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장. 참으세요, 스승님(3)
이젠 그리 놀랍지도 않다는 듯한 목소리가 나왔다.
"또 브리센인가."
그 작은 중얼거림에, 곁에 있던 시종장 라울이 고개를 숙여 보이며 르메인의 기분에 십분 공감한다는 의미를 전했다.
칼리안이 짖고 플란츠가 파닥이다 대충 화해 비슷한 것을 하기로 합의한 그 즈음의 일이었다.
아르피아 궁을 나설 때 만났던 플란츠와의 기분 좋은 대화 덕에 퍽 가벼워진 마음으로 세뉴 관에 들어선 르메인이 한순간에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다는 눈으로 귀족들을 내려다봤다.
아르피아 궁에서 이 곳에 오는 시간이 잠시 늦어진 사이 세뉴 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방금 전달을 받았다.
굳이 따지자면 에반이 구백 구십 아홉 번을 잘못했고 드미레아가 한 번 쯤 잘못 비슷한 것을 했다. 다만 구백 구십 아홉 번을 잘못한 것이 에반이라 하더라도 드미레아가 저지른 한 번이 조금 셌다. 이 일을 빌미로 에반이 또 무엇을 꾀할까 우려되는 것이다.
회의실에 모인 귀족들을 하나하나 보던 르메인의 눈이 드미레아의 앞에서 멈추었다. 그 시선의 뒤를 잇듯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그프리드 소공작."
"네, 전하."
드미레아는 슬레이만의 외형은 그대로 빼닮았지만 성격만은 겨자씨만큼도 닮지 않은 것을 증명하듯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 많은 귀족들의 사이에 서 있는 드미레아를 잠시 쳐다보던 르메인이 입을 열었다.
"모범을 보여야 할 공작가의 후계자 신분임에도 다른 귀족을 향해 살기를 내비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드미레아는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에반은 제대로 된 꼬투리 하나를 잡은 것에 대한 자신의 속내가 얼굴에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좌중을 슬쩍 둘러보았다. 한 마디로 기분 좋은 티가 나지 않도록 조심했다는 소리다.
지금 르메인이 드미레아가 속한 공작가를 제외한 모두를, 그러니까 에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들을 그냥 '귀족'으로 묶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 바로 그 즐거운 마음 때문이었을지 혹은 언제나 즐겁기만 한 가벼운 머리 때문이었을지는 오직 세렌티만이 알 일이다.
이야기를 듣는 드미레아보다 오히려 에반 쪽을 더 오래 쳐다보고 있던 르메인이 드미레아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차후 이와 같은 이야기가 또 들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르메인은 그렇게 딱 한 마디를 한 뒤 입을 다물었다. 나이 차이는 둘째 치고 공작의 자제가 후작을 협박했음에도 그냥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라 하고 일단락을 지었다. 이렇게 그저 한 마디 말로 끝냈으니, 이런 르메인의 처사가 결코 마음에 들지 않을 에반이 눈꼬리가 찌푸려지는 것을 숨기려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 전하.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드미레아는 르메인의 반응이 그러하리라는 예상을 한 것처럼 한결같은 얼굴로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자신의 입으로 '주의하겠다'는 말도 꺼내지 않고 그저 '그렇게 하겠다'라고만 한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근본 없고 편파적인 처사와 뻔뻔한 대답이 또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전하."
때문에 에반은 불편한 심기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주의하며 르메인을 불렀다.
사실 재작년 이맘때만 같았어도 이렇게 조신한 목소리로 르메인을 부를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 때의 르메인은 이런 상황을 만들지조차 못하지 않았던가.
어쨌거나 그 때를 아무리 생각해보아야 시간이 되돌아갈 일도 없을 것이니, 이제 와서는 하등 도움 안 될 과거의 망상에서 빠르게 벗어난 에반이 자신을 쳐다보는 르메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말씀하신대로 모든 귀족에게 본을 보여야 할 공작가의 후계자가 왕궁 안에서 그리 무도한 일을 저지른 것은 분명한 잘못입니다. 그에 합당한 처벌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르메인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특유의 짙은 푸른 빛 눈으로 에반을 한참 들여다보던 르메인이 에반의 말을 입 속으로 되뇌듯 말했다.
"합당한 처벌이라."
그 목소리를 들은 드미레아는 조용히 시선만 내렸다.
애초에 에반이라는 작자가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를 따져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일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드미레아는 그런 에반을 향해 짜증난 얼굴을 하거나, 한심해하거나, 혹은 또 한 번 화가 난 얼굴로 에반을 노려보는 등의 불필요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누가 먼저 시작한 싸움인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항변도 하지 않은 채 입만 다물고 있었다. 그것을 말해봐야 좋을 것이 없었으니까.
드미레아와 에반의 대처가 극명히 다른 것을 잠시 지켜보던 르메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후작이 말한대로 소공작은 공작가의 후계자이니, 소공작의 잘못은 곧 지그프리드의 잘못이라 보아야겠지."
귀족들이 숨 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 르메인의 입만 쳐다보는 그런 상황에서 르메인은 다음 말을 꺼냈다.
"그러므로 소공작에게 죄가 있다면 가주인 공작에게 그 죄를 묻는 것이 마땅할 터. 후계자를 수도에 홀로 두고 방임한 죄를 물어 현 지그프리드 공작의 작위를 박탈하는 것 정도라면 그 잘못에 합당한 벌이 되겠나."
공작의 위를 박탈한다니?
프레이야의 추숭에 대한 소식 만큼이나 청천벽력같은 르메인의 말에, 모든 귀족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에반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귀족의 작위는 오로지 사망한 경우에만 승계된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귀족 개인의 죄를 물은 왕명에 의해 작위만 박탈되는 경우다. 이 때 가문의 정당한 후계자가 있다면 작위는 해당 후계자에게 강제로 승계된다.
물론 법전에도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다른 이도 아닌 공작이 아닌가.
왕자들과 동등한 신분을 가진 이였다. 그런 공작의 작위를 박탈한 전례는 없었다. 공작이 아닌 다른 귀족들이라 해도, 고작 후계자가 다른 귀족과 말싸움하다 살기를 흘렸다는 이유 만으로 그런 벌을 받은 전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전하께서 정신이 나가셨나 하는 눈으로 르메인을 쳐다보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잠시 귀족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줄 것처럼 입을 다물고 있던 르메인이 다시 말했다.
"사소한 말싸움 하나 알아서 해결하지 못하고 나를 통해 굳이 죄를 물어달라 하는 것이 썩 달가운 행동은 아니지만, 후작의 억울한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원하는대로 지그프리드 공작에 대한 처벌을 내리겠다."
에반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만약 르메인이 말한 저 어처구니 없는 일이 진심에서 하는 소리라면, 그리고 만에 하나 그것을 정말 하게 된다면 곧바로 드미레아에 대한 승계가 이어질 터였다.
그러니 이것은 곧, 이번 일을 핑계로 칼리안에게 제대로 된 힘을 건네주기 위한 르메인의 수작질이다.
'르메인······!'
르메인 자신에게건 칼리안에게건 그리 큰 도움 안 되는 슬레이만에게 작위 내놓으라 하면 슬레이만은 이때다 하고 작위 반납한 뒤에 세리에와 함께 카이리스 전국을 돌며 멋들어진 여생을 보낼 사람이다. 그렇게 여행을 즐기다 지칠 즈음에는 남쪽 저 어딘가에서 칼이나 휘두르며 태평한 노년 보내게 하고, 정치질에 제대로 맛들린 드미레아를 진짜 공작으로 만들어서 칼리안에게 쥐여주려는 수작질인 것이다.
양 손 텅텅 빈 칼리안의 한 손에는 정통성을 주고 다른 한 손에는 그 누구도 뚫지 못할 방패를 주어, 르메인과는 완전히 다른 제대로 된 왕좌에 앉히려는 속내가 훤히 보인다.
이번 일을 가지고 프레이야의 추숭에 대해 제대로 반대 한 번 해보려다 오히려 잡히게 생긴 에반이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 말했다.
"아닙니다, 전하. 스스로 원만히 해결하겠습니다."
앞으로 드미레아가 에반의 앞에서 무슨 짓을 하건 에반은 그것을 두고 르메인에게 처벌을 요청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드미레아가 무슨 잘못을 하든 르메인은 무조건 슬레이만의 작위를 박탈하겠다 할 테니까. 오히려 에반이 나서서 드미레아에 대한 처벌을 반대하고 다녀야 할 판이다.
르메인의 짙푸른 눈이 에반을 다시 한 번 응시했다.
더는 되돌릴 수 없을 과거 어느날과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예리한 빛을 내는 그 푸른 눈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리라고, 순간 에반은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래. 스스로 하겠다 하니 다행한 일이군."
르메인은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은 채 이렇게 얘기한 뒤 에반으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시종장 라울에게 고개를 한 번 짧게 끄덕여 보였다.
비로소 회의가 시작되었다.
* * *
똑똑한 놈은 귀찮다.
예민한 놈은 성가시다.
똑똑한데 예민하기까지 한 놈을 상대하는 건 진짜 싫다. 내 형님이 알고보니 되게 똑똑한데 예민하기까지 한 바로 그런 놈이었다는 걸 알고 안그래도 엄청 싫었는데 그 놈이 갑자기 내 형님 노릇 하겠다고 덤벼드는 걸 보고 있는 건 정말 착잡하다. 착잡하고 답답하고 어처구니 없고, 게다가.
"안 됩니다."
인내심까지 필요로 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왜."
"말씀 드렸습니다. 제가 하겠다고요."
벌써 세 번을 말했다.
생일 연회장에서는 에반 때문에 참고 빌헬름 관에서는 아르센 때문에 참았다. 오늘은 저 풀대가리 때문에 참았다. 특히 오늘은 아주아주 많이많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참 대견하다 이제 나도 다 컸구나 오늘부터 진짜 어른됐으니까 이제 술마셔도 괜찮겠다 싶을 만큼 정말정말 잘 참았다.
뜬금없이 세크리티아 측과 대화를 하겠으니 반지를 내놔라 드는 저 연두색 전서구, 아니. 전서구 취급은 싫댔으니까 전서구는 빼자.
아무튼 파릇파릇한 감자 싹같은 저 놈한테, 그냥 직접 얘기하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것도 세 번이나 말을 했으니 저 좋은 머리로 이해를 못했을 리 없다. 왜 싫다 하는지 못 알아들었을 리도 없다. 거짓말 못하는 것도 빌어먹게 잘 알고 있으니 이번 일 숨기지 않고 얘기하겠다 하는 말을 못 믿어서 저러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전하실 말씀 저한테 얘기해주십시오."
형 노릇을 하겠다 하는 건 그냥 냅두기로 했다. 아무튼 칼리안을 칼리안이라 부르며 옛칼리안에 대한 죄책감도 좀 털어내주고 칼리안이 이제 어디에 있어야 할지, 누구로 살아야 하는지 제대로 짚어가며 인정해준 것이 하필 저 놈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얄궂다 싶기는 했지만 그래도 꽤 고맙다고 생각했다.
갈 곳 잃고 사방이 막힌 얼음 속에 갇혀있던 것을 꺼내준 것 같아서, 그래. 그건 정말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체이스에게 놈이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반지를 내어준단 말인가?
"알았으니까."
끊임없이 치미는 화와 인내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칼리안을 느긋하게 보던 플란츠가 딸기차를 한 입 마시고 내려놓으며 여유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내놓으라고, 그거."
아.
세렌티시여.
제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덜 익은 딸기 밑둥같은 저런 놈이랑 얽혀서 매일을 인내하며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아니면 스승님.
혹시 딸기차에 기억력 감퇴되는 약이라도 타셨습니까? 그런 약 있으면 세크리티아로 좀 보내주시지 왜 그 좋은 걸 감자 싹인지 딸기 밑둥인지 구분도 안되는 저딴 놈한테 먹이십니까.
이렇게, 향할 곳 없는 답답함과 무럭무럭 치미는 화를 또 한 번 꾹꾹 눌러담은 칼리안이 흔들림 없는 눈으로 플란츠를 봤다. 그리고는 이왕 세렌티와 앨런을 한 번씩 찾은 김에 인간 생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 수양하는 이의 마음가짐을 떠올려보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저한테 얘기하시면 제가 대신 전하겠습니다."
"그냥 내가 한다고."
칼리안이 생글 웃었다.
"아. 그냥 없애버릴걸 그랬나보다."
조금 새삼스럽지만, 정말로 진작에 그냥 죽여버릴 걸 그랬다.
아르센이랑 갓 자란 죽순 알맹이같은 저 놈이랑 둘 다 그냥 죽여버리고 스승님따라 남쪽 가서 레이븐이랑 루시 키우면서 살 걸 그랬다. 내일 당장 세상이 망하든 말든 봄 햇살같고 여름 소나기같고 가을 석양같고 겨울 함박눈같아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닳아 없어지면 어쩌나 하루하루 그저 아깝기만 한 사랑스러운 우리 히나한테 잘 익은 딸기랑 딸기 아이스크림 사 주고 키리에랑 같이 코코넛 속이나 빨아먹으면서 살 걸 그랬다. 남쪽 가서 살면서 절벽이랑 대화를 하든가 나무랑 대화를 하든가 들이치는 파도랑 대화를 하든가 아무튼 그렇게 살 걸 그랬다. 그렇게 사는게 덜 답답했을 것 같다.
"뭐를."
뭘 없애겠단 소리냐, 너 지금 또 반말했는데 위아래도 모르고 날뛰는 그건 데블란한테 배웠냐, 그새끼 어디 사냐, 애한테 뭘 가르쳤는지 내가 좀 만나야겠다, 뭐 대충 이런 눈이 된 플란츠를 본 칼리안이 한 번 더 예쁘게 웃으며 덧붙였다.
"있습니다. 죽순 알맹이같은 거."
죽순 알맹이가 뭔지를 알아들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던 플란츠가 눈 빨간 동생놈을 향해 한 쪽 입술을 끌어올렸다.
"레넌 브리센이 왕궁에 왔던데."
아이씨.
어떤 새끼냐. 맥주 만든 놈보다 나쁜 그새끼 누구냐.
"······ 누가 그럽니까, 놈이 왕궁에 왔다고."
"몰라."
단 두 글자로 니들렌 목숨을 쭉 늘려준 플란츠를 보던 칼리안이 깊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 제 심장 걸어놓고 협박을 한다.
레넌이 왜 왔을지, 에반이 레넌을 무슨 이유로 꺼냈을지, 아르센은 정말 이동 마법진 때문에 그레이가 있는 곳 인근에 다녀온 것인지 등등을 생각하기 전에 내놓으라고.
에반을 빨리 죽여 없애버려야 저 짓을 못하지, 하고 다시 한 번 굳은 다짐을 한 칼리안이 자괴감과 회한이 가득한 얼굴로 반지를 빼서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는 속이 타는 것 같아서 앨런 몫으로 놓여 있던 딸기차를 한 입에 쭉 들이켰다.
"이상한 말씀 하지 마세요."
"나는 짖는 취미 없는데. 누구랑 달라서."
데블란을 먼저 없앨지, 에반을 먼저 없앨지, 앞에 앉은 완두콩을 먼저 없앨지에 대해 또 한 번 깊디 깊은 고민을 시작하는 칼리안을 보며 피식 웃은 플란츠가 반지를 톡톡 건드려 보였다.
"마나."
루시 털 떼려고 마법 좀 배워볼까 싶긴 했지만 아무튼 지금은 마나를 조금도 다루지 못하니 빨리 연결시키라는 소리였다.
결국 이번에도 저 완두콩의 고집에 꺾인 칼리안은 버릇이 될 것 같은 한숨을 푹 내쉬며 반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 후 반지에 집중하며 아마도 대화를 시작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던 칼리안이, 잠시 할 일이 없어진 김에 주변을 둘러봤다.
이제는 마치 칼리안의 방처럼 익숙해진 아늑한 집무실.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많이 풀어지는 기분이 든다. 그것이 모두 언제나 칼리안을 우선하는 앨런의 덕분임을 알기 때문에······.
칼리안을 우선하는······.
"스승님?"
그제야 어딘가 허전한 기분이 든 칼리안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조금 전까지 집무실 밖에 있던 앨런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평소 같았으면 어디 한가하게 산책이나 가셨겠지 하고 넘겼겠으나 오늘은 조금 다르지 않나.
자신이 집무실에 들이닥치기 직전에 앨런이 무슨 말을 했는지를 이제야 떠올려본 칼리안이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설마."
지금쯤 바닷가 마을 근처에 있는 어느 왕궁에 가 계시고 그런 것은 아니겠지.
"······ 에이, 설마."
이렇게 한 번을 더 중얼거리며 앨런이 어떤 사람인지를 잠깐 떠올려보던 칼리안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질풍노도의 완두콩때문에 아무래도 잠깐 조금 먼 곳에 마실가신 것 같은 스승님 찾아오려고.