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장. 왕자다(2)
나르잔은 엘프다.
그러니 칼리안이 직접 자신을 소개하더라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당연히 칼리안도 이를 알고 있었고, 때문에 장로 제르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말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게 언급하지 않았다.
문제는 나르잔이 단순한 엘프가 아니라는 데에 있었다.
누구냐고 물었고 왕자라고 했으니 대답이 틀린 것은 아닌데 상대는 모든 엘프를 대표하는 대장로였다. 르메인도 아직 만나보지 못했던 대장로 말이다.
그런 대장로 나르잔을 앞에 둔 칼리안이 고개를 들었다. 나르잔을 내려다보는 눈을 하더니 플란츠가 아르센에게 참 잘 꺼내놓던 말과 비슷한 소리를 했다.
- 카이리스의 미친놈이다.
그것이 플란츠의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아마 카이리스 아니라 이 대륙 전체를 통틀어 칼리안만큼 제대로 미쳐있는 놈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들렸다.
짙은 은색인 듯 보이는 나르잔의 날카로운 눈이 잠시 감겨들었다 떠졌다.
곧 나르잔의 고개가 옆을 향했다. 말이 영 안통할 것 같은 셋째 왕자 말고 그나마 좀 더 차분해 보이는 둘째 왕자와 얘기를 나누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다.
"그대는 누구인가?"
플란츠가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며 찻잔을 내려놨다.
하다하다 이제는 엘프 대장로에게까지 시비를 걸고 있는 미친 동생을 대신해 플란츠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발칸 부군단장."
- 그 놈 형이다.
뭐 대충 이런 뜻이었다.
소파의 손잡이를 잡고 있던 나르잔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보던 칼리안이 생긋 웃었다.
"얘기는 나랑 해. 내 형님께서 워낙 낯을 많이 가리셔서."
"그대들은 똑같이 무례하군."
칼리안은 그런 반응에 다른 말을 덧붙이지도 않은 채 나르잔을 쳐다보고 있었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나르잔이 다시 말했다.
"그대 나라의 국왕이 우리에게 어떤 대우를 했는지 기억하고 있다. 그 날의 일을 모두 잊고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예우를 했건만 어째서 이런 태도를 보이는가. 이러니 다른 나라로 터전을 옮길 생각을 하는 것 아니겠나."
"예전 일을 잊었다고 티내기 전에 그 일이 왜 생겼는지부터 똑똑하게 따져봐야지. 왜 맘대로 생각하고 멋대로 잊어버리는 거야."
칼리안이 손을 움직여 바닥을 가리켜보였다.
"당신이 관리해야 할 엘프들이 먼저 잘못했어. 그 일을 어물쩡 넘어가려고 하는 바람에 전하께서 그런 처우를 내리셨다는 걸 빼고 말하면 우리가 엄청 나쁜 짓 한 것 같이 들리잖아. 축제 때 왕궁에 못 들어온 일 때문에 화는 나는데 장로가 나한테 저지른 결례에 대한 사과는 하기 싫고, 그래서 그냥 편한대로 억울한 일 겪었던 약자 행세나 해야겠다 싶었으면 끝까지 그렇게만 굴었어야지."
칼리안이 어디 하나 흠잡을 곳 없을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와 함께 바닥을 향했던 긴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여 찻잔의 끝을 톡 건드렸다. 맑은 소리가 잠시 울리다 가라앉았을 때 서늘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감히 누구한테 이름을 물어."
나르잔이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 떴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찾지 못하는 듯 보여서 칼리안이 설명을 더했다. 정확히 말한다면 계속 질책했다.
"당신은 엘프들이 약자라 말했어. 약자임을 자청해놓고는 내 이름을 물었어. 그러더니 예전에 뭘 잘못했는지는 잊어버린 척 우리쪽에 잘못을 다 떠넘기려고 해. 그럼 내가 화가 나겠어, 안 나겠어."
"이곳까지 와서 사과를 받으려고 할 줄은 몰랐군."
"여기까지 왔으면 당연히 사과부터 할 줄 알았지."
"세크리티아와의 일에 대해 협상을 하러 온 줄 알았는데."
"협상하러 왔는데 그럴 필요 없을 것 같다고 생각중이야."
"어째서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하나."
"협상할 기회 제 발로 걷어찼잖아."
나르잔이 잠시 입을 다물었고 칼리안의 말은 계속됐다.
"뭐가 문제인지 조용히 얘기도 좀 하고 화해도 해보려고 왔는데 괜히 왔나 싶어졌어."
플란츠가 찻잔을 들었다.
눈을 감고 녹빛의 차에서 풍겨오는 복숭아와 사과 향에 집중하면서 잠시 고민을 했다.
'내가 기억을 잘못 하고 있나.'
애초부터 칼리안은 조용히 얘기도 좀 하고 화해도 해보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칼리안은 거짓말을 못하는 놈 아닌가. 그러니 고민이 되는 것이다.
내 동생에게 있어 '조용한 얘기'란 침묵 속의 칼질이고 '화해'란 안네루시아를 띄워주는 너그러운 행동, 뭐 그런 것이었던가 하고 말이다.
편견을 없애랬더니 상식도 없애버린 듯한 동생의 사고방식을 나도 배워야 할지 아니면 적당히 걸러들어서 착하고 올바른 어른으로 잘 자라야 할지를 고민하는 사이 칼리안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높은 데서 나를 내려다보고 싶은지, 나랑 눈높이 맞추고 대화하고 싶은지, 내 발 밑에 수그릴 건지. 하나만 해. 셋 다 하는 건 욕심이야. 편한대로 섞으면 어느 쪽으로 대해줘야 할지 헷갈리니까."
자존심 챙기고 싶으면 약자 행세를 하지 말고,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하고 싶으면 외면하는 것 없이 사과부터 하고, 카이리스보다 힘없는 이들인 척 보챌 생각이라면 이름을 묻지 말라는 뜻이다.
나르잔이 웃었다.
처음에는 작은 웃음소리가 나더니 조금씩 큰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다 결국은 앞에 앉은 자가 엘프들의 대족장 나르잔인가 지그프리드의 대인배 슬레이만인가 그것이 혼돈될 만큼 크게 웃었다.
"세크리티아의 국왕도 그대와 비슷한 소리를 했는데. 신기한 일이지. 둘이 여러 모로 닮은 듯 하니."
그리고 이런 말을 했다.
칼리안이 소리 없이 웃었고 플란츠가 눈을 떴다.
- 주르륵
찻잔이 기울어졌다.
하얀 옷이 녹빛으로 물들었다.
* * *
이 쯤 되면 버릇이다. 더는 실수라 할 수가 없었다.
백작 아이즌 에이프린이 양성하고 드미레아가 완성시켜 발칸에 보낸 기사들과 대련을 하던 아르센이 또 검을 부쉈다. 혼자 연구하는 것은 상관 없지만 대련 중 검을 부수는 것을 자제하겠노라 했으면서 또 부숴버렸다.
"미안하네, 베른 경."
그리고 히나에게 혼이 났다.
검을 부쉈는데 히나가 화를 내는 이유는 별 것 없었다. 아르센의 실드를 내리치기가 무섭게 산산이 부서져 사방으로 날아간 검의 파편 하나가 멀찍이 서 있던 죄 없는 어떤 기사의 팔등에 콕 박혔다. 머리나 심장에 콕 박히지 않은 것이 참 다행한 일이다.
덕분에 아르센은 실드와 맞닿은 철검을 부수는 것에 성공한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히나에게 혼이 났다. 루시와 안네가 우다다다 뛰어 노는 집무실에서 치료실로 오는 내내 우다다다 혼이 났다.
"저는 괜찮습니다. 너무 화내지 마세요, 치유사님."
팔에서 철철 흘린 피 때문인지 아니면 조금 놀란 탓인지 다소 질린 얼굴의 기사가 이렇게 말하며 히나를 말렸다.
결국 히나가 짧게 숨을 내쉬었고, 아르센은 치료 다 끝나면 기사에게 탄산수 한 잔 사겠다는 말로 진심어린 사과의 뜻을 한 번 더 전한 뒤 뒷처리를 위해 돌아갔다.
- 금방, 고쳐줄게요. 걱정 말아요.
이렇게 말한 히나가 기사의 팔에 손을 가져다 댔다. 한여름의 태양보다는 꽃을 피우는 봄 햇살같은 황금빛이 기사의 팔을 감싸안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흐르던 피가 완전히 멎고 벌어진 상처가 조금 아물었다. 칼리안이나 플란츠와 같이 축복의 힘을 가진 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둘에 비해서는 치유 속도가 현저히 더딜 수밖에 없었다.
- 며칠 더, 치료 받아야 돼요. 그 때까지는, 훈련, 받지 않도록, 전해 둘게요.
얼마 전 베로니카가 만들어 놓았던 약을 함께 챙겨주며 건네진 말에 기사가 고개를 열심히 숙여 인사를 했다.
"네, 치유사님. 감사합니다."
큰일 날 뻔 했는데 잘 살아있다는 안도감. 나도 이제 치유사님 치료 받아 본 사람이라는 뿌듯함. 치료 받을 때 겪은 따스한 느낌이 어땠는지 자랑 할 수 있다는 설렘.
그런 것 때문에 기사는 자신의 뒤로 슬며시 다가오는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그저 한껏 고양된 기분으로 치료실이 있던 복도를 돌아 코너로 들어섰을 때.
- 쾅!
누군가 그의 팔을 등 뒤로 낚아채며 벽으로 밀어붙였다.
잡힌 것이 다친 팔이었기에 저도 모르게 비명이 나오려던 것을 습관적으로 참았다.
대신, 붙들리지 않은 팔의 소매 속에서 날카로운 단검이 튀어나왔다. 기사는 잡힌 팔을 그대로 둔 채 몸을 틀어 상대방과 위치를 바꾸며 단검을 휘둘렀다. 우드득, 하고 꺾인 팔에서 좋지 않은 소리가 났으나 그 역시 일단 무시한 채였다.
- 콰직!
기사를 덮쳤던 상대방이 유연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했다. 공격 대상을 잃은 단검이 허공을 스치며 벽에 박혔다. 기사는 단검을 놓고 상대방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빠르게 날아드는 주먹을 피한 상대가 몸을 낮췄다.
그리고 가볍게 바닥을 짚은 채 긴 다리를 뻗어 기사의 발목을 돌려찼다.
- 퍼억!
- 쿵!
"윽!"
발목이 부서진 것이 아닐까 싶은 정도의 충격과 함께,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은 기사의 몸이 기우뚱했다. 그 사이를 놓치지 않은 상대가 다시 한 번 기사의 발목을 걷어차 기사를 바닥에 엎어뜨렸다.
무릎으로 양 손목과 허리를 사정 없이 내리눌러 제압한 상대방이 기사의 머리채를 잡아 휙 끌어올렸다. 선득한 느낌을 주는 날선 무언가가 목에 닿는 것을 느낀 기사가 눈을 내리떴다.
목을 겨누고 있는 아름다운 머리 장신구가 눈에 들어온다. 푸른 바다 빛 머리카락이 스르륵 흘러내린 것은 거의 동시의 일이었다.
"새가 있네."
싸늘한 음성이 기사의 귓가에 닿았다.
'아. 서로 인사하게. 저 친구는 그냥 전서구인데, 전서구도 새는 새니까 새가 맞기는 하지만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새는 아니니 걱정 안해도 되네. 열심히 훈련 잘 받고 있는 성실한 친구니 그냥 두고 서로 친하게 지내게.'
둘이 서로를 알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뒤늦게 한 아르센이 다시 찾아와 오해를 풀어준 것은 에일라의 비녀가 기사의 목을 파고들기 직전, 그리고 기사가 입 속의 독을 씹기 직전의 일이었다.
- 계단에서, 굴렀다고요?
그리고 다친 팔 치료 받고 신난 마음으로 홀랑홀랑 뛰어다니다가 계단에서 구르는 바람에 다시 실려 온 기사를 본 히나가 뜨악한 얼굴을 한 것은 잠시 뒤의 일이었다.
- 어떻게 구르면, 팔꿈치랑, 어깨가, 탈골되고, 발목이, 부러지는데요?
새들은 서로 얼굴을 모르지만 에일라는 일반적인 새가 아니었고 에일라의 주인인 칼리안은 '너 일할 곳에 네 전 직장 동료 한 명이 있다'는 말을 해 줄 만큼 세심한 인사가 아니었던 탓에 벌어진 작은 사건이 그렇게 중상자 한 명을 남기며 평화로이 마무리됐다.
* * *
밤이 되면 어머니 나무는 은은한 빛을 냈다.
덕분에 한밤의 모래사장이 고운 유리가루를 품은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같은 바다인데, 결국 어딘가에서는 다 섞여 흐르는 소금물인데. 조금 많이 달라서 그런지 이토록 아름다운 밤바다가 반갑기보다는 생소하다는 기분이 더 많이 들었다.
"또 여기 계십니까."
대장로의 말을 전달받은 엘프 치유사가 시오나를 치료하는 사이 칼리안이 시오나의 곁에 있었다. 엘프들을 완전히 신뢰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직접 옆을 지키며 치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생각보다 상처가 깊었던 탓에 시간이 많이 지났다. 치료를 마치고 일행이 머물던 건물로 함께 돌아오던 길에 당황한 얼굴의 니들렌을 만났다.
'부군단장님께서 사라지셨습니다.'
'언제?'
'방금 전에 알았습니다. 기척이 워낙 없으셔서······ 죄송합니다.'
안에서 든 버릇 밖에서 고쳐지겠냐만, 아무튼 플란츠가 발칸의 대원들이 호위하던 방 창문을 열고 뛰어내린 것 같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완두콩이 어디에 갔을지는 뻔한 일이라 그냥 둘까 하다가.
"얘기하고 문으로 나오셨어도 막을 사람 없는데요."
결국은 찾아와서 이렇게 말을 건넸다.
여전히 파도 앞에 서 있던 플란츠가 대답 대신 하얀 포말이 발 끝을 살짝 적시다 멀어지는 것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어제보다 더 가늘어진 바람에, 함께 고요해진 파도소리가 머무르다 떠나기를 계속했다.
"귀찮을까봐. 잠시."
"잠시 나오신다 해도 알려주시고 나오는 것이 낫습니다. 뒤늦게 알면 더 황망해 하니까요."
"알았어."
칼리안이 시선을 내려 플란츠의 무릎 언저리를 쳐다봤다. 제 손으로 쏟은 녹빛 차에 물들었던 하얀 옷을 떠올렸다.
덕분에 칼리안의 웃음이 멎었고, 대장로와 칼리안의 남은 '협상'은 무사히 내일로 미뤄졌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대장로의 언질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치유는 같은 엘프인 시오나에게 까지만 허락됐다. 애초에 찻물에 데인 상처를 고쳐달라 할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부탁한다 하여 해줄 리도 없거니와 플란츠의 화상은 고쳐주면서 데블란의 병은 고쳐주지 말라는 요구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던 까닭이다.
축복의 힘이 있으니 괜찮다 하면 진짜 괜찮기는 할 터였다. 펄펄 끓는 물도 아니었고.
"네."
그래서 칼리안은 더 걱정하는 말을 꺼내지도 않았고 왜 그랬는지도 안 물어봤다.
"여기서 계속 기다려도 못 들으십니다. 주변에 바위가 많아서 그렇게 큰 고래는 이곳까지 안 와요."
온다고 해도 일반인 청력으로는 여기서 고래 울음소리 못 듣는다는 말도 안 했다. 그걸 몰라서 저렇게 청승떠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칼리안도 알고 있었다.
"그 소리 같이 들어달라고 드린 말씀 아니었습니다."
이지러진 달빛이 고이 올려진 먼 수평선을 보면서 꺼낸 말에도 플란츠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혹시 숨을 쉬러 올라오는 커다란 짐승을 볼 수 있을까, 가까이는 안오더라도 그래도 볼 수는 있을까 하고 한참동안 먼 곳을 보던 플란츠가 입을 열었다.
"용서, 못 받는 것 알아."
이만 돌아가자 말하려던 칼리안이 플란츠를 쳐다봤다.
플란츠는 그런 칼리안 쪽을 보지 않은 채 자신의 하얀 옷을 내려다봤다. 몇 번이고 풀물이 들고 몇 번이고 지워내 결국 하얀 옷. 직접 녹차를 쏟아도 결국은 다 지워지고 남은 하얀 옷.
"그럴 욕심 없어. 잊고 살 생각도 없어. 왜 아우님께서 그것까지 대신 가져가려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몫이지 당신이 감당할 일 아니야. 그러니까 지나치게 신경써주면서 애써 묻어두려는 짓 그만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칼리안이 눈을 내리떴다.
똑같이 발 끝을 적시고 물러나는 파도의 하얀 거품이 사그라드는 것을 똑같이 내려다봤다.
플란츠가 고개를 돌렸다. 맑은 연두색 눈으로 새카맣고 새빨간 얼굴을 직시했다.
"둘 다 하시는 건 욕심이라고 란델 형님께 말씀을 드렸었는데 오늘 아우님이 비슷한 말을 하기에. 똑같은 잣대를 본인에게 두느라 많이 혼란스러우신 듯 한데."
칼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플란츠는 계속 말을 이었다.
"칼리안으로 살아야 하는데 나를 원망하고 욕할 권한은 없다고 생각하는 거. 내 아우님으로 살면서 내 아우님 아닌 다른 사람 눈으로 날 봐야 하는 거. 둘 다 하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하는 거 집어 치우라고. 당신 편한대로 살아. 당신은 그래도 돼."
"······ 무슨 권한으로 그걸 허락하시는지."
"내가 당신 형이니까."
칼리안의 입에서 한숨같은 웃음소리가 났다.
- 화악!
칼리안의 손이 플란츠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결국 참아내지 못한 원망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