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의 왕자로 사는 법-274화 (275/527)

제48장. 히몰리카 맛있네요(4)

체이스를 잡은 루이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연한 금빛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인다.

놀랄 것이라 예상을 했던 탓에, 눈동자를 움직여 주변을 살짝 살핀 체이스가 루이즈의 손등을 천천히 두드렸다.

"보는 눈이 많습니다. 웃으세요, 어머니."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짧은 한숨을 내쉰 루이즈가 어색하게나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뒤에는 찻잔에 손을 가져가려 하는 듯 보여서, 체이스는 루이즈의 손을 더 꼭 쥐며 말했다.

"차는 그대로 두십시오. 손이 떨립니다."

"체이스."

체이스가 부드러운 웃음소리를 냈다.

"오랜만에 이렇게 이름까지 불러주시니 참 반갑습니다."

"······ 세자는 그 일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작고, 사소한 것.

루이즈의 질문을 들은 체이스의 머릿속에 얼마 전 칼리안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 네가 없었으니 아버지가 무조건 과거와 같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신경을 썼는데, 그러다보니 생각에 밟히는 것이 하나 있더구나.

- 무언가 다른 일이 있었습니까.

- 별장에 다녀온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조금 달랐다. 아버지가 수면향을 올리지 말라 했다던 말은 기억에 없었거든. 그래서 알아보았더니 아무래도 어머니께서······.

곧 체이스는 자신이 알게 된 일에 대해 설명을 했다.

루이즈가 무엇을 했었는지 알게 되어 놀란 이는 비단 체이스 뿐만이 아니었다. 칼리안은 단순히 놀라움이라 칭하기에는 복잡한 감정을 드러낸 뒤 말을 이었다.

- 과거와 달리 이번의 데블란은 어머님이 무엇을 주고 있었는지 알았고, 그래서 향을 올리지 말라 했을 가능성이 높겠군요.

- 이미 눈치를 챘다고 보아야겠지.

- 어떻게 알았을까······ 혹시 어머님과 린 후작이 연관되지는 않았을까요. 과거와 가장 많이 다른 것은, 물론 저의 부재를 제외하고. 린 후작의 행보가 가장 크게 틀어졌으니 말입니다.

치유사.

과거에는 치유사를 물리는 일에 린 후작이 나서지 않았었다.

- 만약 린 후작이 어머님을 도왔다면, 데블란이 린 후작을 조사할 때 어머님이 연관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수 있습니다. 그랬다면 어머님께 관심을 두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 그래. 확인해보마.

이렇게 한 번의 대화를 마친 뒤 체이스가 조용히 움직였다. 그리고 칼리안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아리안느의 어머니이기도 한 린 후작이 루이즈를 도왔다. 데블란에게 올라가는 수면향에 들어갈 독을 준비했다.

체이스가 확인한 내용을 전해들은 칼리안이 담담하게 말했다.

- 별장 쪽은 이미 데블란이 확인을 했을 겁니다. 린 후작을 체포했다면 아리안느조차 모르게 저택도 이미 다 뒤져봤을 테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수면향을 언급했다면 아직 증거를 찾지 못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언젠가 칼리안이 라트란 백작에게 했던 것처럼.

- 이쪽에서 먼저 움직여서 증거를 만들어주기를 기다리는 겁니다.

지레 겁을 먹고 움직여 레넌과 텐실에 신물을 보내려 했던 증거를 만들어오기를 기다렸던 그 때처럼, 데블란 역시.

- 그래. 나도 그리 생각한다. 만에 하나 증거를 손에 두었다 하더라도 내 유일한 약점이라 여길 어머니께 당장 다른 짓을 벌이지는 못할 테니, 아버지가 수면향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에 굳이 겁을 먹을 필요는 없으리라고.

- 네. 맞습니다.

- 다만 걱정은······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너에게 관심을 두게 될까 우려되는구나.

- 아마도 지금쯤이면 그 생각의 끝에 제가 있을 겁니다. 어머님 때문에라도, 저라면 제 정체에 대해 깊은 의심을 하게 될 겁니다.

칼리안을 루이즈처럼 이용할 수 있을 또 다른 패로 생각해도 좋을지, 좋지 않을지. 그것을 가늠하기 위해서.

칼리안과 체이스의 관계를 알게 된다면, 그리하여 반드시 루이즈가 아니더라도 체이스를 쥐고 흔들 약점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에게 병을 안겨 준 루이즈를 굳이 살려 둘 필요가 없어질 테니까.

- 때문에 저에 대해 더 의심하지 않도록 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만. 플란츠 형님은 알든 말든 신경 쓸 필요 없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시더군요. 정확히는 '알아서 어쩔건데' 라고 했지만요. 수중에 넣고 언제든지 목을 비틀 수 있는 사람이어야 약점이 되는 것 아니냐면서.

지금의 칼리안은 더 이상 데블란의 아들이 아니며 언제든지 세크리티아에 검을 겨눌 수 있을 카이리스의 셋째 왕자였으니까.

칼리안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한들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위치가 아니던가.

- 카이리스 왕실과 저 사이의 고리를 끊겠다며 제 정체를 전하께 알리려 한다 하더라도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저 역시 다른 이들은 몰라도 전하께만은 절대로 진실을 인정하지 않을 생각이고요.

세상 모든 이들이 칼리안을 의심한다 해도 칼리안이 직접 인정하지 않는 한 사실을 밝힐 방법이 없다는 것은 여전하다.

- 그러니 동요하시면 안됩니다. 저를 의심한다면 의심하게 두세요.

지금까지 칼리안이 수도 없이 들켰던 것은 굳이 숨기지 않고 순순히 인정을 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데블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 그래. 다만 위험성이 있더라도 증거는 찾아서 없애는 편이 좋을 듯 하구나.

- 네. 제 생각도 같습니다. 다만 분명히 형님을 주시하고 있을 테니······.

- 염려 말거라. 조심하여 모두 없앨 테니.

바닷가.

그 작은 바닷가의 오두막 집.

린 후작과 루이즈가 알고 있고 체이스와 아리안느도 알고 있으나 데블란은 알지 못하는 곳.

그곳을 찾아보도록 했다.

숨죽여 움직인 아리안느가 증거를 찾았고 모두 없앴다.

앞에 앉은 루이즈를 바라보면서 증거를 없앤 것이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 여기던 체이스의 얼굴에 자조 가득한 웃음이 어렸다.

'결국 그 누구도 순백일 수는 없는 것을.'

베른은 체이스를 지키기 위해 그림자에 묻혔다.

루이즈는 그림자를 지워내려 손에 독을 묻혔다.

결국 그 누구도 순백이 아니었으니.

그것이 실로 우스워서.

"어떻게 알았는지는 묻지 말아 주셨으면 하는데, 혹여 어려운 일일까요."

잠시 체이스를 보던 루이즈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체이스는 여느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미소를 다시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수면향은 그저 수면향입니다. 그 안에 무엇이 더 들어 있었든, 그것은 그저 수면향이었던 것으로 해두었으니 아무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빠르게 말하지 않았다.

긴장한 목소리도 아니었다.

언제나와 같이 루이즈의 눈을 바라보면서, 바람도 담기고 햇살도 담긴 듯한 그런 목소리로 루이즈를 향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고 아무것도 감당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에는, 이제부터는 제가 할 테니."

체이스는 언제나와 같은 얼굴과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는데, 너무 많이 달랐다.

"세자. 나는,"

"어머니, 저는."

여전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다시 한 번 흘러내린 루이즈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준 체이스가 루이즈의 시선을 가로채 마주보며 말했다.

"이해하고 있습니다. 설명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어머니께서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무엇을 하셨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괜찮습니다."

그 동안 알고 있던 체이스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애써 접어넣은 루이즈가 마른 목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전하께서 눈치를 채신 듯 하였는데 세자까지 알게 되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내가 조금 놀랐습니다."

루이즈가 살짝 웃는 얼굴을 만들어 보이며 계속 입을 열었다.

"네. 세자의 생각이 맞습니다. 독입니다."

"굳이 이야기 해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시고······."

"전하로 인해 우리가 잃은 것이 너무 많아 억울한 마음에 그리 하였습니다."

우리.

손등 위에 올려져 있던 체이스의 손이 잠시 멈칫하는 것을 느낀 루이즈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디에나 왕비께서 시작하신 일을 내가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천천히, 아주 조금씩."

이번에는 루이즈를 붙든 체이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형님. 혹시 어머님께서 언제부터 아프셨는지······ 기억나십니까.'

말을 마친 루이즈가 잔기침을 했다.

체이스의 눈이 조용히 감겨들었다.

* * *

데블란은 치유사를 부르려 했다. 체이스가 막았다.

엘프들의 치유술을 알아보았으나 거절당했다. 브리지트 숲의 엘프들을 무사히 살려두는 것을 대가로 치유술을 요구했으나 이 역시 거절당했다. 때문에 같은 것을 걸고 일부 엘프의 이주와 더불어 세크리티아와 엘프간의 협약을 요구했다.

그 후 데블란은 르메인에게 서신을 보내 협약이 이루어지는 자리에 히나와 칼리안이 함께 오도록 요청을 보냈다. 그리고 르메인은, 후작이었던 에반이 사망한 일에 세크리티아의 세작이 연관되었다는 사유로 이를 거절했다.

그리고 칼리안이 직접 엘프 도시를 찾아갔다.

브리지트 숲의 엘프들이 데블란에게 해를 입지 않도록 해주겠다는 조건을 두고 세크리티아와의 협약을 맺지 않도록 무산시켰다. 그리고 대장로 나르잔으로 하여금 치유술을 받고자 한다면 어머니 나무가 있는 엘프들의 도시로 직접 방문하라는 말을 전하게 했다.

이러한 나르잔의 소식, 그리고 엘프의 도시 밖에 나왔던 칼리안이 붉은 기운 가득한 오러를 사용하더라는 소식이 데블란에게 전해졌을 즈음.

"칼리안은 소공작에게 볼 일이 있어서."

돌아왔다.

루시가 건강히 잘 지냈는지, 안네는 그 사이 얼마나 자랐는지. 이것이 가장 궁금하고 걱정됐지만 플란츠는 우선 아르피아 궁으로 먼저 왔다.

앨런이 가장 보고 싶을 칼리안이 시오나를 드미레아에게 보내고 플란츠의 두 검을 그곳의 대장장이에게 맡기기 위해 지그프리드 공작저에 먼저 간 것처럼.

"전하께서는 아직 회의가 끝나지 않아 못 나오십니다. 혼나기 전에 도망가려면 지금 가시지요."

이런 말과 함께 연하게 우려낸 딸기차가 앞에 놓였다.

참 오랜만에 맡는 듯한 익숙한 향에, 앨런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플란츠의 눈길이 찻잔에 가 닿았다.

앨런 역시 르메인과 함께 회의에 참석은 했으나 회의고 뭐고 일단 어여쁜 제자 얼굴 보는 것이 제일 중요했던 탓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칼리안 대신 플란츠가 집무실에 들어와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다녀오신 길은 어떠셨습니까."

하지만 앨런은 실망하지 않고 플란츠를 반겨줬다.

"아우님께서 손으로 닭을 잡으시던데."

"다시 놔주었다 하였지요."

"멧돼지도 잘 잡으시고."

"두 마리나 잡아드신 것 같았습니다."

가는 길에 한 마리, 오는 길에 한 마리.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라는 듯 앨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들을 전했다. 그런 앨런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플란츠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바다를 처음 봐서."

앨런이 부드러운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플란츠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창가에 놓인 붉은 꽃 화분에 눈을 두었다. 그것을 본 앨런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집에 가져다 심으려 하였는데 시간이 나지 않아 계속 두었습니다. 혹 불편하시면 말씀해주십시오. 치우겠습니다."

혹시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대로 두었던 화분.

앨런의 예상대로, 불편하지 않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은 플란츠가 입을 열었다.

"저 꽃도 향이 없나."

"없다기 보다는, 단 내가 나는 꽃입니다."

향기 말고 단 내가 나는 꽃.

"세상에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향이 나는 꽃도 있고, 나지 않는 꽃도 있고. 혹은 저리 단 내가 나는 꽃도 있으니 참 신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내가."

그 꽃을 잠시 쳐다보며 입을 열었던 플란츠가 고개를 돌렸다.

단 내 나는 꽃에서 고개를 돌려서는 자신을 위해 놓인 딸기향 나는 딸기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그 따뜻한 차 한 잔을 다시 바라봤다.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왕궁 밖에도 모르는 것 투성이.

왕궁 안에도 모르던 것 투성이.

"······ 재미있었어."

내 동생의 새아빠는 말 들어주는 것을 참 잘 하는 사람이라서, 여행이 어땠는지를 물은 말에 대한 늦은 대답을 전했다.

"다행입니다. 재미가 있었다 하시니."

앨런이 진심으로 기뻐하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다시 말없이 앨런을 보던 플란츠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이번 외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다른 말을 꺼냈다.

"얼굴이 안 좋은 것 같은데. 마법사."

불과 며칠만에 앨런의 얼굴이 좀 수척해져 있던 까닭이다.

매일같이 얼굴을 보는 이들이야 몰랐을 수도 있겠지만 플란츠는 앨런을 꽤 오랜만에 보기도 했고, 또 워낙 기억력이 좋기도 했으니까.

다른 사람을 걱정해주는 말을 꺼내놓는 플란츠를 보면서 앨런이 조용한 미소를 지었다.

"왕자님 눈썰미가 어찌나 좋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일이 많아 요 며칠 잠을 이루지 못하여 그런 것이니 염려 마시지요."

별 일 아니라는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려던 플란츠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그 때에는 왜 그냥 두었을까.'

미세하게 마른 앨런의 얼굴을 알아본 것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문득 이런 의문이 들어서였다.

칼리안이 바뀌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독차를 마시고 있던 칼리안이 말라가는 이유를 눈치채지 못했었다. 칼리안이 바뀐 문제에 더 많은 신경을 썼고, 칼리안이 바뀐 일 때문에 몸이 마르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막연하게만 생각을 했었다. 게다가 칼리안의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었을 즈음에는 플란츠가 조찬에 나가지 않아 칼리안을 아예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칼리안이 바뀌지 않았을 과거에는.

말라가는 것을 자신이 눈치채지 못할 다른 사정이 있었을까. 아니면 독을 마시고 있었음을 알았는데도 결국 실리케를 막지 못했을까.

그도 아니라면······.

모르는 척을 했을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기억이 생기면 그것도 알 수 있게 되려나.'

순간적으로 떠오른 여러 사념을 애써 집어넣은 플란츠가 입을 열었다.

"곧 다시 나갈 생각인데. 그 말도 들었나."

"들었습니다. 세크리티아에 직접 가겠다 하였지요."

플란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해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그리고는 맡겨뒀다는 듯한 말투로 부탁 하나를 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앨런이 잠시 무언가를 생각해보다 대답을 전했다.

"어렵지 않은 일이니 손을 보아 놓겠습니다. 혹시 언제 출발하실 예정입니까."

"검이 다 만들어지면, 그 때 바로."

"칼리안 왕자님께서는 한 달 뒤에 출발하겠다 하였는데. 일정을 앞당기셨습니까."

"세크리티아 국왕이 내 아우님이랑 생각하는 게 똑같다며. 그래서 바로 가려는 건데."

"헌데 왕자님의 탄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축하연을 치르시고 가는 것이 낫지 않을는지요."

플란츠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물 받았으니까 됐어."

생일 선물은 이미 받았고 생일 연회는 필요 없다.

칼리안이라면 착실하게 준비해서 한두 달 뒤에 갈 예정이었겠지만 만약 데블란이 칼리안의 방문을 예상했다면 같은 기간을 생각할 테니 그냥 바로 가겠다는 소리였다.

그런 플란츠를 보면서 앨런이 물었다.

"그리 도와주시는 까닭이 궁금하였는데. 혹시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말해주기 싫다 하려던 플란츠가 잠시 앨런을 봤다.

"······ 매일매일이 마지막이 될 것처럼 참 열심히 살고 있잖아."

앨런의 앞에 놓인 커피를 보다가, 창가에 놓인 꽃에 시선을 두었다. 그리고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넓은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 왕궁 안에도, 숨 트일 만한 곳 많이 있습니다.

칼리안을 대신해 플란츠가 영영 왕궁 안에서 살게 되더라도 너무 답답하게 여기지 말라 알려주듯이 건네진 말.

"도와주면, 내 동생이 조금 덜 열심히 살아도 될 것 같아서."

그 말을 떠올리면서 플란츠가 답을 전했다.

그 뒤에는 '어여쁜 내새끼한테 친구 생긴 줄은 알았는데 형님이 하나 늘었구나' 하는 표정이 된 앨런을 보며 짜증 가득한 얼굴을 하다가, 피식 웃었다.

"마법사. 오늘은 일 빨리 끝내야 할 텐데."

"네. 그리하지요."

칼리안이 사온 술 같이 마시려면 얼른 일하라는 말을 해준 플란츠가 더 머무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시랑 안네, 빨리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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