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의 왕자로 사는 법-237화 (238/527)

제42장. 그 심장(4)

아르센이 에우리아에게 새하얀 계란을 선물했다.

그것을 받아 온 에우리아는 계란 부화시키는 방법을 알음알음 물어가며 배우기 시작했다.

칼리안이 플란츠에게 잿빛의 고양이를 선물했다.

빌헬름 관에 루시와 새끼 고양이를 다 데려와 무릎 위에 올려 둔 플란츠는 티내지 못할 무언가를 잊기 위해 새로운 고양이 이름을 열심히 고민하며 일을 했다.

히나가 플란츠에게 새끼 고양이 목줄을 선물했다.

목줄에 새겨진 '나는 플란츠 왕자님을 좋아하는 플란츠 왕자님의 고양이입니다' 라는 글씨를 본 플란츠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칼리안은 르메인에게도 뭔가를 선물했다.

'요즘 신경 쓰실 일도 많았을 테니, 좋아하시는 승마 공연을 보시면서 잠시나마 여유를 되찾아 보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하루종일 키리에와 수련을 하고 난 뒤 조금 늦은 저녁에 르메인을 찾아가서는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을 걱정한 칼리안의 마음이 담긴 선물같은 말이 고맙고 기특해서, 르메인은 크게 고민할 것도 없이 그리하겠노라 대답을 했다. 칼리안을 만난 뒤 업무 보고를 하러 온 앨런에게 르메인이 이런 얘기를 전하며 기분 좋아하고 있을 무렵.

방금 전까지 기특했던 바로 그 놈이 도망을 갔다.

그런 소식을 듣고도 이제 놀라지 않는 자신이 더 놀랍다 생각한 르메인이 이마를 감싸쥐었다.

'기특한 일을 한 번 하시고 머리 아픈 일을 한 번 하시다니. 확실히 왕자님은 무엇 하나 기울어지게 행동하시는 법이 없지 않습니까. 과연 어찌나 공평한 처신인지.'

'진심에서 우러난 말이 아니라 백작이 나를 놀리겠다는 심산 같은데.'

'그리 궁금하시면 말씀을 드리지요.'

'아니. 알고 싶지 않네.'

마법사의 감상을 한 귀로 흘리며, 외출 금지를 그냥 풀어버릴까 하다가 일단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규칙을 어기는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마저 없으면 왕궁을 그냥 침대 있는 곳 정도로만 생각하고 세상 구경하는 새끼 까치마냥 나돌아다닐 것 같아서였다.

그러니 외출 금지령은 그냥 두고.

이번에 돌아오면 정말로 따끔하게 혼을 내야지.

······ 저 마법사 없을 때.

* * *

이렇게, 많은 이들이 훈훈한 선물을 주고 받은 다음 날.

발칸 부군단장들의 집무실에 들어온 칼리안이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흐음."

정혼자의 집에 잘 다녀온 뒤 일단은 잠을 자고, 아침이 되고 나서 르메인보다 얀에게 더 많이 혼난 뒤였다. 앞으로 얼마 동안은 드미레아를 만나러 계속 왕궁을 빠져나갈 계획이라는 말을 해주면 더 혼날 것 같아서 그 말은 안 했다.

열심히 혼나고 열심히 4층 올라가서 혼나서 서러운 만큼 밥을 먹고 키리에를 불러다가 다시 수련을 하고. 그 후 이렇게 빌헬름 관에 온 참이었다.

'헤르츠 부군단장은 플란츠 왕자님과 함께 마나실 군단장을 만나러 갔습니다. 돌아가 계시면 체르밀 궁으로 찾아가도록 제가 말을 전하겠습니다, 칼리안 왕자님.'

'나보다 더 바쁜 사람 부를 수는 없고. 잠깐 들어가 기다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중간에 마주친 니들렌과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빈 집무실에 들어왔다. 그리고 무언가를 봤다. 아니, '맡았다'.

"······ 어쩐지 아침 내내 푹 절여져 있더라니."

또 식초에 절인 양배추같은 꼬락서니를 하고 깨작깨작거리는 것을 보다 못해서 '그거 다 먹으면 검술 하나 알려줄게' 해가며 밥을 먹여놨건만. 놈이 왜 그랬는지 이유를 찾았다.

미네시아스.

주먹만한 종을 거꾸로 세워 둔 것처럼 생긴 보라색의 꽃 한 송이가 아르센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것을 잠시 쳐다보던 칼리안이 살짝 웃었다.

"향기 좋네."

언제 뒀는지는 몰라도 집무실 전체에 아주 좋은 꽃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설마 아르센이 자신의 자리에 꽃을 둘 줄이야.

곧 웃음기를 지운 칼리안이 타박 타박 걸어가 꽃을 들어올렸다.

"이것을 어찌해야 하나······."

달라고 하면 이상하고 치우라 하면 더 이상하고. 태우자니 미안하고 버리자니 아깝고. 그런데 이건 웬 꽃이지. 설마 내 따까리 연애하나. 하기사 한참 연애도 하고 좋을 나이기는 하지. 근데 누구지. 아무래도 더 속기 전에 이 놈이 얼마나 미친놈인지 알려줘야 할 것 같은데. 그런데 내 따까리 설마 진짜 연애하나. 음.

그런 고민을 잠시 하고 있을 때.

"둬."

칼리안의 것이 아닌 또 다른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열어 두었던 문으로 들어온 이가 짧은 말을 했다. 플란츠였다.

고개를 돌리고 간단한 예를 보인 칼리안이 입을 열었다.

"이건 언제부터 있었습니까."

플란츠는 대꾸도 없이 서류부터 일단 펼쳤다. 그냥 두라고 했으니 나머지는 관심 끄라는 뜻이다.

관심 끌 생각 손톱만큼도 없는 칼리안이 생글거리는 얼굴로 플란츠를 계속 보고 있자, 그제야 답이 나왔다.

"어제."

하루종일 저 향을 맡으면서 일을 했단다.

치워달라는 그 한 마디를 못하고.

하는 짓을 보아하니 아르센한테 말하려는 레릭도 말렸겠지.

"내 형님께서는 어찌나 배려심이 넘치시는지."

짧은 한숨을 쉰 칼리안이 집무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는 바람을 일으켜 집무실 안에 가득한 미네시아스의 향을 멀리멀리 내보냈다.

그것을 본 플란츠가 불만어린 얼굴을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칼리안이 플란츠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과보호 아닙니다."

플란츠에게 꽃이라는 것이 단순한 기호가 아님을 안다.

"괜찮았으면 아침에 그런 얼굴 하고 계시지는 않았겠죠."

적당히 향이 날아간 것을 느낀 칼리안이 아르센의 책상 서랍을 열어 그 안에 꽃을 넣었다. 그리고 열린 창문을 잠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어제 란델 형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자몽 차를 주시더라고요."

또 뜬금없는 말 시작하는구나 싶었던지 플란츠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서류를 넘겼다.

"처음에는 자몽 케이크, 그 다음에는 자몽 소르베. 어제는 자몽 차. 그걸 보는데 문득 자몽이 싫어졌습니다. 갑자기요. 시고, 쓰고, 떫은건지 단 건지 알 수 없는 맛이 갑자기 싫어서."

자신을 만날 때에는 진득하게 녹인 초콜릿 음료를 내어주던 란델이다. 제 형제가 싫어하는 것에는 참 많은 관심을 두는 듯한 란델의 행태를 생각하던 플란츠를 향해 칼리안이 물었다.

"제가 뭐라고 했을 것 같습니까."

"다른 차 내오라 했겠지."

당연하다는 듯 나오는 대답에 웃은 칼리안이 말했다.

"형님 다른 사람에게 꽃 향기 못 견딘다는 말 하신 적 있습니까."

칼리안이 눈치채고, 앨런이 알아보고, 르메인이 전해듣게 하는 것 말고 직접 네 입으로 싫어함을 말한 적 있는지.

한동안 대답 없던 플란츠가 입을 열었다.

"아직 향이 강해서."

싫다고 이야기를 해 보아도 소용없던 이의 향기가 아직 강해서. 꽃이 싫다는 말만은 직접 꺼내 보았던 적 없었다고 대답을 했다.

"하셔도 괜찮습니다."

고치려 노력하는 것도 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 해서 억지로 참는 것까지 괜찮다는 건 아니지 않나.

"무뎌질 때까지 억지로 참는 건 괜찮아지는 게 아니라 그냥 버티는 겁니다.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루시가 새끼 고양이 가르치듯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간다. 키리에처럼 저 알아서 성장하지도 않고 드미레아처럼 한 두 마디 만으로 제대로 서는 것도 아니고. 뭐 하나 싫다는 말도 못 하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그러면서 형 노릇은 또 하겠다 드는 게 미치고 환장할 부분이기는 한데 아무튼.

흰 색과 짙은 회색 사이 어딘가에 머무는 애매한 밝기의 회보라색 재킷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칼리안이 작은 한숨 섞인 말을 했다.

"제가 잊어버린 게 있으면 그것도 얘기해주시고요."

봄 기운을 담은 바람이 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

클린 마법, 이제 아주 조금 느끼게 된 칼리안의 마력이 스치고 지나간 것을 눈치 챈 플란츠가 낮은 소리로 대답을 했다.

"······ 알았어."

그래도 가르쳐 주는 것들은 고분고분 순하게 알겠다 하니 그것 하나는 참 다행한 일이다.

"헤르츠 경은 왜 안옵니까."

"식사."

"아. 혹시 돌아오면 저한테 오라고 얘기 좀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있어."

"네. 그런데 형님 점심은요."

"아직."

"그럼 저랑······."

"싫어."

"네."

활짝 열린 창문으로 불어드는 선선한 바람 속에서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인 칼리안이 방긋방긋 웃었다.

망할 놈이 나한테는 참 잘도 말한다.

* * *

그래도 영 눈치가 없지는 않은지라.

밥을 먹고 오니 창문은 열려 있고 꽃은 서랍에 넣어져 있고 칼리안이 왔다 갔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아르센은 서랍 속의 꽃을 들고 나와 히나의 집무실에 갔다. 그리고 계란 파는 곳을 알려준 두 조언자에게 감사의 선물로 그것을 건넨 뒤 칼리안을 찾아왔다.

생강과 복숭아를 넣은 블랙 티에서 알싸한 듯 단 향이 올라왔다.

"피로 회복에 좋다고 하니 다 마셔요."

차를 앞에 둔 아르센에게 칼리안이 히나와 똑같은 말을 하자, 싱긋 웃은 아르센이 답을 전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제이아 경 온 뒤로는 꼬박꼬박 제 때 퇴근하고 있습니다."

"그건 다행이네요."

플란츠가 체르밀 궁에 돌아오는 시간이 빨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아르센 역시 숨 돌릴 틈이 있으리라는 것도 가늠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칼리안은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큰 일 두 건이 겹쳐 그렇게나 바빠지게 되었던 것이 누구를 위한 누구의 안배인지는 말하지 않은 채였다.

"다른 시키실 일이 있으십니까."

발칸의 일에 더불어 간혹 히나의 호위까지 신경써주고 있는 사람이 또 다른 일이 있는지를 물었다. 칼리안의 웃음에 미안한 마음이 더해졌다.

"사실 두 가지인데 하나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 급한 것이 있습니다."

발칸의 인원이 늘어난 만큼 지휘 체계도 바꾸고 운영 방식도 손보아야 할 때라는 것을 알지만 지금 그것을 말하면 아르센이 유서 써올 것 같아서 일단은 미뤘다. 증원이 끝나고 나면 본인도 필요성을 느낄 테니 그 때 가서 하도록 기다려주거나 비교적 팔팔한 완두콩에게 맡겨보기로 했다.

- 탁!

다만 그 완두콩에게 절대 맡길 수 없는 나머지와 관련된 것이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그것을 본 아르센이 저도 모르게 눈을 찌푸렸다.

잊고 싶은데 잊지도 못할 검은 조약돌.

싹 나은 어깨가 잠시 아려오는 듯 했지만 칼리안에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조약돌 보는 아르센도 어깨가 쑤시는데 아르센 보는 칼리안은 오죽할까 싶어서.

"쓸데 없는 생각 말고. 헤르츠 경."

"······ 부군단장이신 왕자님과 계시더니 눈치만 느셨습니까."

"나 원래 눈치 빨라요. 형님 눈치가 더 좋은거지."

칼리안은 그 길고 긴 호칭은 언제 정리할거냐 물어보려다, 자신이 끼어들 문제는 아닌 것 같아서 그것도 그냥 미뤄뒀다. 듣기 싫으면 완두콩이 알아서 하겠지.

"오늘 오후 늦게나 내일 쯤, 그레이 브리센 변경백이 란델 형님을 만나러 올 겁니다. 그때 헤르츠 경이 변경백을 한 번만 더 만나서 얘기를 전해줬으면 하는데."

"알겠습니다."

"아, 물론. 강요하는 것은 아니니 꺼려지면 얼마든지 얘기해요. 정말 괜찮으니까."

시키는 일 억지로 하고 나서, 또······.

또 그렇게 주사부리다 얻어맞지 말고.

"싫은 일 안 시키시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안 싫은 일일 테니 뭐든 제가 하겠습니다."

근거 없는 믿음에 피식 웃은 칼리안이 찻잔을 들었다. 항상 낯설지만 그렇다 해서 싫진 않은 생강의 향이 진하게 올라왔다.

곧 미세한 마력의 움직임과 함께 사일런트 막이 둘러졌고, 손에 들린 찻잔을 내려다보던 칼리안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맞아요. 이번에는 나 배신한 척 안 해도 됩니다. 대신 변경백 만나는 것을 왕궁 안 누구에게도 들키면 안 돼요. 내가 직접 만나보고 싶기는 한데 나는 아직 모습 지우는 마법이 익숙하질 않아서."

투명화 마법 쓴 채로 몇 시간을 버티면서도 무리될 것 없던 아르센이 아니던가. 그러니 그런 상태로 그레이를 좀 만나달라는 이야기였다.

"네. 문제 없습니다."

"란델 형님이 브리센 변경백에게 내 말을 전할 겁니다. 국왕 일가가 조만간 왕궁 밖으로 나갈 테니, 그 때 에반이 나를 습격하려 했다는 증거자료 만들라고."

습격이라는 말에 아르센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다만 칼리안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말을 전할 텐데."

톡, 톡, 톡.

찻잔 두드리는 소리가 잠시 울렸다.

그것이 아르센에게는 이미 짜 놓은 복잡한 계획을 이리저리 정리해보는 소리로 들렸다.

"란델 형님도 몰라야 하는 얘기 하나만 더 전해줘요. 증거자료 만들기 전에 일단 에반 브리센 후작을 한 번 만나라고. 그리고 이걸, 보여주라고 해줘요."

검은 조약돌을 가리켜 보인 칼리안이 씩 웃었다.

"브리센 후작을 잡을 생각입니다. 내 손으로 직접."

"왕자님, 그건."

"스승님도 말렸고, 어제 소공작에게도 한 소리 들었는데, 나는 계속 고집 부리는 중이니까 아무 말 하지 말아요. 이유가 있는데 그걸 경한테 알려주면 안 될 것 같으니 궁금해하지도 말아줬으면 하고."

에반의 검술을 눈으로 보고 플란츠에게 알려주려는 계획.

나중에 그레이를 좀 털어낼 생각이긴 하지만 절대로 제 손으로 플란츠를 가르칠 생각은 없을 에반의 검술만은 칼리안이 직접 빼낼 계획을 세우는 바람에 일을 이렇게 벌이는 것 아니던가.

브리센의 검술이 끊기지 않았으면 하는 기사로서의 마음, 그리고 플란츠가 제대로 브리센을 장악해서 칼리안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힘을 가지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결정한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들은 앨런은 혀를 차며 걱정했지만 반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르센은 반대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래서 아르센에게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아무튼. 브리센 후작은 변경백이 란델 형님과 손을 잡았다고 착각할 겁니다. 빨리 형님을 세자위에 올려야 하는데 란델 형님까지 나섰고 내가 그렇게 설쳐댔으니 마음이 급하겠죠. 어떻게든 없애버리고 싶을 텐데 또 어찌나 겁이 많은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은 칼리안이 말을 이었다.

"국왕 일가가 왕궁 밖에 나갔다는 소식을 들으면 이 기회에 나를 공격해볼까, 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을 겁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절대로 실행하지는 못할 테고요. 나를 잡을 만한 사람이 카이리시스에 후작 말고 없다는 건 누구나 아는데다, 브리센 변경백에게 누명을 주어 보아야 변경백 실력 별 것 없다는 건 내 쪽에서 잘 알고 있으니 소용 없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라서."

칼리안의 손가락이 조약돌을 가리켜 보였다.

"예전에 내가 누구에게 당했는지, 내가 잠적했을 때 내가 얼마나 크게 다쳤었는지, 그걸 비밀로 하기 위해서 공작저에 몸을 숨겼다는 것까지 전부 다 변경백에게 알려주세요. 변경백이 실수인 척 흘린 얘기 주워들은 후작이, 나를 습격할만한 실력을 가진 이가 또 있다는 걸 알게 되도록."

칼리안을 습격한 에반이, 제온에게 누명을 씌울 계획을 떠올리게 하도록.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면 미끼 옆에서 왔다갔다 하는 작은 먹이가 아주 맛있어 보일 겁니다."

세자위에 오를 생각에 들떠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정혼자 집을 들락거리는 왕자 하나쯤은 언제든지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맛있어 보이겠지.

"저는······."

그 뒤로 구체적으로 이어진 칼리안의 계획을 모두 들은 아르센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러더니 느긋한 얼굴로 차 향을 음미하는 칼리안을 보며 다짐하듯 말했다.

"평생 왕자님 따까리 할 겁니다."

좀 많이 무섭긴 한데 아무튼 무서워서 하는 것 아닙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입 아프게 뭘 그런 말을 해, 하고.

꽃 사랴 일 하랴 앞으로도 계속 바쁠 따까리 보면서 칼리안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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