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장. 잊어버리지 않게(5)
잠시 눈을 돌려 아래를 내려다봤다.
나비나 사과보다 한 발을 더 나아간 '튼튼이'라는 이름을 가진 말의 색과도 같은 밀크티가 눈에 들어왔다.
한쪽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며 하나 뿐인 형의 환대에 응한 플란츠가 찻잔에 띄워진 꽃송이의 진한 향을 버텼다.
밀크티 색의 말. 그리고 그 말의 이름을 지은 이가 알려주던 향기 없는 꽃을 생각하면서.
"싫다면 물리거라. 셋째를 불렀는데 네가 온 탓이니."
자몽 싫다고 난리를 쳤던 칼리안 때문에 밀크티 꺼내놨더니 플란츠가 왔다는 소리였다. 플란츠가 꽃 향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기도 했다.
분명 이 곳에 오겠다는 말을 미리 전했던 플란츠가 별다른 내색 없이 대답했다.
"어차피 형님 덕분에 한 계절 내내 장미 향에 시달립니다. 하루 더해진다고 달라질 것 없습니다."
곧 플란츠가 로즈힙 향 가득한 밀크티를 한 모금 마셨다. 창문 틈으로 흘러들어와 반 강제로 맡아내야만 하는 붉은 향기와 비슷하니 그나마 참을만하다고 생각하면서.
"칼리안, 왜 부르셨습니까."
플란츠는 칼리안이 말한 그 세작의 일로 찾아왔을 뿐이었다. 란델이 칼리안을 찾았었다는 사실은 방금 전의 말을 듣고 눈치챘으나 티를 내지는 않았다.
란델이 분명 누군가를 통해 말을 전해달라 했을 테고, 그 말을 들은 이가 에반을 치워내는 난리통에 잊어버렸든 아직 칼리안에게 전하지 못했든 둘 중 하나이지 않겠나. 그런 사소한 실수를 굳이 드러내어 누군지도 모를 사람의 잘못을 지적할 일을 만들 필요가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게 바로 아르센이었음을 알았다면 상황이 좀 달라졌겠지만 몰랐으니까.
"언제부터 셋째의 입과 귀가 되었는지 모르겠구나. 주변의 눈과 귀가 사라지니 무료하더냐."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그 셋째 지금 편찮아서 못 올라옵니다. 형님께서는 안 내려가실 테니 제가 전달하겠습니다."
실리케의 감시에서 벗어나더니 이제는 칼리안의 하수인 노릇이나 하고 있느냐는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플란츠는 자신이 할 말만 했다.
란델은 고작 두 층을 두고 참 많이도 서먹한 두 형제 사이의 다리 역할을 자처한 중간 층 거주자의 말에 바람을 뱉듯 작게 웃었다.
란델이 잠시 고개를 들어 플란츠를 쳐다봤다.
짹깍짹깍 하는 시계 소리가 들렸다.
지난 번에 이 곳에 왔을 때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였다. 그 때 이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물을 것이 있어 만나자 하였다."
"무엇을요."
"되었다."
지금은 물어볼 필요가 없다는 말인지.
아니면 직접 물어봐야 한다는 말인지.
짹깍짹깍.
다시 들려오는 초침 소리가 거슬린다 여겨질 즈음 플란츠가 입을 열었다.
"형님께서 텐실로 신물을 보내셨던 것 알고 있습니다. 텐실의 누구에게 보내셨습니까."
"궁금한 것이 많이 늘었구나."
"본래 많았습니다. 지나칠 만큼."
잠시 입을 다물고 플란츠를 쳐다보던 란델이 천천히 대답했다.
"텐실의 왕세자에게 보냈다."
"누구를 통해 보내셨습니까."
"신관."
"지금도 보내십니까."
"셋째 덕에 요즘은 퍽 한가하구나."
신물을 보내고 싶어도 그것을 들고 나를 사람이 있어야 보내지 않겠나.
레넌의 상단을 이용하려던 것도 말아먹고 신관도 싹 내쫓아 준 칼리안 덕에 더 이상 텐실에 신물 보내는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소리였다. 연장자 우대할 줄 아는 착한 셋째가 첫째 형님 일거리는 없애드리고 한창 파릇하신 둘째 형님 일거리만 계속 늘려드리고 있는 셈이다.
"궁금한 것 더 없으면 이만 내려가거라."
"거래. 하나만 진행해주셨으면 합니다."
"무슨 거래를 말함이더냐."
달칵, 하고 잔을 들어 다시 한 번 밀크티를 삼키고 내려놓은 플란츠가 입을 열었다.
"폴룬 상단입니다. 텐실에서 몰래 들여오려던 신성 기사 잘라낸 일로 텐실과의 다이아몬드 거래 중단되었던 일 기억하십니까."
란델이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브리센 상단 통해 신물 보내시려 했던 방법 그대로, 이번에는 폴룬 상단을 내세워주셨으면 합니다. 세크리티아와의 거래가 단절됐으니 다른 판로 찾는다 핑계 대시면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 다이아몬드 거래 재개하는 조건으로 신물 거래, 다시 해주셨으면 합니다."
"무엇을 가리기 위한 눈속임이더냐."
"신물 물어오던 새 한마리 찾고 있습니다."
텐실에서는 폴룬 상단의 상단주 멜피르가 칼리안에게 얼마나 신임을 얻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안다고 하더라도 장사꾼이 이익 좇아 손잡고 있던 이 몰래 다른 주머니 찬다는데 의심을 할 여지가 있겠는가. 그러니 이번 일로 루비 거래가 끊겨 손해가 막심할 멜피르가, 칼리안 몰래 텐실에 신물을 옮겨주는 것을 조건으로 다이아몬드 거래를 성사시키려 한다 하더라도 텐실에서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었다.
그 후 멜피르가 은밀하게 헤일 라트란에게 신물을 찾아다 주었던 이를 물색한다 소문을 내면, 에일라 역시 소식을 접할 것이다. 에일라라면 이 과정이 자신을 잡으려는 칼리안의 함정임을 눈치 채겠으나 상관없다.
'제 목적은 정말로 에일라가 폴룬 남작에게 속아 연락을 취해오는 것이 아니라, 제가 찾고 있다는 사실을 에일라에게 알리는 것에 있으니까요. 이참에 폴룬 남작의 손해도 좀 메꿔주면 좋고요.'
칼리안이 접시에 놓여 있던 가장 큰 돼지고기 한 점, 그리고 소고기 한 조각을 씹어 삼키는 동안 생각해냈던 이야기를 모두 전해 들은 란델이 조용히 대답했다.
"전하께서 아시면 좋아하지 않으실 일을 벌이려 하는구나."
텐실과의 신물 거래는 불법이었다.
그것을 지적하는 말에 플란츠가 실소하며 대꾸했다.
"하면 안 되는 일임을 잘 알면서 손을 대셨던 분께서 하실 말씀 아닙니다. 게다가 언제부터 전하를 신경쓰셨는지."
물론 르메인에게 따로 이야기를 해 둘 생각이었다. 거래 중에 멜피르가 붙잡히기라도 하면 안 되니 말이다.
세크리티아 왕을 잡으려는 일인데 카이리스 법 좀 어길 수 있지.
이럴 때 써먹으라고 있는 왕자 직함 아니던가.
"기간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잠시 생각을 해 보던 란델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해 주마. 나에게도 나쁠 것 없는 일이니."
"네. 그럼."
이제 일어나도 되겠는지를 묻는 듯한 플란츠의 말에, 여전한 눈으로 그를 보던 란델이 입을 열었다.
"셋째에게 궁금했던 것을 너에게 물어도 되겠다 싶구나."
"무엇입니까."
"칼리안. 그 아이는······."
입을 열어두고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기는 듯 보였던 란델이 말을 이었다.
"여전한 셋째더냐. 아니면 이제 그저 네 동생이더냐."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플란츠의 눈에 날이 섰다.
플란츠는 눈에 든 칼날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란델이 의심하기 시작했다면 감추려 들 필요가 없었다.
의심해도 상관 없는 일이다.
이제 와 일말의 의심을 하든 말든. 지독하리만치 이성적인 란델은 절대로 진실을 파악하지 못할 테니까.
"제 동생은."
게다가 칼리안은.
"그저, 칼리안입니다."
칼리안은 그저 칼리안일 뿐이니 문제 될 것이 있겠는가.
툭 던지듯 대답을 내려놓은 플란츠를 보던 란델이 짤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일어난 플란츠가 간단히 예를 보인 뒤 밖으로 나갔다.
타이를 뜯어내듯 풀어내는 소리가 언뜻 들리다 닫히는 문에 가려 사라졌다.
* * *
아르센이 왔다.
스스로도 아직 마음대로 움직이면 안 되는 상태임을 모르지는 않았던 터라, 칼리안은 얀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침대 헤드에 기대 앉은 채 아르센을 맞이했다.
'왕자님 심기가 편치 않으시니 참고하세요.'
아직 다 회복되지도 않은 칼리안이 아르센을 급히 찾는다는 이야기를 얀에게 전해들었다. 그래서 아르센은 대충이나마 무슨 일이 있을지 나름대로 눈치도 채고 마음의 준비도 했다. 곧바로 오느라 반성문은 못 썼지만 열심히 반성하는 표정도 짓고 있었다.
"칼리안 왕자님을 뵙습니다."
칼리안은, 얀이 미리 언질해 준 것이 아니었으면 아마 아르센을 꽤 반가워한다고 착각했을 만한 그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여 예를 받은 칼리안이 침대 옆에 놓인 의자를 가리켜보였다.
"이 쪽으로 와요, 헤르츠 경."
문과 침실 사이에 세뉴강이 흐르는 것 같다.
저 쪽으로 가면 다시는 못 돌아올 것 같다.
마른침을 삼킨 아르센이 천천히 조심스럽게 칼리안의 침실에 발을 디뎠다. 그러다 침대 옆의 협탁에 무언가가 놓인 것을 보게 되었다.
얼음 속성의 마력을 응축해 둔 것이었는데 도무지 그 용도를 알 수가 없었다. 곧죽어도 궁금한 것은 물어보고 죽어야 하는 마법사가 결국 칼리안을 향해 물었다.
"저것이 무엇입니까, 왕자님."
"아, 이거."
파랗고 아름다운 것.
얼음으로 만든 커다란 꽃을 가만히 바라보던 칼리안이 예쁘게 웃으며 대답했다.
"경을 위한 나의 안네루시아."
"아······."
사람이 뭐든 포기하면 마음이 편해지는지라.
명줄을 포기하고 나니 한결 편안해진 얼굴이 된 아르센이 고개를 끄덕였다.
"꽃이라도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습니까."
"네. 잘못한 것 알고 있습니다, 왕자님."
그 얼굴이 사뭇 진지하고 비장했던 터라, 칼리안이 잠시 웃음을 터뜨렸다. 오래 웃고 싶었는데 배가 당겨서 그러질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치료해주겠다며 온다던 히나 그냥 쉬라고 하지 말고 치료를 받을 걸 그랬나 하고 잠시 생각하던 칼리안이 입을 열었다.
"히나가 너무 힘들어 보였고 란델 형님이 그 자리에서 무슨 짓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거나, 생소한 마법까지 곧장 시전해야 할 만큼 형님이 아파보였다거나, 그 쯤은 한 번에 성공할 정도의 실력이라는 자신이 있었다거나. 그런 변명 없습니까."
마치 그 날의 상황을 눈으로 본 것처럼 입에 담는 칼리안을 향해 아르센이 대답했다.
"저는 1왕자님을 불신합니다."
"압니다."
"그리고 마법사는 생명을 상대로 함부로 서툰 마법을 시험해보지 않습니다."
"그것도 압니다."
"그러니 제가 변명할 것이 없습니다."
"잘못을 그렇게 잘 알면 내가 어떻게 할지도 알겠네요."
"안네루시아 주셨지 않습니까."
지금 아르센이 정말로 몸 어딘가에 구멍 하나쯤 뚫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칼리안도 알았다. 때문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내가 그렇게 무서우면 왜 따라다니는거야, 도대체."
"무서워서요."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하는 눈으로 아르센을 보던 칼리안이 다시 웃음을 터뜨리며 숱하게 해오던 말을 건넸다.
"아무튼 경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대련할 때 목에 몇 번 상처 내놓은 것이나 잔뜩 취했던 날에 한 대 때려 재운 것 말고는 평소에 험하게 대한 것도 없는데 대체 뭐가 무섭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나만큼 사근사근한 사람이 또 어딨다고.
스스로에 대한 매우 객관적인 평가를 마친 칼리안이, 얼음꽃을 잠깐 내려다보다 아르센에게 시선을 되돌리며 입을 열었다.
"사실 그보다는 히나 혼자 두고 왕궁 밖에 나간 것 때문에 화가 날 뻔 했는데 스승님 옆에 잘 앉혀놓고 갔다 해서 말았습니다. 란델 형님이나 형님은 뭐, 헤르츠 경이 알아서 잘 했을 테고. 급하면 레이븐 발이든 루시 손이든 빌릴 판에 뭔들 못할까."
이 말에 아르센의 눈이 협탁 위의 얼음꽃에 가 닿았다. 그럼 이건 왜 만드신 건지 묻고 싶어 하는 듯 보여서 칼리안이 먼저 대답했다.
"라트란 영지에서 잡았던 세작이 살아있어요."
기억을 되짚어 볼 필요도 없이 곧바로 그 세작에 대해 떠올린 아르센이 눈매를 굳히며 답했다.
"······ 사형 집행이 된 것 아닙니까."
"다른 사람으로 바꿔치기 된 것 같은데 덕분에 내가 좀 곤란한 일이 생겨서."
"제가 잡아오겠습니다."
우리 왕자님의 소중한 비밀이 일파만파 퍼지게 생겼는데 당연히 잡아와야 하지 않겠나.
"어디에 있는 줄 알고 잡아오겠노라 합니까."
"그걸로 어떻게 해 보실 생각이신 것 아닙니까."
아르센이 얼음꽃을 가리켜보였다.
눈치가 참 빨라졌다는 생각에, 칼리안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치가 누구랑 같이 붙여놔 준 누구 덕분에 생겼는지는 생각하지 않은 채였다.
"열흘 뒤에 그레이 브리센이 후작위 오르는 것 축하하는 파티가 열리는데 나는 못 가니까. 경이 내 대신 선물도 보내고 파티에도 좀 다녀와줬으면 합니다."
"파티 얘기는 못 들었었는데 참 대단한 작자군요. 아버지는 죽고 동생은 사형되고 조카는 사라졌는데 파티라니."
"아. 파티 얘기는 나도 아직 못들었어요."
가벼운 말투로 대답한 칼리안이 살짝 웃으며 설명을 더했다.
"파티하라고 아직 말을 안해서. 내가."
눈치 많이 좋아진 아르센이 잠깐 멍하게 칼리안을 봤다.
그러다 잠시 후, 파티 예정이 없는 그레이에게 파티를 열라고 지시할 생각이라는 소리임을 이해했다.
"특별한 초대장 없이 어떤 귀족이든 참석할 수 있을 파티일 테니 경이든 폴룬 남작이든 상관 없이 축하를 전해 줄 수 있을 겁니다."
"네, 이해했습니다. 폴룬 남작과 제가 의심 받지 않을 정도로 소문 내면서 다녀오면 되겠습니까."
"딱 좋네."
"네. 그럼 제가 무슨 선물을 보내면 되겠습니까."
칼리안이 손을 한 번 움직여 마나의 속성을 바꿨다. 협탁 위의 푸른 얼음꽃이 금세 형질을 바꾸며 붉게 타올랐다. 불꽃이 되었다.
"녹거나 타지 않는 조각상. 물론 생긴 것은 꽃 말고 다른 것으로요."
플란츠의 부탁을 받은 란델은 란델대로 칼리안이 에일라를 찾고 있음을 알리고. 칼리안은 칼리안대로 에일라를 불러내고.
"저 그럼 왕자님 조각상으로 만들어도 됩니까?"
이런 의도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각상에 대한 말을 듣기가 무섭게 아르센이 반색하며 물었다.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해 내야 직성이 풀리는 마법사인지라 아르센 역시 포기할 줄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실로 마법사 다운 반응이 아닌가?
이렇게 잘 이해한 칼리안이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그걸 거기 왜 보내, 미친놈아."
세상에서 이보다 더 미쳐있을 수 있을까 싶은 바로 그 사람에게 미쳤다는 욕을 들은 아르센이 싱긋 웃었다.
아무튼.
칼리안이 자신을 찾는다는 것을 안 에일라가 상황이 돌아가는 모양새를 좀 파악해 보려면 가장 먼저 멜피르를 살펴보아야 할 터였다.
앞으로 파티 전까지는 두문불출할 멜피르가 처음으로 집 밖에 나오는 파티 자리에도 물론 참석을 할 것이다. 변장을 한다면 어차피 잡힐 위험은 드무니까.
칼리안은 그런 에일라에게 눈에 잘 보이는 메시지를 좀 보낼 심산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에일라가 궁금해서든 불안해서든, 혹은 화가나서든 찾아오도록.
물론 그때까지는 왕궁의 마법 보호를 잠시 풀어달라고 앨런에게 이야기를 해 둘 예정이었다. 그렇게 하면,
"오랜만이야."
이렇게나 아름다운 푸른 새가.
"······ 에일라."
다시 찾아 올 테니까.
테라스 난간에 달빛을 등지고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이의 긴 머리가 바람에 흩날리는 것을 본 칼리안이 반가운 듯 웃었다.
아르센을 만난 뒤 보름이 더 지난 어느 날 깊은 밤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