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의 왕자로 사는 법-221화 (222/527)

제39장. 내가 많이 참았지(2)

순순히 말한다면 둘 모두 형이 맞다.

모질게 말한다면 둘 모두 형이 아니다.

안다.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순순히 굴어야 할지, 모질어져야 할지 그것을 알 수가 없었다.

너희들이 나를 생각해주는 것이 고맙다 말하지 못했다. 너희가 왜 나에 대한 일을 멋대로 감추느냐 말하지도 못했다. 웃지도 못하고 화내지도 못하는 그런 마음으로 플란츠를 보며 말했다.

'괜찮으니까.'

괜찮으니까 얘기해달라고.

여전히 그리운 냄새로 기억되는 작은 바닷가에서, 이미 체념했음에도 기사가 되지 않을 수는 없는지를 다시 물어보던 그 목소리로 넘어가 달라 부탁하는 체이스의 말에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차라리 짖든가 아니면 물든가, 어찌됐건 그에 대해 더 묻지는 말고 넘어가라는 얼굴을 한 플란츠를 보면서 웃을 수도 없었다.

- ······ 아무튼 꼭 조심해주세요. 더 들춰보려 하지 말고 잘 지켜보셔야 합니다.

그래서 체이스에게는 이렇게 다시 한 번 당부만 했다.

말 실수라고 하기에는 우습지만 아무튼 칼리안에게 무언가를 들킨 것은 체이스였다. 그런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이스에게는 더 캐물을 수가 없었다.

칼리안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전부 제 심장에 새겨놓을 체이스임을 알아서, 지금 무엇을 어떻게 묻든 체이스에게는 송곳같은 말이 될 뿐임을 알아서 더 묻지 못했다.

플란츠의 말마따나, 그래.

체이스는 지금의 칼리안보다 어리니까. 전부 다 괜찮다 여기기에는 지고 가야 할 것이 너무 무거울테니까.

- 내가 칼리안 왕자에게 어떻게든 설명을 해 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아서.

- 알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데블란이 얽혀 있는 그런 일에 평소의 침착함을 잃는 이가 어디 칼리안 뿐이겠나. 체이스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터였다. 데블란과 무슨 대화를 했는지에 대해 칼리안이 가벼운 의문을 가지리라는 것을 가늠하지 못하고, 그런 가벼운 의문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 혹은 변명을 해 주지도 못할 만큼 말이다.

이 얼마나 체이스답지 않은 모습인지.

- 그저 부탁하고 싶은 말은, 그 일에 대해 자세히······.

- 제가. 나중에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때문에 칼리안도 답지 않게 체이스의 말을 끊었다. 잠시 말을 멈춘 체이스가 대답했다.

- 알겠습니다. 다시 얘기해요, 칼리안 왕자.

체이스는 차마 더는 말을 얹지 못한 채 이렇게 얘기했다. 칼리안은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통신을 끊었다. 그리고 플란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더 묻지 마. 나한테도."

말 좀 들으라는 듯, 반지의 빛이 꺼진 것을 본 플란츠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체이스에게 질문하지 못한 채 대화를 마쳤으리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물론 체이스 대신 플란츠를 탈탈 털어내려 하는 속내도 눈치를 챘다.

그런 플란츠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칼리안이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가 란델 형님 말은 하나도 안 들었어도 형님 하시는 말씀은 고분고분 들어드리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어처구니 없는 말이 또 어디 있을까.

하지만 플란츠는 인상을 찌푸리거나 비웃지 않았다.

말을 잘 들으려 노력한다는 이야기에 웃지 못하는 이유는, 믿기 어렵지만 저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아서였다. 본래 성격이 대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몰라도 체이스의 말이나 간간히 드러나는 예전 성격대로의 행동들을 보아하면 지금은 참 많이 둥글둥글해진 상태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 않나.

"란델 형님은 저를 다루려 하셨지만 형님은 다잡으려 하시니까. 그것을 알아서 저도 꽤 열심히 노력합니다."

지배하려 드는 것 말고, 플란츠는 그냥 형 노릇을 하려고 들었으니까.

그래서 다른 것은 몰라도 플란츠를 대할 때는 꽤 많이 노력했다. 죽이지 않고 잘 살려둔 데다, 칼은 좀 썼지만 버릇 없게 주먹질을 한 적도 없었고, 밥도 잘 먹여 드렸고, 앉으라 하면 앉고 고집 부리지 말라 하면 꺾여 주고 뭐 그렇게 말이다.

물론 본의 아니게 4층을 제 방처럼 들락거린다거나 사람 말을 하는 날보다 짖는 날이 더 많아졌다거나 하는 작은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지만 아무튼 사람이 노력이라는 것을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겠나. 아무렴.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못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은데 하나도 모르겠어서. 그래서요."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노력도 못하겠다.

무엇에 대한 말이 나올지 알 것 같아서. 형이 맞는지 아닌지 정의 내릴 수 없는 그 둘이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숨기려는 사실이 무엇과 관련되어 있을지. 아니, 누구와 관련된 이야기일지 알 것 같아서.

칼리안이 저지르는 일 뒷처리 하기에도 바빠 죽겠는데 멀고 먼 남쪽 어느 바닷가 마을에 사는 웬 보라색 눈깔 가진 놈 뒷처리까지 하게 생긴 연두색 빗자루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칼리안."

"······ 네."

얌전히 대답한 칼리안을 앞에 둔 플란츠가 찻잔 속에 든 딸기 조각, 그리고 민트 잎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말을 이었다.

"알아야 할 내용이면 세크리티아의 왕세자가 잘 말해줄 테고, 별 대수롭지 않은 내용이면 이미 얘기를 했을 텐데. 조용히 넘어가면 안 될 일인가."

칼리안이 대답 없이 플란츠를 쳐다봤다.

대수롭지 않은 일도 아닌데 칼리안은 몰라야 할 내용. 그러니까, 베른과 관련된 중요한 내용.

그것을 끝끝내 알려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멋대로 칼리안의 일에 끼어들어 마음대로 사실을 감추고 있으면서, 더 알려 하지 말라는 소리를 참 당당하게 한다.

"히나가 멋대로 자신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 했던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셨으면서 제 일에는 왜 이렇게 잘 나서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아우님이나 나나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그 모순된 모습을 언급하는 칼리안에게 플란츠가 대꾸했다.

멋대로 플란츠의 일에 끼어들어 마음대로 사실을 감추고, 더 알려 하지 말라는 소리를 더 많이 하는 것은 오히려 칼리안 쪽이 아니던가. 물론 칼리안에게 있어 그 왕제에 대한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지 않았으나 그렇다 해서 서로 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항상 뭔가를 알려드리면 생각지도 못한 걸 함께 배워가시고요."

"내 아우님께서 워낙 잘 가르쳐주시니."

조금도 지지 않고 대꾸한 플란츠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느리게 눈을 감았다. 생각에 빠져들 때 그런 얼굴이 되곤 한다는 것을 아는 칼리안이 다른 말 없이 플란츠의 결정을 기다렸다.

"······ 내 아우님께서는 왜 굳이 유리조각 위를 걷겠다 하시는지."

그것 하나 덜 밟는다고 무슨 큰 도움이 되겠냐만은, 그나마 그 하나라도 덜 밟도록 치워 둔 것을 굳이 찾아가서 지르밟으려 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굳이 밟겠다 하는 이유는."

비슷한 말을 했던 앨런이 생각난 바람에 소리 없이 웃은 칼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질부리려고요, 세렌티 만나면."

그리고는 말 안들을 때마다 짓던 딱 그 표정을 한 채로 대답을 했다.

"주시는 것 전부 다 거절 않고 받아서, 전부 다 겪어내려고요. 피하지도 못할 비만 매번 주시니 그냥 다 맞으려고요. 그래서 나중에 만나면 받은 만큼 전부 다 갚아주려고요. 그렇게 하려면 하나라도 더 받아야 하나라도 더 갚아드리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럽니다. 제가 원망은 잘 못해도 셈은 잘 하니 말입니다."

아.

내 동생 또 미친 소리 한다.

"······ 환장하겠군."

한 번 돌아가시고 두 번째 사시는 분이라 그런가, 생이 남다르셔서 그런가. 그래서 그런가. 어찌나 남다른지 남다르게 미쳐 돌아가는 저 사고방식을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는데 어떡해야 하나.

체이스 돌아갈 때 그냥 걔 동생 하라고 같이 보내버릴 걸 그랬다. 파란 머리 미친 마법사도 같이 묶어서, 쟤 아빠도 보내고 키리에도 보내고 그 버르장머리 없는 시종도 보내고 그냥 전부 다 한 묶음으로 바리바리 싸서 보내버릴 걸 그랬다. 이왕 가는 길에 텐실 앞에 떨구고 가라고 란델 형님도 같이 묶어 보내고 왕궁이 숨이 막히든 말든 카이리스는 그냥 내가 루시 데리고 전하 부양하면서 알아서 어떻게든 해 볼 걸 그랬다.

"히나도, 키리에도, 얀도, 스승님도 저 때문에 살고 있으니 그것만으로 다행이다 생각하고 살았는데 비가 내리고. 형님도 살린 김에 카이리스도 살리고 세크리티아도 살리고, 그렇게 해서 이 시스테라 대륙도 좀 살려보려면 저도 살아야 하니 그런 생각으로 살자 했는데 비가 내리고. 그러다보니 더 못 참겠어서요. 참다 참다 더는 못참겠어서요."

내가 많이 참았지.

진짜 많이 참았지······.

"그러니 그렇게라도 해야 살 것 같아서요. 살고는 싶은데 이유를 만들어야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이제는 정말로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그래서 그럽니다."

"그러다 세렌티 앞에서도 짖겠군."

"그도 나쁘지 않겠네요. 세렌티 앞에서, 멍멍, 하고."

꼭 해보겠습니다, 라고 농담 아니라는 듯 대꾸한 칼리안이 씩 웃었다.

"알려주세요. 저는 형님만큼 어리지 않아서 괜찮으니까."

그 비밀이 무엇이든 어차피 언젠가는 알게 될 텐데.

한 걸음 앞서 가다 비를 맞든 한 걸음 뒤에서 비를 맞든 비에 젖기는 마찬가지였으니. 언제가 되었든 맞아야 할 비라면 차라리 지금 맞아서 이를 갈겠노라고.

플란츠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포기의 의미였다.

"미친놈."

미친놈이 그렇게라도 살겠다는데 어떻게 막겠느냔 말이다.

* * *

마음이 답답했던 만큼, 손은 빠르게 말을 만들어냈다.

'애들도 아니면서, 애들처럼, 굴잖아.'

'왕자님들이 그렇게 굴었어?'

의연하게 빌헬름 관을 나와 체르밀 궁에서 칼리안과 플란츠를 만나고 나온 뒤, 히나가 키리에에게 어리광을 부리듯 속마음을 털어놨다. 베로니카와 드미레아에게는 언니였고 칼리안이나 플란츠에게는 누나였지만 키리에에게만은 동생이었으니 말이다.

'내 범위를 정해놓고, 생각한대로, 나를, 걱정해주는 게, 나를, 위하는 거라고, 두 분 다, 그렇게만, 생각하니까. 나를 오히려, 어린애처럼, 대하니까. 그게, 싫었어.'

'그래서 그러지 말라고 얘기한거야?'

'응.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어. 할 줄 아는 것, 있다고, 얘기했어.'

'그래. 잘 했어.'

너를 걱정해서 그렇게 군다거나, 그게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지 않았다. 무조건 히나의 편에서 히나 말만 들었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말해주며 네가 이해하라 말하지도 않았다. 블루베리가 파란색이 된 날 이후 키리에는 늘 그랬다.

씩씩하게 두 왕자 앞에서 제 할 말을 하고 와서는 그마저도 속이 상해서 키리에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니 굳이 자신의 생각을 더해가며 히나를 가르치려 들 필요가 없음을 알아서였다. 히나가 몰라서 묻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그저 들어주면 되는 일이니까.

그렇게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히나를 빌헬름 관에 데려다 주니, 아르센이 다 죽어가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베른 경, 혹시 부군단장이신 왕자님이나 왕자님이신 부군단장님 지금 대체 어디서 뭘 하고 계시는지 알고 있나? 내가 지금 너무 바빠서 명줄까지 팔게 생겼는데 부군단장이신 왕자님인지 왕자님이신 부군단장님인지 도무지 오시지를 않아서.'

이렇게, 플란츠의 행방을 물으면서. 때문에 그 사람 지금 칼리안 왕자님과 대화중이라는 답을 전했다.

'아. 그렇군. 알려줘서 고맙네.'

이 말에, 정말 죽을 듯한 얼굴이던 아르센은 아주 깔끔하게 플란츠 찾기를 포기하며 다시 일을 하러 갔다.

어쩐지 며칠 째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마법사들은 워낙 깨끗한 터라 잘 가늠이 되지 않아서 키리에도 그냥 관심을 껐다. 눈 밑은 언제나 검었으니 오늘도 그냥 저러다 잠들든지 기절하든지 죽든지 뭐든 알아서 잘 할 테니까.

그 뒤 별반 할 일이 없어서 다시 체르밀로 돌아왔다. 개인 수련 시간이 현저히 줄어든 탓에 틈이 날 때마다 수련을 하고 있었다.

"키리에."

그렇게 수련장에 들어서니, 반가워하는 목소리로 키리에를 부르는 이가 있었다.

칼리안이었다.

칼리안은 이런 시간에 수련장을 찾은데다 키리에를 보았음에도 검을 뽑지 않고 수련장 바닥에 그대로 앉은 채였다. 대련을 하거나 키리에의 검을 보아주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그렇게 앉아 숨을 쉬는 작은 소리는 평소와 같았으나 또 어딘가 달랐다. 히나에게 혼이 났다 하여 저렇게 흐트러질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무슨 일이 있는건가, 없는건가. 일이 있는 건 아닌데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어렵네."

웃는 소리가 미묘하게 흔들린다.

웃음 끝에 매달린 것이 또 아팠다.

그래서 키리에는 다른 것은 더 묻지 않고 칼리안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대련 말고, 가르침 말고, 대화도 말고.

그냥 키리에 등이 필요해서 찾아왔음을 알았다. 그것이 지금의 키리에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기댈 곳이 필요해서 와 있었음을 알았다.

저벅 저벅 칼리안 쪽으로 걸어간 키리에가 털썩, 하고 칼리안의 곁에 앉았다.

"제가 들어드리겠습니다."

술도 못 드시니 업어드릴 수는 없고, 싸움이 난 것도 아니니 등을 보여드릴 수도 없고. 언제나 잘 듣는 귀는 항상 여전하니 칼리안의 목소리는 언제든 다 들을 수 있어서.

역시, 키리에.

흘려보내듯 말한 칼리안이 씩 웃었다.

"너도 알고, 스승님도 아시고. 세크리티아의 왕세자······ 체이스 왕세자께서도 아시는데."

그리고는 또 두서없지만 한결같이 소중하고 아픈 말을 내어 놓았다.

"내 형님은 모르신다 하네. 내가 말하지 않아서 그 이름이 안 들리신다고 그러네. 그럴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알고 있어서 괜찮았는데 알고 있으니 괜찮을 줄 알고 굳이 그걸 또 내가 나서서 확인을 했어."

칼리안이 제 입으로 말해주지 않으면, 혹은 누군가 직접 기억해내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게 된 이름. 잊혀야 하는 이의 그 이름을 세렌티가 정말로 지워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나서서 확인하게 되었음을 입에 담았다.

언제나 그 한 마디 한 마디 허투루 듣지 않는 키리에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들었다.

"스승님 말씀처럼 왕궁 앞에 크게 써서 붙여놓을까. 내가 써서 붙여놓으면 안 까먹을까. 안 잊어버리고 알아줄까, 하다가. 그래도 그러면 안 되겠지, 하다가. 어차피 다 아는 거 한 번 해볼까, 하다가. 그렇게 하면 스승님께 혼나려나. 시스파니안께서도 이번만큼은 이해 못해주시겠다 하려나. 하다가. 그냥······ 그러다가."

바람 소리 같다가도 물 흐르는 소리처럼 들리는 그 목소리를, 그렇게 잊혀져가는 한 사람의 이름에 대해서, 그렇게 흘려가며 다 들어주었다.

"알고 있어서 괜찮았는데. 생각해보니까 조금 안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어찌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어찌해야 하나, 생각을 하다가.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그러다보니 갈 곳이 없어서."

바람 소리 듣듯이 흘려가며 들었다.

물 흐르는 소리 듣듯이 흘려가며 들었다.

"그래서 여기 잠깐만, 있다 가려고."

말 한 마디, 작은 숨 소리 하나까지 전부 다 흘려보내듯 기억해가며 들어주었다.

이번에는 잊히지 않게 하겠노라 서약하였으므로.

"그렇게 하십시오. 잠시 계시다 가셔도 괜찮습니다."

과거의 서약은 이미 지켰으니, 이번 약속도 반드시 지키겠노라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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