안이시여.

"······ 그럼 저 대신 바닷가에서 봤던 그 기사 두 명을 좀 만나봐주실 수 있습니까."

"알았어."

"지금 말고, 스승님 돌아오시면 스승님과 함께요."

"알았어."

"헤르츠 경 쪽에서 가지고 있는 자료도 봐주십시오. 급히 오느라 제가 자세히 보질 못했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을 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알았어."

"키리에 말로는 린 후작 있던 곳에 사람이 드나들지는 않았다 하는데 혹시 모르니 그 쪽도 계속 확인해가면서,"

"칼리안."

"네."

"가."

하루 이틀 칼리안 없다고 큰일 나는 것 아니다.

앨런 뿐 아니라 체이스와 플란츠가 있으니 당장의 일들에 칼리안이 직접 뛰어들지 않아도 되었다. 자신이 눈 뜨고 걸어다니는 꼬락서니를 보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 오히려 더 방해가 될 것임을 칼리안도 알았다.

일 좀 미뤄진다 해서 사고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서로 대화하지 않은 그 사이에 일이 잘못되어 죽을 걱정도 이제는 없다. 앨런이 있으니까.

"······ 네."

결국 칼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키리에."

"네, 왕자님."

데블란과 독대를 마친 앨런은 일단 마법사 협회를 찾아가겠다는 말까지는 전해도 된다 했으나 차에 독이 들어있었다는 것을 칼리안에게 굳이 전하지 않도록 부탁했다.

칼리안이 예상한 것과 반대의 상황.

플란츠가 아닌 앨런에게 누군가 독을 건넸음을 칼리안이 알게 된다면, 그 어여쁜 머릿속에 그나마 남아있는 실낱같은 이성은 싹 사라지고 차에 독을 넣은 겁없는 놈들을 당장 잡아 죽이겠다며 나설 것이 분명했으니까.

"쉴게. 잠깐 옆에 있어."

"알겠습니다."

"다른 일 있으면 깨워주고. 꼭."

"네."

그 덕에, 누군가 플란츠의 찻잔에 장난을 칠 수는 있겠지만 설마하니 앨런에게 그런 짓을 벌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칼리안은 다른 생각 없이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키리에를 곁에 둔 채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비척비척 침실로 들어가 눕더니 곧 잠드는 칼리안을 보던 플란츠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 달칵.

그리고 칼리안의 방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축복의 힘과 히나의 치유 덕에 플란츠의 상처는 거의 다 회복됐다. 칼리안과 대련을 좀 오래 한 날, 혹은 파란 머리 미친 마법사와 밤새 서류를 정리하고 난 다음날 정도의 컨디션이라 하면 비슷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 알아보려는 참이었다.

천하의 앨런 마나실이 마실 차에 독 넣었다는, 칼리안이 예측 못할 만큼 간이 부은 놈이 대체 누구인지.

* * *

손에 들린 모이를 콕콕 쪼아먹는 새끼 오리가 귀엽다.

"마나실 남작이 마실 차에 독이라니. 우리 엄마나 전하나 둘 다 그렇게 생각 없는 사람 아니에요. 둘 중 누구 하나라도 그 정도로 머리가 나빴으면 이 나라는 진작에 뒤집어졌을 텐데 겉보기로는 멀쩡하잖아요."

"린 후작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린 후작의 상황을 주시하는 겁니다."

"네. 이해했어요. 지금 이 나라에서 귀족들을 움직이거나 제온이라는 그런 세력과 암암리에 손을 잡을 수 있을 만한 인물이라면 우리 엄마가 제일 유력하다는 건 나도 아니까. 그러니까 인질 역할을 시키든 보호하려는 것이든 일단은 상관 안하겠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모이를 하나씩 집어주다, 손바닥 위에 모이를 잔뜩 올려 오리를 향해 내밀어보인 아리안느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얘 이름 뭐예요? 되게 귀엽다."

에일라와 함께 루이즈의 별장에 잠시 있으라 말했는데 부득부득 따라왔다. 그러더니 마법사 협회에 들어오자마자 코코를 쓰다듬고 모이를 주어 가며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아르센도 없었고 먼 길을 떠나야 했고 왕궁에서 코코 봐 줄 사람을 구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코코의 작은 집을 통째로 마법사 주머니에 넣은 채 숲으로 간 뒤 한바탕 싸움을 마치고 돌아왔던 에우리아가 긴 한숨을 쉬었다.

함께 있던 레이첼과 에일라는 아무 말 없이 아리안느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몇 마디 대꾸를 해주던 아르센은 입을 몇 번 달싹이다 목소리를 냈다.

"많이 늦었습니다. 시간 끄는 것 그만하시고 자료 주십시오."

"아. 들켰어요?"

"영애가 나를 믿지 못하는 것 같아 협회까지는 다른 말 없이 함께 왔습니다. 협회의 마법사들은 체이스 왕세자님의 세력이라 들었습니다. 이곳이라면 안심할 수 있을 테니 이제 그만 자료 주십시오. 다른 수작 안 부리고 체이스 왕세자님께 전하겠습니다."

후궁 루이즈가 건네준 자료.

아리안느는 별장에서 잠시 칼리안에게 보여주었고, 그 후 다시 돌려받았다. 그리고 난 뒤에는 좀처럼 다시 건네주질 않고 있었다.

"이곳의 귀족들이 그 안에 적힌 것을 보아야 체이스 왕세자님의 손을 잡을 수 있다 들었습니다. 그러니······."

"내가 못 믿는 건 그 쪽이 아닌데."

후작인 모친은 왕궁에 감금되어 있고 정혼자인 체이스와는 연락이 되질 않는 상황. 싸움도 못하고 마법도 잘 못 쓰는 후작의 영애. 그런 아리안느가 칼리안의 사람들로 가득한 이 곳에 선 채 주눅들지 않은 얼굴로 아르센을 쳐다봤다.

"칼리안에게,"

아리안느가 이렇게 운을 떼기가 무섭게, 앞에 서 있던 파란 머리의 마법사로부터 냉기 가득한 피어가 흘러나왔다 잦아들었다.

"아, 미안. 실수했네요."

"네. 나도 실수했습니다."

칼리안과 서로 이름을 부르며 지내기로 했다는 것을 설명하는 대신 가벼운 사과를 건넨 아리안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칼리안 왕자님에게 이 곳에 오지 말아달라 부탁을 했어요. 그런데 '그' 플란츠 왕자님과 카이리스의 군대를 지휘하는 사람들과, 카이리스의 마법사 협회장을 데리고 왔어요. 그러더니 당신들의 그 대단하다는 대마법사까지 불러왔고요. 오자마자 큰 사고들에 휘말리는 바람에 조금씩 손을 잡아가던 귀족들은 다시 동요하고 있고 결국은 후궁님까지 돌아가실 뻔했다는 말을 듣게 됐는데, 칼리안 왕자님을 믿고 후궁님의 자료를 당신에게 넘겨요? 제정신으로?"

상당히 미쳐있으나 이성이 없는 것은 아닌 아르센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아리안느의 말과 의심이 과하다 여겨지진 않아서였다.

"영애의 말은 이해합니다. 데블란이 왕자님과 베른 자작에게 손을 뻗지 않았다면 우리 역시 이 곳에 오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왕궁으로 다시 돌아갈게요. 저하에게 내가 직접 전해줄게요. 아니라면 그냥 여기서 나가게 해 줘요. 내가 알아서 움직일 테니까."

"린 영애. 우리는······."

난처함 가득한 얼굴이 된 아르센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때, 어디선가 검은 그림자 하나가 휙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더니.

- 퍽!

무언가를 사정없이 내리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아리안느가 정신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 터억!

후작의 영애가 기절하는 것을 본 모두가 당황한 가운데, 재빨리 다가와 아리안느가 바닥에 머리를 찧지 않도록 잘 잡은 뒤 소파에 기대 앉힌 에일라가 아리안느의 가방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아르센에게 툭 던졌다.

"가져가세요."

칼리안은 자료가 필요하다 했고, 아리안느는 죽으면 안 된다고 했다. 때려서 기절시키고 품을 뒤져 자료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말은 안했다. 그럼 된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에일라는 참으로 평온한 표정이었다.

칼리안의 새 따까리가 타국 후작의 딸을 때려눕힌 것을 눈앞에서 목도한 아르센이 얼마나 놀랐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얼굴이었다.

"······ 아······ 그래. 고······ 맙네."

세크리티아 사람들은 지독하다더니.

그 말이 맞나보다.

* * *

한 명은 아는 얼굴.

또 한 명은 낯선 얼굴.

"아리안느는 무사히 잘 있습니까?"

낯선 얼굴 쪽에 두었던 호기심 가득한 눈을 거둔 중년의 여성이 체이스를 향해 고개를 돌려 물었다.

"칼리안 왕자의 사람들과 함께 있습니다."

"말을 잘 안 듣는 아이라서 걱정이 큽니다."

"위험한 이들이 아니니 서로 친하게 잘 지낼 겁니다."

너무 친해서 한 명은 자료 못 준다며 고집을 부렸고 한 명은 그런 사람의 목을 내리쳤다. 물론 이곳의 누구도 모를 이야기였다.

곧 체이스가 지금 있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전했다. 사적인 생각은 배제한 채로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을 순서대로 전해주기만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모두 들은 이가 플란츠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렇다면 카이리스의 2왕자이신 플란츠 왕자님이시겠군요. 맞습니까?"

낯선 얼굴을 향해 스스럼없는 인사를 건네오는 중년의 여성을 향해 플란츠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을 전했다.

"왕세자."

"아. 그 사이에 호칭이 바뀌었습니까."

플란츠는 다른 말 없이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체이스는 플란츠의 세자위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플란츠가 그렇게 해달라 부탁을 했었다.

후작 레이지안 린.

하얀 머리는 없지만 주름살이 아주 조금 진 얼굴에 아리안느와 꼭 닮은 색의 눈을 가진 이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축하드립니다. 오래도록 축하를 드릴 수 있는 일은 아니겠습니다만. 당분간은 누리십시오."

정작 카밀론에 갈 생각은 없으면서 직위만 가져왔던 것을 안다는 듯한 말에, 플란츠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잘 아네."

"가두어져 있다 해서 세상 살필 눈이 가려지겠습니까."

키리에는 지난 밤부터 지금까지 린 후작에게 드나든 이가 없다고 말했었다. 그랬으니 후작은 분명 방금 전에 알게 된 '왕세자'라는 것만으로 플란츠가 왜 그 자리에 올랐는지를 가늠해낸 것이었다.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소리이기도 했다.

"마나실 남작에게 독을 건넨 것이 저는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나가고 싶어 할 만큼 이곳이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저하."

이 말을 들은 플란츠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체이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저 말을 믿는 건가.

- 린 후작을 온전히 믿는다기 보다는 다른 걸리는 부분이 있어 그렇습니다.

한동안 말 없이 체이스와 린 후작을 보던 플란츠가 체이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당신의 그 잘난 기사. 안 보이는 것 같은데.

테일란 카스트린.

언제나 체이스를 따르던 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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