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의 왕자로 사는 법-273화 (274/527)

제48장. 히몰리카 맛있네요(3)

기분이 꽤 좋아졌다.

비가 조금 잦아들어서인지 조찬에 생굴이 놓여서인지 혹은 지난 밤에 플란츠와 제대로 대련을 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지만 기분은 괜찮았다.

덕분에 칼리안은 꽤 기꺼운 마음으로 대답을 전했다.

"네. 마음에 드는 제안이기는 합니다. 지그프리드 공."

레몬즙과 올리브유, 그리고 약간의 마늘이 섞인 소스를 그 좋아하는 생굴 위에 살짝 얹어 한 입 먹은 칼리안이 맞은편에 앉은 슬레이만을 쳐다봤다. 정작 남쪽에 사는 것은 본인이면서 익히지 않은 굴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던 슬레이만은 저민 마늘을 올려 구운 가리비를 먹고 있었다.

그리고 시오나는, 샐러리와 양파를 넣고 쪄낸 홍합이나 삶은 새우가 들어간 샐러드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석류 소스가 올려진 스테이크에만 손을 댔다. 거듭 말하지만 엘프가 맞다.

"그런데 이 내용이 공의 의견인지 아니면 시오나의 의견인지, 그건 좀 궁금하네요."

대답은 옆에서 들려왔다.

"내가 간다고 했다."

칼리안은 로즈마리 향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양고기를 품위있게 잘라 입에 넣으며 우아한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싶어 덧붙이지만 전전날에 멧돼지 잡아오던 그 왕자가 맞다.

시오나의 말이 이어졌다.

"당분간 대사막 쪽과 서신도 주고 받고 너와도 정보를 나누려면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얘기를 꺼냈다. 때마침 공작저에 검술 선생도 필요하다 하니까."

"그래. 괜찮은 생각이야."

시오나가 지그프리드 공작저에 머무르겠다고 했다.

물론 지금 있는 공작령이 아니라 드미레아가 있는 카이리시스의 공작저를 말함이다. 제온에 대한 조사라는 목적을 숨기고자 리리에의 검술 선생 명목으로 가는 것이라지만, 만약 그곳에 머물며 누군가의 검술을 지도한다면 드미레아의 검을 더 많이 봐주게 될 터였다.

다만 시오나는 카이리스 국적도 아니었고 애초에 사람도 아니었다. 소드마스터라 하나 그것 만으로 수도에 입성하기는 어려웠으므로 누군가의 신원 보증이 필요했다.

그런데 르메인의 처벌 때문에 올해 안에 수도에 못 들어가는 슬레이만이 보증을 해줄 수가 없지 않나. 그래서 이렇게 칼리안에게 부탁을 하는 중이었다. 대신 칼리안이 공석일 때 란델이나 제온, 혹은 그레이가 별다른 일을 벌이지 못하도록 왕궁도 잘 지켜주겠다는 조건을 붙였다.

드미레아의 검을 봐주는 것도, 그리고 자리를 비울 칼리안을 대신해 앨런과 함께 왕궁을 지켜봐주는 것도 칼리안으로서는 참 환영할만한 일이다.

"혹시 다른 목적 더 있는 건 아니지? 내가 좀 귀한 몸이라 함부로 이름 팔면 안되거든."

너무 귀해서 드미레아의 바나나 몇 송이에 홀라당 팔렸던 이름임을 알 리 없을 시오나가 고개를 끄덕이다 대답했다.

"엘프 의심하는 버릇 좀 버리지 그래. 네가 세크리티아에 갔을 때 네 그 거대한 집에 별 일 없으려면 내가 수도에 있는 게 낫지 않겠나."

"알아. 그래서 나도 마음에 드는 제안이라고 한 거야."

앨런이 있다지만 집 지키는 사람은 많을수록 좋으니 괜찮은 제안인 것은 맞았다. 대신 한 가지 작은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이동마법진은 내가 못 열어줘. 그거 내 권한 아니거든."

"마법진을 쓰고 있었나. 마법사들이 데려온 줄 알았더니."

"사람들 끌고 이동하는 건 내 스승님도 아직 못하시는데 그걸 어떻게 하겠어. 마법진 쓰고 있으니 같이 갈 거면 내 형님께 허락 받아 와. 수도에 머물 수 있도록 신원 보증은 내가 해 줄 테니까."

이동 마법진 사용 인원에 엘프 한 명 추가할 권한이 없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으나 칼리안은 한 번도 그 쪽에 자신의 이름을 써본 적 없었다. 키리에가 운철을 가져오기 위해 처음으로 마법진을 썼을 때에도 앨런을 거쳤다.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던 마법진 사용 권한을 발칸에 넘겨주기 위함이었다.

"어려울 것 없지. 알겠다."

"좋아."

이번 일을 통해 그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마지막 소드마스터도 찾고 그 소드마스터가 제온에 이용당하지 않게 주변에 두고 살피면서 칼리안의 빈자리도 잘 채우게끔 할 수 있게 된 칼리안이 조금 더 좋아진 기분으로 생굴을 더 먹었다.

그리고 치즈와 함께 구운 조개 관자를 먹고 옅은 금빛이 도는 와인을 넘기던 슬레이만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혹시 인근에 괜찮은 양조장이 있습니까. 히몰리카와 시즐리누를 좀 살까 하는데."

술 끊었다던 왕자가 갑자기 독주와 와인을 사겠다며 양조장을 찾는 것에, 무슨 까닭인지 알았다는 듯한 얼굴을 한 슬레이만이 대답했다.

"굳이 양조장까지 가실 일 없이 인근에 주류 판매점이 있습니다만. 마나실 후작에게 선물하실 생각이라면 제가 준비를 해드리겠습니다."

"스승님께 선물할 것은 맞지만 구경도 좀 할 겸 잠시 다녀오려고 합니다. 오늘 중으로는 수도로 출발하기 힘들 것 같은데 계속 안에만 있기에는 조금 답답해서."

결국 그냥 바람이나 쐬고 오겠다는 소리였다.

슬레이만이 준비해주는 술의 품질이 당연히 더 좋겠지만 앨런과 처음으로 같이 마실 것은 직접 발품을 팔아 준비하고 싶어서 적당히 핑계를 댔다.

게다가 앨런이 옆에 있으면 술이야 어떻든 그냥 무조건 좋을 테니까.

* * *

어쩌다보니 플란츠는 칼리안의 표정을 거의 다 외웠다.

굳이 모든 사람의 표정을 다 외우고 사는 것은 아니었으나, 오래 전 언젠가 생에 짓눌려 당장 죽을 것 같은 얼굴로 신나게 웃던 칼리안을 알아본 뒤에는 그냥 좀 외워놓기로 했다.

물론 그 구분의 기준을 제공해 준 것은 얀이었다. 칼리안이 웃고 있는데 얀의 표정이 괜찮았을 때와 아니었을 때를 적당히 보아가며 외워뒀다.

"내 아우님께서는 나를 참 잘 사용하시는군."

"형님 뿐 아니라 사람들을 잘 써먹는 겁니다."

그리고 칼리안은 플란츠의 표정에 거의 신경을 안썼다.

파릇파릇한지, 삶아져 있는지, 아니면 절여져 있는지. 그냥 그 정도만 대충 구분하고 말았다.

사람이 너무 세심해도 피곤하지 않겠나.

두 번째 사는 인생인데 적당히 넘겨가며 즐겁게 살아야지.

이런 칼리안의 긍정적인 마음가짐 덕분에 오늘의 플란츠는 좀 짜증이 났다. 플란츠의 얼굴이 썩 파릇파릇하지는 않았지만 삶아진 것도 아니고 절여져 있는 것도 아니라서 칼리안은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형님께서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두신 대외 전시용 인격인데요. 그냥 묵혀두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이럴 때라도 아낌없이 써드려야죠."

또 흥얼거리는 칼리안의 손에 들려있던 두 번째 술병이 레이븐의 안장에 매어 둔 공간 가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플란츠는 어제 하루 못 짖은 한을 풀겠다는 듯 하루 종일 짖는 동생에게 화를 내는 것도 포기한 얼굴이 됐다.

그러니까 그날 아침.

조찬을 마친 뒤 니들렌을 찾아간 칼리안은 '플란츠의 의견'이라며 발칸 전원에게 하루짜리 휴가를 줬다. 왕궁을 떠난 그 날부터 이미 매우 만족스러운 나날을 잘 보내고 있던 니들렌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저희가 이 이상 어떻게 더 쉬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왕자님.'

진심어린 대답에 칼리안은 나가서 사고치지 않는 선에서 마음대로 놀아라 하고 다시 말했다.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적당히 술도 마시라고 돈까지 건네줬다. 많이 줬다.

술이 허락된 것에 대해, 칼리안의 누나 아니라 이모 뻘은 될 니들렌을 포함해 나머지 대원들이 엄청 신나했다는 사실을 플란츠는 아마 모를 거다. 물론 부군단장이 소라 껍데기를 썩 마음에 들어 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대원들이 얼마나 좋아했는지도 몰랐지만.

아무튼 그렇게 발칸을 잘 챙겨준 칼리안은 방 안에 오도카니 앉아 있던 완두콩을 대뜸 데리고 나왔다.

가뜩이나 광합성도 못하는 이런 날에 감기까지 걸리면 안 되니까 방수와 온도조절 마법이 걸린 검은 로브로 완두콩을 잘 덮어준 뒤 에스티나의 안장 위에 올려놨다. 그 뒤에는 레이븐에 올라 완두콩 태운 에스티나와 함께 슬레이만이 알려준 양조장으로 출발했다.

'술 참 잘 드시는 내 형님께서 향이 좋지 않다 하시네.'

'술 좋아하시는 내 형님께서 색이 탁하다고 하시는데.'

'술에 일가견이 있는 내 형님께서 이것이 가장 좋겠다 하셨네.'

그리고 이렇게.

플란츠가 애써 만들어 둔 '대외 전시용 망나니 인격'을 매우 효과적으로 써먹어가며 두 양조장에서 제일 나은 술을 한 병씩 샀다. 앨런과 함께 마시기로 한 술이라 시음은 안했어도 다년간 쌓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잘 골라 샀으니 분명 괜찮을 터였다.

플란츠가 망나니 연기를 왜 했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칼리안으로 다시 눈을 뜬 뒤부터만 따져봐도 꾹꾹 참고 플란츠에게 당해 준 일이 어디 한 둘이어야지. 그러니 그 망나니 이렇게 써먹기라도 해야 서로서로 마음이 좀 가벼워지지 않겠나.

"형님이랑 같이 오니까 좋네요."

'착하고 예쁘고 형님 심부름도 잘 하는 꽃같은 3왕자' 칼리안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고 플란츠는 깊은 한숨을 한 번 쉬었다.

"옛날 생각도 나고."

이런 얘기가 덧붙는 통에 이번에도 화는 못 냈다.

"다 샀으면 가."

"네."

공작령 자체가 워낙 넓다 보니 두 곳만 들렀음에도 어느새 오후가 되었고 비가 그쳤다. 흙길 밟는 두 마리 말 위에 앉은 채로 타박 타박, 한동안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며 나선 길을 되돌아갔다.

고삐 하나를 제대로 잡지 않아도 레이븐은 알아서 길을 찾아간다.

레이븐, 저렇게 생긴 풀은 먹으면 안 돼. 레이븐, 비가 온 뒤에 고여 있는 물은 괜찮지만 맑은 날에 고인 물은 마시면 안 돼. 레이븐, 이런 길을 다닐 때에는 돌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야해.

하고.

칼리안이 가끔씩 이런 저런 말을 건네면 귀를 움직이든 푸르릉 소리를 내든 고개를 들어 보이든, 대답도 잘했다.

그런 칼리안의 모습을 보던 플란츠가 입을 열었다.

"너도 답답할 것 같은데."

왕궁 안에 있을 때와 밖에 있을 때의 칼리안이 완전히 달랐다. 레이븐을 앞에 두고 도란도란 얘기하는 그런 모습을, 왕궁 안에서는 본 적 없었다. 머리 좋은 줄은 알았지만 그 머릿속에 크고 작은 날들이 저렇게 차곡차곡 잘 쌓여 있는 줄은 몰랐다.

그렇게 살아온 기억을 가지고 왕궁에 갇혀 답답하지 않았을까. 그런 궁금증이 생겼다.

"앞으로 계속 왕궁 안에서 지낸다 해도 저는 괜찮습니다."

"왜."

"질리도록 돌아다녀서 그런지 왕궁에 있다 해서 형님처럼 숨이 막히지는 않습니다. 저는 알아서 잘 도망가기도 하고······ 게다가 초대왕께서 워낙 세심하게 신경쓰신 덕분에 왕궁 안에도 숨이 트일 만한 곳 많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칼리안에게서 작은 웃음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서 얼굴은 안 보였다.

거짓말일까, 아닐까.

이번에는 목소리로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괜한 짐 맡겼다고도 생각하지 마시고요. 그렇게 여기지 않으니까."

"알았어."

질문을 하는 진짜 이유를 알아듣고 해주는 말. 혹시라도 왕위를 받지 않겠다 고집을 부린 것을 신경쓰지는 말라는 말.

"왕궁 안에도, 숨이 트일 만한 곳 많이 있습니다. 형님."

그리고 강조하듯.

칼리안이 다시 한 번 같은 말을 했다.

"······ 알았어. 안 잊어버려."

"네."

칼리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레이븐의 갈기를 삭삭 쓰다듬었다.

"형님 혹시 생굴 못 드십니까."

"안 먹어봤어."

"그럼 가리비는 어떠십니까."

"안 먹어봤어."

"······ 관자는요."

"왜."

"저녁에 먹으려고요."

"싫어."

"네."

그리고 저녁에는 그냥 고기만 먹어야 되겠다 생각을 했다.

어차피 구운 대구 먹으러 갈 테니까.

그때 가서 실컷 먹으면 되겠지.

* * *

가만히 서서 눈을 내리 뜬 채 생각을 정리했다.

- 저하가 얘기한 것 확인해봤는데. 저하 생각이 맞아.

- ······ 흔적은.

- 증거 될 만한 것들은 다 찾아서 없앴어. 테일란 경을 시킬 수는 없고 우리쪽 사람들 움직였어. 말 나갈 걱정은 안해도 돼.

- 그래. 고마워. 고생했어, 아리안느.

- 그런데 괜찮겠어?

데블란을 만나기 전에 아리안느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면서 한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 증거만 없으면 돼. 증거 없이 우기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걸 가장 잘 알 테니까.

- 당신 동생이 카이리스 전 왕비를 몰아냈을 때에도 증거는 없었어. 그 후작을 없앴을 때에도 증거 없었어. 전하도 같을 거야. 아니, 더 할 거야.

- 아버지는 당신에게까지 손을 대면 귀족들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잘 알아. 그러니 아버지가 손에 쥘 만한 내 약점이 어머니 뿐이라는 것도 모르지 않아. 무리해서 어머니를 건드릴 생각 할 사람 아니야.

- 차라리 당신 동생 쪽으로 고개를 다시 돌려놓게 하는 건 어때.

더운 바람이 지나고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 아니. 나를 더 경계하도록 만들어야지.

- 어머니에게 손을 뻗으면 어쩌려고 당신을 더 경계하게 만들겠다는 거야.

- 내 약점을 아니까 어머니는 온전히 둘 거야. 내 동생을 다루기 위해서 나를 잘 놔뒀던 것처럼. 나를 쥐고 흔들려면 어머니를 섣불리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이야. 그러니 나를 더 열심히 경계하게 만들면 돼.

'······ 아직은.'

후원의 한 가운데에서 그렇게 잠시동안 시간을 흘려보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 또각, 또각.

조용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단 한 번도 크게 울린 적 없던 작은 발소리에 체이스가 고개를 돌렸다. 비 개인 하늘이 떠오르는 색의 실크에 은사와 레이스로 장식이 된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루이즈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뒤따르는 이들은 이미 저만치 물린 채 혼자 걸어왔다.

"어머니."

한가로운 오후.

비 개인 하늘이 담긴 듯한 미소를 지은 체이스가 새하얀 티 테이블 앞에 놓인 의자를 빼주었다.

손을 내밀어 체이스의 손을 꼭 잡은 루이즈가 자리에 앉았다.

"이런 시간에 세자를 보니 기분이 좋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고작 차 한 잔을 하자며 조른 것이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입니다."

"아무리 바쁘다 한들 내가 세자를 만날 시간 하나 내지 못할까요."

이틀 전 데블란의 집무실에 들었던 체이스가 나오지 않아 얼마나 많이 걱정했는지, 체이스의 방에 불이 켜지는 것을 보고 한참이 더 지나서야 별궁으로 돌아갔음을 알고 있는지.

루이즈는 그런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체이스가 그러하듯 아무것도 티내지 않고 그저 반가워하기만 했다. 그리하여도 지나는 시간이 아까운 마음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어제 잠시 아리안느를 만났어요. 린 후작의 일로 걱정이 클 텐데도 여전히 기운이 넘치는 것을 보니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모릅니다."

왕궁의 감옥.

지하 말고 지상에 위치한 고위 귀족을 위한 감옥.

비록 갇혀 있다 하나 그래도 신변의 위험이나 불편함이 없도록 체이스가 신경을 쓰고 있었다. 더불어 데블란 역시 린 후작의 신변까지 해할 생각이 아직 없었으므로 아리안느도 그럭저럭 잘 지내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나중에 일이 해결되거든 잘 챙겨주도록 해요."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꺼낸 루이즈가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맑은 홍차를 한 잔 마셨다. 그리고 소리 없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큼 마음 좋아지는 일이 없습니다. 서로 기댈 곳이 그렇게나 단단하니 세자도, 아리안느도, 앞으로 계속 잘 해 나갈 것이라고. 나는 그리 믿어요."

"네, 어머니. 걱정하지 않으시도록 제가 더 신경을 쓰겠습니다."

체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가만히 손을 뻗어 바람에 살짝 흐트러진 루이즈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다시 뒤로 넘겼다.

"어머니께서는 그저 오랫동안 지켜봐 주시기만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곁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손을 내린 체이스가 루이즈의 손을 다시 잡았다.

하늘색의 맑은 눈을 고요하게 들여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전하의 수면향에는 이제 다른 것 넣지 말아주세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루이즈의 귓가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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