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의 왕자로 사는 법-288화 (289/527)

제51장. 사춘기라 그러시나(3)

플란츠가 웃고 있었다.

칼리안은 웃지 않았다.

목을 파고든 검에는 신경쓰지 않고 웃고 있는 놈이 하나, 그런 놈 목에 칼 들이대고 안 웃는 놈이 하나.

지금 이 순간 누가 더 돌았는지 알기 어려운 두 놈이 마치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듯한 태도로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한참이 지나도록 기사들은 둘 사이에 끼어들지 못했고 아르센은 끼어들지 않았다.

- 뚝, 뚝, 뚝.

깊이 베인 상처에서 붉은 피가 검신을 따라 흘러내리다 뚝뚝 떨어졌다. 달빛 비추는 모래사장 위에 짙은 자국을 남기면서 뚝뚝 떨어졌다.

자신의 것과 똑같은 빛을 내는 핏방울을 따라 잠시 내려간 붉은 눈동자에 서로 다른 글씨가 새겨진 긴 검의 모습이 비쳤다. 아무 말 없이 그것을 일별한 칼리안의 시선이 다시 올라와 플란츠를 향했다.

설명하라는 말을 이 자리에 있던 모두가 들었으니, 칼리안의 손에 들린 붉은 칼날에 숨을 붙들린 플란츠도 잘 알아들었을 터였다. 그러나 플란츠는 그 어떤 대답도 전하지 않았다. 걱정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겁이 없는 것인지 읽어내기 어려운 연두색 눈으로 칼리안을 마주 볼 뿐.

그렇게 얼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칼리안이 주머니에 넣어 둔 회중시계의 초침 소리가 파도소리보다 더 크게 들려온다는 생각을 할 때 쯤.

"내 아우님께서 화가 많이 나셨나본데."

비로소 플란츠가 입을 열었다.

다만 그것은 대답이 아니었다.

"설명부터. 듣겠습니다."

"아니."

목에 닿아있던 검에 상처가 벌어지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고개를 가로저은 플란츠가 팔에 힘을 줬다. 진작부터 뽑아들고 있던 검으로, 자신의 목에 드리워진 칼리안의 검을 매섭게 쳐냈다.

- 카앙!

마른 달빛을 받은 검신의 절반이 반짝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칼리안이 건네주었던 그 검을 제대로 휘두른 것이 칼리안의 검을 쳐내는 일이었다. 칼리안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플란츠가 한쪽 입꼬리를 길게 말아올렸다.

그리고 다시 한참 뒤, 나지막한 목소리를 냈다.

"······ 버릇없는 새끼."

흘리듯 내려놓은 목소리를 뒤로한 채 저벅저벅, 검을 집어넣은 플란츠가 자리를 벗어났다. 멀찍이 널브러진 네 구의 시신에는 눈도 두지 않은 채로.

가늘게 변한 눈으로 플란츠의 뒷모습을 좇던 칼리안이 고요하게 잠겨든 목소리를 냈다.

"헤르츠 경, 수정판 챙겨줘요. 기껏 구해다 드렸더니 놓고 가시네."

"알겠습니다."

"기사들 데리고 상황 정리하고 와요. 먼저 갈 테니까."

"어디로 가십니까."

"왕궁."

"가시는 길이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정리는 기사들에게 맡겨두고 함께 가겠습니다."

"더 이상 공격이 있을 것 같지 않으니 괜찮습니다."

"하지만 왕자님. 지금,"

"혼자. 조용히."

"······ 알겠습니다."

고개만 끄덕여보인 칼리안이 발을 옮겼다. 그리고 조금 전 플란츠가 걸어간 길을 뒤따랐다.

결국 가야 할 방향이 같았으니 동행하지 않더라도 같은 길을 걷게 된다. 한 명의 발자국, 한 명의 핏자국, 그리고 두 명의 피냄새가 모래 위에 길게 이어졌다.

연극이 끝났다.

* * *

언제나 평온할 것 같던 목소리 끝에 바람이 인다.

"키리에."

그 목소리가 바람 속에 길을 잃은 새의 날개짓처럼 흔들린 탓에 뒷말이 미처 이어지질 못했다. 하지만 그 끝에 무엇이 붙어있었을지 모를 리 없을 키리에가 고개를 살짝 숙여보이며 답을 전했다. 플란츠가 '밖'으로 불러낸 사람, 체이스를 향해서였다.

"죄송합니다. 비키지 못합니다."

돌아가는 정황을, 정확히는 도대체 한 번에 몇 가지 생각을 하는지 알 수도 없을 플란츠의 속내를 전부 다 들여다보지 못한 것은 비단 칼리안 뿐만이 아니었다. 체이스의 통찰로도 플란츠가 지금 어떤 계획을 실행시키고 있는지 읽어내지 못했다.

아니. 읽어낼 정신이 없다 하는 것이 맞을 터였다.

다만 단 하나.

- 당신이 카이리스에 왔을 때 같이 온 기사들. 데블란의 기사가 아니었을 것 같은데.

- 그렇습니다. 그들은······.

- 테일란 카스트린. 맞나.

- 카스트린 경이 관리하고 있으나 정확히 말한다면 나의 기사들입니다.

- 예전에는 내 아우님이 관리했겠군.

- ······ 맞습니다. 그것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 세크리티아 왕실 바다. 당신 기사 데리고 당장 와. 우리 쪽의 레이첼 그레이스도 같이.

- 플란츠 왕자. 설명이 필요합니다. 왜 그런 것을 묻는지. 나와 카스트린 경을 왜 부르는지. 알겠지만 나는 왕궁에서 오래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 제온의 힘을 쓰는 대사막의 전사들이 찾아왔어. 여기. 내 아우님한테.

- 그들이 어떻게 갑자기 나타났다는 겁니까. 플란츠 왕자는 왜 그곳에 있고.

- 이유가 중요한 것 아니니까. 오라고. 빨리. 그 잘난 기사 데리고.

플란츠는 그 어느때보다 빠르게 말을 했다.

제온의 공격이 있다는 말에 곧바로 가겠다 했던 체이스의 대답을 끝까지 듣지도 않은 채로 통신을 끊었다. 평소와 같이 말이 귀찮아서 설명을 뺀 것이 아니라 설명할 시간이 없어 하지 못했음을 안다.

그러니 당장 가야 했다. 왕궁 밖으로.

"······ 키리에."

"죄송합니다."

키리에는 과거에 대한 기억이 없기 때문에 체이스의 앞을 막을 수 있었고, 체이스는 기억을 가졌기 때문에 키리에를 밀쳐내지 못했다.

무력한 가운데 동생을 잃는 기분을 가늠하는 것과 아는 것이 다른 만큼, '밖'에 나간 동생이 공격받고 있음을 알게 된 체이스의 심정을 키리에가 온전히 알 수는 없었기 때문에. 키리에가 베른을 위해 어떤 죽음을 맞이했던 사람인지, 따라서 지금 키리에가 어떤 심정으로 뛰쳐나가지 않고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지를 체이스는 알기 때문에.

"밖에서 무슨 일이 생기든 체이스 왕세자님께서는 무조건 왕궁 안에 계셔야 한다는 왕자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제온의 공격을 받고 있다 하셨습니다만 지금 상황이 좋지 않거나 정말 급했다면 플란츠 왕자님이 아니라 왕자님께서 직접 체이스 왕세자님께 도움을 요청하셨을 겁니다. 그러니 기다려 주십시오."

그래서 막았고, 그래서 발을 멈췄다.

"왕자님 안 죽습니다."

지금 저 말이 체이스가 아니라 키리에 스스로를 향한 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는 체이스는 다른 대답 없이 가만히 선 채로 키리에를 바라봤다.

그때. 키리에의 심정도 체이스의 심정도 완전히 공감할 수 없을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비키거라."

테일란.

체이스의 뒤에서 둘의 대치를 지켜보던 테일란은, 지금 정확히 무슨 일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은 같았으나 칼리안이 위험하고 체이스가 밖으로 나가고자 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이해를 했다. 때문에 짧게 입을 열며 한 발을 앞으로 냈다.

키리에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테일란의 앞을 가로막았고 테일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지금 누구의 앞을 막고 있는지 아느냐."

"저는 카이리스의 3왕자이신 칼리안 왕자님께 권속된 기사입니다."

테일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체이스 왕세자님이나 카스트린 경은 저에게 명령하실 수 없습니다."

"상관 않는다. 물러나지 않는다면 물러나게 하겠다."

테일란의 말에 검집을 붙든 키리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든지 말든지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막겠다는 뜻이다.

일이 참 엉뚱하게 번진다.

체이스와 데블란의 일에 칼리안이 뱀 사냥을 하겠다며 참견을 하고 그 사이에 플란츠가 끼어든 일이다. 뱀을 잡겠다는 플란츠의 계획에 칼리안이 말려들었고 체이스가 흔들리고 있다.

그 결과 칼리안과 체이스의 충직한 기사들이 한 판 붙게 생겼다.

사실 한 판 붙는다 해서 키리에가 대륙의 첫번째 검인 테일란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겠냐만은, 문제는 키리에가 칼리안의 이름을 입에 건 이상 이것이 단순히 기사 대 기사간의 문제일수만은 없게 되어버린다는 것에 있었다.

"카스트린 경. 그만."

결국은 체이스가 나서서 둘 사이를 막았다.

왕궁 정문 앞에서 두 기사가 싸움 일으키는 꼴을 보일 수는 없지 않겠나.

테일란은 곧바로 발을 물렸고 그것을 본 키리에가 검집을 쥔 손에서 힘을 뺐다.

두 기사의 기싸움 덕분에 이성을 되찾은 체이스가, 칼리안에 대한 걱정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던 머릿속을 차갑게 식혔다.

물론 제온에 소속된 대사막의 전사들과 싸우고 있을 칼리안에게 대화를 걸어 집중을 흐트러뜨릴 짓을 벌일 수는 없는 일이다. 때문에 체이스는 플란츠의 이야기와 자신이 알고 있던 정황을 토대로 지금의 이 갑작스러운 상황들을 하나씩 정리해나갔다.

체이스가 밖으로 나가면 벌어지는 일.

체이스의 기사들. 그리고 제온의 공격.

자신의 발 끝을 내려다보며 한참동안 생각을 정리한 체이스가 키리에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나가지 않으마. 대신 다른 소식이 있거든 알려주려무나. 기다릴 테니."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생각의 끝에서 무슨 결론을 냈는지는 언급하지 않고 이렇게만 말한 체이스가 고개를 돌려 테일란을 쳐다봤다.

"카스트린 경. 잠깐 이야기 좀. 확인할 것이 있어."

"네, 저하."

짧게 대답한 테일란이 체이스의 뒤를 따라 나섰다.

한참동안 그런 둘의 뒷모습을 보던 키리에가 시선을 내렸고 검집 위에 올려 두었던 손을 뗐다.

지금쯤 칼리안의 싸움은 끝이 났을지, 칼리안은 무사할지.

- 다중 특성이라 해도 결국 같은 서클이니까 헤르츠경이 세이렌 경이나 그레이스 경을 재우는 것에 문제는 없을거야. 같은 서클이라 금방 일어날 수는 있겠지만. 만약 둘이 일어나게 되면 그 뒤에는······.

아르센이 앞뒤 안 재고 재워버린 에우리아와 레이첼은 일어났을지, 그리고 에일라는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을지.

사라지지 않고 쌓여만 가는 여러 걱정거리들에 긴 한숨을 내쉰 키리에가 다시 발을 옮겼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칼리안이 일러 둔 것, 플란츠의 뒤통수에 대비한 칼리안의 계획을 마저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 * *

바다를 벗어나 작은 숲을 지나오도록 입을 열지 않았다.

- 다친 곳은 없는지 걱정이구나.

- 무사합니다. 형님께 괜한 걱정을 끼쳐드린 것 같네요.

- 아니다. 아무 일 없다면 되었다.

- 혹시 왕궁 밖으로 나오지는 않으셨습니까.

- 키리에 고집이 어디 보통 고집이어야지.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안에 있으니 걱정 말거라.

다각, 다각.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앞서가는 은백색의 말. 그 위에 앉은 이의 푸른 보랏빛 망토가 흔들거리는 것을 보던 칼리안이 체이스를 향해 물음을 건넸다.

- 다른 일은 없었습니까.

- 그래. 조용하구나. 아버지도, 귀족들도.

귀족들이라는 말에 칼리안이 잠시 숨을 들이쉬었고 체이스의 말이 이어졌다.

- 정확한 이야기는 돌아와서 나누는 것이 좋겠구나. 카스트린 경과도 이야기를 좀 해봐야 해서.

- 네. 알겠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체이스에게 무사함을 알리고 체이스가 무사함을 확인한 칼리안이 눈을 내렸다. 푸르릉, 하고 레이븐이 작은 소리를 냈다.

"괜찮아."

레이븐의 목덜미를 툭툭 건드리며 대답한 칼리안이 다시 앞을 봤다.

곧 레이븐의 발이 조금 빨라졌다.

어떻게 알았는지 에스티나의 발이 조금 느려졌다.

그렇게 두 마리의 말이 나란히 섰을 때 칼리안이 입을 열었다.

"성급하셨습니다."

연극에 임함에 있어 간혹 진심이 담기기도 하는 탓에, 그리고 플란츠가 칼리안을 미끼로 두고 체이스를 불러내려 했음을 확인하게 된 탓에 여전히 조금쯤 날이 서 있고 보다 많은 피로를 담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치는 덧셈 뺄셈이 아닙니다. 생각하시는대로 들어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늘처럼, 변수가 있으리라는 것을 모르시는 분 아니지 않습니까."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를 묻거나 목의 상처가 좀 아물었는지를 묻는 대신 조용조용한 질책을 했다.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플란츠는 대답하지 않았다.

늘 칼리안이 세운 계획을 망친 것은 플란츠였는데 이번에는 반대였다. 플란츠가 세운 계획을 칼리안이 다 망쳐놨다. 물론 칼리안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제멋대로 일을 진행했기 때문임을 잘 아는 플란츠는 다른 말 없이 앞만 봤다.

"그리고. 상대 안가리고 검부터 뽑으시면, 형님 죽습니다."

이 말에는 플란츠도 인상을 찌푸렸다.

멀쩡히 고양이 구경하던 사람이 검 뽑고 서 있을 일이 뭐가 있겠나. 대사막의 전사들과 싸우던 쪽으로 오려던 거겠지. 뭐, 갑자기 나타난 아르센을 그냥 이참에 없애버리고 싶어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덕분에 '사이 안좋은 동생 구해주러 나서는' 꼴이 되어 버린 것을 다시 되돌려놓으려 플란츠의 피를 봤다. 사이 좋은 형제 사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을 데블란이 만에 하나 플란츠 쪽으로 손을 대보려 마음을 먹는 것보다는 목 좀 베이는 것이 낫지 싶어서였다. 화가 났던 것도 맞긴 했지만 그 이유가 더 컸다.

"차라리 말씀을 하셨으면 저도 다른 방법을 생각해봤을 텐데요."

"무슨 얘기."

그 대답 한 번 듣기 힘들다.

덕분에 죽을 뻔 한 게 누군데.

······ 아니지. 산 건가.

"데블란을 속이려 했는데 귀족들이 속았다고. 그래서 동생 목숨 간당간당한 것 구해보려고 하는데 장단 좀 맞춰주라고."

칼리안의 말을 들은 플란츠가 다시 한 번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것도 말 안했음에도 머리 꼭대기에 올라 있다는 표정을 한 저 놈의 새빨간 눈이 도무지 마음에 들질 않아서였다.

"다 아는 것을 물으시는군."

"정원에서 어떤 기사와 이야기하시는 것은 키리에가 대충 들었습니다. 귀족들이 뭔가를 꾸미고 있고 데블란이 관심 많이 가지고 있을 저에게 손을 좀 대볼까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정도로는 알아들었는데······."

"그만 말해. 도착하면 제대로 설명 해 줄 테니까."

"네."

"그리고."

그만 짖으라는 말은 참 많이 들었는데 그만 말하라는 말은 생소하다.

"내 아우님께서 마나가 얼마나 많으신지는 몰라도. 피 냄새 지우려는 헛수고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이 말은 조금 더 생소하다.

조금 놀란 얼굴이 된 칼리안이 그만 말하라는 소리도 잊고 다시 입을 열었다.

"형님 벌써 그 정도도 아십니까. 마나 쓰는 것 생각보다 잘 알아보시네요."

"다물라고. 입."

"네."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플란츠가 칼리안의 말을 다시 막았다. 그리고 에스티나의 안장에서 무언가를 꺼내 칼리안에게 집어던졌다.

얼결에 날아오는 것을 잡은 칼리안이, 손에 들린 붕대를 쳐다보고 피식 웃었다.

"부족할 것 같은데. 더 없습니까."

"없어."

"네."

굳이 기사들을 물리고 혼자 가겠다 했던 이유.

아르센이 걱정하고 레이븐이 불안해했던 이유. 다친 데 없다는 말 대신 무사하다 답하게 만든 이유.

망토에 가려진, 회색 머리 전사가 남겨 둔 허리춤의 깊고 긴 자상에 붕대를 감던 칼리안이 입을 열었다.

"탄생일, 축하드립니다."

"······ 알았어."

사람이 축하를 해주는데 알았다는 대답은 대체 어떻게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럴 땐 그냥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말을 좀 해줄까 하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하기를 그만 둔 칼리안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안 해."

"네."

다각거리는 두 마리의 말 발굽 소리가 길고 검은 밤을 가른다.

가야 할 방향이 같아 결국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둘의 발자국이 단단한 흙길 위에 나란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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