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의 왕자로 사는 법-244화 (245/527)

제43장. 멈추지 마시고(5)

어둠 때문은 아니었다.

앞을 가늠하기 힘들어서 발걸음을 조심하는 것이 아니었다.

"······ 키리에."

"네, 왕자님."

상처가 심했다. 심각했다.

곱게 들어간 날붙이를 비틀어 빼낸 것이 한 눈에 보였다. 죽기를 바라고 내어 놓은 상처였다.

그런 상처를 입은 채로 서 있던 사람을 자리에 눕히고, 다시 조금 일으켜서는 힘주어 붕대를 감았다. 그 뒤에 다시 부축하여 등에 업고 일어서는 동안, 칼리안은 아프다는 말 한 마디를 안했다. 인상 한 번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그저 작고 얕았던 숨소리가 잠시 들리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키리에는 이제 막 걷는 법을 배운 것처럼 걸었다. 아프다는 말 못하는 사람이 숨을 또 참을까봐, 발등 위에 귀한 유리잔을 올려둔 것처럼 걸었다.

"키리에."

"네, 왕자님."

칼리안이 왕궁 밖으로 나간 후 플란츠의 손에 쥐여진 독 주머니를 찾았다. 그것을 눈 앞에 둔 기사는 자신이 플란츠를 독살하려 한 것이 아니라며 무슨 소리를 했는지 말했다. 그런 그를 빌헬름 관의 마법사들에게 인계하고 왕궁에서 나왔던 키리에는, 에반의 시신이 있던 층의 복도 끝으로 걸어오는 동안 자신이 알게 된 일들을 칼리안에게 알려줬다.

차라리 그 쪽으로 생각을 해야 덜 아플 테니까.

그래서 칼리안은 기어코 그 와중에 생각을 했고, 드미레아에게 다시 무언가 말을 전한 뒤 얌전히 키리에의 등에 늘어졌다.

"미안."

"네."

"다음엔, 취해서 업힐게."

다음에는 다쳐서 말고 술 취해서 업힐게.

"네. 알겠습니다."

등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한순간에 마르기를 반복했다.

얼마나 아플지 가늠도 안 될 만큼 다쳤으면서 피에 젖어드는 옷자락에 또 걱정을 할까봐.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쓰고 있는 사람이.

"······ 배고프다."

배가 고프다고 했다.

계단 한 층을 다 내려가고 다음 계단을 밟던 키리에가 몸이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작게 웃었다. 참 칼리안 다운 말이라서, 아까보다는 그나마 조금 나아진 듯 보이는 마음에 안심이 되어서, 그리고 그 말이 꼭 아프다는 소리 대신으로 들려서 웃었다.

"곧 왕궁에 가실 수 있으니, 조금만 참으십시오."

"응······."

조그맣게 대답한 칼리안이 키리에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 곳에 드러누워 있는 기분이 들어서 칼리안도 소리 없이 웃었다.

"바나나 많이."

"네. 공자님께 전해두겠습니다."

"고기도."

"네."

"왜 하필, 또 독 주머니를, 줬을까."

어리광 같이 가벼운 말 뒤에 무거운 이야기가 갑자기 붙어나왔다. 길게 이어 말하지도 못해 중간 중간 숨을 몰아쉬면서 굳이 그 이야기를 꺼냈다. 키리에는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것이 신경쓰이십니까."

정말 어찌나 손이 많이 가시는지.

어리고 연약하신 망할 형님 기껏 살려놨더니 또 절여지게 생겼잖아.

"죽이기 전에, 한 번만 때릴, 걸 그랬지."

"때리지도 못하셨습니까."

"응."

검술은 안 알려주고 독만 준 놈을 너무 곱게 보냈네.

한 대 때렸다고 말해주면 좀 덜 절여질텐데.

"그래도 예전보다는 괜찮으실 겁니다."

"그러려나······."

키리에는 칼리안이 바람 앞에 놓인 마른 모래같은 목소리로 종알종알 떠드는 것도 막지 않고 다 대답을 했다. 아픈 것보단 그게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그런데 이젠, 안 싫은가, 보네."

처음에는 그렇게 미워하더니.

"왕자님을 이해하게 되어서 그렇습니다."

"나를?"

"네."

"착하네, 키리에."

저보다 나이 많은 기사를 또 이렇게 어린애 다루듯 칭찬한 칼리안이 졸음 담은 긴 한숨을 쉬었다.

잠을 쫓으려는 듯, 칼리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검술도 새로, 배우려면. 안 괜찮을, 틈도······ 없겠지."

"전부 가르쳐주실 생각이십니까."

"응."

전부 다 가르쳐줘야지.

잊어버리지 않게 곧바로 알려줘야지.

"브리센 후작의 시신 근처에 검이 두 자루 떨어져 있었습니다."

"응. 그렇, 더라."

"그것을 미리 알고 저와 그렇게 수련을 하셨던 겁니까."

몇 개월 전부터 갑자기 키리에의 앞에서만 두 자루의 검을 들고 수련을 하던 칼리안을 떠올리며 키리에가 물었다.

"아니. 그냥······."

칼리안이 물에 잠겨드는 소리로 웃다 대답했다.

"혹시 또, 없어질까봐."

그리고는 자신의 왼팔을 들어 키리에를 툭툭 두드렸다. 언젠가 잃어버렸던 한쪽 팔을 생각하듯이.

키리에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어두운 계단의 끝이 보였다.

* * *

지그프리드와 브리센.

카이리스에 하나 뿐인 공작과 후작 가문. 그리고 양대 기사 가문.

왕궁 인근의 에이난샤 거리에 사이 좋게 모여 있는 다른 귀족들의 저택과 달리 이 두 가문의 저택은 왕궁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그리고 왕궁을 가운데 두고 서로 반대편에 자리를 잡았다.

이 중 지그프리드 공작저는, 시스파니안의 기사였던 퀴트로스가 수도에서 자신의 기사단을 훈련시키는 것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 하츠아라가 직접 마련해 준 것이었다. 때문에 하츠아라의 입맛에 맞을 만큼 거대하게 지어졌다.

공작이 수도에서 사병을 육성하는 것을 국왕이 돕는 모양새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겠으나 퀴트로스를 마냥 신뢰했던 하츠아라는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그렇게 했다. 실제로도 지그프리드의 기사들이 왕궁을 향해 검을 들었던 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으니 하츠아라의 이런 이유 없는 신뢰가 영 똑똑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기는 어려울 일이다.

그보다 한참 뒤에 지어진 브리센의 저택은 그런 지그프리드를 경계하겠다는 명분으로 세워졌는데, 후작이 공작보다 큰 저택을 지닐 수는 없었기 때문에 지그프리드보다 약 세 보 정도 작은 넓이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에반 브리센의 저택 역시 크다는 소리다.

아무튼 그런 두 가문의 군사가 수도 안에 있음에도 별다른 충돌이 없었던 것은 상대적으로 더 덩치가 큰 기사 집단인 지그프리드가 '코끼리'였기 때문이다. 건드리지만 않으면 되는 순한 초식동물 말이다.

그런데.

- 지그프리드와 브리센의 대치!

그런데 지금 사상 유례 없는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경계는 하되 직접 맞붙은 적은 없던 두 가문의 기사들이 지금 서로를 향해 검을 드리우려 하는 것이다.

다만 그 광경이 참으로 이상했다.

지그프리드의 기사들이 에반 브리센의 저택을 등지고 선 상태로 레넌 브리센의 사병들을 막고 있었다. 덕분에 지그프리드에서 레넌 브리센으로부터 에반 브리센의 저택을 수비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를 만들어 내고 있으니 이보다 이상한 광경이 또 있을까.

알고 보면 그들이 수비하는 그 브리센 후작저 안에 살아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더 이상할 일이지만 말이다.

"내 아버지를 찾아왔는데, 왜 코끼리들이 길을 막는가!"

"공작가에 대한 예의를 지키십시오, 브리센 자작."

"브리센 후작님의 안위부터 확인시켜주는 것이 예의 아닌가?"

어찌됐건, 이 밤중에 지그프리드의 후계자 드미레아와 최근 에반 브리센이 '대외용 후계자'로 내세우려 한 레넌이 이제 막 힘겨루기를 시작한 참이었다.

이 일촉즉발의 상황에 대해 전해들었을 왕궁에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이 일과 상관 없는 귀족들은 일단 모두 대문을 닫았다. 그리고 날이 밝았을 때 자신이 줄 서야 할 곳을 가늠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후작의 안위를 확인시켜드리는 것이 예의에 해당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마치 지그프리드에서 에반 브리센 후작을 억류하고 있다는 듯 들립니다. 언행에 주의하십시오."

"지금 이것이 가둔 것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억류하지 않았습니다."

억류 안했다.

죽였다.

당장은 사실을 알리지 못할 지그프리드의 수석 기사단장 로난시테를 향해 레넌이 다시 소리쳤다.

"내가 직접 소공작과 얘기할테니 소공작을 부르거라!"

"소공작님은 백작의 위계에 맞는 대우를 받고 계십니다. 예의를 갖추시기 바랍니다. 자작."

그러니까 레넌이 레넌 아빠 집에 왔는데 옆동네 사람이 와서는 '우리한테 제대로 인사하면 들여보내줄게' 하는 모양새인 것이 맞다.

이 중에서 하필이면 옆동네 사람 역할을 맡게 된 로난시테가 속으로 잠시 웃었다.

'길 막고 통행세 요구하는 놈들과 지금 내가 썩 다르지는 않은 듯 하군.'

이런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로난시테도 어쩔 수가 없었다. 드넓은 저택 수색이 아직 끝나지 않은데다 지금 레넌의 발을 묶어 둔 채 시간을 끌 만한 다른 명분이 없던 탓이다.

"지그프리드의 기사들이 왜 여기 있는지를 알려준다면 신경을 써보겠다."

"훈련을 위해 나서던 중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하필 내 아버지의 불 꺼진 집 앞에서 말이냐."

"네. 자리를 잡고 보니 하필 불 꺼진 후작저 앞이군요."

지금 마법 등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레넌의 사병들 뿐. 이 곳에 서 있거나 저택 수색에 나선 기사들은 전부 다 어둠 속을 보는 것에 익숙한 이들이었다. 덕분에 어둠에 잠긴 후작저에 지그프리드의 기사들이 이미 발을 디뎠다는 것, 그래서 내부를 샅샅이 뒤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 일이 알려지면 지그프리드라 하여 무사할 것 같더냐!"

"후작저 앞에서 잠시 쉬던 기사단을 찾아와서 무례를 범한 것은 자작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상대가 레넌이라는 사실.

브리센 상단을 거느렸던 적 있었으나 폴룬 상단의 상단주 멜피르 폴룬과는 달리 따로 관리인을 두고 이득만 취했던 머리 나쁜 놈이 아닌가. 그런 놈을 앞에 두니, 비록 억지를 부리는 쪽이 지그프리드라 해도 일단 말싸움에서는 로난시테가 유리했다.

아무튼 그렇게 한참동안 말싸움이 오고 갈 때.

- 절그럭.

무거운 금속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꽤 컸고 또 주기적으로 들려온 탓에 로난시테와 레넌 모두 입을 다물고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로난시테의 뒤에 도열해있던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좌 우로 한 발자국을 움직이며 길을 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무거운 검이 무언가에 부딪혀 나는 소리. 언젠가의 얀이 그것을 두고 무거운 책임감이 만들어내는 것 같다 느꼈던 소리다.

- 저벅, 저벅.

- 절그럭, 절그럭.

일정하며 규칙적인, 그리고 주저하지 않는 발걸음 소리에 위압감이 담겨있었다.

은색의 검을 허리에 매고,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새까만 체인메일을 덧입은 드미레아가 한치의 머뭇거림 없이 걸어와 로난시테를 등지고 섰다. 레넌 브리센을 마주 보고 섰다.

그리고 말했다.

"브리센 후작은 사망했다."

정적이, 찾아들었다.

* * *

키리에를 걱정해서 피를 지워냈었다.

이번엔 레이븐을 걱정해서 마력을 썼다.

안 그래도 이전에 많이 놀랐는데 이번에도 다쳐서 오면 혼자 있지 않으려 할 것 같아서, 어차피 남은 마력 아껴서 뭐하냐 하고 또 마법을 썼다.

"아이는 일단 지그프리드 저택으로 옮기는 중입니다. 소공작께서는 우선 외부에는 알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하셨습니다."

지그프리드의 기사 유란의 말에, 키리에의 등에서 내려 레이븐에게 기대고 선 칼리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는 말이든 알겠으니 가 보라는 말이든 해 주고 싶었는데 이제는 진짜 말이 잘 안 나와서 그냥 말았다.

"소공작께서 완전히 주의를 끌고 계시니 이곳으로는 사람이 오지 않을 겁니다."

브리센 저택 뒷편의 얕은 언덕.

안전히 몸을 뺄 수 있고 인적이 없을 곳에 레이븐을 내려 둔 칼리안이었다. 처음부터 사병들이 오지 않을 장소를 물색한 것이었으니 다른 이들이 여기까지 올 가능성이 적었다.

"그래도 왕궁까지 저희가 모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칼리안이 짧게 답했고 키리에가 입을 열어 설명을 더했다.

"왕궁 인근에 지그프리드의 기사가 보이면 좋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 쯤이면 왕궁에서도 아마 사람을 보냈을 겁니다. 그 때까지는 제가 잘 모셔갈 수 있습니다."

앨런 말고, 발칸 말고, 지금 상황에 완전히 믿기 어려운 기사 말고.

지그프리드와 브리센이 서로 칼을 겨누고 있는 이 상황에 왕궁 밖에 있으면 가장 위험할 칼리안을 데리러 올 사람이 있으리라는 말이었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유란이 예를 올린 뒤 언덕을 내려갔다.

얼마 뒤, 키리에가 칼리안을 향해 몸을 돌린 뒤 레이븐의 등에 오르는 것을 도우려 팔을 뻗었다. 그러다 갑자기 얼굴을 굳히며 칼리안의 앞을 막고 섰다.

'발 소리.'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이 곳에 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잠시만 계십시오."

키리에의 손이 천천히 검 손잡이에 가 닿았다. 칼리안은 여전히 레이븐에게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키리에가 있으니 걱정할 일이 있겠나 싶어서였다.

조금씩 발자국 소리가 다가오기 시작함에 따라 키리에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열 다섯 명, 한 명.'

말 발굽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기사의 것으로 생각되는 열 다섯 명,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의 발걸음 소리가 났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귀를 기울이던 키리에의 얼굴에 조금 놀란 빛이 스쳤다.

'설마.'

곧 키리에가 검 손잡이에서 손을 놓은 뒤 칼리안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왕자님."

"왕궁에서 왔어?"

칼리안이 희미하게 웃었다.

이제 맘 편히 왕궁으로 돌아가서 좀 쉬다가 바나나도 먹고 고기도 먹으면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여기 있는 걸, 용케 알고, 왔네."

"그런데······."

어울리지 않게 키리에가 말을 흐렸다.

- 저벅, 저벅.

그리고 발걸음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감았던 눈을 뜬 칼리안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렸다.

"저······."

자빠져 누워있다 깼으면 얌전히 잠이나 처 잘 것이지.

저 놈. 저 웬수같은 놈. 저 망할 놈. 저 새끼. 등등.

많은 단어를 입 속으로 꾹꾹 눌러담은 칼리안이 인내심을 가득 담아 입을 열었다.

"저, 분이 여기를, 왜 오셨을까."

칼리안은 발칸의 기사 중 몇몇의 이름을 일러주며 자신을 데리러 오게 하도록 앨런에게 알렸다. 그리고 딱 그들이 칼리안의 앞에 서 있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 기사들이 당당히 왕궁 밖을 나설 때 더 당당한 모습으로 무단 외출을 한 뒤에, 동생 놈이 말을 어디에 숨겼을지 그 똑똑한 머리로 참 잘 생각해내고 찾아온 완두콩이 맨 앞에 서있다는 것이 문제였지.

심장 쇠약에서 이제 막 벗어난 탓에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는 환자가, '저 새끼 지금까지 잘 살려놨으니까 이제 그냥 죽여버리고 앞으로는 속 편하게 혼자 살아야겠다' 하는 표정을 새파랗게 질린 얼굴에 띄워놓고 있는 중환자를 보며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내 아우님께서 오지 않으시기에. 아무래도 죽었나 하고."

"네······ 아무래도 곧 그렇게 되겠네요."

간신히 대꾸한 칼리안이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기껏 살려놨더니 또 꾸물꾸물 기어나온 희끄무레한 꼬락서니를 보고 있다가.

"망할 완두콩······ 파릇파릇하네······."

잘 살아있는 것 확인한 김에 찰진 욕을 한 번 해 준 뒤에.

- ······ 풀썩!

비로소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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