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의 왕자로 사는 법-224화 (225/527)

제40장. 감당 못 할 텐데(1)

무엇이든 단 것을 좋아했다.

오로지 커피만 쓰게 마시는 이유도 함께 곁들이는 것들의 단 맛을 더 잘 느끼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될 만큼 단 것을 좋아했다.

그러니 단 맛이 강하지 않은 보라색의 고구마와 당근이 들어간 케이크 맛이 이렇게나 단 것은, 리베른의 국왕 엘린느의 요리사가 오로지 앨런의 취향만을 고려했기 때문일 터였다.

"맛있는데 왜 안 드십니까? 무려 리베른 국왕께서 보낸 것인데요."

앨런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단 것을 좋아하는 에우리아가 제 머리색과 꼭 같은 보라색 케이크 한 조각을 순식간에 먹어치우며 이렇게 물었다.

"엘린느가 선물 보낸 게 하루이틀도 아닌데 뭘 대단한 것이라고 그러나."

"보존 마법까지 걸어가면서 보낸 선물인데 한 입이라도 드시지 그러세요. 이건 그냥 마나실 백작님 입맛에 딱 맞춘 단 맛인데."

"고구마에 당근 케이크라니. 내가 좋아하는 맛이 아니네."

사과와 보라색 당근을 조려 만든 퓨레를 층층이 넣은 고구마 케이크 맛이 굉장히 좋았음에도 한 입도 먹지 않은 앨런이, 케이크 잘 먹는 에우리아를 이해 못하겠다는 듯 대답했다. 앨런의 기준에서는 고구마나 당근이나 케이크 재료로 쓰기에는 영 어울리질 않는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칼리안에게 알릴 것도 전할 겸 이번에 도착한 리베른의 선물도 앨런에게 전달할 겸 찾아온 에우리아만 신이 났다.

"맛만 있는데요. 하긴, 마쥬리니 한 잔만 있으면 딱 좋을 텐데 그건 아쉽지만요."

아침부터 찾아와서는 히몰리카 못지 않게 높은 도수를 자랑하는 사과 술을 찾는 에우리아를 본 앨런이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앨런 역시 술을 즐기기는 했으나 어디 에우리아만 하겠는가.

"손도 안 대시니 괜히 마나실 백작님 앞으로 온 것 제가 뺏어 먹는 기분이네요."

"그런 기분이라 하기엔 너무 잘 먹고 있는 것 아닌가?"

"맛있어서요."

아마도 아르센이 본다면 제 눈을 의심할 해맑은 웃음과 함께 대답한 에우리아가 두 번째 케이크 조각을 앞으로 끌어왔다.

"리베른에서 이번 달에는 상급 마석이 달린 장신구까지 보냈어요."

"마석 구하기도 힘든데 그건 잘 됐군. 이따 살펴보겠네."

"이 쪽에서 보내는 것은 별반 달라지지 않고 리베른에서 보내는 것은 점점 금액대가 올라가는데 저희 이거 계속 받아도 됩니까?"

사실 먹을 것 뿐 아니라 온갖 마법 도구며 서적이며 장신구까지, 수많은 선물들이 리베른에서 마법사 협회를 통해 주기적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양국 마법사 협회간의 교류를 명목으로 보내오는 리베른의 이런 선물들이 사실상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앨런 뿐 아니라 에우리아도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나 주는 것이니 그냥 다 받으면 되네."

"다른 나라 신경 쓰느라 직접 보내지도 못하면서 협회 이름 팔아가며 매달 이렇게 챙겨보내는 리베른 국왕님도 참 대단하십니다."

적당한 감탄과 적당한 비아냥이 섞인 말이었다.

앨런은 그것이 우정에 기인한 것인지 혹은 아들 로닐의 일에 대한 죄책감에 기인한 것인지 이유를 굳이 따지지 않은 채 엘린느가 보내오는 선물을 전부 다 받았다. 어차피 그 비싼 검은색 자개 마차도 그냥 받았는데 다른 선물들 쯤이야 하는 마음이 컸다. 마석은 좀 의외였지만.

그 선물을 굳이 거절 않고 다 받는 앨런의 속내라는 것이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으나, 선물을 받는다고 또 계속 챙겨 보내는 엘린느의 속내 역시 에우리아가 가늠할 수 있을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 맛보기 전에는 도무지 그 맛이 상상되지 않는 보라색 고구마, 딱 그것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덜 익은 감자 맛이 날 것도 같고 포도처럼 달 것도 같고 어쩌면 가지 맛이 날 것 같기도 한 보라색 고구마 말이다.

선물 주고 선물 받는 진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어느 국왕과 대마법사처럼, 보라색 고구마 특유의 싱거운 맛을 설탕과 꿀로 잘 감추고 만들어 낸 케이크를 세 조각이나 뚝딱 해치운 에우리아를 향해 앨런이 손을 내밀었다.

"다 먹었으면 이제 주게."

"뭘요. 케이크 값이요?"

"싱거운 소리 말고. 텐실 왕세자 뒷조사 결과 말일세. 매번 다른 마법사 통해서 선물만 보냈으면서 오늘은 직접 왔으니, 조사 결과 보여주려고 선물 배달 핑계로 직접 온 것 아닌가?"

"뒷조사라 하시면 제가 뭐가 됩니까. 이게 다 마나실 백작님 때문에 시작한 일인데 그럴싸하게 포장은 좀 해주세요."

앨런이 들어줄 리 없을 요구를 하며 툴툴거린 에우리아가 쓴 커피로 입가심을 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건 칼리안 왕자님 일이니 왕자님께 제가 바로 드릴 건데요. 마나실 백작님 안 보여드릴 겁니다."

"하여튼 이놈이고 저놈이고 내 말은 오라지게 안 듣지."

리베른 떠난 이래 제대로 된 대마법사 취급을 받은 기억이 잘 없던 앨런이 미간을 좁히며 대꾸했다.

이놈은 저 같은데 저놈은 누구냐고 물어볼까 말까 고민하는 에우리아를 향해 앨런이 다시 말했다.

"아무튼 지금 우리 왕자님 심기 불편하시니 내가 드리겠네. 어서 주게."

그래서 그놈의 왕자님은 왜 맨날 심기가 불편하시냐 물어보면 옛다 가져라 하고 눈처럼 새하얀 화염구 하나 던져줄 앨런이다.

"네."

때문에 에우리아는 그냥 군말 없이 대답한 뒤 늘 지니고 다니던 손바닥만한 크기의 가방에서 큼지막하고 두꺼운 서류뭉치 하나를 꺼내 앨런에게 건넸다. 어쨌거나 앨런이 칼리안에게 도움 안 될 일을 할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서류를 들어 슬슬 훑어보는 앨런을 향해 에우리아가 지나가듯 물었다.

"헤르츠 부군단장은 바빠요? 계란 사준다더니 아직도 말이 없는데."

브리센 변경백령 다녀오던 길에 새알 먹자는 에우리아를 계란 사주겠다며 막은 일을 잊지 않은 채였다. 물론 아르센은 바빠서 못지켰고 앨런은 몰랐다.

"지금 제이아 경 일 가르치고 있을걸세. 오늘부터 헤르츠 부군단장 일 돕기로 한 터라.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계란 사주면서 연애하나? 우리 때는 꽃 사주면서 했는데."

"그런 얼굴로 그런 표정 지으면서 그런 말 하지 마요."

좋을 때다, 하고 훈훈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20대 외모의 마법사를 질색한 얼굴로 쳐다본 에우리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빌헬름 가나?"

"오랜만에 니들렌도 보고싶고 꼬맹이도 보고싶긴 한데 학원 일 보러 가야 돼요."

"언제는 왕자님 뵙고 간다더니."

"저 바빠요. 왕자님 뵙는 일이라 굳이 시간 내서 왔는데 백작님이 전해주신다면서요. 심기 불편한 왕자님 피해서 얼른 도망갑니다."

사실 시간이 거꾸로 흐른 뒤 제일 많이 바뀐 것은 카이리스의 마법사들이 아닐까. 정확히 말한다면 제일 많이 과로하게 된 것이라 해야겠지만.

이런 생각에 혼자 웃은 앨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헤르츠 부군단장 만나면 까먹지 말고 계란 꼭 사주라고 말해주겠네."

"그건 됐고 니들렌한테 안부나 전해주세요. 할머니가 보고싶어 하신다고요."

"알겠네."

에우리아의 조모인 케이디 세이렌은 6서클의 전격 마법사로, 에우리아와 니들렌의 마법 스승이기도 했다.

지금은 은퇴해 세이렌 백작령에서 노년 생활을 즐기고 있는 할머니를 떠올리며 웃음짓던 에우리아가 무언가가 막 생각났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물었다.

"참. 그런데 저 세크리티아 진짜 가요?"

"그리 바빠서 갈 수는 있겠나?"

"가면 가야죠. 오랜만에 바다도 볼 겸. 세크리티아 놈들 낯짝도 볼 겸."

"아직 확정 안 됐네."

그런 말 왕자님 앞에서는 하지 말라고 해줄까 말까 하던 앨런이 그냥 고개만 휘적거리며 대꾸했다. 안 그래도 주워먹기 좋게 잘 흘리고 다니는 비밀인데 굳이 의심 살 꼬투리까지 건넬 이유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칼리안 왕자님과 전하께서도 함께 얘기를 해보셔야 할 터이니. 정해지면 일러주겠네."

"확정되면 바로 알려주세요. 교장 맡기시던 날처럼 가는 날 아침에 그냥 데려가시고 그러면 안 돼요. 또 그러시면 백작님 날벼락 맞아요."

"알겠으니 좀 나가게."

"네."

곧바로 대답한 에우리아가 케이크 잘 먹었다는 인사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손님 나간 방에서 잠시 앉아있던 앨런이 서류를 제대로 넘겨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별 생각 없이 케이크 한 입을 떠 입에 넣고는 으으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채 숨겨지지 않고 은근히 풍겨오는 보라색 고구마 특유의 향이 입에 맞지 않을 뿐 케이크가 맛없는 것은 아니었으니, 남은 것은 맛있다고 먹던 에우리아에게 되돌려 보내야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 * *

같은 시종이라 해도 서로간의 서열이라는 것이 있다.

애초부터 그들 대부분이 귀족이라 해도 그 출신을 따지지는 않았으므로 신분이나 작위의 고하에 따른 서열은 아니었으나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진 상하관계는 있었다.

체르밀에 있는 세 명의 상급 시종 역시 마찬가지. 그것도, 공식적인 서열과 비공식적인 서열 두 가지 종류로 나뉘는 것이었다.

공식적인 서열은 상급 시종에 오른 순서를 기준으로 했는데, 란델의 시종인 덴이 가장 높았고 그 다음으로 얀, 그리고 레릭이었다. 비공식적인 서열은 모시는 사람의 지위에 따른 것으로, 역시 덴이 가장 위였고 그 다음이 레릭, 그리고 얀이었다. 왕자들이 태어난 순서에 대한 서열 차이는 없다지만 서로의 나이를 따져 예의 정도는 지켰으니 말이다.

그러니 어느 면에서건 가장 상위에 있는 덴을 제외하고, 얀과 레릭은 그 자리가 어떤 곳인지에 따라 상하관계가 바뀌어야 했다.

"왕자님들 말씀 또 길어지는 것 같으니까 저는 잠시 업무 보고 올게요. 왕자님께서도 알고 계시니 저 찾지는 않으실 거고 곧 메를린도 올 거예요."

"넵."

그런데 안 바뀌었다.

아무리 귀족들 사이에서 차기 왕세자로 칼리안의 이름을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다 하나 확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둘이 있을 때에는 나름대로 얀과 대등하거나 얀보다 높은 사람처럼 굴어도 되는데 그러질 않는 것이다.

이유야 뻔하지 않나.

"지난 번 일은 미안해요. 동생이 체르밀 궁 안에서는 다들 아는 사실인 줄 알았대요. 둘이 워낙 닮아서 설마 아직도 모를까 싶었나봐요."

설마 몰랐다.

얀이 지그프리드의 장자라는 것을 아는 이라 해보아야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칼리안과 르메인, 그리고 각자의 최측근과 플란츠 정도였지 않나.

"대부분은 닮았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넘어가는데 동생이 그런 생각을 안 했나봐요. 보통은 사람을 보기 전에 직위를 먼저 보는데 말이죠."

아무리 상급 시종이라 하나 시종이 아닌가.

귀족이든 왕궁의 식솔이든 하나같이 얀을 그저 왕자의 상급 시종으로만 생각하지 그 외모 특징을 먼저 떠올리질 않았다.

하지만 드미레아는 애초부터 누군가를 사람 이전에 직위로 보질 않았으니 지금 쯤이면 대부분 다 알고 있으리라 여겼던 터였다.

얀은 별 것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동생이 아직 철이 안들어서 뭘 잘 몰라요."

그러니까 그 대단하신 소공작님을 그냥 동생이라고 부르시고, 철이 안 들었다 하시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부터 적응이 안되고 있는데요.

이런 말을 삼킨 레릭은 그냥 다시 한 번 얌전하게 네, 라고만 대답을 했다.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예전처럼 편하게 지내요. 어차피 왕궁에서는 우리 둘 다 똑같이 왕자님들 시종인 것은 맞으니까요."

"······ 넵."

이렇게, 여전히 뭐가 문제인 줄 잘 모르는 얀이 싱긋 웃으며 말을 건네고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레릭이 여전히 조심스러운 태도로 조심스레 대답하는 그런 문제가 가득한 상황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둘이 서 있던 복도 건너 방 안에서는 더더욱 큰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형님 똑똑하신 것은 제가 잘 압니다만."

곤란하다는 듯 입을 연 칼리안이 잠시 말을 멈춘 채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다 입을 열었다.

"마법과 검술을 같이 배우시는 것이 형님 생각하시는 것만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검술 다 배운 채로 죽었다 다시 사시느라 치사하게 마법까지 벌써 4서클에 이르신 칼리안이 이렇게 말을 했다. 딱 잘라 거절하지는 못하고 있으나 어찌됐건 알려줄 수 없다는 의미였다.

아보카도와 무화과를 함께 갈아 만든 주스를 한 모금 마신 플란츠가 짧게 물었다.

"왜."

아보카도 알맹이 같은 저 놈이 아보카도 나무가 물 빨아들이듯이 이것 저것 죄다 배우려 들 줄은 칼리안도 알았다.

게다가 옛칼리안이 몰래 독학하여 성취한 마법이 무려 3서클이다.

시스파니안께서 보우하신 이런 유능한 핏줄에 브리센이 끼어드는 바람에 이전의 몇 세대부터 왕자들에 대한 마법 교육이 폐지됐을 뿐, 플란츠 역시 재능은 있을 터였다. 하지만 재능이 있다 해서 한계까지 없는 것은 아니지 않나.

마법을 배우겠다 드는 사람이 완벽한 브리센의 핏줄이라는 이런 모순된 상황에 살짝 웃은 칼리안이 입을 열었다.

"마나 운용하는 방법이 서로 다릅니다. 마나 쌓아두고 얍 하면 슉 하고 마법이 써지는 것도 아니고, 마나 쌓아두고 있으면 검의 길에 오른 뒤에 오러가 알아서 부웅 하고 나오는 것도 아니에요."

"짖지 말고. 제대로 설명해."

일부러 어린애 달래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것에 짜증내는 플란츠를 보며 칼리안이 난처한 얼굴을 했다.

지금 처먹은 무화과 속에 무화과 꽃이 같이 들어있는 것도 모르고 그냥 처먹은 놈이 여기서 더 뭘 배우겠다는 건가 싶어서였다.

"당연히 형님께도 마법 재능이 있으리란 것 역시 잘 압니다. 그래도 지금 둘 다 하시기에는 버거우실 겁니다."

"당장 아니더라도 배우겠다고."

칼리안이 대답 없이 마지막 남은 스테이크 조각을 마저 먹었다. 그리고는 진작에 식사를 마친 플란츠를 보며 말을 이었다.

"루시 털은 그냥 포기하세요. 저 있을 땐 제가 떼 드릴게요. 식사도 더 하시고요. 형님 키 안 큽니다."

계속 장난처럼 상대하는 칼리안의 말에 플란츠의 눈꼬리가 찌푸려졌다.

"내 아우님께서 이젠 짖는 것밖에 못하시나."

"마나 쌓는 연습 열심히 해두시라는 말씀 드렸고, 오늘 지그프리드 소공작과 대련하기로 했으니 관심 있으시면 와서 보시라는 말에 갑자기 마법 알려달라 하시는데 그럼 제가 무슨 말을 합니까."

"사람 말."

"아, 진짜."

곧 있으면 드미레아가 올 시간이다.

이러다 완두콩이랑 밥 먹다가 대련하러 오는 정혼자 기다리도록 하게 생긴 칼리안이 결국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제가 저녁에 스승님 만나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스승님께 배우시는 것이 나을 테니까요."

"말고."

루시 말고 칼리안 인내심을 키울 심산인가 싶은 연두색 눈을 노려보던 칼리안이 한숨을 쉬었다. 엘프들의 어머니 나무에 불 지르는 것은 좋다고 동의하던 저 풀대가리가 밥 잘 처먹다 말고 왜 저러는지 모르지 않아서 결국은 그냥 한숨만 나온다.

"무슨 일만 앞두면 사라질듯이, 급하게 뒷정리 하듯이 굴지 말라는 말. 못알아들은 것 아니잖아."

"형님 마나 알려드리고 드미레아에게 검술 알려주려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됐으니까."

짜증 가득한 얼굴로 칼리안을 마주보던 플란츠가 손가락으로 칼리안을 가리켜보이며 말했다.

"꾸라고, 너도. 제대로. 악몽 깨면. 이상한 꿈 말고."

좋은 꿈 꾸랬더니 그걸 그새 배웠다.

세렌티에게 복수나 하는 그런 이상한 꿈 세우지 말라는 소리다. 저 핑계를 생각해낸다고 또 고민을 했을 것이 뻔하다. 그렇게 고민한 핑계거리 들이대면서, 칼리안이 제대로 애써 볼 만한 일거리 만들어주겠다면서, 배려심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이기적인 손으로 칼리안을 또 잡아채는 것이다.

풀대가리 너 때문에 내가 죽겠다.

내가 진짜 귀찮아서 죽을 맛이다.

두 번의 생을 통틀어 저런 이상한 고집은 어떻게 꺾어야 하는지 배워보지 못한 칼리안이 결국 또 한 번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세크리티아 일 끝나면. 그 때부터 알려드릴게요."

그래서 결국은 이렇게, 이번 일을 일단락짓고 나면 완두콩에게 고양이 털 떼는 마법 가르쳐 주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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