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장. 멈추지 마시고(6)
레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드미레아가 눈을 찌푸렸다.
곧 드미레아가 허리 뒤로 팔을 돌려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손가락을 전부 붙인 채 곧게 펴진 모양. 지그프리드의 수신호였다.
- 대기.
공격하지 말고 대기하라는 뜻이었는데, 그것을 보인 이유가 평소와 조금 달랐다.
'섣불리 분노하거나 덤벼들지 말고 기다려라.'
레넌이 고개를 숙였다.
일그러진 얼굴 사이로 웃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주 작지만 참을 수 없다는 것처럼, 분명한 웃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귀족들에게는 흔히 있는 일.
하지만 지그프리드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기사들은 겪어보지 못했을 상황.
"아······!"
속삭이는 듯 흘러나온 작은 탄성.
에반 브리센의 사망 소식을 접한 레넌은, 기뻐하고 있었다.
그래서 드미레아는 대기를 지시했다.
지그프리드에서는 상상해본 적 없었을 반응을 접한 기사들이 혹시라도 동요하여 검을 뽑을까 우려되어서 그리 하였다.
"브리센 자작. 내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해보는 것이 먼저 아닌가."
"아, 그렇군."
너무 기쁜 마음에, 그만.
레넌의 이런 행태를 지켜보던 드미레아가 뒤에 있던 기사를 향해 무언가를 지시했다.
곧, 칼리안의 것이 아닌 다른 검은 천에 덮여 있는 시신이 드미레아와 레넌의 사이에 옮겨져 왔다. 슬쩍 그 천을 열어 에반을 확인한 레넌이 피에 절은 시신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레넌의 옆에 있던 누군가가 레넌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의 말을 들은 레넌은 더 이상 웃음을 흘리지 않겠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지그프리드에서 내 아버지를 해쳤음을 확인했다."
대신에 이런 말을 했고, 방금 전 레넌에게 귓속말을 전한 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레넌 대신 머리를 써 줄 만한 자를 곁에 둔 것이리라 생각한 드미레아가 레넌을 물끄러미 보다 물었다.
"곧바로 우리를 지목하다니. 판단이 성급하군."
"너희들이 저택을 막은 사이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누구를 의심하겠느냐."
"입이 가볍구나, 브리센 자작."
"말을 제대로 하거라, 소공작."
이제 나는 브리센 후작이다.
들뜬 얼굴로 이렇게 덧붙이려던 레넌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보니 아이가 있었을 텐데. 어디 있지?"
"······ 아이라니."
"내 딸이 이 곳에 있는데. 아마 6살인가 7살인가······ 그 쯤 됐을 텐데. 죽었나?"
아무렇지 않게 물어오는 말.
드미레아는 여전히 등 뒤에 올려둔 손바닥을 다시 한 번 펼쳐야 했다. 기사들을 향해서, 그리고 스스로를 향해서도 '대기'를 명했다.
"저택에 어린 아이가 있었던가."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보듯 이렇게 말하며 잠시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냈다.
- 조금 이상하구나.
- 무엇이 이상합니까?
- 브리센 후작이 자작의 상단 활동을 갑자기 지지할 이유가 없다. 브리센의 자금으로 상단을 꾸린 것만으로도 가문에서 추방하겠다 해가며 싫어하더니 갑자기 자작위를 내어 주고, 또 상단을 전폭 지원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구나.
- 레넌 브리센이 검을 쓰지 못한다 하니 살 길을 만들어 준 것 아니겠습니까.
- 그들은 우리와 다르다. 그리 생각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구나.
그러다 문득, 오래 전 언젠가 세리에와 얀이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긴 이야기를 모두 이해하고 기억하기에는 당시 드미레아가 많이 어렸으나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신기하게도 생각이 났다.
칼리안이 아마도 브리센의 후계일 것이라 했던 그 어린 여자 아이.
"자작에게 딸이 있었던 줄은 몰랐군. 결혼을 한 줄도 몰랐는데."
"내 사정까지 소공작이 신경 쓸 이유는 없지. 그래서, 아이는 정말 없었나?"
레넌이 이미 결혼을 했다는 것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랬으니 레넌에게 자식이 있으리라는 생각도 못했다. 소문 없이 결혼을 할 만한 위인은 아니니 아마도 혼전에 생긴 자식일 텐데.
'그 에반이 꽤 의외의 선택을 했군.'
그레이 브리센과 에반 브리센의 좋지 않은 관계.
그레이 혹은 레넌을 후계로 삼지도 못했던 에반.
그레이 브리센도 검의 길에 올랐던 자였다.
에반이 자신의 자식이 검의 길에 오르기를 바라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브리센을 이끌어 온 모든 가주가 검의 길에 올랐던 것은 아니었으니, 그냥 적당히 자라서 검술이나 이어받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레이가 검의 길에 올랐다. 그것을 알자 에반은 그레이를 변경백으로 만들어 멀리 쫓아버렸다.
'그레이에게 아들이 있다 했다. 그레이를 경계하는 줄은 알았지만 그레이나 그레이의 아들을 후계로 삼느니 레넌의 숨겨진 딸을 데려와 후계로 삼을 만큼, 레넌의 딸을 넘겨 받고 비밀에 부치는 것을 대가로 자작위를 주고 상단을 지원해 줄 만큼이었을 줄은 몰랐군.'
칼리안의 핏줄에 대해 그렇게 거부 반응을 보였던 에반이, 남몰래 태어난 아이를 후계로 둘 생각을 정말 했다는 것이 놀랍다.
그 아이를 낳은 이는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 드미레아가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까지도 레넌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 비밀 유지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을 가장 확실하게 실행시켜 오던 브리센에서 무슨 짓을 했을지는 뻔했다.
생각, 추측, 확신을 마친 드미레아가 결정을 내렸다.
"아이는 없었다."
제 자식 팔아 잘 먹고 잘 살았던 놈에게 그 자식 다시 넘겨줄 수가 없어서 그렇게 말했다. 게다가 레넌은 이제 곧······.
"그래."
아이는 직접 찾아보면 될 일이라 여긴 레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한 얼굴이 되어 입을 열었다.
"아무튼 그 대단한 코끼리들도 오늘이 마지막이겠구나."
드미레아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 등을 돌리고 죽은 시신이 없습니다.
- 시신 중에 일반 사용인은 없습니다.
- 두 번 이상의 공격으로 사망한 것은 에반 브리센 뿐입니다.
이딴 놈들도 사람이라고, 칼리안은 도망가는 놈들도 내버려 두고 일반인도 내버려 두고 덤벼드는 기사들과 에반만 죽였다. 살아남은 이들이 저택을 빠져나가 도망치는 것을 그냥 다 놔뒀다. 그들이 입을 열 것을 걱정하지 않은 것도 아닐 텐데 놔줬다.
그래서 드미레아도 지금껏 검을 뽑지 않았다. 일단 참았다.
"소공작님."
그때 누군가 드미레아의 곁으로 다가왔다. 기사 유란이었다.
유란은 다른 말 없이 드미레아를 향해 살짝 눈짓을 했다. 드미레아가 소리 없는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에 작은 웃음이 어려 있었다.
칼리안을 안전히 빼냈다는 의미임을 알아들었다.
그렇다는 것은 곧, 더는 저 놈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였다.
"레넌."
작위도 성도 없이 이름만으로 불린 레넌의 얼굴이 한껏 찌푸려졌다.
"나는, 손 대지 않은 이에 대한 근거 없는 내용을 내 가문에 덮어씌우려 한 그대의 발언을 불명예로 간주하겠다."
드미레아의 손 끝에 힘이 들어갔다.
주먹을 쥐어 보였다.
뒤에 도열해있던 기사들이 일제히 움직이며 길게 늘어섰다. 그리고 언제든지 검을 뽑을 자세를 취했다. 순식간에 전투 태세를 마친 검은 체인메일의 기사들을 본 레넌이 저도 모르게 한 발을 물러섰다.
'도와줘서 고마워, 드미레아. 후작이 죽은 것을 알리고 겁을 좀 주면 레넌은 알아서 물러날거야. 그 이후는 내가 해결할게.'
드미레아로부터 살기가 흘러나왔다.
레넌은 느끼지 못했으나 그와 함께 있던 사병들과 기사들은 분명히 느꼈다.
"아무도 죽이지 마라."
"네, 소공작님."
"죽이지만 않으면 어디를 잘라놓든 용인하겠다."
"네. 소공작님."
- 채재쟁! 채앵! 채앵!
로난시테가 대답함과 함께 기사들의 검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일제히 뽑혔다. 레넌 브리센의 얼굴이 푸루죽죽하게 변했다.
드미레아가 레넌을 쳐다봤다.
지독히 화가 난 청회색 눈으로 레넌을 보면서, 드미레아가 으르렁거리듯 입을 열었다.
"나는. 레넌 브리센만 상대하겠다."
- 채앵!
은빛의 검이 뽑혀 나왔다.
* * *
그래. 연두색 그거.
내 눈동자 색 그거.
동그란거.
퍽퍽한거.
달달한거.
오지말걸.
"저······."
저 미친 동생 새끼가 지금 나한테 뭘 갖다 붙였냐고.
라고 하면.
저 놈이 지껄인 말 뜻을 추측하던 기사들이 확신을 하게 될 것이다. 다급히 고개를 돌리는 꼴들을 보아하니 이미 많이 늦은 것 같지만 여기서 화까지 내면 돌이킬 방법이 없다. 피망이랑 안 익은 양파 못 먹는 것도 소문났는데 이 이상은 안 된다.
못 들은 척 하자.
독 주머니를 받았을 때보다 조금 더 빠르게 사고를 마친 플란츠가 열었던 입을 도로 다물고 눈을 꽉 감았다 떴다.
기회는 이 때 뿐이라는 듯, 마주치자마자 말 그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 짖은 뒤 일생일대의 대업을 달성한 자의 그것과 같은 얼굴로 쳐다보고는 졸도해버린 정신 나간 동생 놈을 내려다보던 플란츠가 잠깐 하늘을 봤다.
······ 점점이 박힌 별이 전부 다 완두콩으로 보이는 것 같아서 그만두고 다시 앞을 봤다.
하기사.
누가 누구한테 화를 내겠나.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플란츠는 결국 짧은 한숨을 쉬며 감정을 털었다.
진작부터 칼리안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어왔을 딱 한 사람은 아무것도 못 들은 듯 행동했다.
키리에.
사실 반응할 정신이 없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키리에는 나무 아래로 떨어진 새끼 새를 둥지에 올려두는 것 같은 손길로 칼리안을 부축해 레이븐의 안장에 올려 앉혔다. 무릎까지 굽혀가며 칼리안을 잘 태워준 레이븐이 푸르릉 소리를 냈다.
칼리안을 향해 시선을 둔 플란츠가 말했다.
"보는 눈 많으니 가리고 가."
레이븐의 위에 엎어진 것이 누구인지 추측을 하는 것과 그것이 칼리안임을 눈으로 보고 확신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 아닌가. 게다가 귀족들은 이미 모두 대문을 닫았다지만 그들의 눈과 귀를 대신할 정보원들은 평소보다 더 많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네. 알겠습니다."
이미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말하는 대신 짧게 답한 키리에가 자신의 로브를 벗으려 하자 플란츠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
"너도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 것이 좋을 텐데."
"급히 나오느라 다른 것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이 곳에서 시간을 끌어 봐야 칼리안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때문에 플란츠는 더 고민할 것 없다는 듯 제 망토를 풀어내어 키리에에게 건넸다.
레이븐의 안장에 매여 있는 가방 안에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을 새카만 여벌 로브가 두 장쯤 더 들어 있다는 것을 플란츠는 물론 키리에도 몰랐던 터라.
금색 자수가 들어간 새하얀 망토.
그것을 다른 말 없이 받아 칼리안을 덮어준 키리에가 입을 열었다.
"플란츠 왕자님의 말이 있는 곳까지 제 말을 타고 가십시오. 함께 모시겠습니다."
플란츠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말에 오르는 대신 함께 온 기사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다섯 남고. 나머지는 칼리안 왕자 데리고 돌아가도록."
'나머지'에 해당되는 열 명의 기사가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키리에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왜 기사를 나누십니까."
플란츠가 레이븐 위에 엎어진 칼리안을 쳐다보더니, '제발 잠시라도 좋으니 눈 좀 떠서 내 말을 들어주면 안 되겠나'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득 담아 긴 말을 꺼냈다.
"내 아우님께서 저렇게 허약하신데. 형이 된 입장에서 그런 아우님을 호위도 없이 보내드릴 수는 없지."
어쩌다보니 어린애 둘이서 별 것 아닌 일로 힘 겨루기를 하다 결국 머리채 붙들고 싸움 난 것 같은 판에 끼어든 기분을 애써 치운 키리에가 플란츠를 쳐다봤다.
"플란츠 왕자님은 바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플란츠는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애초부터 얼굴 가릴 생각 없이 이 곳까지 당당히 온 듯한 차림의 플란츠를 잠시 바라보던 키리에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혹시 이 곳에 왜 오셨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겸사겸사."
칼리안이 참 좋아할 만한 말을 꺼낸 플란츠가 고개를 돌리며 낮은 목소리를 냈다.
"내꺼. 찾으러."
연두색 눈의 시선이 닿은 언덕 아래, 거대한 저택이 침묵에 잠겨 있었다.
* * *
압도.
애초부터 브리센의 기사들이 아닌 사병이었다.
애초부터 지그프리드의 정예 기사들만 있었다.
유란이 내려간 뒤.
언덕에 올라온 플란츠가 칼리안을 왕궁으로 실어 보낸 그 짧은 시간 안에 브리센 사병의 제압이 끝났다.
사병의 수가 훨씬 많았고, 또 모든 기사와 병사들이 검을 들고 있었으나 소용없었다. 휘두르는 족족 막히고 막힌 뒤에는 검을 잃었다. 지그프리드 기사들의 검을 다섯 번도 받아내지 못하고 검을 놓쳤다. 혹은 베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전투는 순식간에 소강됐다. 그리고 레넌은 목젖 앞에서 정확히 멈춘 검을 보며 완전히 질린 얼굴을 한 채였다.
- 탁, 탁, 타닥!
짧은 세 번의 타격.
그 세 번의 묵직한 타격에 양쪽 발목이 부러지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질끈 감았던 눈을 뜨니 번뜩이는 은빛의 날이 목을 겨누고 있었다.
"상황 정리 끝났습니다, 소공작님."
"도주자는 없나."
"네. 언덕 쪽으로도, 길 쪽으로도 도망친 놈들 없는 것 확인했습니다."
기사 갑옷 입혀두면 다 기사인 줄 알았던 것 같은 레넌 브리센 때문에 수고했다는 말을 하기에도 아쉬운 상황이라서 드미레아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곧 드미레아가 다시 레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레넌은 이러고도 네가 무사할 줄 아는지, 우리가 누구인지는 잊었는지, 대체 너희들 갑자기 왜 이러는지, 그 아픈 와중에도 무엇을 먼저 말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비로소 한 가지를 정해서 입을 열었다.
"브리센 후작을 해한 것에 대해서도 그레이 브리센 변경백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브리센 후작령에서 군대를 이끌어 올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기든, 그때 너는 어차피 이 세상에 없을 테니 신경 써 줄 필요 없다."
"너는 무사할 것이라 생각하느냐. 왕궁에서 분명 이 일에 대한 죄를 물을 것이다, 소공작."
드미레아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더 이상 말을 나누기도 싫었던 까닭이다.
대신.
- 툭!
무언가가 레넌의 앞에 던져지듯 떨어지며 드미레아를 대신한 대답을 전했다.
"누가 누구에게 죄를 묻는다는 말인지 모르겠군."
낮고 낮은 목소리가 레넌을 향했다.
바닥에 떨어진 것은 레넌에게 참 익숙한 검은 주머니였다. 언제나 독을 준비한 것은 레넌이었고 그런 역할 분담은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으니까.
레넌이 크게 벌어진 눈으로 앞을 쳐다보다가, 재빨리 주머니를 집어 들고 무어라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 찾아온 이의 말이 조금 더 빠르게 나왔다.
"왕궁에서 개입하면 안 된다고 내 아우님이 그랬다는데."
생소한 의복.
금사로 수놓아진, 무릎까지 내려오는 새하얀 재킷. 가슴 부근에 새겨진 카이리스의 문장.
그리고.
등이 아닌 한쪽 팔뚝에 새겨진 분명한 발칸의 표식.
"내가 내 아우님 말을 잘 안 들어서."
매일 하던 식상한 왕자 말고.
발칸 부군단장으로 찾아 온 플란츠가 레넌 브리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와 함께,
- 콰아아앙! 콰앙! 쾅!
지축을 흔들며 터져나오는 굉음이 뒤이었다.
저택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영원히 묻어버리겠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